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주시는 하나님
그 장막이 또한 살렘에 있음이여 그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 거기서 저가 화살과 방패와 칼과 전쟁을 깨치시도다(셀라) (시:76:2~3)
녹취자: 이경순
이절과 삼절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유다와 이스라엘에게 알려지게 되었는지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에 장막은 살렘에 있으며 처소는 시온에 있습니다.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여기서 장막이라고 하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나오는 회막을 가리키는 단어와는 좀 다른 단어예요. 숫곳이라는 단어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이동하면서 그러면서 한 장소에 머물게 될 때 치던 그런 거처를 처소라고 그러는데 이 처소는 히브리어 성경에 보면 진이라는 단어가 사용 되요. 이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되냐면 장막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잠시 계시는 것이 아니라 항상 거주한다는 뜻이 되고 여기에 처소라고 번역된 마하나임 이라고 하는 진이라고 하는 것은 군대의 개념 이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마치 군대들이 전쟁을 하기 위해서 야영을 하기 위해서 진을 치잖아요 그런 것처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 계시다고 하는 개념이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용사로서의 하나님의 개념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위해 전쟁하시는 하나님의 개념이 이 단어 속에 이미 묻어 들어와 있는 거죠. 그래서 이 시편을 해석할 때 단어의 사용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래서 단어 하나가 시편에서 혹은 구약성경에서 혹은 성경 전체에서 갖는 의미를 해석을 하면 그 구절 하나를 말할 때 시인의 마음속에 있었던 그림들이 떠오르게 되어요. 그 그림이 얼마나 정확한가에 따라서 성경 해석이 정확해지고 그 다음에는 풍성해질 수 있는 그림이죠. 그러면 이절만을 보자면 이런 뜻이거든요. 하나님은 살렘에 계시는데 그냥 잠시 외출한 것처럼 와서 들리신 것이 아니고 항상 계신다는 뜻이고 그담에 시온에 하나님이 계시는데 거기에 계신 하나님은 군대가 주둔하는 것 같은 하나님이예요. 그러니까 군대의중요한 임무는 무엇이예요.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과 영토를 보호하는 것 이것이 군인의 가장 중요한 임무잖아요 그러니까 군인은 언제나 이러한 세 가지 조건들이 침해를 받을 때 폭발하듯이 전쟁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군대이어야 해요. 그게 군인의 가장 중요한 임무예요. 나머지 모든 것들은 바로 그 일을 위해서 공여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들 가운데 계셔서 항구적으로 계실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 진을 치사 군대를 주둔한 것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죠. 그것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평화를 보증 받을 수 있는 것이죠. 여기에 나오는 살렘이라고 하는 곳은 평화라는 뜻인데 예루살렘이라는 명칭의 옛 형태예요. 그래서 예루살렘이 무얼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학자들 간에 많은 논란이 많이 있는데 그래도 이제까지 알려진 것 중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학설은 평화의 성 혹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 예요. 그래서 ‘예루’ 라는 말이 아마도 히브리어에 이르라고 하는 성에서 왔을 것이다 라고 보고 성 혹은 도시를 가리켰죠. 그리고 살렘은 평화예요 그러니까 그런 평화의 도성인 예루살렘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라고 하는 것이죠. 자 그러면 여기서 우리 하나 질문해볼수 있는 게 있어요. 그러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은 예루살렘 가운데에 항구적으로 거주하시고 시온가운데에 하나님이 언제든지 전쟁하실 수 있는 군대로서 주둔하시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해보게 되는 거죠. 왜냐하면 예루살렘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도 아니고 시온이 최고의 경치와 풍광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러면 원래 이 시온이란 이름은 찌온 인데 마른땅이란 뜻이 예요 기름지고 풍성한 이런 개념이 아니에요. 마른땅, 요새 그런 뜻이 예요. 그런데 왜 하나님이 거기에 항구적으로 거하시고 또 하나님이 거기에 군대가 주둔하는 것처럼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거기에 계시는 이유가 무엇이냐 이겁니다. 