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시는 하나님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녹취자: 김정규
(앞부분 잘림) … 모든 생활이 어떨지 한번 짐작해 보십시오. 우리는 전혀 모르는 채 신문을 펼쳤는데 ‘이OO회장 자살시도’란 기사를 보았습니다. 부엌에 가서 칼을 가져다가 웃옷을 다 벗고 그 칼로 온 몸을 낭자하게 찔렀습니다. (결국) 자살에 실패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같이 평균 또는 평균 이하의 사람들은 그저 돈이 없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고민이고, 생활전선에서 고민합니다. 그러나 진짜 돈이 충분히 있는 사람들도 끊임없이 괴로워하고 자살을 선택합니다.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키에르케고르라는 설명에 의하면 ‘절망에 깊이 빠진 것’입니다. 절망이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이 두 가지가 함께 엮어지면서 환경적으로는 시련이 눈보라처럼 닥치고 한편으로는 죽을 것 같은 영혼의 고통스러운 상태가 함께 뒤엉킬 때 우리는 연약한 한 마리의 양으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것 같습니다. 그곳에는 맹수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도적들의 휘파람 소리가 들립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러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수없이 많이 지나갔던 것입니다. 왕이 되어 권력을 한번 쥐어보고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 다윗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냥 양떼들을 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신앙의 사람을 역사의 한 복판에 불러내십니다. 그리고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새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이었습니다. 아버지 이새의 눈에 다윗은 왕의 제격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다윗을 선택하십니다. 왕으로 기름부음 받는 순간부터 그는 즉시 왕이 된 것이 아니라 정말 괴롭고 힘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인생길을 걷게 됩니다. 제일 먼저 사울이 그 소식을 듣고 집요하게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객을 풀어서 다윗을 죽이고자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지은 죄 없이 끊임없이 도망 다녀야 하는 눈물의 망명생활을 계속했습니다. 그래서 시편의 많은 노래들이 이렇게 도망 다니면서 쓴 시였습니다. 그렇게 큰 고난의 시기를 겪으면서 그는 하나님 앞에 하나님만을 의지하지 않으면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고, 사방의 자기의 대적들이 에워싼 그러한 인생의 골짜기를 지나게 됩니다. 그것이 한번으로 끝났습니까? 한번으로 끝났을 리 없습니다. 정치적으로 말하면 그 후 반란이 일어납니다. 반란들 중에 특히 자기의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르겠다는 이 반란은 정말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와 함께 피로 맺어진 형제와 같은 장군들이 그 약속을 배신하고 저쪽에 붙어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겠다고 반역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 반역자들의 전쟁에서 이기느냐 지느냐의 문제를 떠나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고통을 다윗에게 주었을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목회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목회자를 존경하고 성도들을 돌보고 교회의 충성하던 사람들이 변질되어 가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고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변질될 뿐만 아니라 아예 교회의 원수같이 행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크게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도 성격이 불같습니다. 목회에서 고생하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는데, 저는 지금도 제가 목회자로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님이 교회의 커다란 분란이 별로 없도록 그렇게 평온하게 25년 동안 이끌어오게 하셨습니다. 한번 어려운 일이 있었지만 잘 이기게 하셨습니다. 교회를 지어놓고 돈이 없어서 빚 때문에 그냥 가슴아파하고 힘들어하고 그러던 시기, 어떡하면 말씀을 올바로 전할까, 아무리 말씀을 전해도 저 눈물 흘릴 줄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목사님은 자기가 얼마나 힘든 일들을 겪었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무엇이 그렇게 마음에 안 맞았는지 교인들이 목사님께 대든 것입니다. 주일 설교를 하는데 교인 한명이 손을 벌떡 들고 일어서더니 ‘그 설교는 틀렸습니다.’라고 했답니다. 그러니 목회하는 것이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렇게 사명감을 가지고 괴롭혔답니다. 저는 궁금해서 “어떻게 됐습니까? 그 교인은 교회에서 떠났습니까? 어떤 교인은 떠나고 어떤 교인은 남아있는데, 어떻게 됐습니까?” 그러자 목사님은 “모두 불행하게 됐습니다.” 그 중의 한 예를 드는데 얼마나 악하게 하는지 그 사람 때문에 괴로워서 목회를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겨울에 교회에 나오는데 추워서 모자를 쓰고 귀를 막고 코트를 입고 건널목을 건너는데 기차오는 소리가 안 들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고로 단숨에 데려가 버렸답니다. 남이 하는 말은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해서 말할 수 있지만 본인에게는 얼마나 괴로운 시절이겠습니까?
