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시는 것 같으실 때
(아삽의 시 곧 노래) “하나님이여 침묵치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치 말고 고요치 마소서 무릇 주의 원수들이 떠들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이 머리를 들었나이다”(시 83:1-2)
녹취자: 김혜원
이 시도 범주상으로 보면 탄원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 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율법을 훼방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징벌하시고 당신의 이름의 영광을 높여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가 언제 쓰여 졌는지 그리고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주의 원수들 그리고 악한 자들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는 우리가 쉽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이 시를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이 시인이 이 시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간절한 탄원을 토해놓기까지 이 시인의 놓였던 사회 상황들이 아주 깊은 침체 속에 있었고 그래서 하나님을 거스르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이제 사회에서 숨어서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놓고 그런 행동을 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를 혼잡하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시는 우리에게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이 악이 가득한 세상에 살면서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을 우러르고 바라보아야 할지를 보여줍니다. 시인은 제일먼저 하나님께 침묵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같은 탄원을 세 번이나 반복하기를 침묵하지 마소서, 잠잠하지 마소서, 조용하지 마소서 라고 탄원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이 간구가 간절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어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기 때문에 말씀하신다, 침묵하신다, 조용히 있다 하는 이 모든 표현들이 우리 인간의 행동양식을 가리키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라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거기 계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지만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귀를 닫고 있을 때에는 하나님은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고 또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들을 수 있는 지성이 열려있는 사람들에게는, 믿음이 역사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성경은 제일 먼저 침묵하지 말아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침묵을 거론하며 이 시인이 조용하지 말라고 간절히 간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침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말씀하시는 행동의 침묵입니다. 이것도 아까 말씀드린바와 같이 하나님이 언제나 거기 계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어떤 이유로 인간들이 하나님의 그 말씀과 마음을 깨닫지 못하는 데서 오는 침묵입니다. 이 시인이 오늘 침묵하지 말아달라고 하나님 앞에 호소하고 있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의 침묵이 아닙니다. 오히려 시편에서는 보다 많은 경우에 이 하나님의 침묵을 이 세상에서 악과 그리고 죄가 계속 번성하는 데도 하나님이 그 역사 현실에 간섭하지 않으시는 것을 침묵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침묵은 경건한 자들에게는 고통이요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자신만만하게 득세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시인들은 자주 사회의 현실을 보며 침묵하지 말아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하였고 잠잠하지 말고 조용하지 말아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렸던 것입니다. 오늘 이 시인이 하나님께 침묵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렇게 하나님의 법을 거스르고 악인들이 득세하는 이 세상의 질서에 대해 하나님이 더 이상 보고만 계시지 말고 간섭해 달라고 하는 간절한 탄원인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경건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님을 믿는 신앙을 어떻게 자신의 삶, 사회의 삶 속에서 실현하는지에 대한 이상을 보게 됩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한 사람의 하나님 자녀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갈망하고 분투하며 사는 그 모든 열망과 태도는 아주 분명하게 자신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가 크고 깊을 때 그는 이 세상 나라에서도 그런 나라가 통치가 실제로 이루어져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함께 그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며 살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 시인은 오늘 하나님 앞에 침묵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자기 안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가 이스라엘 속에서도 실제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속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소원이 이 시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기도문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시고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하는 이 기도를 올리셨던 그 심정과 유사한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자기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의 경험 거기에서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시는 사랑의 경험이야말로 이 세상을 개혁하고 이 세상을 하나님의 질서로 돌이키는 간절한 헌신의 말하자면 가장 근본적인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지지 않은 사람이 어찌 자기 밖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만약 주기도문의 기도를 올리고 이 시인처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 그리스도의 나라 그의 백성들의 삶속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탄원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진심이요 간절함이라면 아주 분명하게 그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2절에서 시인은 왜 이런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하나님께 설명 드리고 있습니다. 첫째는 ‘주의 원수들이 떠들며 미워하는 자들이 머리를 들었나이다’. 여기에서 ‘떠든다’라고 하는 말은 주권을 잡았다는 의미입니다. 무슨 뜻이냐면 무엇인가 좌중에서 큰소리로 자유롭게 떠들 수 있다고 하는 이야기는 권세를 잡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주관자가 되었다, 주동하고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만약에 이들이 그렇지 않다면 감히 떠들지 못할 것이고 감히 소란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떠든다’라고 하는 단어를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그 뒤에 ‘머리를 들었나이다’라고 하는 이 단어와 떠들며가 짝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의 원수’는 ‘주를 미워하는 자’, ‘떠들다’는 ‘머리를 들었다’와 짝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병행법의 구조를 보면 ‘떠들다’의 의미가 아주 분명해 지는 것입니다. ‘주를 미워하는 자들이 머리를 들었나이다’라고 하는 것은 공의가 사라지고 불법이 횡행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법이 강력하고 선한 통치가 나라에 가득할 때는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감히 머리를 들지 못합니다. 혹시 완전히 선한 사람으로 변화되지 않고 여전히 악을 행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만약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사회 속에서 강력하게 선한 통치가 이루어지면 감히 그것을 밖으로 표현하거나 발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사회의 도덕은 무너졌고 기강은 땅에 떨어졌고 율법은 짓밟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주님의 원수들은 떠들고 주님을 대적하고 미워하는 자들이 권세를 얻고 활발하게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하고 탄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불법이 난무하는 시대에도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슬기롭게 그 모든 시련의 때를 이기고 다른 사람들의 악을 자신의 경건의 기회로 삼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당신의 나라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이 시인의 간절한 탄원은 오늘 우리의 마음을 울립니다. 정말 우리의 마음속에 정말 하나님의 통치를 갈구하는 마음이 있는가? 우리의 마음 안에, 교회 안에, 가정 안에, 이 땅 안에 주님의 통치에 굴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가? 라는 것을 생각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인이 이 불법하고 악한 시대에 경건한 신앙을 가지고 주님께 은혜를 구하며 당신의 원수들과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다스려 주셔서 당신의 이름을 다시 드높여 달라고 기도한 것처럼 우리들도 그렇게 주님께 은혜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 영광이 우리의 구체적인 삶 구석구석에서 드러나도록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며 사는 것 이것이 이 땅에서 주님을 섬기는 동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