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2._공동의회
피택임직자교육
녹취자: 이 솔
반갑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육군사관학교가 생기기 전에 우리나라는 그 장교를 간부 후보생이라는 제도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육사 졸업한 사람들은 이제 간부 후보생들은 대충 받고 장교가 됐다 이렇게 생각했지만 또 초창기에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 나름대로 폐허가 된 나라 위에서 간부로 훈련받았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육사를 나오셨습니다. 박수로 환영합니다. 그래서 겨울에 시작을 했는데 벌써 봄이 기울어가고 여름 기운이 느껴지는 저 뒤에 한번 뒤돌아서 창문을 보십시오. 나뭇잎 없을 때 시작했죠. 근데 저렇게 나뭇잎이 우거지게 되었습니다. 정말 고생했고 여러분들이 이렇게 14주 또 남았잖아요. 그렇죠. 금식 기도도 해야 되고 철야 기도도 가야 되니까 아직까지도 남은 유격 훈련이 많지만 이 모든 걸 이겨내는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박수를 보내는 바입니다.
여러분들 진짜 마음 든든합니다. 어느 임직자들보다도 여러분들은 참 그 훌륭하게 훈련에 임해주었고 저는 한 두세 분 정도는 탈락자가 나오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됐어요. 우리 허리 아프신 집사님들까지도 다 나오셔서 들으시는 거 보고 깊이 감동을 했습니다. 제가 일부러 이렇게 전체 모아놓고 하지를 않고 제가 원해서 세 토막으로 나누어서 세 조로 나누어서 제가 이렇게 돌아가면서 여러분들을 만났거든요. 근데 그때 받았던 인상이 너무 좋았던 것이 뭐냐 하면 크게 세 가지였는데 교회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깊은 경험들이었어요. 그래서 정말 투표가 성공적이었구나. 그리고 진짜 교인들이 존경할 만한 중직들을 뽑았구나. 그것이 이제 여러분들의 신앙에 대해서 제가 갖는 안도감이었거든요. 근데 솔직히 말해서 모든 임직 훈련을 할 때 다 그런 마음이 든 것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것이 이제 마음에 늘 부담이 됐는데 여러분들에게서는 한 점의 그림자도 느끼지 않고 진짜 주님을 만났고 은혜를 받은 분들이구나 라는 것을 제가 14주 동안의 교육을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절실하게 느끼게 됐다는 점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그래서 그걸 적용을 하자면 이 마음 이대로 이 마음 이대로 그래서 이제 나중에 순서가 있겠지만 이렇게 임직하기 직전에 자신의 마음을 글로 다 표현을 해서 그래서 그것을 항상 자신의 앞에 놓고 그 마음으로 돌아가자. 아내하고 우리 집사람 내 우리 아내하고 나하고 앉으면 늘 하는 얘기가 여보 우리는 초심을 잃지 말자. 이렇게 이제 마지막에 가까워 올수록 이제 초심을 잃지 말자. 그래서 여러분 경기에 보면 스피드 경기에 보면 초반에 치고 나간 사람이 마지막까지 잘한다는 보장이 없어요. 근데 마지막에 어디서 그렇게 괴력적인 스퍼트가 솟아나는지 치고 나가면서 마라톤이나 아니면 그 중거리 달리기 아니면 스피드 스케이팅 같은 것들 치고 나가면서 이기는 감동적인 장면을 보잖아요. 마지막에 환호를 하게 되는 거죠. 저는요 성령으로 시작했다 육체로 마치는 중직자들을 많이 봤어요. 제가 담임 목사를 경험한 건 여기가 유일한 교회에요. 많이 봤어요. 그래서 그 끝은 교회에도 아픔이고 본인에게는 말할 수 없는 불행이에요.
