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04. 외부강의
교사 헌신 예배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마 5:2)
녹취자: 박은희
교사, 그러면 교회에서 어린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지시합니다. 교사가 하는 일이라고 하는 것은 참 많습니다. 심방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요즘 같아서는 상담도 많이 해 주어야 합니다. 요즘은 우리 자랐을 때 처람 세상이 사회가 간단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이 많은 상담을 많이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요즘 젊은 사역자들 이야기를 들으니까 요즘 아이들은 입을 열어주지 않으면 마음이 안 열린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해야 되는 일은 자꾸 사서 먹여야 된 답니다. 그래서 입이 열린 것만큼 마음도 열린답니다. 모두 먹을 것도 사주어야 된답니다.
옛날에 제가 전도사 생활할 때 보니까 하도 애가 교회를 안 나오니까 선생님이 가서 “왜 안 나오느냐?” 그랬더니 “숙제하느라고 못나온다.” 고 그러니까 걔들 데리고 공부를 가르치고 숙제를 같이 해주더라고요. 그것도 또 어떤 때는 교사들이 합니다. 이렇게 많은 일들을 교사가 하지만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은 다 주변적인 것이고 가장 중심의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 바로 교사다 그런 뜻입니다.
오늘은 실험을 안 하겠습니다. 이렇게 세미나로 모이거나 헌신예배로 모이면 수 백 명, 경우에 따라서는 막 2천 명씩 모이잖습니까? 그러면 앞줄을 다 일으켜 세웁니다. 그러면 한 이십 명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꼭 묻는 것이 뭐냐 하면 “지난 주일날 공과를 가르친 사람만 서있고, 나머지 앉아라.” 그러면 한 7명쯤 앉습니다. 그러고 한 열 두세 명 남습니다. 그중에서 “지난주에 무슨 공과, 성경 어디를 가르쳤는지 기억하는 사람만 남아라.” 그러면 딱 두 명 남고 다 앉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냐 하면 매주일 이십 명의 교사가 있으면 일곱 명 정도는 공과를 안 가르칩니다. 그 중에. 왜 안 가르쳤느냐고 물어보면 뭐 행사가 있었다. 뭐가 있었다. 그러는 것입니다. 가르쳤는데도 자기도 뭘 가르쳤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 기억이 안 나니까 그렇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리는 없죠? 그러니 성심으로 교사가 가르쳐도 아이들이 그게 가슴에 담아둘까 말까인데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문제가 발생 하냐하면, 아이들이 유치부 때처럼 교회를 다녔는데 고등학교가 되고 대학에 들어가면 교회를 다 떠납니다. 왜냐하면 신앙이 없습니다. 교회는 다녔는데 신앙이 없습니다. 그러면 신앙이 어떻게 생깁니까?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데서 생기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래 다녀서 교회의 추억은 많은데 하나님의 말씀은 없습니다. 그런데 집에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부모가 열심히 가르쳐야 되는데 부모도 잘 모릅니다. 성경을. 그러니까 안 가르칩니다.
오늘 여기 앉아계신 부모님들 중에서 자기아이들에게 정기적으로 성경을 가르치시는 분이 있는지 내가 묻고 싶습니다.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까 아이들이 좋은 때 다 놓치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신앙을 넣어주기 제일 좋은 때가 언젠지 아십니까? 청소년 때? 아닙니다. 언제냐 하면 아이들이 몇 살쯤 되었을까? 한 세 살? 엄마 이것은 뭐야? 이것은 뭐야? 아주 그냥 하루 종일 물어보는 때 있죠? 아주 귀찮을 정도로. 그래 가지고 시끄러워 엉덩이를 때릴 때도 있잖습니까? 엄마, 이건 뭐야? 이건 뭐야? 이건 뭐야? 그때가 아이들이 지식을 빨아들이는 때입니다. 그때 엄마 말은 하나님 말입니다. 아니 하나님 말보다 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신다고 할 때 아멘하고 빨아들이지 않잖습니까? ‘어이 참, 목사님 현실을 잘 몰라서 그렇지 아이, 저대로 살 사람이 누가 있겠어?’ 그러잖습니까? 아이들은 엄마가 이게 뭐다 그러면 쭉쭉 빨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때에 탁 무르팍에다 놓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거든, 예수님이 네 죄 때문에 죽으셨거든, 네가 정말 섬길 분은 하나님 한분밖에 없다 이렇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것을 그 좋은 때를 놓치고 내버려두었다가 유치부 때 너무너무 좋은 때 입니다. 내버려둡니다. 그때가. 그리고 뭐라고 그러는 줄 아십니까? 애들이 다 그렇지, 애들 때 무슨 신앙이 들어가? 어른 때 어른보고 그래야 됩니다. 어른이 되었는데 무슨 놈의 신앙이 들어가? 이렇게 얘기를 해야지 맞는 것이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쓰디쓴 대가를 이제 치릅니다. 자, 초등학교 다닐 때 까지는 “교회 엄마 안 갈래.” “쓱, 딱” 꼼짝도 못하고 따라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너 그러면 용돈 안 준다.” 그러면 할 수 없이 따라옵니다. 그런데 이제 대학 들어가면 안 통합니다. 훨훨 날라 갑니다. 그러다가 남편은 장로고 나는 권사인데 어느 날 “엄마, 나 좋은 사람 생겼어. 결혼할래.” 그리고 데리고 왔는데 불신자 아니면 불교신자입니다. 어떻게 하든 말려도 보고 눈물로 사정도 해봐도 부모하고 정을 끊으면 끊었지 이 사람은 놓칠 수 없답니다. 할 수 없이 교회 알리지도 못하고 예식장가서 주례선생 사가지고 예식 합니다. 이게 뭐 흔히 보는 이야기 아닙니까? 여러분들이 부모가 되어가지고 그렇게 자식을 기르면 그 죄 값을 어떻게 치르려고 합니까? 서약했습니다. 유아세례 줄 때에. “이 아이의 구원을 나의 구원처럼 생각하고, 이 아이를 위해 기도하며, 이 아이와 함께 기도하며, 우리 종교의 도리를 이 아이에게 가르치겠습니다.” 약속 했잖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세월을 보내는 것입니다. 이게 오늘날의 가정의 형편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 할 수없이 믿을 만한 데는 교회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내가 못 가르치니까 교회에나 희망을 거는 것입니다. 이렇게 갖다놓고 이게 무슨 주일 학교가 이벤트회사도 아니고 맨 날 무슨 행사, 그렇게 하면서 애들 데리고 노는 것인데, 여러분! 교회에서 발 벗고 좇아가도 세상의 문화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어떻게 좇아가겠습니까? 교회의 이 가난한데서. 그 세상에는 여러분! 텔레비전의 15초 광고 나오잖습니까? 15초짜리 텔레비전 광고 나오지 않습니까? 아이, 왜 그렇게 모르는 척합니까? 텔레비전 광고 나오지 않습니까? 놀라지 마십시오. 세상에 저것도 광고라고. 