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 웨스턴 침례신학교 특강 2
계속하겠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들이 다시 한 번 올바르게 신학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성경이 우리의 신학활동에 중심이 되게끔 해야 된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매우 자유주의화 된 신학을 제외하면 사실 성경이 우리의 신학에 있어서 중심이어야 한다는 신앙고백은 복음주의권 내의 모든 신학 속에서 사실은 부인될 수는 거의 없습니다.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실제로 그것이 우리들이 인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아주 구체화되어서 우리의 신학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일들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문제에요.
그래서 이제 이 시점에서 우리들이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레치오 디비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레치오 디비나 라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아까 설명 드린 바와 같이 ‘읽다’ ‘읽는다.’는 말을 의미하는 레치오와 ‘거룩한’ 의 의미인 디비나로 이루어졌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원래 이 레치오 디비나의 전통은 성경을 읽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경전을 읽는 것으로써의 레치오 디비나는 그 기원이 어디부터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제사를 중심으로 하던 이스라엘의 종교는 훨씬 더 많이 경전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로 바뀌게 되고 디아스포라에 의해서 회당을 중심으로 모이는 모임은 이러한 경전적 성격, 서책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소위 얘기하는 유대인들의 교육방식들이 이루어지게 되고 이 경전의 해석을 둘러싸고 구약, 여호와의 종교의 전통으로부터의 이탈을 가져오는 유대교의 발생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때에 이미 벌써 경전을 읽고 그것을 자기의 종교생활의 중심으로 삼는 일들이 있었고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구약 속에서 이미 이렇게 레치오 디비나의 전통이 있었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기 때문에 영악하게 레치오 디비나가 어디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우리들이 쉽지 않은 것이라고 봅니다.
다만 속사도 교부 때부터 기록에 보면 이미 사도들이 보낸 편지나 속사도의 교부들이 사도적인 그런 기록들을 가지고 읽으면서 자기의 종교생활에 있어서 중심적인 원천으로 삼았다는 기록들이 역사적인 기록에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은 이제 이레니우스와 페르트니아누스 같은 교부들을 거치면서 경전으로서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칼토버회의를 통해서 27권 신약성경이 확정되고 난 다음에는 경전의 중요성이 교회에서 훨씬 더 많이 강조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사람이 회심을 하게 된 중요한 전기도 사실은 바울 서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탐독한 결과였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역사를 통해서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의 회심은 빅토리아누스라는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진 희랍의 철학서인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책들의 번역들이 이제 아우구스티누스이 손에 들어가게 된 것과 그리고 본티치아누스 라는 사람이 이제 와서 특별히 안토니우스의 생애에 관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속에서 안토니우스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가슴에 깊이 감동을 받으면서 회심의 준비가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때 호티치아누스와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자신도 ‘신약성경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울의 서간경전입니다.’ 라는 고백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한국의 보수적인 신학학자로 널리 알려졌고 지금은 돌아가신 박윤선 목사님이 자신의 어느 글속에서 놀랍게도 아우구스티누스의 이 성경에 대한 관점은 오늘날 우리들이 갖는 성경에 대한 관점과 거의 같았다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성경관을 극히 칭찬한 장면들을 우리들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아우구스티누스의 성경관에 대해서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어쨌든 매우 엄격하고 아주 탁월한 성경관을 가지고 있었고 신학활동에 있어서 성경의 계시에 의존해야할 신학의 필요성을 많이 강조했기 때문에 이런 교부들에 의해서 성경을 계속 읽는 이런 전통들이 계속 발전해 나갔던 것입니다.
당시에 소위 이야기하는 레치오 디비나라는 것은 학자들에 따라서 단계가 각각 다르게 제시되었는데 가장 일반적인 단계는 4단계로 이루어진 성독의 방식이었어요. 그래서 첫 번째 단계가 ‘레치오’ 이고 두 번째 단계는 ‘메디타치오’ 즉 명상을 하는 것이고 세 번째 단계가 ‘오라치오’ 기도하는 것이고 마지막 네 번째 단계가 ‘콘템프라치오’ 말하자면 관상을 하는 단계였습니다. 그래서 ‘레치오’는 좁은 의미에서는 이 ‘레치오’가 성경을 읽는 것이었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성경을 해석하고 성경을 설교한 그런 위대한 작가들의 저작을 읽는 것 자체가 ‘레치오’라는 분류 속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것이 17세기에 화란으로 들어가서는 네 가지 단계가 아니라 8가지 단계로까지 아주 발전하면서 신학 작업 전체가 사실 이 ‘레치오 디비나’의 방식에 의해서 이루어졌던 것을 우리들이 역사 속에서 읽을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아까 말씀드린 후치우스 혹은 보에티우스라는 인물들에게서 우리들이 8가지 단계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그들의 신학활동이 아주 정숙하고 경건한 가운데 하나님의 면전에서 기도하는 것 같은 자세로써 그 신학 탐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죠. 다시 한 번 반복할게요. 이런 사실들은 무엇을 보여주느냐 하면 그들이 신학활동을 하고 연구를 하는 것 자체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기도를 하고 경배를 하는 행위로써 일관되게 그것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사실은 그 신학적인 모든 고민이 처음에 말씀드린 ‘The way of 리기’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로 최종적으로 귀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그들의 통합적인 사고방식에서는 태어링의 문제와 Praxis의 문제가 나눠질 수 없는 구조를 가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관한 어떤 지식이 있고 그 지식이 나의 사유에 기초가 되고 그 사유 속에서 나 자신에게 적용을 하고 그것이 삶으로 이끌어져 나오기 때문에 아주 사변적인 지식부터 시작해서 매우 실천적인 지식까지 전체적으로 통전적인 하나의 연계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 방식의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겐 오늘날처럼 이것들을 이렇게 토막을 내는 이런 방식의 신학연구는 이해할 수 없는 신학연구라고 보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이 옛날의 자료들을 읽으셔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뭐 며칠만 읽어봐도 우리들이 지금 접근하는 이 신학의 방식하고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는 것이라고 여러분들이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데 마지막 단계에 나오는 이 콘템프라치오가 문제가 되는 것이죠. 왜냐하면 이제 이 성독의 전통에 있어서 레치오는 성경의 본문을 읽는 것이고 그 다음에 메디타치오는 연구를 포함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오라치오는 거기에서 깨달은 내용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것인데 마지막에 나오는 콘템프라치오는 그 깨달은 바를 가지고 깊이 관상을 하면서 자기 자신이 소위 이야기하는 범아일여의 사상처럼 나와 하나님 사이에 온전한 합의를 이루는 신비적 경험으로 나아가는 것이에요. 이런 것이 성독의 전통이었고 이런 것이 후대에 와서 마지막 네 번째 부분이 아주 강조되면서 신비주의적인 방식으로 관상이 이루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죠.
