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3.2 농어촌목회자 세미나
제5회 농어촌 목회자 부부 세미나 저녁집회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누가복음 11:1)
저는 어제 목사님들께 목회의 두 기둥이 있는데 한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최선을 다해서 설교하는 것과 또 하나는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사도들이 되찾았던 자신들의 직무이고 사도들이 되찾은 이 직무는 자신들이 스스로 만들어서 찾은 것이 아니라 선지자들이 하던 고유한 그 일을 다시 되찾은 것이다 이런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짧은 성경구절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게 되었는지 그 배경이 실려 있습니다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제자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준 것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기도에 관한 최소한 네 개의 치명적인 교훈이 들어있습니다. 우선 첫째는 기도하신 당사자가 예수님이었다고 되어있습니다 우리도 기도하고 예수님도 기도합니다 우리는 왜 기도합니까? 우리는 시시때때로 죄를 짓기 때문에 참회하고 기도 속에서 그 용서를 받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고백하기 위해 기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었습니다 우리가 또 기도하는 것은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이죠 할 일은 많이 있는데 우리의 능력은 거기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주님께 매달리는 것이죠 그러나 누가복음 3장에 보면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을 한량없이 받으셨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니 죽은 자도 살아나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의 주님인데 무엇 때문에 기도가 필요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지혜가 모자라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교만을 버리고 나를 지도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지혜에 있어서 뛰어나신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몸으로는 사람과 같이 되었으나 본질로는 하나님이신 분이었습니다 어느 모로 보든지 예수님은 기도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마음을 다하여 간절히 기도하시는 것이 그분의 인격의 특징이 되도록 그런 삶을 사셨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사도는 말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그와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본질상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가지신 인격은 사람의 인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격 이었습니다 그 하나의 인격 속에 두 가지 성품이 깃들었는데 하나님의 신성과 인간의 인성이 깃들여있었던 것이에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겸손히 자기를 비어 하나님의 성품을 사람의 성품 아래다 감추이시고 그리고 하나님이시면서도 스스로 무엇인가 결핍한 사람처럼 주님을 의지하면서 살기로 선택을 하신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세 가지인데 첫째는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를 위해 죽지 아니하시면 우리의 죄를 속하실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화목제물이 되신 것이죠 주님이 오신 두 번째 이유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얼마나 큰 것인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 뿐만이 아니라 그 분이 보여주신 모든 삶도 복음이에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성육신하신 생애를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보여주신 것이죠 예전에는 듣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예수님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하나님으로서 우리 인간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눈에 볼 수 있도록 또렷이 드러나게끔 그렇게 주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해 주신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본을 끼치기 위해 오신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참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으로 사람다운 사람이 누구인지를 예수님의 지상생애를 통해서 보여주신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이시면서 또 한편으로는 사람이 되어서 우리에게 따라가야할 참된 신자의 도리를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실려고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셨다고 하는 것 ,기도하신 분이 예수님 자신이셨다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큰 도전을 주는 것입니다 이론적인 무신론은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지만 실천적인 무신론은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도 기도하셨으니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주님보다는 내가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라는 은연중의 고백이 아니겠습니까?
(예화)육군사관학교 앞에서 방위병들이 출퇴근을 하는데 9시까지 들어가야 되는데 9시 5분에 와서 위봉소에서 헌병이 소리를 질렀어요 “이놈자식 몇 신데 이제야 기어오는 거야!”그러더니 배를 쿡쿡 찌르는 거에요 “야임마 네가 별 넷이야 ”가만히 있어 “ 별 넷이냔 말이야?”“무슨 소린지 모르겠습니다” “뭘몰라 임마 교장선생님이 별셋인데 벌써 왔는데 넌 임마 별 넷이야” 예수님도 기도하셨는데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예수님보다 높은 분입니까?
