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시험한 이스라엘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저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매 시내가 넘쳤거니와 또 능히 떡을 주시며 그 백성을 위하여 고기를 예비하시랴 하였도다(시 78:18~20)
녹취자: 이경순
이 부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할 때 하나님을 시험했던 내용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했기 때문에 만나를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나는 그냥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난한 형편을 기억하셔서 만나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라는 그 사실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만나를 내리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먹다가 지겨워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며 눈물을 흘리기까지 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게 애급생활을 그리워하면서 그때에는 고기도 먹었는데 여기서는 맛없는 만나만 먹고 있다고 그러면서 그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음식들을 그리워했지요. 입안의 탐욕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지요. 그런 속에서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시험했을 뿐만 아니라 또 과연 하나님이 우리가 달라고 한다고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에게 주실 수 있겠느냐 그리고 그렇게 말할 때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죠. 과거에 하나님이 하신 정말 놀라운 일들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고 그담에 만나를 주시고 하는 놀라운 일들을 하셨는데 그렇지만 아마 이것은 못하실 것이다. 이런 생각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품은 것이죠. 사실은 하나님 앞에 고기를 구했으나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그 고기를 먹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이 사람들속의 생각은 고기를 먹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괜히 광야로 나와서 약속의 땅인지 뭔지 하는 곳으로 간다고 하면서 광야에서 이 고생을 하는구나. 그냥 그 애급에서 종살이 하면서 살았더라면 좋았을 걸 그게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불평의 핵심이었어요. 이런 속에서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하나님께 시험을 하였다고 그리고 그것은 배반하였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죠. 우리들은 흔히 생각하기를 하나님을 배반한다고 하면 믿음을 완전히 이탈해서 배교해버린다던지 그런 것을 가리킨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면 그것이 배반 이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원망 들으실만한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자기내들이 애급에서 종살이를 했고 그 종살이가 견딜 수 없다고 울부짖은 것은 자기들이고 하나님이 그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찾아가셔서 권고해 주셨다고 되어 있어요. 그 부르짖음을 듣고 하나님이 내려가셨다 그랬어요. 그래서 그 못살겠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애급에 열 번의 재앙을 통해서 기적적으로 건져주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그리고 굶주릴 위기에서 하나님이 먹여주시고 전쟁의 과정에서 승리하게 해주시고 그러면서 하나님이 이끌어 오셨어요. 물론 그들이 고생도 하고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것은 앞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실 영광스런 기업을 얻기 위한 하나의 커다란 과정이었죠. 어떤 사람이 손에 커다란 선물 을을 들고 “야 빨리 와 이거 가지고가 너주려고 가지고 왔어 그러면 그것을 받으러 달려온 발걸음이 그사람이 노동이라고 생각하겠어요. 은총이라고 생각하지 그러니까 그 마음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그 모든 것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의 인도에 온전히 따르지 못하는 이 모든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배반하셨다라고 규정한 것이죠. 심판을 당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죠.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연합된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그 순간에 우리는 하나님을 배반하게 되는 거지요. 그 배반이라는 것은 결국은 하나님과의 마음에 합치에서 이탈하는 것이죠. 한번 배반하고 나면 그담에 커다란 배반과 작은 배반사이에는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 작게 배반하고 나면 크게 배반하는 것 쉽지 않게 흘러가고 흘러가고 흘러가고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배교라고 하는 것도 나오는 것입니다. 도저히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신자의 삶이라고 할 수 없는 그런 삶이 나오고 그래서 빛의 자녀들이면서도 어둠속을 걷는 그런 사람들이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처지에서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들이 하나님을 시험한 것에 대해서 아주 준엄하게 책망하신 것을 이 시인은 기록을 하고 있는 거지요. 