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교역자수련회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행 20:17-19)
녹취자: 김미영
우리가 목회의 길이라고 하는 것 그렇게 쉬운 길이 아닙니다. 목회를 하면서 고생을 많이 하던 어느 목사님이 친구하고 산길을 걷다가 고목나무를 발견했는데, 고목나무니까 가운데 구멍이 크게 뚫어져 있잖아요? 가슴 가득히 고목나무를 어루만지더니 그러더랍니다. ‘야 이나무야 너는 목회도 안 했는데 어떻게 가슴에 이렇게 구멍이 뚫어졌니?’, 그런 길입니다. 그래서 전날 누가 나한테 ‘목회가 한마디로 말하면 선배님 무엇입니까?’ ‘가슴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것, 그게 목회다’ 교회의 영적인 윤기는 목회자의 눈에 맺히는 이슬이요 가슴에 맺히는 깊은 아픔입니다. 그것이 목회의 영적인 윤기입니다. 교회를 가보면 윤기가 없이 아주 퍽퍽한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 교회를 심하게 돌리면 거기에서 열과 마찰이 일어나면서 불이 납니다. 그런데 윤기가 있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아주 은혜롭고 부드럽습니다. 그것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의 눈가에 맺히는 이슬이고 가슴에 맺히는 아픔입니다. 그걸 통해서 교회는 영적인 윤기가 흐르는 것입니다. 그게 15년을 살아오면서 전도사 생활하면서까지 느낀 결론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정말 목회를 목회답게 하면 세상에 살고 싶어하지 않겠구나’ 그래서 리차드벡스터가 그렇게 열정적으로 목회를 하면서 성도의 영원한 안식이라는 책을 쓴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참 된 안식이 없다. 그래서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뿐이다. 이 세상이 그렇게 참된 안식을 줄 수 없는 그 마음이 되는 것 자체가 ‘목회자의 마음이 하늘의 향취에 젖어 있다’ 라고 하는 뜻이 아닐까요? 그래서 어떤 때는, 오늘 아침에도 교역자들이 ‘그럼 목사님 비전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 별로 없구요 굳이 소망하는 바는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떨지 모르지만 지붕 높은 교회에서 설교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너무 어둡고 혼탁해진 시대니까 더 많은 사람이 진리를 들었으면 참 좋겠고, 10년 후 쯤이면 교회 교리학을 쓸 수 있을 정도로까지 내가 준비 되었으면 좋겠고, 한 5년 후 부터는 에베소서나 호세아부터 주석을 시작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한 순간에 ‘아! 그까짓 것이 다 무엇이란 말인가? 정말 이 세상은 우리의 집이 아니구나’ 그것이 가슴에 확 밀려옵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우리와 비교도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학식에 있어서 아주 뛰어나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고, 능력에 있어서는 성령의 사람이어서 죽은 자를 살릴 수 있었습니다. 배교에 가까운 삶을 살던 사람도 회심하게 하는 도구였습니다. 그랬는데 성품은 또 얼마나 교만하고 하늘을 찌를 듯 높았습니까? 그런데 오늘 아시아에 들어와서 3년 목회한 것을 결산을 하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너희들도 다 알지?’ 그러면서 나온 게 뭐냐하면 모든 겸손과, 여러분도 기억하셔야 될게 하나님이 정말 사랑하시는 사람은 슬픔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 순간도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덜 사랑하는 사람들은 대충 살게 내버려 두시고 하나님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은 집중적으로 조으십니다. 너 그렇게 살아서 되겠니? 열심히 몸부림칠라치면 니 힘으로 몸부림친다고 되는 거니? 니 안에는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마음이 없다. 양목사가 그 얘기를 하는 거 보니까 마음에 많이 맺히긴 맺혔나봐. 그런데 사실은 그게 99년도 2000년도의 일인데 사실은 내 최고의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그러니까 그 이야기를 듣고 ‘흥’ 할 사람에게는 절대 그 이야기를 할 어리석은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은 짓밟으십니다. 여러분 구약성경에 보면 통회하는 심령이라는 구절이 나오고, 통회하는 심령이라는 것은 할레브 다끄입니다. 다까 동사에서 나온건데 그게 뭘 이야기하냐하면 짓이기는 겁니다. 뼈도 있고 살도 있어서 튼실하던 것을 야구 방망이 같은 것으로 짓이겨가지고 뼈고 뭐고 다 부서져서 흐물흐물하게 되어버리는 것, 다까라고 합니다. 다끄의 마음으로 하나님이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에 의해서 짓이겨지는 것 그게 무엇에 의해서 짓이겨 지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짓이겨지는겁니다. 어떻게? 그 무엇, 어떤 거 깨달을 때 짓이겨지겠습니까? 여러분 ‘너 그렇게 살면 지옥간다’라고 하나님이 확 보여 주실 때 절대로 마음이 짓이겨지지 않습니다. 율법에는 우리의 마음이 짓이겨지게 하는 힘이 없습니다. 짓이김이라는 게 뭐냐 하면 온전함과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 그 사이에서 하나님의 은혜밖에는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자기상태, 이 자각만이 우리를 다끄의 상태로 데려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저히 짓이겨지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가 됩니다. 그게 바로 여기에서 얘기한 사도가 경험한 내면의 세계입니다. 겸손이라고 말했지만 어떻게 보면 비천함입니다. 자기가 만물의 찌끼요 모든 만물가운데 가장 가치 없는 인간일 뿐이라는 그러한 자각, 그래서 주님만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그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절대로 목회는 전수가 안 됩니다. 은혜의 세계는, 은혜의 세계에 대한 답은 결국은 목회입니다.
