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웬 신학의 진수 1강
(제 1강) 존 오웬의 신학과 사상의 배경
Ⅰ. 서론
존 오웬과 저의 숙명적인 만남을 먼저 간략하게 소개를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존 오웬의 신학의 개관을 떼는 것만 해도 사실 두 시간 정도에 마무리를 하자는 것은 이 저자에(저자라 함은 우리 존 오웬 선생을 가리킵니다.) 대한 중대한 모독이지요. 그분이 남긴 책만 지금 현재 약 700p짜리 책 24권입니다. 그리고 깨알 같은 글씨로 17세기의 영어로 기록된 책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제껏 시중에서 존 오웬의 책들을 한글로 된 책들을 보셨을 텐데 그 책들이 애석하게도 우리 스승에 대한 인상을 매우 흐려놓았어요. 왜냐하면 번역이 잘못되었기 때문이고요, 오웬의 영어는 오웬의 영어를 따로 공부해야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영어가 쉽지 않고 아주 특징적인 영어입니다. 그리고 이미 사라져서 사전에 안 나오는 단어들도 많습니다. 그의 문체를 나름대로 공부하고 터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어쨌든 여태까지는 만족스럽게 번역된 책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늘 그런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데 이번에 ‘부흥과 개혁사’에서 가까운 시일 내에 제6권이 나오리라고 보는데 번역을 나름대로는 열심히 많이 했어요. 또 저의 연구실에서 손을 좀 봐주고 했는데 어쨌든 100% 만족스럽지는 않아요. 제가 해제(解題)를 달아서 책이 나오는데 가능하면 여러분들이 영어 공부가 어느 정도는 되어 있을 테니까 좀 한번 힘이 들더라도 The Banner of Truth Trust 사에서 나오는 골드판 24권을 구입하셔서 그래서 도전을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제가 처음 존 오웬을 접하던 15년 전만 해도 오웬이라는 사람을 아는 이들이 거의 없었는데 그래도 오늘날 존 오웬이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독자들을 가지고 있고 그리고 외국에서도 특별히 존 오웬에 대해서 열심히 연구하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존 오웬을 제가 처음 만난 것은 물론 신대원을 다닐 때 이름은 들었습니다만 그저 이름을 듣는 정도로 지나쳤고 그러다가 제가 신대원을 졸업하고 그리고 Th. M.에 다닐 때 나름대로 중요한 영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제가 설교자의 길을 걸어가기로 다짐했었습니다. 그때에 영국 청교도들에게 심취해서 그래서 청교도의 책들을 부지런히 읽었고 지금도 제가 영국 청교도에 관한 책들만 2,000~3,000권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럴 정도로 애착을 가지고 제가 책들을 모았는데 영국 청교도의 전통에서 이 존 오웬이 굉장히 중요한 인물로 부각되는 것이죠. 존 오웬, 윌리엄 퍼킨스, 대륙으로 가서 활동을 하긴 했지만 존 오웬의 스승인 윌리엄 에임스, 같은 신학자들이 굉장히 중요한 인물들로 떠오르게 됩니다. 그 정도에서 그쳤고요. 그리고 번역된 책 한, 두 권을 읽어보았는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그런 상황이었는데 그렇게 하고 세월이 흐르다가 1993년 12월에 열린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때 제가 지금의 백석대학교지요. 거기서 구약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어요. 7명이서 교회를 개척했는데 하나님의 아주 강권적인 부르심이 있어서 지하실에서 개척을 했는데 그때만 해도 제가 하나님을 이미 깊이 만났고 그리고 말씀에 눈이 뜨여졌고 청교도 공부도 상당한 진전을 보았을 때입니다. 물론 전문적인 학자용 공부라기보다는 그저 목회자용 공부로 그리고 나름대로 설교의 소명도 느꼈고 말씀도 상당히 열어주셔서 설교에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여러 표징들을 보면서 제가 어느 정도는 목회에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93년 12월에 교회의 문을 열었어요.
교만했던 것은 절대 아닌데 교회를 1년 하면 한 300명이야 안모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교회를 개척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럴만한 게 저 빼고 7명이 교회를 개척했는데 7명이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4주후에 35명이 모여서 주일날 예배를 드렸어요. 그런데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가 쏟아지는지 어쨌든 예배시간에 설교를 하다가 사람들이 너무 울어서 좀 조용히 하라고 해야 할 정도까지 하나님이 말씀의 은혜를 부어주셨어요. 그래서 이제 쭉쭉 뻗어나갔어요. 그런데 일 년이 지났는데 웬걸 300명은 그만두고 100명도 안모인 것이에요. 지금 기억으로 한 6,70명 정도 모였어요. 많이 낙심되고 지쳐있을 때였습니다. 그때에 굉장히 침체된 가운데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하나님 저는 도대체 목회의 복이 없는 것입니까? 어떻게 이렇게 사람들이 은혜를 받으면서도 교회에 안 나오고 정말 힘이 듭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좋습니까?’ 그런데 목회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마음이 정말 가난해졌어요. 그런데 음성이 들린 것은 아닌데 제 마음 속에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얘야, 그러지 말고 네 서가에 존 오웬이 있지 않느냐? 그것을 좀 꺼내 읽어보아라.’ 기분에 그런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사실은 존 오웬 전집을 사놓기는 했어요. 그런데 첫 페이지를 펴보면 알지만 읽고 싶은 마음이 안들 정도로 돋보기를 써도 보일까 말까한 깨알 같은 글씨로 서문을 썼는데 영어도 친숙하지 않고 무슨 목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여튼 책이 독특해요. 그래서 몇 번 꺼냈다가 ‘이런 고풍스런 책이 있구나!’ 하고 꽂아놓았어요.
그리고 제가 책을 꺼냈어요. 그리고 우연히 제가 관심이 있는 부분을 찾아보니까 6권이었어요. 6권을 꺼내 들어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게 제 인생을 바꾸어놓은 순간이었습니다. 그중에서 논문 한편을 읽었는데 Mortification 이라는 논문이었어요. 그때까지 사실 저는 Mortification 이라는 말도 못 들어보았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죄 죽임의 교리’가 되는 것이에요. ‘On the Mortification of Sin’ 이라는 제목이었어요. 그것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너무 아파서 침대에 기대서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어려워요. 그래도 제가 영어를 꽤 한다고 했는데 친숙해지지 않고 어려워요. 그런데 한 페이지 두 페이지를 읽으면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하루 종일 열다섯 페이지를 꼼꼼히 메모하면서 읽었어요. 그런데 거의 숨을 멎게 하는 충격이었어요. 그게 뭐냐 하면 하늘에서 오웬 목사가 내려와서 나를 머리통부터 발끝까지 갈라놓고 나를 해부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파헤치는데 그 내용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로마서 8장 13절을 기초 본문으로 해서 ‘너희가 영으로 육신의 행실을 죽이면 살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이것이었어요. 그것을 읽어나가면서 너무 충격을 받아서 이튿날 우리 집사람을 불렀어요. ‘여보, 이리와 봐, 내 이야기를 들어봐.’ 그러면서 그것을 한글로 읽어주었어요. ‘여보, 나는 이제껏 짐승처럼 살았어. 우리 이것은 사는 것이 아니야!’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온 몸에 비늘이 돋는 것 같은 충격이었어요. 그러면서 이제껏 까지 공부한 모든 것들이 휴지조각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러면서 삼일 만에 60p정도 되는 On the Mortification of Sin 을 다 읽었어요. 이제 이게 존 오웬과의 만남의 시작이었어요. 이게 15년 전의 일이었어요.
그리고 이제 그 후로 너무 목회에 바빠서 뜸한 적도 있고 또 한동안 쉰 적도 있지만 그 후로부터는 계속 존 오웬을 탐구하기 시작했고 특별히 지금으로부터 한 7년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뜻을 세우고 이 사람의 사상이 무엇인지 내가 밝혀내고야 말리라고 생각하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25권 중의 8권은 히브리서 주석입니다. 예수 오신 이후로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히브리서를 4200p 정도로 주석을 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에요. 그런데 그 책은 제외해놓고 나머지 16권이 그분의 신학을 주로 다룬 책들입니다. 그 책들과 마지막 25번째 남아있는 시리즈 외의 책은 Biblical Theology라는 이름으로 번역된 책인데 성경 신학이라고 아는데 성경 신학이 아니라 ‘성경적 신학’이라는 뜻입니다. 그게 신약학자 스테판에 의해서 그 책이 라틴어에 의해서 영어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그 책은 800p 정도 되는 책인데 그 책들 17권을 중심으로 꾸준히 읽어왔고 지금은 거의 다 읽은 것 같아요. 그리고 개중의 중요한 책들은 제가 서너 번씩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읽으면서 큰 충격을 받으면서 마치 병아리가 달걀을 깨고 밖으로 나오는 것과 같이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치 시골에서 성경 공부하다가 총신에 온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존 오웬의 관한 책들과 논문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저에게 목자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분의 신학을 접하고 그분의 교리를 접하면서 그게 이제껏 내가 개인적인 신앙생활 속에서 해명되지 않았던 많은 부분들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이제 그것을 저의 목회의 중요한 자원으로 삼고 그리고 이것을 나의 목회 속에 녹여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덕분에 우리 교회 교인들은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다음의 권위는 ‘오웬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할 정도로 그렇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고 은혜를 받는 것들은 많이 있지만 그러나 이렇게 장중한 어마어마한 신학사상을 우리에게 소개해주는 이런 책들은 많지 않은 법이죠. 그래서 여러 이야기를 하면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를 것 같아서 제가 한 시간을 목표로 하고 우선 총론에 속하는 존 오웬의 신학과 전체적인 사상의 배경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한 10분 Break한 다음에 두 번째 시간에 존 오웬의 이 시리즈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존 오웬의 성화의 신학을 각론으로 들어가서 시간이 되는 데까지 깊이 다루어보고 도전해서 어쨌든 여러분들을 존 오웬의 책으로 인도하면 그러면 저의 사명은 끝났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책이 아마 존 오웬으로 인도해가는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책을 쓰면서도 늘 염려는 이 책을 읽고 나서 혹시 학생들이 예전에 존 오웬을 읽지 않다가 이 책을 읽으면서 아예 읽기를 포기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염려가 있었지만 한번 소개해보는 것입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지켜주시고 오늘 이 시간에도 위대한 하나님의 종 존 오웬의 생애와 그리고 신학적인 배경을 첫 시간에 살펴보려고 합니다. 저희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이것들을 훌륭하게 소화하고 또 그런 하나님의 사람이 여기 모인 학생들 가운데 많이 나타나도록 도와주셔서 몇 백 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또 우리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이들을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축복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Ⅱ. 오웬의 생애
존 오웬은 영국이 소용돌이치던 크롬웰 혁명시대를 살았던 사람입니다. 알다시피 영국은 크롬웰의 혁명을 통해서 단 한번 진정한 개신교 국가로 진정한 개혁주의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크롬웰이 왕정을 무너뜨리고 그리고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이 크롬웰은 여러분들이 잘 아는 바와 같이 청교도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청교도 신앙은 영국 청교도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대륙의 개혁주의 신앙이 몇 가지 경로를 통해서 영국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우선 스코틀랜드는 여러분들이 잘 아는 바와 같이 존 낙스가 칼빈에게 가서 배우며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배우며 이제 장로교적인 정치체제를 가지고 들어와서 개혁을 하게 되고요, 스코틀랜드는 당시의 상황이 얼마든지 체제를 뒤엎을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발전하고 이 아래쪽에서는 그럴 수 없었기 때문에 성공회가 워낙 탄탄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교리를 중심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신학의 아주 눈부신 발전을 가져오게 되는데 비록 대륙의 개혁주의였지만 영국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영국적으로 소화를 해서 독특하게 삶과 아울러 발전시킨 체계를 아울러서 그것을 영국청교도라고 부릅니다.
