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자의 영적 생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 내가 기도하호나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빌 1:8~11)
녹취자: 김경애
제가 오늘 임직을 앞둔 여러분에게 전하고자 하는 주제는 두 가지도 아니고 딱 하나입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경건생활입니다. 여러분도 열린 교회에 와서 주님을 깊이 만났겠지만 여러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생애적으로 주님을 만난 사람들을 설교사역을 하면서 많이 보았습니다. 그중에는 자신의 거의 전 재산을 바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만났습니다. 그것을 내가 받았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제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나는 그런 고백을 다 믿었습니다. 지금은 신뢰하지 않습니다. 못 믿는다는 뜻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줄 때까지 그리고 그것은 목사를 보여주려고 사는 삶이 아닙니다. 심지어 제가 일생동안 한 설교가 기록에 남은 것이 5,500편입니다. 그 설교 중 3,000편을 들은 사람도 마지막에 거의 신앙을 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유는 무엇 때문인지 아십니까? 그렇게 주님을 깊이 못 만나고 말도 되지 않는 설교를 듣는 교인들 중에도 신앙생활을 잘하는 교인이 전 세계에 많이 있습니다. 무슨 차이입니까? 그가 들은 것이 그 사람을 바꾸어 놓을지 모르지만 그 들은 것이 그 사람을 저절로 일생을 그렇게 살아가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주 설교에도 말씀드렸습니다. 교리를 배우고 말씀을 깊이 깨달은 사람 중에서도 타락하는 사람을 보았지만 매일 새벽기도를 나와서 눈물로 기도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렇게 신앙을 버리는 사람을 거의 만날 수 없었습니다. 신앙의 지식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중요한 것은 그것을 붙들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삶으로 보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2년이나 3년이 아니라 마지막 숨질 때까지 ‘내가 그 말씀 때문에 그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과 함께 살았노라.’ 할 때까지입니다.
엊그제 제가 예배시간에 어떤 비신앙적인 예배 태도에 대해서 지적하고 통렬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예배드리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한때 맨 앞자리에서 눈물을 쏟던 사람들도 많이 섞여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임직을 하려는데 기운 빼는 소리를 하냐고 하는데 여러분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것을 오늘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가 굳게 붙들고 살아야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만약에 사람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면 그리고 나의 생활의 형편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졌다면 그것은 자신과 남을 향해서 핑계는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믿음이라는 것은 상처받는 현실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 필요가 있는 것이고 세상이 나를 속이기 때문에 나는 진실하게 살아야 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믿어야할 필요성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믿음을 방해하는 많은 일들은 우리의 믿음이 참된 것인가를 시험하고 연단하는 하나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리의 문제로 사람을 시험 할 수도 있고, 윤리의 문제로 사람을 시험할 수도 있고, 혹은 이 세상의 번영의 문제로 사람을 시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들을 모두 헤치고 꿋꿋한 믿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를 매순간 붙들어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물론입니다. 그렇지만 그 하나님의 말씀은 경건하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에게만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능력이 됩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눈물로 부탁하는 것은 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사항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첫째는 무엇이냐 하면 말씀생활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붙들린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진실로 예배자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예배자들이 되어야합니다. 어느 날 산이 무너져서 갑자기 산사태가 났습니다. 우면 산이 무너지면서 버스만한 바위덩어리가 굴러 와서 그 건너편에 있는 강남의 최고 아파트라는 45평 한 채에 15억 가까이 되는 집을 때려서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산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무엇이냐 하면 산사태가 갑자기 사태가 일어나는 것 같지만 그러나 산을 아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산사태가 일어나기 며칠 전부터 울기 시작합니다.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르릉, 우르릉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도저히 자기 힘으로 지탱할 수 없을 때 물기를 잔뜩 머금고 무게를 견딜 수 없을 때 그때에 그 무게가 산을 내리누르면서 균열된 바위와 흙 사이로 힘이 들어가면서 살이 찢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날 우리의 신앙이 무너지는 것도 항상 거기에는 어느 날 하루아침에, 무슨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루에 단 한차례라도 균이 없는 세상에서 살수는 없습니다. 무균실에 들어가지 않으면 수시로 접합니다. 