이런 전통들이 이제 초대교회, 그 다음에 중세교회, 계속해서 발전하다가 이것이 중세의 전성기에 와서 갑자기 이것들이 와해되기 시작합니다. 성독의 전통이 와해되게 되는 중요한 계기는 무엇이냐 하면 각각 다른 상반된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성독의 전통이 와해되기 시작합니다. 하나는 뭐냐 하면 주지주의적인 신학의 경향 때문이고 하나는 주정주의적인 신학의 경향 때문에 이 두 가지가 양쪽의 공격을 받으면서 이 성독의 전통이 와해되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이 주지주의 전통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신학활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지성을 우위에 두는 신학활동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주지주의적인 활동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면 주지주의적인 것의 대표적인 것이 여러분들이 중세에 있었던 스콜라주의에서 이것들을 찾을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중세의 스콜라주의는 사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토대로 해서 하나님과 세계와 교회 그리고 인간 그리고 이 모든 것들에 대한 통합적인 설명들을 가하는 것이 그것이 사실은 스콜라주의의 목표였고, 스콜라주의라고 할 때 그 스콜라라는 말이 원래 희랍어 ‘스콜레’에서 왔어요. 거기에서 오늘날 근대영어의 스프링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스콜레라는 단어의 원뜻이 한가하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할 일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짓이 공부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런 유럽을 기준으로 보면 대학들이 세워지는 것이 대부분 11세기나 12세기를 중심으로 대학이 세워지게 되요. 그런데 그런 12세기에 대학이 세워지게 되는 것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시기에 캠브리지, 옥스퍼드를 비롯한 걸출한 대학들이 다 그 시기에 세워지게 되었을까? 하는 정신사를 여러분들이 이해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무슨 학문을 하든지 꼭 여러분들의 공부에 대한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데 나도 사실은 그런 데에 있어서 항상 지식의 결핍을 느끼지만 틈틈이 책을 읽어서 특별히 유럽의 정신사를 쭉 고대부터 여러분들이 패러다임을 그리고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책을 더 읽어서 그것들이 문화, 정치, 경제, 그리고 예술 이런 것까지 어떻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밑그림을 놓고 그 판위에 여러분들이 학문의 지식들을 던져야지만 정확하게 그것이 다른 학문의 분야와 세계역사에서 어떤 관련을 이루는지 알 수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어쨌든 그렇게 이루어진 중요한 계기가 뭐냐 하면 학문이 체계화되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기독교역사에서 보면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로마가 기독교화 되고나서 얼마 안 되어서 사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책들을 전부 불태우는 그런 작업들을 하게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아리스토텔레스를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알겠지만 사실 플라톤하고는 이런 접근하는 사고의 체계 자체가 현저히 다릅니다. 그래서 그것이 현저히 다르다고 볼 것이냐? 아니면 그 두 개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문제는 아직까지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문제지요. 그렇지만 근본적인 사유 자체가 플라톤은 일자로부터 시작해서 연역해서 밑으로 내려오는 사고의 방식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별자로부터 시작해서 보편자를 유추해가는 귀납적인 방식의 사고에요. 그래서 대조를 이루는 것이죠. 그래서 그 당시의 사람들은 기독교 천지가 되고 난 다음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사유의 방식과 철학의 체계는 반기독교 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고 싹 스며버립니다. 그래서 결국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이 기독교세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이 오스만 터키들이 정복한 나라에서는 보존되게 됩니다. 그리고 이슬람의 신학자들이 그 정복한 나라들의 문화적인 유산이 무엇인가를 조사하는 가운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약 53권의 책을 쓰는데 사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그 53권의 책이 오늘날 근대 서구학문에 엄격하게 말하면 동양학이 따로 있다고는 하지만 보편적인 학교 교육의 모든 체계들이 서구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었기 때문에 인류의 학문이라는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들을 전부 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이 제공을 하게 된 것이에요.