이 정도 되는 것이 일억 오천만원입니다. 야! 멋있다. 6억 내지 8억이 들어간답니다. 15초짜리 찍는데. 무엇으로 교회에서 그런 데에 눈이 닳도록 닳은 아이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어 줄 수 있겠습니까? 그게 성경을 안 가르쳐준 죄입니다. 이것은 죄 짓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오늘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시작하는 도입부입니다. 그리고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랬더니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와서 산에 충분히 모입니다. 예수님이 산위에 앉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렁차게 전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 5장 3절에서 시작이 되어서 그래서 5장, 6장, 7장까지 흘러갑니다. 그 하나를 산상수훈이라고 하는데 신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어떤 결론을 내냐 하면 이것은 그날 산상에서 한 예수님의 설교의 전문이 아니다. 예수님이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설교를 하셨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설교의 골자만을 간추린 것이다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5장에서부터 7장까지 읽는 것만 해도 장난이 아니고 5장부터 7장까지 만약에 상세하게 설교를 하면 일 년을 걸려도 다 못할 턴데, 그날 예수님이 어머 어마한 분량의 하나님의 말씀을 쏟아내신 것입니다. 어쩌면 아침에 시작해서 해가질 때에 끝났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4장은 어떻게 끝나느냐 하면, 각색 병든 사람들이 예수님께 다 와서 고침을 받으려고 바글바글 모인 그런 장면으로 4장이 끝납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각색 병들고 많이 고통 받는 사람들을 예수님이 치료해 주셨지만, 그것은 신앙의 본질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들이 받을 수 있는 유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예수님이 설교를 하신 게 이제 관건인데 자 이 당시에는 이러한 성경책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후대에 나온 것이고 그 당시에는 두루마리입니다. 그 때는 신약이 없고 구약이니까 그 두루마리가 한 구루마입니다. 그것은 회당에서나 펼쳐서 보는 것이지 그 뭐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어디서 펼쳐서 설교를 하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설교 노트도 없이 메모지도 없이 그냥 모여 있는 불쌍한 많은 영혼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서 전체를 볼 때에 예수님은 아주 과묵하신 분이었습니다. 꼭 필요한 말만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입을 탁 열자 하나님의 말씀이 폭포수처람 확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래서 5장에서 쏟아져 나와서 5장, 6장, 7장까지 흘러갑니다.
그럼 어떻게 입을 열자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확 쏟아져 나갔는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 차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었으니까 그렇게 설교할 수 있었다라고 말하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고, 예수님이 하나님이셨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계셨기 때문에 원래 하나님의 말씀을 안 것이 아니라, 주님도 하나님의 율법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공부하고 읽으시면서 주님의 말씀이 예수님의 마음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입을 열어 진리를 가르치실 그때에 폭포수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확 쏟아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교회학교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자기의 주업이 되어야 하는데, 그 주된 일은 제쳐놓고 다른 일들만 많이 하고 그러면서 아이들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딱 세워서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사람이 되게 만드는 일을 잘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는 중간 결론을 얻게 됩니까? 사람이란 말의 순서가 마음의 가득 찬 관심사의 순서와 일치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지만 말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이 마음속에는 이 말을 하고 싶은데 이 말 말고 딴 말을 해야 될 때는 자꾸 뒤섞이고 뒤범벅이 되고 말을 버벅 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화) 어느 교회 장로님이 주일날 교회 나오시는데 배추장사 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가을철인데 배추를 잔뜩 심어놓았는데 가격이 계속 떨어져서 예배시간 내내 고민을 했는데 목사님이 예배순서를 따라서 강 아무개 장로님 올라오셔서 성경을 봉독하겠습니다. 이분은 계속해서 지금 배추 값 떨어지는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올라와서 오늘 성경 말씀은 요한복음 3원 16전입니다. 이 속이. 그러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들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 안에 가득 있어서 주님의 말씀에 대한 감격이 살아있으면 벌금을 먹인다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제가 600명 정도 모이는 교회에 전도사로 있을 때에 일입니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전도사로 갔는데 인계할 때 이렇게 프로그램을 보니까 예배시간은 30분밖에 안되고 공과 공부 시간이 두 시간입니다. 그래서 내 생각에 ‘야 이거 공과를, 성경을, 유명한 교회니까 성경을 엄청나게 가르치는구나.’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제 한번 이렇게 다니면서 공과 공부시간에 제가 늘 노트를 들고 다닙니다. 그래서 뭘 지적할 사항이 있으면 다 적어놓았다가 교사회의 때 얘기를 합니다. 쭉 돌아다닙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그 중에 열심히들 하는데 어떤 반에 갔더니 그럽니다.