영국청교도도 스펙트럼이 다양합니다. 신비주의적인 청교도로부터 시작해서 율법주의적인 청교도, 그리고 알미니우스적인 청교도와 그리고 복음주의적인 청교도 등으로 나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아는 토마스 카틸라이트 같은 경우가 율법 주의적 청교도에 속한다면 키드니스트의 리처드 백스터 같은 사람은 알미니우스 청교도의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지금 배우려고 하는 존 오웬이나 윌리엄 퍼킨스, 그리고 레든 대학에서 활동하였던 윌리엄 아네스 같은 신학자는 바로 복음주의적인 청교도에 속하는 표준적인 청교도입니다. 이 청교도의 특징은 철저한 교리와 그 위에 기초한 철저한 삶이었고 이러한 정신을 물려받은 사람들이 아메리카 신대륙에 나라를 세우게 되었던 것이죠.
바로 이런 시대에 존 오웬이 스타드햄이라는 곳에서 태어납니다. 아버지도 목사였고 1616년에 태어나서 그리고 12세에 옥스퍼드 대학인 퀸스 칼리지에 입학하게 됩니다. 이 사람은 결국 졸업하지 못하고 옥스퍼드를 신앙적인 박해 때문에 떠나게 되지요. 그런데 이 사람이 이제 다니면서도 목회자의 가정에 태어나서도 확신이 별로 없었는데 어느 주일날 아침 이 사람이 학교를 다닐 때로 기억하는데 그 당시에 에드먼드 칼라미 박사라는 유명한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친구와 함께 가다가 그 설교자는 그만 어디를 가고 없고 그저 무명의 설교자가 대신 설교를 하러 올라왔어요. 그러니까 친구는 그 칼라미 박사가 없기 때문에 자기는 다른 교회를 가겠다고 가버리고 혼자 설교를 들었는데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그 평범한 설교자의 설교를 들으면서 커다란 영적 경험을 하고 회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제 이후의 존 오웬의 영국 청교도들이 모두 그렇듯이 경험주의적인 신학에 토대한 그러한 신학의 저작이나 설교들이 이때 토대가 만들어졌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제 이렇게 그가 결국은 올리버 크롬웰과의 만남을 통해서 당대의 최고의 학자였고 설교자였기 때문에 국목으로 임명됩니다. 그래서 올리버 크롬웰 치하에서 영국을 대표하는 목사가 되고 옥스퍼드에 총장 없는 부총장을 맡게 됩니다. 총장은 원래 왕이 하는 것이었고 크롬웰이 바로 그 일을 했거든요. 그랬기 때문에 이 사람은 실질적으로 옥스퍼드의 총장이었지요. 그래서 이분이 공부만 잘한 것이 아니라 행정에도 아주 탁월해서 빚더미에 있던 이 옥스퍼드를 임기 중에 놀랍게 쇄신하고 좋은 교수들을 영입하고 학생들의 복지를 증진하고 공부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만들어주었어요. 그리고 많은 기부금을 받아서 대학을 흑자로 돌려놓았어요. 끝까지 공부를 안 하고 말 안 듣는 학생들은 지하에 감옥을 만들어서 가두어놓았어요. 그래서 제가 강력하게 여기 이런 복지시설을 먼저 만들 것이 아니라 감옥부터 먼저 만들어 야해요. 공부를 안 하거나 대리출석하거나 그런 학생들은 감옥에 가두어서 친구들 다 졸업한 다음에 내보내야한다고 생각해요.
이 사람이 옥스퍼드에 입학해서 문학 석사 학위는 받고 퀸스 칼리지가 신학교였거든요. 거기에 들어갔는데 신앙적인 이유 때문에 결국은 마치지를 못했어요. 자, 그러면 이 사람이 공부하던 때가 1600년대 중반이었는데 이때는 아주 애매한 시기였지요. 역사를 여러분들이 좀 보면 알겠지만 이때는 아직 근대가 시작하기 전이었고 근대는 물론 17세기에 막 시작하고 있었지요. 이런 중세의 끝과 근대의 시작이 만나는 아주 복잡한 시대였고 실제 우리들이 근대의 시작을 데카르트 이후로 보거든요. 지금 시간이 없어서 데카르트가 신학에 미친 영향들을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결국은 이 사람이 데카르트 같은 사람이 새로운 철학에 불을 던지고 그리고 그것이 활활 타올라서 근본적으로 근대의 신학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16세기 후반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아직 그런 지각변동이 일어나기 전에 살았는데 그 대신 이 사람이 사는 날 동안에 맞서야했던 세 개의 큰 대적이 있었어요.
그게 뭐냐 하면 로마 가톨릭, 알미니우스주의, 그 다음에 소키누스주의였어요. 소키누스주의는 말하자면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종교개혁자들이 믿는 개신교를 개신교 되게 하는 모든 중요 교리를 이성적으로 거부하는 그런 초이성적인 것들을 거부하는 이성주의 신학의 대표였거든요. 이 세 대적들이 끊임없이 존 오웬이 싸워야했던 그런 대적들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옥스퍼드 대학시절부터 워낙 머리 좋은 천재였고요, 공부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십대에 죽을 뻔 할 정도로 공부를 했답니다. 그래서 이게 저의 공부의 기준입니다. 그래서 한번쯤은 죽을 뻔할 정도로 건강이 염려가 되어서 교회에서 ‘전도사님 공부를 그만하셔야겠습니다.’ 아내가 ‘여보 그렇게 공부를 하다가는 쓰러져…….’ 이런 이야기를 한번정도는 들어야 된다는 것이에요. ‘여보, 텔레비전을 그만 봐…….’ 그래서 탄탄한 어학, 그 다음에 신학, 철학, 그리고 여러분들이 절대 중세 스콜라주의를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짧은 시간에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그렇게 과소평가하는 것은 개혁 주의적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나중에 한번 들어봅시다. 그렇게 공부를 탄탄히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사람의 신학적인 배경이 도대체 어떻게 되어서 그렇게 대단한 장중한 그런 책들을 쓸 수 있었느냐하는 것이죠. 몇 년 전에 제가 총신에 와서 ‘죄와 은혜의 지배’ 라는 책을 나누어준 적이 있어요. 기억나시죠? 아, 다 졸업했을 테니까 기억이 안 나겠지요. 서점에서는 보신 적이 있지요? 그런데 그때 1800권을 가지고 와서 나누어 주었는데 학생들이 늘 끼고 다녔지만 읽은 학생들은 거의 없더라는 이야기에요. 그런데 그 죄와 은혜의 지배를 제가 420p를 썼습니다. 그게 전부다 로마서 6장 14절입니다. 거기에서 그 교리를 끌어내었는데 이게 제가 존 오웬에게로부터 받은 개혁파 정통주의 스콜라 방식의 신학이에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보면 존 오웬의 신학은 존 오웬의 책들은 굉장히 논쟁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한 문제를 집으면 끝까지 파고들어가는 그래서 벌창을 내고야마는 그런 성격이었어요. 그것이 제와 아주 딱 맞아떨어지는 그런 성격이었어요. 그래서 그 책을 여러분들이 한번 읽어보시면 제 책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그분의 죄와 은혜의 지배는 60쪽이 채 안되는데 제가 그것을 420쪽으로 썼고 원고지 3000매의 분량이거든요. 그것 한권을 다 읽어보면 ‘이게 존 오웬의 신학이 이런 분위기겠구나!’ 하는 것이 한 번에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Ⅲ. 오웬의 학문적 배경
1. 성경과 개혁주의 신학
그런데 이 존 오웬의 신학의 배경을 한 6가지 정도로 꼽을 수 있는데 우선 첫째는 성경과 개혁주의 신학이에요. 그래서 이제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혁주의의 전통이에요. 그 개혁주의가 잘 알다시피 개혁주의의 핵심이 뭐냐 하면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개혁주의자들이 나타나서 가톨릭의 신학을 다 다시 썼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정확한 지적이 아니에요. 오히려 종교개혁 1세대의 사람들의 관심사는 신학 전반에 관한 것을 다시 쓰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이들은 삼위일체나 의지문제라든지 그리스도의 위격문제는 안 건드렸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라는 문제도 안 건드렸어요. 왜냐하면 중세신학하고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오히려 종교개혁자들이 한 일은 이 가톨릭의 교리의 체계들 중에서 안 믿어도 될 것들을 믿으라는 것을 걷어내는 것이 종교개혁 1세대들이 한 일이었어요. 그래서 그들의 담론들은 대개 친이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특별히 교회의 표지론, 이런 것들에 집중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그 집중되었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기존의 가톨릭의 교리체계들 가운데 성경에 기초하지 않은 다른 내용들을 덧붙인 것들을 걷어내는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그것이 우리가 지키고 믿어야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논증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무엇을 시작 했어야 했느냐하면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이냐?’ 이것이었어요. 이것이 가장 중요한 그들의 이슈가 되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종교개혁자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이냐?’ ‘성경이다.’ ‘그러면 성경은 어디까지가 성경이냐?’ 하는 것을 물고 늘어진 것이죠. 그래서 가톨릭이 그동안 하나님의 말씀의 원천이라고 생각했던 성경과 그 다음에 교회의 전승, 이것들 중에서 교회의 전승을 떼어내고 이것을 떼어낼 때 함께 외경도 성경이 아니라고 잘라낸 것이죠. 그러니까 이제 성경 66권 이외에 다른 것에서 기초해서 신앙의 요소라고 생각되면서 얹어졌던 모든 내용들을 벗겨내는 작업들을 했던 것이죠. 그랬기 때문에 종교개혁자들이 교파와 생각은 달라도 아주 확고하게 그 사람들 속에 사로잡힌 사상은 공통적으로 합의된 사상이 있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성경 66권만이 영광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죠. 영광교리가 이제 이 종교개혁자 그리고 종교개혁자 1세대, 2세대 말고 3세대 그리고 칼빈은 2세대인데 3세대에 와서 발달하는데 이 3세대에 존 오웬 같은 사람들이 3세대에 속한 사람들이에요. 튜레틴이라는 사람과 함께 말이죠.
