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공의에 참여함
‘또 악인의 뿔을 다 베고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로다’(시편 75:10)
녹취자: 오정민
이 10절에서는 이렇게 하나님을 언약의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그러면서 마지막 자신의 결심을 고백하는 것이죠. 그것은 악인의 뿔은 베어 버리고 의인의 뿔은 높인다. 그 결심이었습니다. 성경에 이 뿔의 이야기들이 아주 빈번하게 나오거든요. 이 뿔이라는 은유가 갖는 그 의미들이 문맥에 따라서 여럿이 있어요. 때로는 이 뿔이라는 말이 오만, 고집, 돌이키지 않은 패역함 이런 것을 가리키기도 하고요. 또 보다 많은 문맥에서는 이 뿔이 영광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제 생각에는 영광으로 해석을 하는 물론 다른 의미들도 담고 있겠지만 그러나 똑같은 뿔이라는 단어가 이게 히브리어 성경에 복수로 나와요. 똑같은 뿔이라는 단어가 의인에게도 사용이 되었기 때문에 만약에 이 뿔을 오만, 고집, 교만 이런 것으로 해석을 해버리면 악인에게 이 비유는 적합한 것이지만 의인이게는 그렇다면 의인이 될 수 없으니까 의인에게는 부적합 것이잖아요. 그러면 이제 해석상으로 볼 때 같은 의미를 부여해야지만 해석의 통일성이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이거를 영광으로 보는 거예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슴을 아주 많이 가까이 하면서 살 수 있었어요. 광야에 사슴들이 많으니까. 사슴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심지어 그 당시 유행하는 가락 속에는 사슴 곡조라고 하는 유행하는 곡조가 있을 정도로 사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이것이 뭐 여러 가지 뿔 가진 짐승이 한 둘이 아니지만은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는 아마도 사슴을 염두에 두어 두고 이 시를 썼을 가능성이 많다. 이렇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뭐 황소의 뿔 이야기도 나오고 많이 나옵니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녹용을 좋아하잖아요. 뿔이 이렇게 크게 자란 것을 보면 아깝다 이렇게 생각하죠. 녹용을 그렇게 크게 자랄 때에는 잘라봐야 녹각이 되어서 사실은 영양이 없거든요. 이렇게 말랑말랑 솟아날 때 그 뿔을 잘라서 그렇게 이제 보약으로 사람들이 사용을 하죠. 어째든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 눈에 비친 이 사슴은 뿔이 크게 자라서 그래서 커다란 나뭇가지처럼 이렇게 이루게 된 이것을 하나의 영광으로 보았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 뿔을 가지고 사실은 이제 가을철이 되면 치열한 왕위 쟁탈전 같은 것을 벌립니다. 사슴들이 뿔을 가지고 부딪치면서 싸우는 거예요. 부딪칠 때는 커다랗게 바위에 부딪치는 뻑뻑한 소리가 납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뿔이 약한 사슴이 지는 거예요. 그리고 때로는 아주 치명적인 상처를 몸에 입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뿔을 갈아요. 아주 뾰족하게 만들어서 상대방을 공격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인제 암컷들을 서로 차지하고 그래요. 이 사슴이 뿔이 나서 높이 위엄 있게 아주 기다랗게 자란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기에는 무언가 동물세계에서의 나름대로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말하자면 영광처럼 보였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두어 두고 지금 노래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생각이 되죠. 그들이 잘라서 녹용을 사용하고 그러지는 않았지만 만약에 뿔이 잘린 사슴을 본다면 바라보는 그 심경 자체는 아주 수치스러움과 부끄러움 그런 것들을 의미하는 광경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조심스럽게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어째든 악인들의 뿔을 다 베어 버리겠습니다. 무슨 얘기냐면 십자일 전체가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통치에 내가 동참하겠나이다. 이런 뜻이에요. 무슨 뜻이냐면 의인과 악인이 함께 섞이면서 혼란스럽고 부패한 사회상을 형성하였는데 결국은 주님이 오셔서 심판을 하시죠. 이 심판이 이루어지면서 그러면서 악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며 결국은 모두 파멸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어두움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았던 의인들에게는 그 날이 신원의 날이 되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거기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다시 세움을 얻게 되는 그런 놀라운 회복을 경험하게 되잖아요. 이 시점에서 이 시인이 반성을 하는 거예요. 어떤 반성이냐면 모순과 그리고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결국 언약 백성들의 의무는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면서 사는 거예요. 