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농어촌 목회자 세미나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 1:20-21)
녹취자 : 김세나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다 살겠다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발 아래 구르는 벌레 한 마리도 한번 괴롭혀 보거나 밟아 보면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죽지 않겠다고 몸부림을 치는 것, 그것이 생명의 특성입니다. 그러니 잘 살면 사는 거고 못 살면 죽는 거죠. 그래서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이 그렇게 살겠다고 아우성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이러한 생명의 이치와는 전혀 다르게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랬습니다. 죽는 것이 유익함이라고 이야기를 한 거죠. 사실 세상 사람들은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도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어 본 사람들은 이 말의 의미가 무슨 뜻인지 압니다. 그러나 그것도 건들 건들거리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이 의미가 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말 진실하게 하나님을 믿어 보려고 하고 그리고 진실하게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보려고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의 의미를 알며 또 이 말의 의미를 모른다면 그것은 정말 좋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죠. 사도바울은 그저 평범하게 교회에 왔다갔다 하는 평신도로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죠. 이 편지를 쓸 때에 그는 옥에 갖혀서 사형을 기다리는 죄수의 몸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가 그렇게 형벌을 받을 만한 죄인이 되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옥에 갇힌 것이 아니었습니까. 창창한 젊은 나이에 예수님 만나서 꺾이고 그리고는 예수님이 주신 사명을 따라서 살았기 때문에 옥에 갇히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와 똑같은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 사도바울이 내가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어제도 말씀을 드렸지만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아무 것도 똑같은 것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발아래 구르는 돌맹이 하나에서부터 시작해서 산에 수없이 돋아나는 수많은 풀들과 그리고 나무들 땅에 있는 수많은 인간들과 하늘에 떠있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수많은 별들 중 어느 것도 똑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 믿게 만드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으셔서 어떤 사람은 목회자로 어떤 사람은 사업가로 어떤 사람은 직장 다니는 이들로 부르신 것처럼 또 똑같이 목회하는 우리도 어떤 사람은 도시에서, 어떤 사람은 농촌에서, 어떤 사람은 수만명을 모아놓고 큰 교회에서, 어떤 사람은 아무리 발 벗고 전도해도 모을 사람이 없는 시골에서 그렇게 하나님 섬기게 하셨던 거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름다운 섭리입니다. 왜냐하면 만약에 우리가 애를 낳는데 똑같은 인간이 기계처럼 찍혀 나왔다면 섬뜩하겠죠.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다른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아주 아름다운 것이죠. 교회에서도 보면 이렇게 많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서 한 하나님을 섬기며 찾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모두가 다 사도바울처럼 선교하도록 부름 받은 것도 아니가 우리 모두가 다 조용기 목사님처럼 성령운동 하도록 부름 받은 것도 아니고, 옥한흠 목사님처럼 제자훈련 하도록 부름 받은 것도 아닙니다. 또 그래야 할 필요도 없고요. 우리는 우리의 그릇대로 하나님 앞에 살면 되는 것이죠. 문제는 본질에 충실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쓰시려고 했는지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고 그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가 본질에 충실하면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부르셨으면 바울은 바울이 되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었고요. 베드로는 베드로가 되면 주님께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하나님이 부르신 대로 주님이 원하시는 그런 사람이 되면 충분한 거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부르셨는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뭐냐 하면 우리 자신이 죽으려고 하지 않는 거죠. 죽지 않고 우리가 하고 있는 일만 잘 되어서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이 이런 생각을 하는 제자들이 있을까봐 가르쳐 주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거니와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느니라.
