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형제, 오네시모
“저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이를 인하여 저를 영원히 두게 함이니 이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몬 1:15-16)
녹취자: 오희열
사도바울은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변호하는 글을 계속 쓰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내주며, 잠시 오네시모가 자신의 곁을 떠나는데 그것을 기쁘게 하는 이유를 빌레몬이 그를 용서해서 다시 보내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말함으로써 빌레몬에게 모종의 압력을 넣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그 압력은 비인격적이고 권력적인 압력이 아니라 그가 이미 자신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에 호소하고 있다는 점이 인격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도망친 노예에게는 형벌이 기다리고 있는데, 더욱이 당시의 노예는 금전이나 토지처럼 주인의 소유였습니다. 그래서 노예가 자식을 낳아도 당연히 그 자식은 주인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마치 가축이 새끼를 낳으면 그 새끼가 주인의 소유가 되는 것처럼 취급받던 시대였습니다.
오네시모가 회심을 하고 사도바울의 사역에 아주 유용한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아마 옥 속에 갇혀있는 사도바울의 수족과 같은 역할을 했을테니, 잠시 이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은 사도바울에게도 매우 불편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인격적인 신앙을 택했습니다. "네가 도망친 노예이니 원 주인에게로 가서 용서를 받고 다시 내게로 오는 것이 옳겠다" 라고 타이른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 오네시모를 보내준 것입니다. 그를 향한 사도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애틋했는지는 "너로 하여금 저를 영원히 두게 함이니" 라는 말 속에 잘 나타나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도망친 노예가 법적으로 너의 소유이니 이 오네시모가 너에게로 돌아간다. 그렇지만 너는 반드시 이 사람 오네시모를 다시 보내서 내 곁에서 나의 일을 돕는 형제가 되게 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어서 오네시모를 어떻게 대우해 주어야 할지를 사도바울은 16절에서 이렇게 묘사합니다. "이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16절)
첫 번째는 다시 한 번 사도바울이 빌레몬에게 간청합니다.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내게 둘 사랑받는 형제라" 빌레몬의 기억 속에서 이 오네시모는 말썽을 많이 부리고 주인의 집에 물질의 손해도 적잖이 끼치고 그렇게 해서 주인의 마음에 고통을 주었던 사고 친 노예로 기억될 것입니다. 이 사람의 회심이나 모든 변화의 사연을 모르는 빌레몬에게는 그때 그 인상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사람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호소하면서, "이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라고 말합니다. 이미 사도 바울 의 마음속에 이 오네시모는 도망친 노예가 아니라 복음을 위한 동역자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사도바울의 마음속에서 노예제도는 있었지만 그 마음속에 노예는 없도록 그렇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렇게 주인의 집에서 물질적인 손해를 끼치고 도망친 정말 쓸모없는 이 노예를 복음을 위해 이처럼 유용한 일꾼으로 만들어주시는, 그 속에 복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 사람을 지극히 기뻐하며 하나님 앞에 이 사람을 주님의 사람으로 여기며 빌레몬에게 그를 용서하고 다시 보내주기를 간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사도바울은 이 사람을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빈부나 귀천, 노예나 노예의 소유주, 고용주와 피고용인 이런 차별이 없이 하나의 형제, 자매가 된 것,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교회의 영적인 성장, 영적인 성숙함의 지표는 그 사람의 사회적인 형편 같은 것에 얽매이지 않고 그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으로 어떻게 존귀하게 취급하고 생각하는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여기서 육신으로 상관되었다고 하는 것은 육신적으로, 빌레몬에게 오네시모가 노예였고 육신적인 소유권을 빌레몬이 가졌기 때문에 육신적으로 상관되었다는 것이고, 주 안에서 상관되었다는 것은 이 빌레몬이 사도바울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어 그리스도의 형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던 것처럼, 오네시모도 사도바울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영적으로는 이 빌레몬과 오네시모가 형제가 된 것이 틀림이 없다는 얘깁니다. 무슨 특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우리에게 깊이 감동을 주는 것은 그렇게 도망친 노예, 붙잡히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비천한 노예와 이 사람과는 비교도 될 수 없는 부자이고 명사인 빌레몬 사이에서 사도바울이 중재자의 역할을 하면서 이 사람이 이 모든 행동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정한 화목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정한 형제 됨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는 종이나 자유인이나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구별이 없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 안에서 그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 형제가 된 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소중하고 고귀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중보를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마치 이 사도바울이 빌레몬과 오네시모 사이를 중보하여 화목하게 함으로써 한 형제가 된 것처럼, 그렇게 주님이 우리를 위해 중보하셔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으니 이 화목을 지키며 주님 앞에 충성스럽게 사는 주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