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학교 교역자 부부 세미나 1
그렇게 생각하면 바보 같은 생각인지 모르지만 신학을 7년을 공부를 하고 그러고 이제 신학교를 졸업하고 3학년 때부터인가 사역을 했으니 사역을 꽤 했지요 그랬는데 내가 사역자라는 사람이 뭘 하는 사람인가 하는 것을 정확히 깨닫게 된 때는 교수가 된 그 이듬해에 하나님을 깊이 만나면서 복음 사역자가 뭘 하는 사람인지 그 때 비로소 알 수 있었어요.
더 기가 막힌 것은 목사가 해야 할 직무가 뭔가 그리고 그 직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 하는 것- 지금도 다 알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목사라는 사람이, 목회라는 게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거구나 이 일을 잘 하기위해서는 이런 이런 방법이 있겠구나 라고 그렇게 깨닫게 된 게 단독 목회를 하고 나서 5년이 지났을 때 일이에요.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 뭔지도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에 열심히 살았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여튼 소명을 받은 날부터 이때까지 놀지 않고 열심히 살았고 신학을 공부하는 7년 교수 생활하는 9년 도합 16년 동안 세월동안에 일주일 이상 휴가를 가져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고 남들보다 더 많이 기도했고 더 많이 공부했고 더 많이 설교 준비했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만약 지금 하나님께서 그 시절을 돌려 주신다고 할지라도 신학공부 하던 시절로 돌아가게 해 주셔도 더 이상 더 잘 살 자신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하나님 보시기에 부족한 게 많지만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살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 열심히 산 것은 참 착한 거였는데 그 때 방향을 정확하게 잡고 살았더라면 그러면 얼마나 좋았을 까 그때 누가 나한데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같은 책이라도 한 권 신학교 다닐 때 주었다면 아마 제 인생 가운데 5년 정도는 낭비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를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고 시작하지만, 여러분은 별로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12월 12일 날 개척을 했는데 나 빼고 7명이 개척을 했어요. 근데 1월 셋째 주에 45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어요. 여러분은 지금 단독 목회를 해 본적이 없으니까 에이 그까짓 45명 그러지만 코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고생을 해 보면 그게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요. 목이 좋은 아파트 앞도 아니고 주일이면 상가가 다 철시하고 아파트 한 채도 없는 벌판에 그것도 물 나오는 지하실에 꾸역꾸역 사람들이 모여서 한 달 만에 45명이 되었단 것은 진짜 아파트 옆에서나 일어나는 일이고 그것도 소수의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에요.
그래서 내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오죽 목회를 거지같이 하면 1년이 되도 백 명도 못 모일까. 속으로만 그랬어요. 열심히 하면 300명은 안 모일까? 건물도 지하고 하니까 200명이야 모이겠지.. 그래도... 그러고 했는데 참 하나님이 겸비하게 하시는데. 나는 이미 교회를 개척할 때 한국 교회에 꽤 알려진 사람이었어요. 책을 통해서. 집회를 통해서. 그 때는 집회 열심히 다닐 때니까. 그런데 그런 거 소용없어요.
사람들은 많이 와요. 얼마나 은혜를 주시는지 설교 시간에 사람들이 우느라고 설교를 듣지 못하는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요. 근데 교회엔 안 있어요. 눈물 씻으면서 자기네 교회로 가는 거예요. 십일조도 자기네 교회에 가지고 가고. 그렇게 연단을 하시는 데 일 년 이 년이 가도 변화가 없어요. 그러면서 내가 깨닫는 게 뭐냐 하면 기도와 씀에 전무하면 모든 것이 된다고 배웠는데 근데 기도도 열심히 했죠. 그리고 말씀에도 하나님 그렇게 은혜를 주시는 데.. 우리 집사람 지금도 옛날 예배를 그리워하잖아요. 어떤 때는 오후 예배를 드리면 2시간 설교를 하고 6시까지 마치고 다 같이 기도합시다 하고 불 끄고 나는 20분 기도하다가 보따리 싸서 집회에 가면 오후 예배 온 사람들이 어떤 때는 7시 30분까지 기도하는 거예요. 근데 왜 교회가 안 되냐 이 말이에요.
그래서 나중에 깊이 깨닫게 된 게 무엇이냐 하면 이게 말씀에 그렇게 은혜를 주시고 해도 이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또 무엇이 있어야 되는 것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생리적으로 작전을 짜고 교회를 세우고 이러는 거 아주 하찮게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근데 그 쓰라린 경험을 통해서 아 이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은 훌륭한데 뭉쳐지지 않고 따로 도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흩어져서 가고. 따로 가고. 그러면서 목회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쓴 물을 마시면서 배웠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밖에 집회 나가는 것 그만두고 그리고 본격적으로 목회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목회의 축복을 주셨지요. 그 동안의 성과야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비하면 부끄러운 것이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영혼을 붙여주셔서 이렇게 까지 오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나는 항상 마음속에 뭐가 있냐 하면 정말 나와 함께 섬기는 이 지체들도 가르쳐 주지 않고 내버려 두면 나처럼 될 것이다- 아마 나보다는 좀 낫겠지요. 설교를 듣고 목양을 받으면서 자라왔으니까- 그렇지만 아까 평신도 있을 때와 사역할 때 완전히 다른 세계라고 그러는데 다른 세계 정도가 아니라 단독 목회를 하다 보면 여태까지 사역을 한 게 거의 도움이 안 될 정도로 거의 다른 세계예요.
여러분들이 교회사역자 하다가 교구 교역자 불러서 사역하면, 교회 사역자 하던 상식 가지고 사역을 하면 판단이 안 설 정도로 일이 많고 다이나믹 하다는 거예요. 그런데 단독 목회를 하다보면 교구 하나 정도 맡아서 사역을 하는 것은 비교가 안 될 정도라는 거예요. 그렇게 사역의 세계라는 것이 끝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 봐요. 지금 이 세미나가 몇 번째냐 하면 교역자 세미나만 네 번째인가 다섯 번째인가 해요. 지금 천 명 이 천 명 모여서 세미나 해 달라는 데도 못 간단 말이에요. 나로서는 말할 수 없는 출혈이지. 나는 여러분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 슬하에 있는 영혼들을 생각을 하는 것이지.
올바르게 자기 자리를 알고 올바르게 사역을 감당해 나가면 그 영혼들이 많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나고 그리고 여러분들이 나가서 사역을 할 때 일단 어떻게 하는 것이라고 하는 룰rule만 알려 줘도 훨씬 쉽다 이거지요. 그래서 내가 오늘 여기서 말씀 드리는 것이에요. 내가 다섯 가지 정도로 나누어서 얘기 하려고 그럽니다. 사역이 종합적인 섬김이라는 것, 두 번째는 부부가 함께 사역을 해야 된다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기도 생활에 대해서 네 번째는 말씀의 지식에 대해서 다섯 번째는 동역 자들과의 아름다운 연합을 위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그럽니다.
우선 아까도 누가 목회가 종합예술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고 그랬지만 섬김이 총체적인 섬김입니다. 부흥사 같으면 설교만 잘 하고 가면 되고 중보기도 해 주는 사람 같으면 기도만 열심히 해 주면 되지만 이건 보이는 교회를 이끌어 가는 영적인 지도자이고 그 지도자가 자신의 역량을 하나님의 도구로 삼아서 주님이 주신 지혜와 판단을 가지고 교회를 이끌어 가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일단 부임을 하고 나서 일정 기간을 보고 문제가 없다 싶으면 다 맡기는 스타일입니다. 그리고 그 대신 책임을 지게 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보고는 내가 받지만 한 번도 왜 심방 안 하냐 지금 무슨 시간 인데 딴 데 가 있느냐 이런 얘기 한 적 없습니다. 자기 사역이니까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지요. 그런데 우선 각 부서도 자기 교회라고 생각하면 되요. 자기가 거기서 작은 교회를 담임 목회 한다 라고 생각하면 되요.