(예화) 선생님이 예배시간 거의 끝날 때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입니다. 여자 선생님이 탁 앉더니 그래서 이제 예배가 끝나고 나니까 곧바로 공과 공부를 시작을 하는 것입니다. 갑자기 공과 공부를 하는데 “얘들아, 너네 아침 못 먹었지?” 그 시간에 아침 누가 먹고 옵니까? 다 못 먹지. “야, 내가 너희들 줄라고 이른 아침부터 샌드위치를 만들었다는 것 아니냐?” 가방을 여니까 샌드위치가 나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6명인데. 그러니까 그 중에 한 애가 “선생님, 우유가 없네요? 우리가 우유 사올게요.” 그러니까 한 애가 벌떡 일어나니까 두 아이가 “나도 같이 갔다 올게요.” 전교인의 50%가 우유 사러 갔습니다. 그런데 우유 올 때까지 기다리는데 그런데 그 동네에 가게가 없었습니다. 한 15분 걸려서 이제 우유를 그 1리터짜리 하나를 사가지고 터덜터덜 올라오는 것입니다. 먹다가 쏟았습니다. 그러니까 옆에 있는 애가 “아유, 걸레를 가지러 가야 되겠네.” 그러니까 옆에 있는 애가 또 벌떡 일어나더니 “나도 같이 갈래” 그러고 가는 것입니다. 전교인의 33%가 걸레 가지러 갔습니다. 하여튼 그렇게 난리를 치고 한 30분 넘게 걸려서 샌드위치를 다 먹었습니다. ‘아, 이제 공과 공부를 하려나보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딴 데로 가는 것입니다. 뭐라 그러냐 하면 “얘들아 우리 공과 공부하기 전에 한 주간 동안에 어떻게 살았나 우리 서로 나누어 볼까?” 뭐 그럴 수도 있잖습니까? 그러면 간단간단하게 하고 빨리 공부를 해야지. 얘가 한 10분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애가 한 10분, 그래서 이제 다 돌아서 1시간 20분쯤 흘렀습니다. ‘이제 시작을 하려나보다’ 그랬더니 “그럼 이제 내가 얘기할 차례이지?” 그러고 자기가 한 30분 또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저쪽 반 에서는 벌써 끝나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뭐라고 그러냐하면 “얘들아, 오늘 정말 은혜스러운 시간이었지? 우리 모두 손잡고 기도하고 마치자.” 옆에 있는 애가 “선생님, 왜 공부를 안 해요?” 옆에 있는 애가 옆구리 쿡 찌르면서 “가만있어 이 자식아, 끝나려고 그러는데 왜 그래?”그러고 간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공과공부 시간인데 저쪽 반에서 갑자기 “와아!”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그러느냐? 공과 공부시간인데” “가자!” “어딜 가냐?” “우리 공과공부 여기서 안하고 웬디스 가서 합니다.” 웬디스가 무언가 그랬더니 통닭집이었습니다. 햄버거 집. 그리고 순진하게 거기서 공과 공부를 하는지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러더니 처음서부터 공과 공부가 불가능한 장소입니다. 막 두드려 부수는 음악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공과 공부를 해? 거기서. 닭다리 하나씩 먹고 집에 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최악의 교사입니다. 최악의 교사. 처음부터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의지가 없는 교사입니다. 왜 거기 있는지 나는 이해가 안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니 예배시간까지 지각을 하면서 왜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습니까? 자기가 뭐 빵집사장입니까? 아니 새벽에 일어나서 성경말씀을 하나라도 잘 봐가지고 가슴에 담고 와서 영혼의 떡을 먹여야지, 누가 뭐 샌드위치 하나 못 사먹을 가난한 사람 있습니까? 그래 내가 가서 다 뒤집어엎어 버렸습니다.
