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따라간 예수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눅 23:27)
녹취자 : 장미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었지만 빌라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재판 하였습니다. 법을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이 재판은 무효였습니다. 왜냐하면 재판은 죄 있는 사람을 불러다가 심문하고 처형하도록 심판을 내리는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죄 없으신 분으로 빌라도의 법정에 서셨습니다. 혹시 잘못해서 죄 없는 사람을 잡아 왔다고 하더라도
(다시 설교하겠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위해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는 장면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은 죄인을 죽도록 하는 사형 집행 방법이었습니다. 희랍어로 ‘스타오로스’라고 하는 이 십자가는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혐오하는 사형 방법이었고 인류가 고안해낸 최악의 사형 집행 방법이었습니다. 이 형벌이 얼마나 잔인한지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 형벌을 집행하지 않았다고 하니 이 십자가의 형벌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사람. 먼저 세로로 세워진 막대기를 땅에 꼽고 가로의 막대기에 양팔을 묶어서 도르래로 올려 끼운 다음 이렇게 양쪽의 손에 못을 박았습니다. 그리고 다리에도 못을 박았습니다. 그 못은 매우 큰 못 이어야했고 그 못은 처음에 손바닥에 박다가 자꾸 손바닥이 찢어지고 시신이 떨어졌기 때문에 이제 나중에는 손목에다가 못을 박았습니다. 당연히 그 못은 손목의 뼈를 으스러뜨리며 나무에 박혔고 다리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 십자가의 형벌은 형벌의 잔인함이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고의 고통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이렇게 못을 박을 때 혈관을 건드리게 되고 그 혈관에서 피가 서서히 쏟아집니다. 그 피가 모두 쏟아질 때 그때 인간의 신체에는 매우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는데 타는 듯한 갈증과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무서운 통증이었다고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십자가의 형벌을 당하기 위해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고 계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형벌이 죄인의 목숨을 끊는 방법이었으니 당연히 재판이 있어야 했습니다. 빌라도가 재판장이 되서 재판이 이루어졌고 이 재판은 처음부터 잘못된 재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재판은 죄 있는 사람을 불러다가 판단을 하는 것인데 예수는 처음부터 잘못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욱이 예수가 잘못했다고 하는 일에 대해 증인이 없었습니다. 또 하나는 혹시 재판이 잘못돼서 죄 없는 사람을 재판장에 세웠다 하더라도 그 죄인을 죄를 정확히 조사하여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단 한명의 죄 없는 사람을 형벌하지 않는 것이 고국의 법의 정신이었기 때문에 이 재판은 처음부터 잘못된 재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이 잘못된 재판을 조용히 담당하시면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계실 때 가르쳤던 가르침 중 가장 중요한 가르침중 하나는 바로 올바르게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재판은 잘못된 재판으로 옳지 못한 재판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아무 말 없이 저항도 하지 않으신 채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셨을까요? 무엇 때문에 예수님은 죄가 없으면서도 마치 큰 죄인 인 것처럼 멸시와 욕을 받으며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셨던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서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비록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으로서 형벌을 당하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죄 없는 자신을 이런 방법으로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써 당신의 피를 통해 온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해 이 일을 행하셨다는 사실을 예수는 친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시기하고 멸시하여 십자가에 못 박고자 음모를 꽤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조용히 온 인류를 구원하고자하는 하나님의 지혜를 아셨기 때문에 조용히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고 계셨던 것입니다.