그러니까 이런 세대에 의해서 이제 성경영감론이 굉장히 발달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개혁주의 신학 전체의 토대는 성경론 위에 서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게 요새 흔들리고 있는 것이에요. 이게 요새 와서 흔들리면서 성경의 한 영감성과 이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상 자체의 토대를, 개혁주의의 이 토대 자체를 흔들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여러분들 요즘에 각광을 받는 신학자들 가운데 아디스 맥글라스 같은 사람들은 그런 사람은 아예 이 성경의 계시를 하나님의 말씀이요, 영감된 유일한 하나님의 진리라고 믿는 것 그 자체가 대단한 합리주의라고 보는 것이죠.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위에 나오는 베김성이라든지 마크놀 같은 사람들도 이미 성경 자체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에 대해서 흔들리는 것이에요. 지금은 여러분들이 해외에 나가서 성경이 하나님의 정확한 말씀이라고 전제를 하고 논문을 써서 통과될 수 있는 신학교들이 많지 않아요. 이런 정도까지 지금 성경론이 깨뜨려지고 있어요. 그렇게 해서 성경은 살아있어요.
이 사람도 기본적인 기초가 성경이에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나 조나단 에드워즈나 할 것 없이 모두 성경을 전체적으로 눈에 들어오게 만들어주는 성경의 유기적인 연결들이 종합을 이루며 마음에 다가오게 하는 이 지성의 놀라운 변화야말로 성령이 하시는 일의 가장 확실한 표증이라고 보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 존 오웬은 굉장히 중요한 경험적인 신학자이고 그리고 성령의 부어주시는 은혜에 대해서 굉장히 열려있어요. 그러나 성령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성경의 계시를 열어주는 것이라고 믿었어요. 성경의 진리에 대해 눈이 열림이 없는 신비한 체험 같은 것들은 성령의 역사라고 평가될 수 없다고까지 주장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경, 그리고 철저한 개혁신학을 토대로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개혁신학을 하게 되는데 영국청교도가 그 기류가 어떻게 되는지 사람들은 굉장히 궁금해 하는데 영국 청교도라고해서 영국만을 생각하면 안 되고 이 대륙 쪽에서 이 영국 청교도 운동은 공교롭게도 이 존 오웬이 활동하던 시대가 제네바 아카데미 3세대에 아주 걸출한 신학자가 있어요. 그게 누구냐 하면 튜레틴이라는 사람이에요. 여러분들은 생소할지 모르겠는데 들어보셨죠? 대단한 사람입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쓴 변증신학강요라는 세권의 조직신학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이 영어로 2,000페이지정도 되는데 이 책을 개혁주의 전통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세권의 조직신학 책이 있는데 튜레틴의 이 책과 그 다음에 피터판 마스트리어스라는 화란 신학자가 있어요. 이 사람이 두 권의 책을 씁니다. 이 사람이 쓴 두 권의 조직신학책, 그 다음에 순수신학공관이라는 책이 있는데 보에티누스를 비롯해서 세 사람의 저자가 쓰게 됩니다. 이 사람들은 화란에 있는 신학자들인데 이 세권의 책이 역사상 가장 빛나는 조직신학 책이에요. 여러분은 당장 묻겠지요?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어디로 갑니까? 칼빈은 이 세대보다는 앞선 세대에요. 그러니까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이 세권의 책에 비하면 기독교신학의 입문서 정도 되지요. 그래서 칼빈이 그 책을 쓸 때 자체가 고도의 신학자들에게 쓴 것이 아니라 평신도들을 상대로 쓴 책이에요. 그러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여러분들이 안 읽었다는 것은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에요. 그리고 그것을 그냥 평신도용이라고 생각하고 읽어야지 그 책을 읽은 것을 엄청난 신학적인 성취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에요. 우리교회에서는 6권짜리를 성경공부반에서 가르쳐요. 웃을 일이 아니에요. 걱정 되요.
이 튜레틴의 이 책을 그대로 거의 많이 원천으로 삼아서 조직신학 교과서를 만들어서 가르친 사람이 누구냐 하면 찰스하치에요. 다행히 이 책은 영어로 번역이 되었어요. 그런데 들리는 소리에 의하면 영어번역이 라틴어보다 훨씬 더 어렵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이 책은 아직 번역이 안 되었어요. 이렇게 해서 내려오게 되는데 놀랍게 이게 같은 시대에요. 이 사람도 종교개혁 2세대에 와서 많은 논쟁들이 일어나게 되요. 종교개혁시대와는 틀리게……. 가톨릭에서도 다시 칼을 갈기 시작하고 신학교 안에서도 각양 다른 학설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게 되요. 그때에 칼빈을 비롯해서 루터나 이런 사람들로부터 물려받은 참된 이 개혁신학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1세대가 대충 해놓은 것을 2세대가 정리하고 3세대가 이것을 전체적으로 마무리를 했던 것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해서 하던 시대에 여기에 존 오웬이 살았던 것이죠.
이쪽의 신학들이 이렇게 넘어오게 되는데 영국 청교도라는 것은 개혁주의 이후로 이어지는 개혁파 정통주의, 개혁파 정통주의는 칼빈 사후 베자부터 시작해서 제네바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개혁신학의 황금기를 가리키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 황금기가 다시 초기, 중기, 후기로 3기로 나누어지는데 후기로 와서는 이게 소위 얘기하는 오도독시(Orthodoxy) 가운데 오도독시는 정통주의라고 그러는데 이것을 하이 오도독시와 로우 오도독시로 나누어요. 하이 오도독시는 초자연적인 계시를 믿는 신뢰하는 신학이에요. 그에 비해서 로우 오도독시는 이성주의에 물든 기독교가 되요. 여기에는 왜 이렇게 되는지 배경이 있어요. 결국은 튜레틴의 아들에 의해서 로우 오도독시가 촉진 되요. 소위 이야기하는 판 프로테스탄트 프로젝트라는 이 튜레틴 3세대가 지나고 4세대가 되면서 이러한 참된 조상들 속에 있었던 진정한 경건, 이 개혁신학의 진수에 대한 경험이 사라지니까 신학이 지탱이 안 되는 것이에요. 그때에 이제 막 개신교의 다양한 신학들이 생겨나니까 이 아들 튜레틴이 외국인 프랑스로 유학하면서 이 사람이 이성주의를 먹고 들어오게 되요. 이성주의에 물들게 되요. 이렇게 들어오면서 이 모든 개신교의 연합을 꾀한다는 미명하에 판 프로테스탄트 프로젝트라는 것을 만들게 되요. 그러면서 연합이라는 것은 기준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거든요. 그래야지만 연합이 되니까요. 그래서 결국은 신학의 기준이 현저하게 떨어지게 되요. 그래서 이성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이렇게 이러한 정통주의 신학이 개혁주의에서 개혁파 정통주의 쪽으로 계승이 되다가 이게 계승이 되는 사이에 이쪽으로 건너오게 됩니다. 영국으로 건너오게 됩니다. 영국으로 건너와서 여기에서 영국 청교도라는 것이 발전하게 되요. 그때에 이러한 산맥이 영국으로 들어와서 또 다른 산맥을 형성하는 연결하는 연결점에 있는 걸출한 사람이 존 오웬이고 굳이 더 들자면 존 오웬, 윌리암 아네스, 리즈니, 윌리암 퍼킨스, 스테판 차노, 이렇게 쟁쟁한 사람들이 이렇게 여기도 인문주의가 상당히 발달된 사회니까 이런 물을 먹으면서 나름대로 해석을 하면서 말하자면 강한 개혁주의 전통을 만들어나가게 되는 것이에요. 자 이렇게 해서 개혁주의 신학을 철저하게 공부하게 됩니다. 이 사람이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마틴 부처, 존 칼빈, 피터 마터 버미글리 (이 사람은 독일 사람인데 대단하고 굉장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쓴 책들이 이제야 유럽 쪽에서 막 번역이 되어서 나오거든요. 나오는데 읽어보니까 이 사람의 신학이 개신교에서 가지고 있는 칼빈과 동시대 사람이었으니까 당시에 개혁파 정통주의 진영의 최고의 지성인 둘을 뽑으라면 피터 마터 버미글리와 존 칼빈을 꼽을 정도였어요. 이태리 사람인데 학문이 굉장히 심오합니다. 그 속에서 말하자면 중세의 철학들을 깨뜨리고 개신교의 신학을 탄탄한 논리적 구조위에다 세우게 됩니다. 그때에 이 사람이 쓴 책들이 상당히 많이 있는데 그중의 유명한 책 중의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니코마코스 윤리학 주석’ 이라는 책이에요. 그게 뭐냐 하면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기독교의 입장에서 그 철학을 비판하면서 다시 쓴 것이에요. 그러니까 아리스토텔레스와 맞짱을 뜰 정도니까 이 사람의 철학적인 실력이 굉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어학에 있어서도 대단한 사람이었고 놀라운 것은 뭐냐 하면 존 오웬을 포함해서 개혁파 정통주의의 많은 사람들이 40%내지 60%의 신학자들이 어학자들이었어요. 그 이유는 인문주의의 영향 때문이었어요. 존 오웬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 그의 서재의 책을 옥션에 넘겼는데 그 옥션에 넘길 때의 그 책의 목록을 제가 아주 어렵게 옥스퍼드 대학에서 구했어요. 그 목록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게 뭐냐 하면 아랍어 사전까지 있어요. 아랍어까지 한 것이에요. 그리고 저서를 보면 헬라교부와 라틴교부들의 글들이 번역하지 않고 그냥 원전으로 인용 되요. 그리고 이분은 랍비들의 히브리어 본문을 히브리어 글들을 자유자재로 읽고 인용할 수 있는 유대교의 전문가였어요. 그러면서 또 유럽최고의 플롯티스트 가운데 하나였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들어봐요. 처음 듣는 사람이 있어도 양해를 해요. 테오도르 베자, 볼프강 무스쿨루스, 하인리히 블링거 (이 사람은 칼빈시대 사람이죠) 윌리암 에임스, 윌리암 퍼킨스, 프란시스쿠스 유니우스 (이 사람은 레이든 대학의 교수였는데 이 사람의 제자가 바로 알미니우스라는 아주 골치 아픈 사람이 나와요. 그런데 스승의 사상은 철저히 칼빈을 따랐고요, 칼빈에게서 배웠습니다.) 요하네스 피스카토르, 그 다음에 유명한 사람이 하나 나오는데 기스베르투스 보에티우스 라는 사람이 나와요. 나중에 언젠가 제가 책을 쓰면 한번 읽어보십시오. 보에티우스는 굉장한 사람입니다. 아무튼 그렇게만 말하고 싶습니다. 굉장한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마어마한 사람입니다. 화란의 개혁파 정통주의를 이끌었던 세 인물이 있는데 이게 바로 보에티우스, 피터판 마스트리어스, 드미트리라는 세 사람이에요. 피터판 마스트리어스의 기독교강요는 조나단 에드워즈가 튜레틴 것보다 훨씬 낫다고 했으며 성경 다음으로 내가 강력하게 사랑하는 책은 피터판 마스트리어스의 조직신학 책이라고 말할 정도의 책입니다. 그 다음에 히에로니무스 잔키우스, 프랜시스 튜레틴, 슈펜하임, 사르피우스, 이런 사람들이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었습니다. 자, 이렇게 오히려 그의 장서목록을 찾아보니까 영국청교도들의 작품은 별로 없어요. 놀라운 것은 철학적 책들도 많이 나와요. 그래서 플라톤의 전집이 두질이나 나오고 그 다음에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책들과 중세의 신학자들 중에서 피터 롬바르드나 또 너무나 잘 아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전집이라든지 이러한 쟁쟁한 사람들, 그리고 카제탄이라든지 이런 걸출한 중세의 무시할 수 없는 신학자들의 책들이 거의 다 발견 되요. 그런 식으로 교육을 받았던 것이에요.
