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구역장수련회 새벽예배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1-32)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을 두고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그 중에 특별히 베드로에게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베드로 개인에게 말씀하셨다기 보다는 모든 제자들의 우두머리인 베드로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 여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영혼을 맡기신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어려움과 그리고 그를 향한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그리고 그런 사랑을 받은 사람들에게 기대하시는 삶이 여기에 한꺼번에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것은 당신과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부르셨지만 그렇게 당신과 함께 있게 하셔서 당신의 인격과 사상의 영향을 받게하신 후에는 그들에게 사명을 주셔서 이세상으로 보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아직 예수님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시기 전까지는 이스라엘의 이른 양들을 위해 보내셨지만 성령이 임하신 후에는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한편으로 복음을 전할뿐아니라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전파된 복음을 듣고 교회속에 들어온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기까지 잘 돌보는 사명을 감당하여야 했는데 이것이 바로 목양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항상 이 두가지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복음을 끊임없이 전파하는 전도자의 자세와 어울러 목양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한편으로 끊임없이 불신자들에게 전하며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구원받고 주님앞에 나오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점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주신 사명은 교회에 녹아 있고, 교회에 녹아있는 사명의 축소판이 구역장과 순장들의 사명속으로 재반복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지 않는 교회가 아무리 영혼을 잘 돌본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그 교회가 번영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구역과 우리의 순도 마찬가지로 구역장들과 순장들이 먼저 공격적인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아주 분명한 메시지들을 소유하고 있어서 누구든지 교회에 들어오면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거기에 굴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점에서 우리들은 끊임없이 한편으로 복음을 전하고 전도하는 전도자들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전도의 사명, 목양의 사명 우리 구역장과 순장들이 가지고 있는 그 사명의 깊이와 넓이와는 비교될 수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와 같은 동질의 사명을 가진 제자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향한 공격이 있었습니다. 그 공격을 가르켜서 오늘 “사단이 밀 까부르듯하여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랬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단의 끊임없는 공격입니다. 그 공격은 영혼을 섬기는 사람들에게로 집중된 공격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의 본질은 보이지 않는 교회인데, 그 교회가 든든하게 서 가는 것을 사단이 얼마나 싫어 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의 공격은 영혼을 끊임없이 전도하고 그렇게 돌아온 영혼들을 하나님의 진리앞에 세우는 그래서 보이지 않는 교회를 든든하게 하는 그 사람들의 수고와 헌신에 대해서 얼마나 큰 위협을 느끼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향하여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 밀을 까부른다는 것은 농부들이 그 일을 할때는 쭉정이와 알곡을 가려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에게 쭉정이와 알곡을 가려내서 하나님의 교회를 이롭게 하려는 의지가 있을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밀 까부르듯 너희를 청구한다라고 하는 이 말씀은 그들이 쓸모없는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이 맡겨주신 영혼들을 감당해 나가는 일에 있어서 쓸모없는 사람이 되도록 집요하게 그들을 공격하고 미끄러지게 한다는 뜻 정도로 해석을 하면 무방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단의 공격입니다. 