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생활의 본질, 지식 사랑 회개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1. 서론
우리들이 혼자서 잘 살수 있으면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부모님들이 교회 다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회 나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그 집안의 문화가 그렇기 때문에 따라하는 겁니다. 더군다나 치사하게 부모님이 교회에 빠지면 용돈을 그 주일에 주지 않는다고 협박까지 하면 할 수 없이 타의에 의해서 교회에 나오게 됩니다. 이런 것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진짜 믿는다고 하는 것은 누구의 강요나 내 체면과는 상관없이 저는 주님이 필요하고 혼자서 도저히 살수가 없다고 생각될 때에 주님을 향한 믿음이 시작 됩니다. 그때에는 사실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을 믿으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모르지만 내가 너무 힘이 없고 약하니까 그 주님이 나를 도와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가고 또 거기서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니까 예전에 주일학교 때 마지못해 선생님께 듣게 된 하나님과는 전혀 틀리 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도 공부하는 재미를 알게 된 학생이 있을 겁니다. 하기 싫은 공부를 부모님 공부라고하고 하니까 회초리가 무서워서 하는 공부와 자율적으로 공부가 재미있어서 잠자리에 들면 머리맡에 눈을 감으면 영어문장과 수학공식이 막 떠오르는 것과 이 둘은 전혀 틀립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 입니다. 엄마강요나 친구가 나오라고 해서 그래서 할 수 없이 나와서 알게 된 하나님과 내가 정말 저 혼자 살수 없습니다.
(찬송) 주 없이 살수 없네. 죄인의 구주여.
이런 고백을 하며 알게 된 주님은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차이가 납니다. 그렇게 주님을 알게 된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얼마큼 사랑하는지 깨닫게 되었을 때 우리의 마음속에도 사랑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이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기 원하시는 내 가족, 내 형제, 우리교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을 사랑하는 것이 믿음생활입니다.
2. 믿음생활의 요체 지식과 사랑
믿음생활을 딱 두 단어로 요약하자면 지식과 사랑입니다. 지식과 사랑 이 두개는 따로 나누 어지지 않습니다. 이 지식과 사랑은 항상 사랑을 가지고 있어야지만 지식이 잘 깨달아지고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지만 사랑도 함께 생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과 지식은 떼어놓을 수 없이 꼭 하나가 되어서 우리의 인생 전체를 움직이는 비결이 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오늘 밤에는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 지식과 사랑의 비밀에 대해서 전해주려고 합니다.
2-1 깨달아야 사랑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신앙생활을 어떤 사람은 교회 나오다가 주님을 만나고 새 사람도 되고 변화도 되고 눈물 흘리며 회개하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복음을 자랑스럽게 전하기도 하고 어려움도 기도 속에서 이기며 하나님이 나와 함께 동행 해주신다는 놀라운 은혜의 경험을 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어떤 사람들은 친구와 부모의 손에 이끌려 나오기는 했지만 영혼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영혼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무슨 문제가 있는가? 이 문제는 지식이 그 마음속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잔잔한 호수가 우리의 마음이라면 지식은 돌과 같아서 획 하고 던지면 풍덩 빠지면서 잔잔한 호수에 파문이 일으킵니다. 우리의 마음이 물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 이것은 마음에 떨어지는 돌과 같습니다. 풍덩 하고 떨어지는 순간에 우리의 마음에 파문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사랑의 파문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달으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작년에 우리교회에 복사기를 고치러 온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하필이면 주일이었습니다. 복사기를 고치고 나니까 예배시간이다 되었습니다. 교회직원이 전도를 했습니다. 아저씨 기왕에 교회에 오셨는데 예배를 드리고 가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좋아하시겠습니까? 그 사람은 하나님을 잘 믿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 복사기 고치려고 왔는데 와서 앉았는데 이상하게 그날 설교를 듣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란 말입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 하고 설교를 잘 들어보니까 말씀이 오랫동안 하나님을 떠나 살아왔던 아저씨의 마음에 돌멩이가 되어서 떨어졌던 것이었습니다. 아저씨는 회개했습니다. 제가 너무나 오랫동안 주님을 떠나 살아왔습니다. 하나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죄인입니다. 그러면서 기둥 옆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며 회개를 하였습니다.
