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학부모세미나 Q & A
녹취자: 김세나
[질문1]
요즘 심리학에 근거한 육아방식들은 다분히 자녀 중심이고 인간 중심입니다. 아이를 기다려주어야 하고, 매를 들지 않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교육을 하라고 합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말씀에 따라 아이가 죄인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하나님 중심으로 자녀를 교육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자녀를 하나님 중심으로 훈육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질문1에 대한 답변]
이 질문을 하신 분 한번 손들어 보십시오. 괜찮습니다. 없으십니까?
여러분들 만나게 되어 너무 반갑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세미나를 한동안 해마다 했었습니다.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자매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특히 영유아부 자매들은 많이 힘들어서 영적인 침체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사실 처음에는 한 두시간 만이라도 아이에게서 해방시켜 드리고 말씀을 듣는 시간을 만들자, 생각으로 만들었는데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저도 바빠지고 교회도 커지면서 조금 소홀해 졌는데, 이번에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질문에 대하여 답을 하려면 참 많은 이야기들을 해야 하겠습니다. 첫 번째, 이것이 현재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육아방법입니다. 이것에 대해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저런 식의 교육방법은 좋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조금 책이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조단 피터슨이라고 하는 사람이 12가지 인생의 법칙이라는 책을 씁니다. 책이 조금 어렵습니다. 열심히 읽어도 일주일은 읽어야 할 정도의 분량입니다. 캐나다 토론토의 철학 교수입니다. 심리학, 철학, 화학 모두 전공하였습니다. 심리학과 교수로서 정말 잘 썼습니다. 그 책이 세계적인 선풍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 분이 참 고마운 것은, 굉장히 많은 점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설명합니다. 저는 그 책 내용에 완전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1장, 이러한 부분은 제가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는데 자녀교육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깊이 동의가 됩니다.
그 분의 견해에 따르면 이러한 것입니다. 자녀들을 오늘날 이러한 방식을 따라서, 자녀들이 해달라고 하는 대로 해주는 방식으로 교육을 하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이 다 그렇게 하는데 나만 자녀들을 혼내는 방식으로 할 때 우리 자녀가 밖에 나가서 위축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한 방법들이 널리 통용되고 있습니다. 심리적인 교육방법이 널리 통용되고 있습니다. 외국식 사고방식도 물론 그렇습니다. 그런데 조던 피터슨은 자기의 책속에서 이와 같이 중요한 이야기를 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 선악,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예의 같은 것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아이는 편하게 자라겠지만, 그러나 그 아이는 사회에 나갔을 때 사회성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똑같이 한번 만나면 이해력도 있고 배려도 있고 기분 좋은 사람을 만나려고 하지, 내가 엄청나게 많이 희생해야지만 겨우겨우 소통되는 사람을 여러 번 만나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아이가 어렸을 때 부모에게 혼나는 것이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가장 적은 비용으로 인생을 깨닫는 것이고, 내버려두면 자신이 왜 이렇게 사람들이 자기만을 싫어하는가, 모르는 채 인생 속에서 시달리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에서 교역자와 직원들을 수백 명을 거느리며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나갈 때까지 사람들이 자신을 왜 싫어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을 어렸을 때 잘 가르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야단쳐야 합니다. 그것은 꼭 매를 드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잘못하였을 때 이것을 정확하게 잘못이라고 이야기를 해주고 거기에 합당한 책임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때리는 것 아니더라도 혼자 조용히 침묵하면서 자기의 잘못을 반성하게 한다든지, 자기가 잘못한 행동에 대해서 일정분량 책임을 지게 한다든지 해서 아이들이 제제가 가해지는 것을 통해서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고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경중을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처음에는 어른에게 인사를 안 한 것과 친구의 돈을 훔친 것 사이에는 엄청난 큰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그때 처벌이 달라야 합니다. 그러한 잘못된 것에 대한 태도를 부모가 아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이 영아, 유아, 유치부 때 이루어지고, 유년부, 초등부 때 이루어지는데 중학교에 넘어가면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할 때 무책임한 것 아닌가 하겠지만 만만하게 아이들이 변하지 않는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1번 첫 번째 문제에 대해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말씀에 따라 아이가 죄인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하나님 중심으로 자녀를 교육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자녀를 하나님 중심으로 훈육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뒷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 아빠가 안정된 생활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회심하든지, 안 하든지 간에 인생의 길이 저러한 것이구나, 지속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진심으로 회심하기를 부모들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회심의 여부와 상관없이 깊이 사랑해야 합니다. 조금 있으면 다시 질문이 나옵니다. 그때 다시 하도록 하겠습니다.
