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 온가족 여름수련회
새벽예배 모음
설교기간|1995년 7월 31일 - 8월 3일
1995.7.31 온가족 여름수련회 새벽예배
편집내용|녹취원본
출 력 일|2013년 3월 23일
목 차
1995.8.1 온가족 여름수련회 새벽예배
1995.8.2 온가족 여름수련회 새벽예배
1. 새벽예배 모음①(시 103편) 1995.7.31 온가족 여름수련회 새벽예배 1
2. 새벽예배 모음②(시 107:19-21) 1995.8.1 온가족 여름수련회 새벽예배 3
3. 새벽예배 모음③(대하 20:20) 1995.8.2 온가족 여름수련회 새벽예배 7
4. 새벽예배 모음④(사 43:25) 1995.8.3 온가족 여름수련회 새벽예배 11
1995.7.31 온가족 여름수련회 새벽예배
1995.8.1 온가족 여름수련회 새벽예배
1995.8.2 온가족 여름수련회 새벽예배
1995.8.3 온가족 여름수련회 새벽예배
1.새벽예배 모음 ①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 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는도다 그의 행위를 모세에게, 그의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곧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그에게 수종들며 그의 뜻을 행하는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시 103편)
오늘 이 시를 쓴 사람은 다윗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대부분의 고통은 이 세상에 있는 물질이나 환경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우리의 고통은 사람을 통해서 옵니다. 때로는 믿었던 사람을 통해서 배신을 당하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오히려 보복을 당하거나 그런데서 우리의 고통이 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살아갔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언제나 사람들로 말미암아서 고통을 당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 다윗처럼 인복이 없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늘 사람을 통해서 그의 인생에 고통이 왔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으로 말미암아 당하게 되는 그 고통은 우리가 선하고 악하고 심지어는 우리가 믿음이 좋고 나쁘고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우리가 사람으로부터 만남으로부터 고통을 당하게되고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로부터 고통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 이런 환경을 지나면서 다윗은 한 지혜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고 그런 속에서 큰 구설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고통을 받으며 오해를 받고 시련을 당하게 될 때에 이 다윗은 아마 배운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해결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그래서 오늘 말합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하나님께로 피하기 위해서 사람들로부터 도망하는 사람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그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이런 신앙의 많은 요소들은 모두가 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경험을 통해서 체험을 통해서 신앙이 무엇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인생들이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향하여 피하는 사람들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인생 앞에서 사람으로 말미암아 많이 고통을 받을 때 그 때에 하나님께 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했는데 그 사람을 가리켜서 주를 두려워하는 자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 그를 위하여 쌓아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깨달았던 것입니다.
오해를 받거나 비난을 받거나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원망을 받을 때에 그 때에 사람과 더불어 싸우고 사람과 더불어 다투지 아니하고 고요히 하나님께로 피하고 그 하나님 앞에서 사정을 아뢰며 그 하나님과 은밀히 교제를 나누면서 그 하나님으로부터 새 힘을 공급받으며 사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로 피하는 사람에게만 베풀어 주시는 축복을 베풀어 주신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놀라운 은혜를 이 시인에게 깊이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인생을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세월을 보내며 그렇게 훌륭한 인복을 같지도 못했고 그랬지만 그렇게 사람들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고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께로 피하게 되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때마다 이 시인에게 사람들로부터 배반당할 적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하게 만들었고 인생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을 때마다 하나님 안에 있는 평안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이 시인에게 하나님께서 깊이 알려주시는 그런 은혜를 오히려 받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기를 원하지만은 그러나 우리의 마음속에 이 사람들을 향한 원망과 미움이나 이런 것들 때문에 우리의 영적인 삶에 방해를 받는지 모릅니다. 우리들이 정말 이러한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하나님 앞에 은혜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여호와께로 먼저 피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리고 사람들로 말미암아 받는 그런 모든 고통으로부터 우리들이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 더 긴밀해지고 하나님께로 피하는 이러한 신앙이 우리들에게 있어질 때에 그 때에 우리들이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그 참된 평안으로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이러한 힘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시간에 하나님에 그 은혜로우심,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당신에게만 피하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예비하신 그런 은혜를 충만이 여러분들이 느끼면서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사정을 아뢰는 그런 시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새벽예배 모음 ②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시 107:19-21)
사람이 누구든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통의 문제만큼 인간을 힘들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참 이 고통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든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잃어버리고 그리고 좌절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신앙의 영역에서 보면 이 고통의 문제만큼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참 신비하게끔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고통은 언제나 그 고통 자체가 아니라 그 고통 자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고자하는 그런 메시지를 우리들이 받아야합니다.
