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깨달음
“무릇 주는 위대하사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오니 주만이 하나님이시니이다”(시 86:10)
녹취자: 정유선
어떤 연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시인은 많은 곤란 가운데 있고 거기서 하나님 앞에 자신이 은총을 입은 자이니까 긍휼히 여겨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은 자신의 지나간 신앙의 경험을 회고합니다. 환난의 날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주님이 반드시 자신에게 응답할 것이라는 믿음을 피력합니다. 그러한 응답의 기대는 과거에 같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은 신앙과 간구의 경험을 통한 결론이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응답은 이 시인을 은총 입은 자로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자비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자비와 큰 능력으로 구원함을 얻은 과정을 통해서 이 시인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8절에서 말하기를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가 없으며 주님이 행하시는 것과 같은 일도 없습니다.”라고 노래합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은 주님이 지으신 모든 민족들이 와서 주님을 경배하며 영광을 돌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것은 시인이지만 시인은 이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간절히 구했고 그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으로 자신이 이 곤란 속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 모든 개인의 구원의 과정을 철저하게 개인의 목적에만 사용하기를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을 구원하시는 행동을 통해서 모든 이스라엘과 열방 사람들에게 하나님만이 참 여호와이신 것이 드러나서 그들도 하나님을 경배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의 소원은 오직 하나님 편에 서있는 사람만 가질 수 있는 소원입니다. 즉, 자신이 하나님 편에 서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을 도와주시고 곤란 가운데서 건져주시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상황이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많은 도움을 구하나 응답을 얻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많이 하나님께 간구하지만 자신이 하나님 편에 서있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주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을 자신의 심부름꾼처럼 사용하고 싶어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은 성도인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각양 많은 어려움들을 통해서 형편과 처지는 다르지만 각각 있는 곳에서 그 어려움을 도우심으로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뜻과 그리고 사랑이 드러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시인이 이렇게 하나님이 자신을 도와주시면 결국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많은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는 것은 자신의 어려움이 하나님의 공의를 따르는 심판의 어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악한 자들로 인한 곤란이고 그래서 하나님이 억울한 가운데에 있는 자신의 영혼의 문제를 신원해주시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고 간구하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시는 구원행동이 되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는 격려가 될 것이요 이방 사람들에게는 경고가 될 것이라는 의미에서 이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무릇 주는 위대하사 기이한 일을 행하시오니 주 만이 하나님이시니이다” ‘무릇’이라는 말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그런 뜻입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주님은 위대하사 기이한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하나님의 일하심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향해 친절하게 일하게 하시고 또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모든 사람에게 놀라운 일을 하게 하십니다. 여기 기이한 일들이라는 단어는 히브리말로 ‘팔라’ 라는 단어에서 온 분사복수인데, 무슨 뜻이냐면 ‘놀라게 하다’ 혹은 ‘기이하게 하다’입니다. 이게 무슨 의미냐 하면 아주 쉽게 말하면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그럼 이런 기적과 같은 일, 기이한 일들은 어떤 효과를 가져오냐 하면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부족해서 하나님을 충분히 믿고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행하신 일의 기이함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구나 하는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기적의 힘입니다. 이것이 하나가 아니라 아주 여러 개인 복수로 등장하는 것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높고 위대하신 분이시라고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믿음의 기회를 수없이 제공하고 계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베푸시는 기적적인 은총이 가지고 있는 양면성입니다. 무슨 의미냐 하면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적이고 놀라운 일들이 경건하게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입증해서 더욱 하나님께 순종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향해 믿음이 부족하거나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이처럼 하나님이 높고 위대하신 분이어서 모든 사람과 나라에 대해 주권을 가지고 계시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반응으로써 순종하게 만들고 그리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에 대해 무지 속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주님의 위대하심 앞에 엎드려지게 만드는 그래서 두려워하게 만드는 양면의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인은 오늘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가 행하시는 기이한 일들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이 기이한 일은 하늘을 가르고 불처럼 강림하는 부흥일 수도 있고 나라와 나라의 싸움을 승리에서 패배로, 패배에서 승리로 바꾸는 역사적인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적이오, 능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어려움 속에서 당신에게 구원의 도움을 간구하는 언약백성들에게 자비와 긍휼, 은총을 베푸심으로써 그들이 모두 하나님의 그 드넓은 자비와 사랑을 힘입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시는 은총의 궁극적인 의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있는 사랑과 은총의 관계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면서 사는 언약백성의 삶이 최후의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자각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시인은 주님의 위대하심과 기이한 일을 연결합니다.
그러면서 고백하기를 주만이 하나님이십니다. 시련과 어려움이 겹치고 불경건한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받을 때에는 주만이 하나님이시라는 신앙이 다소 흐려졌겠지만 이런 간절한 기도와 마음을 쏟는 탄원을 통해서 심령이 새로워지고 나니 하나님의 위대하신 일들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고 그 위대한 능력의 하나님이 오늘도 살아계셔서 자신을 지키는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놀랍고 위대한 일들을 행하시면서 하나님 앞에 살도록 힘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큰 어려움은 기도하지 않고 배반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는 큰 환난의 징표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사람,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자신의 가는 길을 바꾸려는 사람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자비요, 은총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어려움 속에 있는 시인을 위로하고 격려하셔서 이 어려움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도달 할 수 없는 더 큰 신앙의 기쁨과 은혜의 감격 속에 들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려움 속에 잠시 믿음이 식어짐으로써 마음속에 사라졌던 희미한 그림자들이 물러가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거룩한 확신에 다시 불붙게 하였던 것입니다. 어떤 한 사람의 믿음 있음과 없음은 어려움을 통해 드러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어려움이 올 때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과 간절한 기도로 그 어려움을 태우며 신앙의 불꽃을 더욱 치열하게 타오르도록 만들어줍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그 어려움 속에서 그나마 유지되던 경건을 버리고 상실한 자의 마음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미끄러지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을 통해서 우리는 매일매일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며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인처럼 여러분도 어려움을 만나서 오히려 위대하고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계기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