(찬양)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예화) 여러분이 이름만 대며 다 아는 유명한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분의 간증을 어디서 우연히 전해들었습니다 이 분이 신학교를 나와서 아주 외진 시골에서 목회를 하시다가 서울에 올라와서 변두리에서 목회를 하기 시작했는데 하나님이 목회에 복을 주셔서 많은 성도들이 모여서 지금은 몇 만 명의 교인을 목회하는 그런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근데 그 분이 그 시골에서 목회 하실 때에 이야기 랍니다 뭐 그분이 계실 때 벌써 그러니까 한 40년 전쯤 되었을 테니까 지금 시골은 그래도 양반이죠 40년 전에는 서울이 시골같앴습니다 제가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저 초등학교 1학년 들어갈 때까지 아직 고려대학교 앞에 아스팔트가 안깔렸습니다 여름이면 온통 진창이 되어서 사람들이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없이는 못산다고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시골이 오죽하겠습니까 제가 80년도에 전도사 생활을 했는데 또 루삥깐 집에서 살았습니다 요즘은 젊은이들은 루삥이라는게 무슨 소린지도 몰라요 타마구족입니다 타마구족 그러니 40년전의 시골이 오죽했겠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이 보내주셔서 그저 굶느니 먹느니 하면서 목회를 하는데 이건 어떻게 예배는 드리겠는데 예배당을 고칠 돈은 없는 거에요 어느 날 비가 쏟아지는데 예배당에 가보니까 교회가 구멍이 나가지고 비가 새는데 비만 새는게 아니라 그 산에서 떨어진 흙부스러기가 같이 쏟아지더라는 거에요 온 교회당에 여기도 줄줄 저기도 줄줄 그러면 웬만하면, 나 같으면은 그날 밤에 뭐 밤에 뭐 수없이 쏟아지는게 그걸 밤에 어떡하겠어요 밤주에 내버려 두고 그 다음날 아침에 교인들을 데리고 하던지 사모를 데리고 던지 깨끗이 씻고 치우고 도시 교회에 편지라도 보내서 우리 교회가 이만저만하니 단돈 5만원씩이라도 보내주쇼 그래서 고치지 않겠어요 근데 이 양반이 그렇게 흙하고 물하고 쏟아지는데 거길 엉금엉금 기어가서 거기서 무릎을 꿇었답니다 그러니 이게 머리니 등으로 막 쏟아지는 거죠 그래서 기도를 했대요 “하나님, 주님이 저를 여기에 보내주셨지만 종이 불비해서 이렇게 예배당도 수리를 못하고 이러고 지냅니다 다 나의 잘못입니다 여기서 회개하고 저 쪽 떨어지는 곳으로 도 기어가서 거기 엎드려 또 기도하고 밤새도록 하고나니까 이게 흙하고 물하고 등에 잔뜩 쌓인 거에요”
우리 주님은 주님이신데도 당신이 몸소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는 것은 우리 목사의 참 중요한 선지자적 직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본을 보여주셨고 제자들도 이 본을 사도들이 된 다음에도 본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도시 목회에 바쁜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고 난 제일 허무한 게 그 조찬모임이에요 온통 새벽에 나오라는 거에요 밥먹여줄테니까 아니 새벽시간에 기도를 해야지 그렇게 돌아다니면 근데 한두군데가 아니라 수도 없어요 저도 어차피 국가 조찬기도회에 갔다왔습니다만 근데 기도는 안하더라고 그냥 예배드리고 말지 근데 그것이 목사의 가장 중요한 직무입니다 그래서 조금 학식이 부족하고 교회 정치를 못해도 기도를 많이 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여러분 참 놀랍게도요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그래도 목회를 잘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한 번씩 실패했던 분들입니다 그 속에서 뭘 배웠겠어요 하나님을 의지하고 매달리는 기도를 배운 거죠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 목사의 설교나 가르침을 보면 그 목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게됩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목사님은 무슨 설교를 해도 기도를 하라고 말을 하고 설교가 끝맺어집니다 성경을 사랑하는 목사님은 무슨 설교를 해도 성경말씀을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교회를 위해서 깊이 사랑하고 자기를 희생하는 목사님들은 나는 아파도 교회는 아프게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전도하는 목사님은 무얼 하든지 간에 꼭 전도하라고 교인들에게 가르치고야 맙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목사가 되야 되겠습니까? 