[질문2]
담임목사님과 사모님이 자녀를 양육하셨을 때 그 당시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었습니까? 자녀를 위해 어떤 기도를 하셨습니까?
[질문2에 대한 답변]
저도 보통 아버지와 똑같았습니다. 저는 아들이 86년도에 태어나고, 6년 있다가 딸이 92년도에 태어났습니다. 아들이 태어난 것도 사실 결혼한 지 7년 만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아들이 태어났는데, 30개월 될 때에 모든 회화가 가능하였습니다. 33개월에 기저귀를 벗었는데 기저귀 차고 있는 30개월 때에 드라마, TV, 우리 생활, 학교 등, 모든 것에 대한 대화가 가능하였습니다. 그럴 정도로 아주 언어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습니다. 실망시키지 않고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는데 4학년 때까지 모든 시험지가 거의 100점이었습니다. 시키지 않아도 학교 끝나면 도서관에 앉아서 수없이 책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천재가 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4학년 때부터 빗나가기 시작하고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성적이 떨어지면 집안에서 무슨 일이 생깁니까? 부부싸움이 생깁니다. “당신은 집에서 뭐하냐?”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아들이 86년생인데 제가 93년도에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핑계일지 모르겠지만 당시 저는 학교에서 교수생활하고, 전국으로 불려 다니고, 책을 쓰고 하면서 수면 시간이 4시간 밖에 안 되었습니다. 지금도 4시간 밖에 안 되지만, 그렇게 몰두하고 사니까 솔직히 말해서 자녀를 만날 시간도 많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나의 생애가 주어지면 다른 방향으로 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이가 5세까지는 제가 한창 공부를 할 때였습니다.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공부를 하던 때였습니다. 어쨌든 우리 아내는 그렇게 제가 공부를 하였으니까 “당신이 이렇게 목회하는 것 아니야..”라고 기분 좋게 위로를 하는데 저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방치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하튼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빗나갔습니다. 먼저는 체형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 전까지는) 그림처럼 예뻤습니다. 그런데 수없이 먹는 것입니다. 엄청나게 뚱뚱해졌습니다. 아주 산만해지고 공부의 관심을 잃었습니다. 그러면서 힘든 시간을 지내고 하였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쯤 되었을 때, 제가 설교시간에 가끔 차를 타고 운전하고 가는데 여기어디 대공원쯤 지나서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얘야, 나도 네 아버지이고, 너도 네 아들의 아버지인데 네가 네 아들에게 하는 것은, 내가 너에게 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지 않니?’ 제가 그 마음을 듣고 나서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얼마나 울었는지 한 시간 동안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그 다음에 집에 가서 다음날인가 아들을 데리고 나가서 따뜻하게 밥을 사주고 운동화, 양말, 바지, 티셔츠, 점퍼, 모자까지 위에서 아래까지 모두 사서 주었습니다. 그것이 저의 자녀교육에 대한 회심이었습니다.
그 뒤로부터 한 번도 성적표를 본 적은 없습니다.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고3때도 보지 않았습니다. 결국 마지막 깨달은 것은, 내가 어떻게 해야 이 아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였다기보다 엘리트가 되기를 원하였던 것 같습니다. 저도 못하였던 엘리트를 말입니다. 그래서 공부를 잘 하고, 재능도 뛰어나서 좋은 학교에 가는 엘리트면서도 신앙이 있는 그러한 사람이 되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보지는 않았지만, 아이의 성적이 뛰어났겠습니까? 그런데다가 세화고등학교라는 가장 센 학교에 배정되어서 -옛날의 경기고등학교 같은 곳이었으니- 어땠겠습니까? 그러나 어떻게 어떻게해서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게 너무 잘한 것입니다. 지금은 목사가 되었고, 결혼해서 그 사이에 아이 둘을 낳았고, 미국에 가서 석사를 하고 박사를 하는데 비교적 잘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훌륭한 교육을 했다고 자부할 수는 없어도) 그래도 내 놓을 수 있는 게 있다면 하나님 앞에는 없지만, 이 아이의 마음속에 ‘우리 아빠는 가장 큰 관심사가 내가 정말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참된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 아빠의 가장 큰 소원이다.’라는 것을 심어주었다고 하는 점에 있어서는 저는 지금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제가 그러한 깨달음의 순간이 없었더라면 그러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끝없이 용서하였습니다. 그전까지는 일 년에 한 차례씩 저에게 맞았는데, 그 후로는 한 번도 회초리를 대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을 느꼈다고 한다면, 애들이 사춘기를 지나지 않습니까? 너무 힘들게 지납니다. 