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 세미나
녹취자: 윤은정
교회생활세미나에 이어서 신앙생활 세미나의 새로운 이름으로 교회생활과 신앙생활 전반에 걸친 문제들을 성경적인 생각과 지혜로운 덕으로 정리하고 자신의 신앙의 유익은 물론, 지체들의 교회생활의 유익까지 생각하는 기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우리가 설문을 했는데 이제 1. 첫인상은 이후에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열린교회 와서 받는 첫 인상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런데, 전부다 합쳐서 한 50명 약간 안 되는 사람이 했는데, 첫 번째는 이제 긍정적인 사람이 25%정도였습니다. 그다음에, 인상에 대해서만큼은 부정적이었다. 그런 사람은 6명이었고, 긍정적인 면도 부정적인 면이 한꺼번에 있었다. 그게 8명이고, 무응답 자가 5명입니다.
긍정적인 첫인상이 예배였습니다.
(1) ‘은혜로운 예배’, 그 다음에 (2) ‘말씀’, 그 다음에 (3) ‘가족적인 분위기’, 그 다음에 (4) ‘복음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다음에 (5) ‘말씀을 사모하는 성도들의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6) ‘교회당의 청소가 깨끗했다.’, 그다음에 (7) ‘찬양이 은혜로왔다.’, 그 다음에 (8)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성도들의 모습이 인간적이었다.’, (9) ‘뭔가 구속받지 않고 자유스러운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이게 긍정적인 인상이었고, 부정적인 인상은 뭐냐하면, 압도적으로 많은 게 (1) ‘너무 좁고, 답답하다.’ 그랬습니다. 저는 안 좁은 것 같은데, 한 사람은 좁은 모양입니다. 그 다음에 (2) ‘새로운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좀 적은 것 같았다.’, (3) ‘자기들만 예배드리느라고 열심인 것 같았다.’, 그 다음에 (4) ‘성도들 간의 교제가 좀 부족하게 느껴졌다.’, (5) ‘모두 혼자만 은혜 받으려고 애를 쓴다는 것입니다.’ 또, 아주 과격하신 어떤 분은 (6) ‘냉랭하고 살벌한 분위기였다.’ 뭐가 이렇게 살벌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는데, 그랬습니다. 그 다음에 또 어떤 분은 (7) ‘차갑다. 차가운 분위기였다.’ 그 다음에 (8) ‘신학생들과의 벽이 좀 느껴졌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이제 부정적인 인상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이제 2. 새로운 사람들은 열린교회에 어떤 점들을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1) 예배를 통해서 기쁨을 얻는다고 대답한 사람이 35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그 다음에 (2) 예배가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서 좋다. 그래서 괄호 해놓고 전에 있던 교회에서는 끝없이 계속되는 장로님들의 기도 때문에 질렸다. 한참 자고 나서 기도하니까. 그 다음에 (3) 예배시간에 개인적으로 기도할 시간이 많은 것이 참 좋다. 그래서 일주일동안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 다음에 무엇을 가지고 이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는데, (4) 교회의 행정을 성경적으로 하고자 하는 것이 좋았다. (5) 문서 및 테이프를 제공해 주어서 참 좋다. 그 다음에 (6) 말씀을 사모하는 성도들의 모습이 도전이 된다. 그 다음에 (7) 가족적인 분위기라서 참 좋다. 가축이 아니라 확실히 가족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8) 맛있는 점심을 주는 것이 참 좋다. 그 다음에 괄호 해놓고 반찬 좀 많이 주시기를. 그렇게 해 놨습니다. 그 다음에 좋은 점은 이건 분명히 장년부가 쓴 것 같은데, (9) 식사 후에 설거지를 청년들이 참 해서 좋다. 앞으로도 계속 해달라는 뜻 같습니다. 그 다음에 이건 아마 등록을 잘 안하시는 분의 이야기 같습니다. (10) 등록을 강요하지 않아서 참 좋다. 1년 동안도 등록을 하지 않고 다녔어도 참 좋다. (11) 삶의 대한 구체적인 메시지가 있어서 좋다. 이것은 아마, 수요 예배 때 많이 나오시는 분인 것 같습니다. (12) 기도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서 좋다. 이 대목에서 여러분 좀 찔리지 않으십니까? 저는 상당히 찔렸습니다. (13) 온유하고 진실한 교제가 있어서 좋다. 사실, 우리 열린 교회 과분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사람들이 좋은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게 말입니다.
3. 신앙생활에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설교 시리즈는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압도적으로 많은 게 역시 (1) ‘시편23편’ 시리즈였습니다. 그 다음에 이제 최근까지 계속 되었던 (2) 요한복음 10장의 ‘목자와 양’, 그 다음에 (3) ‘주기도문’, (4) ‘마음을 다하여’, (5)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6) ‘시편 1편 강해’, 두 개짜리 인데, 그 다음에 (7) ‘벧엘로 올라가자’ 십자가 사경회 ‘신앙과 은혜체험’, 그런 순서로 나타났습니다. (8) ‘요나서’, ‘십계명’, ‘영적 군사입니까?’, ‘벼랑 끝에 선 사람’, 등 나왔습니다.
이제 중요한 건 4번입니다. 오늘의 중요한 점 4번입니다. 열린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면서 이제 느끼게 된 문제점들, 개선되거나 성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1)이 뭐냐하면, “성도들 간의 무례히 행치 않는 예절바른 언행에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부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각자 우리들 자신들을 돌아봐야 됩니다. 그리고 이것과 덧붙여서 뭐냐 하면 인사들을 너무 안합니다. 그러니까 처음 본 사람이 무조건 인사하는 것입니다. 나이 많으면 어떻습니까? ‘안녕하세요’ 그러고 한 번 인사하면, 그 다음서부턴 얼굴이 뻘개져서 젊은 사람들이 더 인사를 잘 할 것 아닙니까? 성도들 간의 인사를 해야 됩니다. 만나면 압니다. 마음속으로 반가워하는 것, 그러나 행함이 없는 반가움은 죽은 반가움입니다. 그래서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집사님?’, ‘일주일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아, 오늘은 혈색이 좋아 보이시네요.’ 이렇게 좀 인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2) 저는 참 찔렸습니다. “말씀을 사모한다는 성도들이 예배시간에 오는 것을 보니까 한심하다.” 결론은 그거입니다. 시장에서 할인판매만 한다고 그래도 우리가 달려가는데, 너무 늦다. 언젠가 한 번은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러 갔는데, 차가 완전히 그냥 뒤범벅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도대체 뭔 난리인데 이러나 그랬더니, 몇 시간 전에 내일부터 기름 값이 오른다고 방송이 난 것입니다. 그거 한 통 채워 넣겠다고, 그래봐야 돈, 2만원 밖에, 3만원 어치 밖에 안 들어가는데, 그거 한 2천원 아끼겠다고 그냥 차를 몰고 왔는데, 우리 예배시간에 이건 참 부끄러운 것입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성도들이 15분전에 우리 꼭 도착해서 우리 예배를 준비하는 시간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별로 안하는 것 보니까 한 번 또 해야 되겠습니다.