저는 어려서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님이 농사를 짓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시골 생활을 배우게 된 것은 큰 축복이었습니다. 여러분 씨앗 가진 모든 식물의 씨를 한번 잘 눈여겨보십시오. 그러면 이 씨는 두 개가 붙어서 씨가 된 것이 있고 낟알 하나로 씨가 된 것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러면 땅콩이나 콩 같은 것들은 모두 낟알 하나로 그렇게 씨가 되어 있죠. 둘이 씨가 되어 있죠. 그래서 땅콩을 딱 쪼개보면 두 개로 나누어지고 그 두 개가 만나는 깊은 속에 작은 씨눈의 역할을 하는 배아가 있습니다. 옥수수 같은 것들은 하나로 되어 있지만 또 콩 같은 것도 보면 반쪽을 쪼개면 거기에서 그렇게 배아가 나옵니다. 그러면 보십시오. 배아의 크기는 땅콩 같은 경우 전체 땅콩의 30분의 1도 될까말까 아주 작은 눈입니다. 그런 게 그것을 이제 심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이게 땅콩이 모두 땅콩이 되는게 아니라 그 30분의 1밖에 안 되는 작은 씨눈 하나를 살리기 위해서 땅콩이 썩습니다. 그것을 하나를 살리기 위해서 그것이 양식이 되어서, 양분이 되어서 썩어 가면서 그 하나 씨눈이 살아나는 거죠. 밀이나 혹은 쌀을 보십시오. 그것은 하나로 되어 있는 것이어서 씨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쌀을 보면 뒤꽁무니에 푹 파여진 곳에 씨눈이 숨어 있습니다. 그 볍씨를 심으면 온도가 맞고 기온이 맞으면 서서히 썩는 것부터 시작을 합니다. 사는 것을 먼저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썩는 것부터 먼저 시작합니다. 그러면 곡식 알이 썩어 들어가면서 그 썩은 물질들이 이 씨눈의 생명을 가져다주는 원동력이 되죠. 그래서 거기에서 그 썩은 씨앗을 먹고 그 양분을 가지고 벼가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거니와 라고 말씀하신 것이죠. 목회가 바로 꼭 그런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애를 써도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그릇 대로 하나님이 쓰시는 것이지 베드로가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서 어느 한 순간에 사도바울처럼 학식 있는 사람이 되어서 로마서를 쓸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그 사람을 쓰시려고 할 때 활짝 꽃 피기 위해서는 목회자 자신은 자기가 씨눈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교회와 모든 성도들 그리고 목회자는 씨눈이라고 자기가 생각해서는 안 되요. 이 모든 사람이 죽어서 비료가 되어 주고 나 하나를 살게 하면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교회에는 목사나 집사나 장로나 모두 썩어야 할 한알의 밀이고 씨눈이라고는 오직 예수 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죽는 거예요. 그것입니다. 알고 보면 원리는 아주 간단한 것이죠. 그런데 말씀 드린바와 같이 생명은 살려고 하는 질긴 성질이에요. 그래서 죽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러면 여기에서 죽는 그것은 무엇이겠는가. 나의 모든 것이 죽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옛 성품이 죽는 것을 가리키는 거죠. 다시 말해서 우리가 예수님 몰랐을 때에는 옛 사람 성품, 하나 가지고 살았습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오직 옛 사람의 성품, 하나 밖에 없어서 자기가 온 우주의 중심인줄 알고 자기 마음대로 자기 욕망에 좋은 대로 그리고 자기의 행복이 최고의 가치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던 사람이 예수 믿기 전의 우리에요. 그러다가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깊이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거듭나게 되면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에게 예전에는 없던 새로운 본성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새 사람의 본성이라고 말합니다. 그게 바로 예수님의 본성이에요. 하나님의 본성을 우리의 마음에 주셔서 그래서 예전에 나는 나를 사랑했는데 새로된 나는 주님을 사랑하고 예전에 나는 내 이익을 위해서 살려고 했는데 새로된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려고 하고, 예전에 나는 이기적이었는데 새로 하나님이 부어주신 새 본성은 주님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려고 하는 본성이에요. 예전에 나는 나 중심으로 생각하던 사람이었는데 새로 주님이 부어주신 본성은 자기를 버리고 성도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그 본성이 바로 새 본성이에요. 우리 신앙생활의 대의는 옛 본성은 끊임없이 죽이고 새 본성은 내 안에서 살아나게 하는 거예요. 그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에요.
