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완덕의 삶(1)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 2:15-17)
녹취자: 박지성
그렇게 반대자들이 있을 때마다 항상 그런 생각을 합니다. 칼빈도 그런 사람들에 에워싸였겠지. 많습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노트르담 내부 성당의 강의실에서 성경을 강의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야비하게 칼빈을 공격했습니다. 인신공격을 해서 짓밟았습니다. 이 사람이 카스트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에워싸여서 살았던 것입니다. 숲속에 들어가서 조용히 책을 썼으면 한 10년은 더 살았을 것입니다. 온갖 괴로움을 당하면서 죽어갔습니다.
그런 것들을 이렇게 보면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교회가 평안하면 정상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비정상적인 일이 요새 일어나고 있구나 생각을 하고 누군가가 나를 괴롭히고 막 힘들게 하면 교회가 원래 이런 것이구나 생각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야지 그것 작은 일 하나에 울고 웃고 이렇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뭔가 자기를 둘러싼 오해들이 생겨나고 할 때 자기가 진위를 밝히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이미 목회자를 미워하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에게는 진실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참으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지복의 삶이 있어야지만 여기서 고통을 받을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치유되고 그 다음에 잊히는 은혜의 경험을 할 것 아닙니까?
우리의 몸은 약 60조 개의 세포들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세포의 종류에 따라서 수명이 다르지만 짧게는 이틀 그리고 길면 몇 달, 3개월이면 거의 모든 세포들이 갱신이 됩니다. 그런데 뇌세포 같은 것은 한번 죽으면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죽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세포들이 생겨납니다. 우리의 몸 전체를 보면 약 60조개의 꼬마전구들이 매달려서 불을 깜박거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세포의 죽음에 두 가지가 있는데 네크로시스와 아포토시스라는 이름이 붙여진 죽음입니다. 네크로시스는 타의적인 죽음입니다. 그것이 뭐냐면 세포가 수명이 다 해서 죽는다든지 아니면 충격을 받아서 괴사해 버린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과학으로 못 푸는 죽음이 있는데 아포토시스의 죽음입니다. 이것이 뭐냐면 세포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살을 해버리는 것입니다. 스스로 죽어버립니다. 죽으면 죽을 때에 단기간 동안에 아주 질서 정연하게 아포토시스의 죽음이 실행됩니다. 네크로시스는 희랍어 네크로스에서 나온 것입니다. 죽을 때 ATP라는 화학에너지가 나옵니다. 그것을 동력으로 사용해서 세포들이 분리되고 그러면 세포들은 죽은 세포의 잔여물을 시세포 작용으로 삼키고 리소좀에서 소화를 시켜서 새로운 세포로 만드는 재료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이야기와 너무 똑같았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나의 죽음도 유익함이라” “To die is to gain” 무슨 이야기냐면 생명체는 끊임없이 죽는 것을 통해서 생명을 구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천문학을 공부하면서 너무 재미있는 것이 별들이 어떻게 생겨나나 하면 별들이 몇 십억 년이 되다가 수명이 다하면 마지막에 적색외성의 상태가 되면서 어마어마한 폭발을 일으킵니다. 쾅하고 폭발을 일으키면서 사라집니다. 예를 들자면 태양이 언젠가 세월이 흘러서 적색외성이 되어서 폭발이 된다면 수금지화목성까지 다 불덩어리로 삼켜버립니다.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파편이 흩어지면서 그것들이 먼지가 됩니다. 그 먼지들이 떠돌아다닙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한 5년 전에 나사에서 그 먼지들을 발견했는데 그 먼지들이 모여 있는 거리가 약 2광년 정도 됩니다. 빛이 2년 갈 동안에 그런 먼지들이 싸여있는 것입니다. 스타더스트라고 합니다. 그런 말하자면 별들이 폭발한 작은 조각들이 모여 있다가 또 다른 별들이 폭파하거나 힘이 가해지면 이것들이 운동이 시작되고 이 먼지들이 모여서 운동이 시작되면서 이것들이 응축이 되면서 핵반응이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폭발이 일어나면서 이 먼지들 속에서 떨어져 나와서 하나의 별들이 만들어 지는데 이것이 뉴스타의 탄생입니다. 무슨 뜻이냐면 새로운 별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어떤 별들이 죽으면서 남긴 별 먼지들을 사용해서 새로운 별들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주도 그렇고 그 다음에 세포도 이렇고 영적으로도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리스도의 교회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몸속에서 어떤 세포들은 안 죽겠다고 몸부림을 치는 세포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더 많은 양분을 빨아들이고 죽지 않으면서 세포가 계속 증식됩니다. 그것을 우리가 의학용어로 암이라고 부릅니다. 암은 결국은 안 죽겠다는 세포들이 뭉쳐서 몸 전체를 죽음으로 데려가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살겠다고 암처럼 몸부림치는 사람이 있으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어야지만 교회가 생명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다 살겠다고 몸부림을 치면 결국 교회가 죽는 것입니다. 그런 죽은 사람들이 누구냐 그런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이 특별히 은혜를 주신 사람들입니다. 목회자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교회를 위해서 자기를 버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는 정말 목회의 길에 들어설 때 다른 것은 자신이 없었는데 하나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가난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왜냐면 아주 가난하게 살아봤기 때문에 목회를 하면 가난해진다는 것이 그 당시의 통설이어서 내가 그것은 견딜 수 있겠다. 적어도 가난 때문에 죄를 범하거나 그러지는 않겠다. 그런데 사실은 목회자들 중에는 저처럼 너무 가난하게 살았고 지금도 가난하니까 목회자들이 그런데 이제 그것이 우리가 완덕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거치는 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살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화) 30년 전에 교계에서 진짜 있었던 실화입니다. 