여러분 어떻습니까? 젊은 날에는 방황했어도 마지막에 정말 아름다운 신앙으로 한 교회를 사랑하고 그 교회에서 죽어서 성도들에게 환송을 받으면서 천국 가면 전날에 젊었을 때 방황했던 것들이 모두 아름다운 배경 사진이 되는 거예요. 근데 젊어서 열렬하게 잘했어요. 막판에 끊임없이 방황하면서 육체의 욕심을 따라 미로를 헤매고 마지막에 지저분하게 마쳐요. 장로 같지 않은 사람 장로인 사람이 장로 같지 않게 인생을 마치고 권사인 사람이 전혀 권사 같지 않은 사람에게 인생을 마치고 안수 집사인 사람이 집사 같지 않게 인생을 마무리할 때 그것은 젊은 날의 아름다운 어떤 신앙생활이 수치스러운 밑그림이 되는 거야. 그래서 여태까지 살아온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그것을 생각하면서 처음 그 믿음을 간직하라 그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두 번째 제가 받은 인상은 진짜 성도들이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뽑았구나. 그것이었어요. 아니 이거는 뭐 제가 여러분들에게 잘 보이려고 입바른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어느 기수보다도 그것을 아주 절절하게 느낀 그런 기수였어요. 그래서 교인들이 진짜 정확하게 사람들을 찾아냈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교회를 향한 눈물 어린 사랑 여러분마다 다 여러분 중에는 솔직히 말하면 교인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는 사람이 있고 덜 받는 사람이 있고 때로는 여러분 중에 어떤 사람은 ‘권사로서는 부족합니다.’ ‘안수집사로는 부적합합니다.’라는 이야기가 들리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근데 제가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14주를 생활하면서 느낀 것은 뭐냐 하면 각각 성격은 다르고 기질은 조금씩 차이가 나도 그걸 모두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합치점이 있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교회를 향한 뜨거운 사랑 눈물겨운 사랑이에요. 그래서 제 마음이 너무 위로를 받았어요. 우리 서로 색깔은 다르고 방식은 다르지만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 특히 그 사랑이 진리에 입각한 콘코르디아 일치의 마음 그리고 하모니아 조화를 이루는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다양한 기질과 성격으로 교회를 섬길 때 그때의 교회는 오히려 우리의 서로 다름 때문에 더 온전해질 것이다 라는 희망을 가졌어요. 그게 여러분들 안에 있는 교회에 대한 사랑이에요.
그래서 여러 시간을 우리들이 함께 공부를 하면서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교회의 사랑을 간증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르고요 어느 기수 못지않게 제 마음에 담임 목사로서 말할 수 없는 위로 그리고 적어도 미래에 여러분들이 적어도 적어도 최소한 10년 이상은 교회를 섬겨갈 젊으신 분들은 뭐 10년이 아니라 70세에 은퇴할 때까지 보면 50세 되신 분들 20년 그리고 55세 되신 분 15년 이상 교회를 섬겨갈 분들인데 그런 분들이 이렇게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교회의 중직자로서 이제 일하게 된다 라는 그래서 오는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이 있었어요.
이것을 여러분들에게 적용하자면 그 마음을 잃지 말아라. 그래서 교회 열린 교회에서 교회 중직자에 올랐던 모든 사람들 중 처음부터 교회를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은 없어요. 모두 처음에는 교회를 사랑했어요. 중간에 마음이 변한 거예요. 그들에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요. 그러나 결국은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끝까지 교회에 남았고 그 교회를 끝까지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교회를 떠났고 남아있는 사람은 주님을 굳게 붙들고 살고 다른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방황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잘 믿음 생활하기를 마음속으로 늘 기도하지만 그러나 중직자의 처신은 천금보다 무거운 거예요. 심지어 안수 집사가 되고 불과 일 년 만에 교회를 옮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해할 수 없었어요. 이게 뭐냐 하면 아니 무엇 때문에 그 중직을 맞나? 이거는 뭐냐 하면 죽을 때까지 내가 이 교회와 생사를 함께 하겠습니다 라는 고백이에요. 그것은 장가 가고 나서야 1년도 안 돼서 마누라 버리는 거하고 똑같은 거지. 그러려면 뭐 장가를 가요. 그런 가벼운 생각을 가지고 사람들이 임직을 하기 때문에 한국 교회가 이렇게 질서가 없는 거예요.