이번에 우리가 15명 인턴쉽을 했습니다. 들어온 기수들이 지난 번 기수만 못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14기 가운데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이 학생들이 깊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중에 꽤 여러 명이 이번에 열린교회 사역을 다 정리하고 평신도로서 살아보고 싶다고 그런 얘기가 들렸습니다. 그건 뭐냐하면 하나님앞에 자기가 정말 비천한 인간이라는 걸 깨닫는 그 겸비함이, 그 마음이 결국은 하나님이, 그 마음의 상태는 하나님이 주신 건데 그땐 절대 행복한 마음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그걸 배운 겁니다. 그래서 실패하는 것이 뭐냐하면 사역 따로 신앙 따로 완전히 구획이 지어져 있는 겁니다. 사실 그것은 신앙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역에 있어서 곤란을 만나거나 위기에 처하거나 심지어는 내게 맡겨진 영혼들이 거의 회심이 없이 이 지루한 사역이 이어질 때 그 때 그것을 자기의 신앙과 연관을 시키면서 이것이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다 그리고 저 영혼들이 내가 은혜가 없을 때는 저 영혼들이 변화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영혼이 너무 강퍅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은혜에 잠기고 주님의 사랑에 깊이 감동을 받으면 저 영혼들이 변화되지 않는 것이 나의 악함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러면서 하나님앞에 통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가 잘 될 때는 이 벌레같은 인간이 아무것도 볼 것이 없는 인간인데 하나님의 긍휼로 내가 목회를 하는구나 그러면서 값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 자 된 것에 대해서 감격하니까 자기가 목회의 상황이 자기의 신앙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안 될 때에는 ‘결국은 내가 하나님앞에 깨지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은 이 목회가 이렇게 퍼석퍼석하고 정말 비루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이 고개를 쳐 들고 목회자인 나의 권위에 도전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될 때에 다가오는 그 고난은 결국은 하나님앞에서 내가 그리스도앞에 죽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들에게 말하는 것이 목회를 배우려고 하지 말고 신앙을 배우려고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잘 믿고 한 사람의 아주 착하고 아름다운 신자가 되어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김준성 목사가 그게 얼마나 가슴에 사무쳤으면 좀 촌스럽긴 하지만 교회의 모토를 ‘착한 신자가 되자’ 자기가 하나님앞에서 고민하는 그 모습이었습니다. 이게 사도가 에베소 아시아에 들어와서 3년이 넘도록 목회하는 동안에 배운 것은 겸손이었습니다. 난 아무것도 아니구나 난 자신만만한 목회자들을 거의 신뢰하지 않습니다. 확신에 충만한 사람들은 우리는 너무 신뢰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상한 마음, 그래서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주님앞에 매달리는, 내가 언제 설교시간에 한 번 얘기했죠? 캐나다에서 목사고시를 다 합격한 강도사에게 마지막으로 면접관이, 연로하신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강도사님! 만약에 당신이 목사안수를 받는 현장에 누군가 나타나서 너 같은 인간이 어떻게 목사가 될 수 있겠냐고 항의를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랬더니 한참을 눈을 감고 생각을 하더니 오! 주님 그리고 눈물을 흘리더랍니다. 그 때 면접관이 당신은 합격입니다. 결국은 은혜를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목회자입니다. 거기에서 자기가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 목회사역에서 살아있는 말씀이 나옵니다. 참 역사합니다. 자기가 살아있는 목회자에게서는 죽은 말씀이 나옵니다.