다 가르쳐야 되니까 다 하는 목사가 되야 됩니다 그러니 아무리 어눌한 말이라도 호통을 치면서 기도하지 않는다고 교인을 야단치고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고쳐주고 이렇게 하는 것이 기도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줄 수 있는 목사님은 좋은 학교 나오거나 목회 경험 많은 목사님이 아니라 누굴까요? 자기가 직접 기도하는 사람, 그래서 새벽이면 이 교인들이 이렇게 게을러서 어떡하나 하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심정을 가진 목사 이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에요 모든 친밀한 설교와 담대한 설교의 근원은 자신이 먼저 그렇게 살아가는 양심의 깨끗함에서 나오는 것이에요 그러니 만약에 교인들이 거의 기도하지 않는데도 그런 사람들을 그냥 양떼라고 여기고 내버려 두고 그 교인들하고 밥이나 먹으러 다닌다면 우린 목사가 아니지요 그러니 우리가 먼저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이 기도한 장소입니다. 한 곳에서 기도하셨다고 되어있는데 헬라어 성경에는 어떤 곳에서 기도하셨다고 나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우리에게 두 가지 사실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신 시간은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언제였죠? 새벽미명과 깊은 그리고 깊은 밤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장소는 고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복음서를 보면 어떤 곳에서는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기도하셨다고 되어 있고 어떤 곳에서는 산에서 기도하셨다고 돼있고 또 어떤 곳에서는 강에서 기도하셨다고 되어있고 또 어떤 곳에서는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고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예수님의 생애가 얼마나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 순례자의 삶이었는가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곤고한 영혼이 있는 곳이라면 거기가 어디든지, 진리의 말씀을 모르는 무지한 인간들이 있는 곳이라면 거기가 어디든지, 병들어 신음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거기가 갈릴리든지 사마리아든지 주님은 찾아가셔서 그들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병을 고치시고 그리고 인생의 모든 사건들을 상담해주셨습니다 그러니 주님이 주무시고 잡수시는 장소가 일정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었거니와 때로는 오랜 행로에 물 한 잔도 제대로 드시지 못할 때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생애를 생각해보십시오.
[목회자 세미나 저녁집회 2010.3.2]
한 15년 전에 조용히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왜 예수님은 우리보고 그렇게 힘든 본을 받으라고 새벽 미명 그러니까 아직 깜깜한 새벽과 깊은 밤에 기도하셨을까 더 찔리는 것은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니라 왜 그런 힘든 시간에 기도하셨을까 아침먹고 맑은 정신에 아홉시서부터 한 열한시까지 기도하셨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뜻이 있을까 커다란 사실을 발견했어요 거기에는 아무 뜻도 없다는 거에요 무슨 뜻이냐 하면 낮에는 기도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거죠
병자들이 가득 모였는데 기도하고 있으면 병자는 누가 고칩니까 무지막지한 인간들이 진리의 말씀을 원하는데 그 시간에 나는 기도할꺼다 하고 엎드려 계시면 그 사람들은 누가 가르칩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아직 죄인들이 일어나지 않은 새벽으로 기도시간을 밀어넣으시고 죄인들이 모두 잠들어 자는 깊은 밤으로 기도시간을 몰아 넣으시고 당신은 덜 주무시면서 기도하신 겁니다. 주님을 따르겠노라고 하는 사람에게 주님 말씀 하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건만 인자는 머리 둘곳이 없느니라 고 말입니다.