여러분 교회 역사를 읽어보면 초대 교회 한국의 교회사 보면은요 중직자들이 특히 장로들과 권사들 전도사들 심지어 전도사들이 남긴 감동적인 순교의 역사가 목사들이 남긴 거 못지않게 감동적인 거죠.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 한 토막 해드릴까요. 영락교회 목회자였었던 한경직 우리 한국교회가 모두 존경하는 한경직 목사님 이야기 아세요? 한경직 목사님이 여기에 1년 반 동안이나 매주 목요일에 오셔서 여기에 있는 직원들에게 성경 공부를 가르치셨대요. 1960년 70년대 초에 얘기예요. 근데 그 목사님이 원래 신의주 제2교회에서 목회하시던 분이었어요. 그러니까 목사님은 그때만 해도 그분은 굉장히 똑똑하신 분이죠. 당시에 프린스턴에서 공부를 하셨으니까. 근데 공부하시다가 폐결핵이 너무 심해가지고 결국은 공부를 마치지 못하고 돌아오셨어요. 그게 1930년대의 일이에요. 29년도에 프리스턴이 갈라졌으니까 아마 그때 1930년대 얘기에요. 그러니까 인테리죠.
그리고 이제 신의주 제2교회에서 목회를 하시죠. 신앙 아주 확고하시죠. 그러니까 오늘 공산당이 이제 일어나서 막 하니까 나는 내가 이 교회를 어디로 떠나겠습니까? 내가 이 교회 교인들과 함께 살고 마지막까지 교인들을 돌보다가 무슨 일이 일어나면 내가 박해를 받겠습니다. 그걸 막아선 사람이 장로님이었어요. 장로님이 목사님, 그것은 목사님에게는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눈을 들어서 남쪽을 보십시오. 신의주 교회가 신의주 에서는 제일 큰 교회 중에 하나였어요. 그 교인들이 태반은 이제 벌써 조짐을 알고 다 남하를 한 거예요. 우리 여기 신의주 제2교회 교인들이 지금 남한에 내려가서 서울에서 경성에서 있는데 고향 산천 다 버려두고 갔으니 그렇게 가난하게 살면서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목자 잃은 양 같이 방황합니다. 이 교회는 내가 지킬 테니까 목사님은 내려가셔서 우리 신의주 교회의 양떼들을 돌봐주십시오. 눈물로 애원을 한 거예요. 이 목사님이 나중에 감동을 받으시고 설득이 되셨어요.
그래서 내려온 게 여기 서울로 내려오신 거예요. 근데 그 당시에 영어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어요. 이분은 미국을 미국 유학을 한 거야. 유창한 거죠. 그분이 너무 인상적인 게 텔레비에 나와서 템플턴상까지 받으셨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이렇게 큰 교회를 이루셨습니까? 그러니까 주님의 은혜입니다. 이야기하면서 뭐 제가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그래도 영어를 좀 하니까 미군 부대에 가서 얘기를 했더니 불쌍히 여겨서 우유가루도 주고 밀가루도 주고 텐트도 주고 남보다 더 많이 받아다가 풀었더니 교인들이 그거를 받고 교회에 모여서 영락교회가 된 겁니다. 이렇게 겸손하게 얘기하십니다. 그리고 사셨죠. 그래서 그분이 평생 살아계실 때 얘기한 게 뭐냐 하면 그 장로님은 거기서 돌아가셔서 순교하셨어요. 그래서 그것을 평생 자신의 가슴에 짊어지고 그리고 난 그 목사님은 장로님은 순교했고 목사님은 순교하셔서 죽으셨고 목사님은 순교의 정신을 가지고 살으신 거죠. 그래서 영락교회를 일구게 되신 거예요. 그러니까 그 성령에 붙잡혀 살고 교회를 사랑하던 그 마음은 이로 말할 수가 없어요. 언젠가 내가 그 역사를 여러분들에게 얘기해 줄 거예요. 근데 참 감동적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살도록 부름을 받은 거예요. 그래서 그 교회를 사랑하는 순수한 그 마음을 잊어버리지 말고 그리고 여기서 뭐 저와 함께 죽을 사람도 있겠지만 저보다 오래 살 분들이 대부분일 텐데 그래도 여기에서 살아있는 동안에 열린 교회가 마지막 교회라고 생각을 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무슨 일이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제가 떠나가고 난 후에도 누군가가 이 교회를 돌볼 거고 그때 또 무슨 일이 있을지 교회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와 같아요. 아무도 앞에 무슨 일이 있을지 알지 못해요. 그런데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하나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믿음이 굳건한 교회는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박은 교회는 비바람이 몰아쳐도 흔들리지 않는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산에 심긴 나무와 같이 되어서 그 나무들이 홀로 서 있는 것 같지만 땅속에서는 전부 다 손에 손을 맞잡고 뿌리가 되어서 온 산을 휘어 감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아무리 무서운 소낙비가 쏟아지고 폭풍이 와도 산은 무너지지 않는 거예요. 산이 원래 안 무너지는 게 아니라 나무들 때문에 안 무너지는 산이 된 거예요. 그게 흙더미라면 한 번에 쓸려 내려가지 않겠어요. 여러분들이 그런 사람이 돼야 돼요.