우리들이 일반 섭리적 차원에서 우리의 인생의 문제를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일어난 많은 어려움들이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다 헤아려 보면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한해 동안에 영혼을 위해서 온전히 섬길수 없었던 우리의 모든 외적인 삶, 내면 세계의 갈등들은 원인없이 일어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 볼때에는 그것은 설명할만한 이유들을 이세상에서 다 가지고 있습니다. 물질이 궁핍해서 마음이 갈려 그 근심과 염려 때문에 영혼을 섬기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물질에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가족들의 관계속에서 마음이 찢기고 나뉘어 져서 그랬던 적도 있습니다. 직장생활 속에서의 유혹과 시험에 들어서 그래서 마음을 모으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은근한 죄와 정욕의 지배로 우리의 많은 기도와 헌신이 공중에 가루처럼 흩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육신의 눈으로 보면 설명할 수 있는 다양한 이유를 가지지만 영적으로 보면 그 모든 배경에는 그것들을 모두 사용해서 여러분들을 밀 까부르듯 흔들고 있는 사단이 거기에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령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밖에 볼 수 없는 이 모든 사물의 원인 배후에 있는 영적인 의미들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움직이는 영적인 실제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기억하여야 할 바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사도바울이 고백한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은 본질적으로 영적인 전투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아내를 사랑하며, 남편에게 순종하며,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않고 부모에게 복종하며 이렇게 살도록 부름을 받고 있지만 결국 그 모든 것들의 본질은 영적싸움이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로 우리의 시름은 혈과 육에 속하는 것이 아니오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대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성경의 시각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영적인 도전과 전투에 있어서는 영적인 방식으로 이문제들을 접근해야 합니다. 있는것은 있는 것이고, 없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온전히 향하는것 같아도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삶 자체가 영적인 능력을 길러 나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육을 쫒고 욕심에 이끌리는 그러한 사사로운 삶으로는 우리의 영혼의 힘이 강해질 수 없습니다. 이길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끊임없이 우리들을 다가오고 있고 흔들고 있는 영적인 세력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럼점에서 우리의 영적인 도전은 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금년 한해동안에 영혼을 섬기는 일을 훌륭하게 감당하였다면 아마 지금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을 지켜주지 않으면 사단이 여러분들의 마음을 한없이 교만하게 할지도 모릅니다. 또 하나님께서 여러분들 약할적마다 붙들어 주셔서 여기까지 데려 오셨지만 사명을 올바로 감당해내지 못했다면 지금쯤 사단이 여러분들을 형편없이 여러분들을 낮아지게 하고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혹은 여러분들의 영혼을 섬기는 일에 미끄러지게 할 것입니다. “그것 봐라, 네가 일년동안 한것이 무엇이 있느냐? 결국은 그렇게 고단하고 힘들기만 했지만, 영혼을 돌보고는 있었지만 하나님이 너를 도와주신 적이 없다. 봐라 너는 혼자다. 내년에도 아무런 좋은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집어 쳐라. 도망가라. 너에게 사명은 없다. 이 힘들고 긴장의 연속인 이삶을 왜 살려고 하느냐? 편안하고 그리고 안락한 삶이 있다. 부담없이 신앙생활을 하면 얼마나 좋겠니?” 끊임없이 채근할 것입니다. 밀 까부루듯 하려고 여러분들을 흔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본래의 사명에서 이탈하도록 끊임없이 흔들고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요소가 나옵니다. 주님이 기도해 주십니다. 여러분 인간적으로 보면 주님을 모른다고 앞으로 배반하는 일은 시몬 베드로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가롯유다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예수님을 팔려는 일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가롯유다가 은 30을 위해서 예수를 팔았더라면 시몬 베드로는 자기의 목숨을 위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사람이 아닙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바로 사단이 끊임없는 공격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사람은 결국은 영원한 멸망으로 던져지고 그리고 이제 시몬 베드로는 다시 하나님 앞에 돌아와서 장렬하게 주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지 않습니까? 물론 거기에는 하나님의 큰 섭리와 작정이 있지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보면 그 현신적인 이유가 명백히 나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를 떨어지지 않기 위해 내가 너를 위하여 기도 하였나니”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 기도 하였나니 그랬습니다. 