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십 저녁 경건회
녹취자: 김경애
맨 처음에 1기 때 사실은 제가 공을 제일 많이 들였습니다. 7명을 뽑아서 했습니다. 매주일 제가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7명 정도 되니까 정말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중간에 이렇게 떨어져나가는 사람들이 항상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7명이었는데 5명이 남고 2명이 떨어지고 그런데 하여튼 정성을 참 많이 기울였습니다. 2기, 3기 해가면서 이렇게 이야기하면 조금 그렇지만 모이는 기수들이 때에 따라서 어떤 때는 모든 면에서 약간 처지는 때가 있고 그랬습니다. 이번기수들은 평가를 아주 좋게 하고 완성도도 높고 그랬습니다. 지난 기수도 열심히 했지만 그렇습니다. 수련회 장소 중에서 이곳이 제일 좋습니다. 지난번에도 여기에서 했습니까? 아니 6기를 여기서 했습니다. 7기는 양평 비발디 밑의 펜션에서 했습니다. 벽난로를 펴놓고 했는데 그곳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 영화가 끝나고 나면 밤이 너무 깊어서 또 모여서 이야기하는데 시간이 너무 늦을 것 같아서 내일 아침에도 시간이 있지만 한번 우리가 준비하면서 나름대로 좀 느끼고 생각하고 그랬던 것을 조금씩 나누고 그리고 예배를 드리고 저 영화를 꼭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5번을 보았는데 스토리는 내가 이야기하지만 저 영화를 보면서 내가 평소에 고민하던 많은 것들에 대해서 장르는 다르지만 대답을 참 많이 얻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역자들에게 한번 보여주고 소감을 이야기해보라고 그랬는데 리더십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인데 특히 지도자가 전쟁을 하는데 있어서 지휘관이 정말 어떻게 모든 면에 있어서 성숙해가면서 그 대원들을 이끌고 전쟁을 치룰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느냐 이런 것들을 저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끝까지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5번을 보았지만 지금 보아도 여전히 감명이 깊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것을 보시고 이 사람들이 다 나누면 오늘도 12시가 되어도 끝나지 않을 것 같으니까 오늘은 한번 우리 여기 인턴쉽에 참여한 형제, 자매들은 내일 아침시간에 같이하고 인턴쉽을 준비하고 그 다음에 뒷바라지를 한 우리 김 목사나 차 집사님이나 이렇게 우리 이야기를 듣고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우리가 같이 모여서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하고 여기서 1시쯤 넘어서 나가면 충분하니까 한번 같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자, 우리 목사님은 언제부터 이것을 맡아서 하셨습니까? 이번 기수부터 입니까? 그럼 우리 김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수로 환영합니다. 이번 기수부터 인턴쉽을 맡아서 하게 되었는데 처음 맡아서 할 때 개인적으로는 참 난감했습니다. 전임 인턴쉽 담당이 이성호 목사님이셨는데 계속 해 오셔서 노련하고 좋았는데 노트북이 분실되어서 자료가 거의 다 날아갔습니다. 인수인계를 받을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은 상태에서 제가 시작했는데 1차 서류접수에서부터 깜짝 놀랐던 것은 처음에는 접수 마감일이 일주일 남을 때까지 8분이 참가신청을 해주셨습니다. 임현필 전도사님을 기억하는데 신청 광고 접수광고가 나간 날 저녁에 신청메일을 보내셨습니다. 제가 깜박하고 잊어버릴 뻔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많이 접수해주셨는데 일주일이 남을 때까지도 7명, 8명이 되니까 속으로 ‘아니 미달인가?’ 그랬는데 3일 남았을 때 30명이 넘게 지원했고 시간이 지난 것은 제쳐놓고 마감일까지 거의 40명 정도가 신청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취업할 때 입사지원을 하는 것처럼 제발 붙게 해달라는 분들의 전화도 있었고 어떤 일도 있었느냐하면 워낙 많은 분들이 오시니까 일차에서 떨어뜨려야 2차 면접을 보는데 진행이나 또 오셔서 그냥 가시는 일이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일단 1차는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2차 면접을 해서 ‘목자와 양’ 테이프를 보내드렸고 그리고 면접할 때 사실 강윤석 목사님하고 제가 서로 이야기하기는 먼저 처음 놀란 것은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많은 분들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놀란 것은 정말 책을 읽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의외로 그 부분은 정말 놀랐습니다. 