손바닥을 한번 칠 때 700백만 마리의 세균이 죽는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몸이 온통 세균에 에워싸여서 호흡하고, 먹고, 마시고 들락날락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No Problem 문제가 안 됩니다. 왜? 우리 몸이 그것을 이겨내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진짜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면역력이 바닥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때 대상포진이 생기고 입이 한번 찢어지면 낫지를 않고 이런 현상이 생겨납니다. 그럴 때 작은 상처에도 감염이 되어서 패혈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피 자체가 썩는 병입니다. 48시간 안에 반드시 죽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눈이 멀든가 관절이 전부 파 먹히든가 합니다. 왜냐하면 바이러스들이 연하고 맛있는 부위로 몰려서 번식하면서 뜯어먹는 것입니다. 패혈증에 감염되어서 적기에 치료를 하지 못하면 목숨을 건져도 불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서운 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항상 생각할 때에는 바깥에 있는 원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경건생활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영적인 저항력들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십시오. 옛날에 우리가 인생을 삽니다. 저도 직장생활을 해봤고 별 일도 많이 해보았습니다. 말도 되지 않는 일들이 직장에서 일어납니다.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런데도 다닙니다. 내가 신앙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했기 때문 만에 직장을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억울합니다. 그래도 참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참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됩니다. 돈이 없습니다. 환난을 당합니다. 집안에 사랑하는 사람이 질병으로 죽어갑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에 매달립니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위로를 주십니다. 그런 것들을 다 극복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인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내적인 영적인 저항력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면역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기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유혹합니다. 마음이 쏠릴 때도 있습니다. 그것을 뿌리칩니다. 왜? 그것을 이겨야하니까 말입니다. 하도 오래전의 일인데 예수 믿는 사람인데 직장에 다니니까 술집에 가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어떤 때는 술집에 거의 따라가지 않지만 할 수 없어서 따라갑니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술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여자들을 한명씩 앉혀놓고 술을 마시는데 거기서 난잡한 행동을 하지는 않지만 거기 있기 싫지만 유혹을 받아본 적은 없습니다. 왜? 내 안에 저항력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우리 집사람보다 예쁘게 생긴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뭐가 유혹이 됩니까? 그런데 그런 저항력들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나면 사람은 무슨 짓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기억해야합니다. 신앙이 투철한 사람은 자신 안에 있는 영적인 면역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스스로 체크할 수 있습니다. 일단 눈이 감기고 정신이 멀게 되면 자신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흘러갑니다. 그러면 사람이 살면서 중심을 잃게 됩니다. 그러면 그런 것들이 어디서부터 제일 먼저 오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오늘 여러분이 정말 예배자로서 자기 자신이 한 교회의 지도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인지를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넘어지고 미끄러집니다. 그것이 첫 번째입니다. 진실한 예배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그런 예배자가 될 수 없었던 것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핑계대지 말아야합니다.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 라는 책에서 여러분이 이미 배웠는데 미소기바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미소기바라이라는 것은 일제 강점기 때 천조대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에서 논쟁이 되었습니다. 목회자들이 전부 웃통을 벗고 가서 바다 속에 들어가서 스스로 침례를 받으며 미소기바라이를 한 것입니다. 뭐냐 하면 우리는 이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순간 천조대신의 아들입니다. 천왕을 신으로 생각하고 그의 아들이 되는 의식입니다. 당연히 배교행위입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미소기바라이를 받는 그가 설교한 것 그가 준 세례와 유아세례가 유효한 것이냐? 무효한 것이냐? 신학적 결론이 무엇입니까? 신학적 결론은 유효합니다. 성경적인 입장입니다. 개혁적인 입장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마귀가 와서 설교를 해도 진리임을 믿어야합니다. 물론 마귀가 와서 진리를 설교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의 권위는 그 한 사람의 외모에 달린 것이 아니라 말씀 자체가 권위를 갖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미소기바라이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지옥에 간다든지 아니면 책망을 받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 개인의 문제입니다. 그가 순교를 했다고 하더라고 그가 외친 것이 진리가 아니면 믿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미소기바라이를 나중에 받았다고 하더라고 진리라면 믿어야합니다. 그것이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신앙입니다.
