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지도자의 준비
녹취자: 오정민
모세가 죽고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리더쉽이 여호수아에게로 넘어갑니다. 아마 그렇게 엄청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지도자 모세를 여의고 그리고 여호수아가 지도자로 등극하였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산을 보다가 언덕을 보는 것 같았을 것이며 바다 앞에 서 있다가 호수를 보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 만큼 여호수아와 모세는 비교될 수 없는 권위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정복에 놀라운 위업을 하나님은 이 연약해 보이는 사람 여호수아를 통해서 성취해 가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이끌던 때의 모세에는 기적이 믿음을 따라 왔지만 여호수아가 등극하고 난 다음에는 믿으면 기적이 따라 오는 새로운 경륜이 펼쳐졌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하나님은 모세와 같은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들을 따르던 이스라엘 백성들 보다 그만 못하고 연약한 이 여호수아를 따르던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더 큰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정복의 위업을 바로 이 연약해 보이는 여호수아의 리더쉽 아래에서 성취하게 하셨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종종 이 여호수아가 가지고 있었던 영적인 준비들을 소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모세의 시대에는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셨지만 여호수아 시대에는 여호수아를 통해서 일하시기보다 하나님이 직접 행하셨다 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오늘 성경 본문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우리의 편견인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사람들을 무장시키시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이 한 순간 초월적인 능력과 은사로서 그들을 무장시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오랜 세월을 두고 그들을 천천히 무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우월을 잴 수 없을 정도로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사역에 있어서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한번에 하늘을 열고 부어주시는 큰 능력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오랜 세월을 두고 서서히 형성해 가시는 하나님의 영적인 준비를 소홀하게 생각하고 또 후자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한 순간 하늘을 열고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 초월적인 능력의 경험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모두 필요한 것입니다. 후자가 없는 전자의 사람들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한 때는 하나님께 큰 능력과 은사를 받았지만 그러나 그것들을 지속해서 나아갈 수 있는 마음의 굳셈과 연단된 힘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교만해지고 부패하게 되는 경우는 너무나 많이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여호수아는 모세가 모두 떠나간 뒤에도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커다란 심판의 경고를 들을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했고 모세는 하나님 앞에 용서를 탄원하며 자신의 기도로 부족하다라는 것을 느끼면서 그들의 진 떨어진 곳에 회막을 세우고 그리고 그 곳을 기도 처소로 삼아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호소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 회막으로 나아가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세도 그 회막에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 하였을 것이고 또 거기서 하나님과 대면하며 주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빽빽한 구름이 가득하고 기적이 일어나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기서 하나님이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모세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이미 모세는 상당히 열노한 나이였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회막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섬기다가 아마 깊은 밤이 되면 자신도 진으로 돌아가 쉬었을 것입니다. 그 때에 이 모세를 따르던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가 등장 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일꾼으로 삼으시려고 특별히 선택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돌아갔으나 이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틀림없이 이 회막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올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리고 하나님께서 마땅히 예배를 통하여 받으셔야할 영광과 경배를 위하여 그 두 사이에 끼여 이 사람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간절한 탄원과 기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미래의 지도자들을 세우시는 그 준비가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미 미디한 광야에서 40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그는 영적으로 단련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세 번이나 되는 금식 기도 속에서 모세는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렸고 목숨을 건 기도 속에서 열렬하던 그의 혈기는 죽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거룩한 지도자가 되어 갔습니다. 