또 한 가지는 너무 좋은 분들이 열심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9기 인턴쉽 모집광고를 내면서 제가 개별적으로 문자를 보내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사실 왜 떨어져야 되는지 본인들이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저도 마음의 갈등이 있을 정도로 좋은 분들이 많이 계셨는데 여러분들 18분을 모시게 되었고 최종수료는 17분이 하시게 되었는데 먼저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제자 진행이 미숙하고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었을 텐데 먼저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진행이 미숙하고 어려운 점이 많았을 텐데 정말 열심히 해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설문지를 받았는데 거의 대부분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강의나 다른 모든 것은 좋게 보셨는데 오후 프로그램 중에 졸리는 문제하고 장소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무슨 장소입니까?
(장소가 계속 한 공간에서 하다보니까 점심식사 이후에 졸리고 좀 어려운 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부분은 앞으로 좀 더 개선해보면 좋을 것 같고 다음에 사실 개개인들이 개인사정이 있으셔서 한번 정도 빠지시거나 늦게 오시거나 그런 일들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턴쉽에 오시는 모든 분들이 마음가짐이 있어서 정말 열심히 해주셔서 저는 이전 기수 분들을 제가 담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지만 김남준 목사님이나 교역자분들이 여러분들 8기 인턴쉽 하시는 분들에게 칭찬해주셨고 좋게 보아주셨고 그래서 저도 그래서 기분이 좋았고 감사했습니다. 김남준 목사님이 이야기하신 것처럼 인턴쉽을 계기로 더 열심히 하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저도 여러분을 통해서 도전과 자극이 되었고 여러분들도 열린 교회를 통해서 자극을 받고 더 열심히 하실 수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 열린 교회와 인턴쉽 과정의 기쁨이 아니겠는가 하는 뜻입니다.)
(제가 지금 인턴쉽 위원장을 맡아서 3년인데 처음에는 인턴쉽을 맡았을 때 무엇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하는 것이냐 하니까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밥 사달라고 하면 밥만 사주면 돼’ 그래서 밥이야 못 사주겠습니까? 그래서 덜컥 하겠다고 그랬는데 하면서 가만히 보니까 정말 저희들 평신도들이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들이 있는데 조국교회 그러면 전도하고, 선교하고, 봉사하고 그런 것만 생각했는데 ‘정말 올곧은 교역자들을 세워낸다는 것이 참 교회에서 큰일을 해야 하는 일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지금도 교회에서나 다른 큰 교회에서도 이런 큰일을 하지 않는데 우리교회에서는 이런 일을 하는데 참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교회가 좀 더 많은 선교보다는 우리나라 지도자를 많이 배출해내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선교해서 단기선교사로 나가는 것보다 지금 정말 우리나라의 앞날과 그리고 우리 민족의 통일까지 내다보면서 좋은 지도자들을 많이 육성해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정말 튼튼한 그런 교회들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다른 장로님들을 만나거나, 타 교회 장로님들을 만나거나, 그쪽에서 일하시는 분을 만나면 참 대단한 일이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사실상 우리 열린 교회가 갑자기 성장하다보니까 지금 저의 처음생각과 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턴쉽이 뭐하는 것이냐고 물어보면 제가 한마디로 대답하기가 그렇습니다. 지켜보라고 대답하는데 아까도 제가 부탁드리다시피 여러분들끼리 그리고 성도들에게 이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정말 좋은 지도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것들을 활성화해주어야 성도들이 기쁨을 얻고 성도들이 그것을 해야겠다는 의식이 들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또 우리 교회가 할 수만 있으면 여러분들을 많이 초청해서 아까 Home Coming Day 라든지 아니면 목회를 하시다가 어려운 일을 당하시거나 또 어떤 같은 동역자들끼리 정보를 서로 나누거나 이런 일을 교회에서도 규칙적으로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일을 하다 보니 제가 항상 애착이 가게 됩니다. 교회에서 하니까 그런지 모르겠는데 어느 단체에서도 부부가 나와서 이러지는 않습니다. ‘집사람까지 왜 고생을 시키나 나 혼자 가서 때우고 오지.’ 이런 식인데 여기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같이 와서 봉사하고 싶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참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우리 목사님의 다른 면을 보았습니다. 저희들은 우리 교회에서 아마 이런 바비큐를 해서 성도들이 직접 타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좀 다르시네요.)