거기에서 요구되는 참 중요한 자질이 뭐냐 하면 영적인 리더십이에요. 소위 말하는 지도력의 문제이지요. 이 지도력의 문제가 순수한 영적인 리더십과 일반적인 리더십으로 나뉘어서 얘기가 되요. 먼저 영적인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그 사람이 리더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시인할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이 그 사람 안에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 것들은 어떤 것일까요? 저 전도사님이 저 사모님이 나보다는 훨씬 믿음이 좋다 또는 비슷한 얘기지만 저 전도사님이나 사모님의 기도를 내 기도보다 훨씬 더 잘 들어 주신다. 저 두 분은 나보다 하나님과 친밀하고 사랑을 많이 나누시는 분이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을 뵈옵고 나왔을 때 그 얼굴에 빛나는 그 찬란한 빛 이런 것들이 바로 지도자가 반드시 지녀야 할 영적인 리더십이에요.
그래서 자신의 사역을 보고 그 상황 속에서 그것을 영적으로 해석할 수 있고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 지에 대해 분명하게 알고 있는 지도자가 가지고 있는 리더십 그런 영적인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거지요. 그런 영적인 리더십을 함양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가는 만큼만 그 리더십이 함양되어 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영적인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되기 원하면 자기 자신이 점점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가요. 그래서 자기 자신이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더 변화 되어가는 변화의 역사가 자기 자신 안에서 그치지 말아야 되요.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에요. 여러분들은 기도 생활 속에서 얼마나 자기 깨어짐을 경험해요?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 정말 비천하다 라는 생각 때문에 깨뜨려지고--자기 깨어짐이라고 하는 것은 한 편으로는 자기의 죄와 불순종을 고집하는 것에서 깨어지고 또 하나는 자기 의에 대한 깨어짐이에요. 나는 상당히 괜찮은 사람이다 쓸 만한 사람이다 라고 하는 그런 것에 대한 깨어짐이에요. 그런 깨뜨려짐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 지 묻고 싶어요.
근데 만약에 그런 깨뜨려짐이 없으면 여러분들은 나빠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자기 깨어짐이 없는 사역을 한 참 하다보면 영적인 리더십은 없고 아주 난장이와 같은 지도자가 되어서 사람들이 멸시할 수도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은 아무리 부족해도 영적인 피조물이기 때문에 누구하고 한참 대화하고 얘기해 보면 그 사람이 영적인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지 아닌 지를 감지할 수 있다 이거예요. 그래서 감지하는 사람에게는 복종하는 마음이 생기지만 그런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얕잡아 보는 마음이 생겨나는 거예요. 그래서 먼저 그런 영적인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된다 이거지요. 그러기 위해서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어야 한다 내 버려두지 않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추구하고 찾고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일반적인 의미의 리더십입니다. 어떤 영적인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 라기 보다는 사리에 판단력이 지도자답고 상황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의사 결정하는 것이 분명함과 단호함 자신이 조직 속에서 어떻게 행동할 때의 일관성 이런 것들이 지도자로서 사람들의 신뢰를 받게 합니다. 합리적인 이유도 없이 이럴 땐 이렇게 행동하고 저럴 땐 저렇게 행동하고.. 오해의 소지가 굉장히 많죠?
여러분 우리 청년들이 지금 650명이 넘는데 결혼식에 내가 다 따라 다닐 수 없겠죠? 그런데 교인 집안의 누가 결혼을 한다 그런데 내가 주례를 서지도 않으면서 거기를 찾아가지 않는다고 해도 이해 할 것 아니에요? 그런데 교인 30명일 때는 그걸 이해 할 까 못할까? 30명 교회의 목회자인데 교인의 아들 딸이 장가를 가는 데 나는 아직 목사가 아니기 때문에 주례를 설 수가 없어요. 그런데 내가 거기 참석을 안 하면 그 걸 이해 하겠어요 못하겠어요? 근데 나는 그 원칙을 여태까지 지켜 왔어요. 내가 주례 서지 않는 결혼식은 안 간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와서 아무리 충성스럽게 지내는 사람이고 나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라도 그 원칙에서 벗어나면 나는 안 갑니다. 길 건너편에서 해도 안 갑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상처 받을 일이 없어요. 왜냐하면 자기 오기 전에서부터 내가 그래 왔으니까. 그러나 만약 이 사람한테는 가고 저 사람한테는 안 가고 그러면 어떻겠어요? 우연히 일치하는 요소를 잴 거 아니에요? 아 헌금 많이 하는 사람에게만 가는 구나 목사님이 편애하는 사람들만 가는 구나 그렇게 생각할 거 아니에요? 그러나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또 지도자에게는 상황을 정확히 분석하고 결단을 내릴 때는 결단을 내리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 사람에 이끌리고 저 사람에게 끌려서 오늘은 이 말을 하고 내일은 저 말을 하는 사람은 지도자로서 옳지 않죠.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구해야 될 게 뭔가 하면, 솔로몬이 왕이 된 뒤에 제일 먼저 하나님께 뭘 구했어요? 지혜를 구한 거예요. 그렇죠. 슬기로워야 되요. 멍청하다 소리를 들으면 지도자로서의 생명은 끝난 겁니다. 절대로. 그래서 샤프하다 판단이 정확하다 그리고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는 목회자가 훨씬 입체적으로 생각한다 난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목회자의 의견을 다 들어보면 ‘ 역시 그렇구나 내 생각이 좀 짧았구나’ 이런 생각을 갖게끔 그러한 판단력과 결단력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유부단하고 그렇게 하면 안돼요. 그러면 합리적인 사람들이 그 리더 밑에서 살아가는 것을 지긋지긋해 해요. 그러면 싸워 보기도 전에 작전회의 하다가 사기 떨어져요. 아무 할 얘기도 없는 데 자기들 붙들어 놓고 회의 한다고 하는 그런 것. 한 사람 붙들고 삼십분 씩 사십 분 씩 설전을 벌이고... 끝낼 것은 끝내고 ‘넌 남아’ 그래서 둘이 얘기해서 이런 것들을 합리적으로 이끌어 가야 해요.
요즘 지체들에게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면 교역자들은 너무 쓸데없이 회의를 늘인다는 거예요. 끝내고 가도 되는 데 거기서 출석부 놓고 누가 왔냐 안 왔냐.. 그건 체크해 놓은 거 보면 알고, 이상한 거 있으면 누구 남으라고 해서 물어보면 되는데 아니면 사유를 써서 책갈피에 써서 내라고 하면 되는 데 그게 아닌 사람은 아무 쓸데없이 거기 서서 삼십 분씩 사십 분씩 낭비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이 조직에 싫증이 나고 리더를 만나는 것이 두려워지는 거예요. 불합리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안돼요. 그래서 눈치가 있고 지혜로워야 되요.
한 번은 청년부를 하는 데 눈물로 기도하고 바르게 하라고 신앙적으로 push를 하는 데도 어느 한 점에 가서는 더 이상 안 되는 거예요. 아이들이 다 풀어지는 거지요. 그럴 때에는 어떻게 해요? 하루 날 잡아서 실컷 데리고 노는 거예요. 포도밭이라도 가자하든지, 야유회를 가서 한 번 스트레스를 풀고 한 번 확 흩어 놓았다가 다시 한 번 챙겨가지고 그 다음에 신앙생활을 하게하는 거예요. 그런 일반적인 지도자로서의 지도력이 꼭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자신이 없으면 1년 쯤 지난 다음에 종이를 나누어 주고 한 해 동안 내가 당신들을 섬기는 데 있어서 어떤 것들을 고쳐주었으면 좋겠는지 써서 내 봐라 이름 쓰면 상처 받으니까 이름 쓰지 말고. 총무에게 다 거두어서 가지고 오라. 그래서 의견을 참고하는 거지요. 합리적인 지도자로서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거지요. 그럴 때 교인들이 자기의 리더십에 대해서 승복하는 거예요. 그래서 당당한 지도자가 되는 거예요. 구석에서 몇 사람만 데리고 쑥덕쑥덕하는 그런 지도자가 되면 안 돼.