(3) “한 영혼의 소중함을 소홀히 여기는 것 같습니다. 자신만 열심히 믿을 뿐 아니라, 다른 연약한 지체들을 구체적으로 보살피고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별표 한 것은 특별히 많은 것입니다. 똑같은 말씀하신 분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영혼의 소중함을 소홀히 여기는 것 같다. 그게 인제 열린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면서 느낀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지체들을 돌아보고, 긍휼히 여기고, 그렇게 살피는 것도 주의 일입니다. 의무입니다. 이 일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한 주일에 한 명씩이라도 평소의 잘 모르던 사람, 점심 먹고 나서,,, 요즘 또, 오늘도 커피 줬습니까? 오늘은 안 줬습니까? 다음 주일에 두 잔씩 줄 것입니다. 커피도 주니까 마시면서 같이 대화도 나누고, 그리고 기도제목도 교환하고 그럴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믿습니까?
그다음에 (4) “개인이 사용했던 물건을 제자리에 정리하는 성숙함이 있었으면 합니다.” 이것도 몇 분이 됐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아예 써주셨는데, 성경, 코푼 휴지, 커피 마신 컵, 슬리퍼 신고 다니는 것, 피아노 및 교회 악기를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것, 이런 것쯤은 너무 안 좋아 보입니다. 그러니까 좀, 성숙하게 성경봤으면 제자리에 갖다놓고, 코 푼 휴지는 주머니에 집어넣든지, 아니면 양말 속에 집어넣든지, 아예 풀지 말든지, 셋 중에 하나 했으면 좋겠다.
그다음에 (5) “예배시간 전에 기도의 몰두하면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준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교회에 와가지고 예배시간 되기 전에 영화 상영 기다리는 것처럼, 동네사람들같이 모여와서 이 얘기, 저 얘기 떠들고 껄껄거리고 그러는 거, 안 좋다. 그 얘기를 이렇게 우회적으로 돌려서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교회에 일단 오면 일차적인 관심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들어오기 전까지는 서로 인사하다가 교회에 와서는 눈인사정도 하고, 그 다음에 앉아서 기도하면서 하나님 만나기를 기다려야 됩니다. 그죠? 영화 상영을 기다리는 것처럼 기다려서는 안 되겠다. 그 얘기입니다.
그다음에 (6) 이제 좀, 그것도 아주 많습니다. 여러분이 그랬습니다. 뭐냐 하면, “좀 더 따뜻하고 화목한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울리는 사람끼리만 어울리는 것 같아서 소외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따뜻하게 보살펴 줘야 합니다. 오기 전에 뭔가 말씀에 대한 많은 기대와 하나님과의 만남에 대한 사모함을 가지고 온 사람들은 비교적 이런 요인에 덜 흔들리는데, 아직 연약한 사람들은 아직 그렇게 깊은 신앙을 갖지 못했을 때에 주위의 도움이 정말 요긴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되겠다.
(7) 이것도 여러분이었습니다. “공간문제를 좀 해결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좁고 덥습니다. 환기가 너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얘기였습니다.
(8) “열린교회에 온 낯선 새 신자에 대해서 모든 성도들이 좀 더 각별하기에 따뜻한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서 맨 처음에 온 사람들이 같이 식사도 같이 해주고 사실 불편하잖아요? 그것도 주의 일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식사도 같이 하고, 교제도 하고, 그런 따뜻한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꼭 필요하겠습니다.
(9) “성도들의 교회생활과 신앙의 성숙을 위한 보다 구체적인 프로그램들이 있었으면 합니다.”
그다음에 (10) “너무 크게 기도하지 말아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기도하다가 자꾸 헷갈리는 모양입니다. 옆에서 왕창 크게 기도하니까 기도를 헷갈린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크게 기도하지 말아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다음에 (11) “오전 예배 후 청년구역 모임 때문에 오후 예배를 정성껏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너무 피곤하다 이 얘기입니다.
그 다음에 (12) 또 집사님을 겨냥했습니다. 이거 쓴 사람은 청년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집사님들이 청년들을 좀 더 따뜻한 사랑으로 보살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그래서 집사님들한테 소외감을 많이 느낀 모양입니다. 따뜻한 사랑으로 보살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이런 것들이 대개 사소한 것들이지만 그러나 열린교회 신앙생활 하면서 아주 또, 매일매일 만나는 사람들이니까 어려운 점들이 많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이런 내용들이 대게 성도들에게 좀 고쳐달라고 부탁하는 그런 내용들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5번째는, 신앙생활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게 뭐냐 그랬는데, 사실 이 5번을 제대로 써내라고 그랬는데, 5번은 어떻게 어디로 가고 딴 것을 열심히 써 내셨습니다.
(1) “십자가에서의 죄사함이 미래의 죄까지를 사하는 것이라면, 믿으면서 짓는 죄는 어떻게 처리하여야 할까요? 진정한 회개는 무엇입니까? 율법시대의 회개와 은혜시대의 회개는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습니다.”