십자가 사형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당시 두 가지의 규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자기가 매달릴 십자가를 자신이 짊어지고 올라가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그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기 전 죽도록 채찍에 맞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그 당시의 관례를 따라 브라이드리온이라고 하는 왕궁 수비대가 있는 곳으로 끌려가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옷을 벗기시고 온갖 조롱과 멸시를 받으시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침 뱉음을 당하고 욕을 당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거기서 채찍에 맞으셨는데 그 시대의 채찍을 연구한 어떤 사람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 채찍은 오늘날 볼 수 있는 그런 채찍이 아니라 아홉 가닥으로 되고 그 끝에는 낚시 바늘 비슷한 것들이 매달려 있어 죄인의 몸에 후려치면 살점을 물고 후드득 떨어지는 무서운 채찍이었다고 하니 어쩌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런 채찍에 맞으셨을 수도 있으니 그런 채찍에 맞아서 많은 죄수들은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에 이미 절명하는 일도 있었다고 하니 이 채찍이 얼마나 무서운 채찍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관례에 따라 당신이 매달릴 십자가를 스스로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 십자가는 120kg∼약 160kg에 이르는 매우 무거운 나무 십자가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은 그 전날 이미 하루 종일 하나님의 일을 하셨고 최후의 만찬 때는 자신의 제자들과 마지막 저녁을 드셨습니다. 당신이 이제 이 세상에서 당신의 몸으로서는 마지막 보는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식탁을 나누시고 거기서 악한 제자의 배신에 의해 그는 병정들에게 끌려가시게 됩니다. 그 일이 있기 전 예수 그리스도는 만찬을 마치신후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셨습니다. 거기서 땀이 피가 되도록 당신의 진액을 모두 쏟으며 하나님 앞에 생사를 건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이 십자가를 지고 죽으면 남아 있을 이 세상에 있을 백성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였습니다. 그렇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드디어 제자의 배신에 의해 병정들에게 채포됩니다. 채포된 예수 그리스도는 빌라도에게 끌려가고 거기서 다시 헤롯에게 끌려가고 다시 빌라도에게 끌려가서 다시 재판을 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이르게 되었으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대게 오전 7시∼9시쯤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무 지치신 나머지 그 십자가를 지고 넘어지고 걸음이 지체되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구레네에서 온 시몬이라는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예수를 따르게 하였던 것입니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부모가 교회 다니고 내가 기독교 문화에 익숙해지고 어려서부터 친구들이 많은 교회를 다니는 것이 그가 그리스도인이라는 표 일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은 친구들도 있고 엄마, 아빠가 감시하고 있으니까 교회에 나오지만 대학 가면 누가 여러분들을 감시할까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나면 누가 여러분들을 제약할까요? 나는 여러분들 중에 진정으로 구원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합니다.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망가진 죄인인가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어떻게 그걸 짐작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이 지금 살아가는 삶은 여러분들이 원하는 삶을 살지 않지 않습니까? 올바르게 살아야하는데 올바르게 살지 않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러면 안 되는걸 알면서도 게임에 중독되고 음란물에 중독된 사람들이 꽤 있지요. 스스로 돌이키려고 하는데도 안 됩니다. 그게 바로 여러분들이 죄인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나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살면 아주 나쁜 사람이 됩니다. 올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절대로 가만히 내버려두어서는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음식물을 생각해보십시오. 음식을 썩게 만드는 것은 노력할게 없습니다. 바깥에다 오늘 같은 때 음식이나 혹은 고기를 그냥 내버려두면 이틀 뒤면 완벽 곰팡이가 피어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음식을 썩지 않게 하려면 굉장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소금에 절여 놓던지 냉장고에 넣어 두던지 아니면 기름 속에 풍덩 담가 두던지 말려 버리던지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결국은 우리가 죄인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을 안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를 않습니다. 때로는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을 해도 잘 안 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게 여러분들이 죄인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스스로 돌이킬 수 있느냐?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됐다고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모든 세계를 창조하셨으며 하나님이 나를 독특하게 사랑하기를 원하는 삶의 목적이기 때문에 나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인류학자들에 의하면 이 지구상에 약 1천억 명의 인구가 살다가 죽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중의 한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이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여러분 같은 사람은 없고 영원히 여러분 같은 사람은 태어나지도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지문과 같이 독특한 한 사람이고 그 여러분들이 바로 그 독특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향해 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이 세상에 창조하셨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천연기념물과 같습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생각합니다. ‘나는 내 친구만 못하다. 