이슬람 신학자들이 자기들의 이슬람 신학을 가지고 이것을 보니까 말하자면 기가 막히게 학문의 체계를 이룰 수 있는 거의 모든 틀을 완벽하게 제공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의 체계를 가지고 이슬람에 있는 이슬람 신학을 재계로 해서 그 틀을 도구로 삼아서 신과 세계와 인간의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정리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때에 태어나서 활동했던 걸출한 신학자들이 대단히 많이 있었는데 그 이슬람 안에서 소위 이야기하는 알카라이파와 알가자니파로 나눠지면서 이슬람에 있어서도 신앙의 우위성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이성의 우위성을 주장하는 사람들로 나눠지게 되요. 이때 여러분들이 역사 속에서 알 수 있는 아비첸나 혹은 아베로에스 같은 이런 걸출한 이슬람의 신학자들이 등장하면서 엄청난 사유의 체계를 이루어요. 특별히 아비첸나라는 사람은 시성단일성이라는 철학의 체계를 주장해서 그래서 이 모든 세계 전체가 하나의 힘으로써 이루어져있고 이 세계 전체가 하나의 단일한 지성을 이루고 있다는 지성적 범신론주의를 제창해요. 나중에 이것이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 사상을 발견하고 평소에 과묵하던 사람이 엄청나게 분노하면서 논쟁을 하고 글을 쓰는 계기가 되는 것이에요.
그런데 어쨌든 이러한 사상의 체계들이 나중에 이제 그렇게 이슬람이 있는 자리를 기독교가 점령하면서 십자군 운동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요. 그들과 접촉하면서 그 자료들을 찾아내는데 그것을 발견하고 보니까 여태까지 잃어버렸던 책인데 그 속에서 그동안 궁금했던 많은 것들에 대한 해명, 그리고 기독교 신학에서 이야기하는 많은 내용들을 그 틀 속에 집어넣고 해석을 했을 때에 많은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체계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아주 훌륭한 Tool 들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에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한권이라도 읽어보신 분 손들어 보세요. 아! 무엇을 읽으셨어요? Metaphysica? 좋은 책이에요. 학교에서 공부하셨나보죠? 지난학기에 우리 교회에 목회자들과 학생들을 모아놓고 Metaphysica를 한 학기 강의했는데 필독서입니다. 아주 심하게 이야기하면 그것을 안 하고 학문을 할 수 없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에요. 그 Metaphysica만이 아니라 카테고리와 그 다음에 분석론, 이런 것들이 전부 기본적인 토대들을 제공해주어요. 그래서 궁금하면 오늘 당장 가서 Metaphysica를 꺼내서 한번 오늘 저녁에 두 시간이면 읽을 수 있어요. 그러면 아마 내 이야기를 이해하기 쉬울 것이에요. 그러나 은혜가 된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은혜가 없습니다. 철학자들의 책이니까 그 Metaphysica를 읽고 나니까 아, 이게 너무 명료해지는 것이에요. 사물을 구분하는 그런 분류 같은 것들이 정확하게 제시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사람들이 그것을 다시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그 받아들이는 것들을 가지고 기독교 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게 되어서 쌓아올린 금자탑이 스콜라주의에요. 그래서 스콜라주의는 은혜는 본성을 완성한다. 자연은 은총을 완성한다. 그 다음에 이러한 하나님의 진리가 있다면 그것이 이성으로부터 출발해서 진리를 인식하려고 하든지 성경 계시로부터 출발해서 인식하려고 하든지 이 두 가지는 동일한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하는 소위 이것을 가리켜서 역사 속에서 이중진리이론이라고 그래요.
이중진리이론은 신학자들이 거부했어요. 그런데 이중진리를 믿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철학이나 학문을 통해서 도달하고 찾아내는 진리의 체계가 따로 있고 성경의 계시를 통해서 찾아내는 진리의 이론이 따로 있다고 믿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의 입장에서는 사실 이런 식으로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이죠. 이 두 개는 이렇게 포물선을 그리면서 만난다고 봐야하는 것이죠. 그런데 실제로 이런 포물선을 그리면서 만날 가능성은 없는 것이죠. 왜냐하면 인간의 이성 자체가 타락한 후에 현저히 부패했고 죄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성의 착시효과로 말미암아서 사물들이 전달해주는 그 진리의 요소들을 올바로 붙잡을 수 없거니와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의 사유의 대상이 되고 관찰의 대상이 되는 자연 사물 자체가 죄로 말미암아 저주받은 이 세상에서 말하자면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기 때문에 본래의 그 사물이 드러내야할 찬란하고 아름다운 빛깔을 온전히 전달해주지 못하는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두 모두의 결함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맞는데 실제 지금 타락한 상황에서는 이게 이렇게 포물선을 그려서 성경 계시로 다가오는 그 진리의 인식과 맞닿을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것이죠. 그런데 중세의 철학자들은 그런 것들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상대적으로 낙관적인 인간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그들이 인간의 지성에 대한 신뢰는 상당한 것이었어요. 그런 전통들이 후에도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결국은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루어놓은 책들이 말하자면 그런 전제 속에서 이루어지고 끊임없이 신앙과 이성사이의 조화를 찾기는 했지만 그러나 결국은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스콜라주의의 금자탑들은 근본적인 결함을 갖게 되었던 것이에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성경이 주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인 학문과 철학의 체계가 훨씬 더 중요한 신학의 질료가 되는 것이죠. 그런 주지주의적인 경향 때문에 성경은 새더사이 뒤쳐지게 되는 것이에요.
