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주의 도를 따를 때
“내 백성이 내 말을 들으라, 이스라엘아, 내 도를 따르라”(시 81:13)
녹취자 ; 정윤미
하나님의 중요한 심판가운데 하나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게끔 내버려 두시는 것이라고 지난번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은 그 하나님이 그렇게 내버려 두시면서 이스라엘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피력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도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말이란 말은 안 나오는데, 히브리 성경에 “나를 들으라” 이렇게 나옵니다. 히브리 단어에서 ‘듣다’라는 ‘샤마’라는 이단어가 사무엘이란 이름이 거기에서 옵니다. 흔히 들린다와 듣는다는 것이 있는데 , 들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단순히 수동적으로 그냥 음이나 소리 같은 것들이 들리는 것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의도와 의지를 가지고 그것을 듣고, 그 듣는바에 따라서, 자신의 행동이나 삶이 좌우 될 것을 기대하면서 듣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사무엘이 사울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더 낫습니다. 이렇게 고백했던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듣는다는 것은 그 말하는 상대방의 그 마음을 전달받기 원하는 의도를 가지고 듣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듣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어라”, 이스라엘 백성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을 들으며 그분의 도를 따름으로써, 다른 모든 이방백성들과 구분되게끔 되어있는 민족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의 가장 중요한 표였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말을 들어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아 내도를 따르거나, 이것이 결국은 두 말이 같은 말입니다. 왜냐하면 도를 따른 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이고, 그 순종하기 위해서는 내적인 복종이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던지 간에, 마음으로 그 일을 하려는 사람과, 그저 의무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하는 사람의 행동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 깊은 곳에서 그 하나님의 말씀을 잘 귀 기울여 듣고,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해서 외적인 법도인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면서 살아가는 그 삶을 바로 하나님의 도를 따르는 삶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시려고 했던 선택된 백성들의 도리이고, 거기에서 모든 삶의 기쁨이 나오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를 싫어하는 마음, 그리고 무엇인가 그 하나님의 도에 대해서 깨닫기를 싫어하는 마음, 또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도를 따라 살기를 싫어하는 마음,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 일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 마음이 자신의 욕망을 따르고자 하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원래 덕이라는 이 말이 영혼의 힘입니다. 영혼이 힘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마치 물과 같아서, 어느 쪽으로 흐르려고 하는가 하는 도덕적인 방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방향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맞는 방향으로 흐르면, 그것이 선한 쪽으로 영혼이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이것을 미덕이라고 부르고, 반대쪽으로 흐르면, 이것을 가리켜서 악덕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것이 힘겹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그 도리에 순종하지 않고자 하는 강한 영혼의 반대편의 힘 때문에 생겨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거나 혹은 그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면서 살면, 그것은 순종하면서 사는 것보다 매우 어려운 것이지만,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지 만 순종할 수 있고, 불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쉽지만, 이것은 내일에 가서는 오늘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당장은 쉽지만, 이것이 우리의 영혼에 하나님을 거스르려는 힘을 계속 축적시키는 것입니다.