2. 인문주의 교육
두 번째는 인문주의 교육의 영향이에요. 당시 옥스퍼드 교육은 중세의 교과과정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이제 새로운 사상인 인문주의와 그리고 대륙에서 싹트기 시작한 종교개혁사상을 혼합하여 가르치게 됩니다. 이런 인본주의는 중세 후기의 거대한 학문적인 줄기에서 나온 가지에 비교할 수 있어요. 무슨 뜻이냐 하면 아우구스티누스라는 대가가 나오고 나서 그 다음에 중세로 접어들게 되잖아요? 그렇죠? 중세로 접어들게 되는데 그러다가 16세기에 와서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되잖아요?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14세기경부터 서서히 인문주의운동이 일어나잖아요. 문예부흥운동을 이야기하는 것이에요. 인문주의 운동이 일어나는데 이 인문주의 운동의 핵심은 뭐냐 하면 신을 중심에 놓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인간을 중심에 놓자는 것이에요. 이게 인문주의의 핵심이에요.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하면 여기서 중세에 가톨릭 신학자들이 계속해서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러한 일이 있고나서 진정한 중세의 신학의 시작이 물론 여기에 피터 롬바르드라든지 많은 사람들이 나오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사람의 출현이에요. 우리는 12세기로 자리매김 할 수 있잖아요?
이 11세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하면 아주 중요한 일이 일어나게 되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재발견이에요. 원래 아리스토텔레스는 초기에 교회에서 축출됩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의 철학체계가 기독교에 대단히 해롭다고 생각해서 깨끗이 정리를 해버려요. 그래서 금서로 지정되어서 다 불태워지거나 땅에 묻어버려요. 다 사라져버렸는데 이게 남아있는 데가 어디였느냐 하면 사라센제국이었어요. 이슬람교도들이 지배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그대로 보존되어있었던 것이죠. 이슬람교도들이 어느 날 아리스토텔레스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공부해가기 시작한 것이에요. 그때에 아비첸나, 아베로에스 같은 이슬람의 신학자들이 특별히 아비첸나 같은 사람은 굉장한 사람인데 18세에 모든 학문을 통달했다고 알려진 사람이었습니다. 게임이나 하고 있을 나이인데 철학, 의학, 자연과학, 법학, 정치학 모든 것들을 통달했는데 그러면서 이 사람들이 아리스토텔레스를 발견하게 된 것이에요. 그래서 이 세상의 철학을 세우게 되요. 그 자료들이 라틴어로 번역되어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형이상학, 범주론, 니코마코스 윤리학, 자연학, 이런 것들이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죠.
이때에 아리스토텔레스에 탐닉하면서 이기독교 신앙을 한쪽에서는 이성으로 시작하고 한쪽에서는 계시로 시작한 것을 기가 막히게 만나게 해서 하나님과 교회와 세상과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신학적 설명과 철학적 설명을 결합시키려고 웅장한 시도를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사람이에요. 아주 순결한 신앙을 소유했던 좀 많이 먹어서 뚱뚱하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런 사람이었어요. 이 사람에 의해서 이제 가톨릭 신학의 체계들이 세워지게 됩니다. 여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료로 활용이 되지요. 이렇게 세워놓은 것들에 대해서 상당한 시간동안 유지됩니다. 13세기, 14세기 넘어서 14세기 후반을 넘어서 15세기 16세기를 넘어오면서 여기에서 아주 놀라운 변동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죠. 말하자면 중세철학의 춘추전국시대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아는 윌리암 오캄을 비롯한 쟁쟁한 많은 중세 철학자들이 나타나는데 이때까지 내려오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기초하거나 플라톤 철학에 기초한 기본적인 두 갈래를 부인하면서 새로운 철학적 고민들을 하기 시작한 것이에요. 그래서 이러한 고민들의 갈래가 굉장히 다양하게 나타나요. 예를 들면 윌리암 오캄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생각했느냐하면 이런 식으로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시도다. 왜냐하면 자연을 통해서 접근할 수 있는 것과 계시를 통해서 접근하는 것들이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랬어요. 믿는 것은 믿는 것이고 그리고 추론하는 것은 추론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이성과 계시 사이에 연속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알 수 있는 계시의 세계와 추론으로 알 수 있는 이성의 세계 사이에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구분점이 있다는 유명한 ‘razor of Ockam’ 이라고 오캄의 면도날이라는 이론을 만드는 것이에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런 이론들을 나중에 종교개혁자들이 다 써먹는 것이에요. 봐라 오캄도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이성으로서는 믿어야 될 사실을 찾아갈 수 없다 너희들은 얘기하지 않느냐? 안젤 로스 이후로 다 이야기하지 않느냐? 믿으면 알게 되고 알면 믿게 된다고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는데 믿는 것은 믿는 것이고 아는 것은 아는 것이지 이것은 절대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오캄의 면도날을 좋아하게 되면서 그것들을 잘라내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믿음을 강조해요.
이렇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여기서 여러 가지 유형들로 나눠지게 되요. 이게 여러분들이 잘 아는 유명론과 실재론의 논쟁이에요. 그래서 유명론, 관념론적 실재론, 그러면서 막 변동이 일어나는데 이것 자체가 뭘 보여주느냐 하면 17세기 이후에 도래하게 될 근대와 중세를 철학 사이에서 구분 점을 짓는 중요한 분기점역할을 하는 근대주의의 출현을 이야기하는 것이에요. 근대주의의 특징은 무엇이에요? 중세주의와 근대주의의 결정적인 특징이 뭐에요? 왜 이렇게 어리바리해요? 중세주의는 뭐냐 하면 계시를 강조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은총을 강조하는 것이에요. 인간의 참된 모습은 그 은총아래 무릎을 꿇어야 된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여기에서 근대주의는 다 쓸데없는 소리다. 이야기해봤자 결국은 이런 이론을 가지고 교회가 힘을 키워서 결국은 중생들을 짓밟아서 지배하는 이러한 체계를 가져오지 않느냐? 그러므로 필요 없다.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것이에요. 데카르트가 이야기했던 그것은 바로 아우구스티누스에서 딴 것이에요. 아우구스티누스는 ‘내가 오류에 빠진다. 그러면 나는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먼저 이야기한다고요. 그래서 캐물었지요. ‘당신 그것은 그 사람에게서 따온 것이 아니냐?’ 벌써 당대에 그렇게 캐물은 사람도 있었다고요. 그런데 명확한 답변을 안 하는 것이죠.