이제 “십자가에서 죄사함이 미래의 죄까지 사하는 것이었다면, 믿으면서 짓는 죄는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가?” 그것이었습니다. 이제 이것을 기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는 두 사람이 살고 있는데, 똑같이 죄인인데, 한사람은 용서를 받은 사람이고, 한사람은 용서를 못 받은 사람입니다. 용서를 받은 사람은 그 용서를 받은 의미가 무엇이냐면 하나입니다. 현재나 미래나 과거나 이런 거는 시간세계 속에 살고 있는 피조물들이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지나간 세상은 누구도 돌아가 본 사람이 없고, 또, 앞으로 오지 않은 세상은 한 번도 가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시간세계 속에 살아가는 피조물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와 과거, 그 시간세계를 초월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쉽게 얘기하면, ‘개미가 걸어간다’라고 말할 것 같으면 개미는 걸어가면서 언덕을 넘으면 다음에 뭐가 나올지 모르지만은, 비행기를 타고 위에서 내려다 보면 다 내려다보이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니까 자동차가 지나가잖습니까? 특별히 강릉이나 서울이나 왔다 갔다 할 때, 이제 비행기를 타고 위에서 내려다 보면, 높은 산맥이 가로막혀 있으니까 차들이 막 꾸불거리고 갑니다. 어디로 가는지 잘 모릅니다. 많이 다녀본 사람 이외에는 그러나 비행기를 탁 보면은그 앞에 길 쫙 보입니다. 한꺼번에, 어떻게 해서 서울까지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 눈으로 보이잖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에 대해서 바라보는 것은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지나간 죄만을 만약에 우리를 용서해 주신다고 할 것 같으면 나머지 죄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가 회개를 하면은 물론, 용서해 주시겠지만 그러나 때로는 우리가 지으면서도 그것을 죄라고 느끼지 못해서 회개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결국은 천국은 죄 있는 사람들은 못가는 곳입니다. 그러면 결국 교리적으로 어떤 결론이 되냐면 예수를 영접할 때 용서해주신 죄는 현재와 미래와 과거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회개를 하느냐?” 회개는 엄밀한 의미에서 용서받기 위한 것이라기 다는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내가 현재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위로부터 도우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되는 것이 신앙생활인데, 그 신앙생활을 해 나가기 위해서는 내가 하나님과 화목한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가 죄를 지었어도 미래에 나를 지옥으로는 보내시지 않을 것은 알지만은 우리의 신앙생활은 그것가지고 충분하지 않고, 내가 오늘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 속에서 위로부터 부어지는 은혜와 사랑을 내가 누리면서 살아야 됩니다. 그것을 가로 막는 것이 죄책입니다. 그러니까 죄를 짓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정죄하시지 않으시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축복들을 거둬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신자의 삶에 있어서는 지옥가고 천당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천국에서 승리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살아가느냐가 문제인데 그 하나님과의 관계의 어려움이 오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이 죄 사함의 은총을 주십니다. 그러니까 이전에 죄 사함을 받았는데, 그 죄 사함을 받은 것을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깊이 기도하면 다시 옛날에 주어졌던 축복들이 영적인 은혜와, 사랑과, 축복들이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에게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 해나가면서 가장 좋은 것은 죄 안 짓고 살아가는 거지만, 그러나 그런 일은 거의 불가능하니까, 죄를 지으면 회개하고, 다시 돌아오고, 돌아오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진정한 회개는 무엇인가?” 진정한 회개는 세 가지 요소를 모두 포함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지식적으로 그것이 잘못된 죄인 것을 알아야하고, 두 번째는 그것이 정말 잘못됐다는 사실을 깊이 느끼면서 이제 회개한다고 그러겠습니까? 그 맘을 가져야 하고, 세 번째는 뭐냐 하면은 그 죄로부터 돌이키려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에스키모족을 선교하러갔던 선교사가 황당한 일을 당한 것입니다. 선교사가 들어왔는데, 그 부부가 이제 이글루에서 살고 있는데, 선교사가 이제 찾아왔습니다. 복음을 전하려고 찾아왔습니다. 선교사에 대해서 이 에스키모 남자가 상당히 호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봅니다. 선교사를 세워놓고 잠깐 기다리라고 그러더니 밑으로 들어와 가지고 고래 기름을 주면서 “여보, 이거 얼굴에다 발라.” 에스키모족들은 고래 기름을 얼굴에 바르고, 말하자면은 부부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얼굴에 바르라고 그런 것입니다. 그래놓고 그다음엔 이제 선교사가 들어왔습니다. 그래놓고 뭐냐 하면 쉽게 이야기 하면은 자기 부인을 선교사에게 서비스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기네들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손님접대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뭐에요? 죄가 죄인 줄을 모르니까 범죄 하려는 악한 의도가 아니더라도 그렇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뭐냐 하면 지식적으로 새로워져야하는 것입니다.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죄에 대해서 둔감한 사람은 말씀에 대해서 둔감합니다. 죄에 대해서 예민한 사람은 말씀에 관심이 많습니다. 왜 그러냐면 뭐가 잘못된 길인가 하는 것을 알고 싶어 하니까 그러니까 관심이 많은 것입니다. 지식적인 요소와 그 다음에 아주 자기가 죄를 지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돌이켜야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 회개는, 진정한 회개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그 모든 과정을 포함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랑의 대상이 바뀌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그림과 같은 묘사가 어디에 분명히 나오는데, 누가복음 7장에 보면 죄인인 한 여자가 와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깨뜨려 붓는 장면이 나옵니다. 결국은 뭐냐 하면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그 앞에 진정으로 회개하게 되니까 예전에는 향유를 사랑하면서 살았는데, 그 향유를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여 더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 예수 앞에 이전의 자기의 귀한 것들을 다 쏟아 붓는 이러한 말하자면은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율법시대의 회개와 은혜시대의 회개를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습니다.” 그랬는데, 본질적으로는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시대의 회개는 율법시대의 회개하고 뭐가 틀리냐면, 회개할 때 마다 우리는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가 생각나는 것입니다. 왜? 십자가 자체가 죄 때문에 주님이 못 박혀 죽으신 흔적이기 때문에 그 십자가를 생각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이미 죽으셨다는 사실을 보고 기도하기 때문에, 훨씬 더 사죄에 대한 확신을 구약의 성도들보다 훨씬 풍부하게 가지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그런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또, 제사와 믿음으로 드리는 것도 역시 차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2) “거듭남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질문이 너무 모한데, 이것은 테이프 ‘죄와 구원’이라는 테이프를 보면 세 번째 테이프에 나옵니다. 거듭남이라는 건 결국은 뭐냐 하면 우리는 기도할 때에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그렇게 기도하는데, 사실은 성경은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완료형으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인간을 딱 보는 기준이 뭐냐 하면 죽어있는 인간입니다. 죽어있는 인간이 하나님의 신비로운 성령의 역사,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서 그 영혼이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는 것, 살아나게 되고, 다시 태어나는 것, 요한복음에 나오는 그것을 가르쳐서 거듭남이라고 가르칩니다. 거듭남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인데, 하나는 말씀이고, 하나는 성령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성령님이 역사함으로 그 사람의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탄생입니다. 다시 태어나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 다음에 (3) “진정한 기도의 자세와 구체적인 기도의 실천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아주 굉장히 포괄적인 질문입니다. 그러니까는 여러 개의 시리즈를 들어야지 알 수 있는 그런 내용입니다.