내 친구는 나보다 훌륭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돈도 많고 서울 강남에서 살고 나보다 모든 재능이 뛰어나다.’ 그런데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 어차피 그것은 그 사람의 인생이고 나에게는 나의 인생이 있기 때문에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오케스트라를 보십시오. 이쪽에서 이쪽에까지 때로는 백여 명의 사람들이 악기를 연주합니다. 그중에 누가 중요할까요? 누가 누굴 멸시할까요? 물론 개중에는 어떤 사람이 돈을 더 받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그 모든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교향악이 울려 퍼집니다. 나는 여러분들을 보면서 가슴 아픈 것이 뭐냐면 여러분들이 인생을 왜 사는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화) 나는 여러분들 만할 때 기어 다닐 때부터 교회 다녔습니다. 엄마, 아빠는 교회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가족들이 교회 다녔기 때문에 기어 다닐 때부터 교회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내 나이 14년 2개월 살았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교회를 가고 있었습니다. 주일이었습니다. 전 말썽을 피우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탁월한 모범생이었느냐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학교를 다녔지만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습니다. 왜 학교를 다녔는지 이해한 적도 없습니다. 너무 너무 싫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가는 어느 날 갑자기 들판을 걸어서 교회까지 꽤 먼 20분 내지 30분 걸리는 거리였는데 걸어가는데 슬픔이 엄습합니다. 그래서 논둑에 엎드려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왜 14년 2개월 정확하게 지금으로 말하자면 중학교 2학년 겨울이었습니다. 펑펑 울었습니다. 왜? 공부를 못해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공부를 못하지는 않았습니다. 가난해서? 물론 가난했지만 돈 때문에 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왜? 질문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이 세계가 도대체 나에게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신은 존재하는가?’ 나는 중학교 2학년 가을 들어서면서 인간으로서의 자의식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소위얘기하면 사춘기가 온 것입니다. 단 하루도 어린나이에 죽는 것은 무섭지 않은데 사는 것이 무서워요. 눈을 뜨면 오늘 하루를 살아야 된다. 숨이 콱 막힙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큰일 납니다. 여러분 지금 그런 고민을 안 하면 나중에 여러분들이 볼 때 제일 사람 같지 않은 어른들을 만나면 미래의 그것이 여러분들의 모습입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으면 좋았겠지요. 그리고 전교 1등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공부 잘하는 학생도 유난히 자살을 많이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각자 그 사람의 인생이니까 그것은 내 몫이 아닙니다. 내가 노래로 말하자면 루치아노 파파라치 같은 재능도 없고 돈으로 말하자면 빌게이츠 같은 돈이 없고 뭐 그렇다고 하더라도 춤추는 것으로 말하자면 아이돌 가수처럼 못 춘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주어진 인생이 지구상에 살았던 살고 있는 앞으로 살 누구도 살 수 없는 나만의 인생이 되니까. 그 고민을 지금부터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고민이 끝이 있을까? 그렇게 난 땅바닥에 엎드려서 한 참 울었습니다. 그리고 일어났습니다. 14년 2개월 자리가 눈물을 닦으면서 결심했습니다. ‘난 평생 철저한 무신론자로 살겠다고. 하나님은 없다. 아니 있다고 해도 난 상관없다. 나는 내 길을 간다.’ 그 다음 주부터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었습니다. 너무나 새로운 세계를 보았습니다. 나는 친구들하고 이야기하고 선생님하고 얘기해보고 교회에 전도사님하고 얘기해봤지만 날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내가 보기에 교회 다니는 어른들은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문학 작품을 읽으니까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공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런 고민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 주인공이 그렇구나. 읽으면서 나만의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답이 없습니다. 문학 작품은 모두 질문만 제시할 뿐 답을 내려주지는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철학책들과 사상 책들을 읽었습니다. 딱 10년 읽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람들도 행복한 것 같지 않았습니다. 진리를 찾았다는 사람은 있는데 그 사람은 행복한 것 같지 않습니다.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에 당신처럼 불행해질 바에야 내가 당신이 가르쳐준 진리를 배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리고 어느 날 주님 앞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할 수 없는 비참한 인간이라는 사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주신 그 독특한 삶을 살아내야 하는데 내가 결코 그럴 수 있는 힘이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하기가 너무 힘드니까 생각을 하다가 미끄러집니다. 그래서 게임, 음란물, 알코올, 중독 여러분 중에 여자 친구 안 사귀고는 한 달도 못 지내는 그런 사람들로 자꾸 미끄러지는 것입니다. 왜? 너무 두렵고 그 고민을 하는 것이 무겁기 때문에 마취제나 진통제를 맞으면서 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살고나면 여러분들이 10년 뒤에 20년 뒤에 마치 어쩌면 수학문제 풀다가 잠이 들면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노트를 넘기면 그 풀지 않던 문제가 그대로 앞에 있는 것처럼 이런 질문이 모두 소리치면서 다시 일어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지금 하는 것 같은 똑같은 방황을 20대, 30대 애기 낳고 엄마 되고 아빠 된 후에도 똑같은 방황을 합니다. 그러고 싶으세요?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은 그가 자기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만나는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에 복음 앞에서 “여기가 바로 내가 살 수 있는 길이 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찬양)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Was blind but now I see
