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모연합회 세미나
녹취자: 김미영
한 번에 4만 부가 나갔습니다. 그래서 아마 여러분도 3분의 2정도는 읽으셨으리라 생각이 되어서 오늘 ‘목회자의 아내’ 그 책이 아니라 목사님과 함께 볼 수 있는 책을 한 권씩 드리도록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교회에 빗발치듯이 전화가 오는데 그게 뭐냐 하면 사모님들이 상담해 달라는 전화였습니다. 몇 달 동안 시달리다가 그 다음에 우리 집사람한테 인계를 하고, 우리 집사람한테 인계를 하고 나서 몇 달 있다가 제가 전화를 잘 안 받았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너무 많은 사연들이 그 속에서 들려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제 지금도 항상 마음 한 구석에 그 책을 쓰고 나서, 나기 전에도 느꼈지만 쓰고 나서 새삼 ‘야 이게 목회자의 삶보다도 목회자 아내의 삶이 참 힘들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예화) 어느 사모님이 아침에 일어나더니 목사님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여보, 여보 정말 놀라운 일이야’ ‘뭐가?’ 그랬더니 내가 요새 목회하느라고 너무 힘들어서 하나님 앞에 많이 울었더니 예수님이 꿈에 나타나셔서 나에게 ‘네가 이 사역을 마치고 갈 곳이다’ 그러고 보여 주셨는데 얼마나 아름다운 천국인지 거기에 아주 잘 지은, 지상에서는 사택으로 써 본 적이 없는 그런 아름다운 집을 보여주시면서 ‘이게 네가 살 집이다’ 그러면서 그 집에 천사의 손에 이끌려 들어갔더니 집만 있는 게 아니라 가구도 모두 있고,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집만 있겠습니까? 집만 있으면 가구는 어디서 사겠어요? 그리고 안방에 들어가니까 하얗고 예쁜 옷이 옷장에 가득하게 있더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사모님이 감격을 하는 겁니다. 이에 목사님이 ‘내 것은?’ ‘그래 생각해보니까 진짜 그렇네. 그런데 분명히 주님은 그 집을 네 집이라 그러셨거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당신 것은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르겠어.’ 목사님이 ‘체 지가 사모인데도 주님이 그 정도 대접을 해 줬으면 나는 굉장할 거야’ 그러고 나서 기도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사모에게만 갈 집을 보여주지 마시고, 나도 이제 목회를 끝낼 때가 다가오니까 나의 갈 집도 보여주십시오. 그런데 안 보여주시더랍니다. 그래서 간절히 3일을 기도했더니 보여주시더랍니다. 그런데 ‘자 여기가 네 집이다’ 그러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집이 없더랍니다. 그래 가지고 보니까 옛날에 왜 시골에 가면 김치 광 알죠? 이렇게 나무 걸어놓고 지푸라기로 얹어 놓은 그 집을 보여주더라는 겁니다. 천사가 한 번 들어가 보시죠. 그러더랍니다. 간신히 기어 들어갔는데 여간 낙심이 아니더라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아이 우리 사모는 천국에 가니까 안방이 열렸더니 하얀 입을 옷도 거기 걸렸다는데, 그러고 딱 보니까 거기에 옷이 있긴 있는데 개털 모자 하나하고 내복하나하고 있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깨어나서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보기에 주님을 많이 섬기면서 살아가는 것, 주님을 섬기기에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 그런 것과는 하나님 자신이 판단하시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많이 뉘우치고 새로운 정신으로 말년에 목회를 했다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거기에 대고 그렇게 아멘을 하면 목사님은 뭐가 됩니까?
