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된 자를 친밀하게 대하심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민 12:6-8)
녹취자: 백지영
아마 수련회 와서 여러 번 설교한 성경구절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내용은 여러분들이 너무 잘 아는 내용이고 오늘 말씀드리려고 하는 주제는 하나님께 충성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친밀함을 보여주신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에드워즈 같은 설교자가 될 수 없고 어거스틴과 같은 사상가가 혹은 칼빈과 같이 그렇게 조직적인 말씀 선포 자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밑에는 어마어마한 공부가 있었고 아마 우리가 이제까지 공부하고 탐구한 양은 그분들이 우리와 같은 나이 때에 십분의 일이나 100분의 일밖에 안 될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우리는 영원히 그분들의 모본을 따를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대학자적인 사람들만 사용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위는 학문에만 달려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목회자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은 하나님 면전에 있다 온 것 같은 친밀함입니다. 그 친밀함이 학문이 저절로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고 오랜 목회의 경험이 저절로 가져다주는 것도 아닙니다. 더욱이 사업의 수완에 능한 것 같은 방식으로 하는 목회가 그것을 우리에게 저절로 가져다주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치리라 하심과 같이 자기 속에서 솟아나는 것을 흘려보내는 것이 목회인데 그것은 자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의 흐르심입니다. 성령이 당신의 말씀으로 흘러가시는 것이 목회다 생각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있으면 혹시 학문이 좀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소박하게 성경을 설교하는데 뚜렷한 권위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오늘 성경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그런 당신의 친밀함을 보여주시는지에 대해서 말합니다. 당시에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환상을 보기도 하고 혹은 꿈에서 하나님을 만나기도 했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종 모세와는 그렇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대면하여 말하였음이라, 이것은 하나의 문학적인 표현이겠지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가지고 계시지도 않은 분인데 대면하여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만큼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탁월한 친밀함 속에서 살았다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왜 당신의 종 모세를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과는 다르게 친밀하게 대해주셨는가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그가 충성하였음이라” 하나님은 당신의 친밀하심을 당신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십니다.
여러분들은 혹은 사람들을 쓰려고 할 때 어떤 사람들을 쓰겠습니까? 아주 좋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아주 아이디어가 넘치지만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는 사람을 쓰시겠습니까? 아니면 조금 부족하지만 그러나 마음이 한결같고 변함이 없이 의리 있는 사람을 쓰시겠습니까? 누구라도 이 유치한 질문에 대해서 다른 대답을 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부부가 함께 살아도 남편이 아무리 훌륭하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아도 아내가 사랑을 못 받으면 ‘너나 데리고 살아라.’ 하는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그러면 똑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한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하지 나와의 관계를 통해서 나를 이용해서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을 우리가 동지로 받아줄 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 세상의 누구도 자신의 야망과 욕심으로부터 “나는 이미 자유 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하나님을 믿고 섬기면서 얼마나 이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느냐, 상대적으로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니고 무가치해보일 정도로 그것을 버릴 수 있게 하는 힘은 무엇이겠습니까? 결국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이 가지고 계신 뜻이 성취되는 것을 갈망하는 마음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모세는 진실로 하나님의 영광을 구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해도 하나님과 맞서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진노를 하시면 훼손당할 하나님의 명예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했으니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사랑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 아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물론 기도 많이 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주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친밀함 속에 살 것입니다. 게으르고 나태하게 오락에만 빠지는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친밀함 속에 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진정한 친밀함 속에 사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 자신의 진정한 바람과 소원이 된 사람, 그래서 주님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소원으로 가득찬사람, 그런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이 당신의 뜻들을 성취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시는 사람들은 모두 마음에 불타는 소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자기의 마음속에서 갈망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주기도문이야말로 우리 신앙의 시금석이라는 확신에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주기도문을 눈물로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최상의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 주기도문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드시려고 했던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이상이 숨어 있고 그것은 공동체 전체일 뿐만 아니라 또한 그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개인에 대한 이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을 정말 가슴이 저미도록 드릴 수 있는 사람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자유로운 삶입니다. 나 하나만 구원받으면 되는 게 아니라 나의 형제들 그리고 하늘 아버지로부터 창조된 이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의 창조의 계획에 맞도록, 일그러짐이나 혹은 모자람 넘치는 것 없이 그렇게 완전한 샬롬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이 그게 이 주기도문의 이야기입니다. 그렇지 못한 세상을 보면서 아파하는 것 그 자체가 그런 이상적인 샬롬의 세상이 오기를 얼마나 절실하게 바라느냐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냥 ‘했으면 좋을 텐데’ 하는 것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없어서 너무 불편하고 고통스러울 때 그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입니다.