어느 날 한 교회의 담임 목사님의 집에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아주 목소리가 고운 중년 여성이었습니다. “아무개 목사님이시죠?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저는 ○○교회 다니는 아무개집사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랬더니 “저는 매주 한 번씩 나오는 목사님의 라디오를 듣고 있는 성도입니다. 그런데 제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전화가 오면 어떻겠습니까? “참 감사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하셨습니까?”, “사실 목사님 저는 여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아! 그러세요.”, “그런데 하나님이 복을 참 많이 주셨어요. 은혜를 받고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주의 종들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세요?” “그래서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들을 30분을 선정해서 성지순례를 시켜드리려는데 목사님도 꼭 모시고가고 싶은데, 목사님 시간 좀 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여러분이라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좋지 않습니까? 목사님이 활짝 마음이 핀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이런 일이 몇 년이 가도 안 나오는데 라디오에서 설교를 듣고 이렇게 은혜를 받았다고 “어우, 그럼요. 시간을 내야죠.” 그 후에 연락이 더 오면서 언제 언제까지 오시라고 해서 가보니까 목사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여행이 시작되었는데 그 바쁜 사장이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호텔, 제일 좋은 음식으로 대접을 하니까 식사시간마다 그 회사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줬는데 그 30명의 목사님 중에는 그 회사가 어디 있는 회사인지 그 여 집사가 어느 교회에 다니는 사람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은혜롭게 성지순례를 모두 끝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 자고 아침에 비행기타고 한국으로 오면 되는데 진행본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모두 상황실에 모여 달라고 뭔가 하고 갔더니 깜짝 놀랐습니다. 깃발이 걸려있는데 이단의 깃발이 걸려있었습니다. 그러더니 그 상냥한 여집사가 나와서 전혀 다른 안색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목사님들은 우리 교주 아무개께서 대주신 돈으로 여행을 하셨습니다. 자, 이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십니다. 내일은 한국으로 돌아가실 텐데 우리에게 협조를 해주시던가 아니면 교계에 가서 폭로를 당하시든가” 그래서 실재로 돌아와서 발칵 뒤집혔고 그중의 몇 분은 아예 면직되었고 한 분은 오자마자 노회에 가서 무릎 꿇고 내가 속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선처를 받은 물론 징계는 받았지만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항상 거기에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아래층에 영어유치원을 합니다. 아이들이 꽤 많이 모이고 신도입니다. 온지 한 2년 되었는데 원장님이 “목사님, 뵙고 싶어요. 뵙고 싶어요.” 그래서 “예, 뵙고 싶은데 제가 바쁘네요.” 했더니 선물을 보냈습니다. 받아보니까 랄프로렌 명품가방을 보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행정실장을 불러서 돌려보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공짜는 모두 나쁘다. 거기에는 반드시 그런 심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 생애 첫 번째 교회에는 한 세 살 때 등에 업혀서 출석하던 교회였습니다. 목사님이 아주 애국지사의 집안에서 태어나셨는데 아주 가난하게 목회를 하셨습니다. 나중에 교회를 하시다가 돌아가셨는데 미아리 공동묘지에 교회를 개척하셔서 끼니를 잇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셨습니다. 그분의 사진을 보면 빼빼 말랐습니다. 그래서 죽만 먹으면서 목회를 하셨는데 더 놀라운 것은 무엇이냐면 그 교인 중 아무도 목사님이 7년 동안 죽만 먹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철저하게 위장을 하신 것입니다. 당신은 죽만 드시면서도 심방을 가실 때는 포마드 기름을 바르고 깨끗한 양복을 입고 단정한 차림으로 나와서 설마 목사님이 그런 정도로 가난하실까. 항상 이런 물질에 대한 태도가 올바르지 않으면 항상 부패와 관련이 됩니다.
우리 교회에서 방송장비를 구입하는데 봉투를 가져왔더랍니다. 직원들에게. 이것이 뭐냐고 물으니까 리베이트 5%라고 하더랍니다. 이것이 도대체 뭐냐고 했더니 아니 그것이 뭐냐고 당연한 것 아니냐고 서울에 소재하는 이름만 대면 아는 큰 교회들의 이름을 줄줄이 꿰는 것입니다. 그 교회들도 자기들이 다 5%씩 가져다 바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지 마라 여기는 하나님의 교회인데 그러면 되겠느냐.
어느 신학대학에서는 자기들이 납품할 때 현금영수증을 달라고 하더랍니다. 신학대학에서도 그러냐. 이런 부패들이 너무나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저런 것들은 옳지 않습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이 정덕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물질에 대한 욕심, 권위에 대한 잘못된 사용, 교만함 우리가 누구입니까? 겨우 주님의 집에 수종을 드는 노예에 불과한 사람들인데 그런 삶을 살아서 되겠습니까? 그런 속에서 목회자가 완전할 수는 없지만 온전해지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그러면서 불편한 것들을 감수하고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그것이 신자의 삶이고 목회자의 완덕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셔서 진공과 같은 곳에서 목회를 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고통 속에서 목회를 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잘했던 설교도 잊히고 자기가 무슨 목회를 잘 해서 큰 교회의 빌딩을 지어놔도 몇 십 년 지나면 그것을 누가 지었는지 기억도 못합니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질곡의 삶, 그래서 주님 때문에 행복하고 그래서 은퇴를 하거나 교회를 떠날 때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 목사가 전해준 구체적인 언어와 설교의 내용은 생각이 안 나지만 예수 믿는 사람이 이런 사람이 되고 이런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이 존재의 어떤 울림으로 남는 것, 존재의 울림이라는 것은 최근에 제가 만든 용어인데 저는 매일 감동이 됩니다. 그런 존재의 울림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찾아서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인정과 도움이 없이는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