교인들이 나를 되게 어려워하는데
(저도 솔직히 교회에서는 목사님께 인사도 잘 못합니다. 살짝 피하는 쪽입니다. 참 좋은 시간인데 앞으로 이런 것을 좀 더 활성화시켜서 여러분이 스스로 좀 더 교회의 홈페이지도 많이 이용해주시고 그러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교회에서 내가 사실은 그렇게 큰소리를 치고 사람들을 혼내고 그러지는 않습니다. 그러지는 않는데 되게 어려워하고 그럽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결국 우리교회의 사역을 그만두었지만 전에 있던 교역자 한사람이 있는데 심방을 갔더니 계속해서 목소리가 달달 떨리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목회자와 교인들의 관계는 그런 것 같습니다. 나는 이렇게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너무 솔직하다는 것 때문에 놀랍니다. 나는 이렇게 무엇을 접어놓고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서 너무 솔직해서 깜짝 놀란다고 그러는데 사람들은 이제 나와 굉장히 멀리 떨어져있습니다. 아마 교회에서 의도적으로 그랬다기보다는 설교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와 제자훈련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말씀을 듣고 깊이 변화 받은 경험이 있는 성도들의 경우에는 항상 그렇게 목회자와 신비스러운 관계를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참 그렇게 심정적으로 그렇지 않은데 본인들은 굉장히 어려워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과 같이 이렇게 넉 달 가까이 시간을 가지면서 느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교인들을 대할 때하고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이런 종류의 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가까운 관계를 통해서 삶 자체를 보여주는 그런 것 또 그 속에서 언어는 아니지만 그러나 그런 속에서 많은 것들을 보면서 여러분들 또한 새로운 Challenge를 받고 그러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늘 이야기하는 것이 뭐냐 하면 여기서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절대로 많은 것이 아닙니다. 아까 이야기했듯이 여기서 혹시 배우고 본 것 중에서 좋은 것이 있었다면 다 하나님의 은혜이고 사람의 공로가 아닙니다. 그리고 좋은 것을 여러분들이 보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여러분의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이 열심히 스스로 Practice 함으로써 그럼으로써 여러분들 속에 그런 생각과 정신을 여러분들이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넉 달 정도 배우면서 여러분들이 새로운 것들을 발견했다고 해서 그것이 절대 여러분들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나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그러면서 그 다른 속에서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갈 수 있는가 그런 것들을 고민해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목숨을 걸어야합니다. 내가 몇 주 전에도 마당에서 강의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생명을 걸어야합니다. 이번에 여름성경학교를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교회 교회학교 교역자들을 이렇게 보면서 다들 좋습니다. 여러분들 같은 사람들 중에서 가르고, 가르고, 갈라서 뽑은 사람들이니까 여러분들도 좋지만 여러분들 못지않게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항상 마음에 걱정이 있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이제 세월은 계속 지나갑니다. 청년으로 왔던 사람이 은혜를 받고 신학교를 가고 그 다음에 3년을 졸업하고 강도사가 되고 목사까지 되었습니다. 김병순 목사도 청년 회장이었고 이성호 목사, 박헌준 목사 다 청년 회장 출신들입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가는데 언젠가는 결국 내 곁을 다 떠나갈 것 아닙니까? 그런데 빨리 가는 사람도 있고 나중에 가는 사람도 있고 다 가는데 저렇게 어디가든지 결국은 자신들이 자기를 훈련해가겠지만 내가 모든 것을 가르쳐줄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가르쳐주고 싶어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는 내가 압니다. 그것들을 가르쳐주고 싶은데 그것들이 잘 습득되지 않은 채 세월은 계속 흘러갑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 다는 아닐지 모르지만 매우 중요한 것인데 그렇게 지나갈 때 이 사람들이 얼마나 갖추어진 사람들이 될까? 