애들이 제일 좋아하는 주일이 뭐냐 하면 선생님 못 나오는 주일입니다. 아파서 못나왔든 사고로 못나왔든 그것은 관심이 없습니다. “야! 우리선생 안 나왔다.” 그러고 이제 예배 끝나고 나서 다른 반 애들 공부할 때 도망가는 것입니다. 그러던 애들이 들어보십시오. 제가 가서 하여튼 다 잡았습니다. 진짜 그때는 목숨을 걸었습니다. 젊은 마음에. 그래 가지고 돌덩어리 같은 녀석들이 이제 회개를 했습니다.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회개를 하고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때 내가 처음 부임한 것이 6월 달이었고 이제 얘네 들이 11월 달쯤 되었는데 선생님이 안 나온 것입니다. 선생님이 교회 안 나온 이유도 여러 가지입니다. 토요일 날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안 나온 사람, 또 뭐 자다가 그냥 잊어먹고 그냥 내쳐 자서 안 나온 사람, 총천연색입니다. 다 도망갈 애들이 쫙 12명쯤 모여 앉아가지고 자기네끼리 성경을 읽으면서 공과시간 하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기도회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얼마나 진지한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기도회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소리를 뒤에서 들어보니까 뭐라고 그러는지 아십니까? 잘 들어보십시오. “하나님 우리 선생님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 우리 선생님이 방황하지 말고 예수님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실화입니다. 실화. 얘네 들이 변화 받고 선생님을 이렇게 보니까 너무 불쌍해 보이는 것입니다. 예전에 자기처럼 방황하는, 그게 아이들에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이 주일학교 교육이 잘 되어 가고 있는지 궁금해서 잠시 내려 가셨습니다. 복도에서 아이 하나를 만났습니다. “얘야, 너 지금 몇 학년이냐?” 그러니까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초등학교 4학년입니다.” “그래? 너 우리교회 언제 왔니? 제가 6살 때 왔으니까요 지금 6년 동안 이교회를 다녔어요.” “그래? 여리고 성을 누가 무너뜨렸니?” 갑자기 삐질삐질하더니 “목사님, 제가 안 무너뜨렸어요.” 목사님은 하도 기가 막혀서 얘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선생님이 청년이 하나 오는 것입니다. 그대가 이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입니까? 그렇습니다. “아니 내가 이 아이 보러 여리고 성을 누가 무너뜨렸니?” 그러고 물어봤더니 지가 안 무너뜨렸다고 저렇게 삐질삐질 우는데 선생님 어떻게 생각을 합니까? 선생님이 더 재미있습니다. “목사님, 얘가 안했다면 안 한 것입니다. 얘는 정말 정직한 애입니다.” 목사님이 하도 기가 막혀서 부장 장로님을 불렀습니다. “장로님, 얘하고 이 선생님이 장로님 주일학교 선생님하고 애들 맞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아니 내가 얘한테 “여리고 성을 누가 무너뜨렸냐?” 그랬더니 얘는 자기가 안 그랬다고 삐질삐질 울고, 선생님한테 물었더니 얘가 안 그랬다면 그것은 정말일 것입니다. 그러는데 장로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로님이 더 재미있습니다. “목사님, 그냥 교회에서 물어줍시다. 제가 반을 대겠습니다.” 누가 지어냈는지 모르지만 얼마나 한국교회에서 성경을 안 가르치는지를 자조적으로 풍자한 것입니다. 그렇게 가르치면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혼들에게 아주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부모님이 그리스도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고모님들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집에 살았기 때문에 저는 기어 다닐 때부터 교회 다녔습니다. 중학교 2학년, 제가 중학교 1학년 말쯤 사춘기가 오기 시작했는데 중학교 2학년 까지 교회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 긴 세월 교회를 다녔는데 한 선생님도 나에게 가까이 다가 와서 남준아! 너 예수님이 너의 죄를 위해서 죽으신 것이 믿어지니? 그리고 예수님이 너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네가 구원을 얻을 수 있단다. 정말 네 마음속에 예수님이 믿어지니? 너 구원 받았니? 그렇게 물어봐준 선생님이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참 많이 원망했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수많은 선생님들이 걸렸는데 한분도 그것을 물어봐준 선생님이 없었습니다. 빵도 사주고 짜장면도 사주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정말 내 영혼의 필요한 것은 해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중학교 2학년 때 내 발로 교회를 떠났습니다. 왜냐하면 교회 있는 사람들의 삶이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보다 조금도 낫다는 생각이 안 듭니다. 그리고는 6년 동안 삶과 죽음사이를 오가는 방황을 했습니다. 신앙을 가졌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이 합니다. 그리고는 21세 때 내가 다시 기독교신앙을 갖기 위해 교회로 돌아올 때까지 저는 무수한 방황을 계속 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정말 되풀이 돼서는 안 됩니다. 정말 끔찍한 비극입니다.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내 오늘 사실 예정에는 없는 것이지만 한 얘기만 하겠습니다. 여기 보니까 연세 드신 분들 많으시고 자녀들 있으신데 여러분 우리말의 단어인데 참척이라는 것 아십니까? 참척. 아무 네가 참척을 당했대. 참척이 뭔지 아십니까? 참이 비참할 참자에다가, 척이 슬플 척자입니다. 비참하게 슬프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 무슨 뜻 인줄 아십니까? 어린자식이 어미애비먼저 죽을 때 그것을 참척이라고 합니다. 그 장례식장에는 부모가 나타나지도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씻을 수 없는 불효를 했기 때문에 나타나질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신의 참척은 상상하기도 싫어하고 끔찍이 여깁니다. 영적인 참척은 무엇일까요? 부모는 예수 믿고 구원받았는데 자식은 아직도 회심을 안 하고 거듭나지 못해서 영혼이 죽어있을 때, 영적참척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 믿는 가정에서 우리 애들이 자랐으니까 다 신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정말 아닙니다.