다행히 그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너무 괴로워하던 끝에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우리 아들을 -그때는 우리 교회 주일학교가 30-40명밖에 안 모이던 때이니까 - 어린이전도협회 회심 캠프에 보내었습니다. 그 아이를 맡은 선생님이 내 책의 열독자였습니다. 그러니까 김남준 목사님 아들이라고 얼마나 열심히 가르쳐 주었든지, 이 아이가 주님을 깊이 만나는 회심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딸은 중학교 2학년 때 열린교회 수련회에서 주님을 깊이 만나 회심을 하고, 중고등학교 때를 아주 행복하게 다녔습니다. 고3때 아이가 “아빠, 내가 고3인데 이렇게 행복하게 학교를 다녀도 되는지 몰라.”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요즘은 침체에 있지만 어쨌든 그렇게 힘들 수 있는 시기에 주님을 깊이 만난 것이 정말 큰 은혜였습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그것이었습니다. 물론 공부를 잘 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 마음대로 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스카이 캐슬’ 드라마를 따라갈 수 있을 정도의 능력도 없거니와,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한 달에 무슨 100만원 이상, 몇 십 만원 씩 하는 교육을 시킬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옳지도 않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학교 촌지 문제였습니다. 노골적으로 선생이 촌지를 원하고 촌지를 주지 않으니까 아이를 학급에서 바보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저 뒤에 혼자 앉혀 놓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주나봐라’ 하였습니다. 끝까지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는 아이가 너무 행복하게 다니는데, 그 선생님이 제 책의 열독자였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으로 정성껏 대해주었습니다. 그래도 주지 않았습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옳지 않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회와 더불어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질문3]
교회의 여러 섬김을 감당하는 중에 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자녀들을 방치하는 듯 하여 죄책감이 들때도 있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는 자모들에게 권면의 말씀을 해 주세요.
[질문3에 대한 답변]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아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가장 큰 의무는 그 아이를 전심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애를 낳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신문에 보면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듯 눈물이 납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살해당하는 아이들, 그리고 이번에도 호적에 올리지도 않고 2년 동안 학대하다가 죽어서 가져다 버린 사건, 신문에 나오는 것이 그 정도인데 실제로 유기되고 버려지고 살해되는 아이들의 수가 얼마인지는 아마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너무너무 끔찍합니다. 미국 같은 경우에는 거의 사형 내지 무기징역에 해당되는 죄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2-3년이면 또 풀려납니다. 무슨 이런 나라가 있습니까. 태어나면 아이는 천부적인 인권을 갖는 것입니다. 그것은 맞는데, 절대적인 시간을 아이와 많이 갖는다는 것이 모든 것의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한번 솔직히 물어보십시오. 부모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깜짝 놀랄 것입니다. 부모가 자기 옆에 오래 있어주는 것만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원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방치된다고 할 때 그 기준이 어느 정도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너무 방치되어서 교육이 빗나간다고 한다면 일을 조금 줄이고 아이들에게 몰두하실 수도 있고, 융통성 있게 자신이 잘 챙겨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치한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래도 우리 교회는 그러한 점에서 교회 와서 어떻게 하든지 테마교육을 비롯하여 어떤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아이들이 방치되지 않도록 노력은 하고 있는데, 엄마들이 판단하실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크면서 어려움을 겪었을 때 사실은 교회를 개척하였다는 이유도 컸습니다. 그것에 부부가 거의 올인을 하다시피 매달렸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로서는 다시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아도 어떻게 교회를 개척했는데 사모가 그것을 감당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결국 좋게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셨는데 여러분들도 믿음을 가지십시오. 정 불안하면 기도하면서 조금씩 조정하면 될 것입니다.
