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을 갚음
너희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서원하고 갚으라 사방에 있는 모든 자도 마땅히 경외할 이에게 예물을 드릴지로다. 저가 방백들의 심령을 꺾으시리니 저는 세상의 왕들에게 두려움이시로다. (시 76:11-12)
녹취자: 오정민
전쟁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니까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의 승리가 워낙 놀랍고 큰 승리였기 때문에 그랬기 때문에 틀림없이 많은 사람들이 왕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서원 하였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위기 가운데서 건져주시면 이렇게 하나님께 헌신하겠습니다. 라는 것이 서원이잖아요. 근데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나님이 적군을 물리치시고 승리를 주시리라고는 거의 생각도 못했는데 하나님이 인간의 예상을 초월하셔서 그 전쟁에서 이기게 하십니다. 더욱이 이스라엘 군대들이 거의 상하는 일이 없이 승리를 안겨 주셨으니까 이것은 기적적인 도우심을 언약 백성들에게 주신 거예요. 그러면 당연히 그런 은택을 입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서원하고 한편으로 위기에서 서원한 것에 대해서 갚아야 될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크신 은혜를 입은 것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서원을 하고 그래서 이전에 서원한 것은 갚고 지금 서원한 것은 앞으로 그 서원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갚아야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죠. 이렇게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서원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사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마땅히 예물을 드려야 하는데 이것은 이 예물의 표현이 단순히 물질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하나님과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관계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그리고 자신의 삶이 그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야할 삶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우리가 헌금을 드리잖아요. 특히 십일조가 그런데 10분의 1을 드리고 나면 나머지 10분의 9는 내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10분의 1을 드리는 그 자체가 전체를 대표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10분의 1안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립니다. 라는 신앙고백이 거기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 비슷한 예가 출애굽 사건에서 애굽에서 처음 난 것들을 모두 하나님이 죽이시고 피를 바른 집에 초태생들을 살리시잖아요. 그러니까 그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그 처음 것을 하나님께서 살리셨다. 처음 것을 하나님이 죽이시려고 할 때 살리신 것은 그건 무엇을 의미하냐면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초태생을 하나님께 드리잖아요. 그것이 무얼 의미하냐면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라고 하는 고백이예요. 그러면 그것은 그렇게 하나님 앞에 10개 중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이 헌신을 통해서 모든 것을 주님께 드렸으니 나는 이제 주님의 은혜로 삽니다. 남아 있는 이 아홉도 주님의 뜻대로 사용할 것입니다. 라는 전 포괄적인 신앙의 고백이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이예요. 이것이 믿음 생활이죠. 그러면서 그 하나님을 마땅히 경외해야할 분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걸 보면 우리의 인생에 위기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아주 중요한 통로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아가신 저에게 구약을 가르쳐 주셨던 김희고 목사님은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이 무엇인가 이 역사가 잠자고 있는 것 같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람들이 살아가지 않는 것 같으면 하나님이 큰 위기를 주셔서 그래서 신앙으로 모든 이스라엘 그 백성들을 일깨우시는 일을 하셨는데 이건 마치 그 자동차나 배 혹은 비행기의 엔진을 돌리는 것처럼 확하고 엔진을 돌리면서 그 말하자면은 막 그 오랫동안 돌아가지 않던 기계가 엔진이 가동되면서 돌아가면서 찌꺼기 같은 것들을 쏟아내어 버리고 그래서 인제 잘 운전이 되어서 다시 힘 있게 나가게 하는 그런 일들을 하나님께서 가끔 하시는데 이 때 일어나는 일이 바로 그런 일이다. 그래서 확하고 움직이면서 이제 잠들어 있던 수많은 백성들 그러니까 왕과 그리고 나라의 중요한 대신들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나라를 위기에 처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 한분을 전심으로 의지하다가 기적적으로 하나님이 승리를 주시니까 이로 말미암아서 정말 하나님이야 말로 경외 하실 분이고 그 하나님 한분만이 우리를 우리가 그 하나님을 높이실 분이다. 한 분만이 우리가 진정으로 높여야할 우리 주님이라는 것에 대해서 깊이 깨달으면서 그러면서 강력하게 이제 각성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거를 여기에서 묘사하는 것입니다. 사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 왕과 고관대작들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행하신 이 크고 놀라운 일을 보면서 주님께 서원하는 것을 갚고 또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서원을 하면서 그래서 주님을 섬기고 봉사하며 살아갈 언약백성의 본분으로 돌아가게 하시는 거예요. 이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편 76편 마지막 절에 그 하나님이 고관들의 기를 꺾으시리니 이는 세상의 왕들에 두려움이시로다. 라고 노래합니다. 이 고관들이라고 하는 것은 지휘가 높은 사람들이죠. 이 사람들이 교만하거든요. 그리고 쉽게 굴복하는 않는 사람들이거든요. 이런 사람들의 기를 하나님이 꺾으시므로 이 세상에 높은 지휘를 갖고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겸비하게 하나님을 의존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세상의 왕들에게 두려움이시로다. 하나님이 그래서 성경에 보면 왕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게 될 때 그 때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푸시죠. 예를 들자면 요나 선지자가 니느웨로 갔을 때 하나님이 그 심판을 돌이키사 그들을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푸시죠. 그 때 나왔던 니느웨 백성의 그 그림을 생각해보세요. 선지자가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외쳤더니 그 때 모든 백성들이 베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통회하게 되었죠. 그 때 왕이 겸비해지면서 하나님의 은총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한번 당신의 큰 능력을 발하셔서 역사를 움직이실 때 고관들은 기가 꺾기고 세상의 왕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어서 하나님 앞에 굴복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는 먼저 언약 백성들 가운데 나타나서 그들에게 큰일을 행하사 그들로 주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게 하시고 그것이 확정되어서 이 방에 있는 많은 사람들까지도 굴복하여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그런 놀라운 일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신약시대에 교회가 먼저 하나님의 큰 은혜 그 위엄과 능력을 경험하고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아름다우심과 그의 의로우심을 전하고 이러면서 이 세상에 높은 지휘에 있는 사람들과 사방에 있는 모든 만민들 세상에서는 가장 높은 지휘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복음에 굴복하게 되는 그 그림을 대표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교를 위해서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님의 하나님의 임재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야 됩니다. 그때의 하나님은 정말 크고 놀라운 능력을 우리에게 보이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의 길을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