(예화) 애벌레에서 나방으로 진화되는 과정이 천천히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고 어느 부인이 가위로 껍질을 잘라주었는데 날아가지 못하고 땅에 끌리면서 날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깨달은 사실은 아픔과 고통을 경험함으로서 하늘을 향해 날을 수 있는 강한 몸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야기
그러니까 우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통의 문제를 그렇게 간단하게 동정심만 가지고 바라보는 것도 우리들이 삼가야 되는 일입니다. 오늘 여기서도 시인이 바로 큰 고통을 만났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그런 큰 고통을 만나게 되는데 그런데 그 고통 속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고통의 문제를 치유하시는 것을 이 시인이 깊이 경험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치유하시는 데는 거기에는 몇 가지 정해진 순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엄격하게 이 절차를 따라서 고쳐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절차를 자꾸 뛰어 넘으려고 하는데 그것은 인간의 다급한 마음이고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게 그런 순서들을 밟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고통가운데 있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치유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그 고통의 문제를 하나님께 의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그 고통이 크면 클수록 사람들은 말하자면 하나님 앞에 그 고통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그런데 고통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만 그러나 그 고통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기도하면서 개선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가 개선이 되는 것입니다. 바뀌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몰랐지만 자신의 인생이 절박한 문제를 들고 하나님 앞에 늘 나아가서 간구할 때마다 무엇을 보게 되는가 하면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보게 되고 하나님의 그 사랑을 느끼게 되고 하나님만으로 자기가 만족하고 하나님 자체를 기뻐하지 아니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정말 진실하게 예배를 드리게 되면 또 진실하게 기도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자신의 삶 전체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형식적인 예배와 형식적인 기도,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그 커다란 재앙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익숙해지게 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배 앞에 나오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을 때에,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보게 하시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거울이 되게 하셔서 자신의 삶을 다시 고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예배와 기도를 통해서 다시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습을 점검하고 또 다시 기도할 힘을 얻게 되고, 그리고 그렇게 기도하면서 삶을 바르게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늘 우리를 인도하시고 고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어있는 신앙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하나님 앞에 제사드리고 하는 일들이 자신의 신앙에 엄청난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즉시 하나님이 자신의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신다는 사실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형식밖에 남지 않게 되면 그 다음에는 그런 것들이 전혀 자신의 신앙에 도움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늘날 우리들 가운데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하고 헌금하고 그러는 것들이 자기의 신앙에 거의 도움을 주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과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돌아볼 수 있는 그런 힘을 예배 속에서 상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 자신이 그 형식적인 삶 속에서 탈피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그렇게 고통의 문제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정한 그 절차들과 과정들을 거치면서 하나님은 고통의 문제를 통해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또 우리는 그 고통의 문제를 통해 하나님 앞에 기도하므로 해결함을 받는 그런 관계로 나아가서 문제도 해결되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해결되어져서 결국은 세월이 지나고 뒤 돌아보면 내게 고난당한 것이 유익이라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고난당한 후에는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도다 하면서 그런 고통스러웠던 시절로 인해서 오히려 주께로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이렇게 말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그게 무엇인가하면 큰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 힘으로는 안 돼. 정말 여호와의 그 은혜와 그 하나님이 손이 아니면 안 되겠다 그러면서 큰 근심 중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고 싶은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지점에서 실패하게 되면 그 다음에 사람은 둘 중에 하나를 해야 됩니다. 큰 근심 중에 낙담을 하던지 큰 근심 중에 자기의 방법대로 인생을 개척해 나가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해야 됩니다. 인간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절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힘으로 해결해보려고 하고, 큰 근심 중에 낙심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그 지점에서 인간들이 하나님의 뜻을 쫒지 않으면 하나님은 기다리십니다. 언제까지.