[질문4]
하나님은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온전히 육아에 매진하는 엄마를 기뻐하실까요? 직장 속에서 소명을 감당하는 엄마를 기뻐하실까요?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기도 하고 죄책감도 들고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부모님께 맡기다보니 민폐가 되는 것 같기도 하여 우울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질문4에 대한 답변]
가장 좋은 것은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 와서 굳이 그럴 필요 없이 가정을 돌보는 것이고, 너무 지루 할 때 소일거리로 옛날에 하던 일을 할 수 있으면 너무 좋지 않겠습니까? 소명도 소명이지만 어쨌든 경제적으로 어려우니까 맞벌이를 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습니까? 일단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현실을 잘 판단하여 방향을 잘 정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어떤 교회에서는 아주 철저하게 교육을 시켜서 직업을 못 갖게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를 잘 기르는 것이 경제적으로 여유 있게 사는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예를 들자면 기본적으로 모든 생활이 충분히 되는데 아내가 벌어서 조금 더 여유 있게 쓰려고 하는 것이냐 -통계에 의하면 딱히 여유도 많이 생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 쓰기 때문입니다. 수입이 200%가 되는 것이 아니라 둘이 벌면 140% 정도 된다고 합니다- 아니면 두 사람이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도저히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것이냐입니다. 후자 경우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빈민으로 구제를 받으며 사는 것 보다는 자신이 벌어서 먹고 사는 것이 훨씬 더 떳떳하고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것은 일반적인 고민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자녀를 기르는 것을 기뻐하는가, 직장을 다니는 것을 기뻐하시냐는 문제가 아니라, 이것은 생활의 양상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답을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면 아이를 길러야 됩니까, 직장을 다녀야 합니까, 그러한 질문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자세로 어디에 서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은 당연히 힘이 듭니다. 그러니까 육아와 일을 병행하시는 분들은 마음을 확고하게 가져야 합니다. 이 둘을 다 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려움을 느낄 때 이 두 가지를 병행하기로 한 내가 이러한 것을 경험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리고 이것은 어차피 모두 만족스러운 것은 없으니까, 두 가지로 병행하기로 하였을 때 이 정도 어려움은 감당해야 한다고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죄책감이 든다고 하였는데, 아이들과 계속 있어주지 못하니까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것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도 아시지 않겠습니까? 남편이 많이 벌어다주고 시부모님 유산이 많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가장 이상적인 가정이 질서가 잘 세워지는 가정이 어떤 가정인지 아십니까? 남편보다는 시아버지가 10배 부자이고, 시할아버지가 시아버지보다 10배쯤 부자인 가정은 질서가 딱 잡힙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모든 것이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면 당연히 육아에 전념하면 됩니다. 그런데 두 일을 병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하나님께서도 아시지 않겠습니까?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내가 한 시간을 양육하지만 다른 부모들이 세 시간을 함께 있는 것보다 더 좋은 양육이 되도록 기도하시면서 하셔야 합니다. 저는 교회에서도 두 가지를 훌륭하게 수행하는 교역자나 직원들 많이 보았습니다. 김미영 전도사님도 그런 케이스 중 하나이고, 훌륭하게 두 가지를 해내는 슈퍼 전도사님이십니다.
그리고 부모님들에게 아이들을 맡기다보니 폐를 끼치는 것 같기도 하여 우울합니다. 손주 손녀는 만나면 반갑고 헤어질 때 더 반가운 것이 손주 손녀입니다. 그러다보니 우울합니다. 그런데 우울해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어쩔 수 없는 현실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살아야지, 어쩔 수 없이 저렇게 해야 하는데 죄책감을 느끼고 우울해 하는 것, 그것은 아닙니다. “엄마는 최선을 다하고 있거든? 너도 최선을 다해!” “어머니, 제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당당하게 받아들이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아이가 뭐도 없고, 뭐도 없고 하면서 투정을 부리면, “정신 차려. 엄마가 직장 그만 두면 학원 두 개 끊어야 해. 그리고 자전거 같은 거 앞으로 못 사. 엄마 최선을 다하고 있거든. 너도 노력해야 해.”라고 정신적으로 무장시켜야 합니다. 저는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게 엄마가 직장 생활하는 아이들이 자립심이 강한 것 아십니까? 어려서부터 자신 혼자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엄마, 나 뭐 두고 왔어.” 엄마가 직장에 있으면 이 말을 못합니다. 우리 아들은 수없이 시켰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긍정적인 점도 있습니다. 너무 낙망하지 마십시오. 힘을 내십시오. 인생이 원래 그렇습니다. 그리고 더 많이 힘든 길들을 걸으면서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그 정도 가지가 그러십니까. 힘을 냅시다. 아멘.
[질문 5]
진화론, 빅뱅 이론과 같은 과학주의적 사고를 가진 친구, 가톨릭이나 다른 종교를 가진 친구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가 무엇인지 알려주십시오.
[질문 5에 대한 답변]
이것은 누구에게 알려주라고 하는 것입니까? 부모에게입니까? 아이에게 입니까?
