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엄마 경건 세미나
오늘 이렇게 언제부터 제가 모이고 싶었는데 이제야 모였습니다. 우리 교회 와 본 분들 중에 놀라는 게 뭐냐 하면, 교회에 오면 사람들이 우리 교회는 거의 청년들만 모인 교회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고 지금도 6대 4정도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거든요. 출석을 기준으로 본다면, 장년이 300명에다가 450명 정도, 등록한 교인들을 기준으로 해서 본다면, 장년이 한 450명 정도 출석을 하고 청년들은 320명 정도 출석해요. 그러니까 압도적으로 장년이 많죠. 그런데 이제 전체 모인 것을 등록한 사람과는 상관이 없이 예배드리는 사람을 기준으로 보면 청년들 비율이 좀 높아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면 그런데 왜 사람들이 와서 다 청년들만 모인 교회처럼 생각하느냐 하면, 결혼을 했지만 워낙 젊어 보이니까 그러니까 여러분들을 보고 모두 청년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애를 둘 셋 이렇게 데리고 있는데도 청년같이 보이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대부분 청년이에요.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다 애기엄마들인데, 그런데 그게 얼마나 좋은 거예요. 그런데 이제 그러다가 보니까 이번 토요일에도 두 쌍이 결혼하거든요. 지난 토요일에 또 했고. 다음 토요일에 또 있고. 이렇게 계속해서 결혼을 하니까 시집, 장가가서 그 다음에 부지런히 아이를 낳는다 말이죠. 그래가지고 교회의 규모에 비해서는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애기엄마에요. 애기엄마. 이렇게 많아요. 이 애기엄마 한 명당 한명내지 세 명씩 딸렸는데 그 인원을 여기다 한 번 쫙 깔아 놓으라고. 어떻게 되는지. 여기가 꽉 차. 애기들 여기다 다 앉히면 다 꽉 찰 거예요. 그러니까 엄청나게 아이들이 많고 심지어는 어느 주간에는 광고를 해 달라고 올라왔는데 월요일 날 애기 낳고, 수요일에 애기 낳고, 목요일에 애기 낳고, 한 주간에 세 명을 낳았는데 딸, 딸, 딸 이렇게 낳아요. 그러니까 교역자들도 그렇고 직원들도 그렇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 놈들이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자라잖아요. 자라니까 뭐 가슴이 철렁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야. 뭐 계단에서 매달려서 대롱대롱 그러는 애들이 없나, 꼭 동물원에 철없는 원숭이들 그 돌아다니면서 날뛰듯이 뒤뜰에 가서 뭘 집어던지고 우장창창. 그 철문을 넘어 다니는 애들이 없나. 하여튼 위험스러운 짓을 다, 저 위에 올라가서 막 뛰어다녀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내 표현을 좀 이해를 하고 들으십시오.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짜증이 날 수도 있어요. 그리고 1층도 깨끗이 도배해 가지고 예쁘게 꾸며 놓았는데, 개발 새발 다 크레용으로 그려가지고 한군데도 아니고 돌아다니면서 그려가지고 다 버려 놓았어요. 그러니까 이게 좇아 다니면서 뒤치다꺼리 하려고 해도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얼마나 힘들겠어요. 교역자들이나, 직원들이나, 또 봉사하는 사람들이나.
그리고 이제 교회란 늘 그렇듯이 애기 데리고 교회 오는 사람들은 하여튼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어려움을 주잖아요. 우선 우리 같은 경우야 본당을 잘 보호하니까 그렇지만 애기 데리고 들어오면 막 울고 해가지고 옆에 사람이 예배를 잘 못 드리고 그리고 뭐 예배 끝나고 나서 주일 날 저녁 때 3층에 올라가면 지린내가 진동을 해. 그건 아마 애들이 거기다 대고 오줌 쌌을 리는 없고 오줌 기저귀들에서 나는 냄새인 모양이라. 그러니까 죽을 맛이죠. 뭐 아이스크림, 뭐 음료수 먹다가 흘려 놓아가지고 그게 달라붙어서 설탕이 녹아서 시커멓게 장판이 되고 하여튼 뭐 좇아 다니면서 뒤치닥 꺼리하려면 감당을 할 수가 없어. 그런데 내가 늘 하는 이야기인데 생각을 바꾸어 보라. 이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생각을 해 보라. 제가 노량진에 있는 어느 교회로 오후 예배 설교를 하러 갔는데, 딱 갔는데 내가 깜짝 놀란 게 뭐냐 하면, 설교를 하는데 예배당에 그저 한 300명 정도 모였는데 뭐 800명 정도 모이는 교회인데 오후예배 한 300명 모였는데 서리가 하얗게 내려. 전부 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야. 이런 청년 같은 주부들을 볼 수가 없어. 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야. 그래가지고 교회가 무슨 미래가 있느냐 말이죠. 그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 요즘은 정신이 하나도 없어. 저 자매 애기를 분명히 낳은 걸로 알았는데 아직까지도 안 낳고 이렇게 갖고 다녀. 그래서 아니 왜 안나. 그랬더니, 목사님 두 번째에요. 그래서 또 낳는가 하면, 시골 내려갔대. 왜 내려갔느냐 그러면, 애기 낳으러 갔대. 아니 애기 금방 낳았는데 무슨 애기를 또 낳냐 그랬더니, 셋째에요. 그게 얼마나 좋냐 이거에요. 나는 진짜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서 애들이 그러고 막 돌아다니면 너무 대견스럽고 신기해. 저것들이 살곰살곰 자라서 유아부,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이렇게 올라가잖아 .그래서 그 아이들을 좋은 신앙교육으로 잘 가르치기만 하면 이게 아주 훌륭한 선교에요.
그래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뭐냐 하면, 나는 이따가 질문 응답시간에 다시 얘기 하겠지만, 나는 그래요. 목회자로서. 여러분들이 자녀를 낳고 기르는 이 일에 대해서 아주 기쁘고 감사한 생각을 가져야 해요. 여기 오늘도 나와 있는데 어느 자매가 그래요. 목사님 여호와의 기업이 왜 이렇게 고달파요. 여호와의 기업이 원래 고달픈 거예요. 안 고달플 수가 없지. 우리들도 부모님들께 그런 고달픔을 안기면서 그 희생의 터 위에서 우리들이 이만큼 장성하고 성숙한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들이 우선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하면, 아이들을 데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힘겨운 이 위치에 대한 감사함을 가져야 해요. 그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에요. 제일 먼저 생각을 바꾸어야 할 일이에요. 목회를 하다 보면 때가 되었는데 애기를 못 낳는 부부들이 있어요. 내가 장본인 아닙니까. 7년 만에 낳았으니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다른 사람들이 보면 전도사님만 보면 얼굴에 수심이 끼었대요. 그 수심이 낀 것은 애가 없어서 생긴 수심이 아니라 등록금 낼 수심이에요. 등록금. 돈이나 좀 보태주지. 난 한번도 수심이 낀 적이 없는데, 날 쳐다보며 저기서 오다가 자기가 막 얼굴을 가리고 울면서 피해가는 거야. 아이 참 난 괜찮다는데, 그런데 하여튼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보는 거죠. 그런데 실제로 시집을 가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지 못하고 부모들은 간절히 원하는데 아이가 없는 집안은 얼마나 곤고하고 슬픈지 몰라요. 눈물도 많고 하나님 앞에 기도도 많이 해요. 그런데 그런 집안에는 제 때 아이를 안 주시는데 여러분은 아이 낳게 해 달라고 금식기도 한 적 별로 없어도 그냥 때가 되면 쑥쑥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주셨어요. 하나, 둘, 혹은 셋, 혹은 넷.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주시는 거예요. 이것을 감사하게 생각을 해야된다 이거에요, 첫째는. 나에게 그런 가슴 아픈 한나와 같은 기도제목을 주지 아니하시고, 이렇게 순조롭게 아이들을 낳아서, 그리고 아이들도 가만히 봐요. 태어날 때 잘못 태어나는 아이들 있죠? 그게 내 친구 목사 한 사람은 아이를 낳은지 벌써 13년 되었는데 태어날 때 잘못 태어났어요. 일어나지도 못하고 말도 못해. 그 누워있는 아이를 13년 14년째 양육을 하는 거예요. 얼마나 더 양육을 해야 할지 모르는 거예요. 이 부모의 마음에 한이 맺히고 응어리가 지는 거예요. 그런데 건강한 아이들을 주셔서, 아이 뭐 병원에 가끔 밤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건 그건 누구나 다 있어요. 그래도 하여튼 온전하고 건강한 아이들을 주셔서 양육하게 하셨어요. 얼마나 감사해요. 사랑하는 남편이 있고 가정이 있고 교회가 있고. 생각을 바꾸고 이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해요. 여러분들이 이렇게 자녀들을 기르는 일이 사실은 지금 목사가 하고 있는 일보다 더 클 수 있어요.