충성은 바로 그렇게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지 못하는 현실을 아파하면서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치열하게 원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그런 충성스러운 사람들은 모두 착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5장에서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합니다. 충성된 사람이 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충성된 것은 결국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자신도 거기에 합치되기를 바라는데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은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지 않을 수가 없는 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충성스러우면서도 착하지 않은 것은 그 충성에 다른 동기가 섞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충성되면서도 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충성시켜서 만들려하시는 사회가 어떤 사회이겠습니까? 어떤 한 사람이 당신에게 충성하게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이름을 높이고 영광을 받게 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그를 충성시키는 이유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높이는 일에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우리의 스승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마음 깊이 사람을 높이기보다는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이 교회에 머무는 동안에 충성을 배우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누구도 충성스러운 삶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함의 진수에 도달해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주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충성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의 깊이라고 하는 것은 청교도 서적에서 개혁주의로 개혁주의에서 현대사상으로 왔다 갔다 하는 책읽기가 하나님을 향한 경외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열망 그래서 자기 자신의 살을 자르고 뼈를 깎아서라도 그 하나님의 뜻에 합치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삶입니다. 그런 소망을 품고 어린아이의 신발 하나를 정리하고, 작은 소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진리의 말씀을 깨우치게 하고, 그를 심방하고 격려하고 교훈하고 바르게 가르치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뜻 때문에 즐거워하고 충분히 보상을 받는, 충성스러운 사람들은 보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충성스러운 사람은 이미 한없는 보상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래서 충성한 사람은 항상 교회가 자신의 신세를 졌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교회에 신세를 졌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왜?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들은 충성하기 위해 드린 희생보다 더 큰 것을 하나님이 미래에만 갚으시는 게 아니라 현재적으로 주십니다. 그것을 항상 기억을 해야 됩니다.
청교도들은 목회사역에서 성경해석과 관련해서 칭찬할 만한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청교도들이 성경의 본문에 천착했다는 것입니다. 요즘 설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미 있고 그 위에다가 성경구절 하나 이렇게 올려놓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 점에서 청교도들은 칭찬받을 만합니다. 두 번째는 무슨 본문을 설교하든지 시종일관 교리를 붙들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가 무엇이냐 하면 경험 신학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교리를 설교할 때에는 먼저 자신이 온 몸으로 그것을 시행하면서 경험한 가운데 신학을 진술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충성스러운 사람의 신앙이고 신학의 과정도 충성하는 가운데에 수립되고 마지막에 그 신학의 결과물도 충성스러운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충성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은 이미 그 충성하는 것보다 더 큰 보상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과의 친밀함, 자신의 목회사역에 대한 단단함,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동행함, 그리고 신기한 방법으로 시련과 역경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녹이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이게 우리가 충성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인지 그게 작은 것인지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그래서 충성한 사람들은 자신의 충성에 대해서 후회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보고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충성스럽게 헌신했던 사람들은 당연히 잃어버리는 게 있습니다. 사람이 취미에만 미쳐도 그 취미에 몰두하느라 잃어버리는 게 있는데 취미가 아니라 사명으로 매달라는데 잃어버리는 게 없겠습니까? 당연히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노력은 내가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생각을 하면 잊어버리는 게 당연히 있습니다. 그런데 잃어버리는 것은 아주 작은 것이고 하나님은 당신을 향해 충성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 이상의 보상을 미래에 주시는 것만 아니라 현재적으로 주십니다. 그래서 그를 주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고 그 사람은 무엇을 해도 다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드리려는 요지는 이것입니다. “충성스러운 삶을 살아라. 삶의 어느 한 방면에서가 아니라 삶의 모든 방면에서 충성스러운 삶을 살아라.” 그 충성 속에는 가정을 돌보는 것, 공부하는 것, 잠을 적게 자는 것, 게으르지 않는 것, 성도들의 모본이 되는 것, 치열하게 전도하고 심방하는 것, 성경을 연구하는 것 모든 것들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인간이 그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겠습니까? 방법이 있습니다. 방법이 아니라 다 못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어느 것 하나도 안 해도 괜찮다고 자유하지 않는 것입니다. 공부하면 교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교회에서 봉사하다 가정을 생각하면 또 마음이 아픕니다. 또 가정의 사역을 하다가 보면 공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뭐냐 하면 그런 마음이 어떤 마음이냐 하면 아주 절실하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범사에 하나님을 붙들고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붙잡아주시지 않으면 내가 정말 아무 것도 아니구나.’ 하는 그 절실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충성스러운 삶을 사십시오. 그런 충성스러운 삶을 사는 일이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끝까지 충성하는 사람이 아주 드물게 소수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된 삶을 살아서 목회를 하는 도중에 여러분들이 주님을 더 깊이 만나고 여기 있을 동안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