이것은 본인이 그러한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하는 태도와도 똑같은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자녀에게 가르쳐 주면 됩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 진화론도 모르겠고, 빅뱅은 더욱 모르겠는 것입니다. 빅뱅이 아이돌 그룹인가 생각할지 모릅니다. 가톨릭은 더더욱 모르고, 불교는 불교방송 들어가서 한 시간 들어봐도 알 수 없는 단어로 수없이 무장하고 있고, 그런데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아이들이 자랄 때, 저도 똑같았습니다. 기독교신앙을 버리게 되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진화론이고, 그리고 뉴턴의 과학주의입니다. 이 자연의 모든 것이 법칙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그때 이제 어렸을 때 동화 속에서 보던 상상하던 생각들이 모두 사라지고, 기독교신앙을 기각하게 됩니다. 저는 결정적으로 저를 기독교신앙에서 떠나게 만들었던 두 가지 요인이 있었는데, 하나는 교회 안에 너무 수준 낮은 윤리의식이었고, 두 번째는 그림 한 장이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진화론에서 나오는 포유동물의 배의 발생 초기에 관한 도표였습니다. 처음에 보면 거의 똑같다가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형체로 이 안에서 태배에서 형성되어 동물로 변하는 표를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거짓말인 것 아십니까? 과학으로 오류라고 발표되었습니다. 그러한 도표 한 장으로 인해서 누가 나보고 기독교 신앙을 기각하라고 한 사람 없었는데, 내가 스스로 버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이러한 진화론이나 빅뱅, 이러한 것들에 기본적인 이론들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비판적인 사고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설교를 자꾸만 어렵다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솔직히 말해서 여러분들이 주기도문 책만 읽어도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얼마나 더 넓고 드넓은 세계인데... 우리가 등불학교를 하지 않습니까? 거기에서 그러한 것들을 다루는데, 그러한 것들을 다루는 이유가 이것 때문입니다. 훌륭한 선생님들을 모시고 다 설명하면서 어린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진화론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빅뱅이론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바가 무엇인지, 빅뱅이론은 어떻게 보면 진화론 만큼 해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빅뱅이론은 오히려 짧은 시간에 폭발을 통해서 모든 것들이 생겨났다고 하니까, 어쨌든 그러한 것들을 설명해 줍니다. 가톨릭이나 타종교나,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이해를 한다기 보다도 지금은 거의 기계가 하지만, 옛날에는 돈을 손으로 거의 셌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세고 있지만, 한국은행에 가면 수많은 직원들이 있는데 어느 정도인가 하면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서 돈을 세면서 위폐를 가려낸다고 합니다. 그때는 그러한 발달된 감별기가 없었습니다. 이야기 하면서 돈을 세다가 위폐를 찾아냅니다. 위폐를 많이 연구하였기 때문에 위폐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많이 만지는 것이 정폐였기 때문에 그 정폐를 계속 만지면서 위폐를 감별하는 기술이 생겨납니다.
가톨릭이나 불교에 대한 기본적인 가르침을 통해서 그것이 왜 옳지 않은지에 대해서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논쟁을 해서 그것을 극복시킬 수는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타종교에 대한 확실해야 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로서 이것들이 옳지 않다는 기본적인 학문적인 이해, 두 번째는 뭐냐 하면 그러한 모든 것에도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을 예의 있게 대하는 방식, 그것입니다. 그것을 자녀들에게 교육시켜줘야 합니다. 저렇게 이야기 하고서 본인은 진화론이 무엇인지 캄캄하게 전혀 모르고, 빅뱅이론이 무엇인지 아무 것도 모르면서 자녀에게 너는 진화론을 주장하는 아이를 만나면 이렇게 이야기 하라고 이야기 해 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교회학교에서는 애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한 2년 전에도 하였는데, 다음 등불학교를 하면 이러한 과학 분야의 선생님들을 동원해서 이러한 것들을 펼치면서 해나가려고 우리들이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는 지금 서은정 선생이라고 고등학교 선생님으로서 박사입니다. 한국의 교과서를 진화론만 나오던 것을 창조론도 고려해 볼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고 그것을 교과서 실리게 하는 것을 굉장히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러한 분들의 강의를 들으면서 여러분들이 시야를 여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고, 환경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엄마, 아빠는 끊임없이 배워야 합니다. 아이들보다 더 많이 배우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무엇을 이야기 하든지 서로 대화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은 가지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질문 6]
가정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아이들이 집중하지 못하여 아이들을 혼내며 어렵게 가정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아이가 뚜렷한 회심의 증거가 없고 신앙교육을 동의하지 않는 상황에서 가정 예배를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알려 주십시오.