그러면 예배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고 깊이 은혜를 받고 참된 예배자가 됨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예배하는가 하는 것을 교인들에게 본이 될 수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예배자가 되어서 영혼의 유익을 누려야합니다. 제가 요즘 밥맛이 없습니다. 먹고 싶은 것이 없습니다. 밥맛이 없는 사람은 고기도 싫고 빈대떡도 싫고 밥도 싫습니다. 빵도 싫고 다 싫습니다. 밥맛이 없는데 어느 날 상을 받았는데 미친 듯이 퍼먹고 싶다는 것은 그것은 착각한 것입니다. 입맛이 없는 사람은 무엇을 갖다놓아도 먹고 싶은 의욕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 사람을 보고 차를 타고 3시간을 가서 맛있는 것을 먹자고할 때 제일 짜증이 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를 통해서 선포되든지, 성경으로 주어지든지, 책으로 주어지든지 다 주 재료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먹기 싫으면 다 먹기 싫은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예배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집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은혜를 받느냐하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는 있지만 흔히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답게 다룬 책을 읽으면서 은혜를 받고 회개를 한다는 것은 잘 일어나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참된 예배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지 못하니까 집에 가서 성경을 조용히 대면하면서 말씀의 은혜를 받는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말씀을 더 깊이 탐구하는 책을 손에 들고 일상적으로 그 책을 읽는 것이라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됩니까? 마치 댐의 밑이 파헤쳐지면서 어느 순간에 댐이 무너지듯이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신앙이 잠식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지탱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 어느 날 우르르 무너지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참된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에 깊이 은혜를 받고 그리고 성경을 매일 읽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ESV라는 성경을 여러분이 다 한권씩 샀을 것입니다. 여기서 일억 원어치를 마당에서 팔았습니다. 그것을 옆에 놓고 아니면 그 성경으로 차분차분히 하루에 몇 장씩 읽어가면서 묵상을 하고 은혜를 받고 지식을 갖추고 그 말씀에 간절한 기도를 하면서 그리고 항상 손에 경건서적이 들려 있어야합니다. 쓸데없는 이 세상의 서적들이 아니라 경건하게 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기도하고, 경건한 백성으로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책이 항상 손에 들려있어야 합니다. 늘 손에서 사라지지 말아야합니다. 그것이 우리 자신의 면역력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어떤 사람이 예수 믿는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불같이 뜨거운 사랑만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목사인 저도 그렇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어떻겠습니까? 어떤 때는 조용히 눈을 감고 뜨고 싶지 않은 그런 낙심된 마음이 일어날 때도 있고 또 별의별 생각들이 마음을 스쳐가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매일 그것과 더불어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그럴 수 있는 저항력이 어디서 생겨나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은 종종 우리 모두를 커다란 키 위에 올려놓고 한 번씩 확 터십니다. 어릴 때 기억이 아주 뚜렷합니다. 서울에서도 키를 많이 썼습니다. 왜냐하면 쌀을 파는 사람들이 나빠서 쌀만 넣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겨와 반 동강난 쌀, 이런 것들을 넣어서 킬로를 올리고 심지어는 습기까지 뿌려서 파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와서 할머니가 항상 그것을 큰 키에 넣고 공중으로 던집니다. 키를 올리면 바람이 일어나서 검불이 날아가고 겨도 날아가면서 쌀알만 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 번을 하면 쌀알은 쌀알대로 모입니다. 검불은 검불대로 모이고, 모래는 모래대로 모이고,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가끔 우리의 삶을 흔들어놓으시는 것입니다. 사업의 위기를 만나기도 하고, 가정의 어려움이 생기기도 하고, 때로는 교회의 어려움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한 번씩 던져보는 것입니다. 그 바람에 우리를 흩날리는 것입니다. 거기서 비중에 따라서 떨어지는 것이 보입니다. 그럴 때에 정말 자신의 현실을 언제나 사람이 무엇이라고 말하든지 믿음에 굳게 서서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비결을 묻는 말씀의 은혜 속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예배에서의 말씀, 성경을 읽는 것, 공부하는 것, 책을 읽는 것, 이런 일들이 계속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 속에 작동하고, 역사하고, 그런 삶을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위에서 은혜를 받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러면 책을 읽고 설교를 계속 듣고 성경을 꾸준히 읽으면서 말씀의 감화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람들이 되셔야합니다.