여러분, 지금은 아직은 여러분들이 모릅니다. 15넌 정도 흐르고 나면 그러면 ‘인간이 진짜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총신에 다닐 때 서철원 교수님, 정용교수님, 김훈연 교수님 다 새파란 사람들이었습니다. 내가 총신에 들어갔을 때 김훈연 교수는 30대였습니다. 방금 미국에서 와서 새파랬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 은퇴하시지 않습니까? 정혁 교수님도 62세이시고 그러니까 세월이라는 것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세월이 많이 흘러가도 자기가 가야할 길이 무엇인가를 똑바로 정해지고 그 길을 갈 수 있는 정신과 파워가 그에게 부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말 안 됩니다. 저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것처럼 한 사람이 한 교회를 얼마 안 되는 교인이지만 그 교인들을 데리고 정말 올바른 교인들이라고하면 그 사람들을 올바르게 데리고 이끌어가는 거기에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지도력이라는 것은 절대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난관과 어려움이 있고 성격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이끌고 교회를 이끌어나간다는 것은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수많은 사람들의 공격을 받을 때 그것들을 단호하게 뿌리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하는가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을 때 오히려 그 비난 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고 정직하게 용서를 빌어야할 때도 있고, 자기를 그렇게 심하게 모욕하고 자신의 영역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다 용서하며 사랑하며 끌어안아야하는 그런 것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한사람이 설교단에 올라가서 항상 진리에 불붙은 마음으로 설교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삶의 전 방면에 있어서 끊임없는 자기죽음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순수하고 정직하고 열정이 있어도 뱀같이 지혜롭기 때문에 당해야하는 그 어려움들은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 것들을 다 극복하면서 교회라는 것을 이끌어 가야하는 것입니다.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신학을 자기가 공부해서 많이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것을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의 현장 속에 녹여내어야 합니다. 녹아들게 해서 그 신학이 자신의 목회의 현장에 배이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전도사나 부목사로 있으면서 보는 그 현장과 자기가 담임목사로 들어가서 그 최종적인 책임을 지고 이끌어 가야하는 그 현장은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전혀 다른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사람을 갖다놓고 아프면 ‘다리를 자르면 되지! 손 자르면 되지!’ 눈이 아프면 ‘눈을 파내면 되지!’ 그렇게 말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몸처럼 느껴지면 사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그 험한 세상에 보내실 때에 칼 한 자루, 창 한 자루 주지 아니하시고 말씀 하나를 들려서 보내셨습니다. 때리면 맞고, 찌르면 찔리고, 죽이면 죽임을 당하고, 그런 길을 가야하는 사람이 목회자입니다. 절대로 간단한 길이 아닙니다. 그것을 그렇게 신학적인 것을 쭉 해서 자신 속에 스며들게 하고 교회 속에 스며들게 하는 그것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각이나 사고만을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를 그렇게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그 진리 앞에서 죽어서 자기는 아무 가치도 없고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한없이 고난을 당해도 문제가 없다는 그런 속으로 자기 자신이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자기 자신이 그런 신학을 녹여내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성적으로 준비되지 않으면 절대로 그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수많은 어려움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더 많이 훈련을 받아야합니다.
