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향해 두 손 들때
“주의 노가 심히 나를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가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셀라) 주께서 내가 아는 자를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고 나를 그들에게 가증한 것이 되게 하셨사오니 나는 갇혀서 나갈 수 없게 되었나이다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시 88;7-9)
녹취자: 허 혜숙
깊은 웅덩이에 갇힌 것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시인은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 합니다. 첫째는 소외입니다. 오늘 8절에 보면 ‘주께서 내가 아는 자를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관계 속에서 사람들을 의지하며 또 그 사람들과 함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인데 깊은 시련 속에서 악인들에게 에워 쌓인 체 그는 소외되었습니다. 깊은 외로움과 하나님 앞에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자신을 돕거나 긍휼히 여기거나 혹은 함께 하는 자를 발견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아는 자를 하나님이 자기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셨다’ 고 했습니다.
돈이 있고 권력이 있고 한참 때에는 사람들이 몰려서 친구도 많건만 이제 모든 것을 잃고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는 사람처럼 이렇게 시련에 처하게 되니까 자기를 돕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것이 시인이 처한 처지 첫 번째 묘사입니다. 두 번째는 ‘나를 그들에게 가증한 것이 되게 하셨사오니’ 이것은 오해입니다. 오해 혹은 오해에서 오는 미움입니다. 시인은 하나님 앞에 잘못 한 것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사람들로부터 이렇게 미움을 받을만한 커다란 손해나 악을 사람들에게 끼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다른 곳에서도 이렇게 하나님이 특별한 계획아래 시련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하나님이 자기를 주님 앞에 세우려고 하실 때에 사람들로부터 오해와 미움을 당하게 되는 경험을 여러 곳에서 시인들이 말했습니다. 이 시인도 역시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스럽고 좋은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가증한 물건이 되어버렸습니다. 미움과 어떤 혐오가 가슴에 가득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미움, 가증한 것, 혹은 미운 물건이 되는 것, 이런 것들에 대한 묘사는 저 멀리 창세기로부터 성경에 아주 자주 나오는 내용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함께 출애굽을 계획하고 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과 그 지도자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미운 물건이 되었었습니다. 가증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그렇게 극도의 미움과 배척의 표시일까요? 원래 가증하다고 하는 것은 불결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제사와 관련이 됩니다. 불결한 것은 하나님 앞에 제사에 받쳐지는 제물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에 그것을 가지고 사람들이 짐짓 제사를 드리면 그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증한 것들을 미워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지 제물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금하신 율법의 많은 악들, 이것들도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이 금하고 있는 이방의 풍속을 행하거나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 죄를 지을 때에 그리고 회개하는 마음이 없을 때 그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으로 비쳤습니다.
그러니 이 시인이 받고 있는 미움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경건한 성도가 하나님 앞에 가까이 할 수 없는 율법적으로 더러운 물건들, 더러운 제물들, 하나님 앞에 제사할 때 극도로 혐오하고 미워하는 것처럼, 경건한 성도가 악을 떨며 미워하는 것처럼 그렇게 시인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당하고 더럽다 여김을 받았습니다. 철저하게 외로운 상태에서 그는 웅덩이와 같은 곳에 갇혀있는 상황입니다. 그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로‘나는 갇혀서 나갈 수가 없게 되었나이다’ 도저히 거기에서 극복하고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인은 철저하게 버림받고 외로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런 시련을 당하며 굶주렸기에 그의 눈은 쇠하였고 절망으로 인해서 그의 육신은 상해 눈이 어두워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시인이 당한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인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이런 상황 속에서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물론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행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여기에는 찬양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경건한 시인은 인간의 힘으로는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웅덩이에서 버림받아 외로운 처지가 되었고 사람들에게 극도의 미움을 당하고 자신으로서는 그 웅덩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어떠한 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두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이 옥에 갇혔을 때 실라와 함께 찬양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찬양과 함께 옥문이 열리고 구원을 얻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인생의 어두운 시련의 날에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하십니다. 형통한 길을 걸어갔더라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을 사람을 버림받게 하시고, 미움을 당하게, 하시고 외롭게 하심으로서 그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을 대면하게 하십니다. 이 세상이 나를 다 버려도 예수님이 나의 친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고 그래서 우리 주님 앞에 매달리게 하십니다. 많은 염려와 근심으로 쇠하던 눈을 들어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인생의 시련과 고통으로 어두워졌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해 기대를 갖게 합니다. 성경을 열어 보십시오 지금 우리가 당한 시련보다도 더 큰 시련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들을 건지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과 시련이 올 때마다, 절망스러울 때마다,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셨던 위대한 일들을 추억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하였습니다. 이 시인이 똑같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형통하던 날에는 기도할 수 없었는데 만사가 모두 자기의 뜻대로 될 때에는 하나님을 경배할 수 없었는데 이제 이 시련의 때에 그는 두 손을 높이 들고 우리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결국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비롯해서 세계 전체를 붙들고 계시고 그 분의 주권 아래서 그분과 또 다른 관계를 가질 때 하나님은 오늘의 외로움과 미움, 시련과 절망이 변하여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조건이 되게 하신다는 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흐르는 시냇물은 계곡을 흐르며 아름다운 소리를 냅니다. 돌멩이에 부딪히고 계곡을 휘돌며 소리를 냅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아름다운 화음이 되어서 온 산에 메아리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우리 인생의 날이 기쁘고 즐거울 때만 있겠습니까? 시련과 고난의 날도 있고 어려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그때마다 흐트러진 우리 마음을 모으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변하여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되게 하십니다. 그 한숨이 변하여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인의 믿음을 따라 여러분도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시련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