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가르치는 교사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마 5:2)
녹취자 : 조원정
교사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교사는 말 그대로면 가르치는 사람이고 교회에서 주일학교 선생님이나 중고등부 선생님으로 가르치다 보면 해야 하는 일이 참 많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함께 놀아 주기도 하고 고민도 들어주고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을 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일도 한 가지 일보다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사의 고유한 사명입니다. 교사의 고유한 사명이 무엇입니까?
(예화) 제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도사로 섬기던 교회가 있었습니다. 청소년이 80명 정도 나오는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 청소년부에 청소년들을 가리키도록 부임을 받았습니다. 아이들 예배 시간은 40분인데 공과 공부시간은 한 시간 반 두 시간 가까이 됩니다. 이 학교는 정말 성경을 많이 가르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가르치는데 분반 공부를 하는데 열심히 하는 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반들도 있었습니다. 그중에 한반이 눈에 띄었습니다. 선생님이 예배 시간에 늦게 왔습니다. 아이들이 여섯 명이 모여서 공과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얘들아 선생님이 너희 주려고 샌드위치를 만드느라고 늦게 왔단다. 가방을 열어 보니까 진짜 샌드위치를 정성껏 만들어서 가지고 왔습니다. 어떤 아이가 선생님 우유가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우유 사올게요. 한 아이가 우유를 사러 갔는데 그 근처에 가게가 없습니다. 한 15분 만에 우유를 사 가지고 왔습니다. 우유를 사 가지고 오니 컵이 없습니다. 내가 가져올게. 나도 갈래. 두 명이 갔으니까 교인 33%가 컵을 가지러 갔습니다. 갖고 와서 우유를 따르다 쏟았습니다. 걸레를 가지고 와서 치우고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샌드위치를 먹었습니다. 이제는 공과공부를 시작하려나 보다 했더니 얘들아 우리 공과공부 하기 전에 한 주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우리의 삶을 함께 나누어 볼까? 그리고 한 아이씩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한없이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한 시간 가까이 흘러갔습니다. 이제는 끝났나 보다 했더니 선생님이 이제는 내가 한 주일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얘기해 줄게. 한참을 이야기했는데 수요일 까지 밖에 얘기 못했습니다. 다른 반은 벌써 공과공부가 끝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얘들아 오늘 정말 은혜로운 시간이었지? 우리 모두 손잡고 함께 기도하고 마치자. 옆에 있는 아이가 선생님 우리 공과공부 안 합니까? 옆에 있는 아이가 툭 치면서 가만있어 이 자식아. 끝난다잖아. 빨리 집에 가야지. 저쪽에서는 공과공부가 시작되는데 어느 반에서는 야호 하고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릅니다. 왜 그러냐 했더니 우리는 공과 공부하러 밖으로 나갑니다. 밖에 어디에서 공부를 하니? 우리 선생님이 오늘 공과 공부시간 웬디스에서 한 답니다. 웬디스 압니까? 롯데리아 같은 곳입니다. 진짜 거기에서 공과공부를 하는지 가 봤습니다. 시끄러운 음악 때문에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곳입니다. 거기에서 선생님이 사주는 닭다리 하나씩 먹고 집에 간 것입니다. 그렇게 하니까 결국 애들이 교회를 엄마 따라 십년을 다녔는데도 성경을 모릅니다.
