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에 맞는 일꾼
“장인이 온갖 것을 만들지라도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자를 고용하는 것과 같으니라“ 잠26:10
녹취자:이병두
“고마우신 주님! 잠시 저희들이 말씀을 살필 때, 이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양약이 되게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장인은 기술자를 말합니다. 그 기술자도 종류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목수일을 하는 사람들도 보면, 다 목수가 아니라 대목,중목,소목이 있습니다. 소목은 그냥 나무나 짜르고 대패질을 할 수도 있습니다. 소목,중목,대목은 체중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의 차이를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소목은 대패질,나무 자르는 것, 중목은 못질하고 간단한 구조물 같은 것을 만듭니다. 대목은 아주 정교한 일까지 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맡기면 그 나머지 목수 기술자들을 부릴수 있는 그런 사람을 대목이라고 하고, 이런 사람들이 장인에 들어갑니다. 장인은 혼자 일하지 않고 항상 기술자를 데리고 일을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까 “장인이 온갖 것을 만들지라도” 무슨 뜻입니까? 소목도 일하고,중목도 일하고 다 일하지만, 소목 밑에서 허드레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치만 어느 집에 건축의 목공일이 아주 아름답게 끝났을 때에 그것을 다 누가 했느냐하면, 다 대목이 한 것입니다.
(예화) 저도 한번 그런 마루를 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여러해 전에 버킹검궁이 불이 났습니다. 불이 났으니 얼마나 난감했겠습니까? 여왕인 엘리지베스2세가 제일 신경 쓰이는 부분이 무엇인가 하면, 그래도 명색이 대영 제국의 궁인데, 마루가 소실되었습니다. 마루를 다시 깔아야 했습니다. 이탈리아에 마루를 잘 까는 세계적인 회사가 있습니다. 가을에 이탈리아에 가서 가구나 건축자재를 보면, 갑자기 아주 심한 박탈감 같은 것이 듭니다. 너무너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의 역사를 보면 로마시대 이전부터 내려오는 장인들의 정신이 배어있기에 굉장합니다. 그 마루로 놓는 것입니다. 명색이 대영제국 왕의 궁인데 가격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깔았습니다. 엘라자베스2세 여왕이 그 마루를 보고 얼마나 감탄을 했는지 손수 편지를 그 회사에 보냈습니다. 그 회사로 여왕의 친서를 쓰고 사인을 해서 보냈습니다. 그런 잡지에 아무 것이나 실리겠습니까? ‘당신네 회사의 마루가 최고라고, 이 세계에서 이 궁에 마루를 깔 수 있는 사람들 중에 있어서, 당신네 회사가 최고입니다.’라고 친서로 사인이 한 것이 잡지에 실렸습니다. 그런데, 그 재료가 아무리 기가막히게 좋아도 그 재료를 가지고 시공하는 사람들의 시공력에 따라서 기술은 천차만별입니다. 그것은 오직 지휘하는 그 사람에 의해 좌우됩니다.
(예화)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인간이 세계에 건축한 건축물 중에 최고의 높은 건축물인 ‘버즈두바이’가 완공이 됩니다. 180여층으로 지금 현재 높이가 650m 정도됩니다. 인간이 현재 기술로서 올릴 수 있는 높이가 850m까지 입니다. 그것을 삼성이 세웠습니다. 최고입니다. 한국 사람은 거기에 몇 명 안됩니다. 100명 미만일겁니다. 나머지는 전부 현지 근로자들을 씁니다. 그게 바로 옛날에 우리가 중동에 기술 수출 했다는 것이, 건설 수출을 한 것이 아니라, 미국 사람이 집을 지으면 거기서 데모도하고 흙을 나르면서 돈을 번 것입니다. 진짜로 시공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중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고속도로를 깐다고 하면 콘크리트 치는 것은 현대건설 같은 곳에 맡긴 것입니다. 상표로 대한민국 어느 회사 이름으로 납품되지 않은 것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그러다가 기술력이 축적되면서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장인입니다. 장인은 온갖 일을 합니다. 왜냐하면, 장인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일을 해야 될 것인가 하는 모든 구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목수 장인은 목공일에 대한 구상만 있고, 철공 장인은 철물에 대한 생각만 있지만, 건축가는 집 전체에 대한 생각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이 모든 세상에 당신의 나라를 이룩하시기 위해서 수많은 장인들을 이 세상에 보냈습니다. 그 장인중에 최고의 장인이 예수그리스도가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 있는 생각을 이땅과 하늘위에 모두 펼치시기 위해서 장인으로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아버지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지만, 아들은 장인이 되어서 그 생각을 아버지의 뜻에 맞겠금, 인간의 마음안에, 이세상 안에, 그리고 하늘나라 안에 이 모든 일들을 이루심으로써,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상실한 창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아주 놀랍게 역사하셔서 이 일들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장인은 혼자 일하지 아니 하시고, 또 그 밑에 많은 장인들을 두셨습니다. 그게 바로 선지자와 제자들 아니었겠습니까? 