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장 수련회 저녁예배
“오직 사랑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5)
녹취자 : 허혜숙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따라서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는 것은 우리의 도움 없이 당신 홀로 이루셨지만 구원받은 사람들을 주님의 사람으로 세워가는 이 일을 위해서는 하나님이 혼자 일하시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 그 교회의 지체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목양의 계획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교회를 세워 놓으신 경륜입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워 놓으시고 거기에 양떼를 보내 주셨는데 보내주신 그 양떼를 하나님의 사람답게 잘 키우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목양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기능은 전도도 아니고, 선교도 아니고 바로 교회에 하나님이 주신 목양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그리스도를 우리들이 믿고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잘 하도록 길러주면 굳이 주님 섬기며 살지 말라고 해도 아주 잘 섬기면서 주님의 부르심을 감당합니다. 한 교회의 세상을 향한 섬김은 한 교회의 온전해 짐을 능가할 수도 없고 그 온전해 진만큼만 주님의 교회가 교회답게 운영되어지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교회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서 세워지고 그 교회들이 주님의 양떼들을 잘 돌보는 일은 너무너무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목양만 잘 되면, 거기에서 은혜 받은 사람이 가르쳐주기만 하면 봉사합니다. ‘선교해야 합니다.’ 하면 거기에서 선교사도 나오고 선교헌금을 보낼 헌신자도 나오고 선교지에 가서 봉사하고 섬길 일꾼들도 나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목양이 잘 되어서 그 영혼들이 주님의 사람으로 든든히 서는 그 일은 말하자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님의 교회답게 섬길 수 있는 모든 섬김의 근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교회에 맡겨주신 영혼들을 돌보는 이 목양의 기능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교회가 목양을 잘 한다는 것은 사람들을 어떻게 기른다는 것이냐? 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그것을 오늘 성경은 ‘사랑 안에서’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 한 사람 성도들을 주님을 진실하게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최상의 목양입니다. 다른 모든 것이 있어도 그것이 없으면 그것은 목양이 아니고 사육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크고 작은 목자로 부르셨지 사육사로 부르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목양의 가장 중요한 것은 돌봄을 받는 양떼들이 나날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목양의 가장 중요한 근본입니다. 그런데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가장 어려운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교리나 많은 것들은 공부하면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세 치 혀로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종종 누가 설교를 하거나 가르침을 여러분들에게 줄 때에 그 가르침의 내용들은 너무나 훌륭하고 좋은데 왠지 그 훌륭하고 흠잡을 데 없는 가르침과 가르치는 그 사람 사이에 ‘분리’ 같은 것들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까? 과연 저 사람의 저 말에 어울릴까?
우리 죄와 강퍅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리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 하시네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교리는 혀로 가르칠 수 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이렇게 말하고 가르치는 것은 세 치 혀로 가르칠 수 없고 마음 깊은 곳에서 그 하나님을 향한 인격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랫동안 모시고 있던 박기찬 목사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자격을 ‘주님을 사랑하는 인격’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가장 중요한 자격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사랑하지 않는 자신에 대해서 고뇌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이 가르침은 자신의 인격과 삶의 방식에서 베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누군가가 구역장이, 아니면 교역자가, 팀장이, 순장이 누구든지 자기가 돌보고 있는 자기에게 돌봄을 받는 양떼들에게 ‘하나님을 이렇게 사랑해야 합니다.’ 라고 감명을 줄 수 있는 가르침을 베풀 수 있다면 이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성도들 구석구석 이런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베어 가는 것, 그리고 그 사랑에 베일뿐만 아니라 그 사랑이 날로 더 깊어지는 것, 이것이 바로 목양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이 목양의 풍성함은 사실은 환경의 문제가 아닙니다. ‘목사님, 우리 구역은 너무 어려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떻게요?’ ‘실직하고, 질병에 걸리고, 가난하고...’ 그런데 사실은 정말 목회의 본질은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어서 인생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없었더라면 극복할 수 없는 인생의 시련들을 극복하면서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 이렇게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이 목양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영혼을 돌보는 사람들이 미끄러져서 침륜에 빠지면 이는 자신의 영혼만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돌보는 많은 영혼들을 위험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 목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명은 자기 자신 안에서 시작이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착한 인격’입니다. 그래서 항상 그 사랑 안에서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이 항상 내 마음에 드는 사람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을 모두 극복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돌보고 주님의 마음으로 보살피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우리의 목양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 목양에 있어서 성공은 교회 구석구석 어린아이들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베어가는 것, 그것이 목회에 있어서의 본질입니다.