(예화)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담임 목사님이 주일학교 교육이 잘 되고 있는지 내려갔습니다. 애들이 막 왔다 갔다 합니다. 얘야 이리 오너라. 하며 불렀습니다. 조그만 아이가 인사를 합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넌 이름이 뭐니? 전 아무개입니다. 내가 너희들이 숫자가 많아서 잘 몰랐는데 너 우리 교회 몇 년이나 다녔니? 제가 여섯 살 때 왔고 지금 4학년이니까 6년 우리 교회 다녔습니다. 엄마 아빠도 이 교회 다니십니다. 그런데 얘야, 여리고성을 누가 무너뜨렸니? 얘가 갑자기 울려고 하면서 목사님 내가 안 그랬어요. 목사님이 하도 기가 막혀서 이 아이를 가르친 선생님이 누군지 물어서 찾아왔습니다. 아 목사님 오셨어요. 선생님 얘가 선생님이 가르치는 반 아이가 맞습니까? 아니 얘한테 여리고성을 누가 무너뜨렸나 했더니 얘가 안 그랬다고 우는데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생님 대답이 더 멋있습니다. 목사님 얘가 안 그랬다면 안 그런 것입니다. 얘는 참 정직한 아이입니다. 목사님이 하도 황당해서 부장 장로님을 불러왔습니다. 장로님 내가 여리고성을 누가 무너뜨렸냐고 물어 봤더니 얘는 안했다고 그러고 이 선생님은 얘 말이 맞을 거라고 얘기하는데 장로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목사님 그냥 은혜롭게 하시지요? 기왕 무너진 것 지금 와서 자꾸 이야기 합니까? 제가 절반을 물어 내겠습니다. 누가 웃자고 만든 이야기입니다. 웃자고 만든 얘기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현실이 많이 담긴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진짜 성경을 안 읽는 권사님 댁에 가서 일부러 골탕을 먹이려고 심방을 가서 이렇게 불렀답니다. 오늘 말씀은 구약 성경 히스기야 1장에서 보겠습니다. 권사님은 1권부터 히스기야를 찾습니다. 웃지 않는 사람들은 지금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또 찾고 계십니다. 이게 바로 성경을 안 가르친 결과입니다.
교사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성경의 진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안 하면 삯군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지금 북한에 핵 위협이 있어서 시끄럽습니다. 어떤 군인이 있습니다. 사람이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좋습니까? 나쁩니까? 사람이 아주 친절해서 그 사람을 미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좋습니까? 나쁩니까? 남을 위해서 밥도 잘 사줍니다. 좋습니까? 나쁩니까? 누구하고도 다투는 법이 없습니다. 좋습니까? 나쁩니까? 아주 똑똑합니다. 좋습니까? 나쁩니까? 그런데 전쟁은 절대 못합니다. 좋습니까? 나쁩니까? 군인인데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가 국방비로 일 년에 지출하는 돈이 40조 가까이 됩니다. 그중에 대부분은 다 군인들 먹이고 입히고 복지하는 것입니다. 군인들만 들어가서 칠 수 있는 골프장도 사우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 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평소에 그렇게 쉬고 운동도 하고 가족들과 함께 놀러 다니고 콘도도 만들어주고 다 합니다. 그런데 전쟁이 나면 목숨을 버려서 우리를 보호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군인의 사명입니다. 애들하고 잘 놀아주고 밥도 사주고 장난도 합니다. 심지어는 공부도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안 가르칩니다. 그러던 아이들을 우리가 길거리에서 전도대상자로 만나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엄마가 무엇을 가르쳐주던지 다 들으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엄마도 성경을 안 가르쳐 주고 교회 왔는데 선생님도 성경을 안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창피할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서 진화론 배우고 하나님이 없는 사상을 실컷 배운 것입니다. 얘들이 신앙 없는 행동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심각성을 느끼고 이제는 얘들에게 신앙을 심어줘야 되겠다고 생각하는데 신앙이 심겨지는가 말입니다.
오늘 여기 나온 분들 가운데 자녀들 불신자인 자녀들 둬서 마음 아파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물론 본인이 신앙이 없으면 자식들이 신앙이 없어도 아파하지도 않고 내버려두지만 말입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자기 자녀를 신앙으로 기르지 않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중대한 언약위반입니다. 그 아이를 유아세례줄 때 유아세례 안 주고 자기가 혼자 예수를 믿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자기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녀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가르치겠다고 다짐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불신 자녀들을 둔 부모들, 여러분 자식 가운데는 아예 교회 안 나와 버리는 자식들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할 수 없이 교회에 나오는 애들 있습니다. 어려서는 몽둥이 가지고 협박을 하면 애들이 나옵니다. 좀 크면 용돈을 가지고 위협을 하면 나옵니다. 그러나 고등학생만 되도 치사하다 그러고 차라리 편의점 가서 알바를 하고 맙니다. 묻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녀의 회심을 위해서 정말 기도하십니까? 자녀들의 회심을 위해서 어린 아이들이 자녀들이 신앙적으로 변화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둘입니다.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 둘입니다. 일차적인 책임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부모가 목숨을 걸고 자기 아이를 예수 믿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는 말이 언젠가 예수를 믿겠죠? 안 믿어도 할 수 없지요 하는 얘기랑 마찬가지입니다.