이것은 살렘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나 시온이 가지고 있는 어떤 탐나는 특징 때문이 아니에요. 그것은 쉽게 얘기하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 거기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거기에 항구적으로 거주하시고 거기에 하나님이 군대를 주둔시키신 것처럼 그들을 위협하는 모든 세력들을 도전하시기위해서 하나님은 거기에 계신 것이 예요. 이정도만 하고 봐도 우리는 아주 중요한 적용 점들을 갖게 되죠. 그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임마누엘 하시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보편적인 섭리 속에서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또 영적인 도전 속에서 우리를 지켜 보호해 주시는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으신 언약 때문이고 그 언약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도입된 것이 예요. 이것이 언약 백성의 한없는 은총이고 하나님께로부터 입은 은택 이예요. 자 그러면 일절과의 연관을 놓고 보면 하나님의 이름이 유다에 어떻게 알려지게 되셨을까요. 하나님의 이름이 이스라엘에게 어떻게 알려지게 되었을까요. 언약백성의 더욱이 하나님이 알려주신 것에 대하여 그들이 충분히 그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 지식을 따라서 산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만드신 방법이 무얼까요 하나님이 충분히 알려지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알려진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과그 성품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 알려진다는 것이 예요. 그것을 하나님이 알리시는데 그 알리시는 근거가 언약관계에 기초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들을 알리시는 거죠.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의 장막이 살렘에 있다고 했고 그분의 진은 시온에 있다고 했는데 자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나라가 평화로워서 그래서 왕이 나라일 에 간섭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모든 나라가 평화롭게 굴러가면 많은 사람들은 왕의 존재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위기가 와요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가 되요. 백성들의 평화가 깨뜨려지고 삶이 위협을 당해요. 심지어 전쟁이 일어나서 노도와 같이 이방의 군대들이 밀려와요. 생명이 경각에 달려요. 이럴 때에 리더십이 요구가 되겠죠. 이때에 왕이 가지고 있는 왕권을 올바르게 행사하면 그 왕이 가지고 있는 존재감을 아주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군대가 진치고 있고 하나님이 살렘에서 거주하고 계시면 그 군대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는 군대예요. 그래서 이 시인이 하나님의 이름이 유다와 이스라엘에 알려지게 된 그 놀라운 계기가 있다고 삼절에서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게 뭐냐면 거기서 그가 화살과 방패와 칼과 전쟁을 없이 하셨습니다. 이게 많은 학자들이 아수르에 군대가 쳐들어 온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 왜적의 침입이 있을 때 하나님이 아주 기적적인 방식으로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악한 자들의 화살과 방패와 칼과 전쟁을 없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연 하나님이 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는 증거를 드러내고 시온에 당신의 군대를 두신 것을 입증하는 거지요. 자 여기서 우리들이 유의하여야 할 것이 있어요. 그것은 하나님의 군대와 이방의 군대와의 차이예요. 하나님의 언약백성과 함께하는 하나님의 군대 그 군대이신 하나님과 이방의 군대와의 차이예요. 그것은 하나님의 전쟁은 살렘을 위한 전쟁 이예요. 평화를 위한 전쟁 이예요. 이방나라의 전쟁은 탐욕과 정복을 위한 전쟁 이예요. 그러면 도대체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전쟁은 살렘을 위한 즉 평화를 위한 전쟁인가 이거죠.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민족으로 하여금 침공을 당하게 하시고 그래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도 하시지만 적극적으로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로 하여금 공격하게 하셔서 이방나라들을 정복하기도 하시는 거죠. 그런데 이 정복의 의미가 정복의 궁극적인 목적이 평화의 수립 이예요.