오늘 우리 본문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해지는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원래 이 거룩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 앞에 이렇게 가구가 있는데 ‘성구’라고 부릅니다. 거룩한 가구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예배 도구인데, 이게 여기에 오기 전에는 그냥 나무였습니다. 만들어져도 그걸 우리들이 성구라고 부르지 않고 예배에 이렇게 바쳐질 때 성구지만 용도가 끝나서 고물상에 갖다 버리면 그것은 거룩한 가구가 아니라 폐품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하나님이 거룩함의 원천이고 그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것들이 거룩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거룩한 분이시면 우리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는 하나님과 직접 관계를 맺고 하나님이 직접 시키시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교인들을 보면서 교회를 생각하듯이, 교인들은 목회자와 아내를 보면서 교회를 생각합니다. 또 교회를 보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처음 교회에 나와서 교회에서 싸움질이나 하고 물고 뜯는 것을 보면 아마도 ‘아 기독교는 원래 이런 건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지 ‘기독교는 원래 깨끗하고 훌륭한 종교인데 저 몇 사람이 저러는 구나’ 이렇게 생각을 안 합니다. 이렇게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교회에 보여주고 그것을 본 교인들이 이 세상에 나아가서 살 때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보여주는 그러한 표지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힘써야 할 가장 큰 의무는 모였을 때에 성도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그 진리를 통해서만 어두운 죄인들이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신 분인지를 알고 그 분께 순종하면 살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가슴 아픈 것은 뭐냐 하면 이 교회에 있어서 진리가 중심이 안 됩니다. 그리고 다분히 사람 중심의 교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엊그제 차를 몰고 오다가 보니까 신호등 옆에 교회 봉고 버스가 하나 섰습니다. 그런데 교회 이름이 하도 기가 막혀요. 대한예수교 장로회 ‘신나는 교회’ 그 뭐 해석을 할 때 은혜를 많이 받아서 신난다 이렇게 해석을 하면 그 이름도 나쁠 게 없겠지만 사실 엄격하게 말하면 교회가 우리가 신나야 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야 되는 교회가 아닙니까? 그러면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도 인생을 살 때 언제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시면서 그렇게 기뻐하셨습니까? 여러분이 신나게 자아 중심의 삶을 살 때 하나님도 흥겨우셨습니까? 오히려 우리의 인생에는 우리는 너무 신나는데 주님은 우울한 적이 많았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진리의 말씀 앞에 깨뜨려지고 성령의 은혜로 새롭게 변화되고, 그리고 날마다 나를 버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드는 생활을 해 나갈 때 하나님의 마음은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심령에는 자기 깨어짐의 고통이 있어도 그렇게 깨뜨려지고 주님을 닮아가는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에는 기쁨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목회자와 함께 힘써야 될 가장 중요한 의무는 교회가 진리의 말씀으로 가득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날 우리 조국 교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만약에 목사님을 위해서 무엇을 기도를 한다면 건강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되겠고 목회의 좋은 동역자를 보내주시도록 기도해야 되겠고 교회에 물질도 넉넉히 주시도록 간구해야 되겠지만, 그것보다 더 절실하게 기도해야 할 것은 강단에서 진리의 말씀이 힘 있게 터져 나와서, 그래서 죄인들이 그 진리의 말씀에 깊이 깨뜨려지고 그래서 자기 밖에 모르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자기 영광을 위해 살 던 사람들이 예수의 험한 십자가 위해 살겠노라고 다짐하는 그런 교회가 될 수 있도록 그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이 열심히 진리의 말씀과 싸워야 합니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에서는 ‘목사’하면 그 사람이 누구냐 그러면 ‘진리를 전달해주는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17세기 16세기 17세기의 영국의 청교도들은 ‘목사가 누구입니까?’ 라는 말에 ‘우리 목사는 구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말씀을 전하다가 피 뿌리며 죽어간 선지자들과 신약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며 죽어간 사도들의 후예입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목사님들이 가장 중요합니다. 목회자의 아내의 보람이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어차피 이 길 들어설 때 큰 교회 만들어서 좋은 옷 입고 큰 사택에서 배불리 먹고 살려고 이 길 들어선 것 아닙니다. 그건 영광이 아닙니다. 영광은 우리가 이 길을 맨 처음 들어설 때에, 왜 여기에 들어섰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나를 위해 자기의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경험하고 나니까 이제는 다른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내게 행복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 뿐만 아니라 불쌍한 많은 영혼들, 아직도 주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영혼들에게 주님을 가르쳐주고 어두운 눈을 뜨게 해 주어서, 그래서 빛의 나라로 옮기게 하시고 내가 사랑하는 그 하나님을 저희도 사랑하게 해서 그들이 더 주님을 사랑하고 어두운 세상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 수 있다면 내가 생명이라도 다 드리고 저 영혼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내가 얼마나 기쁠까? 이 마음이 목회 길로 들어서게 한 마음이잖아요.