이런 이유로 레치오 디비나의 전통이 무너지게 되고 후에 가서는 어떤 이유 때문에 이 성독의 전통이 무너지느냐하면 후에 가서는 이제 어떤 상황들이 벌어지느냐하면 여러분들이 12세기까지 스콜라주의가 번성하다가 13세기가 되면서 이것들이 훼손되고 급속히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이유는 무엇 때문이냐 하면 아까 잠깐 말씀드렸듯이 기존의 세계관들이 아주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철학사에 있어서 통합의 과정과 해체의 과정이 반복되어 왔는데 스콜라주의가 통합의 정점이었다면 이후에 일어난 중세후기는 해체주의를 가져오게 된 것이죠. 그 해체주의가 유래하게 된 배경들이 뭐냐 하면 여러 가지가 많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교회의 심각한 타락이었어요. 교회가 심각하게 타락하면서 사람들은 우리들이 믿는 이 신앙의 진수로 충분한가? 라는 고민을 하게 된 것이에요. 그러면서 여러분들이 잘 아는 13세기에 ‘Reformation of Catholic’ 이라는 가톨릭 안에서의 종교개혁 운동들이 일어나게 되요. 이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역사 속에서 배운 수도원운동들이에요. 도미니크파, 그 다음에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주의 운동, 그 다음에 여러분들이 잘 아는 아시시에스, 프란시스, 탁발수도원, 수도사들, 가난한자들 등등의 수많은 수도원운동들이 일어나게 되요. 그런데 너무나 놀라운 것이 이런 수도원운동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게 될 때에 이들이 관심을 가졌던 성경이 놀랍게도 모두 일치했어요.
그게 뭐냐 하면 복음서였어요. 이 복음서를 주목하게 되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세 가지 정도의 중요한 의미를 우리에게 던져주어요. 첫째는 뭐냐 하면 그들이 이제 기독교 신앙의 중심적인 사유의 대상을 예수로 삼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예전에는 하나의 예수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신학적인 구도 속에 와 있었는데 그런데 이것을 이 사람들은 이런 식의 교리보다는 삶이라는 실천적인 변혁운동을 지향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를 그들의 중심적인 종교적 사유의 대상으로 떠올리게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그들이 근본적으로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예수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자 이것은 하나의 13세기에 가톨릭 안에서 일어난 개혁운동의 긍정적인 면을 도출하지만,
두 번째는 무엇을 보여주느냐 하면 이것은 어떤 면을 보여주느냐 하면 이제 이러한 가톨릭 안에서 일어난 13세기에 전개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수많은 개혁운동들이 어떤 것들은 교황청에 복종한다는 선언을 하고 교황청에서 인정해주는 것도 있었고 이단으로 정죄 받는 것도 다양하게 있었지만 그러나 이러한 개혁운동들이 지향하는 바는 이제 이 전체적인 하나의 커다란 사상으로써의 기독교 신학과는 상당부분 거리를 두고 그리고 오히려 실천적으로 가자는 내용들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렇지만 이것은 획일적으로 13세기에 일어난 이러한 수도원주의 운동들과 그 로마가톨릭 안에서의 개혁운동들이 모두 반지성적이었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이제 기독교 신학의 중세의 유산들이 보존되어온 두 개의 중요한 루트가 있어요. 그것이 하나는 뭐냐 하면 학교였고 하나는 수도원이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수도원 초창기에는 수도원에서 그 전통이 학교보다도 더 강력하게 보존이 되고 아주 발달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한편으로는 아주 사변적이고 철저한 신학 작업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한편으로서는 철저한 개혁운동으로써의 삶을 강조한 것이에요. 이런 아주 이해하기 힘든 그런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게 되는 것이에요. 그 대표적인 예가 끌레르보 베르나르도 같은 사람들이에요. 그 끌레르보 베르나르도 그 사람이 우리들에게는 신비주의자들의 한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어마어마한 사변가입니다. 그 전집이 엄청나요. 어마어마한 사상가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영향이 부분적으로 칼빈이나 종교개혁자들에게 굉장히 폭넓게 영향을 주어요. 특별히 칼빈의 ‘유니온 꿈 프리스토’ 라는 그리스도와 연합의 교리는 그 베르나르도에게서 왔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정설이에요. 그렇게 하면서 이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세 번째 던져주는 의미는 무엇이냐 하면 이제 이렇게 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성경 자체를 정숙하게 읽으면서 거기로부터 영향을 받는 이런 것들로부터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결국은 이러한 또 하나의 신비주의적인 형태로 말미암아서 레치오디비나의 전통이 중대한 위협을 받게 되고 레치오, 메디타치오, 오라치오, 콘템프라치오 중에서 콘템프라치오가 강조되고 그래서 신비적인 기도 속에서 내적인 광명을 받고 나와 혼연일체가 되는 신비적인 연합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레치오 디비나 자체가 개입할 여지가 없이 되게 된다는 것이에요. 와해된다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거기서 엄청난 신비주의적인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는 것이에요. 그 다음에 나오는 저작들은 어마어마해요. 제가 이번에 화란에 가서 보나벤추라의 오페라옴니아를 보게 되었는데 17세기의 작품이에요. 전권이 여기까지 올라와요. 그 다음에 두스쿠스투스 전집을 보았는데 20세기 초에 나온 것인데 거의 어깨까지 올라올 정도로 방대한 저작들이에요.