그래서 잘생긴 사람은 다 떠나가고 잘생긴 나무는 다 캐가고 못생긴 나무가 소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그런데 그 사람들이 스스로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마지막까지 교회를 지키는 사람이 이 교회를 떠나서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마음을 가지고 살고 교회 교회에서 멀리 이사 가지 말고 교회 가까이 살면서 그래서 사랑하시고 내가 정말 부러운 분들이 있어요. 오늘은 못 나오셨는데 김원효 장로님. 여기서 와서 변화 받으시고 부부가 신앙생활 하시고 여기서 아이들 결혼시켜서 사돈 만나고 사돈들이 모두 교회에 나오고 자녀들이 모두 나오고 심지어 뭐 사돈에 어머님 아버님 이런 분들까지 다 나와서 그래서 주일날 예배당 교회들에서 모두 만나는 거야.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매주 와서 거기서 만나고 거기서 한 하늘 가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우세요. 그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말고 마음을 잘 지켜라 나는 그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마지막 세 번째는 뭐냐 하면 전도의 열정을 저는 보았어요. 그래서 여러분 모두가 다 유능한 전도자는 아니지만 영혼을 향한 뜨거운 열정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그리고 또 여러분들은 예전에 기수에 없던 어쨌든 임직하기 전에 한 사람을 등록시키겠다고 약속을 하고 받으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그게 부담이 되겠지만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한없는 은혜가 기회가 되어서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을 전도한 사람도 있어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셔야 돼. 교회는 전도하지 않으면 그 교회는 죽은 교회요 물은 흐르지 않으면 썩어요. 그리고 고인 물은 흘러가지 않으면 결국은 이끼가 끼고 아무것도 살 수 없는 그런 물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고여 있는 물에 고기가 많이 사는 게 아니라 위에서 물이 내려오고 아래로는 물이 내려가서 그래서 한 열흘 지나면 호수 안에서 열흘 전에 물은 거의 발견할 수 없을 때 그때 그 호수가 건강하고 생명력을 지닌 호수가 되는 거예요.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어차피 이사 가고 죽고 이민 가고 군대 가고 해외에 말하자면 발령 나서 가고 시집 가고 결혼해서 또 지방으로 내려가고 어느 교회나 다 있기 마련이에요. 그거는 좀 흘러가는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들은 또 여기서 잘 훈련을 받아서 어디엔가 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면서 살지 않겠어요. 그러기에는 새로운 사람이 끊임없이 교회에 들어와야 돼요 어디서 들어오겠어요. 여러분들이 끊임없이 전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행히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저를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게 하셔서 은혜 받고 또 영향을 끼치게 하셔서 그래서 여러분들이 복음을 전할 때 도움을 받게 해주셨어요.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너무나 감사한 거죠. 우리 집사람이 항상 얘기해. 열린 교회에서 전도 제일 많이 하는 사람 당신이야. 맞아요. 그 책으로 그 방송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요. 여러분 놀랄 얘기 해줄까요. 우리가 코로나 나기 전에 열린 교회 설교를 구독하는 수에 2.5배가 2년 3개월 동안에 늘었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열린교회 설교를 대놓고 들으면서 은혜를 받고 변화를 받고 이번 주일에도 호주에서 그렇게 은혜를 받은 사람이 찾아오겠다고 하고 이번 주 중에는 일본인한테 편지를 받았어요. 명랑함에 관하여 설교를 듣고 또 그 설교를 번역하면서 자기 인생이 바뀌었다고 일본 사람이 한국말로 편지를 써가지고 보냈어요. 나 일본어로 답장을 해주려고 그래요.