사도가 자신만만해서 아시아에 들어갔다가 마지막에 배운것은 모든 겸손입니다. 자기는 할 수 없는 죄인일 뿐이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목회다 그걸 배우고 온 겁니다. 나는 여러분 사역 잘 하는 것도 기쁘지만 하나님 사랑하면서 신앙생활 잘 하면 무한히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는 한 나는 그의 편입니다. 그 겸손을 우리들이 배워야 합니다.
그 분의 사도가 아시아에서 목회에서 배운 또 하나는 눈물이었습니다. 전 생애에 없는 아주 차갑고 표독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풍부한 눈물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가진 것 없고, 그리고 학식이 짧아도 안 배우려고 하지 않고, 바르게 반성할려고 몸부림치면서 하나님앞에 자기 부족을 알고 눈물을 흘리면, 우린 모두 몇 만 명을 목회하겠어요? 그리고 그게 뭐 그리 좋은 건가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들이 모두 위대한 인물만은 아닙니다. 그렇게 하나님앞에 살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목회자가 가슴을 지어 뜯으면서 피 눈물을 흘리면 신기하게 그 피는 교회 바닥에 떨어져서 생수의 강이 됩니다. 참 놀랍습니다. 목회자의 눈에서 눈물이 사라지면 교회 마당은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영혼들이 시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 길은 목회는 영원한 가슴앓이입니다. 사도가 그걸 배운 것입니다.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그래서 매일 그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그 목회자의 목양지는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이 붙드십니다. 그가 잘 못하면 하나님이 직접 인도 하셔서 붙드십니다. 거기에서 우린 목양의 진수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한 그의 영혼은 안전합니다. 우리에게 오늘날 눈물 목회는 거의 잊혀진 유산이 되었습니다.
세 번 째는 시험을 참는 것입니다. 아주 야비하고 더러운, 그리고 위험한 시험들이 목회에는 늘 따라다닙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 혈기가 솟구치면은 ‘더럽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어디를 간들 밥을 못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회가 오히려 그런 겁니다. 그래서 참아야 합니다. 전 목회를 하다가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I am nothing. I am nothing.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무시당하고 짓밟힌다는 것 때문에 화내지는 말자 I am nothing.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스스로 자신에게 타이릅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진리에 붙잡힌 사람들에게는 내가 존귀한 하나님의 대리자로 보이겠지만 진리와 상관이 없고 그 진리에서 이탈한 사람들에게는 내가 정말 만곡의 찌끼와 같지 않겠는가? 아무것도 아니다 주님이 바로 그런 생애를 사셨습니다. 참아야 됩니다. 참고 또 참고 또 참고, 참지 못하고 이 분노하게 하는 이 모든 것들 자기가 굉장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참자 참자 참자 그 때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오래 참으셨는지를 생각을 하면 참을 수 있는 힘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마지막 네 번 째는 ‘주를 섬긴 것과’ 그랬습니다. 시험을 많이 참았는데 그걸 참느라고 아무일도 못 했다. 그것은 하나님앞에 잘 산 게 아닙니다. 왜냐햐면 너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할 것이니라 말씀하셨을 때 그럴 때에 목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지 고난을 겪는 게 목표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참는 것은 목표가 있기 때문에 참는 것입니다. 여기 내려가면 남대천이 있는데 가을이면 연어가 올라옵니다. 북태평양까지 가서 돌다가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면은 수많은 낚시꾼들의 낚싯밥의 유혹과 공해, 이런 것들을 극복하면서 결국은 노천으로 회귀합니다. 그런 참음을 얘기합니다. 결국은 그 참음을 모두 극복하고 결국은 주님을 섬긴 사람들로 기억이 됩니다. 기쁜 때도 있습니다. 영혼이 변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에,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 깊이 주님을 만났다는 소식을 들을 때 기쁩니다. 그렇지만 항상 그런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때마다 결국은 참고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가장 비참한 사람은 사역의 길에 들어섰으면서 멈칫 멈칫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영적인 생명도 잃어버립니다. 왜냐하면 뒤 돌아설 수가 없습니다. 자리에서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역이 안일에 흐르지 않도록 사역의 표준을 높이 두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완전으로 나아가려고 도달 할 수 없는 완전이지만, 완전으로 나아가려고 몸부림을 칠 때 그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회개하게 되고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주시지는 않습니다.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은 우리를 보낼 때 우리를 떠나게 하실 날짜를 정하고 우리를 보내십니다. 그 기간이 우리가 하나님앞에 충성스럽게 살 수 있는 날 들입니다. 그 바깥에서는 그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잘 섬기면 그것이 결국은 우리를 바꾸는 도구가 되어서,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