그래서 예전에는 몰랐던 것. 하나님 계시다는 것. 그 하나님이 하늘에 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 그것이 내 마음을 움직여 이제는 그 사실이 나의 삶의 기준이 되는 사람. 그가 바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실 때 두 종류의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실 때 따르던 한 무리는 오늘 성경에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갈릴리와 저 먼 곳으로부터 온 여자들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여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이 여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냥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이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백성이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백성은 여인의 무리와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오늘 성경이 3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누어 제비를 뽑을 새 백성은 서서 구경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47절을 보십시오.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구경하기 위하여 따라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퍼지고 있는 중요한 뉴스를 궁금해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빌라도의 법정에 선다고 한다. 과연 예수가 죽은 나사로를 살리고 풍랑 이는 바다를 걸어가며 그 파도를 잔잔케 했던 것처럼 그렇게 기적을 일으킬 것인가? 그래서 자기를 구원할 것인가? 아니면 힘없이 십자가에서 죽을 것인가?’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예수 죽는 광경을 혹은 기적이 일어나는 광경을 구경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뒤를 따라 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이 수련회에 왔으니까 아마 상당한 희생을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했을 것입니다. 묻습니다.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2박 3일 놀고 간다고 새 사람이 되는 것 아니고 함께 찬송을 부르고 함께 친구들을 사귄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새 인간이 되는 것은 더더군다나 아닙니다. 추억에 남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여러분들을 신앙으로 붙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저를 보십시오. 저는 기어 다닐 때부터 교회 다녔고 유치부부터 교회 다닌 착실한 교회학교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 2학년 때 무신론자가 되기로 스스로 결심했습니다. 왜요? 내 인생의 궁금해 하는 아무 답도 교회는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교회가 안 줬다는 것 보다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고 나는 인생에 대해서 치열하게 괴로워하기는 하였지만 성경에서 답을 찾으려는 태도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몇 번이나 이런 수련회에 참석할 수 있을까요? 아마 여러분 중에 어떤 사람은 저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신론자가 될 사람도 있을 것이고 불신자와 연애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차피 교회를 뛰쳐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30대 중반에 여러분과 같은 학생들과 생사를 같이 하며 신앙생활 했습니다. 그 학생들은 수련회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60일 전부터 금식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 학생들은 모두 예수를 만났습니다. 이제 여러분 정도 되면 내가 누구인지 왜 태어났는지 내가 왜 예수를 믿어야 되는지 여러분 자신에게 질문할 때가 된 것입니다.
이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경하며 따라갔습니다. 요즘 표현으로 하면 슬리퍼신고 팝콘을 먹으며 껌을 질겅질겅 씹어 먹으며 귀에다 이어폰을 꼽고 올라갔겠지요. 그리고 구경하기 위해서 그 일을 새벽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재판정에 구름떼처럼 모이고 십자가를 지고 가시관을 쓰고 피 흘리며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며 뭘 느꼈겠습니까? 왜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시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누굴 위해서 하나님이신 그 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 위해 끌려가신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뭘 묻고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렇게 당신을 십자가의 죽음을 구경하기 위해 따라오는 사람들을 위해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죽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구경하기 위해 따라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교회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말해보십시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안 되는 그리고 왜 여기에 와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말해보십시오. 이유가 없으면 올 필요가 없습니다. 신앙은 저절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믿기 싫으면 아무도 여러분들에게 신앙을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안 믿으려는 사람에게는 신앙을 안 주십니다.