들어보세요. 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데카르트를 이 신기원을 연 사람이라고 보거든요. 왜냐하면 여기에 이렇게 신이 있고 여기에 이런 사물들이 이렇게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여기에 내가 있는 것이란 말이에요. 나라는 존재도 신뢰할 수 없어요. 상대적이란 말이에요. 하나의 패러다임이라는 말이에요. 바뀔 수 있는 것이란 얘기에요. 이게 뭐냐 하면 내가 여기에 들어가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렇게, 이렇게 되고 하나님도 여기에 이 속의 패러다임 중의 하나라는 것이에요. 그게 뭐냐 하면 이제껏 까지 담론은 존재론이었어요. ‘무엇이 참으로 존재한 것이냐?’ 헤라클레토스 이후로 희랍철학에서 집요하게 되어오던 ‘존재라는 것이 무엇이냐? 존재는 무엇이냐?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그러면 존재하는 것 중의 최고는 무엇이냐?’ 이런 담론이었거든요. 그러니까 니체를 비롯해서 그쪽에서 계속되었던 그 철저한 니힐리즘 같은 것도 결국은 존재에 관한 질문이었거든요. 진짜 존재하면 존재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신도 존재한다면 신위에 있는 어떤 또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이에요. 그렇게 하면서 존재한 모든 것들에 대해서 철저한 회의를 품는 것이에요. 이런 존재론적인 논쟁에서 이제는 떠나가서 ‘꼬깃도 에루그숨’ 가장 확실한 것은 뭐냐 하면 내가 사유한다는 것밖에는 없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존재 그 자체도 데카르트에 의해서 사유의 연장이에요.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나라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에요. 그러면 여태까지 이런 신학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이성이라는 것은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객관적인 진리를 붙들어야 되는데 이제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있다고 이야기 하더라도 그것은 상대적인 것이고 결국은 내가 중요하다고 그러면서 존재론에서 인식론으로 대철학적인 전환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에요. 이런 것들을 놓고 데카르트의 위대한 철학사상의 독창성을 이야기하지만 내가 보는 견지에서는 다 여기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에요. 여기에서 다 뿌려놓는 것을 가서 하나를 주워서 그 다음에 강냉이 기계에 넣고 계속 튀겨서 튀밥을 만든 것이 그들이라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뭐냐 하면 이때에 신학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기본적으로 내려오는 중세의 커리큘럼을 따른 교육과 당대에 막 퍼지기 시작하는 신학문인 인문주의 이 두 개를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 인문주의는 무엇을 요구하느냐하면 고전에 대한 철저한 지식, 그리고 고전학적인 연구, 그 다음에 어학, 이런 것들을 요구하는 것이에요. 이런데서 철저하게 훈련을 받은 것이에요. 특히 중세의 스콜라시대에 있어서 중요한 학문인 특히 논리학, 이런 것들을 공부해나가는 것이에요. 이제 이쪽으로 넘어가면 기본적으로 학문을 함에 있어서 중세까지는 통합을 이루었던 것이에요. 그래서 결국은 그리스철학에서도 세 가지의 학문적인 통합, 그게 뭐에요? 히치카 자연학, 또 하나는 로디카 논리학, 하우툴립에디카 이 세 개가 통합을 이루는 것이 학문이었다는 것이에요. 그런 전통이 여기까지 계속되어 왔어요. 그 학문적인 통합들을 계시와 이성을 통해서 이루어낸다고 본 것이에요.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이뤄낸다고 본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속에서 공부를 해야 하니까 우리같이 쪼가리, 쪼가리 공부를 하면 안돼요. 이게 목회에 아무 쓸모가 없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함께 녹여낼 수 있는 시야를 종교개혁자들이, 종교개혁 후세들이, 2세대, 3세대들이 기본적으로 이렇게 공부를 못하면 아예 처음부터 공부 못하고 의사소명을 받았다고 그러면 안 되잖아요. 부엌칼을 들고 갈수도 없고…….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그런 것은 신뢰가 안가는 행동이거든요. 이렇게 해서 이런 학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인문주의에 대한 풍부한 소양을 가지고 해나갔던 것이에요. 특별히 그의 책 가운데서 소위 이야기하는 ‘프로 레고메나’ 라고 불려요. 이게 뭐죠? 레고메나=이야기 되어지는, 프로=앞 이니까 아주 쉽게 이야기하면 신학서론이에요. 이 신학서론을 Biblical Theology 라는 말로 영어로 번역해요. 아주 원전은 프로 레고메나에요. 이것을 약 700페이지 이상의 두꺼운 책으로 쓰는데 그것을 보고 깜짝 놀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 철저한 종교개혁주의자가 책속에 희랍의 이교도의 문헌이 500권 이상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희랍의 신화와 이방종교들의 역사, 문화 이런 것들에 대해서 심지어는 그들의 신학까지 그 사람들 나름대로의 신학이 있었을 것 아니에요. 그런 것까지를 전체적으로 섭렵했던 것이에요. 그래서 결국은 저 위의 천지창조부터 시작해서 아담과의 언약, 그 다음에 노아, 아브라함, 쭉 내려오면서 이러면서 구속사적으로 이 문제를 써내려간 것이에요.
이 책하고 비견될 수 있는 중요한 책이 조나단 에드워즈가 쓴 ‘구속사’ 라는 책이에요. 그런데 사실은 조나단 에드워즈의 구속사는 배를 타고 강을 가는 것이라면 이 사람의 책은 비행기를 띄우고 경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과 같은 아주 장엄한 전망들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얼마나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이 있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영국 청교도들 중에서 학식이 모자라는 사람들 말고 이렇게 왕좌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냥 신앙 하나에 꽂혀서 외골수로 나갔던 보수주의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 시대의 그들에 대한 전혀 잘못된 이해라는 것이에요. 어쨌든 그렇게 해서 이 사람들이 인문주의 교육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존 오웬의 신학의 책을 보면 아주 상세하게 파고들어가는 장면들을 볼 수 있는데 그 모든 것들은 이러한 인문주의 교육에서 나온 것이에요. 스콜라주의의 기본이 인과관계를 캐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철저한 중세철학에 기초한 철저한 이런 훈련들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아름다운 개혁신학의 상세화가 가능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도 해야겠네요. 무슨 이야기냐 하면 여러분 제한속죄교리 있지요? ‘limited atonement’ 라는 교리인데 결국은 이 책을 쓰고 나서 리처드 백스터와의 관계가 결국은 멀어지게 됩니다. 리처드 백스터도 참 존경스러운 분이었지만 그분의 책들은 대부분 실천적인 것들만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상당한 이론신학가였습니다. 잘 안 믿어지지요? 굉장한 사람이었죠. 이 사람이 쓴 책 가운데 무엇이 있느냐하면 limited atonement 그러니까 지금은 보편속죄설이 보편화되고 있지 않아요? 그러니까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의 효력은 모든 이 세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보편속죄론이잖아요? 보편속죄론이라고 그래서 모두 다 속죄한다는 것이 아니라 모두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무슨 뜻인지 아시죠? 그런데 제한속죄론은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신 사람들만을 위해서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의 효력을 허락하셨고 그리고 그 허락을 받은 사람과 구원 얻는 사람은 범주가 일치한다는 것이 제한속죄론이잖아요? 그런데 그 당시에 제한속죄론이 심각하게 도전을 받고 있었어요. 특히 알미니우스주의자들에 의해서 도전을 받았어요. 그때에 존 오웬이 7년 동안 이 제한속죄론을 변증하기 위한 책을 씁니다. 그 책의 이름이 The Death Of Death Of Saint In The Death Of Christ. (The Death Of Death In The Death Of Christ.) 라는 책이에요. 그래서 그냥 하도 어려워서 그냥 Death Death Death 라는 이름으로 불려요. 정확하게 번역하면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 있는 신자의 죽음의 종식’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책이에요. 그것을 7년 동안 약 300페이지 정도를 쓰게 됩니다. 그런데 언제나 존 오웬의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무엇이냐 하면 ‘참 미치지 않고는 읽지 못하겠다.’ 정글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계속 파고들어가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사람이 살아생전에 목차도 별로 안 만들고 죽었어요. 후대사람이 하도 답답하니까 1번, 2번, 3번, 4번 이렇게 매겼는데 누가 하는 이야기는 그것이 맞을 가능성은 별로 없대요. 큰일이죠. 그런데 어디를 펼쳐도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어디를 펼쳐도 심오하다는 느낌이에요. 어디를 펼쳐도 그렇지! 그렇지! 만드는 게 없고 심오하다는 느낌을 갖게 만들어요. 그 책은 아직 번역은 안 되었어요. 그런데 시험 삼아서 그게 어디에서 나왔느냐하면 The Banner of Truth Trust 사에서 책이 나왔어요. 전집 말고 따로 각권으로 나왔는데 Death of Death 라는 책으로 나왔는데 한번 사서 읽어보세요.
그것보다도 더 무릎을 치게 만드는 것은 제 10권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약 700페이지에서 75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인데 ‘Perseverance’ 성도의 견인교리 하나만을 다뤄요. 정말 대단한 것이에요. 아마 전 세계에서 쓰인 가장 두꺼운 견인교리일거에요. 왜 그러냐하면 그 당시에 제임스 구딘 같은 알미니우스주의 신학자들과 치열한 논쟁이 일어나게 되요. 그런데 자기의 생애에서 논쟁을 해서 딱 한번을 제외하면 항상 이깁니다. 그래서 이 사람의 당시의 별명이 17세기 영국복음주의의 신탁이었어요. 그래서 이 교리가 복음주의 입장에서 성경적으로 맞느냐하는 것을 오웬선생에게 가서 물어보기로 하자고 하고 그 사람이 이야기하는 그것이 말하자면 당시 정통복음주의의 견해가 되는 것이에요. 그럴 정도로 굉장한 학자였어요. 그래서 이 인문주의의 소양들을 갖췄어요. 그러면서 딱 보면서 ‘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어떻게 이렇게 파고 들어가느냐?’ 그러면 그게 인문주의와 그리고 스콜라주의의 영향이라고 보면 되요. 사실은 그것 때문에 더 이상 잘못된 이론들이 판치지 못하도록 막아주지요. 예를 들어서 이렇게 나와요? 자기 이야기를 쭉 써요. objection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내가 이렇게 교리를 개진하면 반대자들은 이렇게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예상되는 모든 이의를 기록해요. 하나, 하나 그 다음에 reanswer를 써내려가는 것이에요. ‘그것에 대한 답변은 이것이다.’ 그 정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reobjection 그러면 또 반론을 하겠지? 그리고 예상되는 반론을 쭉 적어요. 그 다음에는 rereanswering 다시 써내려가요. second answer를 다시 써내려 가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책에 한번 흠뻑 빠져서 ‘아하!’ 하고나면 그 다음에 나머지 책들이 너무 재미있는 것이에요. 내가 사실 청교도 책들을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그렇게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많이 사랑했고 열심히 읽으려고 했고 제가 대충 볼 때 2,500권정도 제가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한쪽 벽면이 영국 청교도 책들이거든요. 그중에서도 print out 되버린 책들도 많이 있어요. 그런데 오웬을 읽고 나서는 대부분의 청교도 책들에서 손을 뗐어요. 왜냐하면 너무 시시해서 못 읽겠어요. 대학생의 글을 읽다가 중학생이나 세계백과사전을 보다가 어린이 대백과를 보는 기분이에요. 수준이 너무 낮은 것이죠. 그러니까 그런 정도의 깊이를 갖게 된 것도 결국은 그것 때문이었다는 이야기에요.
