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행 5:32)
녹취자: 홍성림
성령을 하나님이 부어주신다고 하는 것은 우리들이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십니다. 그래서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는 축복이라는 말씀입니다. 소리 지른다고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열광을 한다고 해서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시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성령을 보내시는 주권이 있다는 말은 하나님이 변덕이 심하시고 아무렇게나 일하셔서 사람들을 종잡을 수 없게끔 만드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나님께 주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 뜻대로 하신다고 하는 것과 종잡을 수 없이 아무렇게나 마구 성령을 주신다든지 아무런 원칙도 없이 마구 행하심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서 변덕이 심하시다든지 도대체 정신을 못 차리겠다든지 하는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주위에, 또 교회의 역사를 보면서 성령을 부어주시는 큰 축복을 받았던 그런 사람들을 쭉 보면 확실히 성령을 보내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이지만 거기에는 일정한 원리와 원칙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나도 그 원리와 원칙을 그대로 흉내내기만 하면 무조건 나에게 성령이 오시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보면 거기에는 어떤 놀라운 일치하는 어떤 원리들이 발견됩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강력하게 감화시켜 주시기 전에는 여러분과 저는 참된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는 이제껏 우리들이 말로만 들었던 많은 신앙생활에 있어서의 수많은 개념들, 이런 것들이 생생하게 실제로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화) 언젠가 한번 수련회를 갔는데 지체를 위해서 기도하다가 한 지체가 막 우는 것입니다. 그때 성령의 은혜가 참 많이 내렸을 때입니다. 너무 서럽게 울어서 왜 그러냐고 하니까 저 지체가(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왜 은혜를 못 받고 있는지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데 너무 슬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교만 때문이라고 합니다. 교만 때문인데 말할 수도 없고 말을 안 하자니 견딜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막 회개를 하는데 자기 회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를 마음 아파하면서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그 지체는 그런 것들을 체험하기 전까지는 참된 의미의 중보기도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몰랐고 주님의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몰랐고 사랑으로 지체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몰랐습니다. 결국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으니까 그날 오후엔가 찾아가서 그 지체 손을 붙들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서럽게 울면서 "하나님은 너를 너무 사랑하시는데 네가 교만하기 때문에 네가 많이 기도해도 하나님이 네게 은혜를 주시지 않는다." 평소에 아마 "야, 넌 안 돼. 넌 교만해서 안 돼." 이렇게 했으면 머리 끄집어 잡고 싸움이 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울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놀라운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도 안 부서지던 사람이 가서 그렇게 딱 충고하니까 그 순간에 성령이 강력히 역사하시면서 그 자리에서 대성통곡하면서 고꾸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의 교만을 용서해 달라고, 네 말이 맞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 누가 하시는 것입니까? 성령이 하시는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 성령이 강력하게 임하시니까 다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온 성령을 통해서 참된 회개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 전에 회개에 대해서 성경 공부를 많이 하고 성경구절도 많이 알고 있었지만 분명하게 이것이 회개구나 하는 깊이 다가오는 놀라운 역사를 성령이 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면서 우리는 개념으로 가득 찼던 그런데서 벗어나서 우리들은 진짜 참된 신앙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생활, 영적인 삶인 것입니다.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시대에 실현될 가능성은 없겠지만, 우주여행을 하면 얼마나 신비할까 생각합니다. 말로 많이 들었고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해서 우주를 나가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기도 하고 만화영화나 스타워즈 같은 것도 나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을 보고는 그저 어렴풋이 우주가 어떤 것인지를 알 뿐이지 진짜 로켓을 타고 대기권 바깥으로 벗어나서 조막만 해지는 새파란 지구를 바라보면서 우주를 유영할 때 그 신비는 얼마나 놀라울까? 신앙의 세계라는 것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무조건 경험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 경험했기 때문에 신앙이 온통 혼란에 빠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한번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며칠 전에 저희 집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참 신기하지?" 그래서 뭐가 신기하냐고 물어보니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나만큼 하나님을 많이 만난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은사도 많이 받고 열심도 있었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복음의 깊이에 대해서 눈을 뜨고 나니까 너무 억울한 생각이 들더랍니다. 왜? 