악인의 능욕과 압제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가만히 말하며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는도다 (시 73 : 8 - 9)
녹취자 : 이시내
계속해서 하나님 없이 형통한 악인의 악이 어떤 것인지를 앞절에 이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저희는 능욕하며 그랬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을 깔보고 모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상에 없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칠 것이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가치판단의 기준이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지 않거나 바라지 않는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은 언제나 있을수 있는 일입니다. 지휘나 물질의 많고 적음 인정이나 문화적인 관습의 차이 심지어는 종교 때문에 사람들을 멸시하는 이것은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시는 일일수가 없는 것t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상에 있어서 중심이 되시는 사람들은 하나님 때문에 사람들을 선대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눈에는 비록 악인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보이는 사람 속에 나타난 형상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멸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고 아주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반 기독교적인 세력들이 사회에 아주 많이 있습니다. 소위 이야기 하는 안티세력들이라고 해서 기독교에 대해서 한없는 모욕을 퍼붓고 심지어 아주 구체적으로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한 우리의 최선의 대책은 한편으로는 우리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경건하게 사는 것이고 또 하나의 대책은 매일 그들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최고의 대응입니다. 핍박하고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두 손을 들어서 언제나 축복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악인은 정반대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그랬는데 히브리어 성경에는 압제를 가지고 위협을 하면서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압제하겠다고 위협을 하며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여기에서 압제하여 말하며 이렇게 번역을 한 것입니다. 악을 가지고 위협하며 사람들을 누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악인의 또 다른 특징입니다. 악인의 공통된 특징은 사람을 사랑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악인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악인에게서는 사람을 향한 사랑을 기대할 수 없고 혹시 악인에게 사람을 향한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사랑하거나 인정하는 것이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수단으로서 그리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복에 이바지 않는 사람들조차 사랑하는 것은 악인에게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입니다. 이 시인이 고통을 느꼈던 악인의 형통함속에서 악한사람들의 특징을 이렇게 기가 막히게 그려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축복하고 그들이 잘 되도록 그들이 행복할 때 자신도 행복하다고 마음을 갖는 것은 선한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지 악인은 그렇게 할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이렇게 자기중심적인 행복을 가지고 사람들의 효용가치를 판단하고 사람들을 평가하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세 번째는 거만히 말하며 그랬는데 높은 곳에서 말하며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리니까 시편 1편이 이야기한 것처럼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은 사람입니다. 높은데 앉아서 아래다 대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높은 자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앉으실 자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 모든 세상의 일들을 자기 자신이 판단하고 가치를 매기고 하는 종교적인 교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에서 말하는 이 악인은 아주 내면적입니다. 그래서 악한 행실을 한 두가지 하기 때문에 악인인 것이 아니라 그렇게 따지면 성도도 악을 행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악인의 관점은 안으로 들어가서 그 사람의 사람됨을 보고 밖으로 나오면서 그 사람의 사람됨이 행위로 들어난 것을 관찰하는 그런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노아가 홍수 때에 배를 만들었을 때에 노아홍수의 배의 제도를 말할 때 조선공학적으로 배의 모양을 말하는 관점자체가 배안에서 배를 보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그렇게들 평가를 합니다. 그래서 외관이 어떻게 생겼느냐 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안나오고 속에 배의 규모와 길이 넓이 높이 이런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바깥으로 관점이 이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편에서 악인이라고 하는 것은 선한사람과 어떤 차이가 있느냐 하면 그 맨 중심에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사람 그런데 그것은 무엇이냐면 하나님을 알지 아니하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하나님께 대한 무지 하나님께 대한 지식의 거부 이것이 악인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거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높은데서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는도다 그랬습니다.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히브리어 성경에는 하늘을 대항하여 이렇게 나옵니다. 