지도자는 남다른 사람으로 태어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똑같은 길을 걸어서는 결코 지도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삶은 오늘에서 보면은 오늘의 삶이지만 내일에서 보면 내일의 삶이 전개되는 준비입니다. 꽃은 어느 한 순간에 활짝 피지만 준비 없이 어느날 무에서 유로 창조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그 나무가 죽었다고 생각되는 겨울에도 기다리고 있다가 이제 해동을 하게 되면 무수히 땅속에 있는 물기들을 빨아드립니다. 물이 오르는 봄철에 나무에 청진기를 대고 들어보면은 물 올라가는 물소리가 아주 요란하게 뿌리로부터 나뭇가지 끝가지 오르게 됩니다. 어제는 어느 도로를 지나다가 버들가지가 잔득 피어 있는데 벌써 푸른 빛이 도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모두 죽었다고 하는 겨울에도 나무는 부지런히 활동을 하고 우리가 아직은 겨울이라고 생각을 하는데도 그 놈들은 물기를 빨아드리고 있습니다. 어느 한 순간에 활짝 피는 아름다운 꽃의 개화는 그토록 잔인하리 만큼 오랜 세월동안에 부지런한 준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목회자로 목회자의 아내로 혹은 평신도 지도자로 미래의 삶을 살아 갈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분들이 이렇게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지만 여러분들의 삶은 놀랍게 서로 갈리게 될 것 입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들이 다양하기 때문에 수평으로 갈리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매우 귀하게 쓰임 받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은혜 속에서 주님을 섬기게 될 것이며 어떤 사람은 자신의 한계에 갇혀서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여러분들이 오늘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달린 것 입니다. 오늘 살아가면 살아가는 것이죠. 그러나 치열한 몸부림이 몸부림 속에 사는 사람이나 그냥 시간에 이끌려 가듯이 사는 사람이나 우리는 그 차이를 잘 분간하지 못합니다. 일 때문에 일을 하는 사람과 소명 때문에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 사역의 기초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짧은 시간의 구간 안에서 분별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일 하는 사람이나 소명을 따라 사는 사람이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사명감 있는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이나 사명감 없는 사람이 일 한 것이나 별로 겉보기에는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더욱이 게으름 속에서 그 일을 하는 사람들과 부지런함 속에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마땅히 하여야 할 의무에 종사할 때에는 그 차이를 별로 들어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매일매일의 삶은 마치 대나무의 마디처럼 쌓여 갈 것 입니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은 훌륭한 지도자 훌륭한 일꾼이 될 것이며 어떤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신앙을 기준으로 보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일은 우리가 불행해지는 것이고 제일 행복한 일은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 일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신앙의 눈으로 본다면 우리의 생에 가장 슬픈 일은 하나님 앞에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행복의 기준을 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쓸모없게 된다 할지라도 자신이 행복하기를 원하겠지만 하나님에게 신앙의 기준을 둔 사람들은 자신이 불행해질지라도 하나님 앞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을 분명히 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살아 있으나 사실은 산 것이 아닙니다. 일락을 좋아하는 자들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사실은 죽은자 라고 한 것처럼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어두운 세상을 불꽃처럼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는 그 길에는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지 수많은 사람이 꽃다발을 들고 흔드는 그런 아름다운 광경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설령 그런 때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외면상 그럴 뿐입니다. 설령 그런 때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시간적으로 매우 잠시 짧은 시간에 그러할 뿐입니다. 