오늘날 목회하는 우리들은 이 목회를 신앙화하지 않고 일화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자기의 신앙생활하고는 조금 동떨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여기에서 모든 혼란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없이 살면 우리 안에 옛 사람과 새 사람이 있다는 것 조차도 모르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받고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감화를 받으면 비로소 내 안에 이 옛사람과 새사람이 다투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가 정말 이 세상에 있는 나무들은 하늘이 비를 내리면 그 물을 먹고 자라고 땅의 양분을 섭취해서 성장하고 열매를 맺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의 비가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비가 내려야 해요. 하나님의 은혜의 비가 내려야 해요. 여러분 옥토라고 하는 게 원래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옥토라도 여러 해 비가 내리지 않으면 몹쓸 땅으로 변하고 몇 십 년 비가 오지 않으면 사막이 되어 버립니다. 어느 선교사님이 사막 지방에서 선교를 하는데 사모님이 매일 설거지를 하고 같은 곳에 설거지물을 버렸대요. 그것을 매달 하고 나니까 어느 날 깜짝 놀랐는데 그 사막 물 버린 그 곳에서 풀이 돋아나더라는 거예요. 풀이 돋아나더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리면 나쁜 성도들이 어디 있습니까. 주님의 은혜가 그를 사로잡는데 나쁜 사람이 어떻게 존재 할 수 있습니까. 오히려 말이죠. 나쁜 사람들 일수록 하나님의 은혜의 비가 내리면 정말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는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들이 아는 김익두 목사는 세상 깡패 아니었습니까. 그 예수 다니던 사람들 폭행하고 그 선교사를 폭행하고 욕을 하고 그러던 사람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은혜를 받으니까 그렇게 훌륭한 목사가 되었습니다. 제주도를 목회했던 선교사로 갔던 이기풍 목사님은, 그 분은 정말 한량이요 깡패여서 마포 삼열 오늘날 총신을 세운 그 선교사를 코 등을 부러뜨린 그 강패 아니었습니까. 그러던 사람이 변화 되었더니 그 순교를 불사하고 그 제주도에서 그렇게 복음을 전하면서 충성스럽게 살지 않았습니까. 문제는 사람이 나쁜 게 아니라 은혜의 비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목회하다가 조금 잘못하면 질이 나쁜 교인들을 원망하기 쉽습니다. 우리 모두 목회자니까 말하지만 목회들끼리 대화 속에서 그럴 때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그 인간이 나쁘다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목회자 저는 옛날에 좋은 인간이었습니까. 다 죄인이었고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었고 주님 훼방하는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을 만났고 그 사람은 아직 은혜를 못 받아서 주님을 못 만난 것이죠. 하나님의 은헤가 교회에 내리면 사람들이 놀랍게 변합니다. 이 새 사람이 됩니다. 새 사람이 됩니다.
(찬양) 우리 죄와 강팍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리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 하시네
우리 교회에도 뭐 많은 간증이 있습니다. 매일 술 먹고 싸우고 집에서 비명 지르고 그리고 지명 수배 걸려서 여기 저기 도망 다니고 빚에 밀려서 도망 다니고 정말 쓰레기 같이 살던 사람들도 주님의 은혜의 단비가 확 내리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죄 가운데 살았던 삶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세상이 얼마나 더럽고 하나님을 떠나 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아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 은혜의 단비는 어떻게 내리나요. 어떻게 내립니까. 왜 하나님이 어떤 사람이 목회하는 교회에는 그렇게 은혜의 단비를 내리셔서 영혼들이 살아나게 해 주시고 옛 사람이 죽게 해 주시고 새 사람이 살게 하시는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나요? 어떻게 해야 겠어요. 하나님은 교회를 여러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한 사람에게 맡기십니다. 많은 사도 있었지만 예수님이 열한 명 불러놓고 다 물어본 게 아니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날 사랑하느냐 물어 보셨습니다. 우리의 교회는 여러 사람에게 맡기신 게 아니라 우리 한 사람에게 맡기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마지막 때 할 일을 그 교회에 대한 판단과 함께 알리실 때 요한 사도보고 말하시길 너는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 하거라. 교인들에게 편지하라고 안 그러시고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교회의 사자가 바로 그 교회의 목회자입니다. 그에게 맡기셨습니다.
미천한 경험이지만요. 이 은혜의 단비는 목회자가 깊이 찔림을 받고 당하고 자기가 죽는 것만큼 은혜의 단비가 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가 여기 엎드려서 한 없이 자기의 악함을 아파하고 자기 때문에 주님의 교회가 활짝 피어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괴로워하며 자기 깨어짐의 눈물을 많이 흘리면 그 눈물이 교회 바닥에 스며들어서 쓴 뿌리들은 그 물을 먹고 죽고 주님이 심은 씨앗들은 그렇게 썩어서 내려오는 목회자의 옛 사람의 진액을 먹고 그것을 거름 삼아서 성도들이 살아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거기에 은혜를 부어 주시는 거예요.