3. 고대와 중세의 교부학
그 다음에 이 사람의 사상의 또 하나는 무엇이냐 하면 고대와 중세의 교부학이 있어요. 사실 우리가 신학을 이렇게 해야 하는데 우리가 영어라는 걸림돌이 있어서 이것을 잘 못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원래 영어권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사실은 독일어를 공부하고 불어를 공부하는 것은 쉽거든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너무 어렵죠. 영어만 해도 허덕대니까 그러니까 영어는 영원히 외국어니까 그 사람들은 모국어니까…….그런데 어쨌든 그래도 이 사람은 고대와 중세의 교부중 이 사람이 많이 인용했던 사람이 아우구스티누스에요. 아우구스티누스뿐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 있었던 락탄티우스, 이레니우스, 터틀리안 같은 사람들이 중요한 지적인 자원이었어요. 특히 테르툴리아누스 같은 사람이고요. 그리고 그 이후로 와서 중세의 많은 교부들이 나오게 되는데 대충 이름만 불러드릴테니까 한번 들어보세요.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폴리캅, 이레니우스, 클레멘트, 키프리아누스, 예루살렘의 시릴, 아타나시우스, 암브로시우스, 프로스퍼.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바질, 그리고 만투아의 밥티스트, 스테플톤, 카노, 발렌티아의 그레고리, 안셀무스, 아벨라르도스(이 사람은 아주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에요. 작년에 소설책도 하나 나왔잖아요. ‘아벨라르도스와 여성과의 사랑’이라고 해서 나왔어요.) 그 다음에 피터 롬바르드(이 사람도 8세기의 사람인데 대단한 사람이지요. 이 사람의 명제집이 아주 유명하고 신학자로 데뷔할 때는 이 명제집에 대한 주석을 쓰는 것으로 등장했어요. 이게 말하자면 중세시대의 초창기에 대표적인 조직신학적인 시도에요.) 그리고 다메섹 요한(아주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에요. 희랍의 교부인데 상당한 철학적 식견을 가지고 있는 대학자입니다. 사실상의 갑바도기아의 3인을 제외하고는 이 사람이 마지막 신학자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끌레르보의 베르나르(이 사람은 단순한 신비주의로만 알려져 있는데 굉장한 학자입니다. 이 사람의 칼빈의 유니온크리스토=그리스도와 연합의 신비적인 교리의 원천이 끌레보의 베르나르에요.) 그 다음에 겐트의 헨리, 헤일즈의 알렉산더, 보나벤투라(알렉산더의 제자에요.) 이런 사람들을 모두 섭렵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게 교부들의 전집을 최근에 독일 터널 티에서 이것들을 펴냈는데 들어가서 보니까 희랍교부, 라틴교부를 합쳐서 책 전체가 450권에서 500권정도 되요. 그것을 모두 읽는 것이 당시 신학의 기본이었어요. 이것의 한질의 가격이 일억 정도 됩니다. 저도 한40권 정도밖에 없어요. 누가 이거 한질 좀 사주었으면 참 좋겠어요. 이게 우리나라에 가지고 있는 데가 없어요. 그래서 이제 이런 것들을 철저히 읽으면서 신학적인 신학사 전체를 꿰는 가운데 그다음에 내가 새로운 신학들을 세울 때 이것들이 배경이 되는 것이죠. 그것뿐만이 아니라 그것은 겨우 중세와 고대의 교부들의 작품들이죠. 이런 것들을 철저하게 공부를 해나갔다는 것이죠.
4. 토마스 아퀴나스와 스콜라주의
그렇게 해놓고 당시의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원천이 있어요. 그게 토마스 아퀴나스와 스콜라주의였어요. 이것은 생략하겠습니다. 특별히 신학대전=Summa Theologia 라는 작품은 이것은 굉장히 중요하지요. 이것은 개신교뿐만이 아니라 가톨릭 신학생들도 안 읽는대요. 마치 가톨릭에서 이 사람은 거의 아버지와 같은 사람 아니에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아퀴나스를 안 읽는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가 하느냐하면 개혁주의 신학을 한다는 총신에서 기독교강요를 안 읽는 것과 비슷한 것이에요. 그것과 유사해요. 비슷한 고민에 빠져있는 것이에요. 안 읽어요. 최근에 옥스퍼드에서 이 책이 다시 번역되어서 나왔는데 지금 제가 구입한 것을 보니까 60권정도가 되더라고요. 그런데 진짜 공부하고 싶어요. 그런데 여러분! 메뚜기도 한철이에요. 목회를 하면 공부를 못해요. 진짜 나같이 특별히 몸부림치지 않으면 공부를 못해요. 그러니까 할 시간이 안 돼요. 여러분들이 인생에서 가장 한가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되요. 아마 은퇴한 후에도 지금보다 한가롭지 않을 것이에요. 왜? 은퇴하고 시골에 가서 닭도 치고 밭도 메고 해야 되니까요. 그런데 힘이 없어서도 못해요. 기독교강요를 들 기운도 없는데 어떻게 읽겠어요. 그러니까 지금 공부해요. 공부를. 여기는 뭐에요? 6시간 이상을 자면 죄를 짓는 것이에요. 그리고 기숙사에서 그냥 총 4시간씩만 재웠으면 좋겠어요. 1시에 자서 5시에 일어나게 하고 아침공부를 하고 오면 밥을 주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쓴 작품가운데 ‘A Display of Arminianism’ 라는 책이 있는데 처녀작이에요. 26살 어린 나이에 쓴 작품인데 이 책을 쓴 것이 그 당시에는 충격이었어요. 왜냐하면 알미니안주의에 대해서 너무 너무 잘 쓴 것이에요. 그리고 이 사람이 첫 목회지인데도 당시에 몇 백 명이 모이는 교회에 담임목사로 보내지게 되요. 맨 처음에는 성공회에 있었거든요. 국교도였다가 나중에 비국교도로 전향되면서 이제 가시밭길 같은 인생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럴 수 있었던 것도 보면 토마스 아퀴나스의 책에서 나오는 배우는 영역들이 많이 나오게 되요. 그래서 이제 당시의 옥스퍼드 시절에 프리도 라는 사람이 있었고 그 다음에 중세 철학가 가운데는 슈아레쯔라는 유명한 사람이 있거든요. 그래서 슈아레쯔의 형이상학이 아주 유명합니다. 중세 철학에 속한 사람이에요. 슈아레쯔는 모든 개혁자들도 한번쯤은 슈아레쯔에게서 다 배웠던 사람들이에요. 여기서 말하자면 기독교에 의해서 정죄된 형이상학들을 배우게 되는 것이에요. 그 개념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에요. 이 형이상학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에요. 지금 신학교 과목을 실천과목으로 바꾸자고 그러는데 그러면 안돼요. 이론을 탄탄하게 하고 그러면 실천과목은 언제 배우냐 하면 수업시간을 늘려야되요. 수업시간을 늘려야지 이론신학을 깎아서 실천신학을 하게하면 어떻게 하느냐 이거에요. 하루에 두 시간씩만 더 공부하고 집에 가는 시간을 두 시간만 늦추면 되고 아니면 한 시간을 먼저오든지 해야지. 아니 의사만큼도 공부를 안 해가지고 어떻게 하려도 그래요. 의사가 배우는 육체야 눈에 보이는 것이니까 눈을 가지고 배를 갈라서 수술을 하면 되지만 영혼은 보이는 것도 아닌데 더군다나 의대생들은 전국의 1%안에 드는 학생들이 들어오잖아요. 신학교는 다 골라가고 처진 사람들만 들어오잖아요. 신학대학을 이야기하는 것이에요. 그러니 공부를 더 시켜야지 그게 뭐에요. 일주일에 공부를 몇 시간을 하지요? 아니 그냥 월요일에 쉬긴 왜 쉬어요. 뭘 했다고 월요일에 쉬어요? 토요일에는 교회에 일찍 가서 봉사해야하니까 금요일까지 공부를 해야지요. 무슨 소리에요. 어쨌든 유치장부터 만들어야 해요.
5. 플라톤과 신플라톤주의 철학
그 다음에 이 사람이 받았던 학문적인 배경가운데 하나가 플라톤과 신플라톤주의 철학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 플라톤주의와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이 뭐냐 하면 중세 후기와 르네상스에 들어서 영향력 있는 사상의 조류가 네 개가 있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소위 이야기하는 ‘아우구스티누스 모데르나’ 라고해서 조금 있다가 말씀드리겠지만 아우구스티누스주의가 새롭게 아주 화려한 부활을 하게 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주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스콜라주의, 인문주의 이것이에요. 이 네 가지는 우리가 일컫는 르네상스라는 총칭하는 문화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에요. 이것과의 끊임없는 모든 학문이 이 네 개를 벗어나지 못했어요. 아우구스티누스주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스콜라주의, 인문주의는 무슨 학문을 하든지 이 네 개와 교류를 하면서 그러면서 절충주의적인 세계관들을 만들어 내었던 것이에요. 중세의 스콜라주의가 이렇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재발견을 통해서 형성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 이미 중세철학의 전통에 아리스토텔레스주의만 있었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스콜라주의 자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유물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돼요. 물론 이 방법이 굉장히 아리스토텔레스 적이에요.