오히려 보다 많은 날 동안 그는 외로움과 싸우고 고난과 싸우고 시련을 이기고 역경을 헤쳐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매우 특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여러분들은 교역을 길을 걸어갈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누군들 앞으로 펼쳐질 인생의 날들이 쓸모 없는 사람이 되어서 이 교회 저 교회를 떠돌고 싶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으며 어느 교회를 가던지 존경받고 그리고 인정받는 일꾼이 되고 싶지 교회에 부담을 주어서 “언제쯤 저분은 나갈실려나 저 나이 먹도록 왜 우리 교회의 부목사로만 계시나”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소망과는 상관이 없이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게 되고 누구도 자기 자신의 오는 가는 인생의 시간들을 붙잡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론은 오늘 여러분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되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섭리는 신비해서 때로는 하나님이 손을 놓으신 것처럼 인간의 손에 의해서 때로는 악인들의 손에 의해서 인간의 역사 교회의 중요한 사역들이 이어지도록 내버려 두신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두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이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중요한 사역의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이 자신이 권모술수로 몸부림치고 상대방을 누리고 모함을 하는 경쟁을 통해서도 이상하게 하나님이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지위에 오른 거나 중요한 사역의 자리에 차지하도록 내버려 두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어린 아이가 쓴 커다란 장군의 투구와 같고 천한 사람이 손에 붙는 나라를 다스리는 황금홀과 같아서 언제가는 그 권위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고통을 받거나 혹은 방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고 그 불행한 일에 있어서 우리가 예외가 되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인 것만큼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다. 모든 사역의 아름다운 덕목들은 신앙에서 성취된 것이지 사역에서 성취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미래는 지금 어떻게 사역하는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지금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냐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여호수아를 보십시오. 카리스마에 있어서는 모세를 따를 수 없는 사람이었고 만약에 모세가 히말리아야 산이라면 여호수아는 남산만도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믿음에 있어서 이름이 말해주는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비록 모세와 같은 카리스마는 없었으나 이 사람 여호수아는 예수의 모형이 되기에 충분할 정도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을 보여주었고 그것으로서 하나님을 어린 아이처럼 의지하며 영적인 사람으로서 자기 시대에 맞겨진 소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사람들이 보기에는 모세가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그를 지도자로 세우고 하나님이 지도자를 세우시는 그 순간에 성령의 놀라운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과 함께 고려되어야 할 사실이 있는데 모세는 특별한 지도자로 비범하게 태어난 사람은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비범한 준비 속에서 자기의 긴 인생 여정을 보내었고 그림자처럼 모세 옆에 있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갔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그 회막을 떠나간 뒤에도 그는 모세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심정으로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와 그들에게 베풀어져야할 하나님의 긍휼을 위해서 간절한 기도로 밤을 밝히며 그 회막을 홀로 지켰던 것입니다. 이러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연을 가진 숯한 날들이 하루하루 쌓여가서 결국은 이 모세를 대신할 위대한 여호수아의 지도자로서의 생애를 열고 가나안 정복의 위업을 달성하게 하셨던 거예요. 자신을 하나님 앞에 바치는 매일매일의 헌신이 없이 자신이 미래에 때가 되면 훌륭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게으른 배짱이가 나무 그늘 아래 누워서 꿈을 꾸는 한 여름밤의 꿈에 불과한 것입니다. 지도자는 훌륭한 사람으로 태어날 필요가 없으나 그는 남다른 길을 걸으며 자기 자신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퇴보하는 사람은 항상 자기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보고 그리고 전진하는 사람은 항상 자신보다 훌륭한 사람을 봅니다.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꿈꾸며 살아가는 미래의 삶을 구체적으로 생각하지도 않은채 자기보다 게으르고 무능하고 진리에 어둡게 살아가는 다수를 보며 위안과 만족을 얻는다면 그는 지금은 그 사람과 차이가 날지 모르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면 그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언제가 하나님이 그 마음을 움직여셨기 때문에 목회의 길에 들어섰고 언젠가 예수의 사랑에 가슴이 저미도록 감동을 주셨기 때문에 사무에 길도 들어섰지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 중 그런 은혜의 경험을 갖지도 않고 이 길로 들어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체험을 간직하고 들어선 많은 사람이 돈벌이처럼 밥벌이처럼 목회 사역에 종사하는 예는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삶과 사역의 기준을 높은데 두고 그리고 그 속에서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무한히 큰 뜻을 깨닫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한 시대를 하나님 앞에 살며서 자기를 불 살려드렸던 사람들 그리고 육체의 한계와 더불어 