기도가 바로 이렇게 사명에서 미끄러지려는 영혼을 붙들어 주는 중대한 사명이라고, 사명에서 미끄러지는 영혼들을 붙들어 주는 중대한 요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삼중의 적용을 갖게 됩니다. 우선 첫 번째 적용은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세상에 오셔서 하시는 모든 일은 십자가에서 완전히 이루셨고 부활과 승천으로 완전히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그 시간에도 아직 끝나지 않은 에수님의 사역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렇게 우리와 같은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주님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모든 자기의 피로 값주고 사신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또 구원받을 무리들을 위해 기도하시지만 특별히 당신이 이세상에 계셨더라면 하셨을 그 일의 뒤를 잊고 있는 우리들, 주님처럼 영혼을 섬기고 그 영혼들을 주님 앞에 인도하기 위해 수고하는 우리들을 위해 주님이 특별히 간구하신다는 사실은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기도 열심히 할때는 주님이 여러분들의 기도를 들으시며 더욱 열렬히 아버지 앞에 여러분들을 위해 간구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지쳐서 더 이상 기도할 수 없을때 조차도 주님은 그 기도를 쉬지 않고 여러분들을 위해 주님의 보좌 우편에서 하고 계십니다. 그럼으로 주님의 은혜는 우리를 초월해서 역사합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은혜는 역사합니다. 결국은 우리를 처음 하나님이 영혼을 섬기도록 부름을 받은 그 자리로 우리를 데려 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적용은 다른 사람의 영혼을 섬기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그것과 관련이 됩니다. 주님이 이렇게 네가 떨어지지 않기 위해 기도하였다고 하는 이것은 바로 기도가 얼마나 위대한 힘이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영혼을 섬기는 여러분들끼리는 깊은 전우애를 느낄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한 뜨거운 기도의 끈으로 엮어있어야 합니다. 온 마음을 그렇게 뜨거운 기도로 심령을 다하여 섬길때 여러분들의 영혼은 안전하고 튼튼하게 됩니다. 교역자가 늘 눈물로 구역장들과 순장을 위해 기도하는 교구, 깊은 밤에 양떼들을 맡긴 그 순장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그리고 그들이 믿음에서 미끌어지지 않도록 주님이 겟세마내 동산에서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자기의 순장과 구역장을 위해 기도로 헌신하고 있는 교역자가 있는 교구는 안전합니다. 왜냐하면 그 기도의 끈으로 붙들어 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일꾼을 세울때 온 마음으로 기도하고 영혼들이 미끌어진다는 소식이 들릴때 구역장을 원망하기 보다는 오히려 격려하고 그를 위해서 깊은밤, 이른새벽 그리고 온 마음을 바쳐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교역자들이 있는 교구는 안전합니다. 이 목양의 사명은 위임이 되지 않습니다. 일은 맡겼지만 주님은 여전히 당신 자신의 일 인것처럼 생각하고 있으니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우리들도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역자들이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이 교역의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 입니까? 그리고 시간이 흘러 갈수록 우리의 몸의 자원이 빼앗겨 우리는 더욱더 많은 일들 앞에서 육체의 연약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들을 극복하고 하나님 앞에 변함없이 충성스러운 길을 걸어가지 않으면 하나님께 싫증난 우리의 영혼은 피곤한 우리의 육체를 향하여 휴식이라는 카드를 내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미끄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역자들이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자신들의 교구를 위해서 그 무거운 짊을 짊어져야 합니다. 에수님이 바로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더 많이, 더 온전히 기도에 헌신하여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기도에 약해져서 게을러지기 시작하면 어쩜 그렇게 양떼들은 그렇게 쉽게 그것을 본받는지 모릅니다. 몸이라도 좀 약해서 휴식의 시간을 갖노라고 기도를 게으르게 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기도의 게으른 정신이 어쩜 그렇게 빨리 구역장들에게, 양떼들에게 은밀한 중에 전파되어서 그래서 기도를 게을리 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역자들이 제일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다른 일을 줄이더라도 교역자들이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들의 교구, 자신들에 맡겨진 목장 거기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무릎을 꿇고 뜨겁게 흐르는 피 눈물이 자신의 교구에 흘러들어 가서 미끄러진 사람들은 붙들어 일으켜 세워주고 쓴 뿌리와 같은 사람들은 그 눈물이 들어가서 그들이 하나님 앞에 돌이키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이 기도하고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교구의 교역자들이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이 일에 헌신할 수 있도록 근심을 끼치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근심을 끼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언제나 여러분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수 있도록 전심으로 그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사랑으로 격려하여야 합니다. 