그러니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과 제자관계잖아요. 그런데 세계관 자체가 현저하게 달라요. 물론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있어요. 그래서 이제 제 느낌에 보면 플라톤은 뭔가 신의 세계를 본 비범한 철학자에요. 그리고 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짜 그런 것은 못 보았지만 말하자면 머리가 비상한 회심하지 못한 철학자에요. 그렇게 해서 결국은 플라톤은 일자를 먼저 봐야한다고 하고 토행을 먼저 보면 여기 소위 이야기하는 동굴의 비유가 나오잖아요. 그래서 그 이상 국가 즉 폴리테이아를 공부해야해요. 왜냐하면 거기서 굉장히 중요한 신학적인 개념들이 거기에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에요. 인간은 형이하학적인 세계밖에 못 보는 것이에요. 그런데 ‘뿡’하고 번쩍 불이 튀듯이 신의 세계를 보는 것이에요. 이게 이데아의 세계에요. 이게 바로 말하자면 일자의 세계라는 것이에요. 일자는 하나님에 대한 존재론적이고 철학적인 설명이에요. 이렇게 만나고 나면 그 다음에 여기에서 이렇게 올라간 것은 아니지만 이 시야에서 보면 눈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죠. 그때에 이것 하나하나가 뭔지도 몰랐던 것이었는데 이때 이것을 쳐다볼 때는 무엇인가 몰랐었는데 일자를 만나고 나서 내려오면서 들여다보면 아하! 아하! 아하! 생겨나게 되고 이해를 갖게 된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너희들이 어떻게 증명하느냐? 그러니까 이것은 쓸데없는 이야기이고 일단 알 수 있는 이 개별자들로부터 시작해서 보편자로 더듬어 올라가야한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인 주장이고 플라톤의 주장은 이것은 다 헛것이고 이것은 허상이고 너희들을 속이는 것이니까 들여다볼수록 골치가 아프고 헛갈려요. 그러니까 이 너머를 보도록 해라. 그게 바로 파르메니데스 이후로 내려오는 그런 말하자면 우주 전체를 하나로 보고 평가, 판단하는 그런 것들의 사상적인 맥을 이루게 된 것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신학이 철학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묻는 것은 굉장히 바보 같은 질문이에요. 문제는 뭐냐 하면 철학을 도구로 사용해야지 신학 자체를 철학을 증명하는 그런 방식으로 사용을 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에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에요. 그렇지만 철학에 대한 이해 없이 신학을 적절한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모든 것들이 전부다 시간을 쪼개보면 ‘나 너 사랑해!’ 그렇게 묻는데 나도 그러면서 끌어안으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네가 생각하는 사랑은 무엇인데?’ 그렇게 물으면 복잡해지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렇게 결국은 깊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는 개념을 분명히 하고 정의를 명확하게 한다는 것이에요. 그런 것들을 정의를 내리고 개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써먹지 않더라고 자기 자신이 사유의 능력이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오늘날 이 조직신학이 발전을 안 한 것이에요. 이렇게 얘기하면 좀 뭐한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요즘 현대에 나오는 개혁주의를 강력하게 그 길을 걷고 있다는 신학자들의 조직신학 책들을 보면 물론 훌륭해요. 그러나 깊이에서 보면 현저하게 얕아요. 이런 책이란 당장 한번 비교해보세요. 피터판 마스트리어스는 라틴어로 되어있으니까 읽기가 힘들겠지만 이게 화란에서 쓰인 책인데 최근에 화란에서 후배가 왔는데 화란에서 이 책을 못 구하니까 미국에서 구했어요. 복사비만 65만원이 들었어요. 돈 없으면 공부를 못해요. 이 책을 갖다놓고 깊이를 비교해보라는 것이에요. 비교가 안 되는 것이에요.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감탄하는 것이 뭐냐 하면 우리도 조직신학이 있고 이 사람네들도 조직신학이 있는데 집으로 비유를 해보자면 우리의 조직신학은 우리가 이제껏 까지 배우고 서점에서 만지는 현대조직신학은 시영아파트라면 이것은 래미안이나 자이에요. 한번 이속에 들어가서 살면 그런 허접한 집에서 살 수 없는 그런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우세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 하나만 있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여기에는 분명히 소위 역사에서 알 수 있는 라무스주의라는 것이 나와요. 라이스들이라고 나오는데 그게 바로 플라톤철학을 가지고 기독교신학을 설명하는 것이에요. 이런 전통이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이 플라톤 주의자에요. 그리고 이 사람이 4세기 때 사람이고 2세기 때에 소위 얘기하는 플라톤주의의 대가가 나타나는데 플로티노스라는 사람이에요. 이 사람의 제자가 있었는데 그중의 한 사람이 오리겐이라는 사람이에요. 오리겐이 쓴 책이 기독교 최초의 조직신학 책을 한권 써요. 그게 ‘케리아르콘’이라는 책이에요. ‘원리에 관하여’라는 책이에요. 그 책은 신플라톤주의에 많이 물들었으니까 개혁신학적인 가치는 별로 없지만 그러나 기독교신학을 총체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에요. 이런 플라톤적인 전통이 있었단 말이죠. 이 존 오웬이 두 가지를 같이 사용해요. 그런데 세세한 것들을 증명해 나가는 데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들을 많이 활용하고, 장중하고 커다란 신학의 틀들에 있어서는 이런 것들을 많이 사용해요.
6. 아우구스티누스주의
그 다음에 이제 많은 이야기들이 나와요. 마지막으로 6번째 나오는 이야기를 하나만 하고 break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읽어보세요. 시간이 없어서 설명을 못하겠는데 당시의 무슨 운동이 일어났느냐하면 ‘스콜라 아우구스티니아 모데르나’ 라는 운동이 일어나게 되요. 직역하면 ‘오늘날의 스콜라적인 아우구스티누스학’ 이에요. 그게 화려하게 살아나는데 이게 16세기 17세기 18세기에 살아나게 되는데 이게 무엇과 관련이 되느냐하면 여러분들이 역사에서 존 로크를 중심으로 하는 존 로크, 흄을 중심으로 하는 영국의 경험주의에 대해서 들어보셨지요? 영국 경험주의 때에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를 중심으로 신플라톤주의 운동이 일어나게 되요. 플라톤을 다시 제자리에 놓는 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은 이야기하면 시간이 굉장히 길어요. 여기에서 무엇이 나오느냐하면 오늘날의 영적인 깊은 변화가 아닌 도덕주의 같은 것들에 대한 여기에서 기본적인 이론적인 토대들이 여기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이것이 후에 말하자면 18세기말과 19세기에 일어났던 자유주의의 철학적인 기반들을 토대를 놓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요. 복잡하게 여러 가지가 많이 얽히는데 제가 그것까지는 할 수 없고 여기에서 이런 경험주의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때에 신플라톤주의운동이 일어나면서 그게 뭐냐 하면 플라톤이 제기했던 질문인데 ‘도대체 사람이 왜 옳은 것이 예쁜 것보다 더 좋은 것이죠?’ 그래요? 안 그래요? 옳은 것이 예쁜 것보다 좋은 것이잖아요? 아니 시험을 볼 때에 커닝을 안 하고 낙제를 받는 것은 옳은 것이죠. 그런데 살짝 보고 점수를 받는 것은 예쁜 것이잖아요. 그렇죠? 내가 느끼기에 예쁜 것이라는 것이에요. ‘그런데 왜 옳은 것에 마음이 안 끌리고 예쁜 것에 마음이 끌리느냐?’ ‘그래서 인간이 부도덕해지는 것인가?’ 이런 것들이 최대의 관심사가 되는 것이에요. 이런 것들이 왜 그렇게 일어나는지를 존재와 당위만으로 설명하던 때에 인간이라는 내면의 구조를 보면서 심리학적인 시각을 가지고 이것들을 선택하는 과정들을 만드는 것이에요. 이 영국 경험주의의 중요한 기여란 말이에요. 그런데 이런 운동들이 새롭게 일어나게 된 것이에요. 그때에 진짜 이 경험의 세계를 풍부하게 생각했던 사람이 아우구스티누스에요.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은 아주 놀랍게 철학적이면서도 경험적인 신학이에요. 그러니까 고백록 같은 것을 읽어보면 뭐 사실 고백론을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지고 감동을 받을 정도 되면 그 사람은 굉장한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이 아우구스티누스가 쓴 250권정도의 책 중에서 이것은 46세, 47세 때 쓴 이 책은 신학과 사상 이런 것들이 농익은 결정체에요. 무지하게 어려운 책입니다. 내가 항상 이야기하지만 한 학기를 따로 공부해야할 정도의 엄청난 양이에요. 그것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고 가슴이 뜨거워진다는 이야기는 그 배경에 깔린 철학이나 존재론, 인식론, 성경에 관한 신학들을 굉장히 많이 이해하고 있다는 이야기거든요. 그런데 어쨌든 그런 사람이었는데 그러니까 이 힘을 타면서 플라톤이 나오니까 플라톤에 대한 역사적으로 플라톤에 관한 가장 정확한 주석을 쓴 사람이 있는데 플로티누스 라는 사람이고 이 사람이 ‘엔네아데스’라는 책을 써요. 그리고 이 주석을 가장 풍부하게 쓴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아우구스티누스에요.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한 플라톤의 재해석을 통해서 그것이 말하자면 중세라는 큰 강으로 가는 수문을 만들어주는 것이에요. 바다로 들어가는 수문을 만들어주는 것이에요.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이 인물은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에요. 이 사람을 공부해야해요. 공부를 안 하면 안 돼요. 내가 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를 공부안하면 안됩니다. 진짜 다른 책을 덜 읽어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읽어야하고 돈이 없다면 다른 책을 팔아서라도 몇 권 사야 되요.
어쨌든 화려하게 부활합니다. 이 영향아래서 이 사람이 공부하는 것이에요. 실제로 존 오웬의 저작을 보면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들이 굉장히 많이 근거로 인용됩니다. 자, 이렇게 하고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여러분들이 읽어보면 아니까 그냥 정리를 하고요.
IV. 오웬의 신학적 중요성
그런데 마지막 결론을 내리겠어요. 1,2분 동안 결론을 내리자면 결국 이 사람의 신학은 어떤 점이 중요하냐하면
1. 개혁파 정통 스콜라주의의 진수
첫째 개혁파 정통 스콜라주의의 진수를 보여준다.
2. 청교도의 성경적 경험 신학
두 번째는 청교도의 성경적 경험신학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특히 전집 2권, 3권을 보면 대단합니다. 3권, 4권은 성령론이고 그 다음에 2권에서는 그리스도와의 교통(Communion with God)을 다룹니다. 여기에서 그 유명한 위격적 개별 교통의 교리가 나와요. 정말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어쩔 수 없는 그런 것이에요.