그런데 이제 그러면서 이게 어떻게 되느냐하면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13세기에 가톨릭 안에서 일어났던 개혁운동이 사실 성공했다면 역사적으로 종교개혁이 안 일어났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에요. 그게 실패합니다. 실패하고 그 다음에 봇물처럼 밀려들어오는 것이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르네상스였어요. 르네상스가 봇물처럼 밀려들어오는데 르네상스의 근본 자체가 무엇이냐 하면 시간이 없어서 제가 친절히 설명을 못해드리는 것을 용서하세요. 르네상스의 기본은 뭐냐 하면 무엇을 르네상스 한다는 것이냐 하면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디로 돌아간다는 것이냐고 볼 때 이 사람들이 결국은 기본적으로 중세에 계속되었던 폭압적인 이런 교회의 억압과 권위주의에 대해서 항거하면서 이런 인간이 정말 인간답게 사는 비결이 무엇인가? 신 아래서 복종하고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권위에 굴복하는 삶을 살았는데 마지막으로 돌아오는 것은 교회의 엄청난 부의 축적과 수탈 그리고 인권의 짓밟힘, 비인간적인 대우 이런 것이 마지막에 돌아오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이들이 근본적으로 인간이 참 인간답게 되는 비결이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할 때에 가장 아름다운 전봉을 어디에서 발견하느냐하면 그리스의 폴리스 시대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는 것이 성지순례보다 그리스 여행을 먼저 하라고 추천하고 싶어요. 그래서 한 달에 100불씩 적금을 들어서라도 나중에 꼭 가세요. 가서 저도 전반적으로는 못하고 부분적으로 했는데 보면 정신사적으로 엄청난 감동이 밀려와요. 그 이야기를 하면 정말 재미있는데 그런 속에서 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느냐하면 그리스 시대에는 커다란 국가를 이룬 것이 아니라 폴리스를 이루고 살았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잘 아는 플라톤의 폴리테리아라는 이상 국가 혹은 정체국가론이라고도 번연된 폴리테리아에서 상정하는 국가가 사실은 국가가 아니라 씨족마을 같은 도시에요. 그래서 일만 명 정도의 인구가 살고 천 명 정도가 군인으로 봉직하는 그런 형태의 나라에요. 거기에서는 사람들이 각자 아주 모든 사람이 친숙하게 가족처럼 아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리스 시대를 가보면 그 사람들은 노예도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이 있어서 함부로 노예를 다룰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플라톤의 저작을 보면 아버지가 노예를 살해했기 때문에 살해한 아버지를 고발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 과연 선한 것인가를 가지고 논쟁하는 장면도 나오는 것이죠. 그래서 어느 기록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 노예는 되게 게으르다. 밭을 갈라고 아침부터 그렇게 잔소리를 했건만 말을 안 듣고 꾀를 부린다. 할 수 없이 내가 밭을 갈러 간다.’ 그러니까 노예라고 하더라도 로마 시대의 노예처럼 그렇게 폭압적이고 폭력적으로 다룬 그런 노예가 아니에요. 그리고 로마 시대에도 노예에게 상당한 자유를 주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되어가고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그런 노예들조차도 그런 자율권을 주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루 종일 밭에 나가서 일을 하거나 그 다음에는 노예는 뭐든지 다하고 어디로 모이느냐하면 원형극장으로 모이는 것이에요. 거기 원형극장은 늦게까지 햇볕이 들어오게끔 항상 서쪽을 배경으로 해요. 그리고 거기에 앉아서 18,000명씩 들어가는 극장인데도 저쪽에서 박수를 치면 그 18,000석에 동시에 마치 우리의 방송시설에서 타임딜레이를 장착한 것처럼 똑같은 거리로 똑같은 속도의 음성이 똑같이 전달되는 것이에요. 하워링이 안되고 똑같이 전달되는 것이에요. 기가 막힌 최상의 어쿼어스틱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것이에요. 거기에서 소위 이야기하는 소포클레스를 비롯한 비극들이 공연되는 것이에요. 그러면 이제 오후 4시쯤 모여서 하루 일과를 풀면서 거기에서 그 비극을 보면서 펑펑 울면서 감동을 받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연극이 끝나면 어둑어둑해진 길목을 걸어서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에요. 그러한 인간으로서의 인간됨을 온전히 실현하면서 살도록 사회가 그것을 보장해주고 각 사람이 존중히 여김을 받는 이런 시대를 굉장히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들의 삶과 사고에 대해서 궁금해지기 시작하니까 그 당시의 문헌을 읽자는 운동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르네상스운동, 인본주의운동이 고전어에 엄청난 붐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호모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와 그 다음에 소포클레스를 비롯한 3대 비극작가들의 글들을 희랍어 문헌으로 읽는 그것들이 아주 지성인들의 중요한 덕목이 되는 시대가 온 것이죠. 그런 것들을 광범위하게 Search 하기 시작한 것이죠. 이런 것들이 하나의 이상이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르네상스는 중세에 신의 은총 아래에서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그 기본적인 질서 자체를 교회의 부패로 말미암아서 거부하고 그리고 인간의 참된 행복은 모든 인간으로부터의 억압과 심지어는 힘으로부터의 억압으로부터도 인간은 해방되지 아니하고는 참다운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이제 인문주의에서 르네상스로 이어지면서 이것들이 역사의 발전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알다시피 인본주의가 기독교 속에 들어가면서 어마어마한 기존의 질서에 대한 저항을 불러일으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기독교 인문주의의 산물이고 그것이 바로 Reformation 즉 종교개혁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에요. 이렇게 하면서 종교개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데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부터 다시 이 레치오 디비나의 전통이 화려하게 부활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 종교개혁자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가톨릭에 있었던 사람들이거든요. 가톨릭에 있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가톨릭이 옳지 않다는 이런 반제에 대한 공감을 이루고 있었어요. 그러면 가톨릭이 옳지 않다는 것에 대한 반제가 무엇이었느냐 하면 도대체 우리가 교회로부터 속박을 받고 그릇된 교리를 강요받는 이것이 정당성과 근거를 어디에 갖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어요. 그랬더니 거기에서 발견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성서 이외에서 우리에게 말하는 어떤 억압적인 기제들을 만들어서 그것들을 인간들에게 강요하는데서 오는 하나의 교권적인 폭력이었다고 보는 것이죠.