[질문 6에 대한 답변]
우선 중요한 것은 저런 식으로 아이들을 혼내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아이들이 감당할 수준의 길이로 예배를 드리십시오. 우리의 가정 예배는 딱 15분 이었습니다. 15분. 아이들이 15분이면 끝난다는 것을 딱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너무 부산스러워서 15분을 도저히 못 진행한다고 하면 10분만 드립니다. 그래서 짧은 찬송 한곡 부르고 성경을 읽고, 한 두 마디 권면을 하고 주기도문을 하면 끝난다, 이렇게 아이들이 알고 있으면 됩니다. 그 대신 짧게 드릴 테니까 그 시간에는 집중하라고 알아듣도록 잘 설득하여 그것을 지키게 해야 합니다. 회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다면 회심하기 전에는 가정 예배를 못 드립니까? 오히려 회심하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서 가정 예배가 더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줄 수 있는 팁입니다. 짧게 예배를 드리십시오. 예배 시간만큼은 다른 짓을 하지 못하도록 상을 걸든지, 벌로 협박을 하든지, 오늘 예배 아주 훌륭하게 잘 드리면 용돈을 줄게, 혹은 무엇을 해줄게, 하더라도 짧으면서도 아이들이 집중된 상태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참여하도록 하는 것은 너무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너는 이번 달에 찬송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너는 성경읽기를 담당한다, 예배가 시작하면 성경은 네가 읽어라, 기도는 엄마가 하고, 짧은 권면은 아빠가 하고, 절대로 길게 설교하면 안 됩니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아예 말을 하지 말고 성경을 읽고 읽은 느낌을 간단간단히 이야기하고, 마무리기도를 하여도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짧게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회심을 하고 말씀을 더 많이 듣고 싶어 하면 성경공부를 시키십시오. 우리교회 교인 한 가정은 아이가 중학교 2학년 때 회심을 하였는데, 회심하고 앉혀놓고 일주일에 두 시간씩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을 모두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선교사는 『주기도문』과 『그리스도인이 빛으로 산다는 것』을 회심한 16살짜리 아들, 오늘로 이야기 하면 중학교 3학년 아이를 놓고 가르치고 요약을 하라고 시켰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에서 더 진전하면 되겠습니다.
[질문 7]
아이를 일반 학교에 보내면 공교육을 통해서 세속적 가치관이 형성되거나 잘못된 또래집단의 영향을 받을까 염려가 됩니다.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거나 홈스쿨링을 하는 것은 어떠할지 목사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질문 7에 대한 답변]
저는 기본적으로 대안학교나 홈스쿨링 보다는 공교육에 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유가 뭐냐 하면, 당연히 학교에 가면 교사 중에 의식화 교육을 시키는 사람도 있고 별 사람이 다 있을 것입니다. 또래집단에서 이상한 사람들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대안학교 간다든지, 아니면 홈스쿨링을 하면 학교폭력에 대한 염려는 없고 왕따의 염려도 비교적 적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결국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라는 것 자체가 일반 사회의 축소판입니다. 얘가 언젠가 대안학교나 홈스쿨링이나 직장까지 홈스쿨링으로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집에서 일터를 제공해 줄 것입니까? 연봉 5천짜리? 안 되지 않습니까? 언젠가는 사회에 맞닥뜨려야 하는데 그것을 기독교 가정교육과 개인의 신앙으로서 비판하면서 극복할 수 있는 능력들을 자라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균이 없는 세상이 좋겠지만 아이들을 멸균실에만 놓고 가르칠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사회에는 멸균 공간이 없습니다. 다 그것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대신 어려서부터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비판적인 정신을 갖게 만들어야 합니다. 무엇이나 쉽게 믿지 않는, 비판적인 정신을 갖게 만드는 것, 자기 행동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 책임을 지게 하는 것, 그러한 것들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부모님이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아이가 청소년인데, 학교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문자가 와서 “엄마, 나 학교 그만둘래. 학교 가기 싫어.” 수 없이 괴롭힌다고 합니다. 그래서 달래고 달래서 학교를 보낸다고 해서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교육에 있어서 똑똑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을 좀 내서 아이에게 차근차근히 학교를 그만두면 그 다음에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객관적으로 차근차근히 설명을 해주라고 합니다. 충분히 설명을 해 준 다음에 학교를 그만둔 친구들을 만나서 조사를 해봐라. 그럴 의욕도 없겠지만, 그렇게 설명해 주고 이것이 네가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다, 그래도 그만두겠으면 엄마 손잡고 가서 자퇴원서 쓰고 오자. 그 대신 미래의 삶은 전적으로 네 책임이다. 엄마들은 겁납니다. 얘가 이러다가 인생이 끝나는 것 아닌가 생각할 것입니다. 