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자에게 성령을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화께 불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 (삿 15:18-19)
녹취자: 이재호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후서에서 이러한 조언을 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살후 3:13). 즉,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는 때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러분들도 주위에 목양을 하던 지체들이나 혹은 동료들을 보면서 정말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교회에서 주의 일만 했는데 어느 한 순간에 끈이 풀린 것처럼 뒤로 벌렁 누워서 도저히 못 일어나는 사람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도 하나의 영적 침체의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혜롭게 목회하기 위해서 영적인 침체가 이미 증상으로 나타나서 물러가서 침륜에 빠지는 것 같을 때 ‘저 사람이 침체구나.’ 이렇게 보지 말고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고 변함없이 무엇인가를 하는 가운데에서도 저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와 있나 보는 게 진정한 목양입니다.
오늘 성경은 그런 점에서 아주 깊은 교훈을 줍니다. 삼손은 해악적인 인물이었고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삼손이 그저 드릴라에 꼬임에 빠져서 인생을 망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위대한 믿음의 증인들을 이야기하는 히브리서 11장에서 삼손이 등장합니다. 그렇게 보면 결국은 삼손은 솔로몬과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아울러 가지고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비율로는 차이가 나겠지만 다윗은 양면을 안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제외하고 누가 한 면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교만하지 않고 그저 삼손이 행한 놀라운 일들을 믿음으로 살았던 순간들을 보면서 ‘드릴라의 꼬임에 빠져서 나가떨어진 녀석.’ 이렇게 치부하지 않고 다윗이 받았던 하나님의 풍성하고 위대한 계시를 그저 ‘타락한 사람 다윗이 하는 말이니 우리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론은 욥의 세 친구에 대해서도 나는 일정한 부분이 옳은 접근이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삼손은 블레셋을 미워했는데 자기를 밧줄로 묶어 블레셋에 넘기려고 했으니 얼마나 화가 나갔겠습니까? 그리고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1000대 1의 전투입니다. 삼손은 워낙 장성했지만 무기가 없었는데 수많은 블레셋 군사들이 쳐들어 올 때 여기저기 손을 더듬어 보니 당나귀뼈가 하나 있었습니다. 당나귀의 턱뼈라고 하는 것은 당나귀만이 아니라 인간도 가장 강한 뼈 중의 하나가 턱뼈입니다. 그것을 한 손에 넣고 춤추듯이 휘두르면서 일천 명을 죽여서 말하자면 산처럼 언덕처럼 시신을 쌓았습니다. 이제 모든 승리를 거두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이제쯤에는 큰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얼마든지 와도 내가 이길 수 있겠습니다.’ 하는 자기 자랑이 넘쳐야 할 텐데 ‘내가 일천 명을 죽였도다’ 하고 턱뼈를 손에서 내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그곳을 ‘라마트 레히’ 라고 하는데 ‘레히’ 는 뺨 혹은 턱을 가리키고 ‘라마트’ 는 높은 지대 혹은 산, 언덕, 무덤을 다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턱뼈의 언덕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놓고는 긴장이 탁 풀리면서 이 삼손에게 어마어마한 목마름이 몰려왔습니다. 그제 서야 목마름을 느꼈던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휴식을 취할 때 사실은 더 많은 영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딱 끝나고 나니까 엄청난 목마름이 느껴져서 쓰러질 처지가 되었는데 이 때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 사람의 믿음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닙니다. 목마른데 자신이 기운이 없고 목마른 이 상황을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낙심하는 면도 함께 보입니다.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삿 15:18). 여기서는 또 삼손의 선민의식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에 대한 확고한 자부심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되었나이다’ 그러면서 깊이 낙심한 것 같은 그 때에 하나님이 레위의 한 우묵한 곳을 터트렸습니다. 생수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먹고 정신이 회복되었습니다. 정신만이 아니라 이것은 목숨이 회복되었다고 번역될 수도 있고, 혹은 영혼이 회복되었다고 표현할 수 있고, 마음이 회복되었다, 정신작용이 회복되었다, 하여튼 육체가 아닌 영혼과 정신에 속한 모든 걸 포괄적으로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물론 우리가 열심히 일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또 우리는 열심히 일할 때 기도하면서 주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주를 섬기는 사람도 어느 한 순간에 깊은 침체에 빠지는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은 ‘탈진이다.’ 혹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사람의 신실하고 성품이 올바르면 상당한 그 안에는 관성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주님의 일 뿐만이 아니라 하다못해 남의 집에 가서 일당을 받고 일을 해도 꾸준히 일하는 사람은 그렇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영적인 궁핍함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때에 해결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게 무엇인가 하면 세 가지 교훈을 줍니다.
첫째는 이런 영혼의 깊은 침체를 해결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침체에 빠진 사람들을 다루면서 우리가 이렇게 이런 일, 저런 일을 하라고 가르치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하늘을 열고 그의 영혼을 새롭게 해 주시지 않으신다면 그 모든 노력이 의미가 없고 그 노력은 마치 텔레비전의 스위치를 켜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우리가 하기만 하면 되지 무엇 하러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또 간구하고 하겠습니까? 제일먼저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실 수 있다.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정말 중요한 교훈을 여기에서 주고 있는데, 삼손이 부르짖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적인 침체에 빠졌을 때에 모든 사람의 공통적인 고백이 무엇이냐면 기도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만 할 수 있으면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삼손은 그렇게 당나귀의 턱뼈를 내던지고 이제 곧 쓰러져 죽게 될 즈음에서 이 두 가지를 믿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이런 자신을 도와주실 수 있다는 것과 그 하나님만이 나의 부르짖음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어느 정도였을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 목마름과 그 탈진이 왔을 때 살려달라는 그것이 어느 정도였을 것인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우리 자신과 이런 사람들을 돕는 가장 중요한 비결이 무엇이냐면 어떻게 하든지 마음을 움직이고 격려하여서 기도를 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어떻게 다독어리고 움직여서라든지 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하나님이 그 기도가 끝난 후 레히에서 샘을 터트려서 물이 쏟아져 나오게 하였습니다. 결국은 그 물을 먹고 이 삼손이 새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영혼의 깊은 침체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수단일 뿐입니다. 누군가가 곤고할 때에 누군가가 와서 말로 위로하고 함께 나누는 따뜻한 식사는 우리의 원기를 북돋아 줍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그 순간이고 자신의 생각을 어디로 새롭게 돌리게 만들어 줄 뿐이지 그 자체가 생명이 부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는 ‘성령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강력하게 일어나 이 사람의 가난한 영혼을 채울 때, 지쳐서 쓰려져 죽게 되었다는 삼손이 정신이 회복되었던 것처럼 영적으로 회복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바로 그런 일들을 돕기 위해서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지도자들과 목양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나의 구역에, 순에 그리고 나의 교구 사역에, 나의 부서 사역에 선생님들의 모임 속에 나타나서 메말랐던 사라들이 그 물을 먹으며 온 몸이 그 물을 흠뻑 마시고 새 힘이 솟아나는 사역이 되도록, 섬김이 되도록 빌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이는 다른 아무 것들도 사역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