(4) “말씀을 보다 깊이 묵상함으로 깨달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사실은 말입니다. 말씀에 대한 깨달음들을 정말 얻기를 원하신다면 깨닫지 못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려고 애를 쓰는 것만큼, 이미 깨달은 말씀을 지키면서 살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나에게 풍부하게 깨닫게 해 주신 그 말씀을 지키면서 살아갈 때에 그 말씀의 깊은 의미들이 더 깊이, 더 깊이, 더 깊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빌립보서 3장에서 “그리스도와 및 그 부활의 권능과 고난의 참여함을 알려하여” 그랬는데, 그런 강렬한 소원을 갖게 된 것은, 그가 정말 그리스도 예수의 뒤를 따라가는 삶을 장구한 세월을 살아가는 가운데 솟아난 소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심으로 지키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그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더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저 구체적으로 한 방법을 하나 가르쳐 드린다면, 이런 방법을 가르쳐드릴 수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성경을 읽되, 다독을 하는 것과 함께, 정독을 하셔야 됩니다. 그러니까 정독을 할 때는 너무 많이 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루에 한, 한 장 정도라도 하시면, 그것도 굉장히 많은 양입니다. 그래서 꼼꼼하게 읽어 내려가면서, 그러면서 어느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 그것을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말고, 하루 6장에 얽매이지 말고, 그것은 그것대로 읽고, 계속해서 반복해서 읽는 것입니다. 2번, 3번, 그러면 마치 예수님께서 눈먼 장님을 침으로 이기어서 이렇게 눈에다가 발라주십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뭐가 나무들이 걸어가는 것처럼 보이다가 그러면서 조금씩, 조금씩 반복되면서, 점점 눈이 띄어지는 이런 역사들이 일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계속 하나님이 그 속에서 나에게 말씀해 주시도록 그렇게 인내심을 가지고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규정된 묵상양식을 가지고 있는 그 노트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 것들을 활용하는 것이 물론 도움을 받을 수 있겠습니다 만은, 그러나 그렇게 규격화하는 것 보다 자기가 성경을 찬찬히 읽어가다가 보면 거기에서 깨닫게 되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좀 더 깊이 풀어서 노트에다가 기록을 해보면은 자기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가지고 이제 더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5) “하나님 앞에서 분별하는 방법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18세기 같은 경우에는 뭐가 유행을 했냐면, 기도하다가 성경을 펼쳐놓고 딱 찍는 것, 그런 것이, 18세기에 유행이었습니다. 그런 건 사실은 비성경적입니다. 누가 그러더랍니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리고 이제 간절히 일주일을 금식기도하고, 그다음에 눈을 감고 딱 찍었더니, 눈을 딱 떠보니까, ‘이에 유다가 나가 목매어 죽으니라’ 그래서 이것은 뭔가 실수입니다. 하나님, 다시 삼일을 금식하고 딱 찍었답니다. ‘너는 어서 속히 행하라’가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삼세번, 그리고 기도하고 다시 찍었더니 ‘유다는 네가 어찌하여 의심하느냐’ 그러니까 그런 부흥의 시대에도 그렇게 황당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볼 때, 참 재미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사실, 자꾸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물을만한 사람을 찾아가서 물으면 선한 것이 나오는데, 물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찾아가서 물어 보면 굉장히 커다란 문제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여러분 인생의 훈수는 두겠지만 책임질 사람들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이상한 신앙을 가지고 있고, 이상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비비꼬이는 질문에 대해서 비비꼬이는 답변을 하면은 그것은 이제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선 이렇게 생각을 해야 됩니다. 첫째는 소극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성경에서 아니라 그런 것들을 가려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지 하나님 앞에 ‘주일을 지켜야 됩니까? 말아야 됩니까?’ 그런 것은 하나님 앞에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해볼 필요가 없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까. 성경에, 우선 내가 무엇인가 하나님 뜻을 분별하고 하려고 할 때, 성경에 명백하게 되어있는 것이 있는가? 먼저 찾아봐야 합니다. 예를 들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데, 그것에 대해서 성경이 금하고 있는가? 안하고 있는가? 그런 것은 나오잖습니까? 그런 것들을 먼저 찾아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우선 거기에서 해결이 되잖습니까?
여기서 이야기는 하나님의 뜻을 아마 그런 것이 아니라, 이제 성경에 분명히 나와 있지 않은 것, 그런 것을 아마 이야기 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사업을 하려고 그러는데, 곰탕집을 할 것인가? 설렁탕집을 할 것인가? 이런 것들. 또, 우리의 아들을 공립학교에 집어넣을 것인가? 사립학교에 집어넣을 것인가? 아니면 대학원을 갈 것인가? 취직을 할 것인가? 아니면, 얼굴은 좀 못생겨도, 신앙이 좋은 남자로 결혼할 것인가? 아니면, 얼굴은 좀 잘 생겼는데, 신앙이 약간 떨어지지만 그러나, 집안이 든든히 밀어주는 그런 사람으로 결혼 할 것인가? 뭐, 지하실의 열린 교회를 갈 것인가? 2층에 있는 교회를 갈 것인가?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지 않은 무수한 많은 선택들을 우리는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때에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이것을 분별하겠는가?