제가 존경하는 설교자 가운데 한 사람이 요한 크리스토스톰이라고 하는 그 희랍의 교부인데 어머니가 안투사라고 하는 여자였어요. 기독교 역사를 빛낸 한 서너명의 어머니 가운데 한 사람이에요. 20살에 혼자 되었어요. 그 시대에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 유혹이 말도 못했어요. 그런데 안투사가 오직 믿음 하나로 젊은날의, 나이 스물이니까 뭐 애들이지 그 나이에 그리고 명성도 있는 집안의 안여자였기 때문에 명문가에서 수많은 혼담들이 오고갔어요. 그렇지만, 다 거절했는데 그 이유는 오직 하나. 요한 크리스토스톰을 자기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잘 양육해야 한다 라고 하는 그 사명감이요. 결국은 그렇게 해가지고 그 어머니가 희생 끝에 그 아이 하나만을 믿음의 사람으로 양육하는 그 일에 헌신해서 결국은 그 사람은 기독교 역사에 길이 빛나는 아주 위대한 설교자가 되었어요. 그리고 그 때에 수많은 부패와 이런것들에 물들지 않고 순결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말씀을 전파하다가 순교했지요. 무슨 이야기냐 하면 그런 경우에 안투사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막 교회일을 열심히 하면서 뭐 살아온 사람도 아니었고 헌신적인 선교사의 삶을 살아온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 아이 하나를 길러서 기독교의 역사를 움직여 놓은 여인이 되었어요. 그걸 기억해야 해요.
웨슬레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지요. 19명의 아이를 낳았다고 하니까. 웨슬레가 철이 든 이후에 우리 엄마 배가 홀쭉한 적을 본 적이 없다. 무수히 낳았죠. 확신이 있었어요. 내가 이 아이들을 하나님의 확신으로 키워서 이 세상을 정복하겠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그러니까 이 처지를 하나님 앞에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기쁨으로 살아야 해요. 자식을 키우면서 힘들고 어떤 때는 뭐, 자모들이 얼마나 힘든지를 어떻게 아느냐 하면, 우리 아이들 키울 때 우리 집 사람이 볼일이 있다고 나가 있으면 내가 하루 종일 애들을 보잖아요. 죽을 맛이에요. 지금 보라는 것은 할만하죠. 하나는 이쪽 방에서 공부하고 또 하나는 저쪽 방에서 공부하고 아니면 마당에 가서 놀고 괜찮지요. 그러나 갓난아기 때를 봐 보라구. 그건 정말 힘들어요. 진짜 월급을 몇 백 만원을 줘도 못할 노동이야. 그런데 얼마나 힘드냐고. 그런데 그 일을 항상 이게 내 팔자야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힘들지. 그러지 말고 이 아이가 자라서 무엇이 될까. 내가 이 아이를 믿음의 사람으로 잘 키워 놓으면 그것이 한 교회를 목회하는 것 못지않게 하나님 앞에 훌륭한 봉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아이를 양육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해요. 적극적인 마음을 가져야 해요. 자라게 내버려두는 어머니가 아니라,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넣어주는 어머니가 되어야 해요. 네가 나에게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받을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내가 너에게 넣어주어야 되겠다. 그것을 통해서 아이가 신앙적으로 자라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아이를 기르는 것. 거기에 대해서 깊은 보람을 느껴야 해요.
그런 점에서 생각을 바꾸어야 하고 두 번째는 뭐냐 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어린 아이들을 양육할 때에는 영적으로 곤고해지기 십상이에요. 그 이유가 무엇이냐. 우선 첫째는 예배생활이 제대로 안돼요. 그래서 제가 개척교회 할 때의 일이에요. 죽겠다는 거라, 나한테는 감히 얘기 못하고 우리 집사람한테 사모님 저는 설교가 길어서 도저히 이 교회에 나올 수가 없어요. 아이하고 너무너무 힘이 들어서 예배드리고 갈 때면 파김치가 되요. 어떻게 목사님한테 말씀드려서 설교 좀 짧게 해 달라고 하면 안 되겠어요? 그러면 그 얘기를 우리 집사람이 와서 하지요. 짧게 해 달라는 이야기는 못하고 짧게 해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자기가 안 된다고 그랬다고 그래요. 그게 그 얘기죠. 그래서 내가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래서 두 번째 사경회였나 그랬어요. 개척하고 두 번째 사경회였어요. 그 때는 과감하게 과감한 결심이었어요. 학생들 두 명인가를 아르바이트를 사서 그래서 아이들을 떼어서 그래서 교육관에서 데리고 놀게하고, 그리고 어머니들을 자모실에 있는 어머니들을 몇 명을 본당으로 나오게 했어요. 그리고 앞자리를 비워주고 그동안 굶주렸으니까, 내 이 사람들에게 좀 특석을 주자. 그래서 설교 듣기 제일 좋은 앞자리를 비워 주었어요. 사경회 때 설교를 얼마나 길게 했겠어요. 보통 짧아야 두 시간이고 길면 두 시간 반 까지 갔는데 그 자매가 은혜를 듬뿍 받았어요. 그리고 나서 그 자매 하는 얘기가 사모님, 정말 신기하네요. 유아실에서는 그렇게 길고 알아듣기 힘들고 그렇게 지루하던 설교가 본당에 나와서 들으니까 이렇게 짧고 재미있네요. 그리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은혜를 받고 집으로 갔어요. 그러니까 예배생활이 얼마나 힘드냐 이거에요. 그리고 또 하나 뭐예요. 기도생활을 못하잖아요. 아이 데리고 있는데. 그게 왜 그런가 하니, 얘야 자자 그러고 불 끄면 애가 같이 자고 넌 좀 더 자라. 엄마 기도하고 올께. 하면 그 때 깨면 좋은데 그러면 그게 로봇트지 어디 어린애냐 이거에요. 이거는 낮에 애 잠 재워놓고 그냥 미친 듯이 살림하고 일하고 해서 낮에라도 눈 붙일라면 빽~하고 일어나서 놀자네. 그러면 못 자지요. 그럼 밤에 또 일찍 자나 또 안 자지. 저는 낮에 실컷 퍼 잤으니까. 그리고 몇 사람 상담을 받았어요. 그래서 전 애 데리고 오면 제일 먼저 애가 순하냐 하고 물어 보지요. 순해요. 그러면 다행이다. 밤에 잘 자냐, 밤에 잘 먹냐. 꼭 물어봐요. 밤에 잘 안자요. 그럼 내가 방법을 가르쳐 줄 테니까 밤에 꼭 재워라 어떻게 하냐 그래서 저녁 때 3시 이후에 자려고 하면 하여튼 못 자게 해라 그리고 저녁 때 남편이 퇴근하면, 통에다가 뜨거운 물을 부어서 약간 좀 뜨끈뜨끈하게 해서 사우나를 시켜라. 집어넣어서 약간 뜨거운 기운이 있게 해 가지고 나오기 싫다고 울 때까지 거기다 집어넣어라. 그래서 기운을 쭉 빼라. 그 다음에 우유를 될 수 있으면 먹이지 말고 절제했다가 이제 거기서 퍼지게 목욕을 하고 나왔을 때 그 때 우유를 진하게 타서 먹여라. 그러면 이제 식곤증이 와서 자지 않겠냐, 그것도 안 되면 상추잎이라도 갈아서 먹여라. 그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러분들은 웃는데 이게 웃는 사람들은 이게 어린애 엄마가 아니야. 그지? 컸지요? 뭘, 웃음이 나온다는 거는 아직 연단을 덜 받았어. 기도제목이야, 기도해야 돼. 