요번에는 내가 한 게 그거 아니에요? 매년 예산이 증가하잖아요? 내년 예산이 37억이야. 장난이 아니지? 매주 8천 만 원 씩 들어와야 돼. 그 중에는 교회 돈을 갚는 것도 포함되지만 발전헌금 다 포함해서 37억입니다. 이제 사람이 감당을 못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가지고 있는 시스템으로 볼 때 그것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나도 사실 솔직히 도장 찍는 것뿐이지... 교인들이 그런 것을 의식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도자가 항상 의식이 앞서가야 하는 거예요. 교회가 예산이 그 정도 되니까 돈은 제대로 쓰는 건가 하는 교인이 나올 수 있잖아요?
그래서 내가 공인 회계사 감사 받는다고 말하잖아요. 오늘 계약하고 갔을 거예요. 한국 교회에서 몇 번 째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나부터도 숨길 거 없고 유리통에 넣고 그대로 보여주는 거예요. 그리고 안 된다고 하는 의견이 나오면 꼭 해야 하겠으면 설득을 하고 설득을 하지 못하면 자기가 하고 싶어도 접어야지. 그게 민주적인 교회 아니에요? 공인 회계사가 여기서 지출을 하면 회계사 사무실에서 다 정리를 해서 얼마나 지출이 되는지 확인을 하고. 나중에 문서선교부도 커지면 그렇게 할 겁니다. 그렇게 다 정리를 해서 그 쪽에서 적법하다고 도장을 찍어 주는 거지요.
그러면 지출을 얼마큼씩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자기네들이 공동의회를 해서 동의를 한 거야. 그렇지? 그러니까 그게 잘못됐다고 얘기하면 안 되지. 자기네들이 결정을 했으니까. 그러면 공인 회계사에서 올바르게 썼다고 도장을 찍어주면 된 거지. 그 사람들은 한 자라도 잘못 쓰면 이겁니다.( 아마 손으로 표현 하신 듯) 이게 국가에서 공인된 자격을 가지고 하는 사람들이란 말이지요. 기업회계 잘못해가지고 들어오라고 하잖아요. 그 사람들에게는 실수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얘기 할 것 없는 거예요. 공인 회계사가 이상 없다고 자기 직인 찍어가지고 냈는데 누가 의심하느냐고. 그런 식으로 교인들이 뭔가 뭉칠 만하면 확 풀어줘 버리고 뭉칠 만하면 확 풀어줘 버리고... 이번에도 궁금하잖아. 교인이 이만큼 모이는 데 장로가 없잖아. 나는 임시 목사야 내 후년에 나는 또 투표해야 된다고. 근데 아무나 막 세우면 안 되잖아. 아무나 막 세워서 쌈질이나 하면 차라리 내가 5년에 한 번씩 투표하는 게 낫지. 교인들이 나가라고 하면 나가지 뭐. 사람들이 말을 못하잖아. 장로인데 모두 자기하고 관련이 되어 있는데 누가 나와서 ‘목사님 장로 안 세우십니까?’ 그러면 사람들이 ‘지가 되고 싶은가’ 그럴 것 아니에요? 궁금해 할 때쯤 되었지요.
그래서 장로를 뽑기로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해서 뽑아 놓으면 쌈질이나 해서 망가트리면 그건 갈아 끼울 수도 없거든. 그러니까 내 얘긴데 장로로서의 기득권을 안 가진 사람들이잖아 다. 그러니까 교역자도 몇 명 장로 될 것 같은 사람도 몇 명 전혀 될 리가 없는 사람도 몇 명 해서 만들어서 일 년 동안 장로 제도가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운영해서 열린 교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은혜로운 교회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일 년 동안 연구를 하자. 나는 빠진다. 너희들이 연구를 다 해가지고 오면 나는 그 결론에 따라서 하겠다. 뽑자 그러면 뽑고 세우자 그러면 세우고. 그렇게 궁금한 게 쌓일 때가 되면 확 풀어서 해결하고 확 풀어서 해결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에요.
언젠가 한 번 구제를 조금했다고 하는데 사실 몰라서 그렇지 구제 많이 했어요. 교회 돈이 지출 된 게 적을 뿐이지 구제 많이 했어요. 여성 교구들이 모임 때마다 헌금해서 다 구제하지요 교회에 우리들이 시골교회 먹고 살기 어려운 데 보내 주는 게 말이 선교지 다 구제거든. 그렇게 해서 해외에 나가는 것만 현찰로 일 년에 6500만원 됩니다. 그러면 국내는 또 얼마나 되는지... 이렇게 하면 결코 작은 게 아니고. 성도 개개인이 그렇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심지어는 지명 헌금으로 엊그제도 누구 앞으로 100만원이 들어왔다고요. 우리 교회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자매인데 그 자매 쓰라고. 그런 게 다 구제 아니야. 그런데 다만 교회 생돈이 나가는 게 적다는 것 뿐 이야. 그런데 교회 돈을 쓰려고 하면 어려운 게 아니야. 통장 번호 불러달라고 해서 휘 입금시켜 버리면 되지. 그런데 사실 그게 구제가 아니잖아. 기획 구제가 구제잖아. 그래서 올 해 구제 열심히 했죠. 우리가 올 해 얼마나 어려웠어요. 박봉진 목사님께서 개척해서 나간 것도 그 분 생활비가 없어서 보내 드리는 것도 사실 구제거든요. 이런 식으로 우린 해 나갑니다. 우린 열심히 했습니다. 예산 편성을 하는 데 구제 어떻게 하나 교회 건축도 있고.... 그래서 배 올려라 배로. 그랬어요. 그래서 회의에 올렸는데도 몇 몇 사람들이 더 올리면 어떨까 그러는 거지요.
나는 벌써 앞서가고 있어요. 지금 우리가 너무 어려운 상황이어서 그렇지 이거 일 년 만 이라도 넘기고 교인들 넉넉해지면 난 깜짝 놀랄만한 프로젝트를 교회에 탁 터뜨리는 거지요. 그러니까 뭔가 이렇게 사람들 속에 뭔가 있을 만하면 탁 터뜨려야지. 이번에 박봉진 목사 교회 개척해 나가는 것도 전부 빚 얻어서 해 주었어요. 돈이 어디 있겠느냐고. 이거 짓느라고 출혈을 얼마나 했는데. 없어. 그거 오죽했으면 우리 집사람이 마이너스 통장 만들어서 거기 보탰어. 돈 있어서 해 준거 아니거든. 그러면 그러는 거야. 진짜 열린 교회가 자기들만 끌어 모으려고 하는가. 그렇지 않아. 내년에라도 개척해서 나가는 사람있으면.. 사람들이 안 가서 그렇지 난 간곡히 세 번이나 얘기했어. 웬만하면 쫓아가라고. 여기 증인 있잖아. 그래서 한 두 사람 쫓아가긴 했지만. 쫓아가서 도와주라고. 내가 나서서 너, 너 가 이렇게 비인격적으로 못하지만...
뭔가 교인들의 마음에 모일 만하면 물길을 내주고 모일 만하면 물길을 내주고 그럴 때에 그 리더의 지도력을 사람들이 인정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지혜를 구하고 고독하게 외롭게 자기가 결단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들을 수는 있어. 결단을 내리는 것은 자기 자신이 하는 거야. 그건 누구에게도 미룰 수 없는 거라 이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지도력을 소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거지요. 그래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그렇게 창조적이고 창의력이 없으면 끊임없이 허리를 숙이고 배워야 해요. 다른 사람, 다른 교회 내가 그 사람처럼 사역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을 찾으라는 거예요. 답답해요.