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까지.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고 주의 도움을 구하고 그러기 위해서 당신 앞에 나아올 때 그렇게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 고통가운데에 건지시는데 먼저 어떤 일을 하시는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저희들을 먼저 치려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이 고통의 문제는 단순히 그 고통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 고통의 문제가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좋게 변화를 시키든지 나쁘게 변화를 시키든지 변화를 시키십니다. 그래서 신앙의 영역을 떠나서라도 인생을 너무 많은 고통가운데서 살아온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이나 느끼는 것들이 정상이 아닙니다. 지금 그런 고통을 받으며 살아온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통은 우리를 정상이 아닌 사람들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는가하면 그런 사람들이 고통이 해결돼도 고통은 끝나고 환경은 해결되었는데 자신은 고쳐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옛날에 어머니들이나 할머니들을 보면 젊은 날에 시집살이를 하고 남편과 시부모들에게 학대를 당하고 요즘이야 그런 사람들이 있지도 않지만 옛날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그랬습니다. 나중에는 자기를 학대하던 시부모가 돌아가시고 이제 남편도 세월이 지나서 개과천선해서 정신 차리고 그리고 물질적으로도 넉넉하고 환경이 편한데 꼭 한의원에 가서 진찰을 해보면 화병이라고 그럽니다. 왜냐면 충격은 고쳐져도 환경이 오랫동안 고통을 줘서 망가진 우리 자신은 환경이 변해도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우리 주위에 있는 그런 모든 것보다 소중한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서 소중하게 여기시니까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먼저 그 자신을 고치시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니까 “말씀을 보내사” 하나님의 말씀을 보내셔서 그래서 우리의 환경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의 영혼 속에 말씀을 보내셔서 그래서 우리를 고치고 치유하시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우리를 치료하시는 것이 없으시면 우리는 계속해서 이 세상에서 평화를 만들고 샬롬을 만드는 그런 도구로 쓰여질 수 없습니다. 환경가운데 고통을 받게 되었지만 그러나 다 끝났습니다. 상황이 끝났지만 그러나 나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내게 상처를 주고 환경은 내게 상처를 주고 환경도 이미 다 정리가 되었고 사람들은 다 잊어버렸지만 그러나 환경이 끝나고 사람들은 잊어버려도 내 마음 속에는 이 고통의 문제가 가져다 준 상처는 해결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치유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말 그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을 치료하리라고 하는 간절한 소망과 사랑을 내 마음속에 지니고 있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치료하시는 역사들을 우리들이 경험하기가 어렵습니다.
(예화) 예전에 집회에 참석하셔서 말씀을 듣고 오시는데 어느 형제가 할 말이 있다며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부득불 따라오며 말하기를 요구해서 함께 하며 그의 말을 들으니 죄의 문제에 대한 고통의 문제였는데 그 다음날도 집회에 참석한 그 형제는 말씀을 듣는 순간에도 엎드려 말씀을 듣는지 안 듣는지 그런 모습을 보고 그런 태도는 그의 죄의 문제가 고쳐지지 않기에 마음이 아팠다는 이야기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환경으로부터 우리를 건져 주시고 동시에 하나님은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그 말씀으로 우리를 고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치료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이 우리 속에 있는 이런 모든 고통은 지나갔어도 고통이 가져다 준 그런 그 찌끼와 상처들을 하나님께서 새살이 돋아나게 하시고 변화시켜 주셔야 우리가 진심으로 마음으로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주님의 참된 사랑을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살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10명이 있어 가서 마음을 두드리면 8명은 전부다 비정상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자기가 받았던 고통이나 이런 것들 때문에 이 속에 전부다 큰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다른 사람에게 또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모든 해결은 그 상처를 능가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만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치시는 방법입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고치시고 그 말씀이 우리를 치료하시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인생에 있어서 고통의 문제는 하나님의 능력에 손으로 건지시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내어서 우리의 영혼도 치료하시고 그래서 완전한 해결에 우리들이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이 있기 전에 그 하나님의 완전한 해결을 바라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생각을 하나님 앞에 맡기고 그리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구하는 주님의 손에만 우리의 인생에 문제를 향한 완전한 해결과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상한 마음을 가지고 그리고 진실하게 하나님께 애통하는 사람의 간구의 기도를 주께서 귀를 기울이고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면 하나님의 신실한 성품에 모순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평범한 사실을 이미 오래 전에 시인이 경험했던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고통가운데서 건지시고 또 한편으로 그 고통가운데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내셔서 어두운 눈을 밝히고 그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고통스런 찌끼들을 씻겨주셔서 그래서 우리들이 고통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아픔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 이런 것들을 우리들이 가슴에 소유하고 있을 때 비로소 우리들이 사람들을 새롭게 하고 고치는 도구로 쓰여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3.새벽예배 모음 ③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대하 20:20)
