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가르치는 교사
“입을 열어 가르쳐서 이르되”(마 5:2)
녹취자: 김명진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이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하나씩 하나씩 고쳐주시고 그 다음에 가신 곳이 팔복산이었습니다. 병 고침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따라온 것 같지는 않고 일부의 사람들이 따라갔고 예수님은 산위에 왕처럼 좌정하신 후에 앉아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에는 여러분이 들고 다니는 것 같은 성경이 없었습니다. 그때에는 구약성경밖에 없었고 그것도 양피지로 두루마리로 말아서 다녔기 때문에 구약성경 전권 모두는 한 두루마리가 될 정도의 분량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가지고 다닐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말씀이 5장, 6장, 7장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신약을 연구한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는 ‘5장, 6장, 7장이라고 하는 산상수훈의 말씀이 예수님의 설교를 정리한 것인데 아주 중요한 골자만을 요약했을 것이다. 그러면 그 다양한 내용, 천국 백성의 삶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이 산상수훈이 어쩌면 예수님이 아침에 설교를 시작해서 오후까지 이어지는 아주 긴 설교였을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쭉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병든 자가 낫고,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소경이 눈을 뜬 것 같은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더 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깨닫게 되었고, 그들의 마음속에서 ‘천국백성은 누구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큰 말씀의 권세를 누리면서 이전의 종교지도자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율법사들에게 가르침을 받았을 때는 전혀 경험한 적이 없는 놀라운 말씀의 권능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교사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교사가 하는 일이 많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잘 돌보아 주어야 하고,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공부를 도와주기도 하고, 어려운 아이들은 찾아가서 심방을 하기도 하고, 많은 일들을 합니다. 진짜 마음에 아이들을 사랑하는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위해서 뭐든지 해주고 싶어 합니다. 그렇지만 그 어떤 것도 교사의 본래적인 사명은 아닙니다. 교사의 본래적인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들에게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교사입니다. 그러면 오늘 여러분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십시오. 교사의 본래적인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고 그 말씀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사람이 교사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교사로서 봉사해 왔을 때 정말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여러분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었고 그 일에 가장 많이 힘을 쓰는 지 한 번 반성하기 바랍니다.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목사님이 주일학교에 한 번 내려가 보았습니다. ‘이 아이들이 요즘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우고 있나’하고 내려갔습니다. 한 아이를 만났는데 아주 바르게 목사님께 인사를 했습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어, 그래.”, “지금 몇 학년이니?”, “초등학교 4학년입니다.”, “우리 교회에 온지 얼마나 되었니?”, “제가 6살에 왔기 때문에 6년이 되었어요.”, “그래?,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배웠겠구나. 너 그럼, 여리고 성을 누가 무너뜨렸니?”, “목사님, 제가 안 그랬어요.”하고 울었습니다. 목사님이 하도 기가 막혀서 그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이 아이가 선생님이 가르치는 아이가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이 아이가 우리교회에 다닌지 6년이 되었다는데 내가 여리고성을 누가 무너뜨렸냐고 하니까 이아이가 자기가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데 선생님은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목사님, 이 아이는 정직한 아이에요. 얘가 그러지 않았다고 하면 안 그런 것입니다.” 목사님이 하도 기가 막혀서 그래서 부장장로님을 불렀습니다. “장로님, 이 아이에게 여리고 성을 누가 무너뜨렸냐고 하니까 자기가 안 그랬다고 울고, 선생님은 이 아이가 안했다고 했으면 진짜 안한 것이라고 하는데 장로님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장로님의 대답이 더 기가 막힙니다. “목사님, 누가 그랬든 이미 무너진 것입니다. 그것을 지금 따져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교회가 물어줍시다. 제가 절반을 내겠습니다.” 누가 웃자고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에는 그 속에 뼈가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지 않고 지내는지를 보여줍니다. 제가 예전에는 앞에 있는 사람 열 명을 세우고 “지난주에 공과를 가르친 사람만 남고 앉으세요.”라고 하면 공과를 가르친 사람이 두 명이나 세 명이 됩니다. 그러면 무엇을 했느냐, 대표적인 것이 “지난주에 주일학교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는 행사하느라고 말씀을 못 가르쳤습니다. 아이들이 조금 밖에 오지 않아서 공부를 하지 않고 게임을 하고 갔어요.” 등 입니다. 그것은 선한 목자가 아닙니다.