거기에서 그게 제가 보기에는 말씀은 아까 했고, 소극적인 의미에서 이미 얘기했고, 첫째는 환경입니다. 환경이 명백하게 막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를 막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나는 오랫동안 의사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의술로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을 해서 오래 기도했었습니다. 계속 떨어져서 6수, 7수, 8수까지 해가지고 의대에 못 들어 가면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의사면허도 안 들고 칼 들고 가서 누구를 수술할 수 없잖습니까? 돌팔이가 되니까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환경적으로 하나님께서 막으시는 것입니다. 환경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한 방법이 된다는 것입니다.
저도 직접 본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저한테 한번 얘기했는데, 기도를 많이 하면서도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 아집을 못 버리는지를 말하는데, 어느 자매가 형제를 놓고 기도를 했는데, 그 형제와 결혼하게끔 하나님이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딱 만나서 “내가 어떠냐?” 그런 프러포즈가 아니라, “나도 네가 싫은데, 하나님이 나에게 너한테 시집가라고 그랬기 때문에”, 그런 케이스는 내 주위에 있는 사람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도 굉장히 진지한 자매입니다. 성숙됐고, 그런데 그러더랍니다. “나도 싫은데”, 그건 괜히 해보는 소린지 모르지만 하여튼, “나도 싫은데, 하나님이 가라고 그러시기 때문에 나는 당신하고 결혼을 해야 된다.”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형제가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그것도 맘에 드는 사람이 와서 그런 얘기를 하면 “기도를 해보자” 그러겠는데, 자기는 전혀 아닌데, 너무나 황당해서 “자기는 아닌 것 같다”고 그러니까, “기도해봤냐?” 물론 안 해 봤을 것입니다. 한 번도 마음에 없었으니까. “기도해보자”고 그러니까 “알았다”고. 기도하면 할수록 아닙니다. 그런데, 자매는 굳게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잊힐 만하면 나타나서 “아직도 순종할 자세가 안 돼있냐?” 그런데, 그 사람은 장가갔습니다. 그런데도 그건 잘못된 결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혼이 아니기 때문에 언젠간 깨진다는 것입니다. 참 무서운 것입니다. 그런데, 깨졌는지 안 깨졌는지 모르겠는데, 둘 낳는 것까지 그 목사님이 보셨답니다. 그래서 이정도 됐으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러니까 그래도 그건 잘못된 거라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확신이 옳다는 것입니다. 그건 문제가 아닙니까? 뭘 중대하게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까? 환경도 하나님이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의 일부분입니다. 그것을 기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뭔가 상당한 착각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하루는 스펄전 목사님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저벅저벅 걸어오더니 “목사님”, “예”, “이 메트론 폴리턴 처치에서 주님이 나보고 설교하라고 그러셨습니다. 강단을 내주십시오.” 그래서 스펄전 목사가 기지가 넘치는 사람 아닙니까? “아니, 하나님은 왜, 내 강단을 다른 사람 빌려주는데 주인인 나한테는 말씀을 안 하시고, 당신 같은 객꾼한테 하셨겠냐?” 그랬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당신보고 여기 가서 설교하라 그러셨다면, “하나님이 나에게도 저 사람한테 강단을 빌려줘라.” 그러셨을 것입니다. 그런 증거가 어디에 나옵니까? 고넬료와 베드로와의 만남사건에서 딱 나옵니다. 같이 사람들을 이렇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뭐냐 하면, 빌립보서 2장 13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말하자면은 응답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상당히 일반적입니다. 아까 같은 경우에 불발로 끝났지만은, 만약에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자기도 모르게 어느 날, 몽유병 환자처럼 일어나가지고, 가서 옷 맞추고, 양복입고,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뭐냐 하면, 그렇게 꼴도 보기 싫고, 마녀처럼 보이던 그 자매가 어느 날, 그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면서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마음의 변화가 먼저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가 얼마나 신비하냐면, 두 가지 길이 있는데, 이 길에 대해서 전혀 마음이 안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것도 기도를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기도를 했는데, 기도를 하다보니까 솔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나는 아직까지 싫어.’ 그런데, 이상하게 그 기도만 하면은 힘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한참 기도하다 보니까 그 다음에는 뭐가 되냐면 내 마음이 그쪽으로 끌리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는 가장 일반적인 기도입니다.
그러니까 무엇입니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말씀에 의해서 단련된 바람이 가지는 소원과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사람의 소원은 틀립니다. 전자의 사람은 성령의 지배받는 소원을 지배받기가 쉽고, 후자의 사람은 충동적인 육체의 욕심에 의한 소원을 갖기 쉽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모르겠는데 저는 요한복음 15장에 나오는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하는 말씀을 저는 그렇게 이해를 합니다. 뭐냐 하면, ‘너희가 내 안에 있고’ 그것은 무슨 뜻이냐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뜻이 무슨 뜻이냐면 단순히 구원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아주 충만한 성령 속에서 성령에 깊이 잠겨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 속에 깊이 들어가서 마음의 소원과 가치와 삶의 동기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거듭난 사람들, 그런 사람이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러는데,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래도 그 사람들은 쓸데없는 것 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신앙이 들어간 사람이 기도하는 기도의 내용하고, 천방지축으로 아직 뭐가 뭔지도 모르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하고 기도하는 내용이 같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여러분, 교양이 있고, 평소에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말하는 것부터 벌써 틀립니다. 열심은 있어도 사람은 다 말하는 것이 틀립니다. 마찬가지로 그렇게 그리스도 안에 잡혀있고, 성령과 동행하면서 말씀이 깊이 들어가서 그 말씀에 의해서 삶이 좌우되고 있는 사람이 기도해보라고 그러니까 뚱딴지같이 “하나님, 노래방 하나 차려주세요” 그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세계여행...” 그렇게 황당하게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은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소원 자체가 정말 하나님이 원하는 소원들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구해라. 그러면 다 이루어 준다.’ 왜? 그 사람이 품고 있는 소원이 정말 주님이 기뻐하시는 소원입니다. 그리고 때때로 마음속에서 잘못된 소원이 생겨날 때 있지만은, 그런 정도로 영적인 세계 속으로 들어간 사람은 이 소원이 잘못됐다라고 하는 것을 본성적으로 분명히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허망하게 그것을 쫒아가지 않습니다.