정신 못 차리고 학교를 그렇게 다니다가 허송세월 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그만두고 자장면 배달하다가 그래도 공부하는 것이 제일 낫구나 생각하고 검정고시 보는 애들이 훨씬 더 희망이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미명아래 자식들에게 자기 인생에 대해서 책임지는 것을 너무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보십시오. 공부를 통해서 가치관이 형성되거나, 당연히 형성 됩니다. 형성 안 되겠습니까? 정확하게 무엇을 배우는지, 요즘 아이들에게 유행하는 사상이 무엇인지 보면서 교회와 가정이 협력해서 그것을 끊임없이 독소들을 빼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디에 가서도 그 작업은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다음에 잘못된 또래집단에 영향을 받을까 염려된다고 하였는데, 그러한 또래집단이 대학에 가면 없습니까? 직장에 가면 없겠습니까? 왜 없습니까? 똘똘 뭉쳐진 집단들이 다 존재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는 그 속에서 해치면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자기 가치관이 뚜렷하면 그러한 것 자체가 면역의 장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어렸을 때는 대학에 왔을 때 정신 못 차리는 애들이, 재수한 애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서 모범생이었던 애들이 대학에 올라와 자유를 확 주어지면 정신을 못 차립니다. 재수한 아이들은 이미 쓴물 단물 다 맛보았기 때문에 별로 크게 기대하는 바도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다 극복하면서 살아가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 아이가 사회적 적응력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부모가 워낙 아이들의 교육을 밀고 나갈 수 있는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면 저는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저보고 선택하라고 한다면 저는 공교육을 통해서 가치관이 형성되면 그것과 싸우고, 아이가 갈등을 하면 그 갈등에 대해 적절하게 집에서 답을 주고, 교회에서 답을 줄 때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서 보다 더 사회를 해쳐나갈 수 있는 정신력과 가치관을 가진 아이들이 될 수 있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교육을 집어 넣는다고 해서 바보같이 마치 물통에 물들어가는 것 같은 그러한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그러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충분히 그 아이가 소화하고 비판하고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거라고 믿고, 그것을 계속해서 북돋아 주는 것이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답을 주고, 고민하고,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어야 좋겠습니다. 그래서 아주 아이와 대화를 엄마로서, 아빠로서 대화를 많이 할 수 있고 자기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고, 비판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가장 좋은 것입니다.
혹시 여기에는 없지만, 한 두 분 정도 질문하고 싶으신 분들 손들어 보십시오. 답해 보겠습니다.
[추가질문 1]
미취학 아이들도 유치원에서 이성에 대해서 좋아할 수 있고, 그러한 아이들이 있을 때, 이성에 대한 것이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교육이나 그러한 것들을 언제부터 어떻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추가질문 1에 대한 답변]
성교육에 대해서는 다른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는 뭐냐 하면 그것이 판도라의 뚜껑이기 때문에 그냥 안 알려줄수록 자극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견해의 단점은 막상 문제들이 생겼을 때, 성적인 접촉이 생겨났을 때 아이들이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무방비 상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조금 더 커서 완전히 성적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성관계를 한다든지 문제가 생겨났을 때 이것이 어떤 식으로 원리가 되는지 교육이 안 되었기 때문에 더 수습할 수 없는 사태에 이르는 경우도 있겠습니다.
두 번째 견해는 조기에 성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이가 만 2살까지 내려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그때부터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요새는 사회적으로 유아 성추행, 이러한 문제도 있기 때문에 그것을 아이들에게 아예 일찍 교육을 시켜서 자기 몸에 대해서 이해를 갖게끔 해줘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제 무엇인가 아직까지도 생각이 그쪽으로 가지 않은 아이들을 일깨워서 거기에 과도한 관심을 갖게 한다는 단점도 지적이 되지만,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플러스, 마이너스 요인을 고려할 때 그래도 교육을 시키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교육의 방식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교재들이 시중에 나와 있고, 인터넷 상으로 많이 나와 있기 때문에 적절하게 좋은 것을 활용할 수 있고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성교육을 어떻게 시킬 것인가에 대해서 이미 많이 연구되어 있기 때문에 의지를 가지고 찾아본다면 좋은 교재들을 많이 발견할 것입니다. 저는 아주 자연스럽게 영아부에서 유아부 되는 시기서부터는 천천히 성교육을 시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한분만 더 질문 받겠습니다.