제가 전도사 때, 교수를 하면서 교회 일을 했습니다. 교회에서 주일날 교회마당에 떡볶이, 오뎅, 사탕, 솜사탕이 잔뜩 있습니다. “이게 뭐냐?” 했더니 달란트 잔치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게 뭔데?” 했더니 6개월 동안 전도를 하면 100달란트를 주고, 요절을 외우면 20달란트를 주면 그것을 모았다가 어느 한 날 선생님들이 떡볶이 같은 것을 만들어서 그 달란트를 주고 사먹는다고 했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교육적인 효과가 있느냐?” 친구를 전도했으면 그것을 떡볶이로 바꾸어 먹는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늘나라에 가서 상급을 받아야지, 그것이 아이들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교회가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하는데 교회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TV에 나오는 15초 짜리광고를 잘 만들었다고 하려면 10억 가까이 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무엇을 가지고 TV나 멀티미디어를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그런 것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교회는 이 세상이 줄 수 있는 것이 교회에도 있다고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세상 어디에 가서도 받을 수 없는 그 무엇을 받는 곳이 교회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제가 어느 교회에서 전도사를 할 때 아이들이 80명 정도 모였습니다. 선생님들이 있는데 열심히 하는 사람은 열심히 하고, 안하는 사람은 안합니다. 한 반을 보니까 예배가 끝나고 공과공부를 시작하는데 어느 한 반이 공과공부를 한 시간 반씩 했습니다. 공과공부를 하는데 여자 선생님이 아이들을 모아놓고 “얘들아, 너희들 아침 안 먹었지?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오느라고 늦은 것 아니겠니?” 가방을 여니까 진짜 샌드위치 쏟아집니다. 중에 한 아이가 “선생님 우유가 없네요. 우유 사올게요.”, 한 아이가 일어나니까 두 아이가 “나도 같이 갈래요.” 아이들이 6명인데 전교인의 50%가 우유를 사러 갔습니다. 근처에 가게가 없어서 아주 멀리 가서 15분은 걸렸습니다. 그래서 우유를 따르다가 쏟았습니다. 걸레를 가지러 가니까 옆에 있는데 아이가 “나도 같이 갈래요.”하고 따라갔습니다. 전교인의 30%가 우유를 닦았습니다. 하여튼 사연이 많았는데 우유를 마시고 샌드위치를 먹었습니다. 이제 공과공부를 하겠지 생각했습니다. “얘들아, 우리 일주일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서로 나누어볼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나하나 아이들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제 끝났구나.’ 했더니 선생님이 “이제 내가 이야기를 할게.” 하면서 자기이야기를 한참을 이야기했는데 화요일까지 밖에 안 했습니다. 마지막에 최수종 팬클럽에 갔다 온 이야기까지 하니까 벌써 다른 반에서는 공과공부를 끝내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애들아, 오늘 정말 은혜로운 시간이었지? 우리 손잡고 기도하자.” 그러니까 한 아이가 “선생님, 우리 공과공부 안 해요.”, “야, 이 새끼야 가만히 있어. 기도하고 끝난 대잖아.”그리고는 기도하고 갑니다. 저쪽 반에서는 공과공부를 막 시작하는 데 “와!”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왜 그러느냐?”, “전도사님, 우리는 오늘 공과공부 여기에서 안 합니다.”, “어디에서 하는데?”, “웬디스 가서 공과공부 합니다.” 치킨집입니다. 저는 순진해서 거기에서 하는 줄 알고 가봤습니다. 고막이 터질 정도로 음악이 나오는데 거기에서 무슨 공과공부를 하겠습니까? 치킨 한 조각씩 먹고 아침에 가는 것입니다. 죄짓는 것 아닙니까? 치킨을 먹지 못해서 굶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것 집에도 많습니다. 귀한 시간에 아이들이 나왔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한쪽에서는 “와!”하고 함성을 지릅니다. “왜 그러느냐?” 했더니 선생님이 나오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선생님이 나오지 않으면 걱정이 되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선생님은 토요일에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럽니다.