저는 15장 7절을 그렇게 이해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부분도 마음의 소원입니다. 그러니까 어떻습니까? ‘이 소원이 하나님이 주신 소원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깊이 오래도록 기도를 해서 그 소원의 진위를 확인해야 됩니다. 사람들이 충동적인 소원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충동적인 소원이? 어저껜가 언젠데 차를 타고 가는데, 느닷없이 만두가 먹고 싶은 것입니다. 먹고 싶어 죽겠습니다. ‘어디 만두 파는데 없나?’ 이렇게 생각지도 않은 물건들이 먹고 싶고, 아니면 쓰고 싶고, 입고 싶고, 하는 충동이 일어나듯이 그렇게 대책 없이 우리 속에서 마구잡이로 욕심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 소원을 다 믿다간 큰일 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리 그럴 듯해도, 간절히, 깊이, 오래도록 기도해 보면 하나님이 주신 소원일 경우에는 그것이 점점 강하게 떠오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처음엔 불 같았던 확신이 식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시시했던 확신이 하나님의 뜻이면 기도하면 할수록 더욱더 뜨겁게 소원이 불타오르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소원은 건성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소원과 다릅니다.
그 다음에 (6) “신앙생활에 죄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이것은 너무 길어서 생략을 하겠습니다. 이것은 테이프 ‘죄와 구원’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7) “직장생활에서 신앙의 갈등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야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참, 굉장히 눈물 나는 질문입니다. 직장도 이런 직장을 다니면 괜찮습니다. ‘두란노 출판사’라든지, 아니면 ‘아가페 서적’이라든지, 아니면 또 예를 들면, 교회의 전도사, 직업이라고 할 수 없지만 교회의 전도사라든지, 아니면 교회의 사무원을 한다든지, 이렇게 하는 사람들은 비교적 갈등이 적습니다. 그렇지도 않습니다. 거기는 술 먹고, 담배 피라고만 안하지, 거기는 거기대로 어려운 갈등들이 또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뭐 ‘교회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은 천당 가는 것처럼 살겠네?’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기독교적인 사업단체에서 신앙을 제대로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이, 완전히 불신세계에서 신앙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이게 그런데서 생활을 많이 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결국은 눈물 나는 이야기인데, 제가 (7)번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 자격이 좀 있습니다.
저도 8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해서, 남의 밥을 먹어봤으니까 알 수 있게 됐습니다. 우선, 갈등을 느낄 때가 많다고 그랬는데, 이제 문제는 이것입니다. 느낄 필요가 없는 갈등을 느끼는 것, 그것은 상 받을 것이 없습니다. 또, 느껴야 하는데 갈등을 전혀 안 느끼면서 사는 것도 신앙의 생명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신앙생활 속에서 자유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자유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을 선을 분명히 그어 놓지 않고 직장생활을 하면, 결국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신앙의 많은 부분을 손해를 보게 됩니다.
자, 그러면 자유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어떤 부분인가? 어떤 사람들은 직장 속에서 직장 상사하고 굉장히 크게 부딪혔는데, 어떤 것 때문이냐면, 신우회를 만드는 것 때문에 부딪힌 것입니다. 신우회를 만들어야겠다고 주장을 하고, 또, 위에서는 만들지 말라고 주장을 했는데, 결국은 위에서 뭐라고 그러든지 우리는 만들어야 되겠다. 그래가지고 충돌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분은 제가 보기에는 이 직장을 신우회를 만드는 것을 못 만들게 하는 것을 의에 대해서 핍박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게 아닙니다. 신우회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습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은, 직장에서 신우회 같은 것은 직장에다가 압력을 넣기 위한 이익단체가 아니잖습니까?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지나다니다 휴지하나 줍고, 수건 하나 빨아서 화장실에다 걸어놓고, 비누 한 장이라도 하나 사서 놓고, ‘그런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다.’ 라고 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심는 것이 복음화를 위해서 훨씬 좋은 것이지, 신우회라고 만들어놓고 성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늘 모여 다니고, 저도 신우회를 해봤지만은, 교회하고 똑같습니다. 교회에 신앙 좋은 사람들만 모입니까? 아닙니다.
신우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가지고 뇌물 받아 먹다가 징계당하고 뭐, 이런 사람들도 오고, 별 사람 다옵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고, 또, 열심히 모였으면, 점심시간에 모이면 땡치면 들어가서 근무를 해야 되는데, 1시까지 모이고 나가지고 1시 서부터 또, 밥 먹고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는 사람들에게 선하고 좋은 인상을 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은 지혜로운 방법이 아닙니다. 자유 할 수 있는 것들이 있고, 자유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자유하지 못하는 것들, 그런 것들은 우리가 성경이 우리에게 자유 할 여지를 주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우리들이 끝까지 지켜나가야 된다고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어느 직장을 가든지 우선,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들을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직장생활에도 도움이 되고, 신앙생활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리스도인... 왜냐면 평생 숨기며 살 수 없잖습니까? 그리스도인입니다. 딱, 그렇게 이야기하고, 그리고, 믿음대로 살아갈 결심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자유 하는 부분과, 자유하지 못하는 부분.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유능한 사람이 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0식 할 때, 돼지대가리 놓고 절도 하고 그러는 사람들이 빨리빨리 올라가고, 착실하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그 이유를 가만히 캐보니까 뭐냐 하면 승진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지 말고, 아주 유능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차피 세상 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렇게 승리하는 사람들 아니잖습니까? 학교에서도 보면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에서도, 신학교에서도 보면, 교수들이 대게 두 종류인데, 정치적인 영향력으로 학교에 있는 사람들도 있고, 실력으로 인정받아서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똑같이 우리의 직장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끈이나 이런 것들에 의해서 있기 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실력으로서 그 직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유능한 거야, 그 사람 능력에 따르는 문제니까, 원래 유능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요? 성실하기라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실하고, 정직하고, 그래서, 이 직장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 갈등을 많이 느끼는데, 그런 갈등 속에서 오는 굉장히 많은 부분이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만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인격적인 결함, 불성실한 직장생활, 애매모호한 업무처리태도, 이런 경우 때문에 오히려 어려움이 오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이런 것들을 우리들이 한번 생각을 해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6번에서 이제, "열린교회 설교 시리즈 해설", 그러고 나오는데, 이걸 제가 여기다가 실은 이유는 무엇 때문이냐면 여러 가지 많은 질문의 대한 답들을 이미 다 주어졌는데, 그런 것들이 이제 활용이 잘 안되고 있다는 면에서 이제 이것을 이제 얘기를 들은 것입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설명을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현재 한 600개정도의 이미 테이프가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체계적으로 그런 것들을 들으시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일일이 사서 들으면 부담이 될까봐 한 세트씩을 교회에서 비치를 했습니다. 그것은 김전도사님한테 부탁을 하시면 거저 빌려드립니다. 일주일 단위로, 그러니까 가서 계속해서 들으시면 됩니다.
