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목회자 세미나 폐회예배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행 20:17-22)
녹취자: 문미경
어쩌면 순교할지도 모르는 예루살렘 행을 결심하면서 밀레도라 하는 곳에서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서 장로들을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유언과 같이 오늘 설교를 남기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아시아에서의 사역을 정리하면서 그때 사역이 어떤 사역인지를 고백하는데 모든 겸손과 눈물이었습니다. 아마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사도의 그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런 사람이 그런 위대한 사도가 자신의 아시아에서 3년이 넘는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그때 사역을 돌아볼 때에 자기가 생각난 것은 겸손과 눈물 이였습니다. 위대한 사도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이것은 복음사역의 본질이 결국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큰 능력이 있었지만 그것이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고 뛰어난 신학자였지만 그것 때문에 겸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도바울이 겸손하다는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아는 복음에 대한 겸손이고 또 한 가지는 끊임없이 험한 사람들과 함께 사역하면서 사도바울이 그 속에서 자기가 고린도후서 1장에서 고백한 것과 같이 살 소망이 끊어지고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고 또 만물의 찌끼같이 여김을 받은 그런 경험이 바로 사역에서 오는 겸손의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누가 비루하게 낮아지고 비참해지기 원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우리 마음속에는 모두 하나님을 닮아서 하나님처럼 존귀하고 높아지기 원하지 비루하고 비참하고 좌절하고 꺾어져서 겸비해지고 낮아지고 그러길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목회사역은 그것을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면 겸손과 함께 짝으로 나오는 것이 눈물입니다. 사도바울은 아주 냉정하고 과격하고 그런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사랑의 의미를 알고 그러면서 깊이 눈물을 배운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자기와 같은 죄인을 살려주신 십자가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고 또 하나는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시련과 고난, 밖으로부터는 핍박, 안으로부터는 끊임없는 갈등에서 오는 고난이었고 시험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우리의 목회사역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능력이 많으면 고난을 덜 받고 힘들게 하면 일도 그렇게 편하게 할 거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련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면 많은 어려움과 환난을 만나게 되고 고통을 겪게 되고 그리고 깊이 아파하게 됩니다. 결국은 하나님이 우리가 어디에 있어서 어떻게 사역을 하던지 복음사역은 하나님 의지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주시는데 특징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함께 사역을 해나갈 때 비록 있는 곳은 다르고 사역을 하던 종류는 각각 다르다고 할지라도 결국 마지막에 하나님이 우리를 빚으시고 만지실 때에 우리 사역이 모든 것이 우리 뜻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그런 시련과 역경 속에서 겸손을 배우고 눈물을 배우면 그러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어간다면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낙심하지 마시고 오랫동안 했는데 잘 안되더라도 그것에 또 너무 믿지 마시고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언제든지 진실하게 헌신하고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회사역에 복을 주시고 또 적어도 나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 순전하게 보존될 것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성실하게 죽든지 살던지 우리의 목회사역에 헌신해서 주님께 인정받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