왜냐하면 엄마가 경건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선 애가 리듬대로 생활을 해주어야만 돼. 근데 이게 참, 하여튼 그렇게 아이가 일찍 잘 잘 수 있도록, 그렇게 기도해 주어야 되거든요. 그런데, 우리도 애를 길러보면 말이죠. 큰 애는 얼마나 순둥이였는지 이렇게 엎어 놓으면 혼자 누워서 벙글벙글 웃으면서 하루 종일 노는 거예요. 나중에는 보채기는 합니다만. 밤에도 그냥 우유를 먹겠다고 이제 낑낑 거리쟎아요? 그러면 우리는 머리 맡에다가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고 이제 잔단 말이에요. 그러다 낑하고 울면 누가 일어나던지 눈 비비고 일어나서 이쪽에 따라 놓은 우유 집어넣고 물 집어넣고 막 잠자면서 그냥 흔드는 거죠 그러다 보면 250cc, 아 눈금도 안 봐. 볼 것도 없어. 왜냐하면 그런 거 하곤 갠 상관이 없으니까. 누크 젖꼭지에다 껴서 아이를 먹이는데 막 짜증을 내는 거야. 왜냐하면 먹성이 좋아가지고 태어날 때 4.2킬로 였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얼마나 잘 먹는지 그냥 사정없이 젓가락으로 누크 젖꼭지를 뚫어가지고 이렇게 내며는 주르륵 흐르게 만들어서 탁 집어넣으면 쫙 하고 빨아. 그리고는 그냥 쭉쭉쭉 빨아. 그 소리에 맞춰서 스르륵 잠이 드는 거죠. 엄마든 아빠든 자는 거죠. 한참 있다가 뿅 하는 소리가 나요. 왜냐하면 이제 애가 계속 빠는데 한통을 다 먹었는데도 성이 안차니까 계속 자면서 빠는 거야. 그러니까 이제 속에 있는 공기를 다 빨아가지고 진공상태가 되는 거야. 그래서 애가 이쪽에서 하두 잡아 당길 것 아니야 진공이니까. 탁 놓으면 젖꼭지가 뿅 하면서 들어가는 거야. 그래서 깜짝 놀래서 깨는 거지. 한번은 타가지고 탁 꽂아 주었는데 아이가 빨지를 않고 막 울고 낑낑대. 그래서 왜그러나 그랬더니 잠결에 콧구멍에 갖다 댄 거야. 우리 애들은 그런 면에서 참 큰애는 보탬을 주었죠. 그런데 요 둘째는 수시로 깨는 거예요. 예민해서. 어느 집에는 아예 자모가 노이로제에 걸려요. 아이가 30분을 안잔데. 그리고 밤새도록 깨는 거예요. 낮에 잠깐 퍼 자고, 그리고 밤에 또 그러는 거예요. 그걸 서너 달 하고 나면 완전히 피골이 상접해져요. 기도해야 된다니까. 아이들이 건강하고 리듬에 맞도록. 그 아이 자신에는 그게 좋겠느냐구요. 그런 애들은 살이 안 붙죠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이에게도 안 좋거든요. 그러니까 아이가 그런 리듬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돼. 반면에 내가 아는 형제 한사람은 아이를 낳는데 그 백일쯤 되었나. 그런데 밤에 우유를 안준데. 그러면 그거 육아 상식으로서는 안 되는 것이거든요. 아이가 밤에 먹어야 되는데. 그리고 안 먹는 애가 어딨어요? 우유를 조금씩 먹는데. 그런데 애는 한번 곯아 떨어지면 8시간을 자야지 눈을 뜬데요. 중간에 줄려고 그래도 깨지를 않는데. 그 정말 복 받은 집이에요. 그래서 밤에 일어나는 걸 모른단 말이에요. 거의. 오줌을 싸도 아이가 감각이 떨어져서 그런지 그냥 잔다는 거예요. 이런 집은 한 30%는 이미 이득을 얻고 돌아가는 거예요. 우선 밤에 엄마가 푹 자 쟎아요. 자모가.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그런 환경을 위해서 기도를 해야 되요.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지혜도 필요하다 이거예요. 지혜도. 내가 그렇게 조언을 해주었더니 덕을 봤다는 사람들이 가끔 나와요. 진짜로 실천을 해본거야. 한 세시 넘어서부터 아주 심하게 잘라고 그러면 못 말리지마는 잠을 될 수 있으면 안 자게끔 데리고 놀고 저녁때 밥 먹고 나서 8시쯤 되어가지고 남편하고 뜨듯하게 물을 데워가지고 처음부터 뜨거운데 집어넣으면 튀기니까 처음에는 그저 웬만하게 해 놓고 살금살금 더운 물을 한컵씩 부어가지고 물의 온도를 높여주는 거예요. 그러면 열을 받으니까 혈액 순환이 빨라지쟎아. 땀도 나고. 그래서 거기서 마음껏 아이를 휘젓고 놀게 하는 거예요. 그렇게 놓고 그다음에 쓰러트려 놓으면 기가 막히게 잔다 이거야. 목욕하고 나면은 곤하쟎아요. 그런 기도와 지혜가 필요하다는 거죠.
그러니까 기도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그죠? 새벽기도는 뭐 꿈도 못꾸죠. 어떻게 새벽기도를 나와. 나오면 누가 또 애를 볼 것이며 남편이 봐준다고 하더라도 새벽에 기도할 시간이 있으면 자야지. 밤에도 몇 번을 일어났는데. 그렇지 않아요? 너무 힘든 거예요. 그렇게 난리를 치고 남편 출근시키고 나며는 애 하나는 좀 나은데 둘되면 어질러 놓은 것 치우다 보면 벌써 한 나절이 다 가 쟎아요. 예배 참석하는 것만 해도 진짜 (?) 이죠. 말씀 생활 이건 더 어렵죠. 그죠? 기도 생활은 어떻게 좀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도 하는데 말씀 생활은 아이들이 기어오르면서 성경을 찢으니까 말씀 생활은 말할 것도 없고 옛날에는 그래도 일주일에 한 편씩 문서 선교부에서 테잎이라도 사다가 들었는데 90분동안 100분동안을 어떻게 방해를 안받고 그것을 들을 시간이 있느냐구요. 없쟎아요. 그런데 보세요. 사정이야 이해가 가지만 있는 건 있는 거고 없는 건 없는 거예요. 예배를 통해서 거의 영혼의 유익이 없지요. 그리고 또 기도생활 거의 못하지요. 말씀생활 거의 못하지요. 그렇다고 해서 또 봉사도 올 스톱이지요. 대부분. 그죠? 그러니 뭐 그 일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헌신하는 가운데 뭔가 좀 채워지는 것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그것도 없지요. 그런 상황이니 얼마나 곤고해 지겠느냐구요. 그러데 그게 몇 년을 가느냐구요? 10년을 가는 거예요. 10년을. 아이 갖고 나서부터 방해받기 시작 하쟎아요. 피곤하고. 그리고 나서 아홉 달이지만, 열 달 좀 안되지만 일년치고 일년 후에 아이를 낳아요. 그죠? 하나, 둘, 셋, 그리고 조금이라도 자기가 자유로워 질려면 네 살되어서 유치원에 가서라도 한 세시간 있다 올 정도면 조금 자유로와 질거에요. 그죠? 그러면 벌써 5년이쟎아요. 그 사이에 아이가 또 태어나는 거예요. 1년 겹친다고 치고 다시 3년 치면 봐요 7년이에요. 둘 낳아도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와지기 위해서는 7년 내지 8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고 셋을 낳는다고 그러면 10년이라구. 그동안에 영적인 어떤 그 흠뻑 젖는 은혜를 가끔을 맛볼지 모르지만, 하여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고갈된 상태에서 사는 사람들이 태반이예요. 태반이라구. 그러니까 그리고 낳아가지고 빨리 아이들을 키워야 될텐데. 뭐가 좋은게 있어요? 그렇게 해서 10년동안 해가지구 애들 빨리커서 세 번째 낳은 아이까지도 대 여섯 살 되며는 그땐 훌쩍 넘어서 이제 늙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게 뭐야 좋은 일이 있느냐구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어떤 이 경건 생활과 그리스도인의 어떤 그 은혜와 사랑에 넘치는 믿음생활 이런 거에 대해서 아이 가지고 있는 동안에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살아가는 부모들이 많아요.