더 기가 막힌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까지 겨우 교회 따라오다가 대학 들어가니 교회 안 나옵니다. 그나마 대학 다닐 때는 가끔이라도 나오더니 이제 직장 들어가니 더 바쁘다고 안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하겠다고 데리고 온 사람이 불교신자입니다. 아니면 불신자입니다. 심지어 이단을 데리고 와서 결혼하겠다고 합니다. 그때 여러분 심정이 어떨지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이라도 아이들을 위해서 부모가 간절히 기도하고 그 아이의 영혼의 운명이 자신의 운명인 것처럼 생각해야지만 그것이 진짜 부모입니다.
부모들이 자기 자식의 신앙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교회가라. 그렇지 않으면 교회 안 간다고 큰 소리 내면서 자식하고 싸움이나 하고 신경질이나 부리고 그 엄마 아빠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신앙을 갖겠습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자기자녀가 영혼이 어떤 상태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왜 그 애들이 신앙이 없어지는 것입니까? 신앙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문화 속에서 저절로 심겨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는 도구가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 없습니다. 다른 것을 통해서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아이가 회심을 하지 않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신앙이 없습니다.
부모가 그렇게 못하면 다음에 그것을 책임지는 또 다른 사람이 교회학교 교사입니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이 아이에게 내가 아무리 잘해주고 이 아이를 위해 봉사해도 그것으로 이 아이가 결코 구원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 아이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자기가 죄인인 것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믿어야 합니다. 그 아이에게 어떻게 하든지 이해하게 만들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믿게 만들고 무엇을 어떻게 그 아이에게 가르쳐 줘야 할지를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 아침에 샌드위치를 싸고 있습니까? 성경을 한 시간이라도 읽고 공과를 잘 준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요새 텔레비전만 켜면 온 천지가 먹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정신 나간 방송입니다. 여기 켜도 먹방, 저기 켜도 먹방입니다. 어느 날 그 방송을 나도 하나 틀었습니다. 저기 부산에 있는 어떤 냉면집 이야기를 기록하고 다큐멘터리로 찍어주는데 난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하는 설교자로서 나는 한편 한편의 설교를 저 집 냉면처럼 저렇게 정성껏 만드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시면 종업원들이 다 퇴근하고 모든 손님들도 다 갔는데 사장은 혼자 앉아서 냉면에 들어갈 고명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한시가 넘어 두시가 다되어서 일을 끝내고 들어가서 잠을 자고 다시 아침에 냉면을 만들기 위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공과공부를 얼마나 준비하고 계십니까? 정말 아이들에게 성경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자기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런 교사 세미나에 수없이 불려 다녔습니다. 강남부터 시작해서 저기 제주도, 부산까지 다녔는데 재미있는 것은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이십 명 정도를 열 명 정도를 교사를 일어나라 하고 지난주에 성경을 가르친 사람 남고 나머지 앉아라고 하면 두 명에서 네 명만 남고 나머지는 성경을 안 가르쳤습니다. 왜 안 가르쳤냐고 했더니 주일 학교 못 나왔습니다. 아니면 행사가 있었습니다. 아니면 무슨 이유에서인지 드라마를 했습니다. 성경을 안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면서 아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변화 받을 영혼들인데 그렇게 진실하게 변화되어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아 교회를 이렇게 다녀봤자 어울려서 함께 다니는 것 외에 특별히 종교에 무슨 힘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 나와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사회를 형성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자기가 죄인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하는 이 복음에 대한 확신이 안 생기는 것입니다. 누구도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앞에서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예수 이외에 구원할 구원자가 없다는 사실을 믿기 전 까지는 구원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믿음을 아이들이 갖게 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과 은혜를 간절히 의지하고 어떡하든지 그 아이의 마음을 열어서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자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안합니다. 마치 계모가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소설에 나오는 못된 계모가 자식들에게 밥을 해 줘야 하는데 개 사료를 갖다 주는 것입니다. 그 아이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약에 자신이 정말 나은 자식이라면 아이들을 그렇게 기르겠습니까? 요새 보면 자기가 나은 자식도 막 때려 죽입니다. 인간이 아닙니다. 스스로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똑같이 사람을 때려 죽였지만 자식을 때려죽인 사람은 용서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인간의 피 속에 흐르는 하늘의 원리를 저버린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런 시대에 우리들이 살고 있습니다.