엊그제도 수련회 갔을 때 자네 맡은 파트에서 자네가 가장 본받고 싶은 사역자가 누구야? 모르겠는데요. 그럼 그런 문제에 대해 불러오면 가장 강의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야? 아는 사람이 없는데요. 그럼 자네는 사역을 하면서 어느 교회를 모델로 삼고 있어? 없는데요. 그 이야기는 뭐냐 하면 노력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풀빵을 구워서 팔아도 저기가 더 잘 굽는다고 하면 거기 가서 돈 주고라도 배워가지고 오고 일식집에서 생선 잘라서 파는 사람이 일본 유학까지 가잖아요. 요즘 세상은. 왜? 더 맛있게 초밥을 만들려고 가는데 하물며 이 중차대한 영혼을 돌보아야 되는...그래서 내가 말했어요. 도대체 아는 게 뭡니까? 뭘 알고 있습니까? 내가 하고 있는 사역의 방면에서 누가 뛰어난지도 모르겠다, 누구를 불러다 강의를 받으면 내가 도움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 다음에 요즘 자네가 하고 있는 사역의 방면에서 새로 나온 책들은 어떤거냐 ? 모르겠다. 안 읽는 거야. 아무 노력도 안 하는 거지.
물론 전도도 하려고 그러고 기도도 하려고 하고 또 씨름하겠지. 그러나 지도자는 그 정도 가지고는 안돼요. 자기가 지도를 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쉽게 얘기해서 사단장 쯤 되면 지금 전투중인 미아리 고개만 알아서는 안 되지. 고개 넘어 적진의 상황은 어떤가. 적의 군수품은 어느 경로로 오는가. 우리가 공군에 지원 요청을 하면 어느 부대에서 비행기가 뜨는가. 1사단인 나는 여기서 미아리 고개를 막는 데 3사단은 어디에 있나. 4사단은 어디로 갔을까. 그건 총 쏘는 일등병은 몰라도 돼. 또 알 수도 없고 . 군사기밀이니까. 하지만 사단장쯤 되면 알아야지. 그럴 것 아니야. 그래서 위에서 내려다보고 지시를 할 것 아니야. 사단장은 여기서 내려다보고 연대장은 여기서 내려다보고 대대장은 여기서 내려다보고 중대장 소대장 분대장.... 소총수는 그거 필요 없어. 너무 원시원적으로 생각할 필요 없어. 국제 정세 필요 없어. 저 놈 나타났으니 저 놈 죽여야 된다고.
근데 목회자는 지도자야. 비유를 하자면 여러분 정도면 최소 부대에서 중대장 이상 되는 사람이야. 교회를 사단으로 본다면. 그러면 최소한 자기슬하에 있는 4대 소대가 어디 흩어져 있는지는 알아야 하고 옆에 있는 중대장은 무슨 임무를 맡았는지 정도는 알아야 될 것 아니야? 그런데 아무것도 아는 게 없잖아. 이건 다른 게 아니라 태만이에요. 태만. 그래서 지도자가 되었는데 내가 꼭 이 길을 가야 하나 하는 사람들은 빨리 떠나야 되요. 그런 지도자하고 사는 사람들은 반드시 불행해져요.
지도자는 신념에 확신에 불타는 사람이에요. 주님이 나를 여기 세워주셨고 여기서 충성스럽게 감당하면 열매를 주실 것이고 그리고 내가 지금 이 삶의 상황에서는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하나님이 가장 나를 기뻐하신 것이다. 난 여기서 물러설 수 없다. 이걸 가져도 저 뒤에 있는 놈들은 놀아. 이스라엘의 역사를 봐. 모세가 그렇게 불타도 뒤에 있는 놈들은 자꾸 가자고 그러잖아 자꾸 돌아가자고. 그러니까 확신가운데 살아야 해. 마귀가 잘 하는 게 뭐냐 하면 그런 것을 넣어주는 거야. 확. 지도자로서 단숨에 미끄러지는 거야. 이게 속에 있는 영적인 자양분을 다 빨아먹는 거야. 내가 여기서 있는 거 맞나. 주님이 나를 여기 보내셨을까. 내가 소명을 받았을까. 대개 이렇게 고민할 때는 치열하게 하나님 앞에서 살 때 고민하는 게 아니라 나태해 질 때 고민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지도자의 자질이 없는 거예요. 그러면 지휘봉을 내려놓고 다시 하나님 앞에서 원점으로 시작해서 소명이 아니면 보따리 싸서 자리로 가면 되요. 그리고 뭐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이 주일학교 사역하나 고등부 사역하나 그것보다도 주님이 더 관심이 많으신 것은 저 사람이 real christian 이 되는 것이에요. 확신이 없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어요.
지도자의 길은 참 놀랍죠. 요동하고 어떻게 해야 좋을 지 모를 때 ‘염려하지 마라’ 큰 상황이 터졌을 때 ‘ 내 다 그럴 줄 알았다’ 알긴 뭘 알어. 그래도 그렇게 말해야 해요. 큰일 났습니다. 해도 담담해 져야 해요. 그렇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도 있지. 이렇게 이렇게 하니까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지. 늘 있을 수 있는 일이지. 교회가 그런 큰 일을 하는 데 그런 일이 안 일어 나겠어? 그러면 이 사람은 황당하고 화나는 게 아니라 그렇게 불안해서 왔던 사람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면서 ‘진짜 별거 아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도자는 모든 일 자체의 신호등이야. 어려운 일이 일어났을 때 진짜 큰일 났구나 이제 교회 문 닫는구나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런 곳에 평화가 넘쳐 나면 ‘별거 아냐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지도자가 그렇게 중요한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참 하나님 앞에 많이 깨뜨려지고 변화되어야 되요. 교회가 8, 9년 밖에 안 되었지만 왜 폭풍이 없었겠어. 그 때마다 주님 앞에 벌판에 서 있는 마음으로 지도자로서의 지혜를 구해요. 그러면 하나님이 기가 막힌 길을 열어 주셔요. 그렇게 가야 되요. 여러분들은 실감이 날지 모르지만 -교구 교역자들에게 말했는데- 여러분 다 몇 천명의 교회를 할 사람이 아니야. 물론 그 중에는 그런 큰 교회를 할 사람도 있겠지. 그런데 그걸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면 맡겨주시잖아요. 그러면 감당할 수 있으면 하나님께도 기쁜 것이고 죽을 쑤면 하나님 앞에 슬픈 것이거든.
그런데 나는 적어도 어떻게 생각을 하냐하면 영적으로나 영적인 지도력에 있어서나 일반적인 지도력에 있어서나 교회를 이렇게 organize해서 가는 힘이나 이런 것에 있어서 나는 교역자들과 사모들은 미래에 3천 명 정도의 교회를 할 것이다 생각을 하고 훈련을 시킨다고. 알아요? 여러분들이 사역을 하다가 하나님의 인도하시면 교구의 사역도 하겠지만 지독하게 훈련을 받아요. 그러면서 비로소 지도자가 되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우유부단하고 나태하고 자기가 해야 될 일들에 대해 확신이 없고 어리석고 고집이 세고 이런 식이 되어 가면 너무 슬픈 거예요. 교회가 망가진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지혜롭게 해 나가야 되요.
그래서 항상 겸손하게 배울 줄 알아야 되요. 밑에서 정 없으면 교회에서도 이렇~게 봐. 여기 김기대 형제가 가지만, 더 잘하겠지만 일단은 이성호 전도사만큼만 했으면 좋겠어. 여기 고등부도 마찬가지고. 그 이상 사역하겠지. 근데 기본적인 자세나 해 오는 것에 있어서 다 약점이 있지만 나는 기대치가 그래요. 만약 여러분들이 보면서 ‘누가 내 사역을 탁월하게 잘했다’ 그러면 배워. 아쉬운 사람이 가서 차도 한 잔 마시자고 그러고 밥도 한 번 사 달라고 하면서 교제하면서.