여기에서 몇 가지 유형이 나타나는데 우선 첫째는 뭐냐 하면 환경 순응형이야. 그래서 뭐냐 하면 이제 뭐 큰 감사도 없지만 불평도 없이 그냥 애들아 나 잡아먹어라 그리고 넙죽 엎드려서 그냥 사는 거예요. 꾸역꾸역. 환경 순응 형이에요. 그다음에 두 번째는 뭐냐 하면 불평불만 형이에요. 그런 형은 뭐냐 하면 아이 낳고 경건생활을 못하니까 짜증이 나고 성질을 내면서 남편하고 많이 부딪치는 거예요. 아주 히스테리 해져가지고 남편하고 막 싸워요. 그러니까 남편도 아이를 보면서 별로 기쁘지가 않아. 왜냐하면 저 기업이 태어나기 전에는 우리사이가 그래도 좀 달콤했는데 저 기업이 태어나고 나가지고는 이 아내는 사라져 버린 거예요. 보모만 하나 생겨가지고 완전히 신경질 내는 보모만 생겨가지고 그 10년을 가는 거예요. 부부사이에도 중대한 문제가 생기죠. 그걸 잘 못하면 그렇게 된다 이거예요. 그 다음에 뭐냐 하며는 환경극복형이에요. 그게 뭐냐 하면 내가 이 상황이 한달이나 두 달 만에 끝나 버릴 것 같으면 어떻게 엎드려서 기다려보겠는데, 이건 길면 10년이고 짧아도 하나만 낳고 딱 끝난다 하더라도 4년은 걸린다 이거에요. 4년 내지 5년은 기다려야 하는 거야. 내가 그 동안에 내 믿음생활을 스톱할 순 없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막 극복하려고 애쓰는 형이에요. 그런데 그런 자매들 보면 그 정말 믿음이 뭔가 하는 것을 깨닫게 돼. 가슴이 몽클해요. 그게 뭐냐 하면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 앞에 싸우려고 애를 쓰는 거죠.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어떻게든지 애를 쓰는 거예요. 새벽에 남편한테 아이를 잠깐 부탁하고 새벽기도에 달려오는 형이라든지. 웬만큼 곤고해가지고 그걸 하겠어요? 얼마나 곤고했겠느냐고. 매일은 못하죠.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저히 새벽에 안 되니까 낮에 집안일을 미루더라도 아이를 업고 오는 거죠. 교회에 오죠. 그럼 또 신기하게 하나님이 아이들 잠들게 하시는 적이 있어요. 그러면 옆에다 가만히 눕혀놓고, 우리교회처럼 사실 경건생활을 하기 좋은데 없어요. 20시간을 열어 놓잖아요. 그리고 언제나 오면 조용한 음악이 흘러. 누구 아무도 방해하는 사람 없어요.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기도하는 거 내가 못하게 하거든요. 언제든지 낮에 오면 최상의 기도 환경이에요. 누구 눈치 주는 사람도 없고. 아이 옆에다가 눕혀놓고 자기는 거기 엎드려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거죠. 그게 환경극복형의 모습이야. 신앙으로 환경을 극복해 보겠다는 모습이에요. 그래서 어떨 때는 와서 기도하다가 너무 고단하니까. 조용하지요. 또 서늘하지요. 그러니까 자지. 자다가 가도 그 사정을 주님이 아시지 않겠어요. 그렇게 극복하려고 애를 쓰는 형이에요. 여러분들은 어느 형에 속하고 있는지 보라고. 정말 아이 낳기 전에 주님 만나고 은혜의 감격을 누리던 그 심성. 아직까지도 간직하고 있느냐고. 가정적으로도 여러분은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해요. 그렇죠? 자녀들이 그렇게 표독해져서 성질충만한 엄마로부터 뭘 물려받을 수 있겠어요. 남편에 대한 원망이나 자식을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으로 성질이 머리끝까지 뻗쳐있는 것이 하루에도 몇 번씩 계속되는 그 어머니를 통해서 아이가 무슨 정신적이 자양분을 공급받겠느냐고. 그리고 다들 여자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해서 그렇지. 저는 첫 아이를 낳을 때 7년 만에 낳았거든요. 아이를 낳았을 때 제 나이가 서른 둘인가 셋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종가집에 종손이었고 그런 상황이었으니까 아이를 낳았을 때 얼마나 기뻤겠어요. 사람들이 날 쳐다보면서 전도사님은 매일 밥 안먹어도 배 부르고 싱글벙글한대. 난 솔직히 말해서 지금 우리 아이가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나 하나도 안 기뻤어요. 사는게 너무 고달프고 힘들어가지고. 우리집 사람은 수술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해산간 해주는 사람도 제대로 없어가지고 그 잠깐 2주일인가 얼마 집에 가 있는 동안에도 힘들게 있다가 와 가지고 내가 겨울방학 때. 교회사역은 뭐 애기 낳았다고 휴가를 줘요. 뭘 줘요. 그 무슨 인정이 있어요. 할 일 다 해야지. 공부는 또 해야죠. 시험은 시험대로 있지요. 얼마나 가난했는데. 세탁기도 없었어요. 세탁기. 그것을 이렇게해서 들어가는 지하실 방이었는데 까치발을 뜨면 유리창이 머리에 닿는 그런 집이에요. 그러니 얼마나 내려가. 부엌이 두 사람이 서면 몸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가느다란 부엌인데 거기서 아이 기저귀 그것을 빨아가지고 거기서 주물러가지고 거기서 끓여서 해서 널어서 그렇게 한 달 했는데 아~ 진짜 하나도 안 기뻐요. 내가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여러분은 아이를 양육하느라고 너무 힘들고 고달픈데 남편도 동일하게 고달프다 이 얘기에요. 직장에서 소진하고 직장에서 성령 충만해서 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무슨 사장이 목사도 아니고 그리고 집에 돌아와 가지고는 뭔가를 쉬고 싶고 좀 뭔가 채움을 받아서 가고 싶은데 따뜻한 아내의 배려가 있어요. 들어나면 똥 기저귀부터 시작해서 줄줄이 사탕처럼 기다렸다는 듯이 여보 저것 좀 해 이것 좀 해, 그걸 치다꺼리 하고 드러누워 자면 밤이면 이 놈 안자고 반 이상 똑같이 시달리면서 그러고 사는 거예요. 남편도 함께 고갈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 가정이 가정답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누가 에너지를 주겠어요. 아내는 아내대로 경건생활 못해서 고갈이 돼. 남편은 남편대로 힘들어서 고갈이 돼. 그 갓난아기가 안수기도 해 주겠어요? 그 갓난아기한테 뭘 기도하겠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이거죠. 절대로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주시지 않는 시험이라고는 없어요. 이건 뭐 시험도 아니지만, 피할 길을 주시지 않는 환경은 없다고. 정말 성령 충만한 가운데 그렇게 신앙생활 하는 아기 부모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거에요.
