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자 수련회 아침설교1
“예수께서 베나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한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 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 한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막 14:3-9)
녹취자 : 이경순
유명한 향유를 부은 여인의 이야기고 아마 우리 함께 생활하면서 여러 번 이 말씀을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다시 나누고 싶은 것은 세월이 흘러갈수록 우리의 목회적 섬김의 순수성을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를 이 여자의 모본이 우리에게 잘 말해주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제일먼저 오늘 이 무대는 베다니의 나병환자 시몬의 집이었습니다. 나병환자는 그 당시에 이스라엘 회중가운데 있을 수 없었으니까 아마 병 고침을 받았을 것이고 어쩌면 예수님이 고쳐주셔서 나은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주인공은 이 사람이 아니라 예수가 거기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향유를 준비해온 어떤 여자였습니다. 이 여자를 이곳에 오게 만드는 것은 예수님께로 부터 받은 용서가 시킨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와 같은 죄인을 용서해 주신 예수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에 대한 감사가 이 여자로 하여금 예수님께 향유를 준비하여 나오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목회사역을 할 때에 가장 가슴에 새길 것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맨 처음 목회사역으로 불러준 동기입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용서받았다는 사실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고 구원해주신 은혜 때문에 목회사역을 시작한 것입니다.
어제 정홍주 선교사가 신대원을 졸업하고 처음 만난사람입니다. 젊었을 때는 살도 더 있었고 해서 전두환 씨하고 완벽하게 닮았습니다. 그래서 별명이 그때 오공 때였기 때문에 전두환을 무지하게 미워할 때였는데 그 친구별명이 항상 각하 이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 친구를 통해서 거의 30년 전에 만났던 친구들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나보다 두 살인가 어린 형제가 있었는데 그때도 꾀 나이가 많은 측에 있었는데 아직도 장가가 못 갔다고 합니다. 57인가 그런데 여기 나이 많은 총각전도사들 생각해서 저렇게 오랫동안 있으면 안 되는데, 또 하나는 서울대 법대를 나오고 정말 똑똑했는데 총신에서 유일하게 석사장교시험에 붙은 학생이었는데 최근에 들은 소식에 의하면 결국은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무신론으로 돌아서서 불란서에서 가서 공부하고 와서 시간강사도 하고 이혼하고 그런 이야기들 몇 케이스들을 들으면서 참 모든 목회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초가 복음을 통해서 자기가 하나님 앞에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 그 토대가 없이는 누구도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이 공부했던 여러 명의 형제들이 너무 비참하게 사는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겠습니까? 땅을 파겠습니까?아니면 세속적인 직업으로 돌아가겠습니까? 결국은 마지막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목회밖에 없는데 그런데 그 토대가 확고해야 합니다. 그것은 이 벌레 같은 나를 위해 주님이 죽어주셨구나 나를 용서해 주셨구나. 나는 용서받은 죄인이다 이 의식이 우리 안에 가득할 때 그때에 우리들이 목회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다가 힘들면 집어치우고 싶고 뛰쳐나가고 싶고 불평하고 하는 그런 모든 것들이 어디서 생겨난다고 생각합니까? 결국은 자기가 용서받은 죄인이고 이렇게 목회하면서 사는 것은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는 것을 잃어버리고 교만한 마음이 되었을 때 모든 십자가가 너무나 무겁다고 생각이 되고 왜 나만 이 고생을 해야 되나 혹은 왜 나만 왜 부당한 대접을 받나 하는 못된 생각들이 고개를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해 주셔서 목회자로 불러주신 은혜가 참 감사하다 이게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롭게 다가오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이 여자를 가만히 보면 이 여자는 용서받은 것에 대한 깊은 감격이 있었을 뿐 아니라 이 여자는 주님 앞에 최고의 것으로 섬기고자 하였습니다. 그게 바로 이 향유입니다. 그러니까 이 향유가 삼백 데나리온이라고 했으니까 일 데나리온이 한사람의 품삯이었으니까 삼천만원정도 되는 아주 거금의 향유를 예수그리스도께 갖고 와서 예수께 붓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우리들이 그 구원의 은혜에 깊은 감격을 간직한 다음에 최선의 것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무슨 뜻이냐면 공부를 하든지 아니면 설교를 하던지 목회를 하던지 무엇을 하던지 간에 최선을 다하려고 할 때 배우는 것이 있지 흔들흔들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무엇을 하더라도 아무것도 배우는 것이 없습니다. 어떤 번쩍하고 우리의 지성 속에 들어오는 통찰과 깨달은 빛 이런 모든 것들이 결국은 최선을 다하여 섬기려고 할 때 그 때에 그 고민 속에서 생겨는 것이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그러면서 섬기는 삶속에서는 그런 빛나는 통찰 그리고 탁월한 선택 이러한 일들을 헤아리는 탁월한 안목 이런 것들이 생겨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목회 사역하는 동안에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바보같이 그 최선이 열린 교회를 위한 최선이고 그리고 이곳에 있는 사람을 향한 최선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 있다 나간 부목사 한사람 이 목회를 하다 하다가 너무 어렵고 안 되었습니다. 