(찬양)
멸시와 욕 가시관 쓰셨네
그러니까 교인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모이는 것도 전도를 통해서 모이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간절히 전하니까 그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그래서 교회를 이루게 되었잖아요. 그러니까 이후로도 끊임없이 이 진리를 전파해서 그래서 이 사람들이 진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고 그 뜻대로 순종하면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것이, 그래서 주님 홀로 영광을 받으시도록 영혼을 돌보는 것이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여러분은 많이 기도하시고 목사님이 어떻게 하든지 진리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도록 교회의 강단을 위해서 목사님이 진리의 사람이 되도록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야 합니다.
두 번째는 그렇게 진리를 깨닫고 사람들이 거룩해지는데 성경은 우리에게 또 하나 거룩해지는 길을 가르치는데 기도로 거룩해진다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있는 더러운 찌끼를 쏟아내는 훌륭한 은혜의 수단이 됩니다. 그래서 이 기도 생활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가는 동안 겪은 많은 고통, 괴로움들을 이 기도 속에서 하나님이 정화시키시고 녹이셔서,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우리가 온전하고 거룩해져 가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처음 목회 사역을 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하나님 앞에 이 소명을 놓고 기도를 할 때에는 그렇게 온유하고 겸손하고 착했었는데, 막상 하나님이 그 기도에 응답해주셔서 10년, 15년, 20년을 목회를 하고 나니까 처음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감동도 없고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도 없고 마음이 식어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일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힘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이 일해도 그 일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지 못 합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만이 그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표를 만들어봤습니다. ‘사람이 일을 할 때, 일을 하면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할 때, 그가 일 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목회자 아내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라는 책을 한 15년은 약간 안됐고 12년 13년 전에 그 책을 썼습니다. 쓰고 맨 마지막에 서문을 쓸려고, 겨울이었는데 2월 달 쯤 되었습니다. 저 혼자서 치악산을 갔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명상에 잠기면서 그 책을 마무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 치악산에 걸어가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겨울 가뭄이 아주 극심해서 가뭄 때문에 온 대지가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들판에 얼음 한 조각 없이 바싹 마른 겨울이었습니다. ‘이렇게 가물었으니 이 산은 얼마나 가물었을까?’ 그리고 치악산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 여러 달 동안 한 방울의 비가 오지도 않았는데 그 큰 산에서 계곡에서 물이 흘러오는데 하얀 물이 그 겨울에 소리를 내면서 힘차게 흘러요. 깊은 곳은 글쎄 어른 한 길 반이 넘을 정도의 물이 계곡에 가득 있는 겁니다. 그 계곡의 물이 계곡 아래로 흘러서 온 땅이 다 가물었는데, 그 산자락에 연하여 있는 그 밭에는 물이 계속 흘러들어가 개울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목회가 시들시들해서 그저 볼품없이 쭈그러들어 있는 가운데 아끼는 사람도 없이 무명으로 목회사역을 마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 태어나서 마지막 남기고 가는 것이 교회 하나밖에 없는데 기왕이면 그 교회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많은 영혼이 구원을 받고 구원받은 그 영혼들이 무성한 나무처럼 숲을 이루고 자라고 그 자손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그래서 교인들에게 존경을 받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 교회를 보면서 오래도록 그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를 기억해주는 그런 목회를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오늘도 신문을 받아보니까 국민일보나 이런 신문 뒤에 보면 수많은 목사님들의 얼굴이 나와요. 