옛날에 내가 떡장수를 했거든. 근데 떡을 만드는 게 기술이야. 그 중에서도 바람 떡 만드는 거. 여러분들 못 만듭니다. 저는 만들 수 있어요. 떡을 다 해가지고 얇게 밀어서 거기에다 속을 넣고 팍 찍으면 되는 것이거든. 찍으면 바람이 딱 들어가요. 그렇게 되게 되어있어요. 문제는 뭐냐하면 이게 달라붙어요. 기름을 바르고 별 난리를 쳐도 달라붙어. 근데 다른 집은 안 달라붙거든. 그러니까 하잖아. 그래서 쌀을 한 말을 다 버렸어. 안 가르쳐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얼마나 아양을 떨어야 되는 지 몰라. 밥도 사 주고 짐도 날라주고. 하다못해 떡 만드는 것 하나도 그렇게 가서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야지 가르쳐 주는 데 한 번 생각해 보라고. 사역을 자신들이 너무 훌륭하게 환상적으로 해서 다른 사람이 와서 배워야 될 정도가 되었다면 그럴 수 있다고 봐.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으니까. 이따위로 해서 되겠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그렇다고 좋은 건 아니지만 그럴 수도 있을 거 아니야. 그러나 그 정도가 아니라면 배워야 된다 이거지요. 근데 그렇게 배우려고 하는 것 자체가 충성스러움이에요. 내가 불편하고 어렵고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주님의 일이 잘 될 수 있다면 이라는 마음이라 이거지요. 그런 거예요. 그게 리더십이에요.
그 다음에 세 번째가 뭐냐 하면 그렇게 이끌어가다가 보면 지도자로서의 소신을 분명하게 이끌어 가다보면 사람들을 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자기의 지도력에 화합하는 사람도 있지만 안 그런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속이 좁은 지도자는 저거 어떻게 내보내나 그런 생각만 하지요. 그러나 군자와 같은 지도자는 그런 사람들을 다 끌어안는 거지요. 진심으로 그 사람들을 친화해 나갈 수 있는 그런 캐릭터를 가져야 한다 이거지요. 함께 끌어안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거느리고 있는 교사들이나 지체들이 여러분들을 힘들게 할 때 저 자식 일도 쥐뿔도 안하는 게 속만 썩여 단칼에 잘라 버려 이렇게 생각하면 목회의 축복이 없어. 아기의 젖을 물리는 엄마가 아기가 엄마 젖을 깨물었을 때 그 애기 집어던지면서 불효막심한 놈 밤늦게 잠을 쫒으면서 젖을 먹이는 데 에미 젖을 깨물어. 하면서 그 애 댓돌에 집어 던지는 부모 없단 말야. 아파도 자지러지면서도 참고 다시 또 젖을 먹이지. 성질나서 이제 못줘. 하면서 집어 던지는 부모 없잖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진심으로 그걸 끌어안아. 시간이 지나면 자기를 이해하게 되죠.
또 이해 못해도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살아야 되요. 기도를 많이 하면서 그렇게 살아야 해요.
한 상동 목사님이라고 고신의 학장 하시던 분이 있어요. 삼일 교회에서 목회 하셨잖아. 가끔 가다가 전혀 아니올시다 라는 전도사들이 들어오잖아. 그게 얼마나 괴로운지 여러분들이 경험해 봐요. 정말 괴로워요. 정말 고통스러워요. 차라리 교인이 한 100명 빠져나가는 게 낫지 그런 교역자하고 있는 것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에요. 근데 한 상동 목사님은 당시 총회장까지 지낸 교회의 거목이야. 당시 전도사 -조사라고 그러지- 조사는 신학교 1,2,3학년이야. 그러니 비교가 되냐고. 자식 뭐 이런 놈이 있어. 야 임마 너 그만 둬. 그러면 끝나잖아. 요즘 교회에서도 그렇게 하잖아. 내 친구 옛날에 전도사였을 때 교회 목사님이 너 그렇게 하면 12월에 보자 그러셨대. 그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대. 그래서 야 이 자식아 그걸 모르냐 12월에 자른다는 거야. 12월에 보너스 준다는 얘기가 아냐. 12월에 자른다는 거야 이 사람아. 그러면 끝이야. 사직서? 그럴 필요도 없어. 그만 둬. 그럼 끝이라고. 그런데 그 목사님 그렇게 안 하고 강대에 엎드려서 - 그 동안에 기도도 많이 하고 고민도 많이 했겠지- 도저히 아닌데 그 때부터 기도하는 거야. 하나님 모든 사역자가 주님의 손에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저 사람을 누구보다 저 사람이 여기 있는 것 보다 저 사람도 기뻐서 가고, 기쁘게 보내 줄 수 있도록 기도하는 거예요. 그래서 왜 그렇게 하세요? 그냥 가. 그렇게 하시지. 이 사람아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주권이 어디에 있나. 이 사람이 독특한 것은 보수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에요. 잘라. 그러면 하나님의 주권은 어디에 있냐 이거예요. 그게 신앙이에요.
항상 어떻게 생각해야 하냐면 여러분 다 좋다는 목회자가 없고 아무리 개떡 같은 목회자가 와도 다 싫다고 그러는 교회는 없어. 말도 안 되는 목회를 해도 그 목사님 밖에는 세상에 없다는 교인이 있어. 그러니까 목회는 내가 얘기 했지만 들판을 가르고 흐르는 한 줄기 강물이야. 누가 다 그 강물 좋다고 안 해. 거기 와서 집 짓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투덜거리면서 배타고 강을 건너는 사람도 있고 산에서 노루 사슴 떼가 한 모금 먹고는 그 강에 돌아오지 않고 멀리 가버리곤 한다 이거지요. 그래도 강은 흔들림 없이 흘러가면서 두루두루 들판을 적시면 그게 바로 목회를 한다는 거야.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말에 절대 흔들리지 않는 쓸데없는 고집을 가져서도 안 되지만 또 너무 흔들리는 사람이 되어서도 안 돼.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다 탕진하면서 모든 사람들을 쭉 품어야지. 그런 지도력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해. 그런 것들을 위해서 목회자의 아내가 그런 일을 잘 해야 해. 남편한테 껄끄러워. 저 자식이 우리 남편 되게 힘들게 하지. 하나님 재 손 좀 봐주세요. 마음속에서 꺾어진 마음. 그러면 목회의 축복이 없는 거예요. 때로는 목회자가 야단을 치면 목회자의 아내가 눈물을 닦아주고 이렇게 하면서 집 안에서 마치 아이들 기르는 것처럼. 엄마가 야단치면 아빠는 가만히 있다가 조금 있다가 아이들 위로해 줘야지 아빠가 같이 몽둥이 들고 와서 협동 작전으로 그래 이 새끼 죽여 버리자 너 이 자식 엄마 힘들게 했지 엄마 때린 것은 유도 아니다 맞아 봐라 엄마한테 많이 맞았지만 그건 예고편이었어. 많이 맞아봐. 그러면 애가 망가진다고. 그러면서 친화력을 가지고 그렇게 해야 되. 그걸 이해해야해. 자기와 함께 사역하는 영혼들 그리고 어린 지체들을 깊이 사랑해야 되요.
나는 중고등부 전도사 할 때 교사들 결혼기념일까지 다 챙겼어요. 왜? 몇 명 안 되니까. 지금은 못 챙겨요. 어떻게 챙겨. 가족들 생일이나 기억하면 다행이지. 그런데 다 챙겨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에요. 엄마 죽고 1년이 되었어. 아빠 죽고 1년이 되었어. 그러면 그 때 누가 죽었을 때야 교회에서 찾아가고 생난리를 치지만 누가 기억하냐고. 혼자 쓸쓸히 지낼 때 편지 쓰는 거지요. 아무개야 너희 아버지가 하늘나라 가신지 오늘이 꼭 1년 되는 날이구나. 1년 전에 얼마나 힘들었니 그런데 1년 동안 네가 이렇게 신앙생활 잘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하나님 앞에 너무 감사하다. 내 기도가 응답된 것 같구나. 그래서 내가 중고등부 사역할 때는 항상 엽서하고 펜하고 들고 다녔어요. 그래서 기차를 기다릴 때라든지 수시로 써서 보내는 거예요. 애들이 그 편지 받고 눈물 펑펑 흘리고 교회 나오는 애들도 있었어요.
