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섬기는 사람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단6:20)
녹취자: 도현정
저는 언젠가 박희천 목사님께서 교역자 회의 시간에 전한 다니엘서 6장 말씀을 들으면서 참 많은 감동을 받았고 오늘날까지도 참 많은 생각을 합니다. 다니엘이 다리오 왕 때에 일을 잘해서 인정을 받았고 많은 사람들도 그를 존경을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다니엘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곧 정권이 바뀌게 되는데 바사, 다시 말해서 페르시아로 바뀝니다.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다니엘은 건재했습니다. 제국의 사람들은 훌륭한 인재를 알아본 것입니다. 다리오 왕 때까지 봉사를 하긴 했지만 신분이 포로였으니 이민족이었습니다. 그러니 시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해서 뒷조사를 해보았으나 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거할 방법을 궁리하던 중 그의 독특한 습관을 발견한 겁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하루에 3번씩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빌미삼아 그렇게 기도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고, 어리석은 왕은 그 법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 모든 것은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왕은 다니엘을 그렇게 죽이고자 하지 않았지만 이미 도장을 찍은 후였고 나라의 법이 하찮게 무시되도록 왕이 솔선해서 하면 안 되었기에 다니엘을 투옥시켰습니다. 그리고는 사자굴에 던져 넣었는데 오늘 본문 말씀처럼 왕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첫째로, 이 대목에서 우리가 제일 먼저 살펴볼 것은 “슬피 소리 질러”입니다. 다니엘은 비록 모함을 받아서 사자굴 속에 던져졌으나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인정했던 것을 봅니다. 왜입니까? 다니엘이 시도 때도 없이 왕에게 근심과 걱정을 끼친 사람이었다면 왕이 그렇게 근심하고 괴로워하고 심지어 새벽 일찍이 존귀하신 신분으로서 몸소 사자굴까지 달려가 슬피 소리 질렀겠습니까? 피가 섞여서 그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다니엘이 자신의 나라를 위해서 사심 없이 헌신해 주었기 때문에 다니엘을 인정하고 다니엘을 깊이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긴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만 21살 때 직장에 들어가 29살 우체국장으로 퇴임하였고, 신학교 다니다가 88년도에 다시 교수로 섬기면서 41살에 이르기까지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지금도 한 학교에 교수로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 많은 세월동안 깨닫게 되는 것, 맨 아랫사람도 되어보고 윗사람도 되어보면서 느끼게 된 것은 바로 아랫사람과 윗사람 사이의 생각의 차이입니다. 아랫사람들은 직장에서 상사가 절대적인 의미에서 자신들에게 공평하게 잘해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런 상사는 없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일하는 부하직원들은 인간적인 생각을 가지고 회사나 상사가 자신들을 똑같이 취급해줘야 한다고 기계적으로 생각하지만, 회사를 경영하거나 상급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사랑이 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면 일을 못하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고 말입니다. 이 문제는 아마도 리더의 인격이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을 좀 못하니 사람을 무시하고 깔보면서 당장 그만두라고 하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그런 연약한 사람들을 여기에 보내심은 우리를 통해서 고침을 받으라고, 이런 훈련의 과정을 통해 다듬어져 훌륭하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되라고 보내셨다고 생각해야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인격의 문제, 사랑의 깊이의 문제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 때에 끌려가 나라를 섬기는 중심 자리로 들어갑니다. 그의 친구들을 비롯해 워낙 똑똑한 인재들이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나라 일을 유능하게 못했다면, 혹은 저들의 왕국에 끊임없이 손해만 입혔다면 왕이 그렇게 자신의 집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 다니엘은 일로서 왕에게 인정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직위와 영광이 따라온 것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면 모든 백성들을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슬피 울며 소리 질러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자기 가족을 제외하고 몇이나 되겠습니까? 다니엘은 그렇게 인정을 받은 자였습니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바라보실 때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우리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세상에 있는 모든 당신의 자녀들을 똑같이 사랑하시겠습니까? 또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느끼는 하나님 사랑에 대한 경험이 동일하겠습니까? 충성스럽고 하나님을 위해 마음을 바친 사람들은 더욱 주님의 사랑을 받지 않겠습니까? 그런 것을 이 대목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팀장들인 여러분들은 아랫사람들을 다룰 때에 두 마음이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하나는 이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함께 해나가는 데에 도움이 되는가를 생각해서 도움이 안 되면 사람이면 되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서 유능한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마치 아주 쓸모없는 돌멩이로 여김 받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 아래서 일할 때 사실은 보석이라고 하는 것을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리더라는 것입니다. 깎아서 갈아서 커팅을 해 보니 사실은 냇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가 아니라 보석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좋은 리더 밑에는 좋은 일꾼이 계속 나옵니다. 그 리더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도달하지 못했을 좋은 직분과 명예를 얻거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습니다. 그렇게 길러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입니다.