(찬양) “머리 둘 곳조차 없으시던 혼자 기도하시던 주님 생각해요”
어렸을 때에는 기도가 그렇게 소중한 질 몰라서 안하고 힘이 펄펄 솟는 젊은이 때에는 마음에 욕심이 많고 호기심이 많아서 시간과 체력은 되는데 마음이 기도에 집중이 안되서 못합니다. 목회가 안될 때는 근심과 염려가 많아서 기도가 안되고 목회가 잘되서 교회가 커지면 일이 너무 많아서 기도할 시간이 없습니다. 일도 별로 많지 않고 나이도 어느 정도 들고 나면 기도할 마음은 있는데 몸이 늘 불편해서 오래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일들은 죽을 때까지 계속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홈그라운드가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정체는 영적 전투에요 이런 영적 전투와 같은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기도하기에 좋았던 환경은 한 번도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끼치신 이 본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주님이, 머리 둘 곳 없는 생애를 사신 주님이 이렇게 깊은 밤, 새벽 미명에라도 당신을 쏟아부어 하나님 앞에 기도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가 섬긴들 주님만큼 뼈가 부수어지도록 섬기겠습니까 목회하다 어려움을 당하면 우리가 예수님처럼 목숨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핍박을 받겠습니까 그러니 환경의 핑계를 하지 말고 우리가 몸소 주님 앞에 더 많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는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그랬는데 이 마치시매라고 하는 희랍어 단어는 원래 더 좋은 뜻은 ‘기도하고 쉬시매’ 이런 뜻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에 쉬신 것처럼 그렇게 예수님이 기도하고 쉬셨다고 하는 이야기니까, 이것은 예수님의 이 기도가 짤막한 공중전화 거는 것같은 기도가 아니라 혼신의 힘을 다 쏟아 부어 주님 앞에 온 마음을 다해 부르짖은 장시간의 기도였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기도의 목표는 ‘길이’가 아니라 ‘깊이’입니다. 그런데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려면 그물의 길이가 길어야 하듯이 깊은 기도를 하려면 장시간이 필요합니다. 물론 어떤 때에는 영혼의 상태가 아주 좋아서 짧게 기도했는데도 깊이 기도하는 시간이 있는가 하면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서 장시간을 헤매며 기도하려고 애를 썼는데도 얕게 밖에 기도를 못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는 시간의 길이와 기도의 깊이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깊은 기도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고 또 깊이 들어간 기도는 짤막하게 끝낼 수가 없이 주님이 끊임없이 기도제목을 주시기 때문에 그 기도가 예상을 깨고 아주 길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한 없이 기도하고 눈을 떴는데 30분밖에 안지나갔지만 어떤 때는 잠깐 기도한 것 같은데 너댓시간이 지나가는 적이 있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은 장시간 자기의 마음을 즙을 짜듯이 짜서 주님 앞에 바치는 그 기도를 힘들어 하고 문제가 생기면 짧은 시간에 자기가 짧은 기도로써 하나님의 큰 능력을 이 세상에 불러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이 병든 자들을 고친 그러한 변형된 기도,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 날이 어두워지자 도망가는 가나안 원주민을 쫓기 위해 하늘을 향하여 해도 멈추고 달도 멈추라고 명령하여 응답을 받은 것처럼 그렇게 짧은 기도로도 큰 응답을 불러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믿음으로 그렇게 기도한다고 해서 그런 놀라운 능력이 역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거의 기도하지 않던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한 번에 그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굳센 믿음이 있는 것처럼 부르짖지만 기도는 허공을 돌아서 메아리 칠 때가 많은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그렇게 짧은 기도로 큰 능력을 불러온 것은 사실이지만 출애굽기 33장을 보면 회막에서 모세가 돌아간 때에도 그는 홀로 회막을 지키며 하나님 앞에 기도의 연단을 받아온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의 비밀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하시는 거죠. 