그래서 제가 전도사로 가서 너무 마음에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토요일에 교회에 가서 철야를 했습니다. 내가 여기에서 죽든지 저 사람들이 변화되든지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토요일에 가서 2년 반을 철야를 했습니다. 그렇게 2년 반을 하고 몇 주 흐른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젊었을 때 30년 전이니까 열렬하게 전했습니다. 한 번에 90분씩, 한참 많이 설교할 때 180분을 했습니다. 세 시간, 90분하고 10분 쉬었다가 다시 90분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아이들이 어느 날 예배를 드리다가 바닥에 내려와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회개를 했습니다. 그런 역사가 있다가 수련회에 가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교회가 9시 예배가 되면 9시가 되어야 교회를 오고 30분까지 들락날락했는데 은혜를 받고 나니까 앞자리에 앉으려고 7시부터 교회를 오는 것입니다. 머리까지 다 감고 와서 앞자리에 앉아서 기도하면서 예배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설교를 하면 아이들이 크게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반에 선생님이 안 온 것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와! 신난다.” 아팠는지, 오다가 교통사고가 났는지, 죽었는지 관심도 없었는데 선생님이 없으니까 10명 정도 모였는데 성경을 한 장씩 돌아가면서 읽고,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기도를 했는데 제가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었는데 놀라지 마십시오. 한 여학생이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우리 선생님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 주님을 만나고 새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그것을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변화되기 전에는 몰랐는데 주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고 보니까 자기 선생님이 진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정말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사람이 아니니까 주일날 아이들이 거기에 나온 것이 얼마나 기적입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으면 영혼의 어떠한 변화도 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면 그 말씀을 듣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듣지 않고도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은 뭐가 문제입니까? 아이들이 교회에 나오기는 하는데 초등학교 때는 엄마아빠가 무섭게 잔소리를 하니까 할 수 없이 나오고 중학교 때는 용돈을 주지 않는다고 협박을 하니까 용돈 때문에 할 수 없이 나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만 되어도 말을 안 듣습니다. “너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용돈 없다.”고 했더니 여자 아이가 엄마 머리에 맡에 팬티를 하나 그려놓았답니다. 치사 빤스라는 뜻입니다. 그러고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갑니다. 대학교에 가면 끝난 것입니다. 누구의 죄입니까? 여러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가 맡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린 때는 언제입니까?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정말 주님을 모르는 것 같다, 구원을 받지 못한 것 같아서 여러분 눈에 눈물을 흘린 적이 마지막으로 언제입니까? 영혼을 돌보는 섬기는 일은 끊임없는 자기 죽음의 고통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리처드 백스터’라는 17세기 청교도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사람은 누군가가 대신 울어 주어야할 만큼 불쌍한 사람입니다.”
맨 처음에 여러분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까? 그리고 정상적이라면 누가 여러분을 교사로 만들었습니까? 월급을 준다고 했습니까? 여러분 중 어떤 사람은 선생님이라는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교사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6개월이나 가겠습니까? 별로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러면 정상적이라면 무엇이 여러분에게 교사가 되게 했습니까? 왜 여러분은 월급도 주지 않는 이 일에 봉사하고, 이 금요일 날 힘들고 피곤한 시간에 여기에 나와서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 것들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리고 한때는 그 아이들처럼 아무 생각이 없고 인생을 막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이 비참한 인간을 이렇게 사랑하셔서 날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구나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라고 고백했습니까?
(찬양)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니까 그 사랑이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서 바라보니까 너무 많은 아이들이 주님을 모른 채 방황하고 어리석은 아이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 아이들이 내가 만난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아이들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안타까운 마음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것이 너무 감사해서 전도하게 된 것이고, 교사가 된 것이고, 아이들을 가르치게 된 것입니다.
