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예전에 행하신 것같이
“저희가 일심으로 의논하고 주를 대적하여 서로 언약하니 곧 에돔의 장막과 이스마엘인과 모압과 하갈인이며 그발과 암몬과 아말렉이며 블레셋과 두로 거민이요 앗수르도 저희와 연합하여 롯 자손의 도움이 되었나이다(셀라) 주는 미디안인에게 행하신 것같이, 기손 시내에서 시스라와 야빈에게 행하신 것같이 저희에게도 행하소서”(시 83:5-9)
녹취자: 김혜원
이스라엘을 헤치려는 열방의 많은 나라들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각각 나라는 다르고 임금도 같지 않아도 한 가지 뜻에 있어서 일치를 이루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헤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이스라엘의 이름을 이 세상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게 하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이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미워했을까요?
물론 그들이 이 나라 사람들과 적대관계에 있고 또 이중에 많은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올 때에 전투하여, 전쟁하여 굴복시켰던 가나안의 원주민들이었고 또 가나안에 온 후에는 요단 건너편에 있어서 그들과 끊임없이 전쟁을 하여야 했던 원한관계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들과는 다른 신앙을 가지고 다른 진리의 빛 아래서 그들이 섬기지 않는 다른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이 사람들에게는 없는 소위 종교와 철학이 있었습니다. 삶의 방식과 사상이 현저히 달랐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이러한 이방민족들과 끊임없이 갈등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모두 한마음이 되었고 동맹을 맺었습니다. 이것을 5절은 주님을 대적하여 동맹한 것이라고 해석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말씀드리는 두 번째 이유인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이 사람들은 종교는 다르고 나라도 같지 아니하였으나 하나님을 미워하고 대적하는 점에서는 일치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을 미워하고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6절부터 이제 8절까지 구체적으로 사람들의 나라의 이름들이 거론이 됩니다. ‘에돔의 장막과’ 이 사람들은 에서의 후손들입니다. ‘이스마엘인과 모압과 하갈인이며’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이 선택하신 그런 아브라함의 씨로부터 신앙을 버리고 언약백성의 공동체에서 빠져나간 사람들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에서 빠져나갔더니 결국은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악한 자들과 동맹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발과 암몬 아말렉 블레셋 두로 그리고 앗수르’ 이 모든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일에 있어서 일치를 이루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말렉은 가나안 원주민이었고 암몬은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족속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남쪽에 있어서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괴롭혔던 나라사람들이었습니다. 앗수르는 새로 생겨진 나라로써 끊임없이 남하하는 정책과 충돌을 일으켜서 결국은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장본인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서 시인은 하나님께 9절에서 간절히 호소합니다. ‘주님은 미디안 사람들에게 행하신 것같이 기손 시내에서 시스라와 야빈에게 행하신 것같이 저희에게도 행하소서’ 라고 말입니다. 미디안인에게 행하신 것 같이 했는데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사사기 7장에 나오는 기드온의 삼백용사가 미디안사람들을 무찌른 그 놀라운 사건을 염두에 두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록 소수의 군인들이었지만 기발한 지략으로 미디안 사람들을 공격하여 그들이 스스로 도망가다 멸망하게 만든 미디안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승리를 거두었던 기드온과 삼백 용사의 위대한 전쟁에서의 승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디안에게 행하신 것 같이 라고 할 때 이것은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당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열국 열방의 이방백성들이게 이방나라에게 에워싸여 있는 처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쟁을 걸때에 그때의 이스라엘의 연약함이 마치 미디안의 거대한 군대에 맞서 삼백 명의 용사로 돌격하던 습격하던 그런 기드온의 병사들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 수에 얽매이지 않는 위대한 전쟁의 지략과 헌신된 기드온의 삼백용사와 같은 주의 전사들을 허락해달라고 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기손 시내에서 시스라와 야빈에게 행하신 것같이 저희에게도 행하소서’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거는 사사기 4장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 사람들은 가나안의 지도자였습니다. 다시말해서 가나안 족속을 모두 멸하라는 명령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산 위로 도망을 하게 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전멸하기를 포기합니다. 그들이 거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격리되어서 생활하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그 산에서 천천히 내려오고 이스라엘 백성과 무역을 하고 그리고 물건을 사고파는 상업적인 관계부터 시작해서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섞여 살면서 그러면서 그들의 종교와 사상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게 됩니다. 바알종교의 번영도 바로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완전한 순종과 무관하지가 않은 것입니다. 세력을 키워서 이스라엘과 끊임없이 마찰을 일으키고 갈등하고 전쟁을 하게 되었을 때에 이때의 선지자가 드보라와 바락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놀라운 은혜를 베푸셔서 그래서 강했던 이 가나안의 지도자 시스라와 야빈을 무참하게 죽이시는 것으로써 이제 이 역사를 끝내십니다. 이 시스라와 야빈을 하나님이 무참하게 징벌하여 벌하신 것처럼 이렇게 대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이 그렇게 해주셔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지켜달라고 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오늘날 이 기도는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겠지만 영적으로는 진정한 영적인 이스라엘인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한 교회에 대한 교회에 대적하는 모든 영적인 세력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허물고자 하는 모든 이 세상의 사악한 시도들에 대하여 우리는 이 기도를 적용하고 계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이 각각 다른 풍조와 사상을 말하지만 어느 시대든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배척하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대적하는 일에 있어서는 일치를 이루던 때가 많았습니다. 이때에 세상의 대적은 크고 교회는 약하고 우리는 소수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 때 이 기도는 매우 적합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나라와 사상들이 연합을 하여 그리스도의 교회를 공격한다 할지라도 이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언제나 있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고 헌신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통해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을 얼마든지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디안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행하신 것처럼 소수의 용사들을 통해 지도자를 통해 그들에게 일격을 가하여 무너뜨린 것처럼 기손 시내에서 시스라와 그 사악한 야빈에게 하나님이 끔찍한 심판을 행하셔서 단번에 그들을 끊어버리신 것처럼 하나님이 오늘도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해 이 세상의 공격을 그렇게 허무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씨름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정사와 권세와 하늘에 있는 악한 영과 하늘에 있는 모든 주관자들에게 대한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을 하나님은 능히 행하시도록 그리스도의 교회에 오늘도 진리와 성령의 능력을 주셔서 이 일을 하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항상 일전을 불사하는 충만한 교회가 될 때에 그 교회 안에 있는 사랑이 진정으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가 이런 영적인 진리로 무장하고 능력으로 무장하여 이 세상의 모든 악한 연합을 파괴하고 그리스도의 교회의 영속성을 지켜나가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헌신하여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교회의 영적인 번영과 영적인 부흥보다는 세속의 영광과 부흥을 또 한편으로 그리스도의 교회의 진정한 영광보다는 이 세상의 영광을 생각하는지 살펴보길 바랍니다. 더 많은 사람들은 이런 교회의 영적인 부흥과 번영 이 세상을 꺾고 이기는 영적인 힘과 전쟁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개인의 평안과 만족 그리고 행복과 영달을 구하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이 모든 것들 속에서 그리스도의 교회의 성도들은 이 역사를 기억하며 주님이 교회를 향해 가지고 계신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고 성숙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매일 간절한 제사를 올릴 때, 그때 우리들의 기도는 헛되지 않고 그리스도의 교회에 진정한 영적인 번영과 부흥을 위한 초석이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