(찬송) 오 예수님 내가옵니다. 못 박히신 십자가 앞에, 그 큰 사랑 눈물에 겨워 울며울며 돌아옵니다.
지난 날 하나님을 무시하며 살아왔던 날에 자신에게 일어난 많은 고통과 번민 갈등 시련은 사랑이 많으신 목자 되신 하나님을 떠나서 살았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때 또 하나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데 “네가 그런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내 아들 독생자 예수를 너희들을 위해 보내었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면서 지난날 오랫동안 머릿속에 잊혀있던 한 진리,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대신 죽으셨다는 것이 생각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이때 화목제물 되신 예수를 생각하며 한 없이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것이 일으키는 감동의 파장은 각자가 틀리지만 그러나 어떤 경우에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달으며 들어야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믿음생활을 할 때에 한 신자의 신앙생활이 점점 풍성해지는 나무같이 신앙의 발전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변화받기 전까지 설렁설렁 신앙생활하면 주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달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거의 불가능 한 일입니다. 제가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에 여러분만한 중등부를 가르쳤는데 예배시간에 아이들이 정말 산만 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을 만나고 깊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니까 그 다음에는 주일예배를 드리는데 설교시간만 180분을 드렸는데 그 떠들던 아이들이 석고상처럼 움직이지도 않고 집중된 마음으로 설교를 들였습니다. 9시30부터 12시30분까지 설교를 하는데 중간에 화장실 가는 시간 10분을 쉬고 들였습니다. 그리고 주일날 학생들이 앞자리에 앉으려고 아침 7시에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이해가 안 되겠지만 여러분도 변화를 받으면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사랑이 생겨납니다. 우리가 지난여름에도 수련회도하고 회심집회도 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무얼 회개해야 하겠습니까?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달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을 만나지 못했고 또 주님이 우리를 만나서 은혜를 주셨지만 우리 마음속에 주님을 향한 믿음이 식었습니다. 이렇게 용서해 달라고 회개해야합니다. 그리고 예배시간에는 숨쉬는 것 이외에는 부동자세이어야 합니다. 말씀을 잘 들으면서 “하나님 깨닫게 해주십시오. 제가 오늘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간절히 기도하는 심정으로 설교를 들으면 그때에 말씀이 떨어지면서 마음이 흔들리며 주님을 향한 사랑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렇게 주님을 향한 사랑이 꽉 차게 되면 나이와 상관없이 주님 앞에 엎드려서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때 눈물이 흐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는 것 이것이 첫 번째 해야 할 일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갈려서 세상의 헛된 것들로 빠졌기 때문에 마음에는 말씀이 떨어지지 않고 하나님이 부어주신 은혜도 잊어버리고 우리의 마음이 식은 겁니다. 그래서 첫 번째 회개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달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매일 성경을 읽고 주일날 하나님의 말씀을 선생님으로부터 잘 배우고 또 전도사님으로부터 성경을 배울 때 마음을 다해서 나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이 믿음생활을 잘 못한 것을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이 말씀을 부어주시기를 기도해야합니다.