그래서 비록 하나님만큼 권력과 힘은 없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서 자신에게 주어진 그 힘과 자원 안에서 최대한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언약 백성의 삶입니다. 그래서 불의에 항거하고 옳지 않는 것과 싸우고 그리고 불쌍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면서 그들에게 어떤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은 사랑과 자비를 끊임없이 베푸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언약 백성들의 믿음 생활이죠. 내 자신이 그런 모순과 억압의 시대를 살면서 그 일들을 다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런 심판의 약속을 자신들에게 주셨을 때에 자신에게 주셨을 때에 이 시인은 그 언약의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그러면서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 하겠습니다. 라고 하는 결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인의 영광 악인의 영광 이것들을 다 베어버리고 다시 말해서 사회가 굽고 나라가 어지러움으로 말미암아 불의한 자들이 득세하고 옳지 못한 악인들이 영광을 얻는 이 모순된 현실과 싸우겠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약에 악인들의 영광이 그렇게 사슴의 뿔처럼 아주 아름답게 솟아났는데 이것들을 베어 버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거 한번 생각해보세요. 사슴이 뿔 잘린 사슴이 거의 없이 모두 위엄과 영광의 그 뿔들을 기다랗게 기르며 서로 그 영광을 자랑하는데 특정 몇몇 사슴들을 잡아내어서 과감하게 톱으로 켜가지고 뿔 잘린 그 사슴을 만들어서 무리 속에 집어넣어 버리다면 그 광경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광경이 되겠어요. 그런 수치를 당하게 하겠습니다. 그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은 그에 비해서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겠습니다. 들리겠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것이고 나는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이 통치에 참여하여 그 일이 그렇게 이루어지도록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기 때문에 그대로 성취 되도록 내가 이바지하며 살겠습니다. 라고 하는 시인의 마음과 자세를 보여주는 것 입니다. 의롭고 하나님 앞에 올바른 사람들이 사회의 구조적인 악과 불이익 때문에 짓밟힙니다. 그래서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존귀 존중히 여김을 받아야 될 사람들이 모욕을 당하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아야 될 사람이 짓밟힙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기뻐하시지 않으셔요. 그래서 하나님은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으로 말미암아 악인이 처처에 횡횡하는 것보다 의로운 사람이 부당하게 억눌리고 짓밟히는 것을 더 가슴 아파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애굽이 언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였습니까. 자기의 마음에 좋은 대로 우상을 섬기고 자기 원하는 대로 생각하며 사는 인간들이었어요. 하나님은 내버려 두셨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통을 받으면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니까 이 부르짖음이라는 것이 그들이 기도했다는 의미도 되지만은 하나님이 정하신 도덕법칙을 어긋나는 심각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면 하나님이 섭리 속에서도 개입을 하시는 거예요. 저는 중동의 민주화의 봄 같은 것들을 그렇게 봅니다. 북한도 역사를 우리는 그런 시각에서 보는 것입니다. 망하기를 원하고 원하지 않은 그런 차원이 아니라 악이 극에 달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개입하셔서 어떤 식으로든지 그 나라를 바로 잡으시는 것입니다. 근데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통을 받는 그것이 부르짖음이 되어서 하나님께 상달되었고. 그래서 하나님이 애굽을 심판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심판의 결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의인의 뿔을 높이 드는 이 일이 얼마나 하나님의 커다란 관심 사항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은 하나님을 찬양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또한 악인들의 뿔을 베고 의인들의 뿔을 높이 들어 당신의 공의를 심판과 함께 펼치실 것을 굳게 믿으면서 자신도 거기 참여 하겠다고 하나님 앞에 다짐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 순간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그와 동행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