제가 열다섯 살 되던 해였습니다. 주일날이었습니다. 교회에 가는 길 논둑에 엎드러져서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 인생을 왜 사는 것일까? 하나님은 정말 있는 걸까? 세계는 무엇일까?” 저는 모태신앙은 아니지만 기어 다닐 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교회가 이런 것에 대해서 한 번도 다뤄줘 본 적이 없습니다. 기어 다닐 때부터 시작해서 15살까지 교회를 다녔는데 그 선생님 중 한 사람도 “남준아, 너 정말 구원받았니?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이 믿어지니? 내가 너를 위해서 기도해줄까?”, 그리고 집에 찾아와서 “남준아, 너 지난주에는 왜 교회에 오지 않았니?”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논두렁에 엎드려서 펑펑 울고 결심을 했습니다. ‘나는 이제 기독교와 결별하리라.’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저는 철저하게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나를 거쳐 간 수십 명의 선생님이 있는데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 내가 저 선생님들에 대해서 ‘저분은 나를 사랑한다.’라고 느껴진 적이 한 분도 없었습니다. 그중에 한 분만 비교적 진실하시고, 나를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하게 가르쳐주려고 했던 것이 생각이 나고 나머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15살 먹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나는 느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후로부터 6년 동안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청소년기의 방황했습니다. 눈을 뜨고 나면 너무 무서웠습니다. 죽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오늘도 살아야 하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왜 내가 사람이고, 내가 왜 인생을 살아야하는지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교회의 그 많은 설교, 그 많은 공과 공부, 아무 유익이 없었습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기어 다닐 때부터 15살 때까지 교회를 다녔는데 그 불쌍한 아이가 한 명의 선생님으로부터 사랑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제가 엄청난 말썽꾸러기였느냐? 아닙니다. 비교적 착한 아이었습니다. 말이 없고, 수줍고, 쉽게 말하면 선한 목자를 한 명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찬양)
우리 죄와 강팍함주님께 기도하니
우릴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 하소서
아니 그 아침의 시간에 왜 샌드위치를 싸옵니까? 공과 책을 펴놓고 열심히 배우고 간절히 기도해서 영혼의 양식을 아이들에게 떠 넣어 줄 생각을 해야지, 선한 목자가 아닙니다.
여러분, 영혼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엄청나게 책임이 따르는 문제인지 아십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실족시키는 일이 없을 수는 없지만 실족시키는 자는 연자 맷돌을 목에 매어 바다에 빠뜨리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영혼을 죽이는 것입니다. 문제는 엄마가 애기를 낳았어도 먹은 것이 없으면 젖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웃의 젖을 동냥하여 먹이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포기하고 분유를 먹입니다.
제가 해 본 것은 열 명을 일으켜 세워서 주일날 예배드린 사람 그 중에 한 두 사람은 앉습니다. 주일날 주일을 못 지킨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8사람 중 “주일날 무슨 설교를 들었는지, 목사님이 무슨 성경 몇 장 몇 절을 설교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서 있고 나며지는 앉으십시오.”하면 한두 명 서있고 다 앉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묻겠습니다. 지난주에 목사님 설교 어디 하셨습니까? 예배시간이 되면 극장을 가도 15분 전에 가서 준비를 합니다. 팝콘을 사고 콜라도 삽니다. 예배는 11시 5분 전에 옵니다. 11시 10분, 11시 15분, 11시 30분까지 다양하게 옵니다. 그러고 나서 예배를 드립니다. 예전에는 2시간씩 예배를 드렸는데 지금은 한 시간 밖에 안 드립니다. 설교도 이제는 23분, 25분밖에 하지 않습니다. 앉아서 그 광경을 봅니다. 죽어있는 사람, 졸고 있는 사람, 졸다가 성경책 떨어뜨리는 사람, 하나님보다 높은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는지 핸드폰 들고 뛰어가는 사람, 거기에 하나님은 안계십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왜 오시겠습니까? 헛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백날 가 보십시오. 거기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지. 그러고 그것도 예배라고 예배를 드리고 갑니다. 예배를 드릴 때는 그렇게 우울하던 사람이 예배가 끝나면 그렇게 행복합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서 있으면 악수하고 목사님이 “감사합니다.”