믿음은 어디에서 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이 사람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뱃세다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실 때에 그 보리떡과 물고기를 먹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광경을 본 사람도 있고 어쩌면 이 사람들 중에 병고침을 받은 자신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아는 참된 지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바로 이런 사람들을 자기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인데 이 사람들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가 구경거리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 여러분들이 이 백성과 같은 태도로 교회에 나오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그 시간에 집에서 수학 문제라도 하나 더 푸십시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두 번째 이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긴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를 위하여 예수를 위해 가슴을 치며 왜 가슴을 쳤을까요? 슬픔이 너무 크면 이 혈관이 응축되면서 가슴이 조여 옵니다. 그래서 가슴을 두드리면 혈관이 확장되면서 호흡이 편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여자들 마음속에 슬픔이 얼마나 격동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모습을 뵈오며 ‘슬피 울면서’ 여기는 희랍어 성경에 ‘에크라우스 에데’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은 흐느껴 우는 것이 아니라 큰 소리로 엉엉 우는 동작을 의미합니다. 그러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이 여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면 3일후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의 이 십자가의 죽음이 무슨 결과를 가져올지도 이 여자들은 몰랐습니다. 다만 이 여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무슨 나쁜 일을 하셨습니까? 병든 자를 고치고 주린 자들을 먹이고 외로운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고 무지한 자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신일. 그래서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들이 되게 하려고 자기를 희생하신일 외에는 하신 적이 없는 착한 분이셨는데 왜 이 분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까?’ 그리고 이 여자들은 가슴을 치며 슬피 울었던 것입니다. 이 여인들이 가슴을 치며 슬피 울었지만 로마 병정들은 채찍질하며 계속 예수 그리스도를 끌고 갔습니다. 빌라도의 뜰에서 나올 때 브라드리온에서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옷을 벗기신 채 끌려 나오는 광경을 보면서 이 여인들은 가슴이 찢어지도록 울었습니다. 왜 남들은 구경하며 갈 수 있는 골고다 언덕길을 이 여자들은 통곡하지 않고는 가슴을 치지 않고는 갈수 없었던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백성들 속에는 없는 그 무엇이 이 여자들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그 분이 십자가에 당하시는 그 고통은 곧 자신의 고통이 되었고 그를 위해 기꺼이 자신들이 대신 죽어가는 그 마음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통곡하며 울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여전히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고 계셨던 것입니다.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의 뚜렷한 표징은 방언을 받았다거나 혹은 무슨 체험을 했다고 하는 것이 증거일 수가 없습니다. 저는 놀라운 정도의 은사를 받고 신앙을 헌 신짝처럼 버리는 젊은이들을 많이 보았고 심지어 이단으로 가는 젊은이들도 보았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가장 뚜렷한 표는 한가지이니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이 여인들의 행렬 속에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십자가를 지고 쓰러지시면서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들은 통곡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랐습니다. 여러분도 이 여자들과 함께 눈물 흘리며 예수를 따라가는 사람들입니까? 여인들이 통곡하며 울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셨고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섬기시던 그 겸손한 손이 못 박히셨습니다. 죄인들이 곳이면 어디든 걸어 다녀 섬기시던 그분의 발에도 역시 굵은 십자가에 못이 박혔습니다. 지금도 귀 기울여 보십시오. 그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투박한 망치소리가 들려오지 않습니까?
(찬양)
망치소리 내 맘을 울리면서 들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주님은 오늘 이 시간 여러분 모두가 이렇게 자기를 주인 삼고 자기를 사랑하는 삶에서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 분을 따르는 제자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를 위해 공부하는 예수를 위해 나의 재능을 사용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티끌만큼이라도 행복해지는 삶을 내가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님은 오늘 이 시간도 여러분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삶을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와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죄를 고백하고 이 여인들처럼 눈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될 대에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오늘 마음속에 결단을 해야 합니다. 이제 이렇게 앞으로도 한 2년이나 3년 혹은 4년 동안 중, 고등부 따라 다니다가 마지막에 신앙을 걸레처럼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될 것인지 아니면 진짜 거듭나고 구원받은 자녀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될 것인지 여러분들이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매우 소중한 사람으로 하나님께 창조된 여러분만이 살아갈 수 있는 여러분 자신의 독특한 삶을 무지갯빛처럼 이 세상에서 살게 하려고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사람이 되어 이 뜻깊은 인생의 길을 후회 없이 걷는 형제, 자매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