그럼 크게 세 번째로 그럼 구체적으로 대안이 뭐냐. 우선 첫째는 예배생활을 통해서 어찌하든지 영혼의 유익을 받고 돌아가야 된다 이거죠. 음? 그러면 그런 상황인데 어떻게 그러면 예배생활을 통해서 은혜를 받을 수 있겠느냐 이거죠. 그것은 말이죠. 어, 우선 아이는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첫 번째는 아이가 떼어놓을 수 있을 정도의 아이가 되며는 기도 많이 하고 지혜롭게 해서 어떡하든지 아이를 떼어 놓아야 돼. 그러니까 내가 이야기하는 건 뭐냐 하면 어 기도하고 하면서, 그렇다고 또 그냥 무조건 아이를 울던지 말던지 그렇게 해서 또 아이에게 심성에 상처를 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지혜롭게 해서 기도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훈련을 해. 예를 들자면 자모들은 특별한 위치에 있어요. 어쩔 수 없거든. 그러니까 예배 시작할 때, 올라와서 기도하고 아이 데리고 같이 내려가 아이하고 같이 거기서 있으라고. 설교만 올라와서 들어도 낫잖아요. 그것도 반쪽자리 예배지만 그래도 어떻게 해 응? 다 못 드리는 것 보단 그래도 그게 낫잖아요. 무슨 지혜든지 동원해서 이 예배에 잘 참석을 해야 하는데 첫째는 떨어질 수 있는 아이들은 떨어뜨리라. 내가 여러분도 몰랐잖아요. 매주 여기서 떨어질 수 있는 아이들이 안 떨어지고 예배드리는 게 몇 명인지 매주 내가 명수를 보고를 받아요. 거 왜 그러겠어요? 아이들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에게 관심이 있는 거죠. 유치원 나가자 마자 제가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이 뭐냐 하면 교구 다 끌어내고 저건 전부다 다 유아들 줘야 된다. 지금도 계속해서 방을 수선을 하고 고치고 있는데.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런데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이건 시설적인 요인이 중요해요. 시설적인 요인이. 그러니까 아무리 자모들이 노력을 한다고 해도 시설자체가 안 좋으면 안돼. 그래서 뭐 우리 교회만 잘났다고 내가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데 가보면 참 답답하게 시설을 해놨어요. 어떻게 해놨나 하면 교회당을 잘 지었는데 유아실을 한 30평 해가지고 크게 만들어 놓은 거야 마루를 놓고. 그것도 왜 마루를 놔. 뛰니까 쿵쿵쿵쿵 그러고 울리는 거예요. 그런 게 그게 거기서 예배가 되냐 이거에요. 아이들이 뒤에서 막 그 난리를 치고 떠드는데 저렇게 작은 방이 여러 개가 있어야 돼. 응? 뒤에다가 하면 더 좋은데, 어쨌든 작은 방 여럿 있고 아이고 여건만 되면야 한 가족이 한방에 들어갔으면 난 좋겠어. 아니 내 그 생각까지도 했다니까. 한 가족이 한 방에 들어갔으면 좋겠어. 그런데 내 뭔 생각을 안했는지 알어? 시설 지금 오늘도 박순례 전도사가 자모들 건의사항 그리고 가지고 왔는데 내 다 들어준다고 그랬어. 다. 그래서 일층에다가 그 어린아이 3~4세까지 놀 수 있는 그 놀이랜드도 아래층에다가 기구 사가지고 얼마나 되든지 간에 해서 그네니 미끄럼틀이니 뭐 볼풀이니 해가지고 만들어 줄테니까, 아이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게 해주고 그것도 뭐 중고 사자고 가지고 왔는데 그 아무거나 사면 안 되요. 왜 그러냐하면 이 장난감 제품은 아이들이 100% 입을 대고 빨아먹어. 그래가지고 이런 점에 있어서 아주 좋은 외제나 메이커 제품이어가지고 FDA 같은 그 위생검사를 다 거쳐가지고 뭐야 이거...아이들이 빨아먹어도 안전한 거. 왜 크레용 같은 거 보면 좋은 회사에서 나온 건 먹어도 문제가 없는, 물론 먹는 건 아니지만 먹어도 아이들에게 해가 되지 않게. 100% 쟎아. 옷도 보면 이거 아이들 빨아먹으면 안 좋거든요. 그런데 이게 빨아먹어도 안전한 옷들이 나온다고. 그러한 규격들을 다 거친 제품들을 비치가 되어야 된다고. 아이들이 뭘할지 모르니까. 안전하고. 그래서 제대로 메이커가 있는 무슨 뭐 리틀 타익스 최고급 제일 좋은 제품들로 중고 필요없다. 새거를 알아봐라. 새거를. 돈이 들더라도. 그렇게 해가지고 최대한 시설을 해 줄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지금 저기도 지금 내가 하루에 한 번씩 돌아보면서 저거 저 테레비 단 거는 그냥 시작이고 어떻게 하든지 저거를 같다가 깔금하게 정리를 해서 다시 해서, 그래서, 자모들이 정말 기쁨으로 거기에서 아이들이, 환경적으로 아이들이 존중을 받는 느낌을 받으면서 시설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 한다고. 시설적인 도움이 절대 필요해. 그래서 저렇게 작은 방을 만들어서 누워있는 아이, 앉아있는 아이, 뛰어다니는 아이, 걸어 다니는 아이 해야 되는데, 그저 거 누워있는 아이도 아니고, 앉아있는 아이도 아니고, 걸어 다니는 아이도 아니고 날치고 뛰어다니는 아이를 거기다 놔가지고 그 문 쾅쾅거리고 닫고, 뛰어다니면서 온갖 방해를 하는 거예요. 그거는 안 된다고. 그건 어떡하든지 부모가 이 그 예의 첫 번째 초점은 뭐냐 하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거예요. 설령 은혜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것이 예의에 기본적인 거란 말이죠. 덕을 세우는 생활의 기본이에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그렇게 해 가지고 교회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내 솔직히 말해서 지금 얘기지만 여기 이사 가는 것 확정 안 되었을 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돌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옥상에다 2,500만 원짜리 키즈랜드를 만들려고 그랬다고. 이게 내 구상이었어요. 절대 안전하게 만들어서 미끄럼부터 시작해서 풀장, 모래사장, 마지막에 아이들 샤워까지 할 수 있도록 해서 아이들을 거기 올려다 놓기만 하면 아이들이 엄마가 생각나지 않는 그런 시설을 하려고 했다고. 할려고 그랬다 하니까 말빨이 안서지만, 그게 내 마음이에요. 저쪽가면 한다고. 그게 얼마나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아이들이 주일이면 엄마 손 잡고 교회 가고 싶다고 하는 그런 교회가 돼야지.. 그런 시설적인 후원을 아끼지 말아야 된다 이거에요. 그런데 그게 확확하면 좋겠지. 그런데 돈이 들어가고 다른 건물들과 유기적인 관계도 있으니까 늦는 것은 아이디어가 없거나 생각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여러 가지 입체적인 생각을 하니까 자꾸 늦는 거예요. 돈도 그렇고. 그래서 지금 어떻게든지 다시 또 돌아보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여기서 쾌적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해서. 그래서 저 TV도 제일 좋은 거 29인치짜리 사가지고 그 얹어 놓은 거예요. 그 브락켓도 높이 달아주는 게 좋겠다, 그래서 15만 원짜리 사가지고 그것을 간사들이 1주일 내내 작업을 해서 달아 준 거예요. 돌아가면서 보고 그래요.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 편의롭게 어떻게 하고 싶고 들어왔을 때 기분 좋은 공간이 되어서 아주 쾌적하고 편안하게 예배드리고 싶어요. 환경적으로는 에어컨이건 뭐건 간에 하여간 최대한 하여튼 신경을 쓸려고 애를 써요. 할 수 없는 건 몰라도 할 수 있는 건 하려고 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그건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서는 내가 저기가 보이지가 않으니까 뭘 하고 있는지 모르거든요. 그런데 지하실 교회에 있을 땐데 내 얼마나 마음이 상했는지 몰라. 유리창에 이렇게 보면 설교를 하면서 보인단 말이에요. 환경이 안 좋으니까 본인 자신이 예배에 집중하려는 노력은 배는 더해야 되거든. 배를 해도 설교가 자꾸 끊긴다고. ‘엄마 오줌쌌어. 똥쌌어. 뭐...과자줘, 우유줘, 또 목말라’, 얼마나 애들이 많이 보채요? 그러니까 자꾸 끊어지거든. 