(예화) 우리교회 청년하나가 교회를 여러해 전에 왔는데 얘는 중이었다가 예수를 믿고 우리교회로 온 애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얼마나 극적 이었나하면 정식으로 중이 될려면 무슨 계를 받아야 된답니다. 그런데 그것을 수련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중 옷을 입고 이제 쓰레질도 하고 심부름 하는데, 그 주지스님이 어느 날 “얘야, 너 읍내에 내려가서 책 한권 사오너라.” 그리고 책의 이름을 적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래서 읍내에 내려가 보니까 주지스님이 사준 책을 사가지고 갈라고 그러고 보니까 거기에 웬 설교 테이프 하나가 서점에 꽂혔더랍니다. 그게 제가 발행한 ‘생명의 말씀사’에서 나온 ‘불붙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자’ 라고 하는 그 오디오 북이었습니다. 이것을 무슨 생각에 사가지고 온 것입니다. 밤마다 그것을 녹음기에다 꽂고 들은 것입니다. 듣다가 걸렸습니다. 그러니까 절이 발칵 뒤집힌 것입니다. 이 미친놈이, 중 되겠다고 절 들어온 놈이 밤이면 밤마다 어느 목사설교를 듣고 있다가 우리한테 걸렸습니다. 그리고 주지스님한테 보고가 들어간 것입니다. 그 친구는 거기서 절에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신기하죠? 그렇죠? 그래 불려갔습니다. 주지스님이 교회로 말하자면 담임목사쯤 됩니다. 그 주지스님이 딱 보더니 “야, 도대체 너는 뭐하는 사람이냐? 교회를 가서 예수를 믿지 왜 절에 와서 예수를 믿냐?” 그러니까 얘가 자기의 사정을 다 털어놓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불교에 길이 있을까 해서 왔는데 아직은 잘 모르지만 정말 아닌 것 같습니다. 잘 모르지만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사람 설교를 들으니까 내 마음이 감동이 되고 예수를 믿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 굉장히 신사였습니다. “빨리 가라! 네길은 예수 믿는 것이다.” 그러고서 하는 말이 그 다음 말이 재미있습니다. “나도 옛날에 주일학교 선생을 해 보았지만 주일 학교 학생이 아니라 주일학교 선생을 해 보았지만.” 아무리 많이 교회를 다녀도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정말 구원받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전심으로 기도해야 됩니다. 정말 기도해야 됩니다. 내가 그래서 우리교회 자매들에게, 부모들에게 항상 이야기 합니다. 두 개만 해주면 부모로서의 사명은 다 하는 것이다. 첫째 예수 믿고 거듭난 사람이 되게 해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기본적인 교육을 시켜서 이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면 부모로서의 사명은 다한 것입니다. 그리고 온마음울 다해서 자식이 구원 받았는지 가서 확인하고 그리고 그렇지 않으면 깊이 회개해야 됩니다. 그리고 자식의 영혼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기도를 해야 됩니다.
교회에서도 똑 같은 상황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오면 그러면 물론 아이들에게 먹을 것도 필요하고 따뜻하게 돌봐주어야 하고 대화도 해 주어야 되고 그러지, 오자마자 “야, 너 숙제해왔어?” 이렇게 하면서 한 시간 내내 성경을 가르치면 교회에 걔네들이 나오겠습니까? 그것은 필요하지만 핵심적으로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단 한마디라도 그 아이에게 넣어주기 위해서 그래서 선생님이 자기 자신을 준비하고 교회에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런 교사들이 전혀 없겠지만, 요즘도 아침에 버스타고 나오면서 공과 책을 읽는 사람이 있습니까? 조용히 공과 책을 놓고 조용히 퇴장을 하시는 것이 그 영혼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만약에 목사가 설교를 그런 식으로 준비를 하면 여러분들 동의를 하겠습니까? 우리교회 목사님은 토요일까지 신나게 명화극장보고 놀다가 요거 주일날 예배드리러 나올 때에 남의 설교 집 쭉 읽으면서 온다더라. 그리고 하도 시간이 없을 때는 그것 찢어가지고 올라가지고 설교 한다더라. 그러면 여러분 정말 그 목사님 존경하겠습니까? 오늘도 목사님이 담임 목사실에 가보니까 몇 십년동안 쓴 설교노트가 책꽂이에 하나 가득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너무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 일을 하라고 하나님이 교사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제가 그 다음 어느 교회에 거기도 한 700명 정도 모이는 교회에서 있었습니다. 어느 날 주일날 교회를 들어갔는데 교회마당이 아주 법석입니다. 이게 뭔가? 그랬더니 시장이 섰습니다. 여기는 떡볶이 집, 여기는 뻥튀기 집, 여기는 사탕 뭐 이렇게 녹여서 만드는 집, “이게 뭐냐?” 애들이 거기 와서 또 뭘 주고 거기서 사먹어. 그래서 “너희 이거 뭐냐?” 그랬더니 “아유! 전도사님, 우리 지금 달란트 잔치하고 있는 거예요.” “달란트가 뭐냐?” 그랬더니 “전도하면 100원을 주고, 출석하면 20원을 주고, 그 다음에 성경요절을 외워오면 50원을 주고 그것을 6개월 동안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다 모아가지고 와서 잔치하는 날 와서 그것을 주고 그것을 사 먹는 것입니다. 돈 대신.”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야, 친구를 전도했으면 하늘나라 가서 상을 받아야지 여기서 떡볶이 하고 바꿔먹으면 하늘나라 가서는 무슨 상을 받을 라고 그러니?” 선생님들 보고 그랬습니다. “이것을 왜 합니까?” 이게 아이들에게 얼마나 나쁜 영향을 준다고 생각 안 해보았습니까? 아니 달란트라는 것은 성경에 보면 그것을 잘 남겨가지고 주님께 돌려 드리라는 것이지 언제 그것 가지고 사탕 바꿔먹고, 떡볶이 바꿔먹고, 오뎅 바꿔먹으라고 달란트를 주었냐 말입니다. 그렇게들 생각이 없습니다. 그 시간에 떡볶이 판들고 왔다 갔다 할 동안에 성경을 한절이라도 잘 익혀가지고 와서 아이들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넣어줄 생각을 해야지. 그래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인생은 바뀌지 않습니다. 인생이 바뀝니까? 내가 물어봅시다. 인생이 바뀝디까? 바뀌긴 뭐가 바뀝니까? 이럴 수는 있습니다. 가난하게 살던 사람이 복권에 맞아가지고 부자가 될 수는 있습니다. 그게 인생이 바뀐 것입니까? 그게 무슨 인생이 바뀐 것입니까? 인생이 바뀐다고 그러는데 기독교인은 그런 것 인생 바뀌었다고 얘기 안하는 것입니다. 내가 물어봅시다. 식인종이 있는데 그 식인종이 여기에다가 표범 가죽 털 묶고 그리고 엉덩이 다 내놓고 돌도끼 들고 막 뛰어다녔습니다. 그게 식인종이었네 원시인처럼 생각하십시오.. 그런데 그 식인종이 갑자기 문명하고 접촉을 해가지고 이제 자전거를 타고 사람 잡아먹으러 다니는 것입니다. 그것도 식인종입니다. 그런데 이게 복권을 맞아가지고 80평형 현대 아파트에 입주를 했습니다. 그래도 그 인간은 누구입니까? 식인종입니다. 그런 것은 우리가 인생 바뀌었다고 안하는 것입니다.