마치 그들이 주님이 보내셔서 주님을 대신해서 여러분들 옆에 있는 것처럼 순종하고, 사랑하고, 존경하고, 그의 연약하고 모자라는 점들이 발견되면 그것 때문에 여려분들을 하나님이 그 목회자 옆에 세우셨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그 빈 부분들을 여러분 자신들이 채우려고 하는 그런 희생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 적용은 여러분들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향하여 적용됩니다. 똑같이 시험을 받아도 양떼들이 시험을 받아도 여러분들이 열렬히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예화) 언젠가 제가 해외에 나갔을때 일입니다. 교회에 신실하게 섬기던 지체중 하나가 매우 흔들리고 위태롭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무거운 가슴을 안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이름은 밝힐수 없지만 나는 그 선교지에서 나의 사역을 감당해 나가면서 밤이나 아침이나 그 한사람을 위해서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만약에 나를 사랑하신다면 그 흔들리는 지체를 붙잡아 달라고 온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직도 확인하지 못했지만 아주 심하고 악하게 흔들리던 그 영혼에 기적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교회를 다시 뜨겁게 사랑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정말 온전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그 후에도 어떻게 그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는지 본인에게 확인하지도 않았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이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바꾸어 놓으신 것입니다. 여러날이 아니라 불과 일주일만에 말입니다. 오랫동안 쌓였던 시험과 마음의 미끄러짐이 만난적도 없고 그를 격려한적도 없었는데 기도의 교통속에서 하나님이 그를 일으켜 세우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목양입니다. 도저히 어떻게 내힘으로 할 수 없을때가 있습니다. 오해와 미움, 미끄러짐과 시험, 골 깊은 갈등 이런것등으로 어떻게 내가 할 수 없을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바로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양떼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만나고, 심방하고, 밥을 사주고, 편지를 보내고 온갖 일을 해도 그 자체안에 위대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영혼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할 때 하나님의 큰 은혜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 번째에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영혼을 섬기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끊임없는 에수님의 그 사랑을 여기에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돌이킨 후에는 내 형제를 굳게하라.” 그렇게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들이었는데도 미끄러지는 때가 있었습니다. 누가 안 미끌어 졌습니까? 모두 미끌어 졌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과 함께 모든 약한것을 고치고, 병든자를 일으켜 세우는 하늘의 권세를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아직까지도 지성적으로 어둡기 짝이 없는 한 목회자의 목양을 받고 있지만, 영적으로 어린 목회자에게 돌봄을 받고 있지만 이들은 예수님께 직접 돌봄을 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님 자신에 의해서 목양을 받았고 그리고 그 말씀을 깨달은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끄러지지 않습니까? 이런일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부분적으로는 자신의 연약함과 죄성 때문에 부분적으로는 사단의 공격 때문에 늘 있게 되는 일입니다. 시몬 베드로도 이렇게 미끄러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야! 베드로야!” 이렇게 부르지 아니하시고 “시몬아! 시몬아!”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새힘을 주시기전 예수님이 그를 부르시기 전에 사용되던 자연인 베드로의 이름 이었습니다. 이 이름을 불러 줄때 베드로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베드로야!” 이것은 반성이 되는 뜻입니다. “시몬아!” 이 말씀을 예수님께로 들으면서 그는 “맞아 나는 아무것도 아닌 예전에 주님도 알지 못했던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었지! 그렇게 연약한 한 인간에 불과 하였지!” 그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 이었습니다. 