(예화) 예를 들면, 댐이 터지고 이러는 것도 산이 무너지고 하는 것도 힘이 축적되어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산에 오래 산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산속에 오래 산사람들은 언제 산사태가 날지를 대충 안다고 합니다. 산사태가 나기 전에 밤새도록 산이 운데요.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거죠, 그리고, 힘이 누적되었을 때 예를 들자면, 비가 계속 와서 물이 어디론가 흘러야 되는데, 산이 그 것을 머금고 있는 거죠. 산에 있는 모든 토질이나 이런 모든 구조들이 물을 머금을 수 있는 그 한계가 있는 것인데, 그런데 그 한계를 초과하게 될 때에는 그 때에는 산에 잔뜩 머금은 그물이 낮은 쪽으로 흘러가려고 할 때, 그 흘려가려고 하는데, 산은 그것을 다 지탱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은 물이 흘러내려가려고 하는 성향이 있는데, 그것들이 산에 표면에 깊이 배이면서, 이것들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서 힘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확 벗겨져 내리는 것이 그것이 말하자면 산사태입니다. 산사태는 산 하나가 뿌리째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물기를 머금은 어느 부분이 도저히 그 감당할 수 없을 그때에, 모자가 벗겨지듯이 그렇게 어느 한쪽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 사태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 힘이 축적이 되는 것처럼, 인간의 영혼 안에서도 그런 힘들이 깊이 축적이 되어서, 그것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순종하며 사는 것은 어렵지만, 이 어려운 삶이 내일에는 쉬움을 가져다주고, 오늘 주님 은혜를 의지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쉽지만, 그 쉬움은 내일에는 어려움을 가져다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이미 마음과 영혼 안에 굽어질 때로 굽어졌기 때문에 이 말씀을 따르는 것이 매우 중대한 결단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그런 일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구약에서든 신약에서든 물론 신약에서 훨씬 더 풍성하게 나타났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당신의 말을 듣고, 당신께 순종하며 따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이런 명령 뒤에는 그렇게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돕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과 보증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약시대에는 성령의 감림을 통해서 아주 풍성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제도,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이렇게 세권의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나 그렇게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얼마나 놀랍게 도우시는가? 그렇지만, 구약에서의 그 하나님의 이 은혜의 도우심은 신약시대에 풍성함에 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보면, 구약시대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면서, 하나님을 훼방하는 이방민족이나 자기 공동체에게 고통을 주는 이방백성들에 대한 아주 절실한 탄원, 그 대적들을 파멸을 구하는 열렬한 기도가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두 가지로 해석을 해야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열심이라는 맥락에서 해석을 하면, 이해가 잘 되는 것이고, 그렇지만, 역시 그것을 또 무엇을 보여주는 것이냐 하면, 그 구약시대 때에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계시와 은혜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된다는 이 우주적인 사랑,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거룩한 성령의 충만한 사랑의 능력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오늘 우리들이 그 사람들의 그 시대에 비해서는 얼마나 그 복된 삶을 살고 있는가!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세례요한이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데,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도 세례요한 보다는 크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천국이 하늘나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와 성령의 강림을 통해 이루어지는 새로운 은혜의 시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따라가는 이 복음적인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의 시대에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면, “내가 속히 그들의 원수를 누르고” 그러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원수를 누르고, 이 누른다는 말이 압제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른다, 혹은 압제한다, 그럴 때에 대표적인 그림이 애급에서 바로에 의해서 구박을 받고, 고통을 받던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원수를 내가 누를 것이고, 억압하고 압제할 것이다. 그리고 내손을 돌려 그들의 대적을 치리니, 지금은 어떻게 되어있습니까? 여호와의 손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들이 돌이켜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면, 이 손을 돌려서, 오히려 그들의 대적을 쳐서 복종시켜, 이스라엘의 근심과 고통을 면하게 할 것이니 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영혼의 깊은 어두움은 항상 환경의 깊은 어두움을 동반하게 됩니다. 그래서 영혼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옳지 않고 어렵게 되면, 그 뒤이어서 그런 고난과 어려움들이 오고, 하나님은 이것들을 통해서 우리들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께 돌이키도록 우리를 설득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렇게 다루어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 시인에게도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시인이 생각을 해 내었다기 보다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기록한 성경에서 이미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약간씩 바꾸어서 반복하는 것이거나, 혹은 이시를 읊을 때 하나님이 이 시인에게 직접적으로 계시해주신 하나님의 음성일수 있는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간에, 분명한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회개하고 당신께 돌아오면, 그들을 복주고, 그들을 괴롭히는 원수들에게 하나님이 징벌을 내리신다는 이 약속은 분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가 정말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지, 그분의 도를 즐겁게 따르는지를 깊이 생각하고,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 의지하며 매달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