그래서 그들은 이제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이냐?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구속할 수 있고 우리의 신앙과 삶에 있어서 유일무이한 원칙이 될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주장하면서 성경론에 이의를 제기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사실은 그때까지는 이 성경론에 대해서 가톨릭에서 선명한 입장이 없었어요. 물론 장리에르에 의해서 구약성경에 대한 것들이 주전 90년에 결정이 되고 그리고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신약성경이 확정되고 있었지만 그 외경과 교회에 의해서 내려오는 전통과 교황청의 훈령 같은 것들을 싸잡아서 전부 다 Holy Tradition 이라는 미명하에 권위를 가지고 교회의 질서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것들을 보면서 종교개혁자들은 어떤 모순을 느끼느냐하면 성경이라는 해석되어야할 경전이 있는데 이 해석을 하는 원리가 성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경뿐만이 아니라 성경밖에 있는 외경, 그 다음에 교회의 전승, 교황청의 훈령, 이런 것들이 전부 다 함께 엮어져서 성경해석의 원리를 만들어낸 것이죠. 이 원리를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니까 해석하는 도구로써의 해석의 원리와 해석 당하는 성경 사이에 일관성 자체가 깨지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해석의 원리를 집어넣기 위해서 성경으로 하여금 그것을 말하도록 강요하는 메시지시스의 반대말이 되는 아이메시지시스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하면서 수많은 오류에 가득한 가톨릭 교리들이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종교개혁자들은 폭탄을 ‘무엇이 성경이냐?’ 에 쏟아 붓게 된 것이에요. 그래서 아주 획일적으로 66권 성경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확고한 입장을 세운 것이에요. 그리고 그 다음에 이제 66권 성경에 나오는 증언과 해석의 원리들을 토대로 이제 참된 종교의 의무와 잘못 부여된 종교의 의무들, 참된 교회의 제도와 그릇된 교회의 제도들을 모두 가려내기 시작할 때 교황제, 연옥설, 보상설, 보석에 대한 사상, 공로사상, 이런 모든 것들이 다 설자리가 없어지게 된 것이에요. 그러면서 이 종교개혁자들과 그의 후예들은 신학을 기본적으로 성경의 토대 위에서 보아야한다는 개신교의 신학의 원리들을 수용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말이죠. 신학자가 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성경을 거의 외워야하는 것이 신학자들의 자질이었어요. 그것도 오리지널 텍스트인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말이에요. 이것을 여러분들은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이렇게 생각하면 되요. 우리들이 옛날 조선시대 때에 선비가 되려면 사서오경을 기본적으로 떼어야 했잖아요. 거의 외워야했고 공자 같은 사람은 가죽 끝을 세 번이나 갈아 끼우면서 주역을 3,000번을 읽었다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식의 어떤 철저한 경전에 대한 집중들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 안에서 거의 신구약 성경 전체에 대한 Concordance가 머리에서 돌아가고 있어야합니다. 여러분들은 칼빈의 기독교강요라는 책을 알고 있을 것이에요. 그렇죠? 그 책은 사실은 설교집이 아니라 신학 책이에요. 성도들에게 기독교 신앙의 대의를 미리 가르쳐주기 위한 재료였지요. 그런데 그 속에 성경이 3,000절이 인용됩니다. Concordance도 없고 컴퓨터도 없던 시대에 자기의 신학적인 개념을 진술해가면서 거기에 맞는 성경구절을 자유롭게 끌어올 수 있었던 것이에요. 이런 것들은 사실은 칼빈만이 아니라 당시의 모든 신학자들의 공통된 Clarification이었어요. 그렇게 해놓고 그 다음에 기본적으로 이런 성경이 해석되어온 역사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전부 다 해석사를 이해하는 것이죠. 그럼 그 해석사는 성경신학과 역사신학, 교의신학과 실천신학을 전체적으로 포괄하는 방식으로 내려오는 전통들이었단 말이죠.