이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이 세상에 알리고 싶어 하는지를 모릅니다. 누구나 다 자신의 목회가 그저 움푹 파져서 오물이나 잔뜩 고인 웅덩이 같은 목회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고, 모두 높은 산 같은 목회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그 산이 높으면 높을수록 골이 깊은데 그렇게 높은 산과 같은 목회, 거기에는 개울과 같은 맑은 물이 흘러야 합니다. 그 때에 그 산이 살아있는 산이 되는데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고 가시덤불만 가득하고 바람이 불면은 산에서 모래바람이 일어나는 사막과 같은 산이라면 누가 거기에 와서 살겠습니까? 산이라면 높고 높은 산 계곡 사이에 맑고 시원한 물이 흐르고, 그 물들이 큰 개울을 이루며 고기가 살고 그 물을 머금고 수초들이 자라고 그 옆에는 풀과 꽃들이 나무들이 자라고 이렇게 되어서 벌레든 물고기든 짐승이든 새든 날아들고 싶은 산이 돼야지 그게 진정한 생명이 있는 산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입니다. 높은 산 같은 목회는 목사 홀로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산 아래를 휘돌아 흐르는 맑은 개울과 같은 사모님들의 섬김과 동역이 있기 때문에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계시록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사를 통해서 받으시는 향연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이 땅에 있는 성도들이 우리 주님께 올린 기도입니다. 그 기도가 천사들에 의해 받들어져서,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 올려지는 광경을 보여줍니다. 어떤 사람은 목회를 하기 전에는 거칠고 교만하고 아주 무질서했는데 목회를 하고 나서 점점 더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어갑니다.
저는 신학교를 한 25년 전에 신학교를 다닐 때 그때 이렇게 보면 ‘정말 저 사람이 목회를 할 수 있을까?’ 그런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친구들 중에 어떤 친구들은 여전히 그렇게 살지만 어떤 친구는 놀랍게 변했습니다. 들려오는 소리에 다혈질이고 성격이 급하고 성화되지 않아서 가끔 욕도 하던 아무개 전도사가 그렇게 많이 변한 목사가 됐대. 그래서 우리끼리 그랬습니다. ‘치, 지가 변하면 얼마나 변했을라고.’ 그랬는데 오래간만에 만나서는 정말 변했습니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여기에 써 있습니다. ‘나는 변했습니다.’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될까요? 어떤 사람은 말 합니다. 우리 목사님이 우리 사모님이 목회가 너무 힘들어서 고통을 받더니 성격이 이상해지셨습니다. 사실 그 말은 반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또 틀리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모든 것이 잘 돼가고 걱정이 없을 때 그 때 우리가 교만해지기가 얼마나 쉬운지 생각해 보십시오. 불쌍한 백성들을 끌어안고 그렇게 선한 목자처럼 살던 다윗이 나라가 강성해지고 여유가 있어지자 낮잠이나 즐기게 되었고 정욕에 빠져서 실패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까?
문제는 환경이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주거나 좋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게 아니라 우리가 어떠한 환경 속에서건 하나님을 어떻게 붙들고 사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모습은 아주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가 어렵고 힘들어도 사실은 그 어렵고 힘든 것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더 많이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께 자신의 이 고통스런 마음을 쏟아놓으며 간구하게 될 때에 그런 아픈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전혀 볼 수 없었던 자기의 잘못된 모습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되고 자기가 깨뜨려지는 경험도 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고난 속에서도 주님을 닮은 성품으로 바꾸어 가시는 방법입니다.