라고 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교회가 음식점입니까? 저는 23년 목회를 했지만 한 번도 그 앞에 서서 “감사합니다.”하고 인사해본 적이 없습니다. 마치 음식점 주인에게 인사 하듯이 하고 갑니다. 올 때는 늦게 온 사람들이 갈 때는 왜 그렇게 빨리 가려고 하는지 미친 듯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그러고 주차장으로 뛰어 가서 잠시 후에 파자마 입고 TV앞에 리모컨을 돌립니다. 그렇게 예배를 드리고 간 사람들 중 95%는 구약을 설교했는지, 신약을 설교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제가 아까 질문했습니다. 자기가 돌보는 영혼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 본적이 언제인지 물었습니다. 또 하나 질문하겠습니다.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듣거나 책을 읽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회개의 눈물을 흘려본 적이 언제입니까? 있기는 합니까? 그 속에서 영혼에 대한 사랑,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 복음을 모르고, 어둠속을 살아가는 영혼을 향한 간절한 눈물이 있기나 한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교인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빔 프로젝트나 틀어서 만화 영화나 보여주고, 간식이나 사다가 나눠주고, 아이들 즐겁게 놀아준다고 해서 그 속에서 아이들의 영혼이 변화됩니까?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아무것도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사랑과 진리, 성경과 진리만이 아이들을 변화 시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은혜를 많이 받아서 이 속에서 주님을 위한 사랑이 넘쳐나고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저 이 속에서 체험된 하나님의 말씀이 이 속에 가득차고 충만해서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 권세가 나타납니다.
정말 너무 어려운 시대를 만났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교사로서 아이들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 중에 하나님 앞에 30분 이상씩 매달리면서 기도하는 분이 몇 명이나 될까요? 반 아이들의 이름은 외우십니까? 우리 교회에 목회자 인턴십 과정이 있습니다. 매학기 20명 정도씩 매주 월요일마다 와서 공부를 하고 교회 사역도 배웁니다. 어느 날 제가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여러분, 주일학교를 하는 사람도 있고, 중고등부 하는 사람도 있고 유치부 하는 사람도 있고 청년부 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제가 숙제를 내줄텐데 지금부터 3주 정도 여유를 줄 테니 아이든지 청년이든지 어린이든지 상관없이 선생님과 의논을 하던지, 자기가 직접 하든지 해서 아이들이 가슴에 손을 얹고 구원받았는지, 구원받는다는 말 아십니까?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습니까? 복음을 듣고 자기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진실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밖에 의지할 수 없다는 마음이 생겨나서 자신의 인생 전체를 주님이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그분께 그분을 믿고 순종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구원의 조건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몇 명인지 조사해 오라고 했습니다. 그 중에 한 전도사님이 심각하게 고백을 했습니다. 45명의 초등부 아이들을 가르치는 전도사인데 3주 동안 45명을 다 만난 것입니다. 자기가 신학생으로서의 양심을 걸고 ‘이 아이가 정말 오늘 죽으면 하늘나라에 갈 수 있을까’를 점검했는데 1명이 구원받은 아이가 확실하다는 확신이 생기고 44명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회개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오늘 제가 숙제를 내주겠는데, 여러분이 돌보는 아이들은 몇 달 동안 돌보았으니 알 것 아닙니까? 집에 가서 조용히 명단을 펼쳐 놓고 오늘 이 아이들이 죽으면 하늘나라에 갈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될까 헤아려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러면 구원받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서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그 아이들이 아직까지 하나님을 몰라서 주님 앞에 눈물을 흘리며 회개할 수 없다면 그것을 대신 해주는 것이 여러분이 할 일입니다.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 할 일입니다. 부모들이 회개해야할 일입니다. 자기 아이들이 영적으로 죽었는데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내버려 두다가 대학교를 가면 대학교는 좋은 시절이니까 엄마 아빠 말도 안 듣고 자기 혼자 돌아다니다가 감사절이나 부활절이 되면 한 번씩 나오고 그러다가 직장 다니면 바쁘다고 그러다가 “엄마, 나 아무래도 장가가야겠어.”, “그래? 그렇게 하거라. 좋은 아가씨가 있니?”, “네, 엄마”, 데려와 보니까 불교신자입니다. 