두 번째는 뭐냐 하면 기도생활입니다. 기도생활이 완전하게 결여되어 있습니다. 저는 월요일에 교역자들이 쉬는 것을 동의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지금도 저는 월요일이 휴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무슨 신학적으로 동의가 됩니까? 그래서 쉬지 않았습니다. 휴일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자꾸 교역자들이 아픈 것입니다. 얼마나 교역자들이 열심히 했는지 지금은 은퇴하신 정년퇴직하신 김경해 전도사님이나 이명희 전도사님은 일 년에 일주일의 휴가를 주었는데 대부분의 교역자들이 그 일주일을 다 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미친 듯이 사역을 했습니다.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자꾸 아픈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월요일에 쉬게 한 것입니다. 여기에 젊은 집사님들도 있지만 저는 여러분 나이 때에 마음을 먹으면 잠을 안잘 수도 있고 밥을 먹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밤쯤은 말씀을 전하든지, 말씀을 탐구하든지, 내가 마음을 먹으면 무한한 힘이 발끝에서부터 위로 솟아났습니다. 아픈 모든 것은 정신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차돈은 머리가 떨어지고도 몇 미터를 걸어갔고 쌩든이라는 사람은 7㎞를 자기의 목을 들고 걸어갔다는데 물론 거짓말입니다. 정신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나이가 62세인데 30대, 40대, 50대, 60대가 되어서 몸이 받혀주지를 않습니다. 정확하게 20㎏이 빠졌습니다. 몸부림을 치고 새벽기도를 나오면 오후 2시에 하루를 살 모든 에너지가 엔꼬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집에서 기도합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느냐하면 건강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시점에 사라집니다. 그런데서 오는 개인적인 좌절은 경험한 사람만이 느낄 것입니다. 5월 25일에 또 수술을 받습니다. 5시간 동안 수술을 받을 예정입니다. 우리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앞에 펼쳐진 삶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그 나이에 나의 건강을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저는 안 먹고, 안 자고, 안 나왔습니다. 저는 단호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취미도 없었습니다. 제게는 돈도 필요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까 마음대로 안 되는데 나는 내 인생의 지도를 그릴 때 60세가 넘어서 나의 육체적인 삶의 품질이 이렇게 나빠질 것이라는 것을 계산하지 않고 인생의 계획을 짠 것입니다. 매일 밤마다 수면제를 먹는데 4시간 이상 잠을 자지 못합니다. 일찍 잠이 들면 새벽 2시에 깹니다. 그래서 일부러 12시에 잡니다. 그러면 나에게 처한 상황이 특수상황이냐 하면 아닙니다. 통계적으로 모든 대부분의 인간들이 일반적으로 걷는 길입니다.
그러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까? 우리 속담 하나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메뚜기도 한철이다.’ 여러분이 건강하고 교회에 올 수 있고, 기도할 수 있고, 섬길 수 있을 때 그것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해진 시간이 그것이 5년 뒤에 끝날지, 10년 뒤에 끝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 한순간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기억나십니까? 새벽 6시에 인천공항에 내려서 씻고 8시 예배에 나와서 하루 종일 설교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스케줄을 짜지도 않거니와 몸이 감당을 못합니다. 그러면 지금 할 수 있는 날 동안에 일생을 나처럼 그렇게 어리석게 계획하지 말고 활짝 피었을 때에 많으면 20년 짧으면 15년 그리고 건강하다고 모두 교회에서 이 세상에서 여러분을 써줍니까? 관악산을 3, 40분 만에 다람쥐처럼 날아다녀도 일단 나이가 들면 나가라고 합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이명희 전도사님이나 김경해 전도사님이 근력이 없어서 심방을 가다가 쓰러지셨습니까? 노환이 와서 쓰러졌습니까? 아닙니다. 나이 먹으면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해서 주어지는 기간이 얼마인가를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이 길면 20년, 짧으면 15년, 연세 드신 분은 짧으면 10년이나 5년입니다. 그러면 그 시간동안 열정을 바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주님 앞에서 살아야합니다. 제가 열린 교회를 하고도 하루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시간이 3시간입니다. 그리고 두 시간 이상이었습니다. 새벽기도가 끝나고 마지막까지 기도하고 가는 사람이 저였습니다. 그렇지 않은 날이 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 할 수 있을 때 간절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그러면서 영적인 은혜를 가진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그것이 정말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할 삶입니다.