제가 옛날에 목사가 되려고 마음을 먹을 때 스물다섯 살이었는데 그때 내 마음에 그린 인생의 그림은 40까지 훈련을 받고 40살부터 내가 본격적인 목회를 시작하고 20년만 딱 사역하고 그리고 나는 접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26살 때 한껏 겸손하게 나는 40살까지 준비한다고 생각하고 14년 가까운 세월을 잡았는데 지금도 신학교하고 공부하는 시간들을 합친다고 하면 충분히 잡은 것 아닙니까? 그런데 실제로 경험해보니까 40이 되었을 때는 내가 교회를 개척한지 1년이 되었는데 아무것도 몰랐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5년이 지난 다음에야 ‘아 목사가 이런 일들을 해야 하는구나!’ 그런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먼 길인지 생각해보십시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깊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공부에 있어서든지, 기도에 있어서든지, 전도에 있어서든지, 개인경건에 있어서든지, 설교에 있어서든지, 순종에 있어서든지, 학문에 있어서든지, 무엇에든지 대부분 사람들이 남이 하는데 까지만 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방면에 있어서 그 벽을 깨고 더 넘어갈 수 있어야합니다. 그래야지만 새로운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남이 안 가본 길을 걸어갔다가 와야 하는데 그것은 보통 많은 인내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금부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삶의 모든 방면에서 온전해지도록 자기를 다 걸고 죽어야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면 ‘사역을 어떻게 하면 잘할까?’ 그런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그런 생각을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내가 정말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먼저 이 참된 신앙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내가 행복해지는 길이 무엇인가? 무엇이 그것을 못하게 하고 또 그것을 제대로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내가 어떻게 변해야하는가? 그것을 먼저 고민하고 탐구해야가는 과정이 그게 결국은 풍부한 가르침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이 기독교 교훈이라는 ‘독트리나 크리스티나’라는 책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두스디벤디코피아디벤디.’ 그러니까 삶을 어떤 양태로 사느냐에 의해서 가르침이 풍부해야합니다. 가르침이 풍부하면 삶의 양태에서 나옵니다. 삶의 양식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마땅히 살아야할 삶의 방식, 그것이 곧 코피아디벤디 가르쳐야할 것의 풍부함을 가져다줍니다. 우리말로 하자면 자기가 참된 신자가 되기 위해서 제대로 마땅히 살려고 애를 쓰면 가르쳐야할 바가 가슴에 풍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그것들을 가르쳐야합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목사가 되기 전까지 목사가 되고 나면 나는 별로 기대하지 않습니다. 목사가 되기 전까지가 여러분들이 변화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때에 가장 기본적인 것들부터 철저하게 터득해 나가야하는 것입니다. 그 가장 기본적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목회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 그런 것이 아니고 여러분 지금 나이에 아직 설교 잘하는 강좌나 따라다니고 교회를 성장시키는 프로그램에 따라다니고 그러면 희망이 없습니다. 지금은 여러분들이 어떤 때냐 하면 마음속에 깊이 고민을 해야 합니다. 내 신앙생활은 정말 올바른 것인가? 그리고 나의 영혼의 상태는 정말 바람직한 것인가? 그리고 이것들이 올바르게 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떻게 해야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똑바를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하고 그런 모든 고민의 문제를 지식의 기반위에서 풀어 나가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지식의 기반위에서 문제를 풀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훌륭한 가르침을 풍부하게 남겨놓은 저자들을 멘토로 택해서 그래서 그 사람을 일생동안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의 목회자들을 보면 아는 것은 많은데 정리가 안 되어 있습니다. 정리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개별적인 지식들은 많은데 그것들이 사상으로써의 체계를 갖춰서 이사람 나름대로 독특한 기독교인으로서 건전한 체계를 갖추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 세계관에 대한 별다른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한 사상 속에서 공산주의자는 항상 공산주의 시각에서 역사와 인간과 모든 사물들과 문화를 보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그것을 보는 것입니다. 