(예화) 한 4년전 인가요? 가정의 달 때는 항상 가정의 관한 설교를 하는데 뭐 부모자식 동기간 다하다가 마지막에 이상하게 이 설교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교인이 자기 친구가 하도 곤고하게 사니까 열심히 전도를 했는데, 교회는 또 그런 사람이 안 나오지 않습니까? 거의 뭐 꼬시다 시피 해가지고 교회까지 끌고 와서 간신히 예배를 드리러 왔는데 이 사람은 생전 처음 교회를 나온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어떤 상황이었나 하면 남편하고 살다 살다가 이 인간하고는 도저히 살수가 없다 그래서 이혼을 할려고 법원에서 서류를 갖다가 써서 장롱에 넣어놓고 이제 오늘 내일 도장 찍을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 날 왔는데 하필이면 예배시간에 설교제목이 ‘이혼을 생각하는 그대에게’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교회에 처음 나왔는데 그 날 아주 하나님이 설교에 참 복을 주셨습니다. 지금도 원고를 내가 가지고 있는데 보니까 한 90분 정도는 설교를 한 것 같습니다. 최소한 80분은 설교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부어주셔서 이 자매가 거기서 깊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가서 남편을 부른 것입니다. “여보!” 이 남편이 이혼할려고 지금 도장 찍을려고 그러는 마누라 하고 사는 남편이 뭐 정이 있겠습니까? ‘저 마누라쟁이가 왜 부르나? 오늘은 또 뭘 갈굴려고 부르나?’ 남편이 들어갔더니 이상하게 아내가 눈이 벌겋게 부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자기가 들어가자마자 자기는 아직 앉지도 않았는데 무릎을 탁 꿇는 것입니다. 이게 가문에 없었던 일이지. 고개를 푹 숙이더니 “여보, 내가 잘못했어. 내가 당신을 너무 힘들게 했어. 모든 것은 다 내가 잘못한 것이었어.” 그리고 운 것입니다. 그 남편이 뭐라고 그랬겠습니까? ‘뭐 그것 이제 깨달았냐? 이 바보야!’ 그랬겠습니까? 사람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저 마누라하고 안 살려고 결심을 했어도 무릎을 딱 꿇고 평소에 그런 적이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여보, 내가 잘못 했어. 당신이 나하고 결혼해서 불행해진 거야. 나를 용서해줘.” 남편이 무릎을 꿇고 “아냐, 여보. 내가 잘못했어.” 그런 것을 인생을 바뀌었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혼서류를 찢어버리고 다시. 그것이 인생이 바뀐 것입니다. 복권대박 맞아가지고 50억씩 나눠가지고 찢어졌더라. 그것은 인생이 바뀐 것이 아닙니다. 인생을 그렇게 바꿔놓을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에는 없는 것입니다.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의 인생을 그렇게 바꿔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있었는데 이것은 진짜 가정 때문에 애들이 교육이 안 됩니다. 학교에서 수없이 가르쳐 봐야 소용없습니다. 여기 뭐 애정을 가지고 가르치는 선생님도 많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부모가 정말 아닌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너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 아이 마음속에는 아빠에 대한 증오심, 미움 이런 것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어느 권사님이 우리 교회 권사님은 아니고 어느 권사님이 썼습니다. 글을 썼는데 보니까 딸이 굉장히 착한 줄 알았습니다. 교회도 잘 다니고. 그런데 간식을 줄려고 가지고 갔는데 아이 공부방 문이 요만큼 열린 것입니다. 그런데 얘는 공부를 안 하고 친구하고 전화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 야 야 야! 그 미친년이 말이야, 아이! 그 개새끼가 있지” 우리 딸이 저런 욕을 할 사람이 아닌데 그리고 계속 들어보니까 그 미친년은 자기고 개새끼는 자기 남편인 것입니다. 이 분이 너무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걔는 바보입니까? 아니 올바르게 잘 살아가는 권사님인데 그년이랑 그 미친년이라고 그러겠습니까? 뭔가 그 아이의 신앙의 모순과 모든 것들이 보인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는 것입니다. 신앙이 없으니까. 걔도 똑같이 그랬던 것입니다. 그런데 걔가 수련회 가서 예수님을 만나고 복음을 듣고 변화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뭐냐 하면 제일 먼저 달라진 것이 자기 아버지가 너무 불쌍한 영혼이라는 것입니다. 불쌍한 영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뀌는 것이 인간이 바뀌는 것입니다.