두 번째는 ‘참 된 것을 하여’라고 했습니다. ‘참된 것을 하여’ 이것은 참된 생활입니다. 그러면 생활이라는 것은 그냥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가 주님을 몰랐을 때에는 생활이라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생활이라는 것이 있지만 그것은 그저 죄 된 생활이고 자기를 주인 삼으면서 이 세상에서 자기의 꿈과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전에 우리가 살던 소위 생활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생활’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사람으로 이 세상에 지으신 그 목적을 따라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그것만이 생활입니다. 그런 목표가 없이 살아가는 것은 그냥 목숨이 붙어있고 그냥 살아가는 것이지 생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생활을 가리켜서 참되다고 하는 것입니다. 참되다고 하는 것은 진리에 부합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목양의 본질 중의 또 하나는 모든 성도들을 깨닫게 하여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지으신 목적을 따라서 살게 하는 것,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지으신 목적을 따라서 살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목회의 본질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명백히 보여주셨으니 그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그것도 어려울까봐 하나님께서는 그 진리대로 살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사람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시고 성경에 기록을 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셔서 하나님이 교회를 이끌어 가시고 목양의 본질을 성취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결론에 나옵니까? 사람들이 주님을 계속 사랑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이 없고 은혜를 받는 것 이외에는 이 사랑이 우리 안에서 계발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으면 용서하고, 사랑하고 그의 결점조차도 긍휼히 여기면서 세워 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목회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목양하는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계속 은혜를 받아서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운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목회의 본질이 성도들에게 진리를 가르쳐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진리가 없으면 목양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다 돌봐서 어디로 데리고 가려는 것이겠습니까?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의 본질은 참된 생활을 하는 것인데 그 참되다는 기준이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에 목양을 하는 사람 자신이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교역자들에게나 어디를 가서 강의를 하는 말 중에 늘 하는 이야기가 예배자인 적이 없었던 설교자, 간절한 기도 자였던 적이 없는 기도 인도자, 잘 목양 받아본 적이 없는 목양자, 이런 것들은 전부 다 거짓입니다. 예배 자가 되는 것만큼 예배인도자가 될 수 있고, 좋은 청취자가 아닌 유능한 설교자를 저는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항상 밑으로부터 위를 향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이 깊이 예배 자가 되어 본 사람이 선교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런 사람들을 자기처럼 행복한 예배자로 삼기 위한 것이 전도입니다. 무슨 뜻이냐면 목양을 할 때에 우리들이 참된 진리가 우리 인생의 참된 관심사가 되고 그 하나님의 진리에 자기가 온전히 부합한 삶을 살 때에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깨닫고 기뻐할 그 때에 비로소 이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불쌍하게 여겨지면서 그것을 전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회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여러분이 한 해를 돌아보았는데 나는 참 연약한 것 같았는데 하나님이 영혼들을 많이 보내주셨을 뿐만 아니라 또 영혼들이 특별히 숫자가 많이 늘어나지 않았어도 이 구역의 식구들이, 순의 지체들이 확실하게 1년 전보다는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하고 이 지체들의 생활을 살펴보니까 1년 전보다 더 진리를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이 진리에 합치시키는 참된 생활을 위해서 고민을 많이 하고 헌신하면 정말 하나님이 올 한해의 목양에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처럼 교회의 규모를 크게 하고 무엇인가 허장성세와 같은 성과와 눈에 보이는 성취를 자랑하는 자기 현실 시대에는 목양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더 강력하게 붙들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절대로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도 사람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진리에 무관심하던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게 된 것도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도우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부어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이 영혼을 돌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언제나 넓어서 자기와 생각이 다르고 심지어는 자신의 마음을 할퀴는 사람들까지도 용납하고 긍휼히 여기고 그들을 감싸 안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나도 목회자 이지만 영혼을 돌보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별종으로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내 마음에도 은혜가 소멸되고 곤고해 지면 만사가 귀찮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얼굴도 보기 싫어집니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되면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구역장들이 말씀을 사랑하고 열렬히 기도하고 그러나 사랑 안에서 다른 구역, 다른 순, 다른 교구가 연합을 이루면서 그리스도의 일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물처럼 흘러 어디서든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일들이 우리의 협력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교회의 참된 이상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말고 다른 교회, 우리와 교파는 달라도 어느 교회에서 하나님이 그들을 사용하셔서 일하시고 영혼들을 보내시고 그들이 변화되어서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의 마음속에서 숨길 수 없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왜? 