그러니까 그게 하나님의 살아있는 그 말씀이 그래서 시대가 아무리 나빠지고 거칠어지고 이제는 자아를 신처럼 여기고 살아가는 자아 신 중심 시대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어디서든지 간에 권고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고요. 그리고 이 코로나 기간 동안에 얼마나 많은 간증이 일어나는지 몰라요. 이게 너무나 신기해요. 우리가 지금 여리고 전도를 나갔습니까? 우리가 뭘 할 수 있었습니까? 전도 집회를 할 수 있었습니까? 뭘 할 수 온 가족 교회는 아무것도 못했어요. 그런데 이태 동안에 평균 한 해에 150명에서 200명 가까이 등록을 했어요. 그중에 상당수는 여러분들이 전도한 사람들이고 그중에 상당수는 스스로 걸어와서 새롭게 하소서를 들었습니다. 나 이 교회에 다니고 싶습니다. 아니면 기독교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교역자들은 얼마나 뜨거운 열정으로 일하는지 몰라요.
나는 이 우리 교역자들이 자랑스러워요. 내가 여태까지 10년 내에 만난 사람들 가운데는 최고의 교역자들이에요. 어떤 사람이 방송을 듣고 나서 예수 안 믿는데 기독교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편지를 쓰니까 전도국을 담당하는 우리 권 목사 편지를 보더니 자기가 심방 가겠습니다. 어디냐? 울산이요. 예수 믿을지 안 믿을지 모르는데 얼마나 고마워요. 그게. 그렇게 하면서 사람들이 지금 이런 상황에 사람들이 불신의 시대다. 그리고 자아를 신처럼 여기는 자아 신 중심 시대라고 그렇게 아무리 얘기를 해도 여전히 이 세상에는 너무 곤고한 사람들이 많아요. 그리고 쓰러질 것 같은 사람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그 길거리에서 사영리를 전하고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면 우리 같았으면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그 말이나 붙이겠어요. 근데 그 사람이 그게 무슨 이야기냐고 듣고 그 얘기를 듣다가 눈물을 흘리고 예수를 믿겠다고 하는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낙심할 필요가 없어요. 세상이 타락해요? 아이 어두워요. 어두워야지 별이 별이 빛날 기회가 주어지는 거예요. 진리의 손길을 어둠 속에서 내밀면 우리 눈에는 보지 않지만 어디엔가 그 진리의 피 냄새를 맡고 달려와서 우리의 손을 붙드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런 확신 속에서 하나님 앞에 우리는 살아야 되는 거죠.
그래서 아주 이성만 최고로 여기는 시대가 되면 될수록 신령한 세계에 대한 그리움은 더 많이 생겨나게 되고 이렇게 자기를 신처럼 생각하고 떠받드는 시대가 될수록 그 신 노릇하는 게 얼마나 신물 나는 일인지를 깨닫고 주님께 항복하고 싶은 사람들이 수없이 생겨나게 되는 거예요. 그게요 저는 목사님들이 모인 모임에서도 제가 작년에 얘기했어요. 지금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지금은 코로나와 함께 히어져 추수하게 된 밭이 되었다. 사람들이 강팍하고 뭐 기독교에 대해서 뭐 반감을 가지고 있고 특히 개신교는 존경을 안 한다고요? 그래 인정해요. 그리고 뭐 개신교가 잘못한 것도 있지만은 그러나 또 오해한 것도 있죠. 그리고 이렇게 우리는 불교나 천주교처럼 이렇게 모든 거를 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하고 진리를 주장하지 않고 그저 동성애고 뭐고 다 받아들이면서 사는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요. 주장이 너무 주의 주장이 너무 또렷한 거예요. 왜 싫은 거예요. 그게. 왜 안 묻히냐 이거죠. 그러고는 뭐 이기적이다. 자기 중심적이다. 그리고 비윤리적이다. 뭐 표리부동하다. 이율 배반적이다. 그리고 비난을 하는 거죠. 그런 욕은 초등학교에서도 항상 먹던 욕이에요. 이상할 거 하나도 없어요. 확실한 거 하나는 뭐냐면 지금 히어져 추수하게 된 밭이다. 곤고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그들은 다 익어서 추수하게 되는 곡식들이에요. 투투투투투 추수되면서 들어오는구나. 그게 내 눈에 보이는 거예요. 그게 코로나 시대 때의 제 마음이 감동을 받고 벅찼던 이유에요.