그러니까 배는 더 집중을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처음에는 그럴 려고 애를 쓰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중에는 어떻게 되냐 하면 어차피 여기서는 예배를 못 드린다. 그런 생각을 아예 가지고 있는 거예요. 하루는 설교를 하는데 지금은 다 우리 교회를 떠났습니다만. 아이가 가만히 노는데, 놀면 한 구석에 놀도록 내버려두고 자기는 설교를 들어야지, 난 설교를 열심히 하는데 아이 데리고 왜 잘 노는 아이를 데리고 거기서 깍꿍 깍꿍 그걸 하느냐고. 가만히 잘 놀구 있구만. 깍꿍깍꿍거려. 그러더니 새우깡 집어서 애 하나주고 자기도 먹구, 그러다가 가는 거야. 그러든 사람이 본당에서도 그렇게 예배를 드리면 유익을 받겠어요? 시설의 문제만을 가지고는 안 된다 이거요 결론은. 본인이 정신력을 가져야지. 저희 집사람이 유아실 출신 아니요. 개척할 때 우리 이슬이가 백일쯤 되었었나, 얼마쯤 됐었나? 모르겠다. 하여튼. 뭐 그랬었거든요. 업고 다니면서 했어요. 결론은 뭔지 아세요? 여러 달을, 일년 이상을 거기서 예배를 드린 다음에, 결론은 뭔지 아세요? ‘여보 유아실에서 자기가 마음을 강하게 먹으면 얼마든지 은혜를 받고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이게 결론이에요. 우리 애가 특별히 나은 애였나? 아니거든요. 하도 날치고 떠들면 탁 포대기에다 싸서 손까지 집어넣고 딱 묶고 그리고 일어서서 서성거리면서도 말씀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며 은혜를 받을 수 있었더라 이 얘기에요. 유리 제일 앞에 딱 무릎 꿇고 앉아서 나는 아이들을 가지고 있고 뒤에도 시끄럽기 때문에 배나 더 집중하지 않으면 나는 말씀을 놓친다. 생각을 가지니까 방해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유아실이기 때문에 도저히 예배를 통해 영혼의 유익을 받을 수 없다, 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확신을 가지고 본인이 얘기를 해요. 그러니까 목사인 나는 진짜 아낌이 없어. 내가 없으니까 그렇지. 진짜 아낌없이. 내가 이 건물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면 나는 만들고야 말아. 내가 어떻게든지 재직들 설득해서 특별헌금이라도 해가지고 2500만원가지고 안되면 한 사오천 만원 들여서라도 아이들이 입장료 5,6천원을 내도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의 환상적인 공간을 만들려고 했어요. 거기 쾅쾅 울려도 안 다치게끔 매트 다 깔아가지고 완전히 만들어가지고 위에다 씌우면 되잖아요. 비닐 같은 것 씌우면 되잖아요. 그래서 겨울에도 아이들이 거기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끔 말이죠. 그렇게 만들려고 그랬어요. 낮에는 뭐, 여름에는 뭐 더 말할 것도 없고. 진짜 전 여러분들을 위해서 쓰는 것이 너무 기쁘고 그리고 조금도 아깝지 않아요. 거 왜 그러냐 하면 오죽했으면 어느 생각까지 했냐 하면 내 거기까지, 용산 까지 나갔었어요. 하두 아이들 때문에 설교에 집중을 못한다고 그래서 헤드셋트를 살려고 나갔어요. 것도 줄이 있으면 애들이 줄을 잡아 댕기니 되겠어요? 줄 없는 헤드세트. 우주인처럼 쓰고 그리고 아이 젖 먹이면서라도 들을 수 있는 것. 그 정도의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보세요 그렇게 돈을 투자하고 어떻게 하겠냐 하는데. 문제가 안돼. 그 까짓껏, 사오천만원 아무것도 아니야. 왜냐하면 자모들이 은혜를 받고 에너지가 넘치면 남편이 평안해서 신앙생활 잘하고 은혜 받을 것 아니야. 그 은혜 받아가지고 감사헌금 천만원씩 네명만 하면 해결이 돼. 해결이 되요. 은혜는 불가능한 것을 해결되게 하는 거에요. 그걸 기억을 해야되는 거에요. 거의 모든 구조가 어디에다 맞추면, 경영적인 측면에서도 교회가 어디에다 초점을 맞추면 개선이 되냐 하면, 성도들을 은혜받게 하는 그 일에 아낌없이 투자를 하면, 경영전략상으로도 해결이되요 그게. 은혜 못 받은 사람 100명이 헌금해봐야, 1000원씩 아껴서 헌금을 하면 100명이 모아봐야 10만원 밖에 안되요. 은혜 받아보세요. 이것도 은혜받은 사람이 천 몇백만원 내놔서 만든 것 아니요. 에어콘 이야기 했더니, 내가 에어컨 한대 사놓겠습니다. 내가 45평형 에어컨 새거 있는데 교회에 내겠습니다. 뭐, 수없이 나오는 거에요 이렇게. 문제가 아니라고. 제가 유치원이 이사가자 마자 돈 오백만원인가 들여가지고 전부다 수리 했쟎아요. 그 미친짓 아니에요? 11월이면 이사갈 텐데. 근데 아니라는 거예요. 거 왜,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열달동안 그속에서 영혼들이 유익을 얻쟎아요. 쓰고 버리고 가도. 한달에 80만원 유익이 안나오겠어요? 새가족반에 불러다 놓고 시설이 없어서 제대로 공부할 수 없는 사람을 환하게 하고 깨긋하게 해놓고 거기에서 은혜를 받은 사람이 거기서 변화가 되어서 감사해서 백만원씩 헌금 다섯명만 하면 본전이 나온다구. 물론 본전 바라구 그걸 한는 것은 아니지. 무엇이 유익이겠는지 한번 생각을 해보라 이거죠. 그러니까는 그런 정도의 투자는 나는 정말 아깝지 않아요. 정말 내 심정으로는 한달에 천만원을 투자해서 자모들이 은혜를 받고 돌아갈 수있다면 시설로 해결을 해야된다고 할 것 같으면 나는 그거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문제가 아니라 이거야. 환경을 허락을 안하니까 그렇지. 문제가 아니라. 대출을 받아서라도 해야 한다 이거지. 그래서 이거 헤트세트까지 사러 갔었어요.내가. 거 뭐 한 삼십개만 사다 놓으면 될 것 아니에요. 뭐 하나에 6만원인가 7만원 달라는데. 7만원이라 그래도 30개면 200만원이쟎아요. 그래 무슨 이야기냐 하면, 본인이 집중할려고 애를 써야 된다. 저 테레비도 다시 추가 장치를 하는데 이 저 볼륨이 상태가 안좋아요. 분배기를 달아야 된데. 그럼 아주 청아하게 나오고 그리고 음량을 그 안에서 조절을 할 수 있어야 되. 설교가 올라가기도 하고 찬양이 크게 나오기도 하고 그러니까. 거 할려면 분배기 있어야 된다. 당장 달으라고 그랬어요. 내가. 물어볼 필요도 없다. 그렇게 해가지고 환경적으로 최대한 개선을 하고 근데 그것만 가지고 안되고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다. 의지가. 의지가 중요하다. 내려보낼 수 있는 아이들은 내려보내고, 기도하고. 타일르고 뭘 사주고 무슨일을 해서라도 아이들을 내려 보내서 설교만큼을 제대로 들을 수 있게끔 확보를 하고 그래도 안되는 경우에는 아이들을 딱 데리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려고 애를 써야 된다 이거죠.
그리고 또 하나는 뭐냐 하면 그... 자기 아이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너무 많이 주면 안 되요. 자기 아이를 자기가 딱 관리를 해야 된다고. 품에 넣을 수 없는 아이들은 할 수 있으면 내려 보내고 그리고 품에 넣을 수 있는 아이는 딱 품에 안고, 그리고 자기 때문에 방해를 받지 않도록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경건을 배려해 주어야 된다. 그렇게 해가지고 예배를 통해서 유익을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해. 하여튼 뭐든지 이야기를 하세요. 시설 면에서 하여튼 부족함이 있다면 뭐 이걸 당장 떼려 부수고 뭐 어떻게 하자는 건 못하겠지만 있는 환경 내에서는 내가 최대한 할 테니까 뭐든지 애기를 하라고 오늘도 이것 끝난 다음에 그룹토의 모였을 때 그때 건의사항을 다 이야기를 해요. 타당성만 있다고 생각을 하면 뭐든지 할 용의가 있으니까. 그렇게 해가지고 자기 아이를 관리하면서 말씀을 집중 할려고 애를 써야 되요. 여러분들이 실제로 말씀을 놓친다 그러는데 보세요! 진짜 어쩔 수 없이 말씀을 놓치는 게 얼마나 되는지 한번 생각을 해봐요. 자기가 정말 들으려 하는 의지를 가지로 있는 가를 한번 생각해 보라 이거요. 그렇게 해가지고 어떡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은혜 받을려고 하는 그런 갈망을 가지고 그렇게 은혜생활을 해나가야지. 십년을 어떻게 기다리느냐, 오년을 어떻게 기다리느냐 이거에요. 죽은 자와 같이 신앙 생활하는 그걸 어떻게 기다리느냐 이거에요. 그건 안 된다 이거죠.