어느 날 교회 마당에서 앉아있는데 어느 후배 목사님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면서 말해요. ‘선배님 얼마나 좋으시겠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을 합니까?’ ‘나도 목회를 하지만 김 목사님이 부럽습니다.’ ‘뭐가 그렇게 부럽습니까?’ 했더니 첫째로 남들은 청빙을 받아가서 장로님들에게 그렇게 시달리고 권사님들에게 인격적인 대접도 못 받고 교회 목사라고 이름은 걸었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고용된 사람처럼 자기 뜻을 펼치지 못하는데 목사님은 당신 마음대로 목회를 하니 얼마나 좋으시겠습니까? 그래서 웃다가 내가 그랬습니다. 또 뭐가 부럽습니까? 어떤 사람은 개척 교회를 해도 잘 안돼서 문을 두 번을 닫았느니 세 번을 닫았느니 하는데 한 번에 개척을 해서 그득 교회가 이렇게 섰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또 뭐가 부럽습니까? 교인들도 이렇게 몇 천 명 많이 모이고요 또 뭐가 부럽습니까? 책도 쓰시고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읽고 또 수입도 있으시고. 또 뭐가 부럽습니까? 다른 목사님들은 몸으로 때우는데 그래도 목사님은 공부도 하셔서 그래서 말씀에 깊이도 있고 또 계속 연구하시고. 또 뭐가 부럽습니까? 또 가만히 보니까 목사님을 돕는 사람들도 많고 우리는 늘 일꾼이 부족한데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목사님은 걱정이 없어 보이는가 모르겠는데 당신은 개혁주의 신학을 연구했다는 사람이 왜 그럽니까? 그때 제가 마음의 고통을 많이 겪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있겠습니까? 장담하건데 나니까 여기에 있지 당신이 여기에 있으면 두 달도 못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이 누구인지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를 마냥 행복하게 놔두시면 진리의 샘이 마릅니다. 여러분이 어느 날 여러분의 후배 사모님들이나 아니면 교인들에게 그렇게 하면 안 돼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안 기뻐하셔 나도 해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 이 말을 한 마디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고 깨뜨려야 되는지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그대는 참 목회를 아직 모르는구나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을 사랑하시지만 교회는 하나님이 당신의 종들보다 더 많이 사랑하셔.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종들이 못됐어도 하나님이 교회를 사랑하셔서 용서해 주시기도 하셔 그러니 교회를 그렇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양떼들에게 새로운 진리의 말씀을 먹여야 할 텐데 그렇게 배부르고 걱정 없이 나태해진 종에게서 생생한 진리의 말씀이 쏟아져 나올 수 가 있겠니?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날마다 죽노라
똑같은 장소에 앉아 있는데 또 얼마 있다가는 예고도 없이 후배 목사가 찾아와서 불렀습니다. 목사님 생명력 있는 목회의 비결이 뭡니까? 죽음. 그게 무슨 뜻입니까? 자기 죽음. 목회자의 자기 죽음이 교회의 생명력의 비결입니다.
15년 동안 제가 목회를 했습니다. 이게 첫 교회입니다. 아마 그게 제 첫 교회로 끝나지 않겠습니까? 항상 제가 얘기를 하지만 오라는 데는 많아도 갈 데는 없다 그럽니다. 그런데 한 번도 아 이 자리는 딱 내 자리구나. 목회의 이 옷은 참 나한테 딱 맞는구나. 난 이걸 위해서 태어났구나. 한 번도 그렇게 느낀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많은 사연들을 안고 남들 보기에는 지도자의 길을 가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끊임없이 당신의 종들을 죽여 그 보혈을 짜서, 그래서 그것을 진리의 말씀이 되게 하셔서 그래서 성도들에게 그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목회라고 하는 것은 빵 공장이 아닙니다. 내가 가서 빵 수없이 만들어서 자 먹어라 휘익 던져 주는 게 그게 목회가 아니라 목회는 자식을 기르는 것과 같습니다. 어미인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그리고 자식들에게 가슴을 풀어헤쳐 젖을 물려주는 것과 같은 것이 그게 목회입니다. 그러니까 목회에서 이 하나님의 말씀에 강력한 역사는 먼저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의 마음속에서 일어날 때 이 말씀이 피를 바른 말씀이 되어서 자신 있게 선포되고 그 교인들에게 외쳐지는 것입니다. 기도 많이 하는 목사님은 뭘 설교하든지 기도하라고 교인들을 야단치지만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서 우리를 끊임없이 깨뜨릴 때 그것은 우리의 큰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목회에서의 시련과 고난이 있다 할지라도 그 시련과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붙들고 간절히 매달 릴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오히려 그렇게 매달리고 간절히 부르짖는 것 때문에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아마 여러분도 크고 작은 목회의 괴로움이 있을 겁니다. 왜 없겠습니까? 이 목회는 사람이 할 일이 아닙니다. 원래 주님이 하셔야 될 일인데 우리한테 맡기신 겁니다.