그 때 나를 만나서 하소연을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목사 때 교회에 있으면서 자기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려고 하면 항상 이게 김남준 목사 목회지 나의 목회인가 내가 이때에 시간 있을 때 더 많이 배우고 잘 습득해서 내 이름으로 목회할 때 쏟아 부어야지 그것이 최선이지 결과는 썩 좋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눈으로 볼 때에는 교회마다 각각 있는 위치도 다르고 책임지고 있는 사람도 다르고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보실 때에는 모두 하나의 교회인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집에 충성했던 사람들이 결국 하나의 집에 충성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최선을 다해서 사역을 하고 최선을 다해서 여러분들이 신앙으로 사는 것 그것은 다른 게 아니라 여러분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같은 이야기를 나는 내수동 교회에 있으면서 박목사님에게 매주 교역자 회의 할 적마다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것으로 주님을 섬겨라 그러면 혹시 교회는 그것을 모두 알아주지 못해도 하나님이 그것을 알아주시니 그리고 하나님이 그것을 기억해주신다 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해서 그래서 결국은 목회를 하면서 끊임없이 죽음의 경지를 왔다 갔다 하는 가운데 그 때에 어떤 목회의 비장 함들과 그리고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범접하면서 그러면서 나의 진수들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이 여자에게서 그것을 배웁니다. 이 향유는 당시 재산을 모으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아마 이 재산을 모아서 이 여자가 새로운 인생을 살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인생이 새 인생이란 사실을 깨닫고 그것을 예수님께 부어버린 것입니다.
세 번째는 여기에는 빠져있지만 마태복음에 이 여자가 눈물을 흘린 이야기가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이 여자의 섬김은 자기가 죄인인줄을 아는 섬김이었고 최선을 다하는 섬김인 동시에 눈물이 있는 섬김 이었습니다. 그 눈물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눈물이고 하나님의 용서를 아는 눈물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눈물입니다. 그렇게 예수님 앞에 눈물을 흘리면 예수님이 뒤로 다가와서 그래서 예수님의 발을 씻겨드린 이 여자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사역이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선한목자의 특징은 항상 눈물이 있는 것입니다. 그 눈물이 있어서 그것이 단순히 회한과 고통의 눈물이 아니라 영혼에 대한 불쌍히 여기는 눈물이고 자기 같은 죄인을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의 눈물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물을 많이 흘리면서 목회하는 사람들 치고 세속적인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목회의 눈물이 마르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교회에 은혜가 마르기 시작합니다. 참 신기한 게 비가 제때에 내리면 풀들도 피어나고 꽃들도 피어나고 그러는데 비가 안 오면 모든 식물이 죽는 것이 아니라 비가오고 정상적인 기후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죽고 비가안와도 버틸 수 있는 식물들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아주 작은 습기만 머금어도 살 수 있는 그런 아주 독한 풀들이 자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의 비가 필요하고 목회자의 마음에 눈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역이 어렵고 힘들고 어렵고 괴로워도 울고 나면 항상 하나님이 옆에 와 계십니다. 이 여자도 눈물이 있는 섬김이었습니다. 그래서 용서받은 죄인인줄을 아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최선의 것을 섬기는 태도였습니다. 그러니까 긴 보도인데 제자들의 이야기도 나오고 예수님의 말씀도 나오는데 이 여자의 이야기는 대사가 한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주님을 섬기되 정말 말이 없이 섬겼던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이렇게 보면 말은 많은데 항상 들을 때 마다 자기는 얼마나 하나 말은 많은데 헌신이 없고 희생이 없습니다. 그것을 교인들이 모두가 압니다. 그래서 교회의 사역을 하다가 떠나고 나면 어떤 사람들은 교인들이 생각할 때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사람이 있고 안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있을 때에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눈물로 섬기는 사람들은 항상 말없이 섬긴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사람이 모여서 사는 세상인데 왜 부당하거나 모순되거나 어려운 일들이 왜 없겠습니까. 어디 간들 그런 불완전함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속에서 묵묵히 참고 그리고 대의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에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그런 신앙생활이 그것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믿음생활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말없이 그저 조용히 최선을 다해서 그렇게 섬기는 가운데 우리들도 천천히 그렇게 주님의 사람이 되어가고 하나님의 일에 온전한 사람이 되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저 하는 일을 맡겨진 일을 그냥 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항상 최선의 결과를 내려고 그렇게 자신의 사역에 진력할 때 그때 거기서 발전이 있고 자기가 깨트려지는 경험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렇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님을 잘 섬겨서 주님의 일에 적합한 사람들로 빚어져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