거기도 그리스도의 교회니까. 나의 교구가 아니어도 어느 교구에서 우리가 조금 도움으로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 우리는 우리가 드러나지 않아도 그것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교의 원리이고 하나님이 교회를 세워 가시는 원리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구분은 편의상 만들어 놓은 것이지만 사랑은 그 속에서 계속 흘러서 주님의 교회가 서로의 섬김을 통해서 온전히 되어간다는 이 사실을 우리들이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상이 없으면 우리는 선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우리가 조금 섬겼는데 캄보디아에서 많은 사람이 우리의 섬김 때문에 예수님 믿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그들이 예수 믿은 것 그 자체, 거기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인정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우리에게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쁨에 우리들이 참여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우리는 크고 작은 이 세상에서의 선교적인 일에 헌신하고 봉사, 내가 조금 더 희생함으로서 누군가가 진리의 유익을 얻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찌그러지고 망가졌던 이 지구상의 어느 한 구석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진리로 펴진다는 소식이 전해오면 우리는 그 자체를 보면서 우리 교회 안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난 것처럼 그렇게 행복해 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들이 목양을 잘 한다면 미래에 그렇게 기뻐하고 그 일을 기꺼이 헌신할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에 우리들이 그렇게 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섬기는 섬김을 보면서 교회가 무엇이고 진정으로 성도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이 세상 땅 끝까지 전파되고 흘러가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입니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철저한 칼빈주의자이신데 어떻게 알미니안 주의를 하는 신학교에 가서 밥도 주고, 책도 주고, 장학금도 주고 그럽니까?’ 그래서 제가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는 알미니안 주의 보다는 칼빈주의가 훨씬 성경적이라고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리의 형제들입니다. 저는 기회를 주지 않아서 그렇지 이교도들에 가서도 그 일을 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하겠습니다. 이교도들이 재난을 만나고 굶주린다는 소식을 들을 때 그들도 우리는 먹이고 입힐 의무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마음 깊은 곳에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17년 동안 열린 교회가 오면서 한 번도 교회가 뒷걸음질 치거나 큰 환란이 일어나서 교회가 찢어지거나 큰 혼란이 일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크고 작은 일들이야 일어났습니다. 그렇지만 교회가 뒤흔들릴 정도의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끊임없이 여러분들을 보내주셔서 여러분들이 사라져 가거나 죽고 나면 더 충성스러운 구역장들이 세워져서 교회를 이끌어 오게 하셨는데 하나님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복을 우리에게 부어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우리들이 보편교회에 대한 이상을 품고 우리들이 시채말로 은혜 안에서 오지랖이 넓을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 나는 세계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정말 이런 세계 구석구석에서 느끼시는 우리 예수님의 흐느끼는 마음, 그리고 예수님이 그런 선교지에 있는 영혼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는 이런 마음을 내가 어떤 방법으로든 여러분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미국에 가서도, 캄보디아에 가서도, 중국에 가서도, 베트남에 가서도, 혹은 영국에 가서도, 우리보다 더 잘 사는 그런 나라에 가서도 무너지고 있는 주님의 교회, 망가지고 있는 주님의 사람들을 보면서, 거기에서 너희는 와서 나를 도와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섬기면 섬길수록 하나님은 사람으로 계산 할 수 없는 아주 놀라운 방법으로 주님이 우리에게 채워주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그리고 그러한 우리들이 섬기는 사역에 깊이 눈을 뜨게 되는 사람들마다 정말 그 일 하나하나에 배어있는 우리예수님의 마음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그렇게 치열하게 선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동네에 있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어린 주일학교 영혼들을 섬기는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이른 아침 주차 봉사를 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각각 모양은 달라 보이는 그 섬김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져서 하나님의 나라의 위대한 비전이라고 하는 이 비단을 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합니다. 정말 세월은 살같이 빠릅니다. 우리가 1년 전에 여기에 와서 예배를 드릴 대 엊그제 같았습니다. 이제 이런 것 열다섯 번만 지나가면 여기에 있는 예쁜 자매들과 집사님들은 권사님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값진 일은
이곳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부르셨네
주의 얼굴 구할 때 역사 하소서
정말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입니다.