그 사람이 일에 적합한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주는 것 말고 또 다른 하나가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유능하지 않으면 잠시의 고민도 없이 단번에 내좇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은 신사적이지만 외국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까지 멀쩡하게 일을 했는데 저녁에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습니다. 그 다음날 직장에 출근해도 출근 카드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집으로 짐을 부쳐 줄테니 돌아가라는 통보만 받습니다. 그게 끝입니다. 깨끗합니다. 아주 냉정합니다. 우리나라도 점점 닮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교회는 직원들이 단순히 고용 관계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체로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참고 견뎌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모자란 이 사람이 계속 모자란 채로 버려지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면서 그 모자란 사람을 고쳐주고 변화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이 사람의 인생에 나를 개입시키셨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런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바로 여기서 그 부족한 직원은 신앙도 좋아지고 일도 배우고 유능해지면서 주님의 사람으로 자라게 됩니다.
여담이긴 하지만 본문에서 깨달을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이 있는데, 다니엘은 왕으로부터 일로만 인정받은 자가 아니라 그 일 때문에 사실은 사랑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랬으니 법대로 사자굴에 던질 수 밖에 없었으나 왕은 간절히 이 다니엘을 염려했던 것입니다.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진 그날 밤에 왕은 거의 잠을 자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새벽이 되자마자 사자굴로 달려갔던 것입니다. 그런 정도의 깊은 사랑을 다니엘이 받았던 것입니다. 이 다니엘을 통해 일도 배워가고 인간적으로도 사랑을 받고 하는 관계 속에서 승리한 사회생활의 한 모본을 볼 수 있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그렇게 유능하고 사랑받는 직원이 되는 것도 어렵지만 그러한 사람들을 길러내야 하는 리더의 자리도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나를 참 많이도 힘들게 했던 간사가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 팀원이 아닌 팀장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어느 날 지나가다보니 그 직원이 책을 읽고 있는데 ‘리더십’에 대한 책이었습니다. 웃으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팀원이었을 때에는 그런 걸 모르다가 팀장이 되고 보니 팀원이라고는 하나밖에 없는데 그 사람을 데리고 일하려고 하니 너무 힘들긴 한가 보구나. 시키지도 않았는데 리더십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을 보니….”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일하는 사람들은 좀 더 좋은 대우를 받아도 상관없습니다. 진짜 고생합니다. 땅을 파고 돌멩이를 나르는 수고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입니다. 직원들을 거느려보면 알게 됩니다. 이번에 심태준 팀장을 발령내면서도 걱정을 좀 많이 했습니다. 몇 달 하다가 그만둔다고 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요즘은 좀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말 안 듣는 아줌마들 속에서 열린공간 팀장들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생각 외로 심태준 팀장이 착하지 않아서 확 눌러버리면서 일하면 모를까 착해서 마음 고생만 하다가 그만 둔다고 하지 않을까 염려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이런 고통을 겪으면서 성숙해져갑니다.