기독교적인 시야만 따로 가르쳐준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닌데 그 시야를 가르쳐서 무엇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모든 시야의 변화는 그 사람의 가치관과 길의 변화에서 나오는데 이것은 영혼의 변화와 깊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위에서도 보면 그렇게 뭔가 통일적으로 갖추어진 체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화된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한사람을 깊이 탐구해서 영향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로이드존스 목사님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로이드존스 목사님에게 심취한 친구들은 수준은 각각 달라도 항상 통일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스펄전에 심취된 사람들은 통일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영어라도 읽을 수 있어서 에드워즈에 심취되어있는 사람들도 통일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제임스 파커의 글속에서 보았습니다. 제임스 파커가 신학교 1학년에 들어갔을 때 선생님이 첫 클래스에서 ‘여러분들은 하나의 스승을 찾아서 부지런히 탐구해서 그래서 공부를 하세요. 이것이 많은 사람을 오가는 것보다 당신들에게 유익을 줄 것이다.’ 그런데 훨씬 후에 오랜 세월에 지난 후에 그 스승의 충고가 무엇인지 알게 된 후에 똑같은 고백을 존 파이퍼에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정리되어 있는 사람들은 그런 것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칼빈에게 깊이 심취해서 칼빈에게 심취했다고 그래도 우리는 기껏해야 읽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독교강요입니다.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되고 칼빈에게 심취했으면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기본이고 거의 외울 정도로 심취하고 그 다음에는 칼빈의 사상이 기독교강요 안에서도 어떻게 바뀌어 왔느냐고 까지 공부를 하면서 최종적으로 칼빈이 우리에게 남겨준 신학적인 전망이 어떤 것인지를 배워나가고 칼빈을 많이 배우려면 그의 설교를 많이 읽어야합니다. 그런데 설교를 굉장히 하찮게 생각하고 나는 어거스틴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어거스틴이 남긴 ‘트랙타투스’ 라고 그러는데 논문들입니다. 그런데 그 설교는 ‘호밀리’ 라고 그러는데 또 설교인데도 순수한 교화적 설교가 아니라 논문형식을 띄고 있는 설교가 있습니다. 이것을 ‘호밀리트랙타투스’ 라고 그러는데 이런 것들을 설교 자체를 우리는 특히 어거스틴의 설교를 하찮게 배웠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믿지 마십시오. 어마어마한 깊이가 있습니다. 그것들을 섭렵해나가면서 눈이 열려야하는 것입니다. 특히 칼빈 같은 경우는 말입니다. 뭐 1/3도 번역이 안 되어 있습니다. 어마어마합니다. 칼빈의 오페라 자체가 이런 책으로 해서 한 오십 권이 넘습니다. 그것들을 전부 읽을 수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면서 한사람에게 거의 몰입해서 심취해야합니다.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아예 다른 책은 읽지 마십시오. 그리고 한 사람 속에 들어가서 칼빈이면 칼빈, 로이드 존스면 로이드 존스 두 분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의 책들이 이미 있습니다. 존 오웬을 말할 수도 없습니다. 10년을 읽어도 다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분량의 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외에 스펄전 같은 사람의 글들, 특히 설교도 엄청나게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런 중의 한 사람을 택해서 상당한 기간 동안 내가 이 사람 이외에는 아무것도 읽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고 깊이 들어가서 그래서 그것을 전수받아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된 생각을 가지고 배워야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다시 더 폭넓은 책을 읽으면서 그러면서 이제 결함이 있는 것들을 떼어내고 보충하고 하면서 그 사람의 어깨를 딛고 여러분들이 더 나은, 말하자면 신학사상을 여러분 속에 세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탐구하는 사람들을 나는 거의 만나지 못했습니다. 아주 가끔 만납니다. 