자기 자식이라면 정말 그 아이가 핍절하고 심지어 초등학교 다니는데도 십 몇 키로 밖에 안 되는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그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 마음이라면 그렇게 해 주겠냐는 것입니다. 정성껏 그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지어서 최선을 다해서 그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한 끼라도 그 아이를 먹여서 건강하게 하고 아이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애쓸 것 아닙니까? 그것이 진짜 부모입니다.
교사는 영적 엄마입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엄마가 아이들을 어떻게 돌보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는 몸이 피곤하고 힘이 들어도 아이가 배고플 때가 되면 그 아이를 데리고 가슴에 안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옷깃을 풀어서 그 아이에게 젖을 먹입니다. 자기의 몸속에서 피가 되고 뼈가 되고 살이 될 성분들이 모여서 그 아이에게 가서 아이가 태어나고 자기의 몸에 공급되어야 할 영양분들이 모여서 그것이 젖이 되어서 아이의 입에 물려서 그 아이를 배부르게 하는 것이 엄마의 마음입니다.
교사의 마음속에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자신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고 하는 뚜렷한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모든 것을 잘해도 그것을 안 하면 그는 삯군입니다. 아주 나쁜 교사입니다. 아이들이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고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자기가 가로막고 변화되지 못하도록 막은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데 교사로서 가장 중요한 사명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무엇이든지 자기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할 경우에는 이야기가 계속 뭉게구름처럼 쏟아 납니다. 자기가 별로 마음에 없는 이야기를 할 때에는 시큰둥하고 더 이상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고 심지어는 자기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화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모임에는 빠지고 싶습니다. 만날 모여서 애인 이야기를 합니다. 이 사람은 30중반이 넘어서도 애인 하나 없어서 여기 가서도 차이고 저기 가서도 차입니다. 자기는 그런 이야기 하고 싶지 않습니다. 친구들이 모여서 그런 이야기만 잔뜩 합니다. 자기는 거기에서 도망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하면 밥 사주고 커피 사주면서도 자기 이야기를 계속 쏟아 놓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 시간에 새벽에 일찍 일어나 샌드위치를 만들 열정은 있는데 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열정은 없는가? 일주일 동안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행복해진 적이 없습니다. 말씀 때문에 눈물 흘려 본적도 없고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변화되고 새사람이 되는 경험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엄마의 역할을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시간이 없다. 바쁘다. 힘들다. 거짓말입니다.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 합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어느 날 교역자 회의를 하는데 부목사님 한분이 이야기를 합니다. 목사님 제가 요즘 엄청 바쁩니다. 얼마나 바빠? 화장실 갈 시간이 없습니다. 그렇게 바빠? 예. 심방하고 뭐하고 너무 바쁩니다. 그날 밤에 그들 부부하고 우리 부부가 영화관에서 심야극장에서 만났습니다. 자기 좋아하는 것은 다합니다.
제가 이번에 책을 썼습니다. 천오백 페이지 정도 썼습니다. 오년에 걸쳐 썼습니다. 저도 여러분 교회 담임 목사님 못지않게 나도 바쁜 사람입니다. 이런 모임에도 웬만하면 안 옵니다. 여기 와야지, 교회 설교 준비해야지, 여기저기 강의해야지, 책 잡지사 원고 내라고 하지, 책 쓰는 것 있지, 나도 바쁩니다. 그 바쁜데 천오백 페이지를 썼습니다. 천오백 페이지를 쓰기 위해서 싼 책이 이억 원어치입니다. 내가 좋아하니까 하는 것입니다. 책을 사러 외국에까지 여러 번 갔습니다. 좋아하니까 하는 것입니다. 컴퓨터, 인터넷, 이런 것 관심 없습니다. 일 년에 인터넷 하는 시간을 다 합쳐도 열 시간도 안 됩니다. 지금도 2G 폰 쓰고 있습니다. 만날 전화 옵니다. 고객님은 전화를 굉장히 많이 쓰셨기 때문에 우리가 공짜로 드리겠습니다. SK드릴게요, 애플 드릴게요. 필요 없다. 탁 끊습니다. 난 그 필요를 못 느낍니다. 충분합니다. 안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어느 집에 딸내미가 사랑에 빠졌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화가 나서 그 자식 하고는 절대 안 돼. 막 야단 쳤는데 이미 사랑에 콩 꺼풀이 씌여서 미친 듯이 그 남자를 연모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자꾸 도망갑니다. 몽둥이로 때렸습니다. 가위로 머리를 다 밀어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사랑은 모든 창조적인 것의 원동력입니다. 보자기로 마후라를 만들어서 담장을 만들어서 그 남자를 만나러 갔습니다.