어느 목사님이 시골 길을 걸어가다가 고목나무를 만났답니다. 큰 고목나무가 있는데 갑자가 그리로 가더니 고목나무를 어루만지더니 ‘나무야, 나무야 너는 목회도 안 했는데 왜 속이 이렇게 뚫어졌니?’
(찬양)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고통 가운데 계신 주님
변함없는 주님의 크신 사랑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리
그래서 목회는 열심히 했는데 사람은 성품이 망가진 경우를 우리는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에게서 우리는 많이 봅니다.
이건 제가 직접 옆에 계신 분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한국 교회의 유명한 목사님이시죠? 이 분이 그 목사님과 함께 앉았는데 목사님이 핸드폰을 꺼내시더니 전화를 꺼내시더랍니다. 뭐가 잘 안 됐던 모양입니다. 핸드폰이 그럴 수도 있잖아요? 던져버린 겁니다. 나는 이해는 합니다. 왜냐하면 이 목회자 자체가 정말 사람으로 태어나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정말. 그래서 하나님이 정신 못 차리게 이게 바꿔 놓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지 죄인의 맨 정신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진짜 내가 직장에 다니고 사회에서 생활했더라면 쳐다도 안 볼 안중에 없던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기세를 부리고 세상에서는 별 볼일 없어서 짓밟히던 한을 교회에서 풀려는 듯이 감투 하나 뒤집어쓰고 나면 꼬장을 부리고 그러잖아요. 그래도 어떻게 해요? 양떼들인데. 그러면서 하나님이 우리가 주님 찬송하고 사랑할 때만 우리를 당신의 양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양 떼를 멀리 떠나 길 잃어 버렸을 때도 우리를 양 떼로 생각하셨던 것처럼 교인들을 그렇게 끌어안고 가는 게 목회 아니겠어요? 그래서 누가 그래요. 아 목사님 아무개 교인한테 정말 실망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그러게 왜 기대를 가져?’ 세상에 아무개가 나를 그렇게 대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교인들은 우리가 사랑해 주어야 할 대상일 뿐이지 기대를 걸고 무엇인가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그것은 안 됩니다. 그러면 반드시 실망을 합니다. 그래서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는 그리스도 예수를 가장 닮은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17세기의 영국의 청교도 존 오웬 목사님은 하나님이 사람인 목회자를 세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게 하신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목회자를 세우신 것은 진리를 가르칠 뿐 아니라 진리대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이다. 그것이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날은 교회가 회사를 경영하는 것과 좀 비슷하잖아요? 목회를 배운다 그럴 때 대부분이 사람 모으고 프로그램을 돌리고 교인들을 기쁘게 하고 성과를 거두고 이러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그것은 목회자의 본질적인 사명이 아닙니다. 오히려 목회자의 본질적인 사명은 진리를 사랑하는 게 뭔지 그 진리로 말미암아 변화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 찰 때 그의 인격과 삶이 어떻게 변화되는 것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 돕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목회자와 목회자 아내의 삶입니다. 그러나 목회자나 목회자의 아내도 모두 연약한 인간일 뿐입니다. 그도 역시 용서받기는 했지만 죄인이고, 소명을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편한 게 좋아. 여러분 만약에 목회자가 부임했을 때 수없이 뜯어먹고 고통을 주는 교회가 있고 목회자를 주님처럼 생각하고 그렇게 섬기고 존경하고 대우해주는 교회가 있다면 여러분 어느 교회를 가시겠습니까? 두 말 할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는 목회자의 아내와 함께 이중의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자기 밖으로는 죄인들과 끊임없이 씨름 하면서, 그리고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 끊임없이 전투하면서 주님의 교회를 지켜가고 그리고 그렇게 악한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그 영혼들과 더불어 씨름 하며 주님의 사람으로 길러가는 것입니다. 또 한 편으로는 자기 안에서 생겨나는 끊임없는 세속적인 욕망, 성공하고자 하는 유혹, 진리보다는 사람의 비유를 맞추고 싶어 하는 현실 타협주의, 이런 끊임없는 것과 더불어서 자기 안에서 큰 투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 속에서 이기게 하는 참된 능력이 어디에서 나올까요? 우리 안에서는 이것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나오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제껏 우리가 불같은 시험 어떻게 이겼습니까? 우리의 재능, 우리의 능력으로 이겼습니까? 불같은 시련, 폭풍과 같은 고난 어떻게 이겼습니까?