그때 그렇게 크게 하나님을 만났을 때 분명하게 누군가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는 축복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다면 내가 인생을 얼마나 일찍부터 쓸데없는 열심, 거짓된 가식 같은 것들을 버리고 세속적인 그리스도인이 아닌 신령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실 때 단지 체험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성령이 우리에게 오실 때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견고하게, 여러분들이 어디에 가든지 이것 하나만 잊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이 어려움을 만나도 다른 데로 가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뭐냐하면 참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우리에게 주시는 체험은 나누어질 수 없고 만약에 나누어진다면 그것은 별 의미 없는 체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이 철저하게 말씀의 깨닫는 일이 없이 경험하는 체험이 쓸데없다거나 도움이 없다거나 생각하지 않고 해로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그것은 성령이 하시는 일이라는 그 자체를 의심한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이 증인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위해 증인이 된 것처럼 우리를 위해서 오신 그 성령도 또한 증인으로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고 성령 안에서 받은 그 체험이 얼마나 진실한지를 보면, 껍데기 보면 모릅니다. 다 파들어가서 속 알맹이를 보면 십자가, 혹은 예수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결국 그 속에는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를 너무나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가끔 찾아와서 목사하고 상담하자고 해놓고 전부 다 자기 체험한 이야기, 내가 보기엔 마치 시골에서 옥수수 껍질을 가지고 대변을 보고나면 닦아서 그 뒤에 쌓아놓는 정도밖에 가치가 없는 이야기들인데 자기 흥분에 들떠서 마치 무용담을 늘어놓는 것처럼 하는데 왜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결론이 뭐냐하면 그런 체험들이 신앙생활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있어도 그 열심은 빗나가고 경건하여도 그 경건은 거짓된 경건이라는 말입니다. 신령한 것 같아도 그 속에는 뭔가 예수 중심의 사상이 빠져버렸고 그런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사상가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기독교의 thinker들, 사고하면서 뭔가 자기 생각을 사람들에게 퍼뜨리는 그런 사람들 중에도 영적이긴 영적인데 잘못 영적인 사람들이 많이 혼란을 시킵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고 그 성령을 부어주시지 아니하고는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참된 구원이 무엇이고 참된 은혜가 무엇이고 참된 거룩함과 기쁨이 무엇이고 하나님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와의 진정한 연합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신앙생활은 매우 건조합니다. 그는 결단코 죄를 이기지 못 합니다. 성공하면 외식하는 그리스도인이요, 실패하면 배교의 길을 갈 뿐입니다. 그만큼 성령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든 정상적인 삶의 원천이 되신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주권을 보면서 간단하게 하나님의 주권이니까 그렇게 해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보셨죠? 가끔 예배 시간에 이상한 사람들이 막 뛰어 들어오지 않습니까? 며칠 전에도 한 사람 또 왔습니다. 동네에서 어떤 여자 청년이 신발도 안 신고 맨발로 뛰어와서는 나 좀 살려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영에 눌리고 완전히 소망이 없는 그런 사람들, 뭘로 그 사람의 인생을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말을 해도 말도 잘 못 알아듣고 귀신에 눌려있는 이런 사람들을 누가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그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정말 신령해지고 거룩해져서 인간이 다른 어떤 곳에서도 치유를 받을 수 없는 영혼의 문제를 고칠 수 없는 권능을 가진 하나님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단순히 주권 타령만 하고 있을 성질의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바라보면서 어차피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니까 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 사상이 아닙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이니까 참 잘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전권을 가지고 계시니까 이제 뭐하는 일만 남았습니까? 하나님 앞에 달라고 매달리는 일만 남은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면서 하나님께서 전권을 가지고 계신 성령을 보내주시는 주권을 한번 우리에게 펼쳐 보여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즘 새벽에도 잠이 깨면 잠이 안 오고 염려도 되고 기대도 되고, 하여간 빨리 10월 11일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 밖에는 지금 없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십시오. 지금도 보고 왔는데, 큰 교회당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사람은 꽉 찼는데 성령은 오시지 않으셨다, 그것은 범죄입니다. 비극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변화되지 않고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면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오히려 자신의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더 진지하게 염려를 안 합니다. 오히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극을 받으면 '계속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왜 이렇게 마셔도 마셔도 목 마르고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극도의 쾌락 끝에 밀려오는 것은 뭐지? 극도의 허무', 그걸 보면서 두려움을 느끼고 그럽니다. 그러나 부족한 것이 없이 신앙 생활한다고 생각하고 교회에 그저 덜렁덜렁 나오고 그저 남들이 하는 것만큼 다 하고 또 그런 말씀 들으면서 그저 얼르고 얼러서 나같이 신앙생활 하는 것이 모범답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교회가 가득 차는 것이 범죄란 말입니다. 이것은 마치 무엇과 같은 것이냐면 천국으로 가야될 사람들을 기차가 와서 천국이라고 쓰인 곳에 태워야 하는데 지옥으로 가는 열차가 번호판을 바꿔 끼워서 천국이라고 써놓고 사람들을 실컷 태우고 지옥으로 달려가는 것과 똑같은 범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교회, 어느 목회자, 어떤 교인들이 자신들의 교회가 그렇게 부정직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지 않은 교회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화) 언제 한 번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전주에 내려가서 청소년 집회를 인도하는데 아침에 전주에서 유명한 콩나물 국밥을 먹었습니다. 왜 그것이 유명한지 이해가 안 갑니다. 