그래서 장시간의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 번에 오랜 시간을 기도할 수도 있고 나눌 수도 있지만 매 순간 마음을 모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그 마음의 항시적인 집중과 함께 시간을 정해놓고 하나님 앞에 어디서든지 간절히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의 시간이 우리에게는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목사님은 책에서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당신이 기도하는데 사람들이 방해를 하면 당신 기도실에다가 이렇게 써놓고 기도하라고 말입니다. “기도로 사역하는 중입니다.”라고 말입니다. 교인들은 설교 속에서도, 심방 속에서도,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교회를 경영하는 행정 속에서도 목사가 기도하는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 금세 알아봅니다. 비록 학식이 나만 못하고 그리고 나보다 뛰어난 재능이 없어도 그렇게 목사가 기도의 사람이면 승복을 합니다. 열린교회를 하고 17년이 지났는데 다시 개척을 하면 조금 더 잘할 것같은 느낌이 들어요 해봐야 알겠지만은 그런 느낌이 들어요 그런데 한가지 분명히 깨닫는 사실은 있어요 그것이 뭐냐면, 교회에 문제가 아무리 많은 것 같아도 그 문제를 모두 지붕에 떨어지는 빗물을 홈통으로 함께 모으듯이 그 문제를 모두 모으면 하나의 물 웅덩이로 흘러가요 그게 뭐냐하면 ‘목사야 네가 기도하거라’ 그 웅덩이로 흘러가는 겁니다. 그래서 문제가 많은 것 같아서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될지 모를 때 아예 그 문제를 내버려 두고 엎드려서 목숨을 걸고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찬양) “마음이 어둡고 외로울 때 주님 예수님을 나 생각해요 머리 둘 곳조차 없으시던 혼자 기도하시던 주님 생각해요”
그러면서 간절히 기도하면 그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괴롭죠. 그래서 목회를 하다보면 밤에 잘들고 아침에는 하늘나라에서 눈뜨고 싶을 때가 있는 거 아니에요 근데 그렇게 목회자가 눈물을 쏟으면 그니까 목회는 참 잔인한 거에요. 그래서 목사가 그런 자기 죽음 속에서 뼈아프게 눈물을 쏟으면 그 기도하는 눈물이 교회 바닥에 흘러요 흘러서 쓴뿌리들은 그 물을 먹으면 죽어요. 그리고 좋은 씨앗들은 그 물을 먹고 싹이 터지는 거에요
(예화)나도 어제 들었는데 목회하다가 젊은 목사가 하도 고달프니까 선배목사님을 찾아갔대요 “목사님 우리 교회에 권사하나가 있는데 요렇게 나쁜짓을 하고 이렇게 못된 짓을 하고 이렇게 나를 괴롭히고 저렇게 나를 갈궈서 도무지 못살겠습니다.”그랬더니 선배 목사님이 그러대 “그 권사 잘라버리고 싶지? 잘르면 두가닥 나온다.”
“제가 정말 이 교회에서 이러고도 목회를 해야 할이지 모르겠습니다” 그랬더니 “옮기고 싶지 여기서 안되면 저기서도 안된다.” 질문은 많은데 대답은 간단해 “잘르고 싶지 잘르면 두가닥 된다”
어디 간들 어디 간들
(찬양)“뉘게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
누구에게는 없겠어요 누구에게는 그 때에 이 사람 저사람 붙들고 말을 옮기면은 목회는 아주 추해집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나는 벙어리요 귀머거리요 장님입니다 그렇게 주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 주님은 때로는 우리에게 가장 아파보이는 환경을, 아픈 환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큰 사랑과 위로를 보여주시는 거죠
(찬양)“어디선가 들리는 주님의 음성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