그러면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이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과거에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있는거 아니겠어요. 만나의 사건은 매일매일 경험하고 있는 것이고 반석을 터쳐서 물을 내신 것도 기억을 하고 있었죠. 그러면 앞에서 이야기 한 것과 모순이 되잖아요. 하나님이 행하신 기인한 일을 기억하고 후대에 전하면 그러면 그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 것이라고 하는거 말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일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객관적 사건이거든요. 그 객관적 사건은 우리가 어떤 마음과 믿음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각각 다른 결과가 나오는 거죠. 우리들이 흔히 구약에서 무슨 논쟁을 하다가 가장 권위 있는 증거가운데 하나가 고고학적인 증거이거든요. 고고학에 이렇게 나왔기 때문에 유물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당신의견은 틀렸다하고 이야기 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그것도 들어가 보니까 이게 객관적인 학문이 아니더라고요. 이유가 뭐냐면 실재로 존재 하였던 것은 무지하게 많아요. 그중에 남아있는 것들은 아주 일부예요. 남아 있는것 가운데 발견된 것은 아주 소수예요 발견된것 가운데 그것이 텍스트화 되고 텍스트화된것이 해석된것은 그 비율은 0.0000001분의 1이라고 할 정도로 아주 하찮은 거죠 최근에서 구석기시대 발자국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걸어다닌 발자국이 얼마나 많은데 그거 몇 개 발견한것 갖고 대소동을 하겠어요. 실재로 존재한 것 가운데가장 일부만이 발견되는 것이죠. 그러면 그것을 어떤 의미로 해석할 것인가라고 하는 것은 객관적인 자료가 분명히 있지만 해석에는 수많은 폭들을 지니고 있는 거예요. 내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한 것이 성경의 증언을 따라서 주전 15세기 다 라고 생각하고 해석을 하면 그렇게 보이는 것이고 아니다 13세기 중반에 떠났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그게 13세기 중반으로 보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전해준다고 하더라고 진정한 의미에서 전해주는 것은 그렇게 받은 하나님의 기적과 이 놀라운 일들에 관한 것들을 오늘 받아들이는 내가 깊이 믿음으로 그것들을 수납하고 받아들일 때 그때에 그것이 정말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 하나님 의지할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감격하게 만들고 그래서 오늘 역경과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의 능력의 부족함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하는 그런 식의 삶을 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후손에게 하나님이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전한다. 라고 하는가는 두 가지 의미를 함께 내포하고 있는 것이에요 우리가 객관적으로 그것을 전하는 것은 조상이 해 줄수 있는 최대한의 일이지만 후손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신앙으로 그 하나님이 행하신 그 위대한 일들을 해석하면서 그것을 자신 속에 재해석되고 재 경험되게 만들 때 그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오늘 나를 살아가게 하는 하나의 자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우리들이 구라파 역사에서 보잖아요.
여러 해 전에 영국을 갔는데 제가 존오웬을 좋아하니까 후배 목사 한사람이 존 오웬 유적지를 한나절인가 반나절을 구경을 시켜주었어요 서포크 교회라고 존 오웬 목사님이 두 번째로 가신 교회인데 거기서 목회를 크게 하셨어요 한 이천 명이 모였다고 하더라고요. 예배당은 작아요. 본당이 우리예배당의 절반정도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에서 어떻게 예배를 드렸나고 하니까 서서 예배를 드렸다고 하더라고요 두 시간을 우리도 그렇게 하면 건축문제가 깨끗이 해결이 될 텐데, 보니까 존오웬 목사가 맨 처음 교회서부터 목회자들의 명단이 나와요. 지금은 성공회로 변했죠. 목회자도 만난 것 같고 아마 장로쯤 되는 교회 관리하는 사람을 만났어요. 들어갔을때 저는 유적지 인줄 알았어요. 아직도 교회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풀이 길같이 자라고 손보는 사람들이 없어서 지금 한 80명쯤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400년이 흘렀는데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오웬 목사님을 기억을 해요 전설처럼 내려오는 거예요. 성공회에 다니는 교인들에게 대단하고 위대한 분이였고 말씀으로 이단들을 제압했던 영국 복음주의의 신탁이라고까지 불렸는데 그 사람들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존경심을 가지고 있냐? 그랬더니 그분 하는 말이 우리교인들이 그 사람을 알아야 존경을 하지요 하더라고요 모른데요 알려고 하지도 않는데요. 왜냐하면 성공회 교인들에게 청교도의 그 찬란한 유산들은 눈에 안 들어오는 거예요. 뭐만 들어오냐면 저 국교회를 찢어가지고 나간 저 비국교놈들 이렇게 들어오는 거지요.그러니까 옥스퍼드에도 거기에 분명히 그 정도면 거기에 걸릴만한 인물인데 다 빼버렸어요. 비국도들을 다 빼버렸어요. 이렇기 때문에 사실은 후손에게 전한다. 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객관적으로 전해준다라는것처럼 간단한 작업이 아닙니다. 제가 늘 말했듯이 교리와 우리들이 믿은 신앙의 내용을 가르쳐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회심하고 주님을 만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두 개를 꼭 붙들고 살 때 비록 자기네 시대에 영적으로 쇠태해서 아버지 할아버지 때에 위대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아도 지금도 그 일이 일어나리라고 믿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에요 그것이 신앙생활이고 믿음생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