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인자와 성실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내가 말하기를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 하였나이다”(시89;1~2)
녹취자 : 허혜숙
시편 89편에서는 제일 먼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시가 비록 다윗의 시는 아니지만 전 편에 계속되고 있는 이 시편 89편의 노래는 아주 장중한 신학을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회고하며 어떻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해 오셨는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입니다. 그런 점에서 1절과 2절은 이후에 이어질 시편 89편의 많은 노래들의 제목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차례대로 해설해 나가겠지만 우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라고 했을 때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셨는데 하나님이 그 언약을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인자가 이 시인의 마음에 큰 기쁨을 주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와’라고 하는 하나님의 성함은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계시된 이름이었습니다. 그것은 언약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언약의 하나님으로서 그 백성들에게 한없는 자비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시인에게 큰 위로가 되었는데 이것은 자기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공동체 전체에 관한 고백이었습니다.
첫 번째로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한다고 했을 때 그 인자하심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한 성품입니다. 모든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고 분에 넘치도록 대우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에서 흘러나오는, 말하자면 인간들을 다루는 하나님의 방식을 통해서 알게 된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자기의 백성들을 이렇게 너그럽고 넘치는 호의로 돌보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시인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고하고 자신의 삶을 회고했을 때 깨닫게 되는 하나님의 성품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주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신자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하나님의 성품인 인자하심을 매일 매일 체험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단지 개인의 삶에서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 전체를 향해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인자하심을 경험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그 하나님께 더 헌신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신자의 삶입니다.
사실 신약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이 사람들보다 훨씬 더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아무리 많이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는 비할 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 승천에 이르기까지 구속의 전 과정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얼마나 놀라운가를 보여주는 최고의 나타남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약시대에 희미하던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 소수의 사람들이 가슴에 깊이 감동을 받으며 하나님을 찬송했던 이 주님의 인자하심에 대한 덕을 그리스도를 통해 아주 분명하게 보며 누구라도 믿음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생생하게 느끼고 볼 수 있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말하기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고 말합니다.
두 번째는 ‘성실하심’입니다. 이 성실하심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에서 가지고 계신 주도적인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은 언약관계 속으로 들어갔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버리고, 방탕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이 당신과의 언약을 버리고 불순종해도 끊임없이 그들을 돌보실 뿐만 아니라 책망해서라도 당신과의 관계로 돌아오도록 부르십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차이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실하심’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루살렘이 다 멸망해 버린 후에 성이 다 파괴되고 예루살렘 성전이 모두 훼파되어버렸습니다. 그 폐허 위에서 많은 사람들은 ‘아 이제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나보구나,’ 혹은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자기 먹을 양식을 구하러 다니는 풍경을 연출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예레미야 선지자는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신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노래했습니다.
(찬송)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그의 자비는 무궁하며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큼이라
성실하신 주님
무슨 성실의 증거를 느낄 수 있었겠습니까? 모두 부서져버리고, 파괴되고, 포로로 끌려가고, 황폐하게 된 예루살렘, 마치 겁탈당한 처녀처럼 모두 망가져버린 예루살렘을 보면서 무슨 성실하심을 느낄 수 있었겠습니까? (선지자는) 거기에서 그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니까 하나님이 징계를 통해서라도 그들을 당신과의 관계 속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오히려 당신의 심판을 통해서 그 백성들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붙들고 당신과의 관계로 돌이키시는 위대한 하나님이심을 발견하고, 가슴 벅찬 찬양을 하나님 아버지께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인이 하나님의 성품을 노래하게 된 이유입니다.
(그리고) 2절에 보면 (선지자는) ‘과거에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바로 그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고 또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견고하게 세우실 것이라는 사실을 노래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인자하시고 성실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깊이 가슴에 새기며 주님을 위해서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