이래서 성경을 못 가르친다. 저래서 성경을 못 가르친다는 것은 다 거짓말이고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묻고 싶습니다. 전쟁하기 싫어하는 군인이 그게 군인이냐 말입니다. 자기 자식 기르고 싶지 않고 때려죽이고 싶은 어미가 그게 어미입니까? 자기가 맡겨진 양떼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싶지 않은 교사가 선생입니까? 뭘 생전 처음 와가지고 이렇게 소리를 지르고 야단만 치냐고 하지만 야단이 아니라 교사의 사명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병원에 갈 때에는 화려한 병원의 인테리어와 대기실에서 기다리며 제공해 주는 에스프레소 커피를 먹으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파서 치료 받으려고 가는 이야기입니다. 인테리어도 좀 후지고 간호원 얼굴 못 생겼어도 선생님이 병만 잘 고쳐주면 돈 많이 내고 그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기 위해 줄을 섭니다. 음식점에 갈 때는 왜 갑니까? 맛있는 밥을 싸게 먹으려고 가는 것 아닙니까? 물론 돈을 많이 내고 기꺼이 먹을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 대부분 싸고 많이 주고 맛있으면 최고입니다. 좋은 인테리어 보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교사한테 예수님이 너희가 이 아이들을 맡아서 양 무리를 쳐라 하고 보내실 때에는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너희가 내게로부터 받은 그 복음의 말씀을 아이들에게 잘 가르쳐서 그 아이들을 예수 믿게 만들고 예수 믿은 아이들은 더욱 더 예수님을 잘 믿는 아이들로 만들어 라고 보내준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 아이들을 데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한번 아이들을 데려다 놓고 성경을 물어보십시오. 아주 기초적인 문제 열문제만 물어보십시오. 얘가 성경을 알고 있나? 예수님이 누구인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세계는 무엇이고 인생은 무엇인가?
(예화) 저는 부모님이 예수님을 믿지는 않았지만 함께 사는 고모님들이 저를 교회 데리고 다녔기 때문에 기어 다닐 때부터 교회 다녔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못 만났습니다. 제 나이 14년 하고 3개월이 되던 해에, 우리나라 나이로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주일날 교회를 가다가 한적한 논둑위에 엎드려서 열네 살 3개월 된 아이가 펑펑 울었습니다. 집이 가난해서 물론 가난했지만 그 가난 때문이 아니라 너무 힘들어서 울었습니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살아야 하나? 그 어린 나이에도 죽는 것은 하나도 안 무서웠습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사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것도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사람으로서 내 인생을 살아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왜 이것을 살아야 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세계는 무엇인가? 어디서부터 왔는지도 모르는 나라는 인간이 어떻게 이 세상을 헤치면서 살아야 하는가? 정말 신은 있는가? 통곡하면서 울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런 질문을 가지고 있었지만 교회 와서 대답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열네 살 3개월 밖에 안 된 아이의 눈에도 교회 다니는 사람은 별로 생각이 없는 사람 같았습니다. 나는 14년 3개월을 살았지만 54년 3개월을 산 사람들도 나보다 인생에 대해서 나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2월 달 그 추운 겨울에 통곡을 하며 운 다음에 일어나서 눈물을 씻고 결심했습니다. 일생 무신론자로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신은 없다. 이 답을 기독교는 내게 가르쳐 주는데 실패했다. 내가 온몸을 던져서 나 스스로 답을 찾으면서 살리라. 그게 열네 살 3개월 되었을 때 일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니까 우리교회 어느 집사님이 그럽니다. 