또 하나는 뭐냐 하면 아빠들을 훈련을 시켜서 오전에 자모가 저기서 드렸으면 오후에 아빠가 들어가라고 그래요. 그리고 오후에 나오라구. 자기가 뭔데 혼자 편안하게 예배드리고 그렇게 해 놨냐구. 그렇게 남녀 성차별이 없어야 된다고 부르짖는 담임목사의 이야기도 못 들어요? 가서 이야기를, 정식으로 건의를 해 남편한테. 나두 좀 살아야 되겠다. 애 좀 붙잡고 어떻게 해라. 아니면 수요일 날 일찍 와서 애 데리고 그리로 들어가든지. 나 여기서 드리겠다. 그리고 이해 못하는 건 둘 다 앉아 있는 집안은 또 뭐하는 집안이야? 그럴 려면 그 남편을 빌려줘. 딴 사람 얘기 좀 봐주라고 그래 거기 앉아서. 그리고 애 둘 데리고 애나 얼르고 있는 거야. 교회 왜 와요? 내가 전에 있던 교회에서 아래 층 전체를 유아실로 썼어요. 마루 비슷한데. 넓이가 그저 이거 한 사분의 일이나 될까? 뭐 그런 정도였는데 한심해. 한심해. 그 아이들이 있으니까 평범한게 좋쟎아요? 거기다고 들어오라고 그려면, 벌써 그 방에 들어가는 자모들은 도착하는 시간부터가 달라. 거 왜 그래? 예배를 드리는데 아이에게 방해를 받는 것은 그럴 수가 있겠지만 도착하는 건 아이들 책임은 아니쟎아. 일찍 서두르면 되쟎아. 더 일찍 와야지 아이들을 데리고 있으니까. 자리라도 좋은데 자리를 잡아야 될 것 아니요? 이불이라도 제자리에 펴놓고. 그래야 될 것 아니요? 와야 되요. 근데 늦게 와. 그리고 아빠도 안 올라가. 거기에 앉아서. 테레비에 목사님은 설교해. 너는 짖어라. 우리는 애 데리고 논다. 까꿍, 까꿍 놀고. 심지어는 드러누워서 들고 흔들어 예배시간에. 자식이 좋은 건 누구든 마찬가지야. 다 마찬가지야. 그러면서 예배 위원들이 머리를 절래 절래 흔드는 거야. 젊은 시절에 다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교역자에게 제안을 했어요. 제가 솔직한 목회자의 심정으로 이야기 하자면 거기는 예배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주일을 지켰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 입니다. 그래서 전부다 의자를 펴게 했어요. 앉는 의자를 펴게 했어요. 그리고 돌아다니면서 날치는 아이들은 전부다 다 저쪽 방으로 보냈어요. 그리고 예배를 드렸어요. 한 두달 동안은 아주 뭐 너무너무 예배분위기가 좋다고 그러더라구. 그러더니 다시 무너지는 거죠. 구조적으로 잘못된 거죠. 주일학교를 9시에 해버리니까, 11시에 부모하고 오는 아이들은 돌아다니는 거야. 지금의 우리 시스템이 얼마나 잘 되어 있어요? 고생해도 다섯 살 까지만 키우면 희망이 있잖아, 내려가니까. 네 살 까지만 키워도. 더군다나 맘만 먹으면 갓난아기도 봐주니까. 근대 사고한번 안 나고 봐 줬쟎아요. 정말 사랑으로 봐줬쟎아요. 지금요, 주일 오후예배는 물론이고 수요예배까지, 사경회 심지어는 작년 수련회에 열명 데리고 간거 아시죠? 올해 열다섯명 데리고 가라고 내가 지시해 놨어요. 그렇게 까지 해가지고 자모들을 어쨌든 예배에 유익을 얻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해주게 되었는데 아이도 없어 또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은 무슨 사연인지 모르겠어. 그렇게 해가지고 어떻게 하겠느냐 이거지. 결단을 하고 예배의 은혜를 받으려고 노력을 해야지. 내가 지적하고 싶은 건 뭐에요? 뼈 아픈 얘기지만 쓴 얘기지만 좀 들어보라구. 아이 때문만은 아니야. 심령이 병들었다 이거지.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부족해. 상당수의 자모들이. 그렇게 해서 아이 기르는데 어쩔 수 없어요? 그래요 어쩔 수 없죠. 그렇게 따지면 어쩔 수 없는데,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모습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겠냐... 그게 뭐가 변화되어 가겠냐....그리고는 주일 예배를 드리고 가가지고는 고갈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남편하고 맘이 맞아가지고, 어차피 예배의 유익을 못 받으니까 가까운데나 갈까? 가까운데 간다... 좋다 이거야. 근데 가까운데 간들, 먼데 간들 그게 무슨 문제냐 이거요. 마음 자체 속에 하나님을 갈망하는, 갈망하는 마음이 없는데 시설을 좋은데다 두면 뭐하고 가까운데 가면 뭐하고 한시간 짜리 예배면 뭐하고 두시간짜리 예배면 뭐하냐 이거에요. 폭포수와 같이 진리가 쏟아진들 무슨 의미가 있냐 이거지. 마음속에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자 하는 예배자로서의 갈망이 없는데. 거 아이 하나 있다는 것 때문에 모든 걸 합리화 시키면서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이거죠. 그건 안 된다. 기도하고 하나님이 얼마나 기도 잘 들어 주시는데. 아이를 잘 이렇게 그 예배시간에 방해 받지 않고 말씀 들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아이를 위해서 일주일 동안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 얼마나 잘 들어 주시는 지 알아요? 이게 환경을 거스르면서 극복하는 신앙생활을 해온 사람들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간증이에요. 왜? 아이 문제 없을 때에는 남편의 사업이 큰 기도제목이었고 교회 건축이 큰 기도제목 이었지만 이제 아이를 데리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는 이 아이 때문에 예배생활을 못하니까 이 아이가 자중해 줘서 내가 예배 드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생명만큼이나 소중한 기도제목 아니에요? 기도할 때 그 기도에 무슨 사심이 있느냐 이거에요. 내 영혼이 살겠다는데. 살겠다는데... 그러니까 놀라운 의식의 전환이 필요한 거에요.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들이야 예배를 원래 그렇게 드리는 사람들이니까 그렇다고 하지만 여러분들은 안그렇쟎아. 근데 그렇게 해서 되겠느냐... 심지어 저쪽에서 예배시간에, 설교시간에 저쪽에서 떠드는 소리들이 들릴 정도에요. 그렇게 해가지고 정말 영혼의 유익을 얻고 돌아가겠느냐. 심기일전하고 환경적인 문제는 내가 해결을 하지만 심령의 문제는 여러분 자신이 주인이에요. 그것을 깊이 생각하고 예배자로서의 말씀의 유익을 얻고 돌아가야겠다는 각오를 해야 되. 근데 정말 아이가 너무나 날쳐서 도저히 진짜 노력을 해도 반밖에 말씀을 못 듣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어요. 그러면 정기 구독해, 정기구독. 그거 이 만원인가 밖에 안 되. 그거 뭐 시장 가서 반찬값 조금만 아끼면 되. 그 까짓꺼. 듣고 월요일 이면 아이 눕혀놓고, 아이 자게 할 때에 그때에 80분 정도 되니까 설교 듣고 큐티해요. 하라구. 아이 데리고 녹취하는 사람까지 있어요. 그렇게 해서 큐티 해요. 어쨌든 유익을 받아야 될 것 아니야. 함께 드리는 예배만은 못하지만 어쨌든 받아야 될 것 아니야. 수요예배 못 나오니까 수요예배 하고. 오후 예배꺼든 수요 예배꺼든 해서 세 개씩 들으면서 은혜를 유지하면서 살아야 될 것 아니요? 예배에 은혜가 있고 말씀의 은혜가 지속되어야지만 기도생활을 할 거 아니요, 기도생활을.