그 분들은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서 그대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밑에 또 작은 장인들을 많이 두셨습니다. 목사와 교사들, 교회의 박사들 이런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 장인들이 온갖 일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온갖 일을 할지라도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자를 고용하는 것과 같다.’ 하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못땠다’ 라는 그런 뜻이 아니라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장인이 일을 할려면 누가 기술을 가지고 있나 그런 사람을 불러야 하는데, 지나가는 사람을 부르는 것으로 아무 기술이 없는 사람을 불러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구상을 이룰려고 하는데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오히려, 이미 이루어 놓은 일을 망치지 않겠습니까? 기가막힌 표현입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 생각없이 그를 택하는 것처럼 장인이 미련한 자를 선택하는 것은 아무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장인이 아주 뛰어난 일에 계획을 가질 지라도 미련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은 자기 일을 망치기로 스스로 작심한 자니라’ 이렇게 풀어쓸 수 있는 것입니다.
궁금한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장인이라기 보다는 장인이신 주님의 손에 의해서 쓰임을 받는 사람인데, 그럼 도대체 여기서 ‘미련하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런 뜻입니다. 특이한 것은 ‘장인이 모든 일을 할지라도 기술이 없는 자를 택하는 것은 지나가는 자를 뽑는 것과 같다’라고 하면 설득이 쉽게 되겠는데, 갑자기 여기서 ‘미련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성경에서 나오는 특히 잠언에서 나오는 ‘미련하다’라고 하는 것은 지혜와 관계가 됩니다. 지혜로운 자의 반대가 미련자입니다. 그러면 이 미련한 자는 어떤 미련한 자입니까? 지혜가 없는 자입니다. 무슨 지혜가 없는 자입니까?
이것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신령한 지혜가 없는 사람입니다. 또 하나는 자연적인 지혜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여기에 불러주셨구나. 내가 여기에서 충성되게 섬기면 이일이 비록 아주 작은 일이라도 결국 하나님이 나를 높이실 것이다. 인정해 주실 것이다.’ 이것은 영적인 지혜에 속한 것입니다. 또 ‘나같이 불결하고 더러운 인간이 주님께 이렇게 쓰임을 받다니, 이 은혜을 어떻게 감사할까?’ 이런 것 들이 모두 신령한 지혜입니다.
또 하나 예를 든다면, ‘아~ 나는 참 많은 지혜를 가지고 왔는데 알고 보니까? 내 지혜 만으로 안되는구나! 내가 하나님을 더 많이 의지해야지!’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의지하고 매달리는 것은 신령한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자연적인 지혜는 도덕적인 지혜와 물리적인 지혜로 나누어집니다. 도덕적인 지혜는 이런 것입니다. ‘내가 비록 이 회사에 먼저 들어와 있지만, 내가 교만하고 아랫사람들 무시하고 이렇게 하면 내 평판이 회사에서 안좋아져서 내 출세에 지장이 있겠구나!’ 이런 것이 도덕적인 지혜입니다. 이것은 신령한 지혜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도 하지만 본성의 빛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회사에서 이렇게 잘 뻗어나가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항상 회사에서는 남이 승진하면 김밥싸서 된거고, 즉 아부해서 된 것이고, 자기가 승진하면 능력이 있어서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이 직장에 들어 온 것은 실력이 없어서 온 것이고, 자기가 이 직장에 온 것은 재수가 없어서 온 것이고, 다른 사람이 승진 못한 것은 무능한 것이고 내가 승진을 못한 것은 올바로 했는데 핍박을 받아서 못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일을 잘 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한사람을 거기에 심었을 때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장인이 해내고자 하는 그 일에 궁극적으로 이바지해야 합니다. 문은 기가 막히게 만들었는데 문하고 벽하고 아구를 안맞게 만들면, 기가막히게 땀을 흘리면서 만든 그 문이 장인에게는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차라리 문을 약간 예쁘게 못만들었어도 벽 만드는 사람하고 기가 막히게 의사 소통이 되서 만들어, 딱 들어 맞을 때 장인에게 있어서는 더 좋은 기술자입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보면,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옷을 벗고 나가고, 일을 아주 잘하지는 못해도 오히려 승진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이 김밥을 잘 쌌기 때문에 승진 했다고 하지만, 그게 아니라 회사의 지도자들이 보기에는 일의 기술에 있어서 저 사람이 더 훌륭할지 모르지만,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일을 해가는데 있어서는 이 사람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쓰는 것입니다.