역대기에 기록된 이 본문은 여호사밧이라는 임금 때에 일입니다. 그런데 이 여호사밧은 지혜는 좀 부족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뢰한 임금이었습니다. 그 임금 때에 모압과 암몬이라고 하는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있는 이방 족속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모압과 암몬 족속들이 유다 나라를 치기 위해서 연합군을 만들어서 쳐들어 왔습니다. 쳐들어 왔을 때에 이 여호사밧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작전회의를 소집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전, 새 뜰 앞에서, 그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의 회중 가운데 서서 하나님 앞에 간구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우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옵나이까 이방 사람들도 하나님의 손에 있지 않습니까? 우리를 국가적인 위기에서 건져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탄원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선지자가 나와서 그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고 그런 하나님의 계시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왕이 전쟁을 하기 위해서 드고아 들로 나아갈 때에 이 왕은 백성들에게 두 가지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을 전쟁으로 이끌고 갔던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 너희가 견고히 서리라. 오늘날 우리들이 신앙생활에서 안고 있는 가장 안타까운 문제 중에 하나는 집회에 오거나 아니면 말씀을 들을 때 모두 짐승의 마음을 갖고 있지 않은 다음에야 가끔은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되지. “주님 나도 어떻게 좀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변화를 향한 그런 갈망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하면 한 번의 기도로 자기의 삶이 변하고 자기의 생각이 바뀌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바꾸시는데 우리가 견고하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꾸준히 하나님을 추구해서 그 하나님에 의해서 우리 자신들이 바뀌는 그런 일들이 필요합니다. 견고함이 필요합니다. 그 견고함이 심각하게 결핍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잠시는 진지할지라도 그 진지한 것이 완전한 변화로 이어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생각의 변화도 그렇고 사람들의 모든 것들이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진지하게 하나님 앞에 견고하게 서서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지만 무슨 변화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진지해져야지만 뭔가 그 속에서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데 그렇게 진지하고 견고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견고하지를 못하니까 언제나 쉽게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좋은 것을 얻을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이 골짜기를 보면 여기 골짜기가 우리나라에서 아주 유명한 골짜기입니다. 그 개울들이 이제 흘러내려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다가 관인면 지날 때 개울을 하나 건넜습니다만 거기도 보면 대단히 멋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정도가 아니라 저 위로 올라가보면 정말 계곡이 그림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계곡들을 들여다보면 그 계곡 가장자리가 바위로 되어 있습니다. 바위가 있으니까 멋있는 것입니다. 바위로 되어 잇는데 얼마나 물이 지나갔는지, 몇 십 년, 몇 천 년을 지났는지 바위가 그 물의 흐름을 따라서 깎여있습니다. 하루아침에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도록 견고하게 서 있던 바위지만 오래도록 물이 쉼 없이 흐르니까 그 바위가 깎이는 것과 같이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바라본다고 뭔가 뜻을 정했으면 그 뜻을 견고하게 붙들고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어디서 나오는가 하면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서 나오는 힘입니다. 믿습니까? 그러니까 자기가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불순종하고 또 이 머릿속에는 쓸데없는 그 생각의 찌꺼기들이 잔뜩 쌓여 있는 것입니다. 덕지덕지 쌓여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슴 속에는 얼마나 쓸데없는 것들에 대한 사랑이 오랜 세월동안 가시덤불과 같이 쌓여 있는데 감정적으로 어느 한 순간에 확 솟구쳐서 그 문제가 해결될 것같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 나오는데 그렇게 견고함이 없습니다. 부흥회 때 막 이러고 나서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지속적으로 간구하고 그때 가졌던 고민들을 오래도록 지속하면서 그러면서 하나님을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약한 것입니다.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는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은 좋은 것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어느 한 순간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정말 진지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전에는 장난과 같이 신앙생활을 하던 것, 농담처럼 듣던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어느 한 순간에 깊이 회개하고 그리고 눈물을 흘리고 마음이 새로워지게 됩니다. 그것이 시작입니다. 