예를 들어보십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땅에서 해방시켜 주시려고 하셨을 때 바로가 쉽게 놓아주지 않았죠. 그래서 열대 재앙이라고 하는 전대미문의 고통스러운 환란을 당하게 되요. 그것이 무엇을 위한것이였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에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번 하나님의 명령에 순순히 놓아주었더라면 그런 환란을 당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불순종 하면서 거역하면서 자신들의 왕국에 끊임없는 환란을 끌어드려요. 전대미문의 고통을 받게 되요 그것은 무엇 때문이었죠. 평화 때문이었어요. 평화,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핍박을 받으며 사는 그 고통스러운
세월은 땅의 평화를 깨뜨렸고 온 땅으로 하여금 부르짖어 그 음성이 하나님께로 달하게 하셨어요. 평화가 깨뜨려진 것이지요. 이런 평화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내기를 원하고 그것을 거부할 때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시는 것이죠. 가나안을 정복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가나안을 정복하는데 평화로운 땅이었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쳐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러나 그 평화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의 평화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눈에는 전쟁이 없는 상태가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어디든지 하나님의 통치가 없는 곳은 없지만 사람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자각하고 그분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율법과 하나님의 계획에 맞겠금 나라가 다스려 질 때는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탁월한 언약백성과 같은 빛이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일단은 어느 정도 평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시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기독교 국가만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비기독교 국가도 다스리시는 거죠. 그래서 역사를 보세요.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이 자스민 혁명은 10년 전까지 만해도상상도 못할 일들이었어요. 그런 억압과 폭력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잔혹한 통치가 어느 정도 꽉 차서 이제 하나님이 용납 하실 수 없는 수위가 되면 하나님이 평화를 수립하시기 위해서 그 역사에 개입하시는 거죠.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무너뜨리시는 것이죠. 그러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것이죠. 그래서 우리들이 보면 유엔에서 분쟁지역에 질서유지를 위해서 파송하는 군대들을 평화군 이라고 해요. 피스 키퍼예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무력을 가진 군대들을 무기를 동원해서 파송하는 거예요. 필요하면 그것을 억누르고 억압하게 하는 거예요. 그게 평화를 만드는 방법 이예요. 하나님이 이 세상의 나라를 그렇게 통치하시는 것이죠. 아수르의 군대가 산에 립의 군대가 18여만 명을 거느리고 쳐들어오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하려고 해요. 그것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고 되고 하나님이 자기의 군대들을 동원해서 하나님께서 스스로 군대가 되어서 그들을 하루아침에 모두 멸망시키시고 정리하시는 거예요. 그것이 결국 뭐냐면 짧게 보면 전쟁이지만 그렇지만 그러나 더 넓게 보면 평화를 위한 전쟁 이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살렘에 계시다고 하는 이절의 이 내용과 삼절의 내용이 전쟁에 대한 해석을 새로 하게끔 만드는 거죠. 자 이렇게 놓고 보면 결국은 하나님은 당신이 군대로서 시온가운데 거하시는 그 자체가 전쟁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위한 강력한 힘으로서 언약 백성들 가운데 계시는 것이 예요. 그럼 이것을 한번 오늘날 신약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한번 적용해 보기를 바랍니다. 이 때 싸움은 나라와 나라의 싸움이고 창과 칼과 방패의 싸움이지만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이 영적인 왕국으로 드러난 신약의 시대에 우리의 전쟁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의한 싸움 이예요. 이 강력한 영적인 전쟁 앞에서 우리의 최고의 자산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파송되신 거예요. 이 지구상에 일어난 반란을 토벌하기 위해서 보낸바 되신 총사령 관이예요. 