뜨겁긴 엄청 뜨거워서 다 데었습니다. 뚝배기, 120도 정도 될 것 같은 곳에서 바글바글 끓는데 시원하면서 다들 먹길래 진짜 시원한 줄 알고 먹다가 입천장이 다 데었습니다. 무슨 맛으로 그렇게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4일 동안 콩나물국만 먹었습니다. 하여간 아침을 먹으면서 선교단체니까 수련회 이야기를 하는데, 요즘 수련회는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회심을 목표로 하는 수련회가 아니다, 그것이 문제다, 가면 그저 운동선수 같은 사람들 불러서 아이들에게 진행하고 하는데 주최하는 측 자체가 단호하게 이 영혼들이 변화되고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은 회심해야 된다는 불꽃과 같은 목사가 너무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간사들이 다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듣는 중에 머리가 하얀 고문 목사님이 심각하게 그 이야기를 듣더니 그런 이야기하면 뭐하냐고 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이야기했는데 그런 이야기하면 뭐하냐고 하니까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것을 누가 모르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의 영혼이 모였을 때 구원받지 못 한 아이들은 다 변화되어서 회심하고 구원받은 아이들은 영적으로 크게 각성해서 주님을 향한 사랑에 불타게 되는 그런 수련회를 하기 싫은 사람이 누가 있느냐, 그런데 안 되는 걸 어떻게 하냐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커다란 자세는 우리는 영혼을 고치고 바꿀 수가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불가능합니다. 나는 그것을 아주 확실히 믿습니다. 그건 안 됩니다. 그리고 지금도 변화되지 않는 영혼들을 보면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말씀을 듣는데도 전혀 변화 받지 못 하는 영혼들,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은 사람의 영혼을 바꾸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니까 교회에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그 자체가 이미 커다란 재앙입니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에게 한때 유명한 욕이 있었는데 "야, 이놈아. 성령 받지 말고 목회짓이나 실컷 해먹어라." 이것이 최고의 욕이라는 것입니다. 성령 없이 우리가 영혼을 위해서 사역하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를 예수 안 믿는 사람들도 깊이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가장 커다란 축복은 성령입니다. 성령이 계시면 영혼들이 바뀌는 것입니다. 인색하던 사람들이 주님을 위해 죽는 사람들로 바뀌고 세상 것을 너무 사랑하던 사람들이 그 세상 사랑을 버리고 주님 사랑하는 마음에 깊이 감화된 사람으로 바뀌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런 성령을 교회에나 개인에나 부어주시는데 어떤 사람들에게 부어주시느냐? 여러 가지 조건이 있겠습니다. 먼저 정결해야 합니다. 제가 언젠가 기도원에 갔는데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성령이 진짜 막 오실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울며 불며 매달렸습니다. 하나님께 이 기도원에서 나 한번만 안아 달라고 했는데 안 안아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그때 깊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믿어도 안 되는 것이 있고 열렬히 기도해도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깊이 깨달은 것이 '내가 얼마나 불결하면 이렇게 매달리며 애처롭게 한번만 안아달라고 하나님께 애원하는데 하나님은 야속하게 그냥 가시는구나.' 처음에는 굉장히 섭섭한 생각이 들었는데 나중에는 인정이 되었습니다. '아, 그렇다. 하나님이 워낙 정결하고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열렬하게 부르짖고 아무리 믿어도 우리가 정결하여 지지 않고는 하나님이 우리를 안아주시지 않는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깊은 부어주심을 체험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런 부어주심을 경험하기 전에 자기를 정결케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마음을 하나님께로 모으고 기도와 말씀 속에서 세상적인 것들에 대한 관심이 빠져나가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간절히 목마른 사람으로 하나님이 바꾸어 놓으시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들이 있지만 오늘 여기서 말하는 원리는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부어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마음과 우리의 영혼이 불결해진다고 합니다. 더러워집니다. 그래서 이번 수련회에서도 예화를 한 번 들었습니다. 다 생수 한잔씩 부어준다고 그릇을 가지고 오라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깨끗한 컵을 들고 왔는데 한 사람은 금방 일어나서 눈곱이 붙어 잘 안 보여서 아무거나 그릇 하나를 들고 갔는데 똥바가지를 들고 간 것입니다. 거기에 생수를 부어주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똥물이나 먹으라고 하면서 부어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겠느냐는 것입니다. 개밥그릇이 아무리 예뻐도 거기에 밥 말아 먹는 사람 봤습니까? 우선 정결케 하고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기간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순종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를 불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불순종은 죄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죄의 궁극적인 원인은 자기의 정욕입니다. 그러니까 불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순종하는 삶은 우리를 계속 깨끗하게 만들어줍니다. 회개와 순종을 통해서 우리들이 정결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계명에는 관계가 없고 순종하고 자신의 영혼을 깨끗케 하는 것에는 관계가 없고 오직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이 누리면서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인가 만을 생각하면서 성령 부어주시는 것조차도 그런 일들을 성취하기 위한 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귀한테 발목 잡히기 십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어디서 이상한 체험을 하고 와서는 마귀를 만났는지 하나님을 만났는지 구분도 못 하고, 물그릇인지 똥바가지인지 분간을 못 하고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이 주님의 주권이지만 그러나 한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불순종을 버려야 되겠죠? 정결해져야 되겠죠?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