그것을 출발점으로 해서 계속해서 자기 가운데 그 모든 신앙적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그 힘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하나님을 의뢰하는 이런 지속적으로 견고하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이런 신앙에 서야지만 뭔가 변화가 오는데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 믿음이 약하기 때문에 쉽게 모든 것들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이 우리들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오늘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또 한 가지를 말하는데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그러니까 선지자를 신뢰하라는 것은 선지자 개인의 인격을 신뢰하라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가 선지자일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그 일들이 구체적으로 선지자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그 말씀에 대해서 우리들이 믿음으로 반응할 수 있는 이런 관계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저는 정말 사심이 없이 이야기 하는데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 또 다른 교회에서 오신 분들도 있고 어쩜 앞으로 다른 교회에 가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로 가든지 목회자와의 관계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리고 마음으로 따르고자 하는 이러한 마음의 심성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 앞에 반석과 같이 굳은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마음속에 참 커다란 어려움들이 언제나 우리 신앙생활에 우리 자신이 굴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가 여러분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일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감으로 해서 그 많은 양떼들이 자신의 삶을 보고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깨닫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향하여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으로부터 변화를 받고 그 말씀을 깨닫고 깨달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믿음으로 반응하고 하면서 우리의 믿음과 신앙이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회자가 한 교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하는 일들은 대부분 이 세상에서 일을 하다가 일손을 놓고 퇴근하면 그것으로 모든 일들이 끝납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들이 이제까지 신앙생활을 다른 교회에서 혹은 우리 교회에서 하면서 여러분들이 얼마나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하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은 목회자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마르고 하나님의 계시의 음성이 들리지 아니하면 여러분의 영혼에 내리는 비도 그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극하고 심한 가뭄이 교회 안에 가득하게 됩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그런 신앙생활을 형식적으로 영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지난 1년 반 동안에 약 오백 시간의 설교를 했습니다. 테이프가 제가 생각하기에 오백 개 정도가 됩니다. 외부에서 강사들이 거의 오지 않았습니다. 혼자 설교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의 한계가 있고, 체험한 신앙의 한계가 있고, 자기가 알고 있는 성경의 지식이 한계가 있는데 그렇게 많은 양의 하나님의 말씀을 토해놓으면서 끊임없이 매시간 예배를 드릴 때마다 완전히 다른 신앙의 세계와 말씀의 세계를 보여준다는 일이 얼마나 벅찬 일인지 여러분은 기억을 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이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할 때 어떻게 왕부터 시작해서 모든 백성들까지 그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 깊이 감화를 받고 이 난관에 처해있을 때 인간의 방법과 수단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뢰하고 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의뢰하겠다는 신앙적인 반응을 볼 때에 이 선지자는 커다란 격려와 하나님이 자기를 사용하고 계신 큰 위로와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든지 여러분들이 목회자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십시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고 그리고 여러분들이 그 손에 의해서 창조된 하나의 피조물일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는 결코 여러분과 더불어 다투거나 여러분과 더불어서 어떤 일들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면서 여러분과 인격적으로 다투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 이 여호사밧이 국가적으로 큰 난국과 위기에 처했을 때 그는 신앙의 핵심적인 요소를 간단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애들아,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 우리 하나님을 의뢰하라.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을 주셔서 우리에게 승리를 예언한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고 그들은 전쟁터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혜를 주셔서 매복을 하게 하시고 그래서 엄습해오는 적군들을 모두 진멸하고 그 땅에 평화가 오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되고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와의 관계가 바르게 된 가운데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을 가져야지 그것이 역사하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의 시간에 우리 고요히 생각합시다. 주님, 항상 우리에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통해서 환경을 볼 수 있는 이런 믿음을 주시고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진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로부터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했는지 오늘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을 깨닫게 해주시기를 하나님께로 그 선지자의 말을 청종하도록 부르시는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서 우리가 좀 더 진지하게 반응할 수 있는 이런 신앙들을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우리를 그 진리로, 그 말씀으로 우리를 빛 가운데로 인도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 우리 같이 기도합시다.