그것들이 오늘날 한쪽으로 남아있는 것이 개신교에서는 XXX 어드밴스드사에서 40여권의 책으로 축약된 것으로 나와 있지만 이것이 가톨릭의 유니버시티에서는 지금 FC The Father of the Church 라는 시리즈로 나오는데 제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온 것을 다 가지고 있는데 104권까지 나왔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나올지 몰라요.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것은 영역이고 지금 터널티판에서 나오고 있는 교부들의 전집은 희랍교부와 라틴교부 전체를 합해서 제가 작년에 검색을 해보니까 530권정도가 나왔는데 전집의 값이 1억 원이에요. 그 전집이 나왔는데 사실은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까 이야기했듯이 보나벤추라 같은 사람은 중세가 끝나갈 무렵에 그 흘러오는 커다란 물줄기속에 작은 한 인물이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의 옴니아오페라가 여기까지 올라와요. 만약에 그런 옴니아오페라들을 전부 다 집약해소 모은다면 530권으로는 결코 통합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저작이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죠. 그런데 그러한 저작들을 이 사람들이 읽는 것 자체를 거의 자신의 과업이라고 생각하면서 이해했기 때문에 속죄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이야기할 때 이 사람들의 사고가 저 초기 교회로부터 시작해서 누구는 이렇게 말하고 누구는 이렇게 말하고 누구는 이렇게 말하고 하면서 논쟁사까지 다 기억 속에서 줄달음질 쳐올 수 있었던 것이에요. 그런 것이죠.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성경을 철저히 읽는 전통들이 개신교 안에서 있게 되었고 그러면서 이것들이 이제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한다는 엄청난 운동들이 일어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위클리프를 비롯해서 이후에 있었던 마르틴 루터에 의한 독일어번역 그 다음에 존 후스 그리고 위클리프, 에라스무스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성경의 원전에 대한 연구, 그 다음에 그 원전을 자신들의 언어로 읽어내는 작업들이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게 되면서 개신교는 성도들이 신학자들이 성경을 직접 대면하면서 생생하게 주님을 만나는 그 경험들이 엄청난 신학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신앙에 있어서 엄청난 유산이 되었던 것이죠. 이러한 것들이 토대가 되어서 기독교 신학이 말하자면 발전해오고 성경해석이 풍요해지게 되었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아마 모두 다 가슴에 찔림을 가지고 있을 텐데 신학교 오기 전에는 정말 성경이 성경이었는데 신학을 하고나서는 이제 성경은 채플시간에나 잠깐 펴보는 책으로 전환되고 요즘은 그것도 펴볼 필요도 없고 아이폰 가지고 툭 치면 거기에 NIV, 킹제임스 버전이 다 뜨고 심지어는 여기에다 이렇게 띄워놓고 하니까 아예 예배당에 성경 자체를 안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태반이에요. 그런 시대가 되었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신학활동이 올바른 신학활동이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 성경이 우리의 신학활동의 중심이 되어야하고 신학을 하면서 우리들이 마음이 건조해지고 신앙을 잃어버리게 되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무엇 때문이냐 하면 신학적인 책들이 우리의 신앙을 붙들어주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결국은 만약에 신학 책들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고 감동을 주고 영향을 주었는데 그것이 올바른 것이라면 그 책이 성경을 해석한 결과가 우리에게 그것을 가져다준 것이지 인간의 이성적인 학문이 우리를 그렇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러면 결국 우리의 신학의 결과물들이 풍부해지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성경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조지 휫필드는 말하기를 우리가 많은 책의 사람들이 되기에 앞서서 One book ‘A man of a book’의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 한 책이 바로 성경이어야한다고 말했어요. 그러니까 성경을 읽으면서 그 성경 속에서 깊은 깨달음을 받고 거기서 자기가 깨뜨려지고 변화되고 성령이 자신의 마음을 움직여서 나를 변화시키는 은혜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때에 그것이 하나님과의 만나는 그 경험이 신학의 질료가 되는 것이에요. 질료가 무엇인지 이해 되요? 빵을 반죽하려면 그 질료는 밀가루가 되는 것이죠. 그 질료가 충분히 있을 때에 꽃 빵, 달 빵, 별 빵을 만들 수 있는 것이지 기본적으로 밀가루반죽이 없는데 아무리 좋은 빵을 찍는 틀을 가지고 있은들 무엇으로 거기다 부어서 만들겠느냐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오늘 우리의 신학활동이라는 것들 중의 상당히 많은 부분이 이렇게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학문의 틀을 사용해서 빚어내어서 새로운 것들을 사람에게 제시함으로 그 성경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해석하고 나누어주어서 견고한 삶을 살고 하나님 앞에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이 결과물들을 가져오지 못하고 논쟁하는 사람들끼리 싸움을 붙이고 싸움을 붙인 사람들끼리 편을 먹게 하고 이렇게 2차적인 3차적인 지식들을 가공하고 편집하고, 가공하고 편집하고 장난을 쳐서 만들어내는데 거기에 생명이 있느냐는 것이에요. 그런 것들이 난잡하고 복잡할수록 사람들은 그 학문의 가치를 인정하고 아카데미즘을 칭찬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무엇인데요? 그것이 신학의 진정한 목적일 수 있어요? ‘우리의 독창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그것이 무슨 신학의 자랑이 되겠어요. 기본적으로 신학 그 자체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XX록이에요. 소위 이야기하는 소문으로서의 신학이에요. 그래서 신학의 결과물들이 하나님을 향한 참연이 되어야 해요. 그런데 여러분 알다시피 근대주의가 들어서면서 현대의 신학들이 나오면서 신학의 결과물들이 하나님을 향한 XX록이 되기는커녕 하나님을 알고 이해하는데 독소가 되는 역할들을 해온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1년을 스쳐가는 눈빛으로 만이라도 소위 이야기하는 복음비평사를 관찰해보면 라이마루스와 파울루스 이후에 이루어지는 그 모든 복음서 비평의 역사들이 기독교 신학을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했는지 몰라요. 죽어라하고 신학을 해서 마지막에 그 결과물들이 하나님의 거룩성을 파괴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 신앙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이런 파괴적인 영향을 가져온다고 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가공할 성령을 거스르는 죄에 속한 것들이에요. 