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몬 1:3)
녹취자: 박지성
사도 바울이 1절과 2절에서 인사를 하면서 이제 3절에서 그들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서에 꼭 따라오는 인사에 이어지는 축복의 구절입니다. 이 축도형식의 축복 속에는 복음의 가장 중요한 진수들이 이 안에 담겨져 있습니다. 그 진수는 복음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면도 있지만 그 복음이 우리에게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주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 우리 아버지”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아버지’라고 하는 이 명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주 익숙해진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뿐만 아니라 빌레몬과 같이 이방사람들에게도 이 아버지는 매우 친숙하고 익숙한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성경이 ‘아버지’라고 할 때 그것은 몇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우선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성자가 성부를 부를 때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런가하면 이제 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의 창조주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그 모든 만물과 인간들을 돌보신다고 하는 점에서 하나님은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믿는 자에게만 아버지이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인간들에게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또 아버지처럼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의 자연 만물들을 사랑으로 다스리십니다.
그런가하면 이제 이스라엘 나라가 된 다음에는 이스라엘 나라를 선택하셔서 그래서 하나님이 그 신정국가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보다도 더 중요한 그 아버지 이름이 무엇이냐면 우리를 양자 삼으셔서 아버지가 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실 때에는 우리를 단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선택하고 돌보실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우리를 당신과 연합시켜서 그래서 우리와 당신 사이에 영적인 깊은 교제를 가지시는 그런 의미에서의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늘 배우는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 예수와 신자들이 연합된다고 할 때 그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결국 하나님 아버지와의 연합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로서 하나님 아버지와 가지신 그 영적인 특별한 관계 속으로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접붙여져서 연관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여기에 이 아버지는 말하자면 삼위 일체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인 동시에 또 그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당신의 양자 삼으신 아버지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버지’라고 하는 단어가 그렇게 쉽게 성경이 그려내는 것만큼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할 때 우리 이 세상에 있는 우리 육신의 아버지의 그림을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여기에 문제가 뭐냐면 친숙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시대의 아버지는 더더욱 그랬습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고 늘 엄하기만 하고 그리고 밖에 나가서 열심히 돈을 벌고 한국의 전쟁과 일제 강점기와 전쟁, 그 이후의 전쟁의 복구,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에서 정말 지금 6∼70대 되신 아버지들은 정말 고생했습니다. 그 모든 현대사의 격랑을 거치면서 일하면서 사실은 가족을 따뜻하게 돌보고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런 그림을 가지고 아버지를 생각하니까 별로 그렇게 그립지도 않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아버지를 아주 일찍 여의였던 사람들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으니까 더더욱 그 하나님 엄마하면 가슴에 쉽게 다가오겠지만 아버지 그러면 가슴에 다가오지 않습니다. 이런 한계는 사실은 하나님이 가지신 한계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불완전한 아버지들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가 무엇을 뜻하는지가 전달되지 않는 한계입니다.
이런 속에서 여기에서 그려내는 아버지는 어떤 그림입니까? 성경 전체 창세기서부터 계시록까지를 모두 들여다보면서 아버지가 어떤 분이실까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면 그 아버지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가 드러납니다. 그들의 타락과 하나님의 용서와 축복과 회복과 이 모든 과정에도 드러나지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이 아주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사셨던 그 인격과 삶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성경 전체를 보면서 그 성경에서 그리고자 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그림이 집약이 됩니다. 어디로 집약이 되냐면 복음서로 집약이 됩니다. 그래서 복음서 속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었는가 하는 것을 보면 그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가 하는 성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하나님의 성품은 정말 어떤 성품이었을까? 그 성품은 우리들이 그리고 있는 불완전한 엄격한 아버지만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병든 자를 고치고 그들을 치료하고 또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 그들을 바라보시며 눈물 흘리시고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며 “암탉이 병아리를 품은 것같이 얼마나 너희들을 품으려고 했더냐 그런데 너희들이 하나님을 멀리 떠났다” 하면서 심판을 앞둔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시는 이 관경은 아버지의 그림이기보다는 어머니의 그림입니다. 그리고 집을 떠난 탕자를 동구 밖에서 기다리는 그 풍경도 역시 어머니에 가까운 그림입니다.
