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있는 목회의 비밀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고후 4:12)
녹취자: 김정규
고린도 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책망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들려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고린도교인들이 많이 회개하고 마음으로 슬퍼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위로의 편지를 쓴 것이 고린도후서입니다. 두 편지사이에 한통의 편지가 더 있었는데, 그것은 유실됐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고린도전서 1장에서는 책망하는 말로 시작했는데, 고린도후서에서는 자기도 얼마나 연약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제 4장 5장으로 넘어가면서 자기의 목회사역, 선교사역의 비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러다가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본문이 나옵니다. “사망은 우리 안에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사망과 죽음이 각각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사망은 사도바울과 목회자들의 몫이고, 생명은 자신들이 돌보는 양떼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는 것과 사는 것이 각각 주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망이 무엇이죠? 생명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무슨 생명이 끊어졌다는 뜻일까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육체의 생명이 끊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린도후서 1장 8-9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런 말을 합니다.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10절에서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라는 말은 육적사망입니다. 사도바울은 죽음을 친구처럼 아주가까이 느끼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목회사역이 얼마나 많은 수고를 요구하는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도 목회사역을 하면서 건강을 모두 잃었습니다. 굉장히 강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약합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 비유하기를 ‘성도들의 기도의 눈물방울위에 내가 떠있다’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사망의 의미는 죄 된 성품의 죽음입니다. 꽃길을 걷는 목회는 없습니다. 한번 이런 생각을 해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꽃길을 쭉 걸었습니다. 꽃잎을 뜯어서 길에 가득 깔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걸어갑니다. 멀리서 사람들이 부러워합니다. ‘야! 꽃길을 걷는구나. 나도 한번 걸어봤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 꽃잎 밑에 뾰족한 송곳들이 쭉 깔렸습니다. 밟을 때마다 피가 흐릅니다. 그러나 꽃잎에 가려서 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그가 걸어간 길은 핏자국입니다. 그게 목회자의 길입니다.
목회를 안했으면 마음에 솟아나는 분노대로 행했을 텐데, 목회하기 때문에 자기를 죽입니다. 영혼을 돌보지 않았더라면 내 맘대로 했을 텐데, 영혼을 돌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참습니다. 혈기를 죽입니다. 미운마음을 죽입니다. 그때 고통을 당합니다. 때로는 차라리 죽는 게 편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망이 사도바울일행의 목회자들의 마음속에서, 목회자들 속에서 역사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 생각나십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갈 2:20) 그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잘 죽어야 합니다.
한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산길을 걸었답니다. 그런데 고목이 하나 서 있었습니다. 구멍이 뻥 뚫려있었습니다. 목사님이 혼자서 심방을 가다가 그 나무를 어루만졌습니다. 그리고 나무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얘야 너는 목회도 안했는데, 왜 이렇게 큰 구멍이 뚫렸니?’ 근데 그게 예수님이 가신 길입니다.
(찬양)
멸시와 욕 가시관 쓰셨네
자! 그랬더니 무슨 일이 일었났습니까? 예수생명이 교인들의 마음속에서 힘차게 역사했습니다. ‘너 왜 변화되지 않지? 넌 믿음이 없어. 네가 생활을 그렇게 하니 변화되겠니? 넌 못됐어’ 이러는 목회자, 교회는 생명의 역사가 없습니다. 생각합니다. 미끄러진 성도를 보고 목회자는 생각합니다. ‘네가 나쁜 게 아니라, 내가 기도를 안했구나.’ 죄를 짓는 형제를 보고 생각합니다. ‘내가 전심으로 목회하지 않았구나.’ 그러면서 마지막에 모든 짐을 짊어지고 고통을 당합니다. 그때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참 신기합니다. 참 신기합니다. 어떤 때는 돌보지 않아서 영혼이 죽어갑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돌봐도 영혼이 죽어갑니다. 그때 조용히 홀로 골방에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모든 짐을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중보의 기도를 드립니다. 예수님의 생애에서 발견되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하나님에 관해 말하는 것보다도 예수님은 사람에 관해 하나님께 말하기를 좋아하셨습니다. 기도입니다. 그럴 때 그렇게 따라다녀도 안변하던 교인이 변합니다. 그게 생명의 역사입니다. 이런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목회자가 죽는 것만큼 교인들은 살아납니다. 목회자가 사는 것만큼 교인들은 죽습니다. 목회자가 죽음을 넘나들 때, 교인들은 천국을 넘나듭니다.
여기도 그런 물고기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에는 가시고기라는 고기가 있습니다. 알을 낳고 엄마는 도망가 버립니다. 그 위에 수정을 한 아빠는 알을 지킵니다. 알은 물이 흘러가는 곳에 낳아서는 안 됩니다. 물이 고여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고여 있는 곳에는 산소가 모자랍니다. 알이 죽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가시고기는 알 앞에서 일주일동안 지느러미로 물질을 합니다. 마지막에 이 지느러미가 너덜너덜해 집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작은 새끼들이 태어나기 시작합니다. 그 작은 새끼들한테 자기 몸을 줍니다. 어린 새끼들은 아빠 몸을 뜯어먹으며 몸집을 키웁니다. 아빠고기는 너덜너덜해지고 마지막에 뼈만 남아서 물에 가라앉습니다. 어린 물고기들은 넓은 물로 나아갑니다. 이게 아빠가시고기의 일생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가시고기셨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습니다. 천하가 모두 당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안주신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려고 당신은 가난해지셨습니다. 우리를 살리시려고 당신은 죽으셨습니다. 그게 목회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목회를 잘하면 반드시 거룩한 사람이 됩니다. 잘 못하면 그냥 나쁜 사람이 됩니다. 게으른 사람이 악한사람입니다. 충성된 사람이 착한 사람입니다. 오늘 전도사로 임직하는 두 분은 이렇게 가시고기처럼 자기를 다 주어서 영혼을 살리는 목회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