그러면서 두 번째 기도생활로 넘어가는 거예요. 근데 이거는 예배 생활 보다는 좀 낳아요. 왜냐하면 예배 생활은 주변의 환경이 문제가 되는데 기도생활은 자기 개인의 결심만 문제가 되기 때문에. 그죠? 그러니까 퍼지면 안돼.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되. 그래서 건강 해야 되. 주부들이. 자매들이 건강 해야 되. 그래서 잘 먹어요. 잘 먹으라구. 그래서 진짜 잘 먹고, 건강관리를 잘해서 건강으로 버텨야 되. 그래서 아이를 맡겨놓고 기도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그러면 아이 데리고 와서 아까처럼 기도하든지. 아이가 도저히 드러누워서 자지도 않는다고 하면 이건 실화에요. 내가 직접 봤고 우리 집안에서 경험한거야. 아이가 하도 보채면서 울며는 할 수 없어. 업고, 업고 얼르면 좀 가만히 엎드려 있쟎아요. 그러면 그렇게라도 하면서 이 교회당을 돌아다니면서 기도들을 한다구. 그 차이가 뭐예요? 힘들어서 퍼진 사람과 그렇게 해서 기도할 수 없으니까 낮에라도 아이를 떼어놀 수 없으니까 들쳐 업고 와서 좀 자란아이들은 유모차에 태워서 심지어는 문서 선교부 자매들 한테 고 앞에 놓을 테니까 봐달라고 부탁을 하고 올라가서 기도하고 가요. 차이가 뭐야? 충성심이에요. 충성심. 내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 그거에요. 뭐냐 하면 환경적인 요인이 있어요. 그리고 그건 너무 큰 거에요. 그런데 환경만이 아니라 마음이 기도할 의욕을 잃어버린 것이 더 크게 작용을 한다 이거에요. 그러면 환경은 그렇게 있는데 어디 확 열리느냐고. 아이가 살아있는데 아이가 어떻게 엄마 기도시간이라고 피해 주겠는냐고. 그러기 위해서는 6,7년 기다려야 되요. 할 수 없잖아요. 자면은 옆에 눕혀놓고 안자면 업고 보채면 얼르면서 교회당을 돌아다니면서라도 기도해야지. 그것이 거의 사라진 채고 육 개월 일년, 이년, 삼년 지나가는데 완전히 심령이 마른 바닥처럼 되어버려요. 그리고 어거지로 어거지로 살아가는 거에요. 그 신앙생활이 뭐가 기쁘냐구. 아이 없을 때 은혜 충만해가지고 신랑 데리고 와서 당신 변화되면 내 평생에 소원이 없다고 그래놓고 남편이 변화될 만하면 그다음에 부인이 아이들 낳고 그러면서 퍼져가지고 오히려 남편 구슬러서 가까운 교회 나가자고 그렇게 뒤로 물러서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가까운 교회 나가서 은혜 많이 받고 충만하면 좋아. 근데 문제는 뭐에요? 하나님이 은혜 주실만한 사람들에게 주시지 그렇게 경건 생활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영혼의 축복이 있겠어요. 그러니까 항상 이 충성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새겨요. 아이 때문에 힘들죠. 알죠. 어떡하든지 내가 기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내 얘기는 뭐냐 하면 아이 없을 때, 새벽기도 시간에 요새 늦게까지 기도하는 사람들 많거든요. 두 시간 세 시간 네 시간 이렇게 기도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농축해서 집중해서 쏟아부어서 그 기도시간에 축복이 있어야 되. 그러기 위해서는 더 간절하고 열렬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매달려야되. 방 한구석에라도 기도실을 만들어 놓고 그리고 아이 잠깐 자는 그 시간에 일을 할려고 하지 말고 기도 할려고 해요. 기도 할려고. 제일 여유롭고 좋은 그 시간에 자지도 말고 집안일도 하지 말고 제일 먼저 기도에 그 시간을 할애를 하라고. 이십분이라도 좋고 삼십분이라도 좋아요. 그리고 간절히 기도해요. 그래서 충만하면 은혜를 받아요.
마지막에 세 번째 말씀 생활인데, 말씀 생활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보세요. 유아 가진 자매들 아기사랑부에서 돌봐준다고 하지만, 예배도 그렇게 드리는 데, 구역공부도 제대로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 이 얼마나 힘들겠느냐고. 내가 진짜 마음대로만 할 수 있다면 아기 자모 수련회를 2박 3일로 봄, 가을로 해서 아이를 완전히 떼어 놓고 아버지가 책임지라고 그러고... 좀 은혜를 받아야 되. 말씀의 은혜를 받아야 된다구. 그래서 성경을 넉장씩 읽기 어려우면 두장이라고 괜챦아. 제일 그래도 여유가 있다고 생각되는 시간 아이들이 자서 잠시라도 조용하다고 하는 시간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한 장이라도 읽을 생각을 해. 각오를 하고 줄을 치면서 단 한 장이라도 읽을 생각을 해. 성경읽기를 통해서 유익을 얻어야 되. 그리고 구역공부에 나가는 말씀 그렇게 꼼꼼하던 사람들이 아이 낳고 나면 예습은 무슨 예습이야. 그냥 애가 막 주물탕을 해가지고 다 꾸겨진 그 휴지 같은 교재 들고 와가지고 허연 거, 하나도 안한 거, 그거 펼쳐놓고 앉아있는 것만 해도 할아버지란 마음으로.... 그렇게 해가지고 어떻게 은혜를 받겠느냐 이거죠. 그렇게 해서 말씀 생활에 새로운 각오를... 양을 줄이더라도 농축되게 그 속에서 유익을 얻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 되. 그러기 위해선 간절함이 깃들어야 된다고. 간절함이. 그러기 위해서 예배 생활하고 신앙생활 해야 되. 무슨 다른 이야기가 있겠느냐고, 뭐 묘수 없어요. 묘수. 하나님의 말씀 생각하고 그리고 매일 한 장이라고 성경을 읽으면서 기저귀 갈떼도 그저 기도하고 너무 기도가 부족하면 전 그러거든요. 운전하라고 그러고 차타고 가면서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너무 기도 부족하면 할 수 없쟎아요. 그죠? 교회에 가면서 기도하고. 빨래 하면서 기도하고, 뭐 어떻게 그렇게 하면서 애를 쓰면서 말씀과 찬양 속에서 살려고 노력을 해야 되.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고갈되지 않고 그나마 영적인 은혜를 이어가면서 살아갈 수 있다 이거죠. 그렇게 경건 생활을 하다가 오면 집중도 잘되.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쟎아요. 처음서부터 15분전에 예배시간에 와서 기다리다 예배를 드려도 은혜를 못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령이 너무 가난하면 쓰러질 듯 설교 중간에 들어와서 마지막 토막에 은혜를 받고 변화되는 사람도 있다 이 얘기에요. 마음의 문을 열어야 되. 그런 새로운 변화들이 여러분 속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모든 것에 있어서는 하여튼 할 수 없는 것은 몰라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여튼 노력을 하겠어요. 이사 갈 때까지라도 이사 간다는 것에 미루지 않고 이 환경에서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배려를 하면서 그러면서 여러분들이 말씀 앞으로 나오고 예배 앞으로 나올 수 있도록 전 노력을 하겠어요. 그러니까는 마음을 모아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것은 여러분들이 해야할 일이에요. 그렇게 하면서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감당해 나아가는 것, 그것 밖에 무엇이 있겠느냐 이거죠. 그리고 하나 더 이야기 하자면 유모차 끌고 나와서 전도해요. 전도하라구. 섬기는 게 뭐가 있어야지만 은혜가 계속될 것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예배시간에 은혜 못 받고 기도 말씀 생할 못하고. 할 수 있거든요? 아이가 너무 어린 아이면 힘들어요. 그렇지만 적당하게 아이가 커서 앉아 있을 정도만 되면 그렇게 해야 되. 우리는 그렇게 하면서 교회를 했어요. 유모차 끌고 다니면서 높은데 못 올라 가죠. 인천에 살 때도 그렇게 했어요. 가까운데 만나는 사람들 복음 전하고 예수 믿으시라고 그러고 그래서 아이를 기르면서 아이 때문에 모든 것이 스톱 됐습니다. 그게 아니라 오히려 그 아이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체험하고 , 그 은혜가 더 많지 환경에 순응하는 사람들은 감사하질 않아. 극복 하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제목이 많죠. 그렇게 하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구역장이 되서 그런 구역원들을 돌볼 때, 실제적으로 경건을 지도해 줄 수 있잖아요. 뭐 구역장이라고 그래서 굉장한 줄 알았더니 말이지 아이 둘 낳더니 완전히 퍼져 가지고 주일날 교회도 안나오고. 그 구역원들이 얼마나 실망을 하겠어요. 그러면서 그 사람들에게 실제적으로 가르침을 주고, 그렇게 하면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야 되잖아요. 가슴에 깊이 새기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요. 주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을 생각해 보세요. 그죠?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셔서 그래서 기도 끝에 결혼하게 하시고 또 기도 끝에 하나님께서 응답으로 어린 아이를 주시고 큰 어려움 없이 아이가, 큰 사고 없이 가족 마음 아프게 하지 않고 잘 자라주고 있어요. 얼마나 감사해요. 그죠? 그런데 정말 이러한 감사가 넘치느냐... 하나님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공동체를 주시고 교회를 주시고 교회에서 어떡하든지 자모들이 은혜를 받고 자모들이 자녀들을 낳고 자녀들 이렇게 하는 거 너무 기뻐하고 말이죠. 그렇게 해서 돌보려고 애를 쓰는데, 본인들이 노력을 하나님 앞에,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거 얼마나 감사해요. 그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 우리보다도 훨씬 어려운 환경에서 고통 받는 지체들 얼나나 많은데, 이런 속에서 신앙 생할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으니 하나님 제가 그래도 주님을 사랑한다면 이 정도는 감사하면서 극복을 해야죠, 이런 마음을 가지고 항상 긍정적이고 감사하고 밝은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살려고 할 때 그 사랑의 에너지가 아이들 한테도 흘러가요. 남편한테도 흘러 들어가고. 그렇게 해서 여러분들도 살고, 가정도 살고, 그리고 어린자녀들도 살고, 교회도 은혜가 넘치는 그런 경건생활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같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