엊그제도 어느 목사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조용기 목사님을 그렇게 탐구한다고 그럽니다. 2년인가 3년을 해서 끝내고 지금은 김성택 목사님을 탐구한다고 그러는데 그분이 그렇게 하는 것 자체는 설교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은 별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설교에 대한 고민 말고 진짜 이 사람을 통해서 알려진 기독교신앙이 무엇인가를 가지고 고민하면서 깊이 파고들어야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의 그 위대한 신학사상을 가지고 그 사람이 남겨놓은 신학적인 사상과 설교까지 그의 삶까지 다 터득하면서 그 속에서 모방을 먼저 배우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자기의 것이 서야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많은 책들을 읽으면서 무엇을 하느냐하면 많은 지식들은 있는데 자기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모방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것이 정립되지 않습니다. 자기의 것이 정립되었을 때는 설교를 수없이 쏟아내어도 설교가 항상 하나입니다. 하나의 맥을 이룹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 나름대로의 독특한 신앙의 사상, 성경적인 사상을 보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획일적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각 사람들을 통해서 성경에 나와 있는 다양한 셰이드들을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목회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기술의 문제는 그것은 정신보다는 훨씬 나중입니다. 그것은 조금 배우면 바보깡통이 아닌 바에야 다 합니다. 그리고 그런 정신이 있을 때 그런 기술들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 정신이 없고 그런 기술만 살아있는 것은 잔재주입니다. 그렇게 깊이 파고들어가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파고들어가서 깊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한 15년 전에 오웬이라는 사람을 만나고 이제껏 멘토링을 받으면서 왔는데 그분의 책에 심취되었는데 워낙 방대한 분량이라 다 읽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작품들은 거의 다 읽었습니다. 매우 중요한 작품들은 내가 다섯 번까지 읽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그분에게 깊이 심취하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청교도들이 남긴 책이 오만 권쯤 됩니다. 그중에 삼만 권은 별로 가치가 없고 이만권정도가 가치 있는 책들이고 그중에 상당부분 아직까지도 내려오는데 그분에게 깊이 멘토링을 받고나니까 나머지 청교도들의 책들은 너무 싱겁습니다. 유치원학생과 대학원생이 쓴 글의 차이입니다. 사상의 깊이와 이런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한 사람에게 그렇게 깊이 신학사상을 습득하는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까 피를 말리면서 영어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라틴어나 희랍어나 독일어 원전까지는 모르더라도 영어로 되는 것들은 청교도나 이런 사람들의 작품을 읽을 수 있을 때까지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절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특히 청교도영어는 장난이 아닙니다. 그 책은 영국 사람을 주어도 읽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든지 간에 피를 말리는 훈련을 통해서라도 간단하지만 3년 정도만 매달리면 어느 정도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여러분들이 읽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는 거기 나름대로 하나의 언어가 열리면 그 수많은 스승들이 거기에서 나옵니다. 그렇게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계속 찾아가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깊이 있는 설교를 일단 남길 수 있어야합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새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안 들어와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믿는 사람들이 몇 년 지나고 나면 굳어지는 것이 목회에 있어서 큰 원수입니다. 교회의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새가족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없습니다. 대부분 그 교회 목사에게 은혜를 받고 한때 그 교회에서 뿌리를 내린 사람들이 영적으로 채워지지 않아서 일으키는 문제들입니다. 나는 지금도 뼈저리게 후회를 합니다. 열심히 살았지만 열심히 산 많은 날 중에서 우선순위를 바로잡지 못하고 살아온 날들이 너무 많습니다. 특히 어학에 있어서는 정말 누군가가 내가 신학을 시작하려고 할 때 어학의 중요성을 깊이 가르쳐주었으면 좋았겠는데 교수라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히브리어를 하면 무엇 하냐고 하고 희랍어 할 시간이 있으면 영어공부를 하라고 하고 그런 식으로 신학교 선생들이 그렇게 가르쳤으니까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정말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스승들을 만나고 깊이 심취해서 깊이 이해하고 그 사람을 이해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해서 그렇게 멘토링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나 같은 사람 정도가 아니라 훨씬 뛰어난 일차 교사들을 여러분들이 스승으로 받아들이고 여러분들이 그 속에서 깊이 영향을 받아야합니다. 