저희 입은 하늘을 대항하며 저희 혀는 땅을 두루 다니는도다 이렇게 나옵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저희 입은 하늘을 대항하며 그러니까 하나님께 대한 도전 하나님께 대한 거부 하나님께 대한 반항 이런 것들이 마음속으로 은근히 일어나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이 고백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그 대적이 마음속에 언뜻 언뜻 스쳐가는 이런 것이 아니라 마음에 꽉 차서 그것이 언어를 통해서 고백된 형태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의 심각성을 무엇으로 하면 알 수 있느냐 하면 반대로 신앙고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어떤 생각 인상 이런 것이 마음에 있다고 하더라도 언뜻 언뜻 스쳐지나가는 사람은 진짜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진짜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 하나님께 대한 앎이 그의 마음속에 있어서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고백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고백을 아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입으로 주를 시인하면 구원의 조건입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호몰로게오라고 하는 단어인데 고백입니다. 고백인데 그 고백이 어떤 고백이냐면 개인적인 고백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 앞에서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 자기가 그리스도를 고백했다는 이유 때문에 박해할 사람까지 포함해서 누구에게나 부끄러움이 없이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이시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하나님이 없다 그런 하나님께 대한 존재의 무시 이것을 마음속에 은근이 품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공공연하게 고백을 하고 자신의 그런 고백에 대해 자기가 책임을 질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굉장히 커다란 하나님을 향한 도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불신앙과 회의는 다릅니다. 회의는 믿으려고 하는데 잘 안믿어지는 것입니다. 불신앙은 안믿겠다는 고집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것은 앞에 언급한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악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이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여기에 혀는 혀라고도 번역될 수도 있고 말이라고도 번역이 될 수 있습니다. 전자로 번역을 한다면 이런 인간이 오만 군데에 돌아다니면서 이 못된 말을 하고 있다 라는 뜻이 될 것이고 라숀이라고 하는 단어인데 만약에 이것을 언어 혹은 말로 번역을 한다면 이런 사람들의 사상이 두루두루 전파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저는 후자의 해석을 좋아합니다. 뒤의 구절하고 어울립니다. 그래서 이 혀라는 말은 히브리어에서 언어 라는 뜻과 관계가 있습니다. 히브리어 하면 라숀이브리뜨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창세기 10장에 보면 온 땅에 구음이 하나이더니 온 땅의 말이 하나이더니 할 때에도 라숀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악한 자 시인이 볼 때에 하나님 없이 형통한 그 악한 자가 자신의 전 존재로서 하나님이 없다는 사실을 전파하고 그 사람이 보여준 행실과 그 말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두루두루두루 전파되면서 그 영향력이 많은 백성들에게 미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사람의 의롭고 올바른 행실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보다는 한사람의 악하고 추악한 삶이 미치는 영향력이 훨씬 더 큰 것입니다. 오늘 보면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젊은이들이 개념이 없고 가치판단과는 상관이 없이 막나가는 젊은이들이 아주 많습니다. 특히 청소년들 이런 혼란이 어디에서 오냐면은 사회의 무질서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이냐면 아이들을 윤리적으로 교육을 시킬 수가 없습니다. 윤리라고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인데 이 관계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의무가 부과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의무가 부과되기 위해서는 가치관이 형성이 되어야지만 의무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치자체가 자기의 풍요와 평안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이바지 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런 혼란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정말 걱정스럽습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현실입니다. 이런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지 공부를 열심히 시킨다고 하는데 그 공부라고 하는 것이 이미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그런 의미에서의 공부가 아닙니다. 미래에 핸드폰을 만들고 컴퓨터를 만들어서 다른 나라에 많이 팔아서 돈을 많이 나라에 벌게 해주어서 구래서 사람들을 풍족하게 살려는 그런 사람들을 만들겠다는 교육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한사람이 기독교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기도하면서 덜덜 떨고 박수나 치고 하면서 교회 시키는 대로 따라하고 하는 그것이 신앙일수 없다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한사람이 신앙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렇게 이렇게 살아라 라고 할 때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우리와 인류를 행복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잘 믿어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렇게 믿고 살아가야 할 당위성에 대해서 우리들이 사상적으로 체계가 세워져서 그렇게 살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악인은 그런 기반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거만히 말하며 하늘을 대적하며 저희의 혀를 땅에 두루 돌아다니는 그런 혀이지만 말로 그렇게 사상들을 전파하지만 행복하지 않습니다. 왜냐햐면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