엄마가 안 된다고 펄펄 뛰니까 우리가 사랑하는데 그 까짓게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 아이가 주일학교도 다녔는데 아이가 그렇게 된 것이 누구의 탓입니까? 여러분, 정말 심각한 일입니다. 교사들이 주일 오후에 모여서 다 공과공부 하고 교사회의 한 다음에 눈물바다가 되어야 합니다. ‘정말, 저 불쌍한 아이, 저 가엾은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서 누군가가 간절히 눈물을 흘려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 아이에게 어떻게 하든지 들려줄 수 있는지 선생님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성경을 사랑하고,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예배 시간에 은혜를 받고, 성경을 읽으면서 은혜를 받고,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교사는 책의 사람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지식적으로 우위에 있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가르쳐 준다고 하면 여러분은 배우겠다고 하겠습니까? 교사 5년 정도 하면 책꽂이 하나정도의 책이 가득차야 합니다. 20년 정도하면 3개나 4개의 책꽂이에 기독교에 관한 책들이 성경부터 시작해서 교육학, 경건서적에 대한 책들이 가득차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영혼에 대한 의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 같이 불행한 사람이 나오지 않습니다.
저는 그 후로 6년 동안 철저히 무신론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젊은이, 청소년들에게 필요 없는 이야기를 해서 교회를 안 다니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했습니다. 제 동생은 교회를 잘 다녔는데 제가 두 달 동안 설득해서 교회를 다니지 못하게 했습니다. 나중에 회개하고 다시 전도하느라고 힘들었습니다. 그러고 결국은 교회의 장로가 되었습니다.
요즘 주일학교 아이들 보면 너무 가엾습니다. 물질적으로는 예전보다 풍성한 시기에 살지만 그까짓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 아이들이 변화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습니다.
제가 신학교수가 된 첫해에 서울시에 있는 어느 고등부에서 겨울 수련회 설교를 하라고 불렀습니다. 거기를 돌보고 있는 교역자가 강도사님이었습니다. “교수님, 오늘 말씀 얼마나 전하실 것입니까?”, “몇 시간을 전했으면 좋겠습니까?”, “모두 포함해서 한 시간 내에 끝내야 합니다.”, “왜요?”, “더 늦게 해도 괜찮지만 아이들이 지루해 할 것 같아서 오래하면 안돼요.”, ‘아이들이 지루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왜 나를 불렀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도사님, 내가 왔으니까 알아서 할 테니 당신은 저 뒤에서 기도나 하십시오.”그렇게 하고 90분 동안 설교를 했습니다. 불을 꺼놓고 기도를 하고 아이들이 다 뜨겁게 기도를 하는데 어느 젊은이가 사이를 뚫고 나와서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엎드려서 회개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강도사님이었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부터 진리의 말씀을 살도록 했습니다. 마음에 쌓여있는 더러운 껍질을 벗기고 나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그립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매년 회심집회를 합니다. ‘담임 목사님과 함께하는 어린이 회심집회’를 합니다. 영아부부터 시작해서 초등학교 6학년까지 부서별로 나누어서 설교자들이 들어가서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주님을 믿기로 결단하는 식의 회심집회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을 설교할 때였습니다. 은혜를 많이 받고 집에 갔습니다. 엄마가 물었습니다. 엄마들도 옆에서 기도를 열심히 합니다. “오늘 회심집회 어땠니?”, “엄마, 오늘 회심집회 너무 은혜로웠어. 그런데 단점이 있었어. 우리 목사님 설교가 너무 짧았어.” 그날 설교가 75분이었습니다.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알게 되면 너무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아주 작은 아이들도 받아들입니다. 주님을 만난 아이는 다릅니다. 요즘 중학교 아이들이 외계인 인 것 아시지요? 북한이 쳐들어오지 못하는 이유가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이 무서워서 쳐들어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토요일이 되면 중학교 아이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갑니다. “너희 어디 가니?”, “목사님, 우리 중등부 새 친구들이 와서 우리 기도하러 가요.” 그 아이들은 얼굴 모습이 다릅니다. 거리에 다니는 중학교 아이들과 얼굴이 다릅니다. “목사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랑스러운 성도가 되도록 기도해 주세요.”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런 아이들은 빗나가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하나님을 만나고 심겨진 아이들은 은혜가 식을 수는 있어도 빗나가지 않습니다. 요동하지 않습니다. 딱 중심에 서서 주님을 바라봅니다.