3. 그리스도 중심의 하나님 영광의 신학
세 번째는 그리스도 중심의 하나님 영광의 신학이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어떤 식으로 묘사되느냐하면 신지식의 중심이시다. 그래서 여기서는 칼빈의 사상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죠. 소위 칼빈이 이야기하는 이중지식의 이론을 알지요? 여기는 지옥, diplex 이중의 신지식 그래서 뭐냐 하면 인간이 있는데 인간이 희미하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창조주로서의 지식이에요. 그런데 이것은 확실하지 않아요. 죄가 들어온 다음부터는 이 사람의 인식도 흐려지고 이 세계에 피조된 이 모든 것들도 다 계시가 흐려졌기 때문에 희미한데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참된 창조주에 대한 지식으로 못 돌아가요. 여기에도 수많은 이방의 교리들이 생겨나게 되요. 루이스 벌콥이나 여기의 조직신학 1권에서 제일 첫 번째 다루는 종교문제를 다루면서 신지식의 왜곡문제를 다루잖아요. 이게 이런 전통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데 뭐냐 하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당신을 알 수 있는 매개적인 수단을 주시는데 그게 뭐냐 하면 그리스도에요. 특별히 그리스도의 성육신이에요. 그래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보이시고 그리스도는 이 십자가와 성육신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전달해주는데 이렇게 할 때에 이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에요. 이게 뭐냐 하면 구속주에 관한 지식이에요. 그래서 이 두 가지가 구속주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면 이 창조주에 대한 새로운 지식이 생겨나게 되고 그래서 창조주로서의 지평과 구속주로서의 두 지평이 만나게 되는 것이에요. 이게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루터가 이야기했는데 결국은 한사람의 신학자가 되는 것은 공부하고 명상함으로써 신학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향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통해서 한사람의 신학자가 되는 것이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핵심이 뭐냐 하면 핵심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에요. 이번에 제가 토요일에 있었던 복음주의신학회에서도 설교하면서 강조한 것이 그것이에요. 왜 칼빈을 Bible says. 그러면 반론이 있는데 칼빈 said. 그러면 말이 없다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에 토를 달면 신학적인 지식의 다양성을 보여주지만 칼빈이 이야기했는데 반기를 들면,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그것은 이단이라는 것이에요. 그렇게 칼빈이 존중을 받는데 왜 칼빈을 닮은 사람은 안 나오느냐는 것이에요. 그 핵심이 뭐냐 하면 칼빈에 관한 것은 우리가 다 가르칠 수 있어도 칼빈을 칼빈되게 했던 그 모든 신학적인 필연성, 신적인 강제력, 칼빈으로서 살지 않을 수 없었던 그런 숙명적인 아나케, 운명적인 필연성, 김 세윤 박사님이 말씀하시는 신적인 강제력의 기원이 뭐냐 하면 ‘그노시스 크리스트’에요. 뭐에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란 말이에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구약에 나오는 ‘다트 엘로힘’의 신약적인 전환이에요. 이게 틀린 것이 아니라 신학적인 전환을 한 것이에요. 창조주 하나님을 신기하게 알았는데 구속주를 통해서 구속주를 알고 나니까 창조주를 아는 지식에서 이 사물들을 보면서 어디서든지 구속주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에요. 이렇게 하면서 이 두 가지가 합쳐지는데 이게 뭐냐 하면 하나님의 속성과 속성이 실현되는 방식에 대한 앎, 이게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속성이 무엇이고 그 속성이 어떻게 우리의 인생 속에 실행되는지를 성경의 계시를 통해서 배우고 경험하게 될 때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란 말이에요. 이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두 번째란 말이에요. 물론 저는 좀 다르게 설명하지만요.
4. 인간 이해의 탁월성과 목회적 신학
그리고 이제 그 다음에 그리스도는 구속의 중심이시고 우주의 중심이시다. 인간이외의 탁월성과 목회적인 신앙 철저하게 교회를 위한 아름다운 신학이었다. 그래서 결국 존 오웬은 우리에게 이렇게 신학을 함에 있어서 철저한 경건, 철저한 학문의 탐구, 개혁신학에 대한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갈망, 인간에 대한 탁월한 지식과 사랑, 이러한 영광스러운 방식으로 신학을 전개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정말 있지는 않지만 그러나 누구든지 탐구한 사람은 거기 있으리니 하는 어마어마한 유산들을 소유하게 한다는 것이에요. 그런 생각을 하려면 공부해야 되요. 그러니까 내 이야기를 그렇게 웃으면서 듣지 말고 정말이에요. 웃음이 변해서 눈물이 되어야 해요. 진짜에요. 그래서 철저하게 공부해서 나는 너무너무 기뻐요.
그래도 목회를 알량하게 해도 목회인데 안 어렵겠어요? 새벽기도도 나가야되고 교인 심방도 해야 되고 상갓집도 가야하고 교회도 일 년이면 돈을 몇 십억씩 굴리는데 그 돈을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렵겠어요? 사람들은 들락날락하지, 너무너무 괴롭고 힘든 일이 많아요. 그렇지만 죽을 때까지 그런 일은 날마다 일어나는 것이에요.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해서 공부를 못하면 죽을 때까지 까막눈으로 사는 것이에요. 요즘은 제가 개인적으로 개혁파정통주의의 박사논문을 최근에 천오백만원어치를 구입했어요. 그것을 보면서 공부를 계속하는데 너무 감격했어요. 무슨 이야기를 들었느냐하면 최근에 공부를 하면서 얻게 된 몇 가지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보니까 20년 정도는 설교할 수 있는 재료를 발견했어요. 진짜에요.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20년 정도는 다른 것 찾지 말고 내가 여태까지 몇 년 동안 공부한 것을 더듬으면서 깊은 세계의 내용들을 그것을 먹고 그 다음에 자기가 경건으로 살고 눈물을 흘리고 감사하고 변화되는 가운데 강단에 올라갔을 때에는 대가처럼 설교를 해야지 학생처럼 설교를 하면 되겠어요? 성경을 두 손에 꽉 잡은 것처럼 그렇게 교인들 앞에서 설교를 해야지 주춤하고 마치 배추장사가 핸드폰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래서야 되겠느냐는 것이에요. 그러면 안 돼요. 그렇게 철저히 공부를 하면서 설교 한편, 한편이 커다란 신학의 틀에서 나와야지 설교가 충돌을 안 일으키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이 공부할 때란 말이에요. 나는 만약 여러분 중에서 누가 공부하다가 쓰러졌다고 그러면 내가 남은여생을 책임질게요. 열린 교회에서 책임질게요. 그리고 설교하러 올라갈 때는 성경을 탁 펴면 그 성경다음으로는 우리 목사님이 권위가 있구나! 저분은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우리에게 설교하고 있구나! 크게……. 하나 간신히 어디서 구해 와서 껍질을 까고 있다면 그것은 안 되고 설교하려는 것을 거의 알고 있다. 그 속에서 일부분을 지금 우리에게 쏟아놓고 있구나! 그리고 올라가서는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의지하면서 설교자하는 이 본문 속에서 그 하나님의 위대함을 발견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내 이야기를 잘 들어요.
내가 15년을 목회했어요. 내가 3,400번을 설교를 했대요. 그런데 설교 한편, 한편을 위해서 심혈을 쏟는 것은 좋지요. 그것은 참 좋은 것이지요. 그런 것은 나는 참 부끄럽지요. 설교 한편, 한편을 위해서 너무 많은 시간을 너무 많이 못 쓰니까요. 그러나 그것도 기본이 있어야지만 심혈을 쏟는 것이 의미가 있지요. 비유를 하자면 이런 것 아니에요? 푹 과야지만 진수가 나오잖아요. 그 뼈가 많아야 그것을 고울 때 무엇이 나오지 아니 개뼈다귀 하나 집어넣고 가마솥에 물을 붓고 24시간을 끊이면 맹물이지 그게 무슨 물이겠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의 단점은 뭐냐 하면 다음 주에 쓸 공부만 하려고 그러는 것이에요. 만약에 여러분들에게 그 시답지 않은 예화거리나 잔뜩 들어있고 자기실현주의나 펼치는 말하자면 선동하는 식의 내용들로 써 있고 반짝하는 아이디어나 나눠주는 그런 경건서적이나 끌고 학원을 왔다 갔다 하면 여러분들의 인생은 끝난 것이란 것이에요. 그것은 교회가 커진 다음에 비서를 시키면 되요. ‘읽고 좋은 예화가 있으면 찾아봐라.’ 그러면 되요. 그것을 하겠다는 사람은 평신도들 에도 많아요. 이 황금 같은 시간에 그런 것을 하고 앉아있느냐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것을 갖다가 그 다음주일날 학생회 예배나 수요예배에 올라가서 설교를 하고 눈길이나 끌려고 하는데 그 눈길을 받아서 무엇을 하려고 그래요? 설교를 할 때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깜짝 놀라서 쳐다보실 수 있게 설교를 해야지 성도들의 박수를 받아서 무엇 하려고 그래요. 그 박수 많이 받으면 잘려요. 그리고 설교를 할 때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사실 알고 있는 것처럼의 아니라 풍부한 것을 가지고 그리고 이런 것들을 쫙 해석해 나가야되요. 그리고 딱 덮고 내려올 때는 자기가 대가라는 증거를 버려야 해요.
여러분들 내가 양복을 입고 이것을 메고 오니까 여러분들이 웃었지요? 그렇지요? 주일날 수천 명이 예배당에 모여 있을 때 이게 내 폼이에요. 이것을 메고 깨끗한 양복을 입고 이렇게 하고 예배드리러 올라가요. 왜 올라가는지 알아요? 성도들과 주의의 사람들이 ‘목사님 그거 너무 안 어울려요.’ ‘신경 꺼라. 너나 잘해라.’ 올라갈 때 설교준비는 끝났어요. 무엇을 설교하면 몇 시간을 못하겠어요? 설교준비는 끝났어요. 올라가요. 하나님이 도와주시리라. 확신하고 이것을 메고 올라가요. 너는 대가는 아니다. 학생일 뿐이다. 설교를 해요. 은혜가 쏟아져 성도들이 주님을 만나고 막 감격해요. 성도들이 흐느껴 우는 어두운 예배당을 이것을 메고 나오면서 ‘나는 대가가 아니다. 설교하러 오기 전에 있었던 그 책상으로 나는 가는 중이다. 나는 고3이다.’ 여러분들이 흘려보내는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이에요. 그들은 허락이 안 되었고 여러분들은 허락되었어요. 어떻게 살아야하겠어요?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