실제로 우리들이 전도해보면은 그 놀라는 거야. 사업장도 다 막혀 직장도 해고돼 갈 길도 없어. 뭐 아무 장래가 보이지 않는 거예요. 그런 속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을 발견하게 될 때 아 여기서 내가 인생에 살 길이 있구나 라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는 거죠.
제가 이것을 여러분들에게 적용하자면 그거야 뭐냐면 우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중직자는 전도자다 나는 전도자로서 산다. 이게 보세요. 뭐냐면요 목양하지 않는 장로님들이 장로 일을 잘하려고 할 때 그때 권위주의적인 방해가 되고요 전도 안 하는 구역장들이 구역장이나 계속 하려고 할 때 교인이 끊임없이 흩어져도 그 교인이 교인을 가슴 아파하지 않아요. 전도해 본 사람들만이 한 영혼이 여기 나와 있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이고 이 구역에서 나와 함께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가 하는 것이 가슴에 다가오는 거죠. 왜냐하면 어디에 가서 노력을 한들 그 사람을 불러다가 이 구역 예배에다가 앉혀놓고 은혜를 받으면서 노트에 적으면서 성경을 배우는 사람으로 그런 자세로 바꿔놓겠느냐 그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성령과 그 은혜의 역사가 아니면 불가능한 거예요. 그게 너무 신비해 보이는 거 아니에요.
형편없이 미끄러져서 중직자가 아니라 이제는 신자로서도 가치가 없을 정도로 미끄러지는 사람들 수없이 많아요. 어디에 남의 교회 얘기하는 거야 열린 교회 얘기하는 거야. 이걸 여러분들이 성경에 의하면 경계로 삼아야 돼요. 쓰레기도 그런 상 쓰레기가 없는 인간으로 바뀌는 거예요. 그때는 안 그랬으니까 뽑았죠. 그랬으면 뽑겠어요. 뭐가 무서워서요. 뭐가 무서워. 다른 교회는 무슨 뭐 장로가 되면 얼마를 교회에 내놓고 권사가 되면 얼마를 내놓고 그랬다고 하는데 우리 그런 적 없어요. 임직하는 분들에게 만년필 하나 선물 받아놓은 적이 없어요. 그런 거 교회가 원하지 않아요. 그리고 교회가 무슨 임직식하는데 비용을 여러분들에게 전가시키는 거 봤어요. 몇 천만 원 들어도 교회에서 다 했어요. 그런 거 바라지도 않았어요. 근데 그때는 안 그랬거든요. 그래서 뽑은 거예요. 알고 보니까는 나중에 시간 지나고 보니까 한없이 미끄러져가지고 신자가 아니라 그냥 인간이라고도 불리기에 아까울 정도로 그렇게 개차반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나오는 거예요.
교회 떠나지 마. 왜 그래요? 그 사람들이 예전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그런 게 아니라 나중에 변심해서 그렇게 된 거예요. 왜 그래요? 이게 뭐냐면 영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살아 있다면 그러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소중한 영혼인가 하는 것을 잊어버릴 수 없어요. 그걸 붙들고 사는 거예요. 결국은 전도하지 않는 중직이 마지막에 가는 길이 무엇인가 하는 거예요. 은혜 받지 못하고 은혜 받지 못하고 그다음에 전도하지 않고 열렬히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살지 않는 중직이 그까짓 거 장로라는 이름 타이틀 하나 그리고 안수 집사라는 타이틀 하나 그다음에 권사라는 타이틀 하나가 우리를 붙들어준다고요? 그거 아무것도 아니에요. 썩어가는 사과에다 최상품이라고 붙여놔도 사과가 썩는 건 막을 수가 없는 거예요. 거기다 아무리 베스트라고 그냥 큰 글자로 써서 붙였나 봐요. 그거 가지고 안 되는 거예요. 진짜로 그 사과를 썩게 하고 싶지 않으면 냉장고에 집어넣어야지 안 썩죠. 누구도 예외가 아니에요. 그렇게 미끄러지고 사람이 엉망인 사람이 되는 게 이상한 게 아니라 그 은혜를 처음 임직할 때 은혜를 간직하고 사는 이것이 신기한 거예요.
