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심판과 선교
“삼림을 사르는 불과 산에 붙는 불길 같이
주의 광풍으로 그들을 쫒으시며 주의 폭풍으로 그들을 두렵게 하소서
여호와여 그들의 얼굴에 수치가 가득하게 하사 그들이 주의 이름을 찾게 하소서“(시 83:14-16)
녹취자 : 박은희B
계속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구하는 기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삼림을 가르는 불 산에 붙는 불” 이라고 묘사를 하는데 이것은 저항할 수 없는 뒤에 나오는 광풍이나 폭풍도 역시 마찬가지로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현대의 문명이 이렇게 발달하고 그리고 과학에 이런 진보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산에 일어나는 거대한 불길은 속수무책입니다.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몇 개의 유명한 화재가 몽고초원에 붙었던 몇 달 동안 계속되었던 그 불길, 그 다음에 인도네시아의 대 화재 그리고 미국의 산불, 오스트리아의 산불, 이런 것들 길게는 6개월이 되도록 속수무책으로 계속 불타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소방진압용 헬리콥터 같은 것들이 큰 것은 한 번에 몇 톤의 물을 떠서 그래서 퍼 올려서 산에다가 퍼붓습니다. 그래서 산을 보면 그 곳곳에 이렇게 농지도 없는 데도 이렇게 호수를 막아서 그래서 산에다가 호수를 만드는 이유는 바로 그렇게 산불을 진압하기 위한 용도로 삼림주변에 호수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보면 워낙 엄청난 불길이 번져 가면 거의 속수무책입니다. 결국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 비도 워낙 산불이 강하면 그저 가랑비정도 내리는 것 가지고는 어림도 없고 폭우가 퍼부어서 그 불길 끌 때까지는 대책이 없이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저항할 수 없는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해치고 악을 행하는 이방의 민족들을 멸해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15절에서는 이제 산불, 산에 붙는 불길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광풍과 폭풍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역시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의 위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최근에 미국을 토네이도가 강타해서 90명이 넘는 사람들 어린아이들이 죽고 중대 재난지역으로 선포가 되었습니다. 정말 무섭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산이 많이 있고 그리고 찬 공기하고 더운 공기하고 만나야지만 토네이도가 부는데 그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이 태백산맥입니다. 그런데 그나마 넓은 평지에서 두 기단이 만나야지 되는데 우리나라는 그렇게 넓은 평지가 없기 때문에 다행히 그런 토네이도가 불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가끔 보면 용오름이라 그래가지고 바다에 구름이 땅으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은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바로 미국에서 일어나는 토네이도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바다에서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만나서 바람을 일으키면서 물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면 당연히 그 물이 올라갈 때는 그 물에 있던 고기까지도 따라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 옛날 기록에도 보면 그런 것들이 올라갔다가 더 높이 10몇 키로 까지 올라갑니다. 그러다가 이제 이게 그 토네이도 그게 이렇게 바다 육지 가까운 곳 중 왔다가 소멸될 때는 하늘꼭대기로 올라갔던 생선이 막 쏟아져서 그래서 옛사람들의 기록에 보면 포항지방에 하늘에서 고기비가 쏟아졌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그럽니다. 그런 것들이 토네이도를 타고 올라가 쏟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자연의 어마어마한 위력 앞에서 인간을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이 “주의 광풍으로 그들을 쫒으시며 폭풍으로 그들을 두렵게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광풍, 폭풍 이런 비유들은 하나님의 그 위대한 능력, 자연계속에 나타난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말하는데 결국은 삼림을 가르는 불, 산에 붙은 불길, 그다음에 거기에 부는 치열한 바람, 폭풍, 이런 것 앞에서 인간이 그것과 맞서려고 하는 모든 노력이 하찮게 비웃음을 당하는 것처럼 그런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위엄과 큰 능력과 그 위대한 선교적인 하나님의 그 통치 앞에서 이 인간이 아무 기력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렇게 이스라엘을 위에 역사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치료하고 그리고 이스라엘 나라를 파멸하여 다시는 그 이름이 이 세상에 기억되지 말게 하자고 하나님을 거슬려 도모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그런 권능을 행해달라고 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구체적으로 그들의 패망을 하나님 앞에 이렇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그들의 얼굴에 수치를 가득하게 하사 그들이 주의 이름을 찾게 해 주옵소서.” 라고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수치를 구하는 것 입니다. 부끄러움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교만하게 높아졌던 그 이방 백성들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묻고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밥이라고 말하고 이스라엘을 멸하여 다시는 나라가 되지 못하게 하고 그 이름으로 다시는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라고 도모하는 그 사람들의 얼굴에는 교만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항할 수 없는 권위로 이들을 심판하셔서 이들의 얼굴에 부끄러움과 수치를 가득하게 하셔서 어디 있느냐고 묻던 그 하나님께 자비와 은총을 구하는 그런 역사가 일어나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요나 선지자의 사역의 무대가 되었던 니느웨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큰 나라, 앗수르의 수도였던 니느웨에 선지자가 파송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큰 나라의 악한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위대하고 놀라운 심판을 하겠다고 선지자를 통하여 외칠 때 누구도 생각할 수 없었던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모두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자비를 구하며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달콤한 사랑으로 그들을 선교시킨 것이 아니라 두려운 심판을 선포하셨는데도 그들은 마음을 낮추고 짐승들까지 금식하며 모든 사람들이 베옷을 입고 짐승들까지 먹이를 주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왕으로부터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금식하며 하나님께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이름을 간절히 찾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심판을 통한 하나님의 선교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선교는 언제나 달콤한 사랑의 속삭임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심판을 행하심으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주님의 손에 맡겨져 있고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행하실 일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하나님을 대신해서 오늘날 그렇게 심판의 대행자처럼 행동하며 살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되겠지만 ‘하나님이 그러시다.’ 라는 말씀입니다. 이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을 하나님이 행하셔서 당신의 이름을 온 땅에 두루 펼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오늘날 그리스도의 교회의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에 이런 거룩한 부흥과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이 모든 사상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큰 능력이, 은혜가 나타나게 하시고 권능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시고 역사하셔서 그래서 주님의 거룩한 영광을 온 땅에 두루 펼쳐 나타나도록 우리가 그렇게 그리스도의 교회의 영적인 번영을 위해 기도하지 아니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