(예화) 예전에 국민일보에 쉴새없이 전도왕으로 나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때 전도팀 맡았던 김준석목사가 있었는데, 감동도 잘받고 필도 잘 꽂힙니다. “아 ~ 목사님! 이사람 굉장합니다. 이사람 불러다가 한번 간증을 시켜야 합니다. ”그랫서 제가 “그 교회가서 알아보십시오.” 그래서 원하면 한번 간증을 시켜보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말이 없는 겁니다. 알아봤더니 “그 교회가서 사람들을 만나봤는데 그 전도왕이 자기 교회에서는 전도를 안한답니다. 다른데 가서만 열심히 전도한답니다. 몇사람을 만났는데 평가가 부정적이었습니다.”라고 들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그 사람은 전도왕이 아닙니다. 그 사람처럼 국민일보에 자기 이름을 올리지 못해도 열심히 기도하고 지체들과 어울려서 가가호호 누비며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전도하는 그 사람이 그 교회에는 더 좋은 사람 아니겠습니까?
주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조금 모자라는 사람들을 쓰십니다. 지난주에 제가 ’일본전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불러주시면 감지덕지할 사람들, 주님이 여기에서 나를 떼어버리시면 갈데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이 부르십니다. 그래서 자기일을 하게 합니다.
제일 먼저 신령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적 생활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도 많이하고 말씀의 은혜를 얻으면 생겨 납니다.
두 번째는 도덕적인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자연적 지혜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세상에 처세술에 관한 수많은 책들이 나옵니다. 그것을 신앙처럼 떠받드는 것은 바보짓입니다. 또 설교시간에 그런 내용들로 설교를 꽉채워서 사람들을 열광 시키는 것 또한 인본주의입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만 여러분들은 워낙 어두우니까 좀 읽으십시오. 읽어서 ‘아~ 이런거구나!’라고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런 도덕적인 지혜를 잘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한사람이 살아가면서 한번 지혜롭지 못한 행동을 하면, 자신은 그것을 잊어버리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오래도록 기억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기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끊임없이 돌출하는 딴지가 됩니다. 막~ 달려가는데 여기 저기서 발을 거는 사람들이 나오는 겁니다. 힘들지 않고 발을 슬쩍 내미는겁니다. 거기에 걸려 넘어지는겁니다.
(예화) 여러분! 어는 순간에 일을 하다가 마음이 심란하고 짜증이 나서 어떤사람의 질문에 짜증스럽게 답을 했다고 칩시다. 요새는 그런 일이 안일어나는데 가끔 문서선교부 열린공간에서 투탁거리고 다투고 해서 저한테까지 올라 오고 그랬습니다. 요즘은 좀 괜찮아졌습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면 자기는 잠깐 동안 한일인데 그것이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을 영원히 결정합니다. 여러분도 아마 그럴 것입니다. 선한 일에 대한 인상은 여러번 반복되어야 가슴에 찍히는데, 나쁜 인상은 가슴에 한번에 깊이 각인됩니다. ‘아~ 그 불성실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제가 꼭 잘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교회에서 오래 있던 형제 가운데 한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교회에서 굉장히 교역자를 하고 싶어했습니다. 다방면으로 다른 사람들 시켜서 어필을 하고 했었는데 제가 끝까지 교역자로 안썼습니다. 지금도 그사람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리반을 하던 청년때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은혜받고 똑 부러진 질문을 하는데, 뜬금없이 창조론을 강의하는데 손을 번쩍들고 공룡을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질문이 나올 수는 있는데 이후에 몇 번 질문을 받으면서 내 머리속에는 ‘저 친구는 머릿속에 아무것도 정리가 안됐구나!’ 하는 인상이 내 머릿속에 콱하고 박힌 겁니다. 이후에 많이 나아지긴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제 머리속에서 이 인상이 떨쳐지지를 않는 겁니다. 이것을 제가 잘했다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또 인상 하나를 가지고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어째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인상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도덕적인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아름다운 관계를 맺으면서 일하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사람들을 끊임없는 자신의 반대자, 적대자로 만드는 겁니다. 이것은 너무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이런 도덕적인 지혜에 대한 사랑의 원리가 있으면, 대부분 깨닫게 되는 진리입니다. 