2-2 지식이 가져다준 열매 사랑
마지막으로 두 번째는 사랑입니다. 오늘 성경은 “사랑은 여기 있나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주신 결과입니다. 그래서 은혜가 곧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는 말은 하나님께 은혜를 많이 받는다는 것과 같으며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고 싶다는 말은 내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났으면 좋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생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입니다. 제가 여기 전도사님보다 좀 더 젊었을 때에는 우체국장을 했습니다. 우체국을 오는 사람 가운데 우표를 수집하는 우표수집광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굉장히 많은 양을 자기 방에 우표를 저장했는데 방에 습기가 차서 우표색깔이 변하니까 방 2개 쓰던 사람이 방 하나를 빼서 세를 놓고 그 셋돈을 받아서 금고를 장만했습니다. 그리고 몇 천 만원 하는 금고 속에 우표를 보관했습니다. 그 이유인즉 이곳에 우표를 보관을 하면 습기도 차지 않고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것이 자기의 인생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이라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이러한 마음이 생겨나면 이것을 중심으로 그 사람의 모든 생활이 변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주일날 그냥 친구 손잡고 나오고 교회당에서 친구들과 사이좋게 어울려 놀고 그러다가 시험 으면 교회 빠지고 시험 끝나고 여유 있으면 교회 오는 그런 신앙생활을 신앙생활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죄를 짓다가 복음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많이 사랑하셨고 우리는 주님을 버린 흉악한 죄인인데 주님이 우리를 용서해주셨다는 복음을 들으면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회개합니다. 그때 가슴속에 이런 찬송의 고백이 생겨납니다.
(찬송) 멸시와 욕 가시관 쓰셨네.
왜 나같이 더러운 죄인, 날마다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고 죄를 짓고 주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쓸모없는 죄인을 왜 하나님은 사랑하실까? 하며 눈물을 펑펑 흘리며 내가 많은 죄를 지은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렇게 하나님 앞에 회개의 기도가 끝나고 나면 우리의 마음에 밀려드는 것이 있는데 평화입니다. 그 다음에 또 밀려드는 생각 있는데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길 바라는 소망이 듭니다. 내 일생에 가장 좋은 분,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분, 예수님만 사랑하고 싶다. 뛰어놀아도 예수님 사랑해서 뛰어놀고 교회 오는 것도 이제는 엄마의 협박이 아니라 예수님이 사랑스러워서 교회 나오고,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공부하고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싶은 소망이 생겨나는데 이것이 지식이 가져다준 열매 즉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는 두개의 사랑이 싸웁니다. 하나는 처음에 회개했을 때 우리마음에 있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은혜서 멀어졌을 때 생겨난 자기사랑입니다. 후자는 세상에 대한 사랑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게임 인터넷 등 쓸모없고 가치 없는 일에 깊이 빠져서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 이것은 영혼을 좀먹는 독약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즐거움에 빠져 살다보면 나중에는 아주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신앙생활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내려 오셔서 십자가 죽으신 것을 기억하면서 예수님의 죽임이 바로 내 죄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이 나를 그 모든 죄 가운데 건져내주셨기 때문에 이제 예수님만 사랑하며 살겠다는 고백이 있어야합니다. 그렇게 주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가득 있을 때에 우리는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극복할 수 있습니다.
(찬송)주님의 사랑이 내 마음 중심에 있으니 유혹이 흔들어도 무너지지 않네. 주님과 함께 할 때에 두려움 사라지네. 주님이 항상 나를 지켜주시니. 아멘 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3. 다시 일어서는 힘 회개
오늘 우리가 회개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시고 은혜를 주셔서 그때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붙고 있었지만 내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생활에 게을리 함으로 주님을 멀리 떠나는 동안에 주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식었습니다. 우리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을 뜨겁게 다시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고 간구하는 사람들이 될 때 하나님이 잠시 사람을 잃어버렸지만 다시 그 사람을 가득 채워 주셔서 다시 하나님 잘 믿는 신앙생활 하도록 도와주실 겁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끊임없는 발걸음 신앙생활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1. 