더 감동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외국에를 제가 자주 갔는데 거기에 계시는 어느 여자분 인데 사모님입니다. 그런데 젊은 나이에 굉장히 내성적이고 얼굴도 아주 예쁘신 사모님인데, 유학을 하러 가는 남편을 따라와서 이제 하다가 남편이 은혜를 받고 목회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까 유학생 때나 신학생 때나 더 가난해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 부인이 일을 하지 않았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을 했는데 무슨 일이었나 하면 화장실청소 하는 일입니다. 화장실을 그냥 청소하는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약품을 들어 부면서 그것들을 소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오래 하다보니까 이것에 감염이 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약간 감정조절을 잘 못하는 것입니다. 그럼 막 어느 날 세월이 굉장히 20년 30년 20년 이상 지난후의일입니다. 아직도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럼 막 여름이 되어가지고 우울증기질이 오게 되면 막 그냥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엄마가 포학을 떠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언행일치가 좀 안되었는데도 걔는 자기 엄마, 그것도 권사님을 ‘그 미친년이’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그것을 받아줄 애들이 요새 어디 있습니까? 엄마의 우울증 히스테리 받아줄 애들이 어디 있습니까? 막 집어던지고 막 욕을 욕을 하고 막 파르륵하고 떠는데. 그런데 그 집 딸내미가 그때 19살 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착합니다. 엄마가 그렇게 하면 막 무서울 턴데 한참 기다리면 엄마가 씩씩거리다가 지쳐서 불이 꺼집니다. 그러면 엄마를 꼭 안아줍니다. “엄마, 힘들지? 그래도 잘 참아야 돼” 그러고 이제 엄마가 가만히 있습니다. “엄마 그러지 말고 내가 목욕시켜줄게. 목욕하고 나면 기분이 훨씬 나아질 거야.” 욕조에다 물을 따뜻하게 받아가지고 엄마 눕혀놓고 다 씻겨주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다 몸을 말려서 그래서 잠옷을 입혀서 침대에 눕히고 딸이 엄마 가슴을 두드리면서 재워주는 것입니다. 엄마, 내가 자장가 불러줄테니까 이제 자. 자고 나면 훨씬 나아질 거야. 하나님이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데, 자장자장 자장 우리엄마 착한 엄마 재워주는 것입니다. 두 딸내미 차이가 뭐겠습니까? 똑같은 나이에, 거의 비슷한 나이에, 같은 세상에 태어나서
(찬양)
주님의 사랑이 내 마음 중심에 있으니 유혹이 흔들어도 무너지질 않네
주님과 함께 있을 때 두려움 사라 지네 주님이 항상 나를 지켜주시네
잘 들어보십시오. 세상이 거의 쓰레기입니다. 쓰레기. 상상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딸이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는데 자기반 학생들 중에서 30% 이상이 전부다 성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이. 상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12살, 13살 된 아이들까지 성매매 업소에 갑니다. 상상이 안 됩니다. 무시무시한 세상입니다. 걔네들을 감시한다고요? 가소롭습니다. 가소롭습니다. 감시 안 됩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을 세상이 아무리 요동치고 썩고 방황해도 걔네들을 붙들어 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신앙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에 대해서 깊이 회개하고, 십자가 사랑을 경험하고 그리고 예수님밖에 의지할 분이 없다는 사실을 이 아이들 속에 심어주는 것입니다.
토요일 날 대개 밤늦게 까지 제가 연구실에 있습니다. 교회에. 그러면 이제 오후시간 되면 잠깐 내려와 보면 조그만 아이들이 요즘 아이들은 또 분간을 못하겠습니다. “아이고 얘들 가르치기 힘들죠?” 내가 교사인줄 알고 그렇게 물어보면 “선생님, 저 중학교 2학년인데요.” “얘들아, 오늘 공부하느라고 힘들었지?” “아니요, 가르치느라고 힘들었는데요. 저 선생님입니다.”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중학교 1학년, 2학년, 3학년 아이들이 토요일 날 교회에 기도하러 나옵니다. 그래가지고 한번은 방송국에서, 이제 우리교회의 홍보실에서 어른들에게 뭘 부탁하고 싶은지 한번 얘기 해봐라 그랬더니 중학교 2학년인가 걔가 나와서 “성도여러분, 저희들이 참된 성도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그런데 걔네들은 완전히 세상에 살지만 세상아이들이 아닙니다. 그 시간에 나와서 골방에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한 시간씩 한 시간 반씩
(찬양)
내 평생 사는 동안 주 위해 살리라 주님의 뜻대로 나 평생 살리라
자기 엄마한테 미친년이라고 그런 애들이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을 용서해달라고 그럽니다.
우리 아들은 13살 때 회심을 했는데 그때까지 회심이 없었습니다. 13살 때 깊이 회심을 하고 이제 대학교 졸업반입니다. 그런데 얘는 나는 별로 그렇게 야단치지 않는데 어렸을 때는 내가 야단을 가끔 쳤지만 지금은 야단을 안칩니다. 우리 집 사람은 가끔 야단을 칩니다. 어느 날 우리 집사람이 그럽니다. “여보! 여보!” “왜?” “우리아들은 야단을 칠 수가 없어” “왜?” 뭐라고 좀 따끔하게 나무라면 자기 방에 가서 한참동안을 통곡을 하고 우는 것입니다. 뭐라고 우냐? 그랬더니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것을 용서해달라고. 그게 신앙의 힘입니다.
세상 자꾸 얘기 하는데 언제 세상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좋은 세상이 된 적이 있습니까? 초대교회 때부터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습니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세상 탓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럴수록 우리는 아이들이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됩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그렇게 눈물로 기도합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어른들하고 틀립니다. 어른들은 신앙을 받아들이면서도 이속에서 계속 주판알 튀기고 계산기 돌리면서 마음을 쏟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다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고 그리고 새사람이 됩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컴퓨터나 세상의 첨단과학기술로도 사람의 가는 방향은 바꿀 수가 없습니다. 오직 복음의 말씀, 하나님의 진리만이 그 사람을 바꿔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제 가정에서도 제대로 못합니다. 가정에서도 못합니다. 교회가 마지막입니다. 마지막. 마지막 보루입니다.