저는 설교 리바이벌 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런데 주기도문을 여름 수련회 때 하고 나서 그것을 해 달라고 하는 요청들이 막 빗발쳤습니다. 그래서 하기 싫은데 해 달라고 하니까 ‘하자’ 하고 하는데 내가 요새 제가 정말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 설교준비를 끝냈는데 정말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아, 그렇구나 결국 우리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주기도문의 삶이구나. 바로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구나,’ 그래서 예수 믿은 사람 머리가 하얗게 센 사람을 한 번 만나서 ‘주님을 얼마나 섬기며 살았습니까?’ 물어보아도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장로님, 이번에 운영 장로에서 목양 장로로 가시는 분들에게 권면해 드렸습니다. 7년을 우리 세 분 장로님이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후임 장로님들은 상상도 못할 고생을 하셨습니다. 교회 건축할 때는 장로님들이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울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들어온 장로님들은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고생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야기 했습니다. 앞으로 남은 생애도 변함없이 주님을 위해서 삽시다. 이 세상에 바다의 모래알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살지만 마지막 죽을 때 ‘주님을 섬기다 평안히 가리라’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은 지극히 소수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최고의 보람은 아직 우리가 살아있고 젊음이 있어서 생명의 기운이 남아서 기동할 수 있을 이때에 이러한 주님의 교회를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주님의 사람들을 길러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눈물을 흘리며 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우리 어린세대들을 통해서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되는 구름과 같은 믿음의 허다한 증인들이 나와서 다음 시대에 더 망가질 세대가 될 것이 분명한데 망가진 시대이기 때문에 더 망가진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믿는 이 진리 이 신앙이 찬란하게 더 드러나서 저는 굳게 확신합니다. 우리 열린 교회의 미래가 우리 다음세대들을 통해서 더 아름답게 확장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그래서 하나님이 한 교회를, 한 목회자를 통해 세워 놓으신 그 작은 겨자씨 같은 교회가 그렇게 한 사람씩 한사람씩 주님이 당신의 품에 안으시므로 그들을 목양하고 돌보심으로서 당신의 나라에 희대한 누룩이 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때가 아직 낮으매 나를 보내신 이 일을 행하여야 할지니라’ 몸이 부서지도록 온 마음을 다해서 주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기회를 주시는 동안에 세계 방방곳곳에 동네 구석구석에 모두 펼쳐 주님이 눈물을 흘리는 곳에서 우리도 함께 울어 드리고, 주님이 고난을 받으시는 곳에서 우리도 함께 희생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곳에서 우리도 함께 즐거워하면서 우리의 남은 인생을 주님을 위해서 바치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가 믿는 이 신앙이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 신앙이 되는가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한 해도 하나님이 많은 은혜의 복을 주셨습니다. 많은 회심자들을 주셨고, 은혜에서 미끄러졌던 사람들이 다시 신앙으로 끌어올려지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예수를 믿지 않았던 가장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된 경우도 있고 회심의 징조가 전혀 없던 아이들이 회심하고 부모들과 함께 신앙 생활하는 기쁨도 주셨습니다. 우리 사역에 열매도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이고 아직까지도 어둠속에 흐느끼고 있는 지체들, 사랑이 부족해서 우리들이 계속 돌보지 못했던 지체들,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 이기심과 자만심 때문에 깨어지지 않은 자기 때문에 우리의 목회 사역에 아직도 충만한 복이 없는 것들은 하나님 때문이 아니고 우리 때문입니다. 회개하고 우리의 마음을 갈아엎어서 ‘나는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주님이 나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룰 수 없도록 나는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비로소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을 전하며 치열하게 내년 한 해 동안에 여러분들에게 권면하고 싶은 말씀이 한 가지 있습니다. 내년 한 해는 우리 목양하는 사람들이 철저하게 무릎으로 목양을 하는 한 해가 되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많은 열매로 인해서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당신이 쓰시고 싶은 대로 쓰실 수 있도록 우리가 전적으로 자기를 포기하고 주님께 무제한의 무한대의 무한헌신을 합시다. 우리 모두 간절히 하나님 앞에 온 마음을 다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정말 우리의 목양지를 눈물이 있는 기도로 적셔서 그래서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크고 놀랍고 위대한 일들이 우리의 목양의 현장 속에서 아주 충만하게 나타나서 주님의 사랑의 부흥을 보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여러분들은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내년 한 해는 지금 하던 것처럼 온전히 하되 하나님 앞에 눈물이 있는 무릎으로 하는 목양의 사람들이 되자는 것입니다. 교역자로부터 시작을 해서 구역장에 이르기 까지 우리 모두 더 많은 시간을 무릎을 꿇고 더 많은 시간을 기도하고 양떼들을 위해 비는 그런 사람들이 되자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앞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