다윗이 바로 그런 고통스런 상황을 지났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누가 목숨을 노리진 않지만, 다윗은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 그 긴 세월을 지냅니다. 사랑하는 딸이 강간을 당하고 강간범은 뱃속에서 나온 아들이고, 차마 입에 담기도 싫은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것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속에서도 이 시인에게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건져주시고 구해주신 그 하나님, 자신의 목자이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자기가 어떻게 그 양떼들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 또 다른 풍요로운 목초지로 데려갔는가를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이 시인은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이겼습니다. 인도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가장 어려운 인생의 시기에서 혼자 있는 것 같은 때에 사실은 그 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것을 하나님이 알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을 보면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라고 합니다. 영국의 청교도 존 오웬 목사님은 “하나님이 이 땅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베푸실 수 있는 최고의 은총이 그와 함께 해주시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최고의 축복이었으면 당신의 아들을 사람의 몸을 입혀 이 세상에 보내셨을 때,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셨을까요? ‘임마누(עמָּנוּ)’는 ‘우리와 함께 한다.’란 의미이며, ‘엘(אל)’은 ‘하나님’입니다. 즉,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사실이었으면 예수님의 이름을 임마누엘로 예언하였겠습니까?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때가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모든 것을 내 맘대로 움직이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도 그 위에 어떤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연결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지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자신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자신의 뜻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말씀 속에서 주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 이루어지이다.’라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합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평화’입니다. 시련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서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상황들이 급변합니다. 그래도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찬송)
주 내안에 늘 계시고
나는 주님 안에 있어
저 포도비유 같으니
참 좋은 나의 친구
(찬송)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나인도 하소서
어차피 우리 인생은 마음대로 안 됩니다. 이렇게 꽃다운 나이 때는 뭐든지 세상이 자신이 맘먹은 대로 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살아보면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겪으면서 ‘아. 세상이 정말 내 맘대로 되지 않는구나.’를 깨닫는 것입니다. 신앙이 없고 그것을 못 깨닫는 사람은 세상에 부딪쳐서 충동해 죽어버리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깨달은 사람은 기가 죽어서 ‘나는 인생패배자’하며 살지도 모릅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인생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가 사망의 골짜기를 들어가고 싶겠습니까?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성경과 교회역사에서 하나님께 보석처럼 쓰인 사람들 가운데 이런 사망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한번 이름을 불러보세요. 하나님은 혹시 지옥에 갈 사람들은 꽃길만 걷게 할지 몰라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 사명을 주어서 이 세상에서 승리하게 할 사람들은 절대로 꽃길만 걷게 하시진 않습니다. 어제 저녁에 제가 전도사 시절 고생한 이야기를 하니까 당회장 목사님이 격하게 공감을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감사합니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정말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그 시절을 주신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모든 게 내 맘대로 됐을 때는 나에게 남겨진 것이 별로 없는데, 그렇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것 같은 격동치는 시점을 지나면서 신앙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찬송)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이 세상에 대한 집착을 다 버리고 주님 한분을 의지하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바로 거기서 ‘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를 절실하게 깨닫는 것입니다. 눈앞에 전개되는 삶의 상황이 내 인생인데도 남의 인생을 보는 것처럼 너무 신기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수 있을까?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인생의 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떠한 어려운 처지에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가장 큰 대답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원수들이 얼마나 많은가는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어차피 그 싸움은 우리만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과 함께 싸우는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할 때, 우리는 깊이 뒤로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시인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고 했는데, 그럼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함께 하셨는지 보여줍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비슷하지만,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위로합니다.’ 혹은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에게 위로가 됩니다.’는 뜻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지팡이와 막대기가 동의어의 반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런 표현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지팡이와 막대기는 전혀 다른 물건입니다. 이 당시 목자들이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는 전통적으로 끝이 둥글게 휘어져 있는 지팡이입니다. 매우 큽니다. 이 지팡이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면서 자신의 안전을 보전하기도 하는 용도로 사용됐지만 막대기는 무기입니다. 