76년에 우체국에 입사해서 83년에 승진해서 한 작은 우체국의 우체국장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그때에 저는 몰랐습니다. 직원들이 그렇게 험한 줄 말입니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으나 그때에는 교환원들이 있었습니다. 험한 사람들이 택하는 직업이었습니다. 국장이 부임하는데 교환원들이 인사도 안했습니다. 12명의 부하직원들을 거느리면서 고생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나를 해코지하지는 않았으나 차라리 조용히 말단으로 일할 때가 좋았지 라고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퇴근해서 학교를 가는데 당시 우체국 금고에 2억 6천만이 있었습니다. 지금 시세로 따지면 26억원 쯤 되는 돈인데 그 돈을 직원에게 맡기고 가야 하니 주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주님의 은혜로 사고 한번 안 났습니다.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아랫사람을 데리고 일할 때에 아직 인생의 경륜이 짧고 신앙도 짧고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 때에는 자기 말을 잘 듣는 직원들은 너무 사랑스럽고, 일을 잘못하면서 말을 잘 듣지 않는 직원들은 미워하게 되는데 그런 시절을 모두 다 보내야 합니다. 어떻게 이 사람들을 격려해서 자기의 맡겨진 일들을 함께 감당해나가도록 도와주어야 하는지 지혜를 배워가야 합니다. 제일 바보 같은 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인심도 잃고 일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은 인심은 얻었으나 일은 못하는 사람이고, 그보다 나은 자는 인심은 잃었으나 일은 해낸 사람이고, 가장 좋은 것은 인심도 얻고 일도 해낸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리더 자신이 희생적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부하 직원들은 자신의 리더가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한 번 하기 시작하면, 혹은 자기를 이용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을 닫아버립니다. 그리고는 기회가 있으면 상사를 애를 먹일 겁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지혜를 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다니엘의 정체성이 여기에 나옵니다. 하나님을 믿는 왕이 아닌데도 그는 이렇게 다니엘을 부릅니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이것은 다리오 임금이 본 다니엘의 정체성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신분은 하나님의 종이었고, 그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었습니다. 다니엘이 다리오에게 교리 공부를 시킨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그분이 살아계심을 생애 전체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삶의 굽이굽이마다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 것을 경험하면서 다리오 왕이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셋째로, 다리오 왕이 승복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 나옵니다.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사실 이 대목에서는 많은 의구심이 듭니다. 다리오 왕으로서는 이 상황이 얼마나 유감이었을까요? 왕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인데 다니엘이 당연히 자기를 섬기기를 바라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인정하기 싫었지만 다리오 왕은 다니엘이 자신의 왕국에 정말 충성했고 자기를 섬겼으나 그 동기가 하나님 사랑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 고백은 자기는 아무리 많은 금과 은을 안겨주고 높은 지위를 주고 심지어는 죽음으로 다니엘을 위협해도 그 관계를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이다. 그는 일시적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이다. 나는 그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혜택을 누리는 자일 뿐이다.”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겠습니까? 그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신앙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행하는 바입니다.
며칠 전 친한 교수 한 사람과 통화를 했는데 위에서 올바르지 않는 일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하지 말라고 얘기했습니다. 요즘 찍힌 것 같다고 하길래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총장, 사장, 총회장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니까 아닌 것을 부당하게 명령할 때에는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안하면 결국 마지막에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날 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난 일을 보십시오. 문제가 안됐을 때에는 시키는 대로 하면 대통령에게 사랑받고 원하는 지위를 얻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 사람들이 잘 나가면 장관으로 발탁되고 잘 안나가더라도 퇴직 후 몇 억씩 연봉 받는 공공기관장에 임명받아 떵떵 거리면서 살 수 있는 자리이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사필귀정이라고 언젠가는 드러납니다.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옛날에 우리 교회 직원 하나가 제게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목사님, 총회에서 의무금을 내는데 돈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 교인이 2000명이 넘게 모이지만 1300명만 모인다고 보고를 합시다.” 그런 직원에게 제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얘야, 그렇게 하자고 내가 말해도 참모인 너는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라고 했어야지, 어떻게 담임 목사님 보필을 그렇게 하냐? 거짓말하자고 설득을 하냐? 교회 돈을 아끼겠다는 맘은 알겠다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기억이 되기까지 그의 삶이 얼마나 신앙적이고 헌신적이었을지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결정적인 시점에 다니엘은 왕과 독대를 하며 이렇게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왕은 틀렸습니다. 그런 법은 없애버려야 합니다. 저는 죽어도 좋으니 이런 법은 법도 아닙니다. 아주 나쁜 사람들이 이 법을 만들었습니다. 죽는 시점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오니 이 법도 없애고, 그 나쁜 자들도 없애버리십시오.” 그러나 다니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온 몸으로 옳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니엘 6장을 보면 그가 투덜거리는 장면이 하나도 안 나옵니다. 조용히 온 몸으로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다니엘이 국무총리의 자리를 누리면서 모든 것을 누렸겠지만 사실은 하나님 섬기는 재미로 살았지 세상의 영광을 누리는 재미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영화를 버리고 죽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안식처럼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기꺼이 사자굴을 택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 하마디도 떼지 않았는데, 하나님은 이 모든 일을 다 정리하셨습니다. 그분의 섭리 아래서 사악한 사람들을 굶주렸던 사자들의 먹이감으로 던져버리셨고 모든 일을 끝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다니엘은 이렇게 왕에게 존귀하게 여김을 받았던 자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으로 불신자의 마음에 기억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처럼 여러분들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