우리가 누구 입니까? 주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실때만 주님의 사람이지, 주님이 우리를 놓으시면 할 수 없이 우리는 죄인들일 뿐입니다. 너나 할것 없이 똑같이 아무것도 아닌 허물 많은 인간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주님의 마음으로 여러분들에게 권면 합니다. 여러분들이 영혼을 돌보는 사명을 감당하면서 미끄러진 것은 매우 가슴 아픈일이고, 그런일이 안 일어났더라면 좋을 뻔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어났더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런일은 언제나 일어나는 일입니다. 일어나는 것이 가슴 아프고 해로운 것이지만 보십시오. 그 능력을 받았던 베드로도 미끌어진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뭐라고 말합니까? ‘돌이킨 후에는’ 이 돌이킴이 필요 합니다. 언젠가 저는 요한복음 마지막 부분을 묵상하면서 에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해 끌려 가셨던 장면을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끌려 가셨을 때에 열두제자중 하나도 그 뒤를 따르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두 도망 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아직 십자가에 못박혀 계실 때 사도요한이 예수님의 세 번째 말씀을 요한이 받들지 않았습니까? “아들아 보라 네 어머니라” 예수님이 요한에게 그 말씀을 하신것을 보면 요한은 모든 제자들 가운데 제일 먼저 주님께 돌아 왔던 것입니다. 제일 먼저 돌이켜 예수님이 아직 십자가에 못박혀 계실 그때에 예수님을 향하여 달려 갔던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악한 무리들과 그리고 그를 구경하던 수 많은 인파들이 골고다 언덕을 내려오고 있었을때에 그 인파를 헤치며 아마 눈물을 흘리며 달려 가고 있는 어린 제자가 있었습니다. 요한 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까지 그 십자가 앞에 남아서 마지막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곱 번째 요한까지 남기시는 장면을 모두 지켜 봤고, 창에 허리가 상하여 물과 피를 흘리시는 광경까지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미끄러지지 않았으면 좋았을뻔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일어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넘어진 자리에서 그곳이 어디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주님이 우리를 위해 베푸신 그 구속의 은총을 생각하며 다시 일어 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미끄러졌기 때문에 영혼을 돌보는 사명을 집어 치우는 것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버리는 일입니다. 다른 사명을 주셔서 하나님께서 충만한 영혼으로 다른 사명을 위하여 부르실 그때까지 우리들이 이 영혼 섬김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이 고난의 길인 영혼 섬김의 길에 들어 섰습니까? 나는 13년 여러분들을 목양했지만 단 한번도 자신있다고 생각해 본적도 없고, 이 일이 내일처럼 자연스럽다고 생각해 본적도 없습니다. 목회가 행복하다는 목사님들을 만나면 쥐구멍이라도 찿고 싶습니다. 언제나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부자연스럽고 자격이 있는 것처럼 전혀 생각되지 않습니다. 언젠가 누가 아무래도 이 구역장은 자기는 자격이 없는 것 같다고 해서 내가 그랬습니다. “그대가 그 일에 적합하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그대는 미끄러진 사람이다. 나는 목사가 되었는데도 한번도 여러분들 목양하는 것을 내게 딱 맞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일이 참 즐겁고 행복하다고, 내가 적합하다고, 나보다 적합한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런데 네가 어떻게 감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느냐?” 그래서 넘어진 그 지점에서 우리들이 다시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어떻게든지 주님이 우리를 다루시는 방법과 반대되려고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쓰러졌을때 그 못박힌 손을 내미시며 다시 일어나도록 우리를 붙드시지만 사단은 우리가 쓰러졌을때 우리를 짖밟기 시작합니다. 거기에서 우리의 머리를 짖밟고 우리의 온몸을 진토에 붙어 버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믿음이 사라지고 나면 영혼을 섬기는 일에 미끄러졌을때 영혼이 하나님에 의해서 내동댕이쳐지는것 같은 그런 외로움과 반기감에 붙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두 사단의 심리학적인 계교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서 변함없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시는 주님을 곧게 붙들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위해 많이 기도해 주지 않아도 외로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외로운 여러분들을 위해서 주님이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아무리 영혼을 많이 섬기고 오래도록 그 일을 해왔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영혼을 섬기는데 애 쓴다고 할지라도 주님 앞에서는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에 불과하지 않았습니까? 영혼을 섬기면서도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때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네가 내가 부탁한 많은 영혼들을 돌보고 있지만 그러나 내 눈에는 네가 위대한 목자가 아니라 나의 돌봄과 기도를 필요로 하는 한 마리의 어린 양이로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때 목회의 길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외로울때마다 늘 이 찬송을 불렀습니다.