이렇게 다 지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친화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한 것이거든요. 그래서 약간은 지도자에게 여성스러움이 있어야 되요. 그런 것을 좋아하거든요. 나는 이렇게 목회 사역을 하면서 때로는 이렇게 탁월할 정도로 깊이 은혜를 받은 지체들이 있었거든. 근데 그런데도 미끄러지는 지체들이 가끔 있더라고요. 참 신뢰하고 그랬는데. 그래서 공통적인 게 뭔가 이렇게 보니까 사실 나는 마음속으로 많이 변화 받은 사람들을 참 사랑하거든요. 근데 너무 바쁘니까 그런 걸 잘 표현을 못하고 살아. 그런데도 우연히 가까이 있든지 여러 가지로 변화를 받았다든지, 변화가 좀 덜 되었더라도 내가 많이 사랑을 표현한 지체들은 잘 안 미끄러져요. 그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연약함이고 한계예요.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들은 위로가 필요할 때 없어요? 많지요? 교역자들도 많으니까 내가 하나씩 불러다 위로해 줄 상황은 안 되지만 위로가 필요할 때 있잖아요. 그 때 하나님 앞에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의 동역자들로 하여금 저 지도자와는 생사를 같이하고 싶다 그런 것을 줄 수 있는 그런 지도자들이 되어야 해요. 그래서 잘 친화하고 사람과 사람사이를 잘 이어서 이끌어 갈 수 있는 평화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는 마지막 네 번째로 조직력이에요. 이것은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것은 아니고 자기가 계속 꾸준히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인데 조직력이란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잘 조직을 해서 무엇인가 자기 기반에 영적인 필요가 생기든지 아니면 일반적인 필요가 생기면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서 -그걸 자기가 직접 할 수는 없잖아 하기는 하지만 매 번은 못하잖아. 그래서 조직을 하는 거야. 하나의 경영적인 측면에서. 경영이란 물이 이렇게 흘러가도록 만들어 주는 거야. 예를 들자면 이렇게 웅덩이가 세 군데 있고 이게 땅이야. 그러면 적셔진다고 해도 요만큼밖에 안 적셔질 거 아냐? 그런데 여기에 곡식을 일구어 먹을 수 있는 땅은 한계가 있잖아. 이걸 만약 이런 식으로 물길을 터주면 여기에 물이 모자라면 여기로 흘러 들어갈 거고 여기 모자라면 이리 흘러들어 가서( 칠판에 그림을 그리심) 여기 전체가 축축히 젖은 땅이 되어서 농경지가 될 수 있잖아 이렇게 물길을 터주는 것이 바로 경영을 통해서 일을 조직화 시켜서 해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지혜를 구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할 수 있을까 하는 거예요.
나는 우리 교회에 새 가족 시스템이 참 잘되어있다고 생각하는 데 여러 교회에 가서 보기도 하는 데 우리 교회만큼 탄탄하게 되어 있는 교회가 없지는 않겠지만 많지는 않습니다. 근데 맨 처음 이 시스템이 있기 전에 투덜대는 것이 뭐냐 하면 열린 교회는 사람이 없다는 거야. 안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 없냐 그랬더니 하나님과의 관계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교회라는 거지. 그래서 하는 얘기가 뭐냐면 예배 시간에는 똑바로 설교만 듣고 끝나고 나면 펑펑 울면서 기도하느라 누가 가는지 오는지도 모른다 이거지요. 참 그 얘기를 1년 이상 들었어요. 그래서 부흥이 안 된다고. 처음에는 그냥 웃고 넘겼고 지가 은혜 못 받으니까 별 흉을 다 보는구나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사람들이 모두 은혜를 너무 갈망해서 온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 그래서 만든 게 새가족부를 만든 거예요. 그래서 팀들은 만들어 다 다른 교회 보내어서 훈련하고 견학하게 하고 그렇게 해서 새 가족 팀을 만들어 오늘날의 시스템이 약 3년 걸쳐서 만들어진 거예요. 급기에는 교재도 6개월 거쳐서 만들어진 거예요. 그러다 보니 자꾸 시스템이 개발이 되는 거예요. 영접팀, 주차팀... 그래서 이제 새 가족이 약 130명의 대 가족이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되었냐 하면 그렇게 놀라운 영향력을 가지고서 이 길을 걸어나가니까 어떻게 되었냐 하면 많은 사람들이 오면서 사람이 없다는 얘기가 들어가고 요즘은 어떤 이야기가 나오냐 하면 너무 친절하고 관심을 가져 주어서 부담스러워서 못 나오겠대요. 그것은 시스템을 만들어 놓으면 흘러가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거기에는 하나님이 은혜 주시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기 때문에 그들이 적극적으로 일하면서 움직여 가는 거예요. 그런 걸 잘 해야 하는 거예요. 생각을 해 봐야 해요.
이건 진짜 심각한 거예요. 다른 교회에서 우리 교회를 보면 깜짝 놀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장년들의 숫자에 비해 주일학교의 숫자가 턱없이 적다는 거예요. 대개 장년들의 숫자하고 중고등부와 주일학교를 합친 숫자가 비슷하게 가는 게 일반적이에요. 근데 이것은 말도 안된다 이거지요. 이건 열린 교회가 장년 교육에만 너무 치중하는 거 아니냐 하는 데 나는 절대 그렇지 않거든요. 여기 오래 있던 사람들이 증인이에요. 영아부 19명 때문에 교역자 한 사람을 세웠다고. 그것도 정식 교역자예요. 보너스 퇴직금까지 다 주는 정식 교역자를 세웠다고요. 고등부 생길 때 15명이었는데 그 15명 때문에 교역자 한 사람 세웠다고요. 그러니까 절대 그렇지 않거든.
그렇게 사역을 했는데 그럼 자연히 보는 거지요. 뭐가 안 되고 있으면 안 되고 있는 것에 대해 반응을 해야 한다 이거지요. 지도자의 자세라 이거지요. 영혼들이 한 주 두 주 안 오면 내가 기도가 부족했나 생각할 수 있을 거야. 그렇지만 이게 계속해서 숫자가 늘지 않고 등록하는 숫자가 없고 어쨌든 하나님이 사람을 안 보내주신다고 생각될 때는 두 가지 관심을 동시에 가져야 되는 거예요. 영적으로는 이런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뭘 말씀하시나 두 번째는 조직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내버려 두고 방치하는 거야. 한 달 두 달 세 달 가는 거야.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자기 상황이 진전이 없으면 자기 목회가 싫어지기 시작하는 거야. 싫증이 나기 시작하고 진력이 나기 시작하고 힘든 일만 자꾸 생기는 거야. 따라오는 선생님도 마찬가지야. 잘 나오면 신이 나는데 하나 둘 ‘이사 갔대요. 아프대요 연락이 안 돼요’ 이렇게 하나 둘 빠져나가고 여기저기서 공과 시간에 혼자 공과 책 들고 공부하는 선생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지옥이야 나오기 싫은 거야. 근데 그걸 반응을 안 하고 내버려 두는 거야.
판단이 안서면 선배를 찾아가서 묻기도 하고 전문가를 찾아가서 상담을 하기도 하고 정 안되면 담임 목사를 찾아와서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하면서 뭔가를 해야 되는데 반응을 안 하는 거야. 그러면서 생각이 이상하게 엉켜서 오그라들면서 ‘ 난 자질이 없나봐 난 안 되려나봐 ’ 그러니까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상황이 한 사역자를 덮어서 그의 영성을 말려 버리는 거야 그렇게 되면 탈진해서‘ 못하겠어요’ 그러면 거기서 오는 영적인 damage는 정말 회복하기 힘들어요. 뒤로 물러서면 안 돼. 그런 것이거든 반응을 해야 된다 이거야. 조직이 부족하면 조직을 만들고 이렇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맡고 있는 교회학교를 조직화해서 끌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거예요.