(찬양)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사람 때문에 이긴 것 아니고요 그 때마다 우리는 우리를 목회자로 불러주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이겼습니다. 사람으로 생각하면 당장 그만 두고 싶고 인간으로 생각하면 당장 교회를 옮기고 싶어도 그 사람들이 나를 불러서 여기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나를 택해서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말씀하시니 내가 너를 택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그리고 너는 이 포도원에서 포도나무를 돌보라고 맡겨주셨기 때문에 이 목장이 너의 목장이니 그리고 우리를 여기로 보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오게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 중 누구도 맨 처음에 주님 믿을 때 목회자가 되고 싶다는 소원을 가지고 예수를 믿어볼까? 그렇게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목회자가 되기 전에 이 세상에서 상처받은 한 마리의 어린 양이었고 그래서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그러한 인생의 막장에 들어와 있는 길 잃은 양들이었습니다. 그렇게 가시에 찔려 고통하고 괴로울 때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셨고 그리고 우리는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목 박히신 그리스도 예수의 그 고난을 보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과 나 같은 인간을 그 십자가로 그렇게 구원하시기까지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의롭지도 않고 쓸모가 있지도 않은, 올바르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은 만물의 찌꺼기와 같은 인간을 위해서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낮고 천한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 죽으시고 고난을 당하시고 살 찢으신 그 분의 고난을 보면서 우리 같은 인간을 하나님이 이렇게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걸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아무 소원이 없고 나를 위해서 예수님이 이렇게 자기를 다 버리시기까지 사랑하시고 생명주셨으니 이번에는 나도 주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겠구나 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껏 지고 있던 내 인생의 모든 짐을 버리고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목숨을 버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사랑이 내게는 가장 큽니다. 주님의 그 놀라운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주님께 우리 자신을 다 드렸을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찬양)
내게 오는 많은 양떼 너에게 맡겨 줄 터이니 사랑하는 내 친구야 많은 양 떼를 부탁한다
자기네가 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내가 자기네들을 부르는 게 아니라 주님이 나를 불러서 자기들을 치게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사랑할 때도 있고 버릴 때도 있고 우리를 귀하게 여길 때도 있고 찌꺼기처럼 우리를 취급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변함이 없으니 하나님의 사랑에는 변함이 없으니 우리가 그 하나님 때문에 섬기고 그 예수님 때문에 견디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목회에 있어서 모든 지도력의 그 원천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우리의 대적이 우리의 고난이 얼마나 많고 큰가가 문제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 편이신가 내가 주님 편에 서 있는가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역을 수종 드는 동안 고난과 시련이 앞으로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어찌 이 세상에서 하늘 영광을 사모하며 살겠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실수록 이 세상이 영원히 정들 수 있는 여러분의 집이 아닌 것을 알게 하셨기에 고난도 시련도 주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많이 기도하십시오. 