신앙생활 知 와 愛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이 무엇일까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질문은 두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 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데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신앙생활이 되고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 되는 것 입니다.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2.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2-1 알아야 사랑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알지 않으면 사랑이 생길 수 없고 혹시 사랑 같은 것이 생겼다 하더라도 아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면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라고 하는 기독교의 훌륭한 선생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제일 먼저 중요한 것은 사랑하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하는 것 입니다. 우리가 지난여름에도 이렇게 수련회를 하면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은 졸업하고 올라간 선배들을 포함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찬송했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믿음 생활이 언제나 똑같습니까? 3-4년 전에 은혜를 받았는데 오늘도 그 은혜를 똑같이 유지하면서 변함없이 하나님을 알며 사랑하면서 신앙생활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필요한 것이 우리의 마음이 아주 깨끗이 깨어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려고 애를 쓰는 그것이 하나님에게는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겁니다. 호기심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인생의 목자가 필요한데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내가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마음가짐은 하나님에게 최고의 선물입니다. 저는 대학에서 9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사랑스러운 학생은 돈 많은 집안의 학생이나 얼굴 예쁜 학생이나 힘센 학생이 아니라 제가 가르치는 과목을 열심히 배우려는 학생입니다. 이것이 바로 알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향한 마음입니다. 하나님도 자신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사랑해 주십니다. 거듭 말하지만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하나님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 입니다. 하나님 저에게 소원이 있는데 저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왜 나를 위해 이 세상에 내려오셨는지, 그리고 주님이 나에게 가르쳐주신 말씀이 어떤 뜻인지, 나 같은 죄인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제가 알고 싶습니다. 오늘부터라도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만나 주십니다. 한 때 하나님을 만났지만 그 은혜에서 미끄러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깨닫고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깨달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듣는 것과 그런 마음 없이 설교시간 끝나기만을 바라며 듣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번에 3-6학년 주일학교를 설교를 30분만 짧게 하려고 했는데 정확하게 76분을 설교를 했습니다. 근데 400명의 어린이가 듣는데 움직이지도 않고 조용히 들었습니다. 그러더니 한 초등학생이 집에 가서 엄마에게 간증을 하는데 자기 일생의 최고의 예배를 드렸는데 가장 아쉬운 것은 목사님의 설교가 너무 빨리 끝났다고 초등학교 4학년짜리가 간증을 하였습니다. 제가 예전에 여러분 같은 고등부를 데리고 설교를 했는데 놀라지 마십시오. 180분을 했습니다. 9시30분에 설교를 시작해서 12시30에 끝났습니다. 중간에 10분 쉬고 설교를 진행했습니다. 석고상처럼 움직이거나 떠들거나 하지도 않았습니다. 차이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자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내 마음에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은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죄인을 위해 자기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신 것 등등 깨닫고 싶어집니다. 주일날 이런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면 말씀이 내 마음속에 단비와 같이 내립니다. 여러분들보다 어린 학생들이 예배를 드리다가 은혜를 받고 눈물을 흘립니다.
(찬송) 손과 발 날 위해 못 박혔네. 왜 날 사랑하나. 죄 용서 받을 수 없었는데 왜 날 사랑하나.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씩 하나씩 알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신앙이 떨어질 때 쯤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쓸데없는 것들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마음들이 채워지게 됩니다. 우리교회 자매 중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중학시절부터 아바(ABBA) 그룹을 좋아했는데 이 그룹을 어찌나 좋아했던지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아바 판을 사기위해 미국여행까지 같던 자매가 있습니다. 이 자매가 후에 주님을 깊이 만나고 깨달은 것이 내가 아바를 알기위해 미국까지 갔는데 정작 하나님은 얼마나 알고 싶어 했는가? 어느 날 주님이 이 자매의 마음의 말씀하시길 “얘야 네가 알아야할 분은 나 하나님이다”를 듣고 그 애지중지 모았던 그릅 아바의 판을 마당에 모아 불 질러 버렸습니다.
(찬송) 주 달려 죽은 십자가 나 생각할 때에 헛된 줄 알고 버리네.