끝을 뾰족하게 해서 혹시 맹수가 습격하든지 도적이 출현하면 그와 함께 일전을 벌여 양떼들을 보호하는데 사용하는 무기입니다. 그러니 지팡이는 자신의 양떼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고, 막대기는 침입하는 짐승이나 도적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사용한 것입니다. 특히, 맹수들을 위해서 사용하는 무기였습니다. ‘지팡이’는 끝이 둥그렇게 되고 길이가 깁니다. 양들은 지독한 근시안이여서 길을 자꾸 잃어버리고 대열에서 이탈합니다. 그러면 그 지팡이를 거꾸로 들고 쭉 뻗어 목에다 걸어서 양을 이끌어서 이탈하지 못하도록 돌보는 용도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막대기’는 한번 급소를 찔러 절명을 시키는 용도입니다. 실제로 다윗은 자기의 양들을 지키기 위해 맹수와 싸웠고, 사자의 입에 들어간 양떼로 꺼냈습니다. 그 조상 야곱은 밤새워 그 맹수들로부터 자신의 양떼를 지키기 위해 눈을 붙이지 못했다고 고백을 한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목자는 양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적용해보면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됩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자인 동시에 우리를 헤치려는 모든 악한 것들에 대해서 싸우시는 용사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한편은 주님은 우리를 대적하는 것들을 향해서 싸우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진짜 나에게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것도 방법일 수 있지만, 가만히 내버려 두면 하나님이 손을 보십니다. 그때 우리의 신앙은 더욱 빛나는 것입니다. 사람을 어떤 이유로든지 마음 깊이 미워하고 복수를 꿈꾸게 되면 우리 자신의 내면의 세계가 망가집니다. 그래서 신앙의 은혜에서 미끄러지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원수를 끊임없이 용서하고 하나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모든 것을 용서하고 그 사람을 위해 복을 주시길 빈다면 더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인생이 우리의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그냥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려고 애쓸 뿐인데도 나를 싫어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수없이 생겨남을 알게 됩니다.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사람과 평화를 누려야 할 텐데 그런 사람들이 생깁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고 주님의 손에 맡기십시오. 악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왕성하게 일어나는 것 같지만 햇살이 퍼지고 나면 언제 있었냐는 듯이 사라지는 아침 안개와 같습니다. 의인은 번성하나 악인은 망합니다. 이 시인은 그렇게 고통스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서 한 가지 사실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이렇게 사랑하셔서 이렇게 고통스러운 길을 지나는 동안 아무도 내 곁에 없지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이것을 깊이 경험한 사람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가 ‘주님이 함께 해주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라고 고백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들이 바로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지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착한 목자이지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착하고 유약하기만 한 목자는 아닙니다. 그분은 착한 목자이신 동시에 용사이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양떼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악한 것들을 물리치시고 그들을 꺾어 이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내게 악을 행한 사람에게 그 악을 원수로 갚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를 위하여 대신 싸워주시는 우리 목자 되신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손에 맡기기를 주 친히 말씀하신 바를 따릅니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주님께 맡깁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그 한량없는 은혜를 생각합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형들로부터 우애를 받지 못하고 아내로부터 버림을 받고 자녀들로부터 반역을 당하며 다윗은 이러한 인생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먹이고 입혀 주셨습니다. 그리고 영혼이 곤고하여 죽을 것 같을 때 하나님이 그 죄를 회개하게 하셨고, 그가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찬송)
나의 말을 귀를 기울이사
내 심사를 통촉하시고
부르짖는 소리 들으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내가 주께 기도하니
주께서 내 소리 들으시리
오 주여 아침에 내가 기도하고
주께 바라리다
그 많은 권세를 누리고 영광을 지녔던 사람이 시편마다 눈물을 흘리고 피를 토하는 탄식의 간구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찬송과 기쁨이 그 뒤이어 나옵니다. 인생의 많은 문제는 땅에서 생기지만 놀랍게도 사람들은 그 땅에서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땅에 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 답은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 세상에 코 박고 세상을 사랑하며 세상과 짝하면서 주님과 함께하지 않고 세상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로 일깨우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종종 우리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간증을 들어보십시오. 싸움이 나고 사업이 망하고 교통사고가 나서 죽기 일보직전까지 가고 아이들이 사고를 당하고 하는 엄청난 고난을 통해서 깨달았다고 하는 것들은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는 시련을 겪고 난 후에 겨우 깨달았던 것은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입니다. 목사님이 항상 하는 설교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사랑하신다고. 성경을 펴도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얘기가 수없이 나옵니다. 공짜로 가르쳐주는 것은 가슴에 와 닿지 않습니다. 어마어마한 과외비를 지불하고 나서야 이 지식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립니다. 인생의 가장 훌륭한 보험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하실 때 깨닫고 올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최고의 보험입니다. 과외비도 없습니다. 무료공개강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안 듣고 풍비박산이 난 후에야 손들고 옵니다. 그리고는 간증을 하면서 이렇게 큰 고통을 당하고 나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감동이 아니라 요즘 젊은 사람들 말로 ‘헐’입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렇게 깨닫고 인생을 절약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라니다. 그 주님을 깊이 신뢰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