그래서 우리 선생님들의 사명이 너무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잘 들어 보십시오. 여기까지 한 다음 내가 항상 실험을 합니다. 한 20명 다 일으켜 세워서. 아까는 뭘 물어보았습니까? 지난 주일날 뭘 가르쳤냐고 물어 보았잖습니까? 이번에는 다 일으켜 세워서 주일날 목사님이 성경 어디를 설교했는지 기억나는 사람만 서있고 나머지는 앉아라. 그러면 20명 중에 16명 내지 18명이 주저앉습니다. 자신이 목사님에게 꼭 예배드리고 설교를 듣는 태도가 자기가 가르치는 주일학교 애들이 자기한테 하는 것 하고 똑같은 태도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데, 오늘 월요일 날 세미나를 하는데 어저께 예배드린 것도 지금 어디에서 설교를 했는지 기억도 안나는데 그렇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면 그것은 거짓말이잖습니까? 그러니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쳤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아이들은 너무 너무 소중한 시간, 주님을 순수한 마음으로 믿을 수 있는 그 시기를 점점 놓치면서 세상의 잡스러운 쓰레기 같은 사상이 머리를 채우면서 하나님의 대해서 반대하는 사상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딱 꽂히면 그 다음에 교회를 떠나는 것입니다. 아주 악한 방식으로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나는 교사인 여러분들에게 오늘 묻고 싶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어 보십시오. 교사들만 가슴에 손을 얹어보라니까요. 왜 그렇게 못 합니까? 얹어 보십시오. 구역장도 얹으십시오. 구역장도 교사니까 얹어보십시오. 내가 가르치는 영혼의 이름을 부르면서 최근에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는 사람 한번 손 좀 들어 보십시오. 영혼들이 여러분들에게 누구입니까? 손 내리십시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키더맨스터의 리차드 백스터라는 17c에 청교도가 있었습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 없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누군가 대신 울어주어야 할 불쌍한 사람입니다.” 영혼은 누군가 그 영혼을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이 있어야지만 한 알의 밀알이 되는 사람이 있어야지만 영혼이 배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날 와서 공과 가르치는 것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그 가르치는 시간이 활기차고 아이들의 가슴속에 진리의 말씀이 스며들기 위해서는 일주일동안 그 가르치는 시간보다 9배는 더 많이 기도하고 심방하고 성경을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심방해 본 게 언제입니까? 그래서 집에까지 불신자 집안이어서 못 들어가면 동네 골목 앞에서라도 신앙이 없는 그 영혼을 위해서 함께 손잡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까? 항상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영혼으로 사랑하셨는지를 기억해야 됩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피 흘려 죽으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를 흘리며 먼저 기도하셨죠? 그리고 우리의 구원받지 못한 상태가 자신의 불행인 것처럼 하나님 앞에 심한 통곡과 눈물로 울부짖으셨고 그래서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정말 복된 영혼들은 선생님을 잘 만난 영혼들입니다. 자기들 위해 울어주는 선생님이 있고, 자기의 파리한 영혼을 위해 가슴아파하는 선생님이 있고, 진리의 말씀을 하나라도 마음에 넣어주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선생님이 있다면 그 아이들에게 마지막 희망입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숙제를 하나 내드리겠습니다. 검사는 우리 담임목사님이 하실 것입니다. 내가 다시 올 기회는 많지 않을 테니까. 오늘 저녁에 집에 가서 꼭 하십시오. 꼭. 오늘 저녁에 집에 가서 여러분들이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의 이름을 적어보십시오. 그리고 정직하게 동그라미 해보십시오. 얘가 정말 예수 믿은 앤가? 아주 쉽게 이야기 하면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 애인가? 확신이 없으면 다음 주에 와서 대화를 해 보십시오. 믿어지는지. 그리고 예수 믿은 사람으로서 그 안에 성령님이 계시는지 그리고 하나님 사랑하는지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그 표를 완성 하십시오. 그 결과를 한번 보십시오. 어떻게 되었나?
피가 섞였습니까? 살이 섞였습니까? 그런데도 영혼을 사랑하는 이유는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을 품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열심히 성경을 읽고 사랑하고 교사를 5년쯤 했으면 신구약주석 한질쯤은 있어야하고, 교사를 5년 했으면 5단짜리 책꽂이 하나정도는 기독교 신앙에 관한 책들이 가득 꽂혀 있어야 됩니다. 밥 먹을 때는 대 여섯 명이 몰려가서 10만원씩 돈을 내도 어이 싸네. 서점에 가서 책 한권 살 때는 이거 얼마예요? 만원인데요. 어으! 그러면 안 되겠죠? 그래서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배웁니다. 한 절의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오늘 내가 아이들을 만났을 때 가슴에 깊이 심어주어야지.
우리교회 다니는 아이의 재미있는 간증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고 했는데 목사님이 설교하실 때도 믿어지지 않았고 선생님이 나에게 공과를 가르칠 때도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선생님이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단다.” 하고 눈물을 흘리실 때 제 마음에 그 말씀이 믿어졌습니다. 믿어졌습니다.
힘들죠? 어렵죠? 일찍 나와서 그것도 주중에 심방하고 토요일 날 심방하고 어렵죠? 그때마다 생각하십시오.
(찬양)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고난을 잘 감당하면서 그 영혼 하나하나를 그렇게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줄 때, 그 때에 여러분들의 상급은 하늘에서 정말 클 것입니다. 그 아이들의 희망입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