싸우는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자기를 촛불처럼 살라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이바지하고 헌신했던 사람들의 삶을 등불로 삼아서 자신의 삶을 밝히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남이 웃는 날에 눈물을 흘리고 남들이 노래하는 날에 하나님 앞에 가슴 아파 몸부림치고 남들이 먹고 마시고 기뻐하는 날에 금식하며 이름없이 빛도 없이 매달리는 과정들 그 자체는 우리에게 아무런 영광도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남들이 기억해주지 않는 그 외롭고 고통스런 날들의 집적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아주 조금씩 티가 나지 않도록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눈을 뜨고 나면 그렇게 살아온 사람과 그렇게 살지 않은 사람들은 비교될 수 없도록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에 몇일 있는 동안에 초반부에는 몸이 좀 많이 아팠어요. 굉장히 힘들게 지냈고 정말 교회로 돌아오고 싶었는데 후반부 되면서 그래도 기도를 많이 해주셨는지 몸이 좀 회복이 되고 무안에서 연길까지 새벽 6시 15분에 공항에 나갔는데 거기 도착하니까 4시였어요. 하여튼 중국이 참 큰 땅덩어리 구나 라는 사실을 했고 비행기만 4시간 정도 탄 것 같아요. 그리고 연길에 도착해 보니까 얼음이 아직까지도 두텁게 얼어 있어서 사람들이 얼음 위로 강을 건널 정도로 영하 17도 아주 추웠어요. 거기서 그 불편한 곳에서 이 세계에 잘 나가던 학자들이 월급 한 푼 주지 않는 학교에 와서 5년씩 10년씩 20년씩 그렇게 봉사하는 것을 보면서 참 부끄러웠어요.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시고 또 우리 모두에게는 앞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나갈 수 있는 길들이 열려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귀하게 어떤 사람은 천하게 사용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역사속에서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있으면 안될 사람들이 있기고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그날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어떠한 준비 속에서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이런 원리를 가지고 사람을 쓰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눈의 아들 정녕 여호수아를 특별히 사용해서 당신의 위대한 일들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모세가 뿌렸으나 여호수아가 거두게 하셨던 것이죠. 지금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살아가고 있는 사역자의 삶을 깊이 돌아보고 오늘날에 살아가는 나의 삶이 그저 일을 해나가는 삶이 아니라 미래의 지도자로서 내가 성숙하고 연단되어져 가는 과정인지를 깊이 생각하며 고민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오늘날은 기도교 사역에 있어서 영적이 특성들이 거의 무시되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진리의 가치나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간절한 기도의 가치같은 것들이 짓밟히고 무시되고 있습니다. 신학교 다닐 때 금식을 밥먹듯 하고 매일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그 많은 헌신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도 세월이 흐르면 부패하고 쓸모없는 사람이 됩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여호수아처럼 자신을 준비하며 산다면 그 사람들은 10년이나 혹은 20년 후에 주님께서 매우 소중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오늘을 허비하며 그리고 게으름과 나태 속에서 신앙없이 살아간다면 10년이나 20년 뒤에 매우 쓸모 없는 사람이 되어서 열린교회에 있었던 인생이 나의 생애의 전성기였다 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이 될까요. 하나님이 오히려 우리를 소중하게 사용하시고 우리는 우리가 여기 함께 있었던 시간들이 바로 이 쓰심을 위하여 하나님이 준비하신 시간들이었노라고 고백을 하게 될 때 그것이 정말 하나님 앞에 정말 소중한 고백이 되지 않겠습니까. 최근에 어느 교회 목사님의 만났는데 새로 그 교회에 부임을 하면서 털어 놓는 고민이 수많은 부교역자들 나이가 오십이 넘었는데도 교회를 떠나고 있지 않은 부교역자들에 대한 근심으로 한숨을 쉬었어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못 떠날꺼다. 그리고 안 떠날꺼다.” 맨 처음에 우리가 왜 이길을 들어섰는지를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이 길은 우리가 직업으로 들어선 길이 아니라 이 생명도 달라 하시면 십자가에 드리겠다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들어섰고 그래서 이전에 살았던 삶은 오늘 섬김을 위한 준비가 되었고 그런 것처럼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은 미래의 섬김을 위한 준비가 될 것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하루라도 헛되게 보내지 말고 게으름과 타협하지 말고 부패하지 말고 굳게 주님을 붙들고 자신을 이 회막안에 세워 불철 주야 주님을 찾는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이곳에 우리 함께 있었던 날들이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소중하게 사용하시기 위해서 함께 있게 하신 훈련의 기간들 이었다는 사실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항상 눈물이 있는 기도가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밝은 빛에서 목회에서 오는 상처들을 위로받고 고침을 받지 사람으로 부터 오는 칭찬으로 그런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언제나 여러분들의 삶에 앞으로 여러분들이 삶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아주 소중하게 사용해 주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