그러면서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계속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은혜를 깨닫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받으면 이 심령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달음으로써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조금 알면 진리의 빛이 들어오면서 나의 무지의 어두움이 걷히고 새로운 사실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기쁨이 솟아나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이고 믿음생활입니다. 그래서 은혜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깨달으려고 하는 사모함이 있어야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 마음속으로 “하나님 저는 깨닫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제 영혼에 양식이 필요합니다. 나의 눈을 열어서 주님의 말씀의 뜻을 알게 해주십시오. 하나님 절 도와주십시오.” 설교를 들을 때에도 “목사님 설교하실 때 제가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저의 마음속에 주님의 음성이 들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고 들어야 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깨달음을 주십니다. 교회를 개척한지 3년쯤 되었을 때인데 수요예배를 마치고 강대를 내려오는데 고등학생들 10여 명이 우르르 몰려와서 인사를 합니다. 내용인즉 대구에서 용돈을 모아서 친구끼리 단체로 열린 교회 목사님설교를 들으려고 올라왔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열심이 있습니까? 그 수요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대구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왔는데 은혜를 못 받고 내려가면 얼마나 본전 생각이 나겠습니까? 그래서 모든 학생들이 앞자리에 앉아서 너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돌아가기 위해 애를 쓰니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듯 이러면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자라가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을 먹는 신앙생활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회개를 해야 합니다. 수련회를 하거나 집회를 하면 어느 한 순간에 은혜를 받지만 지속적으로 주님을 알고자 하는 사모함이 없기 때문에 제 신앙이 이렇게 식었습니다. 하며 주님 앞에서 회개를 해야 합니다.
2-2 신앙, 사랑하며 사랑 받는 것.
두 번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까 사랑은 여기 있나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의 외아들을 우리의 죄를 위해 화목제물로 주셨음이라.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자체가 은혜의 결과입니다. 즉 은혜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면 이 더러운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누구를 사랑하느냐? 자기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오로지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사람들만이 하나님을 사랑할 마음이 생겨납니다. 우리가 맨 처음 어떻게 기독교신앙을 시작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태어나면서 훌륭한 믿음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하나님 없이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한 순간에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제는 여러분들만 할 때 거의 매일 아침 읽어나면 죽음을 생각하였습니다. 인생을 이렇게 살 가치가 있을까? 왜 공부를 해야 하나? 왜 살아야하나? 살다가 살다가 자기 힘으로 더 이상
인생을 살 수 없을 때 마음속에서 깊은 고민과 아픔 같은 것이 생겨납니다.
나는 왜 나일까? 그리고 왜 나는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가? 환경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내가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이 듭니다. 그때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듣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 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아 그렇구나 하면서 하나님께로 가는 겁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여기서 깨달은 것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이전부터 하나님께서 나를 알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근데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고 여기까지 인도 하신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지만 더 큰 사랑을 발견하는데 나 같은 더러운 죄인을 그냥 버리지 않으시고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예전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림을 보거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예기를 들으면 자기와 관계없는 것으로 치부했던 사람이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가슴속에 확 밀려오면서 예전에 내가 사랑하고 목표로 했던 모든 것들이 지금 내가 사랑하는 예수님에 비하면 정말 가치 없는 것 이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찬송) 사람들은 알 수 없네 주를 보낸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이 나를 살게 하네. 갈 보리의 구속의 사랑.
예수님께서 나같이 가치 없는 인간을 위해 33년 동안 멸시와 모욕을 받으시면서 우리같이 더러운 인간들의 발을 씻기고 병들고 곤고한 영혼을 어루만져서 은혜를 주셨지. 내가 그런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을까? 그러면서 지난 날 하나님을 미워하고 불순종했던 자신의 삶과 더불어 자기 같이 더러운 죄인을 끝까지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이 대조가 되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밀려들어옵니다. 그러니 그렇게 슬플 수가 없습니다.