[추가질문2]
저는 5살, 3살 두 아들을 키우는 아빠입니다. 여러 말씀 감사한 마음으로 듣고 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두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성격, 특성이 다르다는 점을 느껴가는 시점입니다. 목사님께서 육아를 하였을 때 다름에 대해 스스로 깨닫고 이해하면서 대처하였던 노하우라든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다르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에서 입니까?) 행동하는 패턴이 다르고, 습성이 다르고, 나이가 다르기 때문에 교회에 대해서도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만, 애초에 두 아이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다르다고 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바라보는 것,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추가질문2 에 대한 답변]
감사합니다. 아름답습니다. 다른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여기까지 네 가지가 색이 비슷하면서 다르기 때문에 예쁘지, 만약에 넥타이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똑같은 색으로 하고 나왔다면 얼마나 징그럽겠습니까. 김태희가 하나이니까 예쁘지, 한지민이 하나이니까 예쁘지, 한지민이 안양 일번가 골목을 한 천 명이 누비면서 걸어온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소름끼칠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아이들을 부모 의도대로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물을 주고 햇빛을 쏘이고 가지를 쳐주고 비료를 주면서 생긴 대로 자라도록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연히 거기에는 교육이 들어가야 합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선물이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분재입니다. 저는 분재를 너무 싫어합니다. 그것을 게다가 구리철사를 칭칭 감아서 자기 원하는 대로 모습으로 만드는 일들은 자연에 대해서 가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돼지고기도 먹고 소고기도 먹지만 저렇게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마치 몸도 움직일 수 없는 곳에서 태어나서 알만 낳다가 죽는 닭이나 몸도 움직이지 못하는 곳에서 계속 살찌다가 도살당하는 돼지나, 이러한 것들은 생각만 해도 토할 것 같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좋습니다. 아이들이 둘이 서로 대조가 됩니다. 그러면 제일 좋은 것은 신앙적으로 올바르게 가르치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한 다음에는 아이에게 마음껏 자신이 해 보고 싶은 것을 해보게 할 때 그때 그가 무슨 재능을 가지고 있는가 알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뭐냐 하면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르네상스 시대에 약 28명 정도 미켈란젤로를 비롯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기라성 같은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쏟아집니다. 그런데 여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여자에게는 그러한 천재성이 없었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기회를 안 준 것입니다. 기회를 주지 않으니까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자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교육은 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어느 교회에 갔습니다. 자녀 이야기를 하는데 목사님 표정이 밝지 않습니다. 나중에 이야기가 끝나고 돌아오면서 옆에 있던 분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저 목사님 요새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왜요?” “아들이 서울대를 나왔거든요. 그런데 좋은 직장에 다니다가 만화가가 된대요.” 그게 벌써 20년 전 이었습니다. 지금 어떻습니까? 어허. 웹툰 작가로 대접을 받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사님 이상하시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자기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의 행복인데, 물론 걔가 은혜를 많이 받아서 아빠 뒤를 이어서 목사가 되겠다고 한다면 할렐루야입니다. 아니지 않습니까. 만화를 그리겠다고 하는데, 저 같으면 잘 그려봐라 그랬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보다 보람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부모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이가 재능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 그 사람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웹툰 작가들 인기가 장난이 아닙니다. 그러면 돈이 다인가, 라고 하면 이야기가 복잡해지지만, 그러한 웹툰을 그리면서 자신이 독특한 책을 많이 읽어서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10대들에게 혹은 웹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이 독특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하는 세계관들을 기독교에 가깝게 가져가는 스토리로 만약에 작품 활동을 한다면 그것 또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길이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할 수 있는 것들을 자녀들이 해보는 것입니다. 저는 일말도 고민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도 “네가 기뻐하는 일을 해봐라. 나는 도움을 주지는 못할지 모르지만 막지는 않는다. 그리고 네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찾아라.” 그러니까 그렇게 운동을 좋아하면 운동을 시켜 보십시오. 교육관 지하에 풋살 체육관이 들어왔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와서 지하에서 공을 칩니다. 운동에 소질이 있는지 과학에 소질이 있는지 계속 그것을 열어 주십시오.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닐 타이슨이라고 하는 미국의 세계적인 천문학자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오바마가 극찬하면서 보라고 하였던 몇 년 전에 나온, 280억인가 들여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코스모스 시리즈가 있습니다. 그것을 총 제작 지휘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고등학교 때 교과서를 받았는데 미적분이 나왔습니다. 한창 들여다보다가 결론을 내린 것이 ‘아, 나의 분량이 아니다.’ 그랬었는데, 그 사람이 고등학생 때 누굴 만났는가 하면 칼 세이건이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이 사람이 이미 돌아가셨는데, 세계적인 천문학자였습니다. 그 강의를 들으면서 천문학자가 되어야겠다고 꽂힌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길을 열어주고 다르다는 것을 존중해주십시오. 너는 형과 다르기 때문에 빛나는 존재이고, 저는 동생과 다르기 때문에 훨씬 가능성이 있는 존재다. 네가 접촉해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자. 그 아이에게 접촉할 수 있는 면들을 넓혀 보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훌륭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상으로 답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