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노를 거두기를 탄원함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그치소서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에 발분하시겠나이까”(시 85:3-5)
녹취자: 장유민
3절은 사실은 1절과 2절에 붙는 하나의 단락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시인이 역사를 회고해 보니까 하나님이 신실하셔서 자신들의 죄 때문에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포로의 상태에서 돌아오게 하셨고 이것은 결국 그 백성들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어 주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주님이 내면적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향해 가지고 계시던 당신의 분노, 그리고 당신의 진노를 돌이키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사야서의 내용을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39장까지는 이스라엘의 죄와 그 죄에 대해서 징계하시는 하나님이 묘사 되어있지만은 40장부터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말씀으로 메시지가 시작됩니다. 거기에 바로 하나님이 포로 되었던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이키고 위로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복음적인 메시지가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하고 잘못하자 하나님이 잠시는 그들을 꾸짖으시고 징계하셨지만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이 그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키게끔 만들어 주시는 은혜를 베푸셨다 그런 뜻 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 그리고 주님의 진노를 돌이키셨는데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으로 비참한 형편과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혼을 다시 살려주셔야 할 그 중대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회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든 소망을 우리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하나님을 향해 품었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향하신 분노를 거두소서’ 라고 말합니다. 제일 먼저 하나님에 대한 호칭입니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구원이 개인의 개념이 아니라 공동체의 개념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를 구원해 주시는 우리 하나님이시여 그러니까 나 한사람이 아니라 너 한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뽑힘 받은 이스라엘 전체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이 하나님의 주권에서부터만 비롯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멀리 떠나 죄와 불순종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다시 구원하시는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시고 얼마나 완전하신 분이신가 하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이 세계와의 관계를 나타내 보여줌에 있어서 그 구원의 행동보다 더 탁월하고 놀라운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놀라운 구원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자신들의 모든 영적인 위기와 비참한 처지에서부터 구원해 주실 분이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여기에서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결국 이 모든 것들에 대한 구원이, 은혜가, 그리고 모든 보호가, 인도가 하나님께로 부터만 온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기 가운데 당신께 기대는 모든 당신의 백성들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이 시인은 두 가지를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를 돌이켜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처해있는 모든 위기와 고통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고 역경과 어려움을 만나게 된 모든 근원적인 이유가 자신들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 배양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멀리 떠났기 때문에 자신들의 처지가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고 그러니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에서 구원해 달라고 하는 호소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향해 간절히 자신들을 돌이키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자신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잘못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로운 간섭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죄인들에게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그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 사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 자체가 그게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향해 돌이키고 이렇게 하나님을 향하여 또 한 가지 구하는 것은 자신들을 향하신 주님의 분노를 거두어 달리는 기도였습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이 자신들을 향해 여전히 진노하고 계시고 이것 때문에 자신들이 역경과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을 에워싼 모든 시련과 어려움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사태들을 만납니다, 그 많은 사태들을 만날 때 거기에는 언제나 원인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가난하게 되었다면 무엇인가 우리의 돈을 벌지 못했든지 아니면 지혜가 모자라서 뭔가를 잘못 했다든지 그래서 어려움을 만나게 되고 이런 것이 바로 원인이 되어서 우리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위기를 만났다면 거기에 왜 원인이 없겠습니까?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을 가난하게 혹은 커다란 위기 가운데에 몰아넣은, 눈으로 보이는 원인과 이유를 가지고 씨름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그 이상의 근원적인 원인을 찾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것, 물론 내가 가난해 진 데에는 사업을 잘 못한 원인도 잇고 세계경기가 침체된 원인도 있고 또는 가까운 사람이 나를 속여서 커다란 피해를 보게 한 그런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모든 시련과 어려움이 그런 원인들을 통해서 왔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왜 그런 일이 나의 생애에 일어났을까 그것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으려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말로 말하자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그런 어려움을 가져다주는 것은 제 2원인이고 그 제 2의 원인들을 움직인 제 1의 원인인 그것을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해서 이 시인이 이스라엘이 처한 그 비참한 처지가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에 있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진노를 안겨드렸다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늘에서 그것들을 푸시면 자신들이 이 땅에서 당하는 어려움도 풀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향하신 주님의 분노를 거두어 달라고 우리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에 진노하시겠나이까” 이것은 질문이라기보다는 “단언코 하나님은 그러실 분이 아니십니다.”라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에 진노하겠나이까”라고 호소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 돌아오게 하신 것을 보더라도 잠시는 우리가 잘못해서 진노하실 수 있으나 영원히 노하실수 없고 한세대나 두세대를 향하여 진노하실 수는 있으나 그 대가 계속 이어지기 까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해 진노하시는 것은 있을 수가 없을 것 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게 어떤 권리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고백입니다.
부모가 자식이 잘못할 때에 그를 올바르게 교육하기 위해 잠시 책망하고 그를 향해 노할 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잠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식이 충분히 부모에게로 돌이키지 않아도 부모의 마음이 먼저 자식에게로 돌이키게 됩니다. 그래서 그를 불쌍히 여기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생겨나게 마련입니다. 불완전한 인간이라도 이렇게 때린 자식을 또한 싸매고 불쌍히 여기고 눈물을 흘리고 긍휼히 여기는 것이 부모의 본성이라면 완전한 하나님은 얼마나 놀랍게 이 백성들을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모든 희망은 이런 하나님의 자비, 긍휼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바로 다름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공로나 우리의 상태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이렇게 주님을 멀리 떠나 비참한 상태에 있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실 것 이라는 믿음에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과 신앙을 가지고 주님을 깊이 의지하며 하나남 앞에 사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