넌 내꺼다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거에요 우리가 목회하다 보면은 참 어저께 그 목사님 말씀처럼 집사 자기가 집사될까봐 하나님이 목사 만드셨다고 그런 목사님처럼 그렇게 목회자를 괴롭히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같은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십시오 그 사람이 내 목회 보태주는 겁니다 보태주는 겁니다 근데 그게 뭐냐면 목회 하면서 그런 사람들이 있는 목사들은 눈치를 봐 그 눈치를 보는게 약이야 눈치를 보니까 교만해 질 수가 없는거야 ‘이거 또 저 인간이 꼬리 잡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하고싶은대로 못하고 엎드려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거에요. 우리 연세드신 목사님들은 아실꺼에요 우리나라가 여러 종류의 별을 키웠는데 박정희 대통령 때 하이튼 먹고사는 문제가 너무 어려우니까 과학자들을 다그쳐서 종자 개량을 했는데 통일벼를 만들었습니다. 이게 30%가 수확이 더나옵니다 굉장해요 근데 좀 단점이 알곡이 많이 떨어져요 추수할 때 근데 그래서 이삭줍기를 하잖아요 그래갖고 전국을 30%가 얼맙니까 열가마 나던 농지에서 13가마가 나는데 그러니까 막 전국을 통일벼로 통일한 거에요 그랬는데 이게 병충해가 든거에요 그러니까 전국을 강타해버린 거에요 이렇게 똑같은 품종이니까 삽시간에 불같이 번지는거에요 그래서 그 때 큰 교훈을 얻었죠 아 이게 농사를 이렇게 지으면 안되는 구나 그래서 지금도요 한 사람이 큰 논을 할 때 쭉 그렇게 안합니다 여기는 통일벼 그 다음에 쭉 띠여서 상당한 거리에 또 다른 종류 쭉 띠여서 다른 종류 섞어서 합니다. 신기한 게 병충해가 똑같이 병충해 먹는 것도 있지만은 병충해가 A라는 병충해가 왔는데 이게 통일벼를 강타해가지고 다 말려 죽여버리는데 아 이게 다른 종자에는 어림도 없는 거에요 이 종자가 강해서 그 병충해를 이겨버리는 거에요 그러면 거기서 딱 멈춘단 말이에요 그 교회에도 자기생각하고 똑같은 사람에게 에워쌓여
있으면 안됩니다 반드시 나중에 큰 문제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목사를 갈구거나 혹은 목사에 대해서 자꾸 옳은 얘기를 하고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을 내 목회에 부주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야되요. 그래서 그 사람이 항상 옆에 있어야 해요 그게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요. 근데 그런 사람하고 같이 있는 게 쉽지가 않죠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이 개척교회를 시작을 했는데 한 1년 했는데 교회가 별로 잘 안됐어요 근데 교회에서 폭행사건이 일어나가지고 목사님이 경찰서에 붙잡혀 들어갔어요 왜냐하면 그래도 자기는 목회를 올바로 한답시고 개척 하자마자 돈통을 어느 집사에게 맡겼는데 그 교회 전기세도 내고 불세도 내고 물세도 내고 여러 가지 쓸 돈이 많은데 돈 좀 써야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재정집산데 지출을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나가는 거야 목사님이 하도 화가 나니까 이자식이 그러고 주먹을 날렸는데 옥수수가 한꺼번에 네 개가 빠졌대요 그래 결국은 폭행 혐의로 들어갔어 그러니 누군들 그런 게 없겠습니까 오죽했으면 제가 아는 교수님 한 분은 어린 시절 목회자 가정에서 자라났는데 아버지가 한없이 착한 거에요 그랬더니 교회의 교인들이 한없이 자기 아버지를 괴롭히는 광경을 본 거에요 죽어도 목회자 되나봐라 그러고 결국엔 목회자가 안됐는데 그 양반이 뭐라 그러냐면 너구리 같은 장로들, 족제비 같은 권사들이라고 표현을 하더라고. 자기 아버지를 얼마나 괴롭혔으면 이 어린 아이의 마음에 팍 그렇게 뇌리에 박혀버린 거에요 어디 장로가 너구리 같은 사람만 있겠고 족제비 같은 사람만 있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괴롭히는 광경을 본 거에요 그러니 그런 사람이 우리의 목회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들과 같이 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기도가 필요하겠습니까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 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그래서 장시간의 기도가 필요한 것이에요 오래도록 많이 기도하셔서 이기시는 목회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마지막 네 번째가 예수님의 기도는 제자들이 배우고 싶은 감동을 주는, 감화력을 끼치는 기도의 본이었습니다. 