자, (1)번 보시겠습니다. ‘참된 신앙과 외식’인데, 이것은 마태복음 6장을 시리즈로 한 내용인데, 여기에서는 대게, 사람들 속에 들어와 있는 외식, 그래서 결국은 포장된 악이 선으로, 선으로 포장된 악이 자라나서 하나님과의 신령한 관계를 가로막는 외식의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도전을 받았던 그런 부분들입니다. 7개로 되어있는데, 1절서부터 15절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식, 구제, 기도, 금식, 그런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2) 그다음에 ‘형제사랑’인데, 교회 안에서 형제가 서로 연합하여 동거하는 그런 즐거움과 실제로 형제사랑과 연합이 우리와 하나님과의 어떠한 관계를 영향을 미치는가? 이런 것들을 다루는데,
(3) 그다음에 ‘생의 벼랑 끝에 선 그대에게’ 이것은 이제 사경회 때, 금년 새해 말씀 사경회 때 선포된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이것은 6장 19절부터 마지막까지인데, 이것은 사경회 때 낮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왜 염려를 극복하면서 살아가지 못하는가? 그런 것들을 여기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다음 이제 (5) ‘목자와 양’은 요한복음 10장인데, 지금 제가 몇 개 되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되는데, 10개랍니다. 10개, 그런데, 이것을 통해서 도움을 받으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다음에 (6) 십계명 강해는 12개인데, 이것은 이제 십계명을 강해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7) 다니엘 9장의 ‘신앙부흥‘ 주일 저녁때마다 했던 것인데, 생기를 잃어버린 하나님의 백성들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방법에 대해서 상당히 상세하게 강해를 해나가는데, 부흥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꼭 들어보시면 좋습니다.
(8) ‘세례 요한’은 이것은 신학생들의 설교자용으로 나온 것입니다.
(9) ‘새벽의 하나님’은 교회 개척하고 나서 1년이 채 안 됐을 땐가 그러는데, 하여튼 새벽기도가 요새는 많이 나옵니다. 바닥으로 내려 가가지고 막, 위기를 느꼈을 때였습니다. 그때 새벽시간에 역사했던 하나님의 놀라운 위대한 일들을, 그래서 그것을 차례대로 강해를 해서, 새벽기도 때에 새벽기도를 통해서 이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 이제 (10) 예배 시리즈가 나오는데, 예배 시리즈는 동그라미를 쳐 노셨다가 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 5개밖에 안되는데, '예배란 무엇인가?'가 1, 2고, 그 다음에 '헌금이란 무엇인가?', '설교는 왜 듣는가?', '찬양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나옵니다. 5개로 되어있는데, 꼭 좀,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배가 단순히 주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을 기념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실제적인 만남이 있는 것이다.
그 다음에 이제 (11) ‘영적 회복을 위하여’가 나오는데, 여기서는 이제 영적인 침체로부터 극복되는 여러 가지 길에 대해서 이제 시편 51편 ‘솔로몬의 기도응답’ 이런 것들을 통해서인데, 상당히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대게 도움을 많이 받은 설교는 수요일에 드렸던 것 같습니다.
(12) ‘사랑은 불꽃처럼’ 그것이 이제 우리가 95년도 2번째 새해 말씀 사경회 때 있었던 것인데, 특별히 3, 4, 5, 6번이 특별히 은혜를 아주 많이 받은 것입니다. 상당히 길게 설교를 많이 하던 때였습니다.
(13) ‘죄와 구원’은 줄쳐 놓으십시오. 이것은 누구든지 한번 정리를 하고 넘어가시면 좋겠습니다. ‘죄와 구원’ 이게 이번 십자가 사경회 때 낮에 한 것인데, 5개로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죄가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고 결과가 무엇이고, 어떻게 처리해야 되고, 왜 십자가에서 주님이 죽으시고, 이런 것들을 쭉 다루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 (1) ‘우물가의 여인’같이 나옵니다. 이것은 두 번째 새해 말씀 사경회 아침 성경강해 기간 동안에 선포된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의 그 이야기를 죽 여기서도 이제 죄의 문제와 성령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2) ‘가나안 여인을 만나주신 예수님’ 이것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무엇인가 하는 것들을 보여주는데 은혜를 많이 받은 부분입니다.
(3) ‘가상칠언’은 이미 책으로도 나왔고, ‘가상칠언’ 테이프는 우리가 전도용으로도 많이 쓰입니다. 꼭 한번 그 부분을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4) ‘마음을 다하여’ 의외로 설문조사를 보면 ‘마음을 다하여’ 시리즈에서 변화를 경험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이때가 우리 교회에서 굉장히 어려운 때였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성도들이 모두 이렇게 깊이 어떤 낙심이 되어 있던 그런 때에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셔서 교회의 성도들이 많이 새로워지는 그런 축복을 경험했습니다.
(5) ‘하나님을 찾으라’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는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라는 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첫 번째 교사학교는 역시 나오고,
그다음에 네 번째 항목으로 넘어가서 (1) ‘신앙과 은혜 체험’이 나오는데, 11개로 돼있는데, 동그라미 치십시오. 이것은 좀, 나름대로 뭔가 혼란스러우신 분들, 어떻게 믿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혼란스러운 분들이 정돈이 잘 될 수 있는 그런 부분입니다.
