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의 영광을 그치게 하심
“주께서 저의 대적의 오른손을 높이시고 저희 모든 원수로 기쁘게 하셨으며 저의 칼날을 둔하게 하사 저로 전장에 서지 못하게 하셨으며 저의 영광을 그치게 하시고 그 위를 땅에 엎으셨으며 그 소년의 날을 단촉케 하시고 저를 수치로 덮으셨나이다” (시 89:42-45)
녹취자 : 김향진
Ⅰ. 본문해설
오늘 이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악인들을 다루시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악인은 잠시 번영할 수 있고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그들의 편이 아니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악인’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어쩔 수 없이 하나님 앞에 잘못하고 다시 돌이켜 하나님을 의지하고 회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대항하고 대적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궁금해 합니다. ‘왜 의로우신 하나님이 비록 잠시 동안이지만 악인들의 번성을 허락하실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은 우리에게도 고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맨 처음 하나님을 믿게 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삶의 모든 것이 잘 전개되고 행복했기 때문에 예수를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혼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초청하는 복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복음을 받아 들였을 때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지식이 들어왔습니다. 볼 수도, 만질 수도, 만나본적도, 교제한 적도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를 알게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의 소유물을 통해서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 알게 되지만 ‘누군가의 사랑을 안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의 본성과 사람됨을 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나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인격,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그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의존의 마음이 생기고 어떤 경우에도 그 신실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일반적으로 부모는 자식을 끔찍이 사랑합니다. 그래서 자식의 고통을 차마 보지 못합니다. 안타깝게 병들고 죽어가는 자식을 보며 ‘저 자리를 내가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까지도 생각을 하지만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모두 알지 못합니다. 때로는 그를 아프게 하는 병원에 데려가고 먹기 싫은 약을 먹이고 어떻게든 병을 고치기 위해 아이에게 끔찍한 방법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녀들은 모릅니다. 자녀들이 이해할 수 없는 더 크고 놀라운 섭리 속에서 부모들은 그 자식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 아들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개를 아주 좋아하는 주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개가 먹어서는 안 될 것을 먹어서 기도가 막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달려가서 그 개를 묶은 다음 목구멍까지 손을 넣어서 빼냈습니다. 그 개 입장에서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놀라운 것은 그 개가 다시는 주인을 안 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의 한계입니다. 그러난 인간은 세월이 흘러가면 ‘우리 부모가 왜 나에게 그때 그렇게 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실은 그것이 나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만약 그것을 끝까지 모른다면 성숙한 인간이 아닙니다.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어떤 일은 세월이 오래 흘러도 그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문제가 안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깊이 신뢰하고 의지하며 살면 눈에 보이는 것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은 참 신실하시다.’ ‘나에게 결코 악을 행하실 수 없는 분이다.’라는 것이 우리의 마음에 박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은 하나님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합니다. 사람들을 보고 누군가가 실망스러운 일을 하거나 뭔가를 실수했을 때 만약 우리에게 그 사람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없다면 그 나타난 것이 그 사람의 전부라고 평가해 버려서 버리기도 하고 내쫓기도 하고 배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사람을 신뢰하고 사랑하면 ‘저 잘못은 의도된 것이 아닐 거야. 혹시 그 일을 뜻대로 했다고 하더라고 원래 의도는 저렇게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 거야.’ 하는 신뢰가 모순들을 다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 절에 걸쳐 악인의 패망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이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잠시 악인이 번성할 수는 있으나 선한 자를 징벌하시고 악한 자를 높이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 아니요, 반드시 모든 일들을 정리하셔서 아무리 그 영광이 높을지라도 그 영광을 패대기치시고 아무리 탄탄대로를 걷는 것 같아도 그들의 앞길을 막으시고 그들이 아무리 영광스러운 것 같아도 그들을 결국 수치스럽게 하시나니, 너희는 악인이 잠시 번성하는 것을 인하여 고통받지 말라. 나 신실한 하나님이 너희에게 있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최고의 보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 있든지 항상 이런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인도해주셨으면 좋겠다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러면 꼭 나도 영광을 받을 것 같고 하나님도 영광을 받으실 것 같지만 우리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형통하게 하심으로써 받을 수 없는 영광을 때로는 형통하지 못하게 하심으로써 영광을 받으십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되었다면 그냥 좋아하며 살았을 텐데 때로는 안타깝게도 우리 의지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또 어떤 이들은 미끄러지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은 것 때문에 하나님께 더 매달리고, 하나님이 신뢰할만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자기의 마음속에 강화시키는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결론은 악인은 잠시 번성할 수 있으나 영원히 번성할 수 없으니 하나님 없이 흥왕 하는 악인을 보고 부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우리에게 복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