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위하여Ⅰ 4 (1996.6.2 주일오후)
2013.6.26 교역자수련회
2013.6.26 교역자수련회
교역자수련회 아침설교 3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출 33:7-11)
녹취자 : 정은숙B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만들고 섬긴 때에는 모세가 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으로 올라간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매우 슬퍼하셨고 모세도 진노했습니다. 그래서 내려오자마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너는 이 백성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라. 내가 기왕에 약속했으니까 그 땅은 너희를 위해서 주마. 그러나 나는 너희를 따라서 올라가지 않겠다. 왜냐하면 너희들이 너무 불순종하고 완악하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진멸할까봐 염려하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듣고 그 우상을 만들고 섬기던 백성들이 깊이 각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중심으로 진을 쳤는데 진 바깥에다가 텐트를 하나 쳤습니다. 그리고 회막이라고 부르고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각성한 사람들 그 사람들 중에 특별히 하나님을 앙모하는 사람들이 이 민족적인 위기를 맞아서 기도하러 갈 수 있도록 기도 처소를 만든 것입니다. 그때에 모세도 물론 거기 가서 기도했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거기에 가서 각성한 데에 만족하지 않고 간절히 하나님 앞에 아마도 눈물로 기도하며 자신들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다시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그래서 자신들과 함께 동행 하여 가나안땅에 함께 가 달라고 호소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가는 다 흩어져 돌아갔는데 하나님은 특별히 모세를 친구처럼 대면하셔서 그에게 말씀해주셨고 모세도 아마 자신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 회막에 나아가서 이 민족적인 위기를 앞에 놓고 주님께 기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눈길을 끄는 대목이 나오는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모세는 이 당시 소명을 받은 게 80세였으니까 얼마나 늙었겠습니까? 그러니까 기도를 하다가 밤이 되면 들어와서 아마 자기의 처소에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떠나지 않고 그 처소에 남아서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여호수아였습니다. 이 회막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앙모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고 이 민족적인 위기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 여호수아가 여기에서 진을 떠나지 않고 남아서 무엇을 했겠습니까? 이 진에 남아서 그는 오래도록 기도하며 회막을 지켰던 것입니다.
성막은 제사장들만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 회막은 그런 종교적인 계급에 상관없이 하나님께 자유롭게 나아가서 기도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벌써 모세가 은퇴하고 난 후에 하나님이 쓰시려는 사람 여호수아를 예비하시는 광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까? 모세는 카리스마적인 권위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었고 또 율법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입법자였지만 여호수아에게는 그런 카리스마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정복의 위업을 카리스마 넘치는 모세가 아니라 모세에 비하면 눈에 차지도 않는 연약한 지도자였던 여호수아를 들어서 사용하셨습니다. 이 여호수아의 특징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모세에게 있어서는 기적과 카리스마가 강조되었지만 여호수아 시대에 와서는 믿음, 그 믿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가 강조되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큰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면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믿었지만 여호수아의 시대에는 믿으면 하나님이 요단강 물을 말리시는 기적을 베풀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여호수아의 이름이 예수와 동일한 이름이라는 것은 아주 어울리는 구속사적인 연결입니다. 예수님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셨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지극히 연약한 자가 되어 일평생 주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며 살아가심으로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받으신 것처럼 이 여호수아도 역시 그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오늘 마지막 날 아침에 이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어제 우리들이 교역자 회의와 보고서를 마쳤습니다. 모두 다 잘했고 또 사소한 것이 부족했어도 그냥 다시 잘 고쳐서 하면 되는데 저를 많이 마음 아프게 한 것은 무엇인가하면 교역자들의 기도생활이었습니다. 그것을 죽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냐 하면 지금은 여러분들에게 육체의 힘이 있고 자유로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에서 자고 싶으면 자고 밤을 새고 싶으면 새고 육체도 허락을 하고 환경도 허락을 하고 모든 것이 자유롭습니다. 바쁘기는 하지만 여러분들은 아직은 단순한 일에 헌신하고 있고 여러분 스스로 시간을 조절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 생활에 열의가 적어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는 우리의 인생이 80이면 중간이 40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30세쯤이 80세 인생의 중간입니다. 나는 이렇게 젊었을 때 여러분들처럼 활동하면서 60세도 되기 전에 이런 정도의 품질의 건강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30세 때는 먹지도 않고 정말 자지도 않았고 40대 때에는 지금도 그렇지만 월요일이 휴일이라는 것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여러분들이 기억할지 모르지만 월요일도 저는 새벽기도를 한 번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거의 합당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그리고 월요일 설교를 안 할 때에는 여러분들의 설교를 지켜보면서 그 다음 교역자 회의 직원 예배 교역자 회의 때 그 설교에 대해서 코멘트를 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우리가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육체가 약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젊었을 때에는 비타협적이어야 합니다. 요즘에 내가 심하게 닦달하지 않지만 지금은 교회를 다 떠났지만 부부를 불러놓고 야단을 치면서 그랬습니다. 전도사가 되가지고 젊은 나이에 그렇게 새벽기도 안 해서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하고 야단을 친 다음에 이 녀석은 게을러서 원래 그렇다고 하더라도 같이 자고 있는 아내인 너는 내가 더 이해가 안 간다 그러면 남편을 발로 차서라도 깨워서 가야된다고 이야기를 해야지 그렇게 하고 되겠느냐 그래서 야단들 쳤던 기억이 납니다.