지금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의 파도가 휩쓸려 와서 아이들을 망가뜨립니다. 우리의 힘으로 그것을 막으려고 해도 안 됩니다. 모래성을 쌓은 것 같고 파도가 한 번 오면 떠내려가듯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뜨거운 사랑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주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교사가 된 사람들이 하여야 할 마지막 사명입니다.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한 아이가 정말 주님을 믿고 변화될 때, 또 그 아이가 방탕한 길로 미끄러져서 타락했을 때 그 인생의 차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아이들의 영혼을 고칠 수 있는 놀라운 특권을 여러분에게 주신 것입니다. 아이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가르치려고 애를 써도 아이들이 변화되지 않으면 정말 이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내가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될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 속에 뜨겁게 불타고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는데도 아이가 변화되지 않으면 내가 정말 아이를 뜨겁게 내 영혼만큼 사랑했는가, 이 아이의 영혼의 운명이 내 운명인 것처럼 내가 아파하고 고민 했는가 반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저는 주일학교 사역을 긴 세월을 해보면서 터득한 것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아이들의 마음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제가 21살에 회심하고, 22살부터 교사를 했습니다. 주일학교를 마지막에 그만 둔 것이 33살까지 했습니다. 정말 아이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교사가 되면 아이들의 마음을 하나님이 변화시킵니다. 제가 신학생도 아니고 여러분과 똑같이 직장에 다니면서 평신도로 교사를 했습니다.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서 20명 정도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는데 입에 욕을 달고 다니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공과공부를 하는데 그 욕쟁이가 똑바로 앉아서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그 다음부터는 매 공과시간마다 눈이 새빨개졌습니다. 그때 평신도 때이지만 영혼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이 예측할 수 없구나. 그 욕을 입에 달고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까지 살아온 그 아이가 그렇게 공과공부시간에, 옆에서 아이들이 떠들고 다니면서조용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을 들으면서 그 아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때에 역사하신 하나님은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는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영혼을 돌보아야 합니까? 여러분이 영혼들을 돌보는 자세와 태도를 보면서 “잘 하고 있구나. 충성된 종아. 너는 정말로 선한 목자이구나. 눈물로 말씀의 꼴을 구해다가 아이들에게 먹이는 구나.”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정말 영혼들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말씀을 꼭 붙들고 가르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밤새도록 여러분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 봐야 여러분이 무엇을 기억하겠습니까? 교사의 본분이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다. 성경을 가르쳐라. 두 번째 아이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라.
제가 1999년에 『교사리바이벌』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오늘 당장 거기에 나오는 것 중에 한 꼭지라도 읽으십시오. 제발 그 책을 읽고 정말 눈물로 회개하고 하고, 일 년 가르치고 그만두더라도 정말 뜨겁게 그만두는 그 날 까지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불타는 마음으로 가르치고, 온 마음을 다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기 바랍니다.
저는 평신도 때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서 주일날 아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집으로 오면, 먼 길을 산모퉁이를 지나고 개울을 건너면서 매일 울면서 왔습니다. 아이들은 저렇게 방황하고 불쌍한데 하나님 내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합니까? 어쩌면 우리가 최선을 다해도 끝까지 변화되지 않는 아이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할 수 있는 방법을 다해서 아이들을 사랑해주고, 아이들에게 편지도 써주고,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사랑해 주고, 그리고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이들을 변화시켜서 거듭난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