사도바울이 말한바와 같이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라는 정신이 배어있으면 굉징히 빨리 배울 수 있는데, 이기심으로 뭉쳐져 있으면 배우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예화) 언제가 제가 한번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중동고를 나왔는데, 숙명여고 나오고 커리어 우먼으로 잘나가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는지 회사에서 모두 인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대리승진때 승진심사에 떨어지니까 펑펑울면서 부장한테 가서 울면서 따졌답니다. “내가 생리 휴가도 안가고 열심히 일했는데 실적으로 보나 뭘로 보나 내가 무엇을 잘못했냐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부장이 담배를 뻐끔뻐끔 피면서 말을 못하더랍니다. 그래서 이 자매가 더 의기양양해진겁니다. ‘지들이 잘못했으니까? 나한테 대꾸도 못하는거봐!’ 그러면서 계속 대들면서 울었답니다. “내가 뭘 잘못했냐고! 내가 생리휴가도 안가면서 일했는데, 내가 뭘 잘못 했냐고~~” 그랬더니 부장이 담배를 뻐끔뻐끔 피다가는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끄면서 “ 야! 나도 너를 되게 승진시키고 싶었다” “그런데 뭐가 어쨌다는 겁니까?” “과장이 너 싫테! 과장이 너 승진 시키지말래 “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자매가 비로소 직장 생활의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모두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그런데 자기 직속 상관이 자기를 싫어하는 겁니다. 왜? 언제나 건너뛰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찍힌겁니다. 그래서는 승진을 못합니다. 아무리 부장이 승진을 시켜도 과장이 저 사람은 안된다는 겁니다. 그 정도가 되면 못합니다. 위계질서상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세월이 흘러 자기가 책을 쓰면서, 자기 같이 그렇게 개념이 없는 생활을 하는 후배들이 지금도 직장에 많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 것들이 도덕적인 지혜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는 자연적인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일의 지혜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보다도 더 잘 할 수 있는 물리적인 지혜입니다. 기술이라는 것은 대부분 원인과 결과의 문제입니다.
(예화) 여러분! 화장품 중에서 일본에서 나오는 아주 고급 화장품이 있습니다. SK라는 화장품이 있는데, 그 화장품이 어떻게 만들어졌느냐하면, 일본에 있는 화장품 회사인지 의학연구소인가에서 조사를 했는데 어느 지역에 사는 아녀자들의 손이 다른 지역에 사는 같은 연령의 여자들 손하고는 비교가 안되게 예쁜겁니다. 그래서 그 원인조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부잣집 여자들의 손이 예쁜 것이 아니고, 가난한 집 여자들의 손이 예쁜 것입니다. 애기 손 같은 겁니다. 가서 의사들이 조사를 해서 왜 그런가 봤더니, 그 사람들은 가난해서 양조장에서 알르바이트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양조장에서 술찌꺼기가 나오는데, 매일 손으로 주물럭 거리면서 쭈그리고 앉아서 일을 하는데, 얼굴은 새까맣게 다 타고 그런데도 손은 애기손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착안을 해서 이것이 미용과 무슨 관계가 있나 조사했는데, 그것이 발효 물질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착안해서 그 컨셉을 베이스로 해서 SK화장품을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화장품이 된 것입니다.
대부분 모든 기술적인 지혜라고 하는 것은 남이 모르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가지고 이것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기술적, 물리적 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론을 많이 공부해야 생겨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여기서 이야기 하는 지혜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것이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것과 양립할 수 없는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려면 사람에게 반드시 미움을 당해야 하고,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는, 죽어도 하나님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양자선택의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많습니다. 그때에는 우리가 이런 도덕적인 지혜와 물리적인 그 지혜의 필요성들을, 기술적인 지혜의 필요성들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양립할 수 없을 때에는 하나님을 선택하지만 양립할 수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 사랑받을 뿐만아니라 또한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받아야 하는데, 사람은 하나님과 달라서 사람들은 사랑해야 할만한 이유가 없는 한, 사람들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가지 지혜 즉, 신령한 지혜, 도덕적인 지혜, 기술적인 지혜 혹은 물리적인 지혜까지 두루 갖춰서 어디가든지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고마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붙들어 주시고 저희와 함께 해 주시옵소서 그래서 하나님께 기뻐하시는 생활을 매일매일 해나가도록 우리들에게 이 세가지 지혜를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