근데 비교를 해 보는 거야 다른 교회에서 잘 되고 있는 같은 수준의 교회 것을 가지고 이걸 가지고 기능할 때 어떻게 될 것인지를 비교하는 거야. 근데 잘 안 되는 교회 목회자의 공통점이 그걸 안 해요. 그런 걸 안하고 게을러요. 나태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주 자기가 잘 하는 것에 대해서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하찮은 거다 라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바보 같은 생각이지요. 실제로 안 되는데. 그러면 생각을 다시 해야 되잖아요. 그런 것들이 총체적인 종합적인 섬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우선 쉬기 전에 하나만 더 얘기를 하면 부부가 함께하는 섬김이라고 하는 것이거든요. 우선 인격적인 측면에서는 목회자의 아내들이 굉장히 소외되어 있어요. 제 경험에 의하면 제가 만난 사람들 중 10명의 목회자의 아내 중에서 2명은 정신과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중이에요. 목사들의 아내가. 그리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그래도 뭔가 고민을 한다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아무것도 아닌 사람, 그러니까 열린 교회에 오면 새가족반에도 집어넣을 수 없을 정도의 사람 그래서 새신자반에 가서 다시 해야 하는, 복음을 아는 지식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신앙생활이 거의 불가능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에요.
그래도 어린 나이에 은혜를 받아서 고등부 대학부 청년부 거치면서 훈련을 받다가 늦게 결혼을 했을 경우에는 조금 나아. 그러나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거나 체제도 별로 갖추어지지 못한 교회에서 훈련을 받지 못하고 아무런 지식도 없이 결혼을 했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 어디 가든지 사모님이라고 하잖아. 사모님보고 어느 교회에서 새가족반 공부하라고 그러냐고. 그렇잖아. 우리 교회는 새가족반 들어가잖아. 맨 처음에 부목사로 왔는데 새가족반 가라니 자존심 상한다 그럴 수 있잖아 가서 공부를 하면서. 정상적인 신자가 되어 가야 되잖아. 그런 성장이 없으니 남편에 대한 원망이 가득 차 있어요. 대부분. 맨날 사역이랍시고 팽개치고 밖으로 돌고. 얼굴 한 번 볼 시간도 없어. 아직 아기가 없을 때에는 ‘너 돌아다니냐 나도 돌아다니자’ 시장도 가고 수영장도 가고 구역예배도 가고. 애 낳아봐 꼼짝도 못해. 거기다 두 번째 낳아봐. 이거 완전 혹이 두 개여서 아무것도 못해. 그러면서 남편에 대한 원망 분노 이런 것들이 꽉 차는 거야.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상당히 많은 사람이 그래.
그래서 그렇게 되면 안 돼. 남편들이 아내를 깊이 사랑하고 자기보다 아내들이 더 어려운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고 이해해 줄 수 있어야 해. 그래서 내가 하는 이야기가 이거야. 목회자는 특별한 사람들이 가는 길이야 목회자의 아내는 ‘매우 특별한 사람’ 들이 가는 길이야 또 하나는 뭐냐 하면 인격적으로 늘 칭찬하고 격려해 줄 수 있어야 해. 남편들이. ‘너는 신학교 나왔다면서 그것도 못 하냐 너는 사모가 되어서 하는 게 뭐가 있냐 너는 진짜 도움이 안 된다 가정만 없으면 펄펄 날 텐데 주님이 헤어지지 말란 말 아니면 진짜 헤어지고 싶다’ 그런 식의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은 사역의 축복이 없어요.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어서 목회자의 아내로 살아가는 길에 자기가 소질도 있고 주님이 쓰시고 그래서 남편에게도 도움이 된다 그렇게 하면서 살아가야 되요.
부부가 함께 하는 섬김에서 사역적인 부분은 뭐냐 하면 세 가지를 얘기해야 되겠는데 먼저 첫째로 아내들은 잊지 말아야 될게 자기가 리더가 아니야 남편이 리더지. 그래서 절대로 남편의 리더십을 방해하거나 저해해서는 안 된다 이거지요. 그래서 부부가 모두 내려가서 자기 부서로 가. 교사를 하든 새가족반을 하든 서기를 하든지. 뭘 하든지 안내를 하든지 하나 맡아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겨. 거기서 남편이 같이 회의를 하는데 난 그렇게 생각 안한다고 그래서 반기 들고 그렇지 않으면 남편하고 반대 의견 가진 교사들하고 논쟁이나 하고 그러면 안 돼. 가만히 있어. 듣기만 하라고. 오히려 관계가 나빠지거나 할 때 그것들을 지혜롭게 풀어줄 수 있는 그런 사모가 되는 것은 괜찮아 그 대신 모두 참여해 참여해서 함께 기도하고. 그렇게 부부가 함께 사역을 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harmony가 전혀 안 이루어져. 혼자 하는 사역에 익숙해져 버리면 부부 사이의 정신적인 결합이 유지될 수 없는 거예요. 고민하는 상황이 다르니까. 그래서 다 참여해. 교사모임. 금요 기도회. 야유회. 교사들 갈 때 사모 떼어 놓고 가지 말고 밥 먹으러 갈 때도 같이 가고 심방 갈 때도 쫒아가요. 특별한 경우 아니면 쫒아가. 전도 나갈 때 쫒아가고. 사역이 있는 그곳에 항상 같이 있으라고. 그래야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될지를 아는 거야.
같이 기도하고 같이 아파하고 같이 공감하고 같이 그렇게 하는 거야. ‘야 나 오늘 정말 기쁘다’ ‘왜?’ ‘아무개 선생이 회심했어. ’ ‘그 사람 누군데? ’ ‘ 나 오늘 전도 나갔거든 하나님이 많은 영혼 붙여 줬어’ ‘좋겠네’ 근데 대부분이 그렇게 사역을 해요. 그러니까 목회자의 아내 마음에 가시 같은 것들이 많이 있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남편의 리더십을 엄청나게 인정해 주고 남편이 리더로서 자연스럽게 존중받을 수 있도록 그렇게 내조해야 된다는 거지요.
그 다음에 두 번째는 뭐냐하면 모든 정보를 공유하라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목회자의 아내들이 입이 무거워야 되요. 뭐라고 하면 파르르르르 하면 안돼요. 모든 정보, 교사들에 관한 이야기 1년의 사업계획, 선교를 위해 어떤 구상을 가지고 있나, 자기 부서의 문제점이 무언가 그리고 선생들 각 사람의 영혼의 상태는 어떠 한가 어떤 아이들이 최근에 회심했는가 이걸 내가 각 부서에 300이 넘으면 요구 안하겠지만 기껏 고등부 35명이고 유년부 70명이에요. 한 손에 다 들어와야 되요. 그런 것들을 모두 다 알고 기도해야 되요. 그래서 정보를 같이 공유하라는 거. 그리고 자기 사역에 대해 부부가 많이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돼. 그렇지 않아? 와서 들여다도 안 보는 거야. 그러니까 안 되는 거지. 아기 있으면 아기 업고 나와서 어르면서 기도하고 방해가 될 만하면 밖에 나가서 기다려 주고. 이렇게 하면서 눈물 나게 살아요. 그렇게 하면서라도 사역에 공감하면서 공통된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내 얘기는. 예외 없이 그렇게 사역을 해야 하는 거예요.