그 다음에 (2)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가 있고, 그 다음에 (3) ‘하박국 설교 모음’이 있고, (4) ‘십자가’ 시리즈가 후에 다시 한 번 있습니다. 그 다음에 (5) ‘기도’ 시리즈에 줄치십시오. 기도 시리즈 9개짜리가 아마 우리 여기에 나와 있는 시리즈 테이프 가운데는 가장 많이 팔린, 한, 5위, 10위 안에 들어가는 그런, 많이 팔린 시리즈입니다. 기도 시리즈는 출애굽기서부터 시작을 해가지고 기도의 사람, 기도자의 삶, 중보기도의 필요성, 변화산의 기도, 겟세마네의 기도, 이런 것들을 죽 다루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6) ‘성령’에 대해서 7개가 있고, 그 다음에 (7) ‘복음 전도’가 있고, (8) ‘참된 동역자’가 셋,
(9) ‘사명’ 시리즈가 이게 주일 오후에 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10) ‘미움과 용서’ 거기에 줄치세요. 이 부분들은 아주 상당히 은혜롭게 설교가 됐고, 하나가 아마 녹음을 하다가 전기가 나갔습니다. 그게 여기 들어있는지 빠져있는지 모르겠는데, 6개로 되어있는데, 그것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추구하지만, 영적인 삶의 진전이 없는 사람들은 내면의 세계를 돌아봐야 된다. ‘미움과 용서’의 문제가 구약의 살인의 율법을 이뤄 들며 풀어 가셨는지, 그것을 상당히 깊게 다루고 있습니다. 하여튼 저도 개인적으로 많이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제 나오는 것이 (11) ‘탕자의 귀로’가 나오는데, 이제 탕자의 비유가 나오는 것이고, (12)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 이것은 ‘탕자의 귀로’와 함께 작년 여름 수련회 때 했던 것인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13) ‘요셉’시리즈 거기 줄치십시오. 이게 여태까지 했던 설교 중에 제일 쉬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 ‘요셉’시리즈를 재미있게 들으셨습니다.
그 다음에 이제 (14) ‘마른 뼈도 살리신다’ 거기 줄치십시오. 이 ‘마른 뼈도 살리신다’는 에스겔의 환상, 37장에 나오는 것을 가지고 10절까지를 해서 5번에 걸쳐가지고 설교를 했는데, 결국은 마른 뼈와 같이 실상은 죽어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살리시는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결국은 신앙의 회복과 부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이제 은혜를 많이 받았던 테이프 하나가 그 다음번입니다. (15) ‘강하여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 입니다. 여기에서 이제 가나안 정복을 앞둔 그 민수기 14장의 기사를 가지고 이제 다뤄 나갔는데, 하여튼 많은 도전들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 (16) ‘거기 계시며 응답하시는 하나님’ 이게 기도 사경회 때에 나온 것입니다. 막다른 골목에서 하나님을 찾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17) ‘하나님이 택한 아브라함’ (18) ‘목사가 된다는 의미’ (19) ‘설교자를 위한 시리즈’ 10이 있고, 그 다음에 이제 (20) ‘벧엘로 올라가자’ 줄치시고, 그 다음에 (21) ‘시편 23편’ 줄치시고, 그 다음에 (22) ‘주기도문’ 줄치시고, 그 다음에 (23) ‘시편 84편’ 줄치시고, 그 다음에 (24) ‘요나서 강해’ 이렇게 있습니다. 그래서 ‘벧엘로 올라가자’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제가 다시 재판을 하려고 하는데, 우리교회 개척하고는 안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깨운 말씀이었고, 하여튼 신앙에 대한 총체적인 시각을 바꿔주는 그런 것입니다. ‘시편 23편’은 요번에 책으로 아마 7월말 쯤 책이 나올 것입니다. 그 다음에 (25) ‘팔복 강해’는 16개인데, 심령이 가난한 것부터 해가지고 쭉 해서 풀어나간 것입니다.
(26) ‘이사야 53장’은 하다가 말았습니다. 그래서 중간까지 했는데, 언젠가 연속해서 하려고 합니다. (27) 에베소서 6장은 ’영적 전쟁’ 이게 책으로 풀어져서 나온 게, ‘당신은 군사입니까?’입니다. ‘주기도문’은 꼭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빨리 신앙에 대한 잘못된 견해들이 정리될 수 있는 글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시편 84편’은 교회생활의 즐거움에 대해서 한 거고, ‘요나서 강해’ 이거는 불순종하던 요나가 어떻게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상당히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 추천하고 싶은 낱개 테잎이 있는데, 92년의 ‘세상을 사랑치 말라’ 그 다음에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신 예수님’ 그 세 개를 우선 나란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 다음에 93년도에 설교한 것 중에서는 (1) ‘천당과 지옥’, (2) ‘경배하는 자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2가지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1) ‘이스라엘을 위로를 기다리는 자’ 이것은 94년도 2월 달에 한 것입니다. 94년도에 이제 (2)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그 다음에 이제 특별히 (3) ‘요한의 말씀경험’ 그 다음에 (4) ‘믿음의 사람 에녹’ 그 두 개짜리 그것을 권하고 싶고, 하나가 녹음이 안 됐습니다. 세 개였는데, 그 다음에 (5) ‘하나님과 화목하라’ 그 다음에 (6) ‘고넬료의 집회준비’ 그 다음에 정오 예배 때, 무엇입니까? 0시 예배 때 설교한 (7) ‘수치로 굴려버린 길가르’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 다음에 95년도에는 특별히 (1) ‘사랑은 불길이어라’ (2) ‘사랑은 끌 수 없어라’ 이거 두 개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게 아가서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에 ‘십자가를 지기까지’ (3)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 그거 추천하고 싶고요. (4) ‘예수의 몸, 언약의 피’ 그것은 성찬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96년도에는 몇 개 없었어요. 그런데 특별히 (1)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하고, (2) ‘반석과 그리스도’ 두 개를 추천해 드립니다.
그래서 이제 문서선교부에서는 오늘만, 만약에 여러분들이 테이프를 원하는 분들은 여기에다 써 내시면 30%할인해서 오늘 하루만,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돈은 나중에 내도되니까 그렇게 해서 문서선교부에 넘겨주시면, 문서 선교부에서 재작을 해서 주일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이 시간에 잠깐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