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받은 종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서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 25:20-21)
녹취자: 김명진
오늘 성경에 보면 한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종들에게 자기의 소유를 맡겼습니다. 아마 그 종의 재능에 따라서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어떤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또 어떤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한 달란트는 굉장히 큰 액수의 돈입니다. 그리고 주인이 돌아와서 자신이 맡긴 것을 결산하게 될 때에 오늘 우리가 읽은 이 구절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능력이 없고, 재능이 탁월하지 않다는 것을 가지고 삶에서 무엇인가 하나님을 향한 섬김의 열매가 없는 것을 정당화 합니다. 대개 게으른 사람들이 그런 논리를 가지고 삽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주님이 주시지 않은 분량만큼 탁월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만큼 탁월해 질 수 있을지는 그 가능성을 주신 하나님이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탁월해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미 주신 것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충실하고 또 그것으로서 열매를 맺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음악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것도 귀의 유혹이 참 많습니다. 조금 들으면 소리가 시원치 않아지곤 하는데 그래서 사람들에게 자꾸 욕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어쨌든,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데 켜놓고 듣다 보면 소외감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이 좋은 음악을 나는 평생 한 번도 연주를 하지 못하고 듣기만 하는구나.’ 연주를 듣는 것과 하는 것과 지휘하는 것과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창조할 때의 음악에 대한 경험은 현저하게 다릅니다. 아마 여러분도 설교를 듣는 것과 하는 것과 또 그것을 만드는 것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어느 정도 기억할 것입니다. 너무 훌륭하게 연주를 잘하는 사람들의 연주를 들으면서 ‘나는 평생 듣기만 하는 구나. 한 번도 저 속에서 내가 연주를 해 보지 못하는 구나.’ 아주 탁월하게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나는 태어나서 결국은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저런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듣기만하고 죽는구나.’ 어떤 때는 낙심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잘은 모르지만 하나님이 그런 탁월한 재능, 바이올린을 연주하되 세계에서 열 번째에 드는 재능, 아리아를 노래하되 세계에서 다섯 번째에 드는 재능, 그것을 나에게는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비교하면서 마음이 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그런 탁월한 재능이 없어도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든지 우리에게 이미 맡겨주신 달란트가 있고, 그것을 우리가 사용해서 하나님 앞에 열매를 남겨드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런 것을 우리에게 맡겨 주셨을 때 우리가 어떤 삶을 살게 되기를 기대하셨을까요? 그 얘기를 하기에 앞서 먼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이 아무 의미도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가 아무리 무가치해 보여도, 그가 아무런 재능이 없어 보여도, 때로는 그가 심지어는 악을 행하는 나쁜 죄인이라도 하나님이 쓸모없이 사람을 창조하신 것은 없다. 쓸모 있게 되는 것은 주님에 의해서 그 쓸모가 발견되고 개발되는 것이고, 쓸모없이 되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의 쓰임새에서 멀어지기 때문에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여도 스스로 쓸모없는 사람의 길을 걸어가면 그 쓰임새에서 멀어져서 결국은 하나님은 그렇게 창조하지 않으셨는데 스스로 쓸모없는 자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어야 할지를 오늘 성경에서는 말합니다. 세 가지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첫째는 우리가 잘 하기를 원하십니다. 무엇을 하나님 앞에 섬기든 잘 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여기에서 잘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 했다, 잘 못했다는 것은 그것에 대해서 의도하신 분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준이 되어서 가까이 가면 잘 한 것이고 잘 못 나갔으면 잘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일을 잘 하려고 해도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의 기준이 되시는 하나님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신지, 그것을 하는 것이 훌륭한 일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종은 잘했다고 칭찬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잘 하는 종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요즘에는 다 없어 졌지만 예전에는 학교에 가면 “착한 사람이 되자.”라고 했습니다.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열정적으로 무엇인가 일을 하려고 할 때, 남다른 불타는 의욕은 있지만 착해지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는 이 사람을 가리켜서 착한사람이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잘 했다. 참 착하다.”라고 하셨습니다. 착하다는 것도 기준이 필요합니다. 유괴범이 와서 과자를 사주며 자기를 따라오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착하다고 하는 것과 학교에서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누구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착함이냐는 것입니다. 오늘 이 사람은 주인에게 이런 칭찬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할지라도 일은 항상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 정도 하고 나면 그 일은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다시 그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때로는 아주 탁월한 능력과 재능이 있는데도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 때문에 역사의 무대에서 퇴출됩니다. 그러면 마지막에 일 없이 하나님 앞에 자기 존재로만 남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 보시기에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이 여러분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충성 되구나.”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것도 기준이 필요합니다. 누가 보았을 때 충성스러운 것입니까? 돈을 맡아주는 은행업자들이나 동료들이 보기에 충성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주님이 보기에 충성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속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사람에게 속고, 혹은 사람에게 기만당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심정을 통찰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저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당신을 섬기고 있는지를 아주 잘 아십니다. 하나님은 지식이 조금 부족하고 모자라도 충성된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모자라면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충성스럽지 않고 유능하고, 충성스럽지 않고 열정적인 사람들 보다는 오히려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이 자기의 뜻을 이루셔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 사람이 이 일을 하였도다.”라고 말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이 그 일을 하셨도다.”라고 말하게 하십니다.
여러분이 평신도들의 지도자로서 충성된 삶에 있어서 모든 따르는 사람들의 모본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고, 사면에서 박수치고 존경한다고 할 때 잘하는 일은 순수하게 하나님을 위하여 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이름을 내고자 하는, 자신도 모르게 작용하는 욕망에 기인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따뜻하고 밝은 날이 아니라 눈보라치고 북풍 한 설에 살 에이는 그 겨울을 통해서 푸른 나무들이 사시사철 푸른지 일시에 푸른지를 스스로 입증하듯이 그리스도인의 섬기는 삶도 그러합니다. 마음을 다하여 온전하게 섬기고 의지하며 사는 것이 바로 충성스러운 삶입니다. 내 앞에 전개된 삶의 상황이 내가 의도했던 대로 굴러갈 때 물론 충성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내 앞에 전개되는 나의 개인적인 삶의 상황이 내 뜻대로 안되어 하나님을 섬기기에 매우 불리한 위치에 있어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충성스러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이 일을 섬기도록 불러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오해를 받을 때나, 인정을 받을 때나, 박수갈채를 받고 칭찬을 해줄 때나, 때로는 욕을 먹을 때나 변함없이 자기를 불러 주신 하나님 때문에 자신에게 맡겨 주신 일을 충실하게 해내는 사람이 주님의 편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믿음의 아름다운 지위와 담대함을 얻게 됩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완전하게 잘 할 수 없고, 또 자신은 일생을 살아도 다 파악하지 못하는 약점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빛으로 하나님 앞에서 주님이 주신 양심을 따라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사자의 울부짖는 소리에 깜짝 놀라거나 정신이 혼미해지지 않습니다. 더욱이 사람들이 이 길을 가는 자신에게 무엇이라고 말하든지 간에 좋은 충고를 귀담아 듣는 것은 덕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의 말에 삶의 존재 자체가 뒤흔들릴 정도의 사람이 된다면 그가 걸어온 길이 신앙 안에서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항상 우리를 움직이고 바르게 하는 것은 사람의 평판이나 박수나 포상이 아닙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사람의 사람이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주님 때문에 살고, 주님 때문에 죽고, 때로는 내가 원하는 삶의 상황이 전개되든지 혹은 그렇지 않든지 늘 자신의 섬김의 유일한 이유가 되시는 우리 하나님을 섬기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