목사님은 어려서도 워낙 영특하셨으니까 그런 생각하지 우리 애들은 아무 생각 없습니다. 스마트 폰으로 게임만 합니다. 내가 당신은 당신 자식들을 너무 모릅니다. 그런 인생에 대한 무시무시한 고민이 너무 무섭기 때문에 인터넷 게임에 빠지는 것입니다. 아십니까? 그렇게 함으로써 인생의 근본적인 질문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여기 자유로 있습니다. 미친 듯이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를 하는 것입니다. 기자가 붙잡았습니다. 고등학교 아이가 헬멧도 안 쓰고 오토바이를 어디에서 하나 주워가지고 전속력으로 몰고 다닙니다. 뒤에는 중학교 여자 아이가 짧은 미니스커트 같은 교복을 입고 옆으로 이렇게 하는데 그렇게 앉는 것 대개 위험합니다. 저도 타봐서 압니다. 이러고 앉아서 갑니다. 만약에 이쪽으로 넘어지면 뇌진탕으로 가는 것입니다. 미친 듯이 곡예를 하면서 전속력으로 달리니까 물어 봤습니다. 무섭지 않나? 죽으면 어떡해? 중학교 다니는 아이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잘 놀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깨끗하답니다. 놀다가 죽으면 죽는 거지 그게 뭐가 대수냐? 그런 담대함을 어디에서 배웠습니까? 인생에 대해서 이런 근본적인 고민들이 다 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는 애들한테 다 있습니다. 교육은 그것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자신이 무슨 고민이 있는지를 모르는 아이들을 자극해서 그 고민을 끌어내고 그것에 대한 진정한 답을 성경의 진리가 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 그렇구나. 내가 정말 무지하고 어리석게 살았구나.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살아 있구나. 내가 진정으로 의지할 분이 우리 하나님 밖에 없구나. 그게 신앙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집에 가서 자기 방을 한번 들여다보십시오. 특히 여선생님들, 화장품이나 온갖 잡동사니 다 치우고 책이 얼마나 꽂혀 있는지를 보십시오. 여러분이 만약에 이십년 정도 교사 생활을 했다면 최소한 6단으로 지은 책꽂이 두 개 정도, 권수로 따지면 480권정도 되는 책이 기독교 교육부터 시작을 해서 경건 서적이 어린이 교육론, 성경해석, 이런 책들이 거기에 꽉 차 있어야 합니다. 밥 한 그릇은 이만 원, 이만 오천 원, 기꺼이 먹고 책 한권 만 오천 원인데 그러면 에이~ 하고 선한 목자는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가 끊임없이 배우지 않으면 우리는 가르칠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기억을 해야 합니다. 내가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체계적으로 배우십니까? 지난 한주동안도 책을 읽으면서 기독교와 성경에 대해서 새롭게 발견한 사실이 있습니까? 그래서 이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꼭 가르쳐주고 싶다고 하는 마음의 사모함이 있느냐 말입니다. 올 때에는 이안에 뭔가 가르치고 싶은 내용이 꽉 차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지금 시작하시는 이 대목이 뭔가 하면 그 유명한 산상수훈입니다. 마태복음 5장 6장 7장까지를 산상수훈이라고 부릅니다. 산상수훈을 시작하는 도입부가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하고 시작을 합니다. 그 당시에는 이런 성경이 없었습니다. 신약 성경은 없고 구약성경이 있었는데 다 양피지 두루마리로 되어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다 싣고 오려면 수레로 하나 가득입니다. 예수님은 손에 성경을 들고 이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원고를 준비해서 뭘 써가지고 읽고 계신 것이 아니라 산위에 올라갔습니다. 4장에 보면 병 고침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돌아가고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셨을 때 거기 따라 올라갔습니다. 거기에 예수님은 올라가시고 왕처럼 좌정하시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앉아서 예수님께 집중하며 말씀을 듣고 있었고 예수님은 당시의 많은 연설자들이 그랬듯이 아주 큰 음성으로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끔 말씀을 전하셨던 것입니다.