사람에게 구차하게 변명하고 설득하려고 하지 말고 목회에서 만나는 모든 기쁨을 하나님보다 사람에게 많이 이야기하면 남들이 자랑한다고 하고, 목회에서 만나는 시련과 고통을 하나님보다 사람에게 많이 말하면 신세 한탄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를 불러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우리의 모든 목회 사역의 사연들을 우리 주님 앞에 쏟아 놓으십시다. 고난도 슬픔도 그 분께 쏟고 아프고 괴로울 때마다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우리같이 죄인 중에 괴수들에게 주님의 고난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합시다. 고난이 오고 시련이 올 때마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외칩시다.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요 내 모든 보배는 저 하늘에 있도다 라고 말입니다. 시련과 고통이 많이 와도 이 길을 걸어가도록 부르신 주님께 원망하지 말고 오히려 이 고난과 시련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안 가는 길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이 길을 걷게 해 주셨다고 감사하면서 맨 처음 목회사역에 우리 자신을 드릴 때 고백 했던 것처럼 존귀 영광 모든 권세는 주님이 홀로 받으시고, 멸시 천대 십자가는 우리가 지고 가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부모에게 아이의 울음소리는 가슴을 칼로 에는 아픔입니다. 목회자의 흘리는 눈물과 마음 아파하는 고통도 우리를 어머니처럼 불러주시고 아버지처럼 이끄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그런 고통일 겁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고난과 시련 속에 부패하고 타락하고 낙심해서 불충성한 자가 되고 하는 그것이 두려운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는 더 많이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은퇴를 앞둔 선배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분이 얼마 전에 간증을 하시는데 금년에 은퇴를 하십니다. 어느 날 밤에 잠을 자는데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생전 그런 꿈을 별로 안 꾸었는데 주님이 나타나셨답니다. 그래서 그 모습은 그 빌라도의 뜰에서 고난을 받으시는 그 모습 그 대로 온 몸이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고 머리에는 굵은 가시관을 쓰고 그리고 피가 낭자한 가운데 당신을 바라보시더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꼭 한 말씀을 하시더라는 겁니다. ‘얘야 내가 너를 위해서 이 고난을 당했단다.’ 목사님이 새벽에 자면서 벌떡 깼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오랜만에 은퇴를 앞두신 목사님의 마음속에 ‘아 예수님 당신이 그 피 흘리신 그 고난이 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홀로 예배당에 가서 한 없이 울면서
(찬양)
머리에 가시 면류관 어이해 쓰셨는가 채찍에 피 흘리심은 누구의 죄 값인가
마지막 피 한 방울 날 위해 흘리셨네
제가 그 간증을 들으면서 마음에 깊이 찔렸습니다. 자 그 목사님은 밤에 일어나서 예수님의 그 십자가에 피 흘리신 사랑을 깨닫는데 이제는 더 섬길래야 섬길 교회가 없어요. 은퇴자는. 아직 섬길 기회가 있는 동안 그리고 아직 섬길 건강이 있는 동안 아직도 교인들이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동안 그 때, 그 때 바로 그 십자가의 사랑을 간직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모두 다 지나가는 겁니다. 다 지나가는 것들. 목회도 영원하지 않고 교회도 영원히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주님이 목회자로 목회자의 아내로 세워주시는 동안 십자가의 주님을 깊이 사랑하면서 주님이 여러분을 위해 죽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주님을 위해 죽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우리같이 기도하실 때 하나님 오늘도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들이 들은 말씀처럼 우리가 이 목회사역의 길에 들어선 것이 우리가 택한 것 아니요 교인들 보고 여기에 온 것 아니요 좋은 대접받기 위해 이 길 들어선 것 아니니 하나님 존귀영광 모든 권세는 주님이 홀로 받으시고 주님의 교회가 온전해질 수 있다면 우리 한 알의 밀알이 될 수 있도록 고난을 감당하겠사오니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옵소서. 우리 같이 하나님 앞에 한 마음으로 기도하십시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