어느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누가 퇴직과 함께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왜? 노인이 가서 자신의 재력으로 자신의 노후를 감당하지 못하는데 그러면 밖에 나가서 라면박스라도 주워야하는데 그것을 할머니들이 리어카에 잔뜩 싣고 리어카에 떠밀려서 싣고 가도 9,000원입니다. 우리나라가 진짜 잘못하는 것이 세금을 더 거두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거둔 것을 골고루 분배해서 적어도 자기의 생계를 위해서 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저렇게 살게 내버려두는 것은 나라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쨌든 파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도 너무 불쌍한 것이고 지금 보니까 40대, 50대에 자살과 고독사 사망률이 60대보다 더 많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신문에서 특집으로 계속 나옵니다. 그런데 그것도 너무 비참합니다. 일생동안 가족들이 있는데 파산해서 가족들 사진을 품에 안고 자기를 버리고 간 가족들을 그리워하다가 노숙자로서 죽어가는 것입니다. 혹은 알코올중독으로 죽어갑니다. 너무 비참합니다. 그것 못지않게 더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영적 파산입니다. 어느 한 순간에 사랑하는 교회가 없고 그리고 목자가 없고 공동체가 없고 영적인 가족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던져집니다. 젊은 시절에는 한때의 방황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머리가 희끗희끗한 나이가 되어서 그렇게 다니면서 인생의 파산선고가 됩니다. 그러면 그런 모든 것들을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영적인 자원입니다. 그 자원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오는데 중요한 수단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쏟아놓으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주님 앞에 매달리며 기도로 주님의 은혜와 눈물로 기도하며 인생을 헤치며 살아가고 그런 것들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여러분이 끊임없이 섬기는 생활입니다. 그런데 그 토대가 철저하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설교시간에 잠깐 이야기했는데 우리 집사람이 다시는 이야기하지 말라고 오늘 아침에도 당부를 했는데 하고 싶은 말은 삼성의료원에서 한 12년 동안 정기검진을 받았습니다. 거기에 데이터가 다 쌓였고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서울대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저는 옮기기 정말 싫었는데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병원은 근처에도 가기 싫었습니다. 의사 한사람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상식에 어긋난 사람을 처음 보았습니다. 목사가 아니었으면 한바탕 싸웠을 것입니다. 30대 후반 정도밖에 안되어 보이는 의사가 ‘원래 그런 것입니다. 참으셔야 합니다. 약을 드시고 안 되면 수술을 받으실 수 있지만 낫는다는 보장이 없어요. 그냥 그렇게 사시는 것이에요.’ 환자를 향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깨끗이 그 병원에서 12년 동안 있었던 진료자료를 다 남겨놓고 병원을 옮겨버렸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의사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섬기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분이 공부를 많이 했겠지만 나도 할 만큼 했다. 그런 정신이니까 메르스를 전국에 퍼트리는 병원이 된 것 아니냐?’ 따끔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봉사하는 정신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은 섬기기 위해서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안수집사가 되었습니다. 권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무엇을 섬겨달라고 했는데 물론 돈을 내놓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위원장을 하십시오. 아니면 무엇을 하십시오. 싫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슨 기대를 가지고 교회에 임직을 했을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평생 가슴에 새겨야할 것은 우리는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서 임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섬김에 있어서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들입니다. 그 섬김이 신앙의 토대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위원이기 때문에 예배에 은혜를 받지 못하고 사람, 기도회 주최 측이기 때문에 기도를 안 하는 사람, 찬양단을 지원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찬양을 하지 않는 사람, 전도팀을 꾸려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전도를 안 한 사람,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서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솔선해서 잘 섬기면서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주님을 섬기는 어떤 기쁨 내가 존중을 받고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는 기쁨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용서받은 죄인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살 수 있다는 은혜, 특권 이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언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지 모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 섬기십시오. 그 섬김 속에는 영적인 헌신, 물질적인 헌신, 그리고 정신적인 헌신 모든 것들이 이 안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섬기면서 권사가 되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신앙이 더 좋아지는 법은 없습니다. 오히려 장로가 되고 안수집사가 되는 일은 영혼에 훨씬 더 위험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영적인 건강과 저항력, 은혜 이런 것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안수집사나 권사나 임기가 끝나고 나면 이 직분을 다 끝내고 나면 오히려 그런 직분을 맡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더 붙들 수 있었고 기도할 수 있었고 흔들림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길 수 있었다고 대답할 수 있을 때 여러분의 임직이 더욱 빛나는 임직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마음으로 주님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