그 안에서 삶이 변화되어가고 진실해져가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깨뜨리게 되고 이러면서 배워가면서 그러면서 온전해져가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안하는 고민이 없습니다. 기도, 전도, 사역, 훈련, 자기죽음, 회개, 말씀에 대한 깊이 이런 것들을 자기부인과 극기, 이런 모든 것들의 덕목을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변화되어가고 새로워져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알량하게 좀 자기가 새로운 길을 걸어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Praxis가 부족합니다. 전도를 안 합니다. 기도를 별로 안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병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역자들 속에서도 새벽기도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무슨 밤에 나와서 뼛속 깊이 사무치는 그런 열심을 가지고 기도하느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에는 뭐냐 하면 많은 기독교의 진리와 삶의 부분들이 개념적으로만 머릿속에서 계속 돌지 가슴에 파고 들어와서 자기 자신을 거꾸러뜨리는 경험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사람으로 자기 자신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인공위성이 수없이 지구주위를 돌지만 태어나서부터 마지막에 사용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지구를 만나지 못하는 것처럼 생각과 모든 것들이 주님 주위를 돌면서 한 번도 주님과 만나는 적이 없습니다. 정말 제대로 된 주님과의 만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신학공부를 하고 목사가 되고 누가 누구를 가르치겠습니까? 가르침을 받겠습니까? 받지 않습니다. 거기서 거의 끝났습니다. 그렇게 되면서 결국은 그 틀에 굳어져서 인생을 허송세월 하게 되는 것입니다. 금방 지나갑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학교 다닐 때 정신 차리지 못하고 방황하던 친구들 신학교를 졸업하고 20년이 되어 가는데 지금도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한사람의 인생이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실천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정말 생명을 걸어야합니다. 전도자의 삶, 기도하는 사람의 삶,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는 사람의 삶, 지도자로서의 삶, 이런 삶에 신명을 바쳐야하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영혼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간직하면서 사역을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정말 아무리 사람들을 모아놓고 가르치려고 해도 사람들은 땀을 흘리지 않고 남이 하는 것을 보고 그 정보를 캐치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사람을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제가 요새 와달라는데도 별로 없지만 내가 가지 않는 것이 목회자들을 위한 무슨 설교세미나 이런 데는 제가 안갑니다. 가봐야 소용없습니다. 다리를 꼬고 앉아서 무슨 이야기를 하나 들어나 보자. 그러는데 설교만 변화시키려고 그러는데 사실 자기가 변하지 않으면 설교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희생의 길을 걸어가기가 싫은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진짜 나는 그렇게 목숨을 걸고서라도 나는 정말 훈련되고 싶고 그래서 주님 앞에 내가 진짜 어떤 고난 속에서도 내가 빚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가르쳐줄 용의가 있습니다. 그 길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목회의 길을 걸어가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미쳐 자신도 충분히 변화되지 않은 가운데 여러 가지 이기적인 욕망과 탐욕 그다음에 정리되지 않은 무지한 태도 이런 것들이 다 뒤엉킨 가운데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이 없는 목회사역을 하면서 그러면서 시간을 보내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인생이 끝나는 것입니다. 잠깐입니다. 몇 교회를 떠돌아다니면서 방황하면 인생이 끝나는 것입니다. 제가 한 교회에 8년, 한 교회에 7년 있었는데 그렇게 세 번만 하면 25년 세월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정말 그러니까 시행착오 없이 그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정말 준비된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