해방되기 전에 채필근이라고 하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옛날에 지금이야 유학갔다 온 사람 천지이지만 그 당시에 유학을 하고 온 목사님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이 낸 사람들이죠. 이 사람이 동경에서 비교 종교학으로 유학을 하고 학자와 같은 목사님으로 조선에 왔습니다. 그 때에 좋은 교회가 생겨서 그 자리로 가게 되었죠. 예전에 목사님은 별로 무명의 목사님이었는데 이상하게 교회가 교인이 점점점점 줄고 교회가 은혜가 떨어지기 시작해요. 그래서 시찰회에서 하도 궁금해서 목사님들이 그 교회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시찰을 나갔는데 평일날 교회 가 봐야 사찰 한 사람 밖에 없는데 왜 교회가 그렇게 되었는지 그 시찰 위원들이 밝힐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는 일 없이 오차나 한잔 마시고 나오는 길에 마당을 쓸고 있는 사찰이 있더래요. 그래서 그 중에 나이 드신 목사님이 사찰보고 보시오. 당신이 사찰이오? 예. 제가 이 교회의 사찰 집사입니다. 그래, 옛날에 이 교회가 채 목사님이 오시기 전에는 이 교회가 교인들도 넘치고 은혜가 많은 교회였다는데 요즘은 교인들도 안 모이고 그런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죄송하지만, 사실입니다. 그게 왜 그렇게 되었소? 마당을 쓸면서, 아 목사님, 저같이 교회 청소나 하는 사찰이 그런 깊은 일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저는 모릅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이 그러면 할 수 없지. 그리고 교회를 막 나서려는데 아참 그러고 보니까 조금 틀린게 하나 있기는 있어요. 이 목사님이 정색을 하면서 그게 뭐냐. 옛날의 목사님은 여기 새벽기도 나오시면 늘 그렇게 우셨어요. 그런데 새로운 채 목사님은 그저 간단히 설교하고 들어가시대요. 그 때 거기 모였던 목사님들이 무릎을 치며 깨달았어요. 아 그렇구나. 주님의 뜻이 뭐에요?
(찬양) 약한 자를 부르시어 하늘 뜻을 전하신다
아 그게 목회의 원리이구나. 잘 준비된 사람, 유학까지 오고 학식이 뛰어난 인물이 못하는 그 일을 그 보다 훨씬 못한 주의 종이 새벽마다 하나님 저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저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죄와 악이 가득 찼고 특별한 재능도 없고 그리고 아무 능력이 없는 인간입니다. 이 쓸모없는 인간이 이 교회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주님의 성도들을 곤고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 모두 나의 죄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슴을 치는 거예요. 깊이 아파하는 그래서 이것은 모두 나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성도들이 있건 없건 아랑곳 하지 않고 머리가 하얀 노인내가 거기에 엎드려서 펑펑 우는 거예요. 목회자가 그렇게 아프게 울 때, 그 마음은 죽음이죠. 진흙에 짓이겨지는 것 같은 마음이죠. 아 여기에서 내 인생이 끝나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래서 오늘 사도바울도 뭐라고 고백을 합니까. 내가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지만, 더욱 좋지만.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부족한데도 올라가서 설교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거예요. 그게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에요. 이 세상의 모든 원리가 그렇게 죽고 사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한 집안에서도 누군가가 희생을 하고 밀알이 되듯이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서 죽으면 가족들이 활짝 피어 열매를 맺어요. 가난해도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라고 가정의 위기가 와도 누군가 희생하는 사람이 있으면 견뎌요. 하늘에 있는 수많은 별들은 별들이 죽으면서 폭발을 일으킬 때 생겨나는 먼지들을 통해서 또 다른 별들을 만들어 내는 거예요. 우리의 몸 전체에는 60조개의 세포가 있어요. 그 세포들이 별이 반짝이듯이 수많은 세포들이 1초에도 몇 십개, 몇 백개, 몇 천개씩 태어나고 1초에도 수 천개씩 죽어요. 죽으면서 사라지면서 그것들이 또 다른 세포들을 만들 수 있는 힘을 공급해줘요. 그런데 건강이 잘못되어서 어느 시점에서 특정 부위에 있는 세포들 중에 아무도 안 죽겠다고 몸부림치는 살덩어리가 생겨나요. 그게 암이야. 그게 암이에요. 그게 암이에요. 목회자인 우리는 가슴 아프지만 맨 처음부터 죽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이에요. 죽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이에요. 그런데서 위로를 받으려면 먹고 입고 마시고 이 세상에서 복을 받는 것에서만 위로를 구하면 우리의 인생의 가는 길에는 위로가 없어요. 그래서 목회자는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한분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힘들고 어렵고 외롭다고 생각될 때마다 성공하는 목회자, 잘 된 친구,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면 낙심해서 이 길을 못 가요. 그 때마다 생각할 분은 오직 한분 밖에 없어요.
(찬양)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외로우면 주님도 이 세상에 외로우셨죠. 깊은 고통이 마음을 찌르며 주님도 이 세상에서 아프셨죠. 나를 미워하고 배척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 주님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이 사람에게 쫓겨서 저 동네로, 저 사람에게 쫓겨 이 동네로 다니셨죠. 제가 주님이 가던 그 길을 똑같이 걸어가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거기에서 나는 죽어도 내 안에 주님이 사셔서 교회에서 그렇게 주님을 아프게 하고 괴롭게 하는 인간들이 있어도 내가 그렇게 죽으니까 거기에서 주님이 사시는 거예요. 주님이 사시는 거예요. 그게 바로 신앙이에요. 그리고 그것이 바로 믿음생활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