그분이 교회와 함께 계셔서 하나님과의 평화 사람과의 평화를 동시에 이루시고 그분이 군대처럼 교회 안에 성령으로서 거주하시므로 말미암아 교회에 다가오는 모든 영적인 도전과 위협에 대해서 전쟁을 벌여 승리를 안겨주실수 있도록 그렇게 되는 것이 바로 오늘날 교회가 돌아가야 할 참된 모습 이예요. 이때에는 물리적이고 육적인 전쟁의 형태를 띠면서 눈에 보이는 왕국인 이스라엘을 보호하셨지만 지금은 영적인 왕국을 성령의 능력으로 함께하고 보호하시는 것이죠. 개인을 하나님이 조금 사랑하시면 돈을 주시고 크게 사랑하시면 그에게 영적인 은혜를 주신다고 한 것처럼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이 교회를 조금 사랑하시면 돈을 주시고 좋은 환경을 주시지만 정말 사랑하시면 하나님이 당신의 교회를 진리의 검과 믿음의 방패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되게 하셔서 이 영적인 전쟁에 적합하도록 하나님께서 그를 강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살렘에 계시고 그리고 시온에 당신의 군대의 진으로서 계시는 것과 같은 동행하심이 오늘날 현실 교회에 있을 때 그렇지 않은 교회 일만 개가 할 수 없는 일을 한 개의 교회가 해내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오게 하는데 아주 혁혁히 이바지 하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이 개교의 하나 그 자체를 절대시 하거나 그것들을 우상시 하거나 중요시 하는 게 그런 교회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모든 우주적인 보편교회들과 연대를 이루면서 교회 전체가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서 주님이 하실 그 일을 뒤이으면서 가는 거예요.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육적인 자원과 물질적인 자원과 그담에 영적인 자원들을 부어주셔서 당신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게 하시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들은 흔히 그런 생각하잖아요. 개인이나 교회나 돈을 아껴써야 되겠죠. 낭비가 없어야 겠죠. 그러나 물질적인 자원을 낭비하는 것보다 영적인 자원을 낭비하는 것은 더 많이 잘못하는 거예요. 그 영적인 자원의 낭비라는 것이 뭐냐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많은 은혜들을 가지고 그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목적 이 세상을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게 하고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이 모든 일에 온전히 사용하게 될 때 이것이 낭비 없는 삶이예요. 지금도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 70년대초 정도만 해도 정말 하나님이 많은 은혜를 부어주셨어요. 70년도 초에만도 교회를 세우면 교회가 저절로 되는 거예요. 너무 목마른 영혼들이 많은 거예요. 지금 돌아가서 보면 저걸 설교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정도인데도 하나님이 너무 허기진 영혼들이니까 은혜를 부어주시는 거예요. 그렇게 은혜를 막 부어주셔서 그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성도들이 따르고 그럴 때 모든 교회가 다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때 일반적으로 우리들이 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교인들이 모이면 헌금 걷어서 그래서 교회 짓고, 교회 지은 것이 잘못한 게 아니죠. 그리고는 그담에는 교회 짓고 나면 항상 기도원 짓는 거예요. 기도원 짓는데 또 초창기에는 정말 기도를 할 마음으로 기도원을 지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그게 아니에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뭐까지 했냐면 공식 이예요. 큰 교회의 마지막에는 묘지 사는 거예요. 지금생각하면 이해가 안가요. 어차피 어디에서 죽든지 간에 결국엔 마지막 날에 만날 텐데 부활의 동산이라고 해서 부활을 뭐 꼭 같은 동산에서 부활을 해야 되요? 그리고 많은 돈을 들여서 묘지를 사고 그 묘지에다가 교인들을 묻고 지금 그거 제대로 유지하는 교회 별로 없어요. 흐지부지 다 됐어요. 그런 것들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물질적인 자원을 낭비하는 거예요. 어디 그것뿐이겠어요? 은혜를 많이 받았으면 이세상의 불신세력과 더불어 싸우며 분투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되잖아요. 은혜 받고는 주의일 한다고 그러면서 교회에서 머리가 터지라고 싸워서 그 은혜를 다 깻박치는 거예요. 이런 것들이 영적인 자원이 낭비인것이예요. 이런 것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주 가슴아파하시는 행동들이예요. 그렇게 되면 안 되는 거죠. 그러면서 우리는 꿈꾸는 것이죠. 아 그렇구나 하나님이 정말 오늘날에도 당신이 가지고 계시는 위대한 영적인 능력으로 당신의 교회와 함께 하시므로 전쟁과 갈등이 그치지 않는 세상에 그 전쟁이 사라지게 하셔서 평화가 오게 하시는 하나님이시구나. 그러므로 교회가 이런 능력으로 충만해 질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