4.새벽예배 모음 ④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사 43:25)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시든지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하십니다. 그것을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시기 위함이라.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거나 은혜를 주시거나 무엇을 주시든지 하나님은 목적이 없는 일은 안 하십니다. 거기에는 분명한 우리의 인생을 향한 목적이 있고 그리고 계획이 있고 요구가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혹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누리며 살 수 있는 여러 가지 물질의 축복을 주시고 또 건강을 주시고 이런 모든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 속에 그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나름대로의 독특한 계획을 우리들이 깊이 알고 그리고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람으로서 그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알며 살아야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촉진되고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더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더 많은 것들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이나 그 다음에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나 이런 것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주신다는 것은 다 알겠는데 죄사함도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위하여 우리의 죄를 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도말하시고 우리를 하나님과의 관계로 돌이키셔서 그 관계의 풍요함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도 사실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서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서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한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가 왜 하나님의 은혜를 쉽게 잃어버리는가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을 때에 그 하나님의 계획을 묻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하필이면 나 같은 사람에게 이렇게 깨닫게 하시고 그리고 내가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여기에 두셨는가. 그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가. 그것을 늘 물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이 43장 전체에서 계속하시는 말씀이 이 백성은 나를 위하여 지었다. 또 이 백성은 내 찬송을 부르기 위하여 내가 만들었다. 또 내 영광을 위하여 이 백성들을 창조했다. 이 백성들은 내 것이다. 이 백성들은 내 이름을 위하여 만들어진 사람들이다. 그렇게 43장 전편에서 간절히 하나님께서는 왜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만드셨는가 그것을 계속 논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지 않는다면 살았으나 사실은 죽은 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앙의 눈을 가지고 바라볼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지 않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무슨 부를 누리고 그리고 어떠한 영광을 가지고 살아가든지 간에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부러움의 이유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도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너희의 허물을 도말하고 너희의 죄를 기억지 아니하는 것도 그것은 바로 나를 위하여 하는 것이라고 하나님이 오늘 자신을 소개하십니다. “나는 너희의 죄를 도말하는 자다” 도말한다는 것은 깨끗이 지워버린다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의 죄를 깨끗이 지워버리는 자다 하면서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우리들에게 소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는 우리의 삶을 향한 메시지는,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깨끗이 하는 분이시니까 누구든지 죄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사죄함을 받으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렇게 죄의 용서함을 받은 사람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서 사는 것이 기쁨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그것은 우리가 늘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서 또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지식을 따라서 우리가 매일매일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너희는 내 마음을 나에게 달라” 그것이 주님의 음성입니다. 죄사함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마음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드리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사함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갚을 수 있는 최대의 일입니다. 그래서 어제도 우리들이 살펴보았습니다만 우리의 삶이 떠나고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뜻을 떠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떠나기 전에 먼저 마음을 떠나는 일들이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 마음을 굳게 지키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이제 잠시 지나갑니다. 그리고 속히 날아갑니다. 그때 우리의 인생이 허공을 치고 바람을 잡는 것 같은 그런 인생을 살면서 우리 머리에 흰머리가 돋아나고 그러면서 우리의 인생이 이렇게 끝나간다면 정말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불행한 일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 그 일을 위해서 살아있는 사람들, 그런 삶을 부러워하고 그리고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 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어떤 도움이 되고 있는가. 그리고 정말 하나님 앞에 내가 이대로 이렇게 계속해서 살고 내 인생을 마치면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정말 그 하나님 앞에서 내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런 진지한 고민들이 우리의 삶 속에 늘 다가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새벽의 시간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너희의 죄를 사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의 시간에 기도할 때 “주님 우리 자신을 위하여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로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같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