(찬송) 어디선가 들리는 주님의 음성 너는 내것이라 너는 내것이라 어디선가 들리는 주님의 음성 너는 내것이라 내것이라
나의 양떼는 내가 목자인 동시에 주님의 도우심과 보호를 필요로 하는 가장 연약한 한 마리의 양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때로는 실망하고, 때로는 비난하고, 때로는 나의 가슴에 못을 박아도 내가 눈물을 흘릴 곳은 사람 앞이 아니라 나를 어두움 가운데 불러 내어 주신 우리 주님, 주님을 믿고 그 사랑 때문에 감동하여 주님의 부르심을 느낀 그날부터 이제까지 주님을 섬기며 살아오는날 동안 이러한 사랑을 내게 베푸셔서 여기까지 인도하신 주님, 우리가 어떻게 영혼을 섬기며 살아오는날 동안 우리의 가슴에 새긴 우리 인생의 연대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그 가슴 저미는 사연들을 이해 할 수 있겠습니까? 때로는 넘어지고 미끄러지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주님은 항상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셨습니다. 우리의 명예를 보존하시고, 우리의 생명을 파수하시고,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리에게 달려있게 아니 하시고, 주님의 은혜에 의존하게 하셔서 그래서 우리들이 미끄러졌지만 돌아가면 주님은 언제나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존경하는 칼빈이 일평생 설교 나락에서 드리던 기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는 많은 양들을 인도하는 목자이기 전에 주님의 도우심과 은헤를 필요로 하는 한 마리의 양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이세상의 사람들은 우리에게 어떤 결점이 발견될 때 우리 모두를 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고쳐 쓰시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지만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유한하지만 주님의 사랑은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유능하지 못한 일꾼들도 그런 주님의 불변하시는 사랑안에 있음을 깊이 생각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긍휼히 여길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보십시오. 그렇게 주님을 저주하면서까지도 모른다고 부인한 이 자격없는 베드로였는데 주님께서 그러한 실패가 앞으로 일어날 것임을 아시면서도 이미 그것을 용서하시고 돌이킨 후에 다시 그에게 사명으로 돌아 가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무슨 사명입니까? “형제들을 굳게 하거라.” 이말은 우리에게 맡겨진 영혼들이 얼마나 흔들리는 존재들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고 마음 든든해 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모두 흔들리는 갈대와 같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마음으로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도 미끄러졌던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두가지 길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미끌어 졌고 여러분들의 목장은 어느정도 병들었습니다. 양떼들 중에 일부는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영혼은 곤고합니다. 이때 여러분들이 이 사명을 접어 버리면 여러분들은 오랫동안 양떼를 버린 목자로 주님의 마음에 기억이 될 것입니다. 돌이킬 기회를 찿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에게 돌아가야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잠시 미끄러졌을지라도 거기서 주님을 곧게 붇들고 자신의 약함과 부족함을 깊이 토로하며 주님을 의지하려고 할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자기의 사명대로 돌아가려고 하는 여러분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성공하고 나면 베드로처럼 주님께 깊이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끄러진채로 물러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온 마음을 다해 돌이키고 돌이킨 후에는 다시 주님이 영혼들을 위해서 주셨던 그 처음 사명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형제들을 믿음에 견고하게 하기위해 미끄러졌던 영혼의 믿음 없음도 그들을 위한 섬김의 자료로 사용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사명을 잘 감당해 나가서 잠시 흔들렸으나 쓰러지지는 아니하고, 잠시 넘어 졌으나 길을 돌아선 자들은 되지 말고 처음 주님이 주셨던 그 사명의 자리로 돌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최후의 승리를 얻을때까지 이 사명을 감당하고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를 붙드는 마지막에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그리고 승리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