신약을 연구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5장 6장 7장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의 전체가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 중에 골자를 모아서 적어 놓은 내용이라고 믿습니다. 예수님은 5장 6장 7장에서 천국 백성의 자격, 천국에서의 백성들의 삶과 인격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을 합니다. 이것은 어쩌면 아침에 예수님이 설교하기 시작해서 하루 종일 한 설교일수도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의 입에서 봇물이 터지듯이 쏟아져 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치 댐에 물이 가득 차 있다 수문이 열리자마자 확 쏟아지며 계곡 아래로 폭포수가 되어서 흘러가는 것처럼 거침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의 입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셨고 그 말씀이 자기 안에 가득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말씀을 치열하게 영혼들에게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 가르치지 않는 부모와 선생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영혼에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을 눈물로 기도하면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그 아이에게 가르치려 할 것이고 그 아이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기회를 주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진심이 담긴 기도입니다. 내가 만약에 저기 있는 지체가 너무 가난해서 저 지체가 굶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눈물로 기도할 마음이 있다면 먼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팔아서 저 사람 주지 않겠습니까? 영혼의 변화를 위해서 진정으로 기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정말 그 영혼이 얼마나 핍절하고 병들었는지를 생각하고 그 영혼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려고 애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교사의 사명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데는 교회 말고 다른 데 많습니다. 교회에서 아무리해도 세상에서 그 아이들의 관심을 끄는 수준으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 텔레비전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광고 한편이 돈 많이 들어갑니다. 10억씩 들여서 찍습니다. 교회에서 15초 동영상을 10억 주고 만들 수 있겠습니까? 교회에서 그런 텔레비전이나 이 세상 문화에서 아이들을 자극하는 것으로 승부를 보고 교회에도 그것을 해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자체가 넌센스입니다. 교회에서 아이들이 얻을 만족은 그것과는 다른 그 무엇입니다. 그게 바로 세상에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 와서 듣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준비해서 최선을 다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그 아이들에게 그 말씀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가르쳐 준다고 해서 그 아이들의 영혼이 모두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지 않는 곳에서는 처음부터 변화의 가능성이 없습니다. 우리 성경으로 돌아가서 정직하게 생각해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복음을 통해서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하늘나라 갈 수 있습니까? 구원 받을 수 있습니까?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만 나의 구주이십니다. 라고 전심으로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까? 그런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회개와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없는 곳에 구원은 없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여러분은 아이들이 교회 나와 주는 것으로 만족을 하고 예수 믿는 집안에서 아이가 태어 낫는 것으로 만족합니까? 지옥에도 예수 믿는 집안에 아이들도 많고 교회 다녔던 사람들도 많고 이단에 가서 뒤져보면 70% 이상이 교회 다니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하나님이 주셨지만 그 기회를 선생님들이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 아이의 방황에 대해서 누가 책임 질 것입니까?
제가 기어 다닐 때부터 열네 살 3개월 될 때까지 교회 다녔는데 단 한사람이라도 얘야, 남준아, 너 정말 하나님이 믿어지니? 네가 지옥 갈 죄인이라는 것이 믿어지니? 네가 지옥 갈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니? 너 정말 진실하게 회개하고 예수님을 받아 들였니? 한명도 나에게 물어 본 사람이 없습니다. 기억에 나는 선생님 없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어지던 선생님, 한분은 그런 분위기가 약간 나기는 했지만 나머지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교회 와서 저희들끼리 연애하는 것이나 관심 있고 교회 열심 다니는 애들 부모애들이나 챙기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주님을 만나 돌아와서 목사가 되었지만 영영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주님이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묻지 않겠습니까? 얘야, 내가 그 아이를 네게 6년 동안 맡겼다. 모두 300주가 흘렀다. 그 많은 기회를 너는 어떻게 활용하였느냐? 하고 말입니다. 오늘부터 결심해야 할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들에게 잘 가르치기 위해서 그것이 자기의 최고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그 사명에 충실한 교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배우고 아이들을 이해하고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방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려고 애써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목사님 그렇게 했는데 애들이 절대 변화가 안 됩니다. 저도 너무 지치고 힘듭니다. 두 번째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영혼을 그 아이를 말썽부리는 아이, 공과공부를 망치는 말썽쟁이, 이렇게 보지 말고 그 아이를 정말 불쌍한 영혼이라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그 아이에게 마음을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때 인격적인 사랑이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들어가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학교에서 회심하고 주님을 깊이 만난 아이가 있었는데 집에 가서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엄마 나 오늘 주님을 영접했어. 목사님이 설교할 때에도 전도사님이 설교할 때에도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생각이 안 들었는데 우리 선생님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못 박혀 죽으셨다고 말씀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실 때 모든 것이 믿어졌어.
(찬양)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누가 교사하라고 했습니까? 물론 목사님이 하라고 했을 수도 있고 장로님이 하라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안하면 됩니다. 그런데 왜 교사가 되었습니까? 무슨 대접을 받으려고? 아닙니다. 나도 저렇게 무지하고 하나님 모르던 사람이었는데 주님이 나를 그렇게 사랑하셔서 더러운 죄인을 구원해주셨고 용서해 주셔서 은혜를 주셔서 예수 믿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 사랑이 내 마음을 움직여서 복음을 전하게 했고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교사를 하다가 어렵고 힘들 때마다 사람을 보지 말고 교회에서 우리가 이렇게 많이 애를 써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이렇게 말하지 말고 자기 같이 이 쓸모없는 죄인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이 그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어떻게 피 흘리고 고난을 당하고 죽으셨는지를 생각하고 그 사랑 때문에 이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이 책을 1990년도에 썼습니다. 아마 거의 10만부 가까이 나간 책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이 책을 팔러 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모두 이 책을 읽게 되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이 책을 읽고 여러분이 주님을 다시 만나시리라 믿습니다. 난 이 책에서 나의 경험을 토대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하루에 두 번씩 울 수 있다면 한편으로는 나 같은 죄인 살려주신 십자가의 사랑 때문에 울고 한편으로는 내게 맡겨주신 불쌍한 영혼들 땜에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교회는 얼마나 달라질까?