이번에 등록하는 인원이 지지난 주에 28명 등록 했습니다. 지난주에 22명. 장년 얘기하는 거예요. 얼마나 놀라워요 여기 오고 나서 모든 사역자들이 걱정을 하는 게 뭐냐하면 청년들이 너무 등록을 안 하는 거예요. 저 쪽에서는 거의 반반이었거든요. 걱정을 했는데. 청년 교역자 부부 세미나를 했어. 점심을 잘 먹이고 여기 와서 했어. 그리고 여러분들 나눠 줄 텐데 기도 카드를 나누어 줬어. 그러고 났더니 변했는데 뭐냐면 수시로 아내가 사역을 물어본다는 거야. 전에는 ‘ 뭐 그런 것까지 알려고 그래 내가 알아서 할게.’ 이번 세미나에서 명쾌하게 들었으니 ‘ 왜 안 가르쳐 주냐 목사님이 가르쳐 주라고 했는데’ 다 얘기를 하는 거야. 누가 회심 했고. 누가 속 썩이고. 누가 미끄러졌고. 전도사남편들이. 전에는 맨 날 힘들다고 기도 안했는데 세미나 했더니 기도하러 교회 올 시간이 없으니 아랫목에 애기 보고 있고 윗목에서 기도한대요. 그러니까 얼마나 놀랍냐하면 청년들이 더 많이 등록한대요. 하나님은 칼 같으셔.
그리고 어느 부부가 마음을 모아서 같이 간절히 기도하잖아 하나님 거기만 보내시는 거야. 4명 5명 7명 10명... 이쪽은 몇 주 째 굶고 있는 거야. 그게 4주 만 지나가버리면 회복이 안 돼. 한 교구에 하나님이 5명 6명씩 4주 보내시면 새 가족반이 미어터지는 거야 땅바닥에 앉아서 해야 되는데 저 쪽은 빠져 나가잖아. 그러니까 12명 공부했으면 한 주에 한 명씩 올라갈 거 아냐 하나 올라가고 안 오니까 완전히 사기가.... 그러면 이제 교구 사역자들은 부담이 더 클 거 아니야? 금식 기도도 하고 회개도 하고 자기가 마음을 곱게 쓰지 않아서 하나님이 안 보내주시는구나 회개하고 철야도 하고.. 그러면 하나님이 보내주셔요. 우리들이 볼 때는 ‘ 어 계속 청년이오다가 이제 장년으로 옮겨갔네.’ 그런데 다 소쩍새 우는 사연이 있는 거야 그 이면에.
그러한 심각한 상황이 되었는데도 하나님 앞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건 옳지 않은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사역을 계속하면 나중에 신앙심이 파괴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물러나서 침륜에 빠집니다. 그래서 수시로 아침에 출근할 때면 ‘여보 새로 생긴 기도제목 적어 놓고 가 ’ 그래서 적어 놓고 갔는데 응답이 된 거야 그러면 ‘ 야 응답 되었다 감사하다’ 그런데서 아내는 집에서 기저귀 빨고 애 기르면서 자기가 사역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자기의 기도를 들으셔서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신다고. 그런 거예요.
그래서 교구에서 사역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여러분들도 정보를 항상 공유해야 되요. 남편이 알려 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물어야 돼. 당신 요새 사역 잘 하냐 기도 잘하고 있냐 내가 보기엔 아닌 것 같다 그러다가 싸우지는 말고. 바가지가 돼서는 안 되잖아. ‘아유 그따위로 하니까 사역이 될 리가 있냐 ’ 이렇게 하지 말고. 어떻게 돼 가고 있냐. 나는 당신이 이런 점에서 많이 회개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자극적인 말일수록 부드럽게 그날 저녁 반찬도 잘 먹이고 해서 손잡고 눈물 뚝뚝 흘리면서 기도하고...
우리가 어디가 완전한 사람이겠어요 그렇게 변해 나가는 거잖아요. 여러분 이제 보시면 알지만 정말입니다.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사역을 해 나가야 해요. 다리 두 개 묶고 뛰는 게임 있잖아. 목회가 그거라고 생각하면 돼. 그래서 빨리 가는 게 빨리 가는 게 아니야. 그렇게 공유하면서 지내야 돼.
이제 또 하나 사역적인 측면에서 지체들과의 관계의 문제인데 교회학교의 여자 선생님들에게 늘 어머니 같은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해요. 나이도 어린데 어떻게 어머니라고 그럴 수 있을까. 아니야. 그건 자연적인 나이와는 다른 거야. 인격적으로 깊이 그를 깊이 사랑해주고 그를 염려하고 그를 생각하고 그에게 진심을 표하면 사람들은 기대고 싶은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꼼꼼하게 챙겨주고 가끔 불러다가 라면이라도 끓여주고 어려운 일 생기면 전도사님한테는 차마 말 못해도 사모님 생각이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해. 그렇게 해서 그 자체는 목회야. 여러분 목회하면 사모님들을 많이 찾아. 목사님은 너무 어려우니까. 그리고 바쁘니까. 그때 지혜로운 말로 잘 다독이고 위로해주고 진심으로 사랑해주고 할 때 남편의 사역이 좀 더 비옥해 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영적인 어머니로서의 자질들도 키워 가는 거예요. ‘ 저건 전도사 부인이라고 하는 데 철딱서니가 저렇게 없어서 어떻게 하나’ 나이 든 선생들한테 그런 생각이나 갖게 하면 안 돼. 신앙이 있고 단호하고 열심 있게 하나님 앞에서 자기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거야. 그렇게 해서 늘 이 지체들 속에서 따뜻한 지도자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그렇게 섬기면서 살아가야 돼 그래서 섬겨야 돼. 그래서 절대로 그것을 종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회의를 해도 먼저 가서 회의 장소라도 쓸어놓고 책상이라도 펴 놓고 가지런하게 해 놓고 거기서 기도하고 지체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고 개인적으로 만나면 아주 충성하는 사람이나 충성하지 않는 사람이나 한결같이 따뜻하게 대하면서 격려해 주고, 그래서 여러분 자신이 교사들을 목양한다 라는 생각을 가져야 되요.
일단 교구에서 여러분들이 가면 여러분들이 돌보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청년 1부도 은혜가 있던 지체들이 갔는데 가서 완전히 팥단지가 되어 가지고 미끄러지는 거지요. 그건 자기 자신들 책임도 상당히 커.
내가 내수동 교회에서 사역을 하는 데 여기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겠지만 진짜 좋은 지체들을 안 주는 거야. 자기네 청년부 대학부에서 쓴다고. 그리고 설교도 잘 안듣고 손에 잘 안들어 오는 그래도 신앙이 전혀 없지는 않은 그런 애들을 거기라도 가서 일해라 나는 어차피 너를 쓸 마음이 없다 그러면서 찌그러기 같은 사람들을 보내준다고. 근데 누가 좋다고 그러거든. 그래서 난 그랬어 자기는 대학부 리더 하는데 이거하고 그것하고 같이 하고 싶대요 그래서 둘 중에 하나 해라 가서 리더 하든지 여기서 나와 함께 사역에 목숨 걸든지 둘 중에 하나 해라. 그리고 보니 마땅한 사람이 없대요. 그래서 아무나 보내줘라. 성실하기만 하면 내가 고쳐서 내가 일하고 싶다. 보세요. 청년 교구에 가서 은혜 많이 받은 사람이 사명감 하나 가지고 왔어. 쉽게 얘기 하면 그 교구 사역자하고 목양관계이지 여러분하고 목양관계 아니야. 그러니까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필요가 없는거야. 얘들이 우리처럼 자기를 따뜻하게 사랑해 준 적이 별로 없는 거야. 그러니까 너무 좋아하는 거야 그러면서 변화돼. 그러니까 저쪽에서는 내 논 자식이었는데 여기 와서 변화가 되니까 나하고 목양 관계가 형성이 되는 거야. 그러니까 미련 없어 대학부나 청년부에 미련 없고 중등부에 목숨 건거야. 그러니까 그걸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어. 박헌준 목사에게 펑펑울고 은혜 많이 받은 사람 와 봐야 어려움 생기면 ‘ 도 전도사 역시 그렇군 박목사 같으면 그렇게 안했을거야’ 이런 생각만 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제대로 안 갖추어진 사람이 오는 것을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제대로 된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