그럼 여기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이 세상의 어머니와 같은 마음을 가지신 그런 아버지이시다 완전한 어머니와 아버지이시다. 이런 사실을 우리들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 이 하나님 아버지는 정말 높고 위대하고 온 땅과 만물 위에 뛰어나실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들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시는 그런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를 오늘 우리 아버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과 이 편지를 받는 빌레몬과 그리고 디모데와 압비아와 아킵보와 그의 집에 있는 모든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한 가족으로 묶어내시는 하나님 아버지시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와 또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라고 그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고 승천하신 다음에는 바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세상을 통치하셨던 구약의 경우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여호와로서 이 모든 세계를 다스리고 통치하신다는 의미에서 ‘주’라는 단어가 붙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는데 이 예수는 그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인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그리스도는 비록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아 우리를 위해서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시면서 동시에 그분이 또한 제사장이요 그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라는 이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보여준다면 ‘그리스도’라고 하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함은 또한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이렇게 끝납니다. 그 뒤에는 보충으로 번역을 한 것인데 ‘은혜와 평강이 있었으면 좋겠다.’ 혹은 ‘있어 지이다.’ 그런 뜻입니다. 혹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지금 여기에 있다.’ 이런 뜻도 되겠습니다. 그런데 다른 구절로 미루어 볼 때는 그 축복을 비는 기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 여기에서 우리들이 이런 의문을 갖게 됩니다. 왜 삼위일체 하나님이신데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이렇게 하지를 않고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렇게 두 위격만 표현하고 그다음에 “은혜와 평강이 있어 지이다” 하고 성령은 없어졌을까? 이런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나오는 은혜와 평강, 이라는 것 차체가 어떤 신학자들은 그 자체가 성령이다. 이렇게 말하기도 하고 혹은 성령이 하시는 교제의 효과입니다. 그렇게 보면 사실은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에게 있는데 그런 은혜와 평강이 그 자체가 바로 성령님이시라는 점에서 성령님을 또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 같은 경우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들이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 하나님이 아들을 사랑하신다는 이야기는 나오는데 성령이 안 나옵니다. 그런 설명을 어떻게 하냐면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사랑하는데 사랑 그 자체가 성령님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는데 그 은혜와 평강이 성령님 혹은 은혜와 평강이 우리 안에 있기 위해서는 성령님이 함께 하셔야만 그 은혜와 평강이 전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성령님이 빠진 것이 아니라 이미 이 은혜와 평강 안에 성령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은혜와 평강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 은혜는 우리들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저 구원을 받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런 의미도 포함이 되지만 그러나 더 중요한 의미는 그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안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사람들에게 이야기 할 때 어떤 사람이 기쁨 속에서 많이 헌신하고 봉사하면 “너 은혜를 참 많이 받았구나!”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그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감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은혜가 있으면 거기에는 항상 사랑이 있습니다. 은혜 받지 못할 때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은혜 받지 못했을 때에는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을 용서합니다. 그것이 말하자면 인격화된 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신앙입니다. 그래서 이 신앙은 사랑 없으면 그것은 진정한 신앙이 아닙니다. 왜냐면 신앙 그 자체가 은혜의 결과이기 때문에 은혜는 결국 우리에게 사랑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은혜는 하나님 사랑의 감화인데 이 사랑의 감화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이 마땅히 그렇게 살기를 바라시는 그런 삶에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사실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온 사람이 아니라 이 죄악 된 세상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살던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우리는 바다에서 난 소금입니다. 그 소금이 바다에서 생겨났듯이 우리도 또한 본성적인 고향이 하늘로부터 왔지만 그러나 익숙해지게 살아온 나라는 하늘나라가 아니라 이 죄악 된 세상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비록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내버려두시면 우리는 금방 미끄러지고 타락하고 부패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뜻이냐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노력을 많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깨달아야하고 이렇게 새벽에 추운데 나와서 간절히 기도하며 은혜도 받아야하고 또 하나님 앞에 깨어지기도 하고 이런 많은 일들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내 뜻대로 살기위해서는 노력 안 해도 됩니다. 그냥 아침에 눈 떠서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면 결국은 내 뜻대로 사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약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지 않고 내버려두신다면 그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될지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믿음을 지키며 잘 산 사람들이 자랑할 것이 없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런 은혜를 주셔서 그를 붙들어 주셨기 때문에 그도 믿음대로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이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믿음으로 살게 하시는 것이 기계를 움직이는 것처럼 그렇게 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다는 마음까지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은혜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정말 필요한 육체를 위해서 있는 피와 같은 것입니다. 피가 없이 우리 육체가 어떻게 생존 할 수 있습니까? 그야 당연히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한 것이 바로 성령의 은혜다. 그래서 이 은혜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고 그 성품을 유지하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평강인데 어제 말씀드렸기 때문에 간략하게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과의 평화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사람들과의 안녕 자연의 모든 만물과의 안녕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참 놀라운 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고 고민해야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를 가지고 올바로 고민하게 되지 하나님과의 관계의 고민이 없으면 사람들과의 관계의 고민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주 포악하고, 무질서하고, 야비하고, 더러운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아무렇게나 짓밟고 지배하고 자기의 이기적인 욕심을 위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용하는 삶에 관심이 있지 사람들 속에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많이 받으면 그런 평강이 이제 마음속에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성령이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실 때 그런 사랑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3절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바는 무엇이냐면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고 우리의 은혜와 평강의 저자이신 성령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정말 그 하나님의 은혜, 나는 어떤 이유로든지 이길 수 없는 이 현실들을 이기며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감동, 그의 강권하시는 은혜와 그리고 어찌하든지 나를 버려 하나님과 사람 속에서 평화를 이루며 살고자하는 이런 마음,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자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런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사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의 삶이요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