우리 어렸을 때 초등학교 때 여러분은 대부분 기억을 못하시겠지만 그냥 산에 올라가서 서울을 내려다보면 특히 사대문 바깥에 사대문 안도 마찬가지겠지만 동대문 바깥을 내다보면 지금 한 20년 전의 필리핀 같았습니다. 집 같은 집이 하나도 없었고 고려대학교 앞에도 아스팔트가 안 깔렸습니다. 버스가 한번 지나가고 나면 신작로에 먼지가 휘날리는 시대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차들은 보이지가 않고 콧김을 내뿜으면서 두부, 콩나물, 연탄, 이런 것들을 싣고 다니는 노새가 마차를 끌고 다니는 그 광경이 제일 눈에 먼저 들어왔습니다. 번듯한 건물이라고는 경찰서, 학교, 구청, 이런 것 외에는 없던 시대였습니다. 그렇게 가난한 시대에 땔깜이 없어 사람들이 다 올라가서 나무를 캐서 땔깜을 해서 민둥산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우리 동네에 있었던 일인데 나중에는 산에 벨 나무가 없으니까 곡괭이를 가지고 가서 뿌리를 캐서 그것을 햇볕에 말려서 톱으로 켜서 그것을 불을 떼서 밥을 해먹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하면서 대대적으로 녹화 사업을 하고 교육을 시켰습니다. 학생들이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꺾으면 엄청난 벌을 받는 시대였습니다. 그 선생님이 생생히 기억합니다. 나뭇가지 하나 꺾은 애를 때리면서 하는 말이 너 서 있는데 손가락을 부러뜨리면 좋겠니? 나뭇가지 꺽은 것을 손가락 부러뜨린 것을 묘사하면서 때리셨습니다. 그때 우리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가 있습니다. 산에 산에 산에는 산에 사는 메아리, 언제나 찾아가서 외쳐 부르면 즐거이 대답하는 산에 사는 메아리, 그런데 벌거벗은 민둥산에 살 수 없어 갔다 옴 메아리가 다시 돌아와서 살게끔 나무를 심는다는 노래였습니다. 산에 묘목을 심으면 처음에는 나무가 산에 신세를 집니다. 그렇지만 나무가 큰 나무가 되고나면 그 나무가 산에 신세를 지는 것이 아니라 산이 그 나무에 신세를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르치는 그 아이들 가운데 미래의 위대한 목회자도 있고 정치가도 있고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의 마음속에 신앙을 심어주는 것은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일입니다. 20년 후에 우리나라는 지금과는 상상할 수 없는 바뀌어진 시대가 될 것이고 기독교에 대해서 더 냉담해진 시대가 될 것입니다. 그런 시대를 위한 준비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신앙으로 무장된 진짜 주님을 사랑하는 그런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들을 길러내는 것 외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기 위해서는 지금 그 아이들을 교회와 국가라는 이 산에 심어야 합니다. 그 아이들이 진짜 살아있는 나무로 심겨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거듭나고 회심해야 되고 회개하고 구원받은 아이들에게는 주님의 말씀을 더 잘 가르쳐서 무럭무럭 자라도록 만들어 줘야 합니다. 어느 하나도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의 도움 없이 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그 말씀을 가르치고 싶은 치열한 마음이 생겨날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오늘부터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공 예배에서 설교를 잘 듣고 매일매일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 성경을 읽는 속에서 은혜를 받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이 경건서적을 항상 손을 떠나지 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수 있도록 읽어야 합니다. 경건 서적을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합니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아이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할 때 지금은 비록 연약한 것 같지만 언젠가는 그 아이들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깨트려 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정말 변화 받는 날이 올 겁니다. 그것을 꿈꾸고 확신하면서 오늘도 맡겨주신 자리에서 사명을 감당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