그런 이러한 역사적인 전철을 밟지 않고 우리들이 정말 신학을 하는 과정 그 자체가 하나님을 향한 경배가 되고 신학의 결과물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성경을 굳게 붙드는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공부를 많이 한다고 많이 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그 시간에 축복해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성경을 읽는 시간을 여러분들의 모든 신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간으로 생각해야합니다. 그리고 조용히 성경을 대면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어떻게 읽는지 가르쳐줄게요. 성경을 차례대로 읽어나가요. 그런데 부지런히 독서를 해서 일 년에 한번 두 번씩 성경을 읽는 이 다독은 그것은 별도의 문제에요. 지금 내가 이야기하는 신학에 유익을 주는 독서는 다독은 다독대로 정독은 정독대로 유익이 있지만 여기에는 레치오 디비나에서는 기본적으로 정독을 가리키는 것이에요. 그래서 천천히 성경을 읽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천천히 읽어요. 그래서 성경을 읽은 다음에 성경을 읽으면서 마음에 감동이 오는 부분이 있으면 거기서 멈추고 다시 읽는 것이죠. 그것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성경을 읽는 것이죠. 그러면 거기에서 처음에 감동을 주었던 어떤 부분들이 두 번째 세 번째 읽으면서 별 감동이 없는 때가 있어요. 그러면 계속 전진하는 것이죠. 그러나 감동을 받는 때가 있으면 거기에서 멈추어서 다시 위로 올라가서 계속 반복해서 읽어요. 그리고 그 속에서 설교하기 위한 욕망에서 본문을 대하지 말고 누구에게 가르쳐주어야겠다는 교육적인 의도에서 성경을 대하지 말고 아무도 없고 하나님 한분 앞에 내가 홀로 서서 이 본문을 대한다는 태도로 이 성경을 읽는 것이죠. 성경을 쭉 읽은 다음에 그 성경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그 다음에 묵상을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이것을 통해서 나에게 알게 하시는 하나님 자신에 관한 진리는 무엇이고 그것은 나와 어떤 연관이 있고 이것은 나로 하여금 어떻게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삶을 살라고 촉구하는지를 그 속에서 찾는 것이에요. 이렇게 하면서 깊이 은혜를 받고 그리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설교를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그래서 저는 항상 이야기하기를 좋은 청중의 태도를 갖지 않은 뛰어난 설교자를 나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결코 뛰어날 설교자일수 없어요. 뛰어난 설교자는 아주 탁월한 청중이 되어야해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온전한 경배의 정신으로 자신의 지성과 의지를 완전히 부복한 가운데 주님이 말씀하시면 무한대의 순종을 하겠다는 의지가 자신 안에 있어야합니다. 다시? 무한대의 순종을 하겠다는, 무제한의 순종을 하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자신 속에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의 지성은 아주 맑아지고 그리고 진리의 빛은 찬란하게 들어오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가 그의 저작 속에서 소위 이야기하는 Perplex된 사람들, 무엇인가 죄든지 무엇이든지 혼돈 속으로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권면을 해주어요. 그 권면의 첫째가 무엇이냐 하면 의지로써 하나님께 복종하라는 것이에요. 결국은 그렇게 복종하고 난 다음에는 은혜가 자기를 복종시켰다고 고백을 해야 되겠지요? 그렇게 의지로 복종을 하면 두 번째 단계에서 감정이 평정된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세 번째 단계에서 지성의 명료함이 이루어진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명료한 지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게 될 때에 그때 의지는 더 잘 복종하게 된다는 순환적인 논리를 펼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면에서 의지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것이 은혜의 작용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합니다. 그렇게 해서 성경을 읽어요. 그 다음에 깊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자신을 결단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거기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포기해야 될 것, 버려야 될 것, 부인해야 될 것, 이렇게 하면서 자기 자신이 깨뜨려지는 과정을 밟는 것이에요. 그리고 마지막에 그 진리를 다 깨달은 다음에 그러면 때로는 격렬하게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할 수도 있고 뉘우칠 수도 있고 기타 등등의 여러 가지 현상들이 나오지 않겠어요? 그리고 난 다음에는 이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빨리 만약에 누군가가 이 성경을 읽으면서 나에게 무엇을 깨달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것을 어떻게 조직해서 가르쳐줄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죠. 그 때에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 오리지널 텍스트를 옆에 펼치고 내가 은혜 받았던 성경본문이 정말 원문에 있는 것인가를 확인해서 없는 것이면 빼고 있는 것이면 더 집어넣어서 다시 묵상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다음에 그것을 이제 생각나는 대로 천천히 논리를 세우면서 기록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17세기의 보에티우스 같은 신학자들은 그런 기록 과정 자체를 레치오 디비나 과정 속에 다 집어넣습니다. 그것을 천천히 기록하는 것이에요. 그런 기록을 하면 그 기록을 다 끝내놓고 다시 한 번 돌아보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죠. 그러면 그것을 어디다 써먹느냐하면 그것을 어디다 써먹어요. 벌써 이미 써먹었는데……. 자기가 그 말씀을 경험했잖아요. 그래놓고 계속 전진해나가는 것이에요.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마음에 새기고 하루 종일 혹은 그 다음날도 그 다음 주에도 계속해서 그 말씀을 상기하면서 그 말씀에서 깨달은 내용에 영향을 받으면서 사는 것 그것이 이상적인 형태겠지요. 또 다른 깨달음들이 오지요. 그런 것들이 계속해서 마음속에 쌓여가면서 신학을 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 사람 자기 자신이 변화되어가는 것이죠. 그리고 성경과 직접 대면하면서 커다란 신학적인 질료들을 얻어오는 것이에요. 그것들을 가지고 신학적인 작업 속에서 구체화해가는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