그래서 결국 남의 영혼을 위해서 눈물 흘리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울 수 없어요. 그래서 결국 자기의 영혼을 위해서 울지 않으니까 뭐 사람들의 단점이나 보내고 교회에 시비거리나 생기는 거야. 그렇게 해가지고 마지막에 그렇게 그 추루한 인생을 살다가 가면 이게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에요. 이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사람들이 되지 말라 이 얘기예요. 여러분들이 이것을 적용하자면 열렬한 전도의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이 되라 얘기합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 그게 영혼을 끊임없이 전도하고 남의 영혼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동안에는 그것이 나의 영혼의 건강을 보증해주는 거야. 보호해주는 거예요. 그것으로서 나는 죄의 저항력을 이기면서 그러면 사는 거야.
권사님 되면 모든 것이 다 좋아질까요? 그런 것도 있겠죠. 그러나 늙죠.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리죠. 가족들에게 여러 가지 이제 남편과 함께 아내와 함께 늙으면서 그러면서 온갖 질병 치매 많은 것들이 찾아오잖아요. 연어가 이제 바다에 나와서 먼 바다에서 다 하고 알을 낳을 때쯤 되면 다시 연어가 회귀해서 남대천으로 올라가잖아요. 모천으로 회귀하잖아. 근데 수많은 낚시꾼들의 유혹을 빠져 지나가고 심지어 폭포수원에는 자기 몸을 부딪히면서 그러면서 뒤집히면서 그러면서 마지막에 모천으로 올라가고 거기서 새끼를 낳고 그래서 일생 연어의 일생을 맞춰요. 근데 결국은 그렇게 치열하게 자기의 원래에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그 집요한 귀소의 본능이 아무것에 의해서도 꺾이지 않는 것처럼 이게 참된 신자가 되어서 살아가야 되겠다 라고 하는 이 영적인 귀소의 본능이 무엇에도 꺾이지 않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야 돼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마지막까지 열렬한 그 전도사의 삶을 살아야 되는 거죠. 눈을 들어서 자신만 보지 말고 곤고한 사람들을 보고 그리고 집요하게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산다면 여러분들이 마지막에 죽는 순간에 정말 편안하게 정말 주님의 품에 안기실 것이다. 그렇게 생각돼요.
그래서 한신교회 이종표 목사님이 마지막 돌아가실 때 할렐루야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우리 이어령 교수님은 마지막에 돌아가실 때 아름다웠다 돌아가셨어요. 결국은 하나님 앞에서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죽는 그 순간을 한 순간을 위해서 일생을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거예요. 그 순간에 두려움과 공포에 떨면 잘못 산 것이고 그 순간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내 인생을 인도하신 우리 하나님 찬양 하면서 죽을 수 있는 그 사람이 진정으로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산 거예요.
보세요. 제가 열린 교회를 개척할 때 나이 서른아홉 살이었고요 만으로는 서른여덟이었어요. 그 서른여덟이 시작되는 첫 날이었어요. 사십대 때 설교하고 강의할 때 혜성같이 놀라운 사람이 나타났다고 다들 그랬어요. 교회에서 근데 지금도 교회 마당의 사무실에 이렇게 있는 액자에 보면 조선일보에서 2003년도에 나를 인터뷰하면서 기독교의 영파워 하고 샛별이라고 그 기사를 실은 취재한 게 있어요. 너무 기억에 남아서 이렇게 액자에다가 인쇄해가지고 꽂아놨어요. 그게 보면 진짜 딴 사람이 그 사진에 있어요. 근데 그게 벌써 여기 이사 온 지 1년 뒤였을 때 정확하게 20년 전에 순간에 지나가는 거야. 지나간 날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앞으로의 날도 그렇게 지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을 후회 없이 이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영혼을 사랑하며 살다가 마지막에 여러분도 똑같이 ‘할렐루야 정말 아름다웠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말 제 일생에 열린 교회와 함께 했기 때문에 저는 정말 원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죽을 때까지 하나님 앞에서 신앙을 간직하며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