똑같지가 않고 세월이 흘러가 보면 달라집니다. 건강과 모든 것들이 달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사용하실 때 이유 없이 사용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그게 어느 순간 기회가 왔기 때문에 준비가 되었단 것이 아니라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을 때도 하나님이 그를 인격적으로 사역적으로 영적으로 지성적으로 준비시키면서 그것들이 충분히 무르익었을 때 하나님이 그에 합당하도록 사용하신 것입니다. 지도자는 특별한 사람으로 태어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그러나 남들이 모든 똑같은 길을 걸으면서 특별한 지도자가 되려고 한다면 그것은 마치 운동 안하고 예쁜 여자들 보면서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으른 여자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신학교의 문을 두드리고 사역을 시작해도 정말 아름답게 사역하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소수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물론 간섭은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 그러지 마라 더 열심히 해라 뭐해라 간섭할 수도 있고 심하면 교회에서 더 크게 책망을 할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어느 교회에서는 아예 들어갈 때 하루 두 시간 이상 기도하겠다고 서약서를 쓰고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는 쫓아내도 좋습니다, 그렇게 도장을 찍고 들어간다고 합니다. 우리의 영적 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 세상에 우리들이 모두 약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여러분들은 장로님들이나 담임목사나 누구 눈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내가 항상 계속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5년이고 7년이고 있다가 다른 교회 부목사로도 나가고 개척도 하고 하는데 그 기간 동안에 훈련을 받는 유일한 기회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까? 한 사람이 짧은 한마디의 말로 평범한 말인데 듣는 사람에게 큰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피를 흘리면서 그 한마디 말을 성취하기 위해서 살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미 그런 사람이 되지 않았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되려고 피를 흘리면서 살아온 흔적이 있을 때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 안 하면 사역이 병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안했는데 사역이 잘 됐다 그러면 교만에 빠집니다. 그래서 점점 더 기도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여러분들이 깊이 각성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내들도 남편의 그런 점에 대해서 깊이 두려워하고 그리고 올바르게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 그래야 합니다. 그래서 둘이 같이 그렇게 게으르면 어떻게 합니까? 자매야 아이도 기르고 하니까 그럴 수 있겠지만 자기는 못나오면 새벽기도 시간에 일어나서 집에서 기도를 하더라도 남편을 깨워서 보내야지 둘이 그렇게 자고 있으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몸이 너무 아프다든지 어제 밤을 샜다든지 무슨 이유가 있겠지요. 그런 것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누구 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매들이, 사모들이 옳고 그름 그 다음에 그런 것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있고 그것을 남편에게 때로는 아프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너무 자주 하지는 말고. 그렇게 해서 올바르게 할 수 있도록 해야지 그냥 육체가 원하는 대로 그저 편하면 편한 대로 그렇게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결국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서 지도자가 되었고 모세의 카리스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결국은 모세가 이루지 못한 가나안의 정복의 위업을 이루게 됩니다. 이런 목회를 위한 경건 그다음에 스피리츄어리티 이런 것들은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동안 그렇게 생활하면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라고 이름 하는 거기에는 자신의 신께 간절히 매달리는 기도와 간구 없이도 혹은 자기를 죽이는 부인이 없이도 그 풍성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고 가르쳐주는 종교는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도 그렇게 참선과 수행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름에 하안거 때가 되면 180일 정도 90일 정도 모여서 하안거 동안거를 하는데 약 8킬로 내지 9킬로 빠진다고 합니다.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여러분들이 앞으로 사역을 하려면 그런 점에서 사역을 하면서 성과를 사람들에게 계속 보여주지만 기도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홀로 자기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는 성실한 기도 생활이 5년 10년 쌓이면서 영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예리한 칼이라면 기도는 그 칼을 휘두를 수 있는 팔의 근력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칼이라도 배짝 마른 폐병환자 같은 사람의 손에 들려진다면 무엇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깊이 말씀에 은혜를 받고 혼자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개인적인 기도의 생활을 열심을 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질서하게 밤늦게까지 시간을 방탕하게 사용을 해서 아침에 기도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절도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교회조차도 컴퓨터에 너무 집착했기 때문에 교회를 떠나야 했던 사람이 두 사람이나 있습니다.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될 수 있으면 멀리 해야 합니다. 특히 밤에는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영적인 생각과 이런 것들로 자기를 채우면서 깊이를 더해가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것 붙들고 매달려서 밤늦게까지 그렇게 하고 절대 그러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이 눈의 아들 여호수아처럼 이렇게 점점 더 주님과의 교제 속에서 지도자로 형성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