(찬송)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교회에 10년 20년을 다니면 뭐합니까? 눈물이 없고 주님을 사랑하지 않잖습니까? 그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죽은 신앙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그 순간 사실은 그 사람은 죽은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꽉 차있을 때에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인생의 길을 걸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07년 평양 대 부흥이 일어나기 전에 1906년에 인도 카시아 지방에서 큰 부흥이 있었습니다. 선교사가 지나가는데 골목골목에 어린아이들이 앉아서 울고 있었습니다. 선교사 생각에 엄마 아빠가 없어서 우나보다 생각이 들어 아이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왜 이렇게 우니?” 울던 아이들이 대답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눈물을 흘리는 것은 엄마 아빠가 없어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많이 사랑하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우리는 주님을 조금밖에 사랑하지 않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납니다.” 6-7세 되는 아이들이 이런 기도를 하며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천사의 말을 해도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내게 가진 것으로 다 내어 주고 마침내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 할지라도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며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 사람의 존재의 가치는 공부를 얼마나 잘하고, 어떤 지위를 누리고,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어디를 향하여 사랑이 있으며 그 사랑은 얼만 큼의 사랑의 힘을 가지고 있는가? 이것이 그 사람에 가치를 좌우하는 겁니다. 아직 여러분들이 아직 어리고 학교에서 뛰어나게 공부를 잘하지 못하고 또 집안이 어렵고 가정의 상처가 많아도 괜찮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면 그 상처들이 변해서 나중에 그런 상처가 없는 사람은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아름다운 신앙의 세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꽃이나 허브의 향기는 사람 좋으라고 향기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공격하는 벌레나 외부의 곤충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 냄새를 뿜어내는 겁니다. 백합화가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리며 가시에 찔릴 때 거기에서 진짜 백합화의 향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가정이 불우하고 마음에 상처가 많고 남들보다 어려운 환경이라고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잘 믿고 뜨겁게 사랑하고 주님이 자기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주님께 맡기면 오늘의 상처를 사용하여 그런 상처를 받지 아니하였더라면 날릴 수 없는 그런 향기가 우리에게 향기롭게 계속 날릴 수 있도록 우리를 빚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리에게 일어난 많은 일들은 우리에게 나쁜 것이 될 수없고, 우리에게 가장 불편했던 것도 사실은 그때가 되면 그것이 가장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이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가장 큰 숙제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사이는 원래 불화하여서 원수 된 사이인데 이 원수 된 우리를 하나님께서 찾아 오셔서 다시 화해의 손을 내미시어 우리가 다시금 하나님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럴 수 있었습니까? 아직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심으로 가능했습니다. 하나님의 많은 사랑 가운데 하나가 예수의 십자가 사랑이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참 사랑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드러난 겁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내게 항상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다하더라도 예수의 십자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찬송) 멸시와 욕 가시관 쓰셨네.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항상 이런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식지 않고 뜨겁게 살아있다면 좋겠지만 식 습니다.
3. 회개. 다시 주님의 사랑으로.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회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은 것 용서해 주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 것을 사랑하여 주님의 마음이 아프셨을 텐데 하나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간절히 회개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의 마음속에 예수님의 사랑을 채워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은 용서하시는 사랑입니다. 언제든지 찾아와 우리의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시고 기억도 아니 하시고 깨끗이 우리를 용서하셔서 예전에는 우리가 극악한 죄인이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악한 사람이었고,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않고 뒤로 미끄러진 발악한 사람들이었다 하더라도 주님 앞에 무릎을 끓고 제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은 것 용서해 주십시오.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십니다. “내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모든 대가를 지불하고 고난을 받아 죽었으니 네가 내 앞에 회개하는 믿음을 가졌으니 내가 너의 죄를 용서해 주노라.” 그래서 큰 죄의 길에서 돌이켜서 다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의 마음속에 밀려오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그 사랑이 내 마음에 꽉 차서 예수님이 지금 여기 계시다면 어떻게 사셨을까? 생각하면서 살고 매일매일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것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고 주님을 더 많이 알고 싶다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더 깊이 만나주시고 그러면서 일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겁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공부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고 또 좋은 직장 들어가서 그래서 뭐 할 겁니까?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는 꿈을 꿔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허락한 사람은 여름에라도 외국에 나가서 주님이 창조하신 사람들이 얼마나 많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고난 가운데서 주님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살아가는지를 보고 그 중 마음을 정해서 내가 이런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을 받았으니 이제 남은 인생 살 동안에 내가 받은 주님의 사랑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하는 거기에 대한 대답을 얻자는 겁니다. 그것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날마다 주님을 알고 그 사랑이 마음속에 뜨겁게 타올라서 예수에 살고 예수에 죽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 죽나니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아멘. 이런 고백을 가지고 사는 성도들이 되 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