본이었습니다. 옛날에 저희 교회에 목사님 하던 분이 있는데 어느날 만났는데 그래요 “목사님 나는 예전에 있던 교회에서 나를 늘 필요로 해서 연락이 옵니다”“그래요”“근데 기분이 별로 안좋습니다”“왜요”“아니 뭐 내가 그 교회를 떠났으면 뭐 내 설교가 그립다던지 뭐 아니면 내 강의가 듣고 싶다던지 그래야 되는데 어이 아무개 목사님 컴퓨터 망가졌을 때 이거 어떻게 고쳐? 좀 여기 빨리 와서 고쳐주고 가면 안돼? 그런 걸 물어본다는 거야 우리가 한 교회에서 목회하다가 결국은 성도들과 헤어지지 않겠어요? 그 때에 성도들의 마음에 우리가 어떤 인상으로 남을까 뺀질뺀질하던 목사, 아니면 맛있는 거 참 잘 먹던 목사, 놀러 다니기 좋아하는 목사, 아니면은 교인들하고 사우나 다니기 좋아하던 목사 어느 교회는 사우나에서 당회를 한다그러더라구요 진짜 모든 걸 벗고 한 번 하는거죠 어떤 사람으로 기억이 남을까? 말만 빤짝빤짝 잘하던 목사, 교회 건축할 때 수단이 좋아서 은행에서 돈 잘 빌려오던 목사 그렇게 기억에 남을까 언제나 기도하던 목회자, 깊은 밤 교회를 찾아와도 예배당 한 구석에서 우리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 주던 우리 목사님, 교인들이 가장 가슴아파하는 일을 자기 자식이 당한 일처럼 가슴아려하면서 우리를 위해 울어주던 울면서 기도해주던 우리 목사님, 오해를 받을 때나 다른 사람에게 비난을 받을 때에도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만 진심을 토로하던 우리의 목자
일제 시대때 동경에서 유학을 하고 그 당시에 유학을 했다는 건 하늘이 낸 사람들이죠 그리고 신신학을 배워서 그리고 평양에 있는 제법 큰 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을 했답니다 그렇게 공부 많이 하고 신식 신학을 배운 분이 와서 유창하게 설교를 하면서 목회를 하는데 교인이 자꾸 줄더랍니다 그러니까 이게 시찰회에서 문제가 됐어요 옛날에는 진짜 시찰을 했습니다 그래서 시찰회 위원들이 그 교회 시찰을 나갔습니다 “왜 이 큰 교회가 교인이 계속주느냐” 뭐 평일날 갔으니 텅빈 교회당을 시찰을 해서 무슨 원인을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 그저 돌아보고 기도하고 나오는 길인데 마당에 나이 많이 든 사찰 집사님이 있더래요 그래 그 시찰장 목사님이 나오면서 물었답니다 “이보시오 집사님 이교회가 예전에 꽤 큰 교회였는데 지금 온 목사님은 공부도 많이 하시고 옛날 목사님 보다 설교도 더 잘하신다는데 왜 교인이 자꾸 줍니까?”그랬더니 “아유 목사님 나는 교회에서 쓰레질이나 사찰인데 이 늙은이가 뭘 알겠습니까 난 잘 모르겠습니다”“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죠” 그러고 이제 막 가려는데 혼자 중얼거리드래는 거에요 “근데 좀 달른게 있긴 있는데” 목사님이 갑자기 돌아서서 “그게 뭡니까?”“예전에 목사님은 오래도록 기도 하셨구요 이분은 별로 기도를 안하셔요” 그 때 시찰회 위원들이 아 결론은 그것이었구나 그래서 교인이 주는 원인을 발견하고 돌아갔더라는 거에요 그렇게 해서 우리가 교인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줄 수 있는 본을 끼칠 수 있겠습니까? 교인들은 하나를 면제해 주면 세 개를 벗어 버릴려고 하고 그리고 한 번만 봐주면 세 번, 네 번 봐달라고 합니다 그러니 목사 자신이 각오를 하고 교인들을 틀어쥐고 목숨처럼 줄다리기를 하면서 이 사람들을 주님의 양떼이니, 이 사람들이 주님의 양떼이니 주님이 보시기에 올바른 사람들로 키워야 겠다 맘먹고 그렇게 기도를 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심으로 일주일을 기도생활 하고 난 후에는 담대